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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성 2017. 9. 4.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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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나의 분할, 불성의 분할
[연재] 강병균의 환망공상과 기이한 세상 162.
2017년 09월 01일 (금) 10:47:11 강병균 교수(포항공대) cetana@gmail.com

대승불교에서는 모든 동물에 불성이 있다고 한다. 동물은 서로 윤회를 한다고 한다.

이 불성은 한국불교에서 참나(眞我 true atman)로 불린다. 그래서 진제 조계종 종정 등 큰스님들이 '참나를 찾읍시다' 하고 큰 소리로 외치면, 작은 스님들도 따라서 '참나를 찾읍시다' 하고 작은 소리로 외친다.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이 참나인 주인공이 이 몸을 버리고 저 몸으로 들어간다'고 주장한다. 소위 윤회이다.

 

이 점에서 참나는 '영혼(soul)'이다. 참나는 절대 죽지 않는다. 영원히 산다. 몸은 죽을지라도 참나는 죽지 않는다. 물질계를 초월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몸에 뇌에 무슨 재앙이 닥쳐도 살아남는다. 불속에 물속에 들어가도, 몸과 머리가 박살이 나도, 흠집 하나 나지 않고 끄떡없이 살아남는다. 참나는 '불멸의 영혼(immortal soul)'이다. 

 

사람이 사고로 몸이 위아래 두 쪽으로 나뉘면, 머리 쪽은 살아남을 수 있지만, 머리가 없는 쪽은 죽는다.

 

영혼이 머리 쪽을 따라다니는 것으로 보인다. 예외가 없다. 사고 후 하반신을 잃고 살아남아도, 새 영혼이 들어와서 남은 몸이 사는 게 아니라, 옛 영혼이 그대로 있다. 기억이 그대로 있다. 그래서 정신적 정체성이 유지된다. (아무도 '혹시 다른 영혼이 그 영혼인 척 위장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고 걱정하지 않는다. 설사 가짜라 해도, 어떤 경우에도 예외 없이 옛날 영혼과 똑같이 행동하면 전혀 문제 될 게 없기 때문이다.)

 

편형동물(flatworm)도 동물이고 머리도 있다. 이 동물은 몸이 둘로 나뉘어도, 둘 다 살아남는다. 머리가 없는 쪽은 머리를 재생하고, 머리가 있는 쪽은 몸을 재생한다. 이 경우 이 편형동물의 영혼은 둘로 나뉘었나? 즉, 참나가 둘로 나뉘었나? 하지만 어떻게 참나가 둘로 나뉠 수 있다는 말인가?

아니면 머리 쪽에는 옛 영혼이 그대로 있고, 몸 쪽에는 새 영혼이 즉 새 참나가 들어왔나? 왜, 영혼은 머리를 사랑할까? 편애할까? 왜, 옛날 사람들이 믿었듯이, 심장을 선호하지 않을까? 지금도 힌두인들과 한국의 일부 불교인들은 의식이 심장에 거(居 inhabit)한다고 믿는다. 그런데 왜, 머리가 없는 사람은, 심장이 멀쩡해도, 의식이 없을까? 이들 말대로 심장에 의식이 머문다면, 인공으로 심장에 피를 공급하여 '머리 없는 몸'을 살려야 하겠다.

 

둘로 잘린 편형동물의 참나는 어떻게 두 개의 참나로 변할까? 이런 모순은 참나의 존재를 부정하면 일어나지 않는다: 모순은 '참나가 존재한다'는 주장에서 발생한다. 참나에 대한 믿음은 생물학에 대한 무지에서 발생한다. 진화론에 대한 무지는 참나에 대한 맹목적 믿음을 강화한다. (진화론을 정면으로 부인하는, 한국불교의 정신적 지주인, 대수행자 송담 스님은 '원숭이가 인간으로 진화하는 법은 없지만, 사람의 영혼이 윤회를 통해 원숭이의 몸에 들어가는 것은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이 점에서, 깨달았다고 하는 이분들이 '도대체 무얼 깨달았는지' 그 내용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불교 무아론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참나를 주장하는 분의 깨달음이란 필시 대망상일 것이다. 참나라는 환망공상을 얻었을 것이다.)

 

생물은 간단치가 않다. 식물과 동물의 경계선 상에 있는 생물도 있다. 스피로헤타·박테리아 등이 있다. 식물은 윤회하지 않고, 동물만 윤회한다면, 식물과 동물의 경계선 상에 있는 생물은 어떻게 되나? 이런 난문(難問)이 발생하는 이유는, 동물에만 영혼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영혼이 있다는 증거로 의식과 기억을 든다.

 

하지만 식물에게도 기억이 있다. 장장 35억 년간의 기억이 있다. 씨앗에 들어있는 기억이 몸을 만든다. 조그만 물방울 크기의 씨앗이, 84미터 높이와 8미터 직경의, 거대한 세콰이어 나무를 만든다.

 

식물에게도 신경이 있다. 미모사 같은 식물은 자극에 잎을 움츠리며 반응을 한다.

동물의 모든 행동에 의식이 수반하는 것은 아니다. 동물의 행동은 90프로 이상이 무의식 차원에서 이루어진다. 걷는 것, 춤추는 것, 운전하는 것 모두 거의 무의식 차원에서 이루어진다. 세세한 동작을 모두 의식으로 제어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특히 폐·위장·심장 등 장기의 움직임과 활동은 우리 의지와 전혀 관계가 없다. 자기들 맘대로 움직이고 활동한다. 우리가 의지로 멈출 수도 없고, 멈춘 걸 작동시킬 수도 없다. 기능을 느리게 할 수도 없고, 빠르게 할 수도 없다. (대승불교는 신진대사, 즉 혈액순환·체온유지·호흡작용을 담당하는 의식을 알라야식에 포함시켰다.)

불성은 원래는 '부처가 될 가능성 또는 잠재력'에 지나지 않는데, (불법을 오해한 사람들이) 그걸 실체화한 게 참나이다. 불생불멸하고 상주불멸하는 (연기법을 벗어난) 초월적인 존재로 실체화했다. 힌두교 우주아(宇宙我 universal soul, universal self)인 브라흐마(Brahma 梵)와 다를 바가 없는 실체적 존재이다. 이 실체로서의 참나는 두 동강난, 하지만 따로따로 살아있는, 편형동물 앞에서 산산조각 나 무너진다.

 

   
 

서울대 수학학사ㆍ석사, 미국 아이오와대 수학박사. 포항공대 교수(1987~). 포항공대 전 교수평의회 의장. 전 대학평의원회 의장. 대학시절 룸비니 수년간 참가. 30년간 매일 채식과 참선을 해 옴. 전 조계종 종정 혜암 스님 문하에서 철야정진 수년간 참가. 26년 전 백련암에서 3천배 후 성철 스님으로부터 법명을 받음.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은 석가모니 부처님이며, 가장 위대한 발견은 무아사상이라고 생각하고 살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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