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자료실/한역아함

마성 2018. 2. 16. 02:20


28. 현법열반경(現法涅槃經)

마성/ 팔리문헌연구소장    

 

원문

(28)1) 如是我聞: 一時, 佛住舍衛國祇樹給孤獨園. 爾時, 有異比丘來詣佛所, 頭面禮足, 卻住一面, 白佛言: “世尊! 如世尊所說, 得見法涅槃, 云何比丘得見法涅槃?” 佛告比丘: “善哉! 善哉! 汝今欲知見法涅槃耶?” 比丘白佛: “唯然, 世尊!” 佛告比丘: “諦聽! 善思! 當為汝說.” 佛告比丘: “於色生厭離欲滅盡, 不起諸漏, 心正解脫, 是名比丘見法涅槃; 如是受. 於識生厭離欲滅盡, 不起諸漏, 心正解脫, 是名比丘見法涅槃.” , 彼比丘聞佛所說, 踊躍歡喜, 作禮而去.

 

역문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舍衛國) 기수급고독원(祇樹給孤獨園)에 계셨다.

그때 어떤 비구가 부처님을 찾아와 부처님 발에 머리 숙여 예배하고 한쪽에 물러서서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현법열반(現法涅槃)을 얻는다.’고 말씀하시는데, 어떻게 비구가 현법열반을 얻습니까?”

부처님께서는 그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구나. 네가 지금 현법열반에 대해 알고자 하느냐?”

비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자세히 듣고 잘 사유하라. 내 너를 위해 설명하리라.

부처님께서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비구여, 색에 대해서 싫어하는 마음을 일으키고, 탐욕을 소멸하며, 완전히 없애고, 어떤 번뇌도 일으키지 않아 마음이 바르게 해탈하면, 이것을 비구의 현법열반이라 한다. 이와 같이 수식에 대해서 싫어하는 마음을 일으키고, 탐욕을 소멸하며, 완전히 없애고, 어떤 번뇌도 일으키지 않아2) 마음이 바르게 해탈하면, 이것을 비구의 현법열반이라 하느니라.”

그때 그 비구는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 뛰면서 예배하고 물러갔다.

 

해석

이 경의 핵심 내용은 오온에 대해서 싫어하는 마음을 일으키고 탐욕을 소멸하며 완전히 없애고, 어떤 번뇌도 일으키지 않아 마음이 바르게 해탈하면, 이것을 비구의 현법열반(現法涅槃)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한역 원문의 세존! 여세존소설, 득현법열반, 운하비구득현법열반(世尊! 如世尊所說, 得見法涅槃, 云何比丘得見法涅槃?)”을 『한글대장경』에서는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법을 보아 열반한다[見法涅槃]’고 말씀하시는데, 어떤 것이 비구가 법을 보아 열반하는 것입니까?”라고 번역했다. 그러나 득현법열반(得見法涅槃)’이라는 대목은 현법열반(現法涅槃)을 증득하는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 여기서 견()은 현()과 같은 글자이므로, ()으로 읽어야 한다. 현법(現法, diṭṭhadhamma)이란 현세(現世), 즉 금생(今生)을 말한다.





현법과 열반을 합친 현법열반(現法涅槃, diṭṭhadhamma-nibbāna)’이란 현세에서 열반을 얻는다는 뜻이다. 이 경에서는 오온을 싫어하고 오온에 대한 탐욕을 여의며 오온에 대한 애착과 번뇌를 멸하여, 다시는 번뇌를 일으키지 않고 바르게 해탈한 경지를 현법열반이라고 했다. 이 경과 대응하는 니까야(SN22:116)에서는 현법열반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세존이시여, ‘법을 설하는 [비구], 법을 설하는 [비구]’라고들 합니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해서 법을 설하는 [비구]가 되고, 어떤 것이 [출세간]법에 이르게 하는 법을 닦는 [비구]이며, 어떤 것이 지금여기에서 열반을 증득한 [비구]입니까? 비구들이여, 만일 색()을 염오하고 색에 대한 탐욕을 여의고 색을 소멸하기 위해서 법을 설하면 그를 법을 설하는 비구라 부르기에 적당하다. 만일 색을 염오하고 색에 대한 탐욕을 여의고 색을 소멸하기 위해서 수행하면 그를 ‘[출세간]법에 이르게 하는 법을 닦는 비구라 부르기에 적당하다. 만일 색을 염오하고 색에 대한 탐욕을 여의고 색을 소멸하였기 때문에 취착 없이 해탈하였다면 그를 지금여기에서 열반을 증득한 비구라 부르기에 적당하다. () () () ()도 이와 같다.3)

 

위 경전에서 지금여기로 옮긴 딧타담마(diṭṭhadhamma)’를 중국에서는 현법(現法)’으로 옮겼고, 서양에서는 ‘here and now’로 번역했으며, 국내에서는 지금여기로 옮기고 있다. 『잡아함경』5권 제105선니경에서 붓다는 현세[現法]에서 애욕을 끊고 탐욕을 떠나 모든 번뇌를 없애면 열반(涅槃)을 얻는다.”4)고 말했다. 이 경에서 열반은 현법열반(現法涅槃)을 의미한다.


중아함경』165 온천림천경에서 붓다는 부디 과거를 생각하지 말고, 또한 미래를 바라지도 마라. 과거의 일은 이미 사라졌고, 미래는 아직 이르지 않았느니라. 현재 존재하는 모든 것[], 그것 또한 이렇게 생각해야 하나니, 어느 것도 견고하지 못함을 기억하라. 지혜로운 사람은 이와 같이 아느니라.”5)고 했다. 과거와 미래는 지금여기에서 당면한 괴로움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기 때문이다. 『잡아함경』16권 제414경에서 붓다는 전생에 대해 언급하지 말라고 했다.

 

비구들이여, 전생에 한 일에 대해 말하지 말라. 왜냐하면 그것은 이치에 도움이 되지 않고, 법에 도움이 되지 않으며, 범행에 도움이 되지 않고, 지혜도 아니고 바른 깨달음도 아니며, 열반으로 향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비구들이여, 마땅히 함께 이 괴로움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苦聖諦], 괴로움의 원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苦集聖諦], 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苦滅聖諦],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苦滅道聖諦]에 대해 논의하라. 왜냐하면 그것은 이치에 도움이 되고, 법에 도움이 되며, 범행에 도움이 되고, 바른 지혜와 바른 깨달음이며, 바르게 열반으로 향하기 때문이다.6)

 

이와 같이 붓다는 제자들에게 전생에 관한 사항은 논의하지 말라고 가르쳤다. 왜냐하면 전생에 관한 사항은 의()()범행(梵行)에 도움이 되지 않고, 지혜와 바른 깨달음도 아니며, 열반으로 향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때 붓다는 외아들이 죽고 난 뒤 7일간 식음을 전폐하고 슬픔에 젖어 있는 재가신자에게 직접 찾아가서 목숨이 다한 죽은 사람을 보았을 때에는 그는 이미 내 힘이 미치지 못하게 되었구나!’라고 깨달아 슬퍼하거나 탄식함을 떠나라.”7)고 충고했다.


또한 붓다는 내세에 어디에 태어날 것인가에 대해서도 미리 걱정하지 말라고 가르쳤다. 어느 때 붓다가 나디까(Nādika, 那梨迦)라는 마을에 머물고 있을 때, 그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아난다 존자는 나디까 마을에서 죽은 사람이 어디에 태어났는가에 대해 세존께 여쭈었다. 그러자 붓다는 몇몇 사람들에 대해 어디에 태어났다고 자세히 일러주었다. 그런 다음 붓다는 아난다여, 사람으로 태어난 자가 죽는 것은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 이런저런 사람이 죽을 때마다 여래에게 다가와서 이러한 뜻을 묻는다면 이것은 여래에게 성가신 일이다.”8)고 했다. 이 내용이 『잡아함경』의 제854경에도 설해져 있다. “너희들이 그들이 죽을 때마다 그들의 죽음에 대해 묻는 것은 한낱 수고롭게만 할 뿐이다. 그런 것들은 여래(如來)가 대답하기 좋아하는 것이 아니다. 태어나는 것에는 반드시 죽음이 있거늘 무엇을 놀랍다 하겠는가?”9)


붓다는 현세의 즐거움을 버리고 내세의 즐거움을 추구하라고 한 적이 없다. 어떤 사람은 열반을 죽어서 얻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열반은 살아 있는 지금여기에서 획득되는 것이며, 사후에 기대되는 낙원이 아니다. 초기불교에서는 죽어서 하늘에 태어나는 것, 즉 생천(生天)을 이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 현법(現法)에서 깨달음을 획득하는 것을 궁극의 목표로 삼았다. 이것을 현법열반(現法涅槃, diṭṭhadhamma-nibbāna)이라고 한다. 현법열반은 죽어서 얻는 것이 아니라 이 몸을 가진 상태에서 무지와 탐욕을 벗어나 해탈하기만 하면 곧바로 얻을 수 있는 것이다.”10) 그러므로 지금여기에서보다는 사후에 하늘나라[天界]에 태어나 영원히 행복을 누리겠다는 것은 원래 붓다의 가르침이 아니다.


Note:

1) 이 경은 『잡아함경』1권 제28現法涅槃經(T2, pp.5c-6a)이다. 이 경과 대응하는 니까야는 SN22:116 Kathika-sutta(SN. , p.164)이다. 한글대장경에서는 열반경(涅槃經)으로 되어 있지만, 필자가 현법열반경(現法涅槃經)으로 경명을 바꾸었다. 한파사부사아함호조록』현법열반경(現法涅槃經)으로 표기되어 있기 때문이다.

2)어떤 번뇌도 일으키지 않아불기제루(不起諸漏)’를 번역한 것이다. 불기제루란 여러 가지 종류의 번뇌를 일으키지 않는 것이다. ‘()’는 번뇌(煩惱)의 다른 이름이다. ()에는 누설(漏泄)과 누락(漏落)의 두 가지 뜻이 있다. 탐진(貪瞋) 등 번뇌는 하룻밤사이에 육근문(六根門)으로 인해 세어 흘러내려 그치지 않으므로 누()라 한다. 또한 번뇌는 사람들로 하여금 삼악도(三惡道)에 떨어지게 하므로 누()라 한다.

3) SN. , p.164; 각묵 옮김, 『상윳따 니까야』3, pp.430-431.

4) 잡아함경』5권 제105仙尼經(T2, p.32a), “現法愛斷離欲滅盡涅槃.”

5)중아함경』43권 제165 溫泉林天經(T1, p.697a), “慎莫念過去, 亦勿願未來, 過去事已滅, 未來復未至. 現在所有法, 彼亦當為思, 念無有堅強, 慧者覺如是.”

6) 잡아함경』16권 제414宿命經(T2, p.100a-b), “汝等比丘莫作是說: ‘宿命所作.’ 所以者何? 此非義饒益, 非法饒益, 非梵行饒益, 非智非正覺, 不向涅槃. 汝等比丘當共論說: ‘此苦聖諦苦集聖諦苦滅聖諦苦滅道跡聖諦.’ 所以者何? 此義饒益法饒益梵行饒益正智正覺正向涅槃.”

7) Sn. v.590.

8) SN. V, p.357; 각묵 옮김, 『상윳따 니까야』6, p.278.

9) 잡아함경』30권 제854那梨迦經(T2, p.217c), “汝等隨彼命終彼命終而問者, 徒勞耳! 非是如來所樂答者. 夫生者有死, 何是為奇?”

10) 마성, 『왕초보 초기불교 박사되다』(서울: 민족사, 2012), p.2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