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성자료실/칼럼

마성 2021. 1. 28. 22:30

마성 스님의 법담법화(36)

 

36. 자기 자신이 가장 소중하다

 

깜마 숫따(Kāma-sutta, 欲愛經)은 두 게송으로 이루어진 아주 짧은 경이다. 천신과 붓다가 주고받은 두 게송이 전부다. 먼저 천신이 붓다께 묻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이런 형식의 경은 신화적 수법을 동원하고 있지만, 붓다의 자문자답(自問自答)’이라고 필자는 이해하고 있다.

 

이익을 위해 무엇을 주지 말아야 하며, 무엇을 버려서는 안 됩니까?

어떤 착함을 베풀어야 하며, 어떤 악함을 베풀어서는 안 됩니까?

인간은 이익을 위해 자기를 주어서는 안 되며, 자기를 버려서는 안 된다.

유익한 말은 베풀어야 하고, 사악한 말은 베풀어서는 안 된다.”(SN..44)

 

위 게송은 크게 두 가지 주제를 다루고 있다. 하나는 이익을 위해 자기를 주어서도 자기를 버려서도 안 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유익한 말은 베풀어야 하고, 사악한 말은 베풀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첫 번째 구절인 자기를 주어서는 안 되며, 자기를 버려서는 안 된다는 대목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만일 주석서의 해석이 없었다면, 그 정확한 의미를 파악하지 못했을 것이다. 주석서에 의하면, “자기를 주어서는 안 된다(attānaṃ na dade)”는 것은 자기를 남의 하인(dāsa)으로 주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고, “자기를 버려서는 안 된다(attānaṃ na pariccaje)”는 것은 자기를 사자나 호랑이 등에게 버려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SA..101)

 

빨리어 다사(dāsa)노예를 의미한다. 따라서 인간은 이익을 위해 자기 스스로 남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자신의 생계유지를 위해 지나치게 자기 자신을 낮추어 상급자에게 하인이나 노예처럼 행동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리고 필요 이상으로 자기를 비하하여 자신의 고귀한 생명을 사자나 호랑이의 먹잇감으로 던져버리지 말라는 것이다. 자기를 사자나 호랑이에게 버린다는 것은 곧 자살을 의미한다.

 

현대인들은 대부분 직장에서 자신의 능력이나 노동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 고용주가 지급하는 급료를 받아 살아간다. 그 누구도 이러한 인간 사회의 구조를 피할 수 없다. 다만 고용주에게 자신의 능력이나 노동을 제공하여 생계를 유지하되, 상급자에게 비굴할 정도로 아첨하는 것은 자기 스스로 노예가 되는 것이나 다름없다.

 

붓다는 최소한 자기의 자존심은 자기 스스로 지키면서 살아가라고 충고하고 있다. 이것은 또한 당장 눈앞에 보이는 작은 이익을 위해 자신의 철학이나 신념까지 버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간혹 지식인 중에는 돈 때문에 자기 양심을 속이고 사실을 왜곡하거나 아첨하는 글을 쓰기도 한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부 지식인들이 총독부의 강압에 의해 친일적인 글을 쓰기도 했다. 그들은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 반민족적인 글을 쓴 경우도 허다하다. 하지만 오늘날의 학자나 지식인 중에는 자진해서 윗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해 진실을 왜곡하는 글을 쓴다. 만일 먼 훗날 이런 글을 보는 사람은 ! 이 사람도 그런 사람이었구나!’ 하고 크게 실망하게 될 것이다. 이런 부류의 사람도 자기 스스로 남의 노예가 되는 것이다.

 

과대망상으로 자기를 너무 높여 교만해져도 안 되지만, 반대로 자신을 너무 낮추어 하인처럼 행동해서도 안 된다. 중도적 삶이야말로 최상이다. 붓다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터득한 중도를 삶의 현장에서도 그대로 적용시켰다. 즉 너무 교만하지도 말고 너무 비굴하게 낮추지도 말라는 것이다.

 

자기를 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약간 다르게 해석할 수도 있다. 즉 자기의 능력을 너무 값싸게 제공해서도 안 된다. 귀한 보물을 주어도 그 가치를 모르는 사람은 고마워할 줄 모른다. 그런 사람에게 굳이 자신의 능력을 헐값으로 제공해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돼지에게 진주 목걸이를 던져주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이처럼 자신의 가치를 너무 헐값으로 팔아도 자기를 하인이나 노예로 파는 것이나 다름없다.

 

또한 어떠한 경우에도 자신의 고귀한 생명을 끊어서는 안 된다.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하나밖에 없는 자신의 고귀한 목숨을 버리는 것은 크나큰 죄악이다. 자기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을 불교에서는 극도로 기피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귀중한 것은 자기 자신뿐이기 때문이다.

 

한때 빠세나디(Pasenadi) 왕이 그의 부인 말리까(Mallikā)에게 그대 자신보다 더 사랑스런 자가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말리까 부인은 나 자신보다 더 사랑스런 자가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왕과 왕비는 나 자신보다 더 사랑스런 자가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그것이 사실인지 붓다를 찾아가서 여쭈었다. 그러자 붓다는 게송으로 이렇게 말했다.

 

마음으로 사방을 찾아보아도, 자기보다 사랑스러운 사람을 만날 수 없네. 이처럼 누구에게나 자신이 가장 사랑스러운 법, 그러므로 자기를 사랑하는 자는 남을 해치지 말라.”(SN..75)

 

이 게송은 자설경청정도론에도 나타난다. 즉 세상에서 자기 자신이 가장 사랑스럽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이 가장 사랑스러운 사람은 절대로 남을 해쳐서는 안 된다. 하물며 자신의 고귀한 목숨을 함부로 버려서야 되겠는가? 자기 자신이 없으면 이 세상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인간은 죽는 순간까지 가치 있는 삶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요컨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자기 자신을 너무 낮추어 상급자에게 하인이나 노예처럼 행동해서도 안 되고, 자기가 가진 능력을 너무 가치 없게 남에게 주어서도 안 되며, 어떠한 경우에도 자신의 고귀한 목숨을 버리는 극단적인 행위로 생을 마감해서도 안 된다. 그리고 자기와 남에게 이익을 가져다주는 유익한 말은 베풀어야 하고, 자기와 남에게 해로움을 가져다주는 사악한 말은 베풀어서는 안 된다. 이것이 깜마 숫따로부터 우리가 얻을 수 있는 붓다의 교훈이다. 한마디로 자기 자신이 가장 소중하다.

마성/ 팔리문헌연구소장

―≪법보신문1561, 20201118, 13

꼬살라(Kosala)국의 빠세나디(Pasenadi) 왕이 붓다를 친견하기 위해 수도 사왓띠(Savatī)를 떠나 행진하는 모습. 인도 중부지역에 위치한 산치(Sanchi) 대탑에 부조로 새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