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성자료실/칼럼

마성 2021. 1. 28. 22:47

마성 스님의 법담법화(40)

 

40. 네 가지 무리의 비구

 

붓다의 입멸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대표적인 경전은 빨리어로 전승되어 온 마하빠리닙바나 숫따(Mahāparinibbāna-sutta, 大般涅槃經)’이다. 그러나 한역에는 유행경(遊行經)’을 비롯한 여러 이역(異譯)들이 전해지고 있다. 그 중에 백법조(白法祖)가 번역한 불반니원경(佛般泥洹經)’네 가지 무리의 비구에 대한 언급이 수록되어 있다.

 

이 이야기는 붓다의 마지막 공양으로 알려져 있는 대장장이 쭌다(Cunda)의 공양을 마치고 그의 질문에 붓다가 답변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다른 경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다. ‘불반니원경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부처님께서 공양을 마치고 나자, 쭌다는 작은 의자를 가지고 와서 부처님 앞에 앉아 부처님께 아뢰었다. “제가 한 가지 일을 묻고 싶습니다. 천상 세계와 세상에는 부처님보다 뛰어난 지혜를 가진 이가 없습니다. 세상에는 몇 가지 무리의 비구가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네 가지 무리가 있다. 첫째는 도를 닦는 것이 뛰어난 무리[爲道殊勝], 둘째는 도를 이해하고 그것을 말로 잘 표현할 수 있는 무리[解道能言], 셋째는 도에 의지하여 생활하는 무리[依道生活], 넷째는 도를 닦으면서도 더러운 짓을 하는 무리[爲道作穢]이다.”

 

무엇을 도를 닦는 것이 뛰어난 무리라고 하는가? 그가 말하는 도의 뜻을 헤아릴 수 없고 대도(大道: 佛道)를 수행하는 것이 가장 훌륭하여 비교할 것이 없으며, 마음의 욕망[心態]을 조복(調伏)하고 근심과 두려움을 벗어나는 것을 법으로 삼아 세간을 지도하는 사문이니, 이러한 무리의 사문(沙門)을 도를 닦는 것이 뛰어난 무리라고 한다.”

 

무엇을 도를 이해하고 그것을 말로 표현할 수 있는 무리라고 하는가? 부처가 귀하게 여기는 제일설(第一說)을 받들어 행하면서 의심이나 논란이 없고, 또한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법구(法句)를 자세히 말해 주는 사문이니, 이러한 무리의 사문을 도를 이해하고 그것을 말로 표현할 수 있는 무리라고 한다.”

 

무엇을 도에 의지하여 생활하는 무리라고 하는가? 스스로 지키는 것을 염두에 두고 학업을 근본으로 부지런히 닦으며 한결같이 한눈팔지 않고, 부지런히 수행하면서 싫증내지 않고 사람과 법을 스스로 덮어 감싸는 사문이니, 이러한 무리의 사문을 도에 의지하여 생활하는 무리라고 한다.”

 

무엇을 도를 닦으면서도 더러운 짓을 하는 무리라고 하는가? 다만 좋아하는 것만 하고 신분[種姓]만 믿고 의지하여 오로지 청정하지 않은 행위[濁行]만 하여 논의의 대상이 되며, 부처의 말을 생각하지 않고 또한 죄를 두려워하지 않으니, 이러한 무리의 사문을 도를 닦으면서도 더러운 짓만 하는 무리라고 한다.”

 

대부분의 세간 사람들은 부처의 제자는 청백(淸白: 無漏善法)한 지혜를 지니고 있다고 여기지만 선()한 이도 있고 악()한 이도 있으니, 모두 같은 한 무리로 여기지 말아야 한다. ()하지 않은 이는 선()한 이들을 비방하고 훼방하니, 비유하면 벼 속에 잡초가 생기면 그 잡초가 쌀을 해치고, 세상사람 집에 못된 아들이 있으면 그 한 아들이 집을 망치는 것과 같이 한 비구가 악()하면 다른 비구까지 망치게 하니, 사람들이 그 비구 때문에 모든 비구를 나쁘다고 여긴다.”

이어서 부처님께서 쭌다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은 용모와 의복 때문에 훌륭한 것이 아니요, 수행이 청정하고 뜻이 단정한 자라야 훌륭하니, 사람은 헛되이 모양을 따르지 말아야 한다. 그대가 부처와 비구승들에게 공양하였기 때문에 죽은 후에 마땅히 천상 세계에 태어날 것이다. 경을 아는 이라면 음욕의 마음을 버리고 성내는 마음을 버리고 어리석은 마음을 버려야 하니, 한 사람 때문에 많은 사람이 그르다고 책망하지 말아야 한다.”

 

불반니원경에서는 또 다른 부류의 비구에 대해 언급한 부분이 있다. 부처님께서 마지막으로 외도 유행자 수밧다(Subhadda)를 교화한 후, 미래에 출가하여 비구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잘 살펴 승가에 합류하도록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경에서는 이렇게 설해져 있다.

 

세상에는 네 종류의 사람이 있으니, 한 종류는 가난하여 스스로 살아갈 수 없어서 비구가 되고자 하는 사람이요, 한 종류는 빚을 지고 갚을 길이 없어서 비구가 되고자 하는 사람이요, 한 종류는 노예[]로 있어서 다음 생[當時]에 다시 태어나지 못하기[無用] 때문에 비구가 되고자 하는 사람이요, 한 종류는 뜻이 높고 지조가 굳은 사람[高士]으로서 수행이 청정하고 더러움이 없으며 셀 수 없이 많은 세상이 지나야 비로소 한 분의 부처님이 계시다는 말을 듣고 부처의 경전을 보고 기뻐하고 마음으로 깨달아 집과 욕심을 버리고 세간의 영화를 탐내지 않아 와서 비구가 되고자 하는 사람이다.”

 

첫째 부류는 세상에서 먹고 살기 힘들어서 출가하는 사람이다. 둘째 부류는 세상에서 빚을 지고 갚을 길이 없어서 출가하는 사람이다. 셋째 부류는 노예 신분에서 벗어나고자 출가하는 사람이다. 넷째 부류는 세상의 부귀영화를 버리고 오직 구도의 마음으로 출가하는 사람이다. 넷째 부류를 제외한 나머지는 불순한 의도를 갖고 출가하려는 사람이다.

 

이와 같이 붓다는 자신이 입멸한 후 비구가 되고자 하는 사람이 있으면 어떤 목적으로 출가하려고 하는지 자세히 살펴보고 승가에 합류시키라고 간곡히 당부하고 있다. 불순한 의도를 갖고 출가한 자가 한 명이라도 있으면 승가의 명예를 훼손시키기 때문이다.

 

인도처럼 사성계급 제도가 없는 한국불교에서는 첫째와 둘째 부류의 출가자들이 가장 많다. 첫째 부류의 출가자를 우리는 생계형 출가자라 부르고, 둘째 부류의 출가자를 도피형 출가자라 부른다. 한국불교에서 출가자의 수가 감소한다고 해서 불순한 의도를 갖고 출가하는 부적격자를 승단에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생계형도피형 출가자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승가는 빨리 쇠망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 명의 훌륭한 수행자가 백 명, 이백 명의 생계형 출가자보다 수승하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마성/ 팔리문헌연구소장

―≪법보신문1569, 2021113, 11

 

사진은 엘로라 석굴 입구의 모습이다. 엘로라 석굴(Ellora Cave)은 인도 마하하슈트라(Maharashtra) ()에 위치한 석굴이다. 아우랑가바드(Aurangabada)를 지나 서쪽으로 가다 데칸 고원으로 들어서면 나타난다. 이 석굴들은 불교, 힌도교, 자이나교의 사원이 1세기에 걸쳐 조성된 것이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