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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성 스님의 법담법화(41) 41. 역경을 수행의 기회로 코로나19가 장기간 지속되면서 사람들의 사고와 생활 방식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 그 중에서 가장 심각한 것은 팬데믹으로 인해 경제적 불평등의 구조가 더욱 심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당장 생계가 막막한 사람들이 날로 증가하고 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가져다준 부정적인 측면이다. 하지만 인간의 삶을 근본적으로 되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없고, 많은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집회가 금지됨으로써 평소 외향적인 사람들은 매우 힘들어하는 것 같다. 그러나 평소 자기 계발을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사람은 불필요한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오히려 좋은 기회가 되고 있다. 나도 꼭 필요..
마성 스님의 법담법화(40) 40. 네 가지 무리의 비구 붓다의 입멸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대표적인 경전은 빨리어로 전승되어 온 ‘마하빠리닙바나 숫따(Mahāparinibbāna-sutta, 大般涅槃經)’이다. 그러나 한역에는 ‘유행경(遊行經)’을 비롯한 여러 이역(異譯)들이 전해지고 있다. 그 중에 백법조(白法祖)가 번역한 ‘불반니원경(佛般泥洹經)’에 ‘네 가지 무리의 비구’에 대한 언급이 수록되어 있다. 이 이야기는 붓다의 마지막 공양으로 알려져 있는 대장장이 쭌다(Cunda)의 공양을 마치고 그의 질문에 붓다가 답변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다른 경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다. ‘불반니원경’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부처님께서 공양을 마치고 나자, 쭌다는 작은 의자를 가지고 와서 부..
마성 스님의 법담법화(39) 39. 단정히 해야 할 네 가지 많은 사람들이 혹독한 겨울을 보내고 있다. 날씨 탓만은 아니다. 우리는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지난 11개월 동안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그래도 코로나19를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으로 하루하루를 버텨 왔다. 그런데 최근에는 제3차 파동으로 방역 당국에서는 사회적 거리두기 3단계 격상을 심각하게 고심하고 있다. 마지막 수단인 3단계로 격상되면 개인의 삶은 최악의 상태에 이르게 된다. 이러한 상황임에도 종교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방역 당국에서는 종교 집단이 더 이상 코로나바이러스를 확산시키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종교 집단이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의 온상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찰에서는 아직 집단적 감염의 사례가 일어나지 않아서 다행..
마성 스님의 법담법화(38) 38. 짐과 짐꾼의 비유 이번 주 ‘법담법화’에서는 좀 무거운 주제에 해당되는 윤회의 주체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불교에서는 윤회의 주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회를 논함에 있어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바로 짐과 짐꾼에 대한 비유 설명이다. 여기서 짐꾼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무아론과 유아론으로 갈라진다. 윤회의 주체를 인정하지 않는 불교의 내부에서 뿍갈라(puggala)가 윤회의 주체 역할을 담당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부파불교 시대의 독자부(犢子部)에서 뿌드갈라(pudgala)가 윤회의 주체라고 주장했다. 이것을 ‘보특가라설(補特伽羅說)’이라고 한다. ‘이부종륜론(異部宗輪論)’에 의하면, 독자부에서는 “보특가라는 오온에 상즉하..
마성 스님의 법담법화(37) 37. 교학자와 수행자 간의 갈등 ‘쭌다경(Cunda-sutta)’(AN6:46)은 제목 그대로 마하쭌다(Mahācunda)라는 존자가 동료 비구들에게 설한 법문이다. 이처럼 초기경전에는 붓다의 설법이 아닌 제자들의 설법도 많이 수록되어 있다. 필자가 이 경에 주목하는 까닭은 마하쭌다 존자가 붓다의 뛰어난 제자도 아니면서 승가 내부의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하쭌다 존자는 쭌다 혹은 쭌다까 존자로 불렸으며, 쭌다 사미로도 불렸다. 그는 사리뿟따 존자의 동생이었으며 구족계를 받은 후에도 사미라는 애칭으로 불렸다. 그는 한때 세존의 시자 소임을 맡기도 했던 인물이다. 이 경은 마하쭌다 존자가 쩨띠(Ceti)의 사하자띠(Sahajāti)에 머물고 있..
마성 스님의 법담법화(36) 36. 자기 자신이 가장 소중하다 「깜마 숫따(Kāma-sutta, 欲愛經)」은 두 게송으로 이루어진 아주 짧은 경이다. 천신과 붓다가 주고받은 두 게송이 전부다. 먼저 천신이 붓다께 묻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이런 형식의 경은 신화적 수법을 동원하고 있지만, 붓다의 ‘자문자답(自問自答)’이라고 필자는 이해하고 있다. “이익을 위해 무엇을 주지 말아야 하며, 무엇을 버려서는 안 됩니까? 어떤 착함을 베풀어야 하며, 어떤 악함을 베풀어서는 안 됩니까? 인간은 이익을 위해 자기를 주어서는 안 되며, 자기를 버려서는 안 된다. 유익한 말은 베풀어야 하고, 사악한 말은 베풀어서는 안 된다.”(SN.Ⅰ.44) 위 게송은 크게 두 가지 주제를 다루고 있다. 하나는 이익을 위해 자기를 주..
모름지기 불교도라면 무엇보다도 먼저 올바른 견해(sammā-diṭṭhi, 正見)를 갖추어야 한다. 올바른 견해에서 올바른 사유, 올바른 언어, 올바른 행위 등이 나오기 때문이다. 반대로 그릇된 견해(micchā-diṭṭhi, 邪見)에서는 그릇된 사유, 그릇된 언어, 그릇된 행위 등이 나올 수밖에 없다. 붓다는 성도 직후, 그릇된 견해를 조건으로 생기는 느낌과 올바른 견해를 조건으로 생기는 느낌이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는 올바른 견해가 먼저라고 말했다. “어떻게 올바른 견해가 먼저인가? 그릇된 견해를 그릇된 견해라고 꿰뚫어 알고, 올바른 견해를 올바른 견해라고 꿰뚫어 안다. 이것이 올바른 견해이다.”(MN.Ⅲ.71) 그러면 올바른 견해란 무엇인가? “괴로움에 대한 지혜, 괴로움의 일어남에 대한 ..
마성 스님의 법담법화(34) 34. 만인을 위한 행복의 길 불교의 승려가 깨달음을 이루기 위해 혼자 숲속이나 동굴 혹은 나무 밑에서 수행에만 전념하는 것이 이기적인 행동인가? 대승불교에서는 ‘개인의 이익’을 위한 수행을 소승이라고 폄하해왔다. 특히 세계불교에 대한 정보나 이해가 부족했던 시절에는 ‘남방불교는 소승불교’라고 공공연히 비난해왔다. 지금도 간혹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이들의 시각은 붓다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편견에 불과하다. 붓다시대의 바라문들도 불교의 승려는 ‘개인의 이익’에만 전념하는 이기주의자들이라고 비난했다. 이들의 비난에 대해 붓다는 제자들이 수행에만 전념하는 것은 ‘혼자만의 행복’을 위한 것이 아니고, ‘만인의 행복’을 위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앙굿따라 니까야의 상가라와..
마성 스님의 법담법화(33) 33. 명상에 대한 오해 요즘 명상에 관한 서적들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오고, 정체불명의 명상들이 범람하고 있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명상의 종류만도 다 헤아리기 어렵다. 이를테면 힐링 명상, 마음 명상, 마음챙김 명상, 호흡 명상, 자비 명상, 휴심 명상, 죽음 명상, 평화 명상, 다도 명상, 놀이 명상, 춤 명상, 달리기 명상, 잠자는 명상, 이완 명상, 바디스캔 명상 등이다. 그러면 이처럼 많은 명상들이 유행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현상인가? 명상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는 것은 현재의 사회현상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첫째는 기성 종교에서 위안을 얻지 못한 사람들이 탈종교화 현상으로써 명상 쪽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둘째는 현대인이 ..
마성 스님의 법담법화(32) 32. 인류는 운명 공동체 한때 지구촌 시대 혹은 세계화 시대가 앞당겨졌다고 좋아한 적이 있다. 인터넷의 발달로 전 세계가 하나의 네트워크(network)로 연결되었을 때이다. 세계의 어느 곳에서도 인터넷을 통해 실시간으로 지구촌 소식을 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경제도 점차 세계화의 추세로 치닫고 있다. 그러나 세계화는 역설적으로 팬데믹(세계적 대유행)과 같은 세계적 대재앙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다. 오히려 세계화가 전염병 확산의 주범이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국경 봉쇄를 통한 방역은 곧 경제적 몰락의 자초를 의미한다. 이처럼 세계화는 장점과 단점을 함께 갖고 있다. 그러면 왜 이러한 현상이 생기는가? 이 세상의 현상계는 모두 연기의 법칙에 의해 서로 연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