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김대근 2007. 3. 18. 16:23

 

금산의 보석사와 은행나무

 

 

인삼의 산지로 유명한 충청남도 금산에는 임진왜란 당시 의병들의 치열한 저항으로도
유명하다. 의병장 조헌과 의승병장 영규대사가 순절한 고장이기도 하다.

 

그 중에서도 보석사(寶石寺)는 의승장 영규대사가 머무르며 이 지역의 항왜투쟁을 이끌며
분전했던 곳이기에 더욱 소중한 곳이다. 보석사는 그 외에도 1000년이 넘은 은행나무와
영규대사가 머물렀던 의선각, 영규대사를 기리는 비석등이 유명하다.

 

 

보석사 일주문을 만난다. 단청으로 울긋 불긋하게 치장한 여느 절들의 일주문보다

훨씬 정겨워 보인다. 단청의 주목적이 목재의 수명을 늘리고자 하는 것이니만치

단청을 하지 않은 보석사의 일주문은 빨리 상할지도 모르겠다.

 

 

일주문 뒤로 절까지 이어진 전나무 숲길이다. 길이는 그리 길지 않지만 운치가 깊다.

 

 

 

 

이 절은 신라 헌강왕 12년(서기 886년)에 조구대사
(祖丘大師)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진다. 처음에 절을 세울때 절앞에서 캐낸 금으로
불상을 만들었기 때문에 보석사라고 명명했다고 한다. 본래의 건물은 임진왜란 당시
모두 불에 타 없어졌고, 그후 조선 후기에 다시 지어졌다.

조선말에는 명성황후가 국가의 안녕을 비는 왕실의 원찰이 되기도 했다.

 

 

 

유형문화제 제 143호인 보석사 대웅전이다. 대웅전은 석가모니 부처님을 본존불로
모시고 있는 곳이라는 뜻이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겹처마 맞배지붕의 다포식(多包式) 건물이다. 대웅전안에는
석가모니불을 주불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좌우불로 봉안하고 있다.

 

 

 

의병승장(義兵僧將) 영규대사(靈圭大師)가 머물면서 승병들을 지휘하던 곳이다.
영규대사는 공주 계룡면 출생으로 계룡산 갑사에 적을 두고 갑사와 보석사를 오가면서
수도생활을 하던중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승병을 모집하여 의병장 조헌과 협력하여
청주성을 탈환한 후, 1592년 8월 18일에 금산에 주둔하던 왜병과 전투중 전사하였다.

 

 

보석사의 명물중의 하나로 알려진 은행나무다. 보석사의 입구  개울건너편에 있으며
높이 40미터, 사람가슴 높이의 둘레가 10미터가 넘는 이 나무의 수령은 1,000년 이상으로
추정된다.

 

조구대사가 보석사를 창건할 무렵 제자들과 함께 심었다고 전해지는데 마을에 변고가
있거나 나라에 큰 일이 있을때에는 소리내어 울어 재난을 알려주는 마을의 수호신으로
알려져 있다. 매년 음력 2월 15일 경에 보석사 신도들이 이 은행나무에서 대신제를 지낸다.

 

 

 

 

 

 

 

의승병장 영규대사를 기리는 의병승장비이다. 이 비는 금산전투에서 순절한 영규대사의
순절사적비로 1840년 (헌종 6년)에 건립되었다. 비문을 지은이는 우의정 조인영이며,
금산군수 조취영이 글씨를 썼다. 앞면의 '의병승장'이 새겨져 있는데 측면의 글씨에 따르면
창녕위 김병주가 썼음을 알 수 있다.

 

1940년 일본 경찰들이 비각을 헐고 비석의 자획을 훼손하여 땅에 묻었던 것을 광복후에
다시 세워 오늘에 이르고 있다.

 

 

 

돌아오는 길에 보이는 부도전......

부도란 스님들의 무덤과 같은 것이다. 화장을 해서 사리를 모시거나 또는 유품등을

봉안한다.

 

세상의 모든 유정물(有情物)은 모두 예외없이 수명이라는 것에 얽매어 살게 된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 뿐이지만 사람들도 역시 일정한 수명을 지니고 태어난다. 다시말해

"누구나 죽는다"라고 하는 명제에서 그 누구도 헤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영원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우주도 성주괴공을 가듭하며 일정한 수명이라는것이 있다.

세상에서 영원한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 부도나 무덤, 납골당은 우리들에게 그런

진리를 가르쳐 주고 있다. 

 

 

산골에서 만난 우체통 하나, 빨간 우체통......

그러고 보니 종이에다 볼펜이나 만년필로 또박 또박 눌러 편지를 써본적이 언제였던가?

까마득 하다.

 

연하장도 휴대전화 메세지로 주고 받거나 왠만하면 이메일이 서로의 소식을 전해주고

받는 일이 일상화된 요즈음이니 직접 편지를 써서 우체통에 넣는 것은 사치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는 것이 점점 메말라 간다.

 

 

삭막한 세상을 살면서도 내 감성이 메마르지 않도록 하는 것을 찾아야 할텐데 쉽지 않다.

내 마음의 한켵에 감성의 옹달샘을 하나쯤 마련해 두고 싶다.

 

국토를 잃은 설움이 전국 어디를 가나
일본이 뿌려 놓고 간 잔재는 여전히 남아 있군요
임진왜란에 대한 적대심의 발로겠지만
침략으로 말살된 문화가 조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일로 변질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지요..자주 침략을 받았던 땅이라 일본놈 아니면 뙤국놈들의 침략흔적이 국토에 없는 곳 없지요.. 보석사의 비석을 훼손한채 묻어 버린 그들의 만행을 두고 두고 전해야 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