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김대근 2006. 12. 27. 16:26


백제의 미소, 서산 마애삼존불

 

 


불상은 대개가 근엄한 표정을 가지고 있다. 미소를 띠었다고 하드라도 알듯 말듯한 다소
경직된 미소를 띠고 있는 것은 아마도 돌에 새겨던 나무로 깎았던지 간에 사람의 손을
빌렸기 때문일 것이고 깨달음의 미소나 자비심이 넘친 미소를 표현하는데 한계가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뛰어난 장인을 만난 불상은 미소가 잘 표현되기도
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 문화재중에도 우리나라에서 건너가 지금은 일본의 국보로까지
지정되어 있는 반가사유상의 미소는 표현할 바 없이 훌륭하다.


"아! 그렇구나~" 하고 막 깨쳤을때의 그 즐거움이 가득 묻어나 있는 미소의 표현이 압권이다.


우리나라 국보 84호인 서산 마애삼존불도 그에 못지 않은 미소를 지닌 불상이다. 오히려
이 마애불의 미소야말로 최고의 미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백제의 미소"로
불리기도 하는 이 마애불의 미소는 보는 사람의 각도에 따라 일광(日光)의 방향에 따라서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충청남도의 명산이라 할 가야산이 서북쪽으로 흘러내린 곳에 깊은 계곡이 있고 계곡의
깊은 곳에는 보원사라는 절이 있었던 절터가 있다. 계곡의 입구쪽에 큰 바위가 지붕처럼
돌출된 아래에 새겨진 것이 마애삼존불이다.

 

 

이곳에는 마땅히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 사실 문화유산을 찾는 인구가 요즈음

좀 늘기는 했지만 한때 이곳은 교통이 불편했었고 그나마 지역의 불교인구도 적어서

이곳을 찾는 사람이 적었던 탓에 편의시설이 거의 없는것이 흠이다.

 

그나마도 겨울에는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더욱 적어서 겨우 작은 슈퍼 하나가 편의 시설의

전부인 곳이다. 다리를 건너 한참을 계단을 올라야 한다.

 

 

 

상당한 급경사 지역인데도  사람들은 소망의 탑을 쌓았다. 겨우 카메라 하나들고 힘든데

돌들을 날라서 탑을 쌓는다는 것은 엄청난 공력이 들었을 것이다.

 

 

 

아마도 동안 다녀본 절의 불이문(不二門) 중에서 가장 작은 것이다.

 

불이문이란 진리는 둘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 문은 대부분 절의 입구나 경계, 또는

본당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세워진다. 이문을 넘어 서면 마침내 진리의 세계에 들어서는

것이고 둘이 아닌 진정한 진리를 깨달아 불국토에 이르라는 상징인 것이다.

 

불교에서의 가르침은 부처와 중생, 삶과 죽음, 이별과 만남, 너와 나와 같은 이분법적 존재가

모두 근원에 있어서는 하나라는 것이다. 이같은 불이(불이)의 진리를 알게 되면 곧 해탈에

이를수 있다.

 

그래서 개심사에서는 같은 용도의 문에 해탈문(解脫門)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다.  

 

 

 

아마도 석등이 있었으리라. 기단의 모양으로 보아 그리 짐작할 뿐이다.

이곳은 마애불이 있는 곳과는 작고 깊은 골짜기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데 예전엔

무척 좁았던 마애불 앞이였을 것이므로 석등을 이곳에 만든 듯 하다.

 

몇년전에 이자리에 선적이 있었는데 그 때는 보살상이 하나 있었다. 아마도 원형도

아니고 해서 최근에 철거한 것으로 보인다.

 

 

몇년전에는 전각이 둘러쳐져 방으로 만들어져 있었는데 앞과 좌우를 기둥만 남기고

모두 철거를 한 모습이다. 그때는 대나무에 백열등을 달아서 관람객들을 모아 문화재

해설사가 마애불의 머리위로 마치 태양이 움직이는 궤도로 움직이면 그림자에 따라서

부처님의 미소가 시시각각 병하는 모습을 볼수 있었다.

 

그래도 풍우를 막기 위해 지붕과 일부 건물은 남겨 두었다.


이곳은 백제의 수도였던 공주와 부여에서 예산의 가야산 숲길을 헤치고 서산과 태안을
거쳐 해로로 산동반도에 이르는 가장 직선길이다. 이런 길을 오갈라치면 수많은 위험에
노출되기도 하고 풍랑을 만나기도 하는데다가 상단(상단)이 육지에서 며칠씩 걸리는 고로
중간 중간에 잠자리도 필요했다. 어쩌다 들리는 상단(상단)을 위해 유곽을 지을 수도 없고
하여 이 무역루트의 중간에 당시 최고로 대중적인 신앙인 불교의 사찰을 지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길에는 예전에 번성했던 큰 사찰들이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마애삼존불은 백제말기의 작품으로 추정되는데 중앙에는 여래입상, 오른편에 보살입상,
왼편에 반가사유상을 조각하였다. 중앙에 있는 여래입상은 소발의 머리에 적은 육계가 있고
목에는 삼도가 없으며 손은 통인이다. 손으로 나타내는 수인(手印)은 부처님의 구별에 있어
중요한 단서기 되기도 하는데 이기서는 본존인 석가모니불이라 할 수 있다. 불상의 머리
뒷부분을 장엄하는 광배는 보주형인데 안쪽은 연꽃무늬(연화문), 바깥쪽은 화염문이 양각
으로 새겨져 있다.

 

 


오른쪽 아래쪽으로 새겨진 보살입상은 머리에 삼산관을 썼고, 두손은 앞에 모아 보주(寶珠)를
들고 있다. 이 보살상이 걸친 상의는 두 팔에 길게 늘어져 발등을 덮었다. 반가상 역시 머리에
삼산관을 썼고 관대와 보발이 옆으로 늘어졌 있다. 그러나 이 반가사유상은 두팔이 손상을
입어 보기 흉하게 되었다. 광배는 보살입상과 같다.


각각의 높이는 본존여래상이 2.8미터, 보살입상이 1.7미터, 반가상이 1.66미터이다.

 

 

몇 천년 동안 피어나고 사그러지고를 반복했을 이끼... 역시 겨울이면 어김없이 같은 풍경을

자연은 아마 수천번을 거듭해 왔을 것이다.

 

천몇백년 전에도 누군가가 등짐을 지고 멀리 타관땅으로 떠나면서 마애불앞에 엎드려서

무사히 다녀오기를 빌었을 것이다. 그도 역시 이 자리에서 저 풍경을 보며 나와 같은

감정을 가졌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우리들의 삶이란 그냥 흘러가는 세월의 한 조각일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