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이기원 2008. 6. 1. 19:28

영어공부 절대로 하지마라 | …―Ð 추 천 학 원 2005/05/26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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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에 대해서만은 누구보다 할 말이 많은 사람이다. 정찬용은 1957년 서울에서 태어나  1976년에 서울대 조경학과제목:영어공부 절대로 하지마라!
작가:정찬용


*정찬용
  이 책을 쓴 정찬용은 영어강사도 영어교사도 영문과 교수도 아니다. 하지만 에 입학. 1980년에 졸업했다, 졸업직후 빈약한 몸매로 해병대 장교를  지원했다가 죽을 고생을 했지만 어쨌든 아무 사고 없이 1983년 3년 4개월만에 주위로 전역했다.
  제대 후 바로 (주)대우 토목기술부에 취직해 있던 그는 1984년 9월 독일 유학을 떠났다. 나름대로 한국에서 독일어를 공부했다고 생각했지만 전혀 못 알아듣고 전혀 말하지 못하는 고생을 하면서도 자신이 개발한 특수한 노하우 덕분에 6개월만에 어학코스에 합격. 정시입학자격을 땄고 1989년에는 도르트문트대에서 공간계획학 석사학위를, 1993년에는 하노버대학에서 조경 및 환경개발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귀국 후 1994년 6월 삼성 에버랜드 환경개발사업부에  취직해 현재 소장을 맡고 있다. 그가 하는  일을 삼성 에버랜드 관리 쯤으로 짐작하는 사람도 많은데, 그 부서의 주요 업무는 도시·공간 계획사업을 수주하는 민간기업 업무라고 한다. 그가 최근에 하는 일 중의 하나는 올해부터 서울시가 추진하고 있는  역사문화탐방거리 만들기인데 인사동거리 만들기, 남대문거리, 서대문거리, 사직공원거리 만들기 같은 일이다.


2002년 충남 안면도 꽃지바다 주변에서 세계 꽃박람회가 치러지는데 부지선정이라든가 시설 공간배치 설계 같은 일도 맡고 있다. 최근에는 장사가 안 돼서 고민하고 있는 대전 엑스포 고학공원의 리모델링 공모에 1등을 당선돼 그 일도 진행하고 있다.
  유학생활 중 꼬드겨 결혼한 부인과 함께 아들 하나를 키우며 행복하게 살고 있는 그는 영어 가르쳐 달라고 몰려오면서도 공짜로 배우는 탓인지 끝까지 가는 제자는 드물어 골치를 썩이던 중 자신을 고생시킨 여러 영어선생님과 저자들, 그리고 이 대한민국 교육정책자들에게 한마디 따끔한 한풀이 얘기도 할 겸 이 책을 쓰기로 했다고 밝힌다.


*이 책을 내면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영어로 인해 받은, 그리고 받고 있는 스트레스는  가히 세계 일류급일 것이다. IMF 사태 이후에는 더욱 심해져서 영어를 해야 한다는 것이 거의 삶의 필수 조건  혹은 21세기 준비 사항 목록의 최상위를 점하게 되었고, 사람들 중에는 영어로 누군가가 말을  걸면 욕하지 말라고까지 한다. 도대체 왜 그럴까.
  바로 이 의문에서부터 이 책을 쓰게 되었다. 해결의 키는 너무나 간단한  데 있다. 미국에서 그리고 영국에서는 아무도 영어를 공부(study)하지 않는다. 그들은 영어를 배운다(learn).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영어를 공부한다. 바로 이것이  우리나라 사람들이 왜 영어를 못하는지에  대한 답이다. 영어든 국어든 그건 말이다. 말은 공부의 대상이 아니다. 말은 익히고 배울 대상이다.
1999년 7월
용인에서


정찬용
*프롤로그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영어학원을 찾는다. 전국의 학원가엘 가 보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영어를 배우러 다니고 있다는 데 놀란다. 그야말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다.
  그런가 하면, 책방의 외국어 코너에서는 수십 종의 영어 교재들이 널려 있다. 'TOEIC 속성  완성' 이네 '토플 단기 코스' 네 하는  유학관련 책자에서부터 유학관련 책자에서부터 생활  회화에 이르기까지 가히 영어는 상종가를 기록중인 듯하다.
  그런데, 정작 영어 잘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기업의 사원 채용  광고에서 '외국어 가능자 우대' 라는 문구가 일반화된 지는 꽤 오래 전인데도 그렇다. 간혹 TOEIC 점수가 일급에 달하는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이들도 영어 인터뷰를 직접 해 보면,  실망스러울 정도로 콩글리쉬다. 하긴, TOEIC 점수와  영어 잘하는 것과는 상관관계가 그리 직접적이지 않다는 것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왜,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렇게 영어공부를 열심히 하는데도 영어를 못할까, 끝까지 끈질기게 학원을 다니지 않기 때문일까, 아니면, 학원에서 제공하는 학습 프로그램이 나빠서일까. 그도저도 아니면, 한국인의 구강구조상 영어 습득에 원천적인 문제가 있는 걸까. 글쎄, 마지막 의문은 아닌 것 같다.
  왜냐하면, 만약 정말 그렇다면, 영어 잘한다는 것  자체가 매우 드문 일일 것이고, 따라서 누가  영어를 잘한다고 하면, 온통 난리가 날 것이다. 그 사람은 곧 매스컴의  총아가 되어 영어교재 또는 영어학원 광고 모델로 또 영어선생으로 엄청난 인기를 끌게 될 것이고 곧  이어서 청와대 통역담당 비서관으로 특채되는 뭐 그런 일이 벌어질 게다.


  학원의 수강코스를 끝까지 안 다니는 문제는 여러 사람들이 실증하고  있는 일이다. 그들의 말을 빌면, 처음 며칠간의 학생수가 가장 많고, 월말쯤 되면 사분의 일도 안 남는다고 한다. 그래, 그게  이유의 하나일 수도 있겠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해  주는 사람들은 그래도 굳세게 학원을 나간 성실파다.  그들의 그래도 영어가 잘 늘지 않고 안 다니면 금방 잊어 먹게 된다는 이야기를 하는 걸 듣고 나면,  본격적으로 의아해진다.
  그럼, 혹시 어학교재가 잘못된 것은 아닐까? 미국의 모 대학 언어학 박사가 심층연구해서 개발한 것이거나, 오랜 미국생활의 총결산으로 만든 언어학습교재라는데 설마 그럴 리가  없다. 몇몇 말도 안되는 책도 있지만, 대부분은 찬찬히 들추어보면, 저자의 애쓴 흔적이 장마다 역력히 드러난다.


  이쯤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영어를 배우는 방법의 특징을 되새김질할 필요가 있다. 누구나 이젠 알다시피,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정식 학교 교육과정을 통해 광범위하게 제공되는 외국어교육의 대부분은 우선 읽고 쓰는 것이 시작이다. 그래서 문법  하나는 탁월한 사람들이 매우 많다. 게다가  특히 우수한 학생을 만나 그의 어마어마한 어휘력을 경험하고 나면, 입이  딱 벌어진다. 심지어 아주 전문적인 분야, 예를  들면, 낚싯대의 각부분 명칭, 각종 UN기구 줄임말의  원래말도 줄줄이 꿰고 있다. 이런 사람들조차도 열시 Speaking에는 젬병이다. 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듣고 말하는 데에는 그렇다.


  <타임>이나 <뉴스위크> 강독반을 이끌면서 그 찬란한 솜씨를 자랑하는  사람들 가운데 특히 그런 사람들이 많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런 잡지에 쓰여진 스타일로 말하는 사람은 미국 사람들 중에도 없으니까.
  우리나라 사람들이 외국어에 대해 가지고 있는 또 하나의 특징은 국수주의적 배타성이다. 어쩌다 누가 본토 발음에 가까운 영어를 읊기라도 하면, 당장 여기저기서 야유가 터져나오는 분위기가 아직도 대세다.
닭살 돋는다, 밥맛이다 등등의 비아냥이 날아오고 아침에 빠다 먹었냐, 혀가  꼬였게? 정도 되면 상황 끝이다. 그런 류의 사람들이 통상 주장하는 궤변을 보면 이렇다.


  "정말 영어가 필요한 상황은 사실 살다보면 별로 없다. 외국엘 가서도 정 안되면 손짓발짓으로 다 통한다. 그리고 정식 영어로 의사소통을 해야 될 상황이 되면, 통역 쓰면 될 거아냐."  과연 그럴까? 우리나라 사람들이 영어를 접하게 되는 경우가 과연 적다고 할 수 있을까. 학창시절만 따져도 최소한 6년의 세월을 영어를 걱정하면서 보내고 그 다음에도 여전히 영어는 우리 곁을 머물러 있는데 그렇게 단정할 수 있을까.

  발음이 뭐 대수냐, 대충 비슷하게만 하면 그리고 내용만 충실하면 다 알아들어 주더라 등등의 말을  하는 사람들은 그래도 노력은 해  본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을  들여다보면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영어는 발음 잘못하면 뜻까지 바뀌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들어주는 사람들의 인내심을 담보로 삼고 있는 셈이다.
  결국, 우리나라 사람들이 영어 배우는 방법은 총체적으로 문제가  있음이 분명하다. 문법이나 강독으로 지나치게 편향되어 있는 것이 그 핵심이다. 영어를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그래서 바로 이 부분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러니까 우선 '귀가 뚫려야 한다'.
  그래서 그런지 대부분의 영어 학습교재를 보면 카세트 테이프가 딸려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테이프를 들으며 학습한다. 그 테이프의 내용은 대체로 이렇다. 상황이 설정되어 있고 그 상황에서 가장 흔히 발생하는 대화를 수록해 놓는다.
  그 다음으로는 그 대화를 반복하거나 문장을 약간 변용한 것을 추가로 연습하는 내용이 들어 있다.  수많은 상황에 따른 수많은 스탠더드 대화를 암기하는 방식이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그런 학습은 금방 한계에 부딪힐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삶의 순간은 너무나 다양하고 그걸 전부 교재에 담기는 불가능하다는 단순한 논리로도 말이다. 그리고  각각의 상황에 등장하는 사람들도 교재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그렇게 너무 재미없게는 살지 않으니까.
  그밖의 교재들, 예를 들면 팝송으로 영어를 배운다거나, 영어 단어 밑에 아예 한국말 발음을 달아 놓았거나 하는 따위는 논할 가치조차 없다. 그런 것들은 냉철하게 보면 일종의 기만행위다. 팝송 가사는 일종의 시여서 일상의 언어와는 당연히 차이가 많은 것이기 때문이고, 한국어로 영어 발음을 표기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는 실물 크기 브로마이드에 대고 키스를 해 보면 알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러니까 교재에 나온 방식대로는 영어를 제대로 습득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여태까지 학교에서 혹은 학원에서 내노라 하는 선생들이 가르쳐 온 방법으로도 역시 마찬가지다. 이 사실을 증명하는 수많은 학원과 수강생과 수료생들이 지금도 우리 나라 거리거리에 온통 넘쳐나고 있다.

 

  나는 TOEIC이 1급이다. 독일어는 거의 제2의 모국어다. 그렇게  된 연유는 간단하다. 우리나라에서 통용되는 그 구닥다리 외국어 학습법을 폐기처분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영어든 일어든 독일어든 모든 언어는 학습의 대상이 아니다. 언어를 공부하려고 들지 말라는 얘기다. 언어는 습관이다.
  이 글을 통해 나는 독자들에게 그  습관화의 방법을 알려주고자 한다. 이 방법을  그대로 실천만 하면, 어떤 외국어도 제2의 모국어 수준까지 만들 수 있다. 그 나라에 가서  살지 않아도 될 뿐만 아니라, 짧으면 6개월, 넉넉잡아 1년이면 된다. TOEIC이나 TOEFL 같은 건 문제조차 아니게 된다.

 

제 1 부 '아빠 안뇽'부터

 

  저녁 무렵 K가 찾아왔다.
  그냥 안면만 있는 사이였을 분 친한 사이는 아니라 내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던 모양이었다. 그녀는  살짝 얼굴을 붉히며 이렇게 말했다.
  "어떻게 하면 영어를 잘할 수 있나요?"
  얼마 전 미국인들과의 회의에 내가 참석한 걸 보고 영어를 꽤 잘하는 사람으로 생각한 모양이다.
  "어느 정도 수준인데?"
  "수준은요. 수준이라고 얘기할 것도 없어요. 남들처럼 여기저기 다녀보기도 했는데, 일단 말이  되질 않아요. 제 업무가 영어를 좀 할 줄 알아야  되는 거거든요. 그럴 때마다 참 답답해요. 사내 강좌나  학원을 다닐 형편도 못되고…."
  "내 외국어 공부의 노하우가 있는데 가르쳐 줄까?"
  나는 우선 그 노하우의 원리에 대해서 설명하기로 했다.
  "외국어도 결국은 모국어 습득과정과 똑같은 방식으로 습득해야 하는 거야. 어떤 아기가 말을  하게 되는 과정을 잘 생각해 봐. 태어나서부터  부모들이 그 아기에게 자 이제부터 말을  배워야지 하면서 기역.
니은 가르치고 주어 동사 가르치고 이건 형용사, 저건 부사 하는 것 봤어? 부모들은 그저 '아이구 예쁘다, 우리 아기. 배고프지, 맘마 먹자. 아이구 저런  오줌 쌌네. 많이도 쌌다. 기저귀가 완존히 물걸레네.'  그저 애가 알아듣거나 말거나 이런 저런 얘기를 하지. 부모의 말,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말, 거리에서  들려오는 말, 이런 말, 저런 말이 그 아기의 귀로 쉴새없이 흘러 들어가는 거야. 그러다가, KS 살 혹은 두 살의 어느 즈음에서 이 아기는 갑자기 말을  해서 부모를 놀라게 하지. '여보, 얘가  오늘 저한테 엄마, 맘마라고 했어요.'
  그리고 그 다음부터는 가히 기하급수적으로 어휘가 늘어가는 거야. '엄마 예뻐', '아빠 안뇽'. '하무이 보고 시퍼쪄', 어떨 땐 아빠보고 '여보' 라고 불러서 포복절도하게 하는 짓도 하고 말이야.
  좌우간 그 애가 쓰기 시작하는 말의 특징을 굉장히 자주 들은 말이라는 거야. 아기들이 가장 먼저 하는 말이 '엄마' 또는 그와 같은 뜻의 어휘이고 그 다음이 먹는 것,  '맘마' 와 관련 깊은 것이지. 여보 당신도 마찬가지야. 아마 그 애는 그게 엄마아빠의 이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거야."  "그럼, 무조건 이것저것 많이 듣기만 하면 되나요?"


  "아니지. 우린 더 이사 아기가 아니거든. 아기의 뇌는 쉽게 말해서 백지나 마찬가지야. 아무것도 없다는 것은 그만큼 수용성이 크다는 거지. 어른들의 머릿속은 거의 포화상태야. 그 나이가 되도록 보고 듣고 배운 골로 꽉 차 있어. 몇 번씩 이야기 해 줘도 금방 잊어 먹는 어른들 많잖아. 컴퓨터 배우는 걸 봐봐. 도스든 워드든 아이들의 경우는 금방 익혀서 그 다음부터는 독학으로 컴퓨터 진도를 나가잖아. 그렇지만 어른들 보라구. 정말 아무것도 아닌 걸 갖고 몇날 며칠을 똑같은 걸 연습하고서도 자꾸 묻잖아. 이게 왜 이러냐, 컴퓨터 어려워서 못하겠다구. 어른들의 머릿속에는 그러니까 그냥 뭘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 공간이 없는 거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접수되는 것마다 요리조리 쪼개고 해체해서 꼬리표 달고 무게  달아 이미 자기들이 만들어 놓은 이 칸 저 칸에 정리하기 시작하는  거지. 아기들처럼 아 이건 이거구나, 저건 저거구나 가 안되는 거야. 이건 이래서 이렇다 저건 저러니까 저렇다 라고 해야 직성이 풀리고 비로소 접수가 되는 양상인 거지."
  "아, 그러니까 이 단어의 뜻은 뭐고 문장 형식은 몇 형식이니까 전체적으로 뜻은 이렇다 뭐  그렇게 접수를 한다는 거네요. 그러면 영어를 가르치는 방식도 그런 식으로 된 게 맞는 거 아닌가요?"  "영어를 단순히 읽고  이해하기만 하려고 한다면  크게 틀린 방법은  아냐. 궁극적으로는 틀린  방법인데…."
  "궁극적으로는 틀린 방법이라구요? 그럼, 그렇게 하지 않고도 독해를 잘 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있다는 거네요?"
  "그렇지.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독해방식은 조금만 생각해보면. 굉장히 비경제적이고  이상한 방식이야.


사람들은 보통 영어로 된 글을 해석할 때 어떻게 하지? 우선, 모르는 단오를 찾고 주어 동사 목적어 구분해서 우리나라 말로 옮겨보고 뜻이 통하면 다음  문장으로 넘어가잖아. 그런데 우리가 우리나라 말로 된 글을 읽을 때도 그렇게 하나? 그렇지 않아. 그냥 읽고 잘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다시 정독해서 읽고 그렇게 해서 끝내잖아. 영어도 그렇게 돼야 하는 거 아니겠어? 우리나라 사람들이 우리나라 말 대하는 거나 영어권 사람들이 영어 대하는 거나 마찬가지거든."
  "사전 찾지 않고 굳이 문법이 어쩌구 따지지 않고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군요."  "음. 하나를 가르쳐주니 그 하나는 확실히 아는군.  바로 그게 내 노하우의 알파이자 오메가야.  그거만 제대로 깨우치면 사실 스스로 자기 노하우를 개발할 수 있지. 결국 내 방법과 똑같은 것이 되겠지만."  "무슨 말인지 이제 알겠어요. 제가 사실 시간이 없거든요. 생각해서  제 방법을 스스로 만드 시간 말이에요. 지금 가르쳐 주시면 안 돼요?"
  "후후후. 그건 안 돼. 내가 지금까지 여러 사람 거저 가르쳐 줘 봤는데 공짜라서 그런지 금방 그만두더라고. 방법이 맞는 건 확실한데 제 방법은 아닌 것 같아요 운운하면서 말이지. 그래서 방침을 정했지. 맨입에는 절대로 안 가르쳐 준다!"
  "몇 명 정도나 성공했나요?"
  "한 60명 정도 될 거야. 내 노하우를 들은 사람들 수가. 그런데 그 중에서 그나마 성공한 사람은 세 명밖에 없었어. 그게 아무래도 공짜로 하니까 돈 투자한 것도 아니고 그러니까 배운 대로 안해도 돈 아까운 생각 같은 게 안 들었던 모양이야."
  "알았어요. 어느 정도면 되지요? 투자금액이?"
  "음, 오늘은 늦었으니까 다음에 다시 만나서 의논해 보자구. 괜찮겠지? 오케이?"


제 2 부 차라리 영어를 모르는 게 유리하다

 

  "안녕하세요?"
  며칠 뒤 K는 다시 나를  찾아왔다. 물론 빈손이 아니었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영어학습의 노하우로 넘어갔다.
  "제가 곰곰이 생각을 해 봤는데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알 수가 없어요. 머릿속이 이미 차 버린 어른들이 아기들처럼 그냥 들어서 배울 수도 없을 것 같고, 영어로 된 문장을 모국어처럼 사전도 찾지 않고  그냥 읽어낸다는 게 도대체 상상이 안가요." 
  "그러니까, 노하우지. 아무나 알면 노하우가 돼나. 이건 콜럼버스의 달걀 같은 거야. 발상의  전환. 일단 필요한 건 그거야. 영어를 공부하려고 하는 생각부터 우선 완전히 버려야 해.
  예전에 어느 기업 연수원에서 만난 우리나라 여자가 하나 있었는데, 영어를 엄청나게 잘 하는 거야.


  발음도 완전히 본토 발음일 뿐만 아니라, 문장력도 대단했어. 그래서  나는 어디 일류대학 영문과 출신이거나 재미교포2세쯤 되는 줄 알았지. 그런데 그게 아닌 거야. 학력은 고졸이었고 그나마 상업계 고등학교여서 영어라고는 제대로 배울 기회가 없었다는 거야. 그런데도 영어를 그렇게 잦ㄹ하니 신통도 하지?  그런데 직장 다니다가 알게 된 미국인하고 사랑에 빠져 결혼을 하게 되었대. 결혼 직후에는 남편의  근무지가 다시 유럽으로 바뀌는 바람에 그 여자 혼자 미국의 시댁으로 가게 되었대. 가서 보니 큰집에 덩그렇게 시어머니 혼자 살고 있더라는 거야. 조금 황당해서 쳐다보니 빙긋이 웃으면서 자꾸 떠다 밀더래. 그래서 우선 나가고 보자 하고는 무작정 길을 나섰대. 그리고는 슈퍼마켓에 가서 어찌해서 물건을 겨우겨우 사서는 집으로 왔는데, 그 때부터 슬슬 자신감이 생기더라는 거야. 그래 해 보자. 일단 부딪쳐 보자. 그날부터 알아듣거나 말거나 시어머니와 나란히 앉아서 TV도 보고, 심심하면 외출도 하고 하면서 닥치는 대로 영어를 익혔대.


  미국 사람들이 하는 모든 말은 무조건 열심히 들었고, 눈에 띄는 글자란 글자는 모조리 새겨읽었대.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말문이 탁 터지더라는 거야. 그냥 갑자기 혓바닥이 근질근질하더니만, 미처  머리로 생각하기도 전에 말이 막 되는 신기한 일이 벌어진 거야."  "그럼, 차라리 아예 영어를 모르는 편이 더 유리하다는 건가요?"  "그렇다고 볼 수 있지. 우리나라 선생들이 가르친 이상한 톤과 발음이 익숙해져 있는 것보다는 훨씬 낫지."
 "그렇다면, 우리가 이제까지 학교에서 배운 영어는 어쩌면 별 소용이 없을 수도 있겠네요."   "그럴지도 몰라. 사실, 발음도 문제지만, 학교에서 배워서 알게 된 단어들의 의미가 잘못되어 있는 경우가 더 문제야. 우리가 단어를 찾을 때 보라구. 영한사전으로 찾아서 외우잖아. 그런데 그  영한사전이라는 것은 옛날에는 영일사전을 다시 일한사전을  통해 바꾼 거야. 그러니까 이중번역된  거였어. 지금도 몇몇 출판사 사전은 그렇다는데, 아무튼 중역이든 아니든 영어를 영어로 풀이한 것을 다시 한국어로 옮겼다는 게 문제야."


  "그게 왜 문제죠? 성실하고 정확하게 번역만 하면 괜찮은 거 아닌가요?"  "왜 문제가 되냐 하면, 우선 영어 문화권에는 있는데 한국어 문화권에는 없는 단어가 존재한다는 거야.
민족이 다르고, 문화가 다르고, 살아온 역사가 다르니 당연한 현상이지. 그런 단어는 어쩔 수 없이 그나마 비슷한 우리나라 말로 표현할 것이고 그 과정에서 그 의미는 왜곡되는 거지. 또 하나의 문제는 소위 뉘앙스야. 우리나라 말로도 '아 다르고 어  다르다' 고 하잖아. 그러니 하물며 영어로  되 말을 다른 나라말로 바꾸면 그 뉘앙스는 찾을 길이 없지. 영어로 'friend' 하면 우리나라 말로는 그냥 친구라고 해석되지. 하지만 때에 따라선 애인이라는 뜻으로도 통용되거든. 그리고, 마지막으로 결정적인 게 그 영한사전이 나오는 데 걸리는 시간이야. 말이라는 것처럼  시대의 변화에 민감한 게 없거든.  그런데 영한사전이 만들어지는 데 최소 1년은 걸린다고 보면, 그 사전을  가지고 공부하는 영어는 1년 낡은 영어라고  볼 수 있지. 그게 뭐 그리 대단한 차이냐고 하겠지만, 바로 그런  생각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쓰고 있는 영한사전의 수준이 높아지질 않는 거야. 초판이 나온 지 무려 10년이 넘은 것도 있어.  게다가 그런 사전을 형제끼리 물려주고 심지어 대를 물려 쓰기도 하잖아. 아껴쓰는 것도 좋지만 영어만 놓고 보면 굉장히 심각한 사태지.


  그리고 지금 현재 시중에 나와 있는 영한사전에는 잘못된 편집이 많아. 정작 본토에서는 잘 쓰지는  않는 뜻을 뭐가 중요하다고 설명문에 제일 먼저 그것도 진하고 크게 표기되어있는 경우까지 있지."  "아하. 그래서 영어를 공부하지 말라고 하는 건가요?"  아니, 그게 아닌데…. 어떻게 설명을 하면 될까? `

 

제 3 부 워밍업

 

  영어를 10년 넘게 공부해 온 사람들에게 영어는 공부하는 게 아니라고 하면, 당연히 이해가 잘 안될 것이다. 아무리 내 얘기가 옳다고 이것저것 이론적인 근거까지 들어가며  이야기를 해 주어도, 잠깐 고개를 끄덕이는 듯하다간 그때뿐이다.
  하긴 생각해보면 당연하다. 중학교 들어가면서부터 정식으로 배우게 되는 영어는 시작부터가 암기이다.
알파벳에서부터 기초, 중급, 고급 문법, 그리고 수많은  단어에 이르기까지 외워야 할 것은 한도 끈도  없다.
  영어는 원래 웃으면서 들어가서 울면서 나오는  거라는 둥 하면서 좌우간 매우  어려운 언어라는 것만 줄기차게 주입시킨다. 영어사전을 처음부터 끝까지 외워가면서 다 외운 페이지는 씹어 먹는 방법도 영어공부의 비법으로 전설처럼 전해지고 있다.
  그런데 생각해 보자. 인간의 기억력은 한계가  있다. 아무리 잘 외우는 사람도 시간이  지남에 따랄 다 기억할 수 있는 양이 줄어든다. 따라서 세월이 지나면 모조리 잊어 버린다. 그래서 암기를 하는 방식으로 영어를 하면 별무신통이라는 이야기가 우선 성립된다.


  "그렇겠네요. 학창시절에 그렇게 열심히 외운 시 같은 것도 지금 전혀 생각이 안 나는 걸 보면…. 그건 우리나라 말로 된 건데도…."
  "그런데 그게 자기자신이 직접 쓴 시라면 어떨까? 분명히 대부분은 생각이 날 거야. 왜냐하면  그게 시집에 실릴 때까지 그리고 시집이 나온 후에도 쉴새없이 되씹곤 했을 테니까. 그런 원리야. 외국어를 습관화한다는 게 말이지. 그런 걸 소위 체화한다고 하지."
  "체화라고 하면, 매끄러운 춤동작이나, 그림 그릴 때의 익숙한 붓놀림 같은 거죠?"  "그렇지. 바로 그거야. 몸에 배서 손이나 다리가 저절로 움직여 가는 거야. 자전거 타는  거나 수영하는 법을 배우는 거 같이 몸으로 배우는 거지. 오랫동안 안 하다가도 하려고  하면 저절로 되는 거야. 영어가 체화되는 부분은 혓바닥이지. 머리보다 혀가 먼저 말을 하는 상태가 되면 체화된 거지. 우리가 한국어 할 때 바로 그렇게 하잖아? 무슨 얘기를 하는지도 모르면서 중얼중얼대기도 하고 말이야."  "이제 무슨 뜻인지 분명히 알겠어요. 자, 그 방법을 가르쳐주세요."  "좋아. 그 전에 조건이 있어.

첫째, 의심을 갖지  말 것,

둘째, 한 단계가 완성되기 전에는  절대로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말 것."


  "아, 그러니까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하는군요. 알았어요. 몇 단계까지 있나요?"  "5단계까지 있지. 첫 단계가 끝나면 귀가 뚫리고, 두번째 단계가 끝나면 어법을 깨치게 되고, 세번째 단계를 극복하면 그 언어를 하고 싶어지지. 네번째 단계까지 올라가면, 드디어 그 언어로 씌어진 책을 사전 없이 읽게 되고, 다섯 번째 단계까지 다 마치면, 그 나라의 문화까지도 상당부분 이해하는 그러니까 고급 수준에 도달하게 돼."
  "와. 그렇게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그렇게 다 하려면 얼마나 시간이 걸리나요?"  "그건 사람에 따라 달라. 영어를 얼마나 많이 했느냐도 물론 차이가 나겠지만, 그것보다도 언어 감각이나 소질이 다르기 때문이야. 이런 말 들어 봤어, 제나라 말 잘하는 사람이 외국어도 잘한다는 말?"  "아니요. 그건 왜죠?"


  "모국어를 남보다 잘하는 사람은 선천적으로 언어 감각이 남보다 좋은 사람이지. 그런 사람들은 언어를 습득하는 재능이 남달라서 다른 사람들이 그냥 스쳐지나가는  어휘득도 책이나 TV, 그리고 라디오 같은 데서 채취하여 자기 것으로 삼아. 의도적으로 그러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런 과정은 대부분 자동으로 일어나지."
  "그런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영어 습득 정도도 많은 차이가 있겠군요."  맞아. 그렇지만, 내 노하우를 쓰면, 길어야 6개월 차이야. 늦어도 1년 뒤에는 비슷한 수준이 되지.  물론 적재적소에 적절한 어휘를 골라 넣는 능력이야 모국어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차이가 나겠지만 말이야. 아무튼 짧으면 6개월 길면 1년 정도 걸려. 그 정도 기간에 외국어 하나를 습득한다는 거 대단하지 않아?"  "대단하죠. 지금까지 영어공부 한 세월만 따져도 10년이 넘는데 그걸 단 몇 개월만에 그것도 고급 수준으로 모국어처럼 할 수 있게 된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이에요. 난 도대체 믿겨지지가 않네요."  "내가 독일 유학시절에 몇 명에게 전수해 보았어.

 

독일에 있다 보니 너무나 많은 한국 학생들이 전공을 꿈도 못 꾸고 있더란 말이야. 문제는 전공이 아니고 어학 코스도 졸업하지  못해서 생기는 거였어. 그 중에 딱 두 명이 내 말대로  했는데, 6개월만에 최종 어학 시험을 패스하더군.  그때 한국 유학생들이 어학 코스를 끝내는 데 걸린 시간이 평균 1년 반이었으니 그건 유학생 사회에서 획기적인 사건이었지."  "그럼, 나머지 사람들은 왜 그 방법을 쓰지 않았죠?"  "글쎄. 내가 관찰한 바로는 끈기 부족이 첫번째 원인이고 두번째가 신념 부족이야. 내 말을 안 믿는 거지.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결정적이었던 것은 아무래도 끈기 부족 때문이야."   "그 노하우를 배우려면 끈기가 많이 필요하다는 말씀이네요."  "그래. 근본적으로 끈기가 필요한 방법이야. 그런데 끈기가 필요하다고  해서 뭐 엄청난 수준을 요구하는 건 아냐. 얼마 지나지 않아서 재미가 생기거든."
  "성취감 같은 것인가요?"
  "그런 거하고는 조금 달라. 물론 성취감도 있지만, 자기 자신에게 일어나는 현상 때문이라고 할까."  "현상? 어떤 현상이 생기나요?"
  "음, 예컨대 첫번째 단계를 하는 동안에 어떤 현상이 일어나느냐  하면, 어느 날 갑자기 테이프에서 아는 단어가 들리는 거야. 그 전에는 분명히  없었던 것 같은데 말이지. 그걸 시작으로 해서  또 어느 날은 문장 전체가 쑤욱 머릿속으로 들어오기도 하고 그래. 그때부터 슬슬 재미가 붙기 시작하지."  "정말 재미 있겠네요. 어서 가르쳐 주세요. 저한테 어떤 현상이 생길지 궁금하네요."  자, 그럼 슬슬 시작해 볼까.

 

제 4 부 한 달만에 TOEIC 200점을 올리다.

 

1. 제1단계의 4가지 요령


  첫째, 자기  영어 수준에  맞는  카세트 테이프를  한 개(다시   한 번 강조는데  한  질이 아니고  한        개다) 구한다.
  둘째, 그 테이프를 A면에서 B면까지 죽 이어서 하루에 두 번씩 정신 집중해서 듣는다.
  셋째, 매일 듣되, 6일 동안 한 뒤에는 반드시 하루 쉰다.
  넷째, 그 테이프에 있는 모든 내용이 완전히 들릴 때까지 계속한다.


  "이게 일 단계의 전부예요?"
  "응, 간단하지? 그렇지만 그것만 해도 TOEIC 점수가 100점은 뛸걸?"  "어머, 정말요? 음, 그런데, 왜 하루를 쉬어야 하죠?"  "그건 언어가 사람들의 머릿속에 저장되는 특수한 매커니즘 때문이야. 내가 독일에서 읽었던 의학 보고서에 의하면, 사람의 뇌에는 언어를 받아들일 때 특이한 과정을 밟는대. 우선, 들어오는 어휘 정보를 마구 쌓는 일부터 하고, 들어오는 게 멈추면, 그때부터 분석, 정리에 들어가서 최종적으로 잘 분류를 해놓는 작업을 한대. 그러다가, 들어오는 정보가 어느 정도 구색이 맞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그 언어만의 방이 생성된대. 그런데, 만약 끊임없이 정보가 들어오면, 제대로 체계적인 정돈도 못하게 되는 거지.

 

그래서, 하루를 쉴 필요가 있는 거야. 이삿짐 나른 다음에 정돈하는 거랑 비슷하지."  "그러니까, 언어를 관장하는 뇌의 어느 부분에 그 외국어 전용 방이 형성된다는 뜻이군요."  "맞아. 그 의학 보고서에도 그 말이 나와 있더군. 원래, 인간이 막 태어났을 때는 뇌가 전체적으로 말랑말랑해서 언어를 관장하는 부분도 여러 개의 방이 있대. 그런데 어느  정도 나이가 되면, 모국어가 그 부분을 온통 차지하게 된대. 그래서 나이가 많을수록 외국어 습득능력이  떨어지게 되고, 반대로 나이가 어릴수록 외국어 습득능력이 좋아서 여러 개 언어를 습득하는 것도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다는 거야."


2. 완전히 들릴 때까지란


  "참 신기하네요. 그러면 그 테이프 한 개를 완전히 들릴 때까지 계속 들으라는 게 무슨 뜻이죠? 외우라는 건가요?"
  "오 노, 제발 외운다는 생각은 버려. '완전히 들릴 때까지' 라는 건 예를 들면 이런 상태를 말하지.
  어느 날 그 테이프를 다시 듣는 순간,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테이프의 속도를 앞서가면서 다음  내용이 그대로 떠오르는 거야. 발음, 단어,  문장이 하나도 남김없이 말이지. 모르는  단어도 있긴 하지만 스펠이 아리송해서 그렇지, 발음에는 아주 익숙해져 있지. 그리고 노파심에서 하는 얘긴데, 모르는 단어가 나온다고 해서 사전 찾아보려고 하지마. 아, 이 단어만 알면 무슨 얘긴지 좀  알 것 같다 하는 생각이 들더라도 절대 그러지마. 그 순간 도로아미타불이야. 그러니까, 모처럼 언어의 뇌 속에 구축된 분류체계가 순식간에 뒤엉키게 되지."


  "그러니까 매일 약 두 시간 정도 한 테이프를 처음부터 끝까지 듣는데, 그 내용이 완전히  머릿속에 박힐 때까지 그렇게 한다. 단 일주일에 하루는 꼭 쉰다. 그거죠. 맞죠?"  "그렇지, 하루 쉴 때는 영어를 완전히 멀리해. 친구를 만나더라도, 말 속에 영어를 섞어 쓰는 버릇이 있는 애는 절대로 만나지마. 비디오 테이프도 국산만  빌려서 보고. 이태원 같은 데도 가지마. 그날  하루는 완전히 한국식으로 사는 거야."
  "그런데 만약에 테이프를 듣다가 졸리면 어떡하죠? 분명히 졸릴 것 같은데…."  "그래도 안하는 것보다야 낫겠지. 좌우간 졸면 효과가 적어. 그야말로 귀를 쫑긋 세우고 들어야  해.

 

이 단계는 영어로 된 발음에 귀를 예민하게 만드는 부분이거든. 가나다라가 아닌 알파벳으로 이루어진 자음과 모음의 소리에 우리나라 사람들의 귀는 무뎌. 굉장히 무딘 편인 데다가, 우리나라 말에 없는 소리까지 영어에는 있기 때문에 귀를 훈련시킬 수밖에 없어. /F/ 소리나 /V/ 소리 같은 게 바로 그런거야. 그런 소리에 익숙해지지 않으면, 여러 가지 소리들이 모여 이룬 단어나 문장을 알아듣기가 힘들 수밖에 없고, 제대로 듣지 못하면, 흉내를 낼 수가 없잖아? 결국, 외국어 발음이 좋다는  건 바로 그 말을 모국어로 삼고 있는 사람들의 말투를 잘 흉내내는 거거든. 우리나라 사람들도 만약에 처음 영어 배울 때부터 미국  사람들에게 배웠다면, 혀꼬부라진 발음밖에 몰랐을 거고, 그렇다면 혀 꼬부라지게 영어 한다고 비웃거나 놀리는 작태 같은 건 처음부터 없었겠지."
  "아하. 그럼 테이프 들을 때 발음에도 굉장히 주의를 기울여서 들어야겠네요."  "그럼 그럼. 그럴 수 있으면 더욱 좋지. 하지만 처음부터 잘 되지는 않을 거야. 무슨  뜻인지 자꾸 알려고 하는 버릇이 있기 때문에, 그냥 마음을 비우고 들리는 그대로 새긴다는 마음가짐이 잘 안 될 거야. 그래도 끊임없이 그럴려고 노력을 해야 돼.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는 정말  그렇게 돼. 그럼 이미 반은 성공한 셈이지."
  "알겠습니다. 한 버 열심히 해볼게요."
  "그래. 열심히 할 것, 그리고 그 방법 따라하면 된다는 신념을 가질 것, 이 두 가지만 잊지마."  "아참. 어떤 테이프가 좋은지도 가르쳐 주세요."


  "어떤 거든 좋아. TOEIC 연습용 테이프도 좋고, 그냥 회화 테이프도 좋아. 중요한 것은 테이프 내용에 우리나라 말이 들어가 잇지 않을 것, 그리고 자기 수준에 맞을 것. 일단 이 단계에선 자기 수준보다 약간 낮은 게 더 좋아. 그래야 진도가 빠르고, 따라서 재미도 빨리 붙어. TOEIC 테이프를 듣는 경우에는 문제뿐만 아니라. 그 테이프에 나오는 다른 모든 영어까지도 대상으로 한다고 생각해야 해. 그러니까 이번 섹션은 문제다라고 영어로 설명하는 부분이 나오잖아. 그 부분까지도 결코 놓치지 말도록."  "제가 정리해 볼게요. 그러니까, 영어 테이프 한 세트를 사서 그게 완전히 체화될 때까지 계속."  "잠깐. 테이프 한 세트가 아니야. 테이프 낱개도 하나를 말한 거야."  "아니 그럼 딱 테이프 하나만 끝내고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는 거예요?"  "필요하면 하나나 두 개 정도 더 할 수 있지만, 그 이상은 필요 없어."  "믿어보라시니 믿을게요. 저는 속으로 테이프 한 세트 값이  만만찮은데 하고 걱정했더랬어요. 이 방법으로 성공하면 최소한 백만 원은 버는 셈이겠는데요?"
  "일단 초기 투자비만 따지면 그렇지. 그런데 그걸로 안 되어서 계속 다른 걸 사고, 학원도 다녀보고 한다고 생각해봐. 그 두세 배는 확실하게 챙기는 셈이지."  "호호. 정말 말만 들어도 신나네요. 내일부터 당장 시작해야지. 저 이만 갈게요."  "성공하면 오. 건투를 빌어."

 

제 5 부 노하우 들여다보기 1

 

1. 자기 수준에 맞는 카세트테이프를 한 개 구한다.
 
  정작 어려운 건 자신의 영어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를 제대로 진단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어에 관한 한 자신을 과소평가한다.  정확히 어떤 부분에서 강하고 무엇을,  잘못하는지에 대해 구체적이고 분석적으로 사고하지 못한다.
  일반적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문법에 강하다고들 하지만, 그것도 옛날 얘기다. 요즘 젊은 세대로 가면 그것도 꼭 맞는 얘기는 아니다. TOEIC 시험 점수 분포를 보면, 요즘 세대들은 천차만별이다.

  1. 테이프 고르는 방법 첫번째


  여기서 내가 수준을 측정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그러니까, 'Listening' 수준에 맞추면 된다. 영자 신문이나 잡지를 술술 독해하는 사람도 일단 미국인을 만나 거의 말을 못 알아 듣는다면, 초급 2 정도의 테이프를 선택하는 게 좋다. 일상적인 회화정도는 알아듣는 사람이라면, 중금 1 정도의 테이프를 고르면 된다.
 
  2. 테이프를 고르는 방법 두번째


  관건은 어떤 종류의 테이프를 고르는가다. 가능하면  미국 언어학박사들이 연구해서 만든 것을  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왜냐하면 영어에 관한 한  그들이 전문가이기 때문이다. 한국인에 맞는 영어,  한국인을 위한 영어 운운하는 교재에 딸려나오는 것은 절대 믿지 말라.
  난 우선 그 말 자체가 논리적으로 모순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신뢰를 할 수가 없다. 도대체 한국인에게 맞고 한국인을 위한 영어를 어디에다 쓰겠다는 건지 모를 일이다. 팝송 영어니, 드라마 영어니 하는 것도 집어치우는 게 낫다. 일상에서 쓰는 말도 모르면서 그런 영어부터 배워서 뭘 어쩌자는 건가.

 

  3. 테이프 고르는 방법 세번째


  영어를 공부하는 목적에 가장 가까운 종류의 테이프로 시작하는 것이 좋다. 비즈니스 상담에 영어를 잘 쓰고자 하는 사람은 'Business English', 일상 회화를 능숙하게 하고  싶은 사람은 'Conversation' 영어를 고르면 된다. 영어로 하는 강의를  이해하거나 유학을 목적으로 하는  사람은 당연히 'TOEFL' 테이프가 좋다.
  TOEIC 성적을 올리는 데는 역시 TOEFL 테이프가 일단 가장 좋은데, 장기적으로는 그렇게 권장할 만한 교재는 아니다. 수준이 너무 낮기 때문이다.

 

2. 죽 이어서 하루에 두 번씩 듣는다.
 
  '죽 이어서' 라는 게 요점이다. 중간에 끊어서 또 듣거나, 한 면만 집중적으로 듣거나 하면 안된다.
 그러니까 적어도 한 시간 반 정도의 시간 동안 인내심을 가지고 잘  이해되지 않는 영어를 그냥 마음을 비우고 듣기만 하는 일을 한다는 것이다.
  언젠간 신문에 너무나 평범한 부모에게서 태어난 어떤 신동에 관한 기사가 실린 적이 있었는데 거기에 그 아이 어머니의 특이한 육아 행동이 하나 있었다. 아이 어머니는 아이 아버지가 너무 바빠 거의 대화할 시간조차 없었다고 한다. 그 어머니는 아버지와  얘기를 나누는 대신 하고 싶은 얘기,  그날 그날 느꼈던 여러 가지 감상을 아이와 나누었다는 것이다. 평소에도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을 큰 낙으로 삼았다는 그 어머니가 아기에게 들려준 얘기는 그대로 가장 훌륭한 언어 교육이 되었고, 그 아기는 한글, 한자, 영어를 다섯 살이 채 되기도 전에 스스로 깨우친 신동이 되었다.

 

그 아기가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을 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를 생각해 보라. 문법이 어떻고 모르는  단어이고 스펠이고 어떻고 하면서 들을 바탕이 없기 때문에 엄마의 표정과 말의 톤과 크기와 그 말에 담긴 감정을 그냥 받아들었을 것이다.
  테이프 듣기는 바로 그런 마음을 해야 가장 효과가 크다. 다른  말로 하면, 듣다가 답답해서 사전을 찾아본다든가 하면 절대로 안된다. 그냥 들어야 한다. 마치 아무것도  모르는 채 들려오는 어머니의 감미로운 목소리를 즐기는 아기처럼….
  그런데 사실 그렇게 되기는 힘들다. 이미 아는 단어도 많고 틀리든 맞든 발음에 대한 학습도 꽤 된다.
  그래서 발음을 연구하는 기분으로 듣는 것도 좋다. 그러면 전치사나 접속사는 약하게 빨리 발음해서 넘어가거나 거의 생략하고, 중요한 단어는 천천히 강조하면서 발음하는 등의 요령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 온다.

 

3. 매일 듣되, 6일 동안 들은 뒤 하루 쉬다.


 
  하루를 쉬는 것은 언어에도 포도주처럼 숙성기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포도와 주정과 물이 잘 섞이고 일체가 이루어져야 비로소 포도주와 제맛이 살아나듯이, 언어도 단어와 발음과 문장이 뇌에 들어와서 나름대로의 체계 속에 편입되는 과정을 거쳐야만 언어로서  살아 있게 된다. 정보가 계속 삽입되기만 하고 쉬는 과정이 없으면 노가 가지고 있는 정보처리 기술이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게 되고, 따라서 투입한  시간만큼 효과는 더 없어지는 현상까지 벌어진다.
  그런 현상은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체험해 보았을 것이다. 특히 암기 과목에서 겪었던 경험이 그러한데, 시험 전에는 잘도 외울 수 있었던 내용이 시험이 끝나자마자 거의 반 이상 날아가 버린 것 같은 느낌이 바로 그것이다.
  수개월간 연구 검토해서 자기 것이 된 지식은 몇 년이 지나도 유창하게 읊어댈 수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언어의 습득과정은 물론 그것과 다르지만, 체화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점이 같은 셈이다.

 

4. 모든 내용이 완전히 들릴 때까지 계속한다.

 

  완전히 들릴 때라는 것은 말 그대로 '다 들린다' 는 것을 의미한다. '뜻을 다 이해한다' 가 결코 아니다.
 그야말로 테이프에서 나오는 '소리' 가 다 들어온다는 것이다. 단어 하나하나에 대한 발음에 대단히 익숙해져서 뜻도 모르고 스펠도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흉내는 그대로 낼 수 있다는 정도가 바로  '완전히' 들은 단계이다.
  스크립트를 보면 들어야 된다는 주장을 펴는 사람도  있지만, 그건 스펠을 확인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답답함이야 가시겠지만, 귀의 예민함을 키우는 데에는 오히려 방해가 된다.
  왜냐하면 사람의 오감은 동시에 작동할 경우, 완전히 기능 발휘를 상호간에 방해하는 속성이 있기 때문이다.
  눈을 감고 음악 감상을 하면 더욱 느낌이 좋고, 키스할 때도  눈을 감고 하면 더욱 황홀한데, 공포영화를 볼 때 귀를 막으면 특수 처리한 부분이 확 눈에 띄어 실감이 반감되는 이유가 바로 그래서 그렇다.

 

5. 종 합

 

  일 단계는 한마디로 귀를 영어 알파벳 발음에 지속적으로 노출시켜  그것에 익숙해지도록 하는 과정이다. 그 이상의 어떤 효과를 기대하거나 혹은 얻기 위해 다른 방식을 가미하거나 스크립트를 펼쳐보아서는 안된다.
  그야말로 귀를 훈련시킨다는 생각 외에는 더 이상 어떤 욕심도 부리지 말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테이프의 종류나 수준은 사실 부차적이다. 무슨 테이프든 영어로만 되어 있으면 된다. 그 다음 단계를 위해서 수준에 맞고 목적에 맞는 것을 고르면 된다.

 

제 6 부 도로아미타불

 

  정말 한동안 K는 오지 않았다. 그 사이에 나는  다시 미국출장을 떠났다. 혼자 떠난 출장이라서 일 마치고 저녁에 호텔에 오면, 달리 할 일이 없었다.  그래서 이십여 개의 TV 채널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열심히 영화만 보았다. 역시 미국영화는 영어로 들으면서 보아야 맛이다.  독일 생활을 끝내고 귀국하여 처음 '명화극장'을 봤을 때의 생경한 느낌이 다시 떠올랐다. 유학 가기 전에는 분명히 재미있게 봤었는데 이제는 아니었다.
  미국 사람이 한국말로 대사를 하는 게 너무나 이상해 영화에 빠져들 수가 없었다. 하긴 일본 TV 영화에서 일본말을 하는 미국인을 봤을 때처럼 우스울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래, 그러고 보니 독일말하는 미국인은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생긴 게 비슷해서 그런가?  출장을 다녀온 지 며칠 지난 어느 날 저녁 K가 홀연히 나타났다. 예의 생글생글 웃는 모습으로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저, 전번에 TOEIC 시험 쳤는데요. 한 달 동안 박사님  하라는 대로 했거든요. 그런데 점수가 200점이나 올랐어요."
  "우와, 대단한데…. 그래 몇 점?"
  "600점이요."
  어이구 야, 맙소사. 이 친구 굉장하군.
  "사실 저는 업무상 다른 사원들하고 어울릴 시간이 별로 없어요. 퇴근 시간도 날마다 틀리고,  또, 혼자 근무하니까요. 그래서 저녁에 기숙사에 가면 테이프를 네 번씩 들었어요."  네 번이냐! 여간 내기가 아니네. 역시 사람 속은 겉보기와는 달라.


  "그래, 어때, 그 방법을 써 본 소감이?"
  "정말 말씀하신 대로 였어요. 처음 며칠 동안은 지겨워 죽겠더니,  하루씩 쉬고 다시 들을 때마다 일취월장하는 기분 같은 게 들었어요. 귀에 쏙쏙 들어오는 단어가 한꺼번에 막 생기니까 정말 신났어요."


1 시간 투자와 실력증가가 정비례하는 건 아니다


"음. 내가 그 얘기를 안해 줬군. 언어가 느는 스타일은 일차 방정식 그래프처럼 일직선이 아니야.
  언어 실력이 투자한 노력과 세월에 비례하기는 하지만,  계단형으로 늘어. y축을 실력이라 하고, x축을 노력과 세월이라고 하면 한동안은 x가 늘어나도 y값은 그대로인 거야. 그러다가 어느 시점에서 x는 그대로인 데 y값이 수직 상승해. 그리고 거기서부터 다시 한동안 수평선을 그리지. 그 다음은 그런 모습의 반복이야.
  그런데, 여태까지 우리나라 사람들이 배운 영어 공부 방식 대로하면, 그 수식 상승폭이 굉장히 작아.
  얼핏 보아 거의 직선에 가까울 지경이지. 결국, 실력의 증가도 거북이 걸음인 거야. 반면, 내가 아는 노하우를 쓰는 경우에는 처음 얼마 동안 수평으로 가는 기간이 기존의 방법보다 길지만, 그 수직 상승의 폭은 매우 커. 그림으로 그려 보면 이렇게 돼.


  여기서, 진한 선 그래프가 바로 그 노하우를 썼을 때의 모습이지."  "정말 그런 것 같아요. 그래서, 어느 날 갑자기 오락 들렸군요."  "어느 날 갑자기 단어가 하나씩 들리기 시작하고,  그 다음엔 문장이 그리고 그 다음엔 단락이  통째로 들어오게 돼."
  "저  이제 물 하죠? 테이프를 하나 더 들을까요?"
  "맞았어. 테이프를 하나 더 듣는데, 수준이 첫 번째 것보다 수준이 하나 높은 걸로 골라. 방법은 마찬가지."
  "전번 테이프를 끝내는 데 열흘 정도 걸렸는데, 이번에도 그 정도 걸릴까요?"  "하하하. 분명히 그렇지 않을 거야. 아마 일주일 정도면 끝낼 걸."  K는 일단 TOEIC 2급을 목표로 한다고 했다. 아마도, TOEIC 테이프를 가지고 연습 중인 것 같았다.
  두번째 테이프를 끝내고 나면, 2급 획득은 거의 틀림없을 것이다. 만약에 그렇지 않다면, 'Reading'에서 점수를 너무 못내고 있는 걸 텐데….

 

2 도로아미타불


  과연 그랬다. K는 어느 날 다시 나타났는데  그때까지 사내 전산망에 발표된 TOEIC 신규등급자 명단에 그녀의 이름이 다시 오르지는 않았으니까.
  "저, 2급은커녕 3급도 못 땄어요. 'Listening'은 조금 더 올랐는데, 문법 때문에 도저히 안 될 것 같아요.
박사님 방법으로도 문법을 잘 할 수 있게 할 수 있나요?"  "그럼 내가 전에 말했듯이 이 방법의 5단계까지 끝내면, TOEIC이나 TOEFL이 문제가  아니야. 영어로 된 책을 술술 읽고, 토크 쇼 같은 것도 방청객들이 웃을 때 같이 웃을 수 있지."  "그럼, 2급을 따려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겠네요?"
  "그렇지. 이제 그럴 때가 된 것 같군. 자, 두번째 테이프까지 다 들었겠지?"  "네 두번째 테이프 끝내는 데는 5일 걸렸어요."
  잠깐, 뭔가 이상하다. 1단계를 한달 동안 했고, 두번째를 5일만에 끝냈다는데…. 
  "그래? 그럼, 5일만에 두7번째 테이프를 끝내고 나서 그 다음엔 뭐 했지?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근 한 달 반만에 만나는 건데…."
  갑자기 K의 얼굴이 빨개졌다.


  "저, 사실은요. TOEIC 점수가 Reading 때문에 안 올라서 두번째 테이프 끝내고 계속 그거 연습문제만 풀었어요. 그런데도 점수는 겨우 5점 올랐어요. 참 기가 막혀서. 그래서  오늘 온 거예요. 제가 뭔가 잘못한 것 같은데…."
  "설마, 그 연습문제라는 게 테이프에 담겨 있어서 우리말로 해설이 나오고 하는 그런 건 아니겠지?"  "어머, 맞아요. Reading 해설 테이프가 있어요. 거기서  우리말로 해설을 하고 답을 가르쳐주는데 발음이 너무 콩글리쉬해서 좀 찝찝하긴 했어요. 그게 문제였나요?"  "음. 아주 심각한 문제가 벌어졌다고 생각되는군. 혹시 이번 시험에서 Listening도 별로 안 오르지 않았어?"
  "네 겨우 세 개 더 맞췄어요. 전번보다 더 못 알아듣겠다는 느낌까지 들더라구요. 어떡하죠?"  "다시 해야지 뭐. 처음부터. 쯧쯧쯧."
  "1단계를 다시 밟으라는 말씀이죠?"
  "그래. 그렇게 중간에 다시 학습하는 방법으로 영어를 대하면 그때까지 가까스로 닦아놓은 체화의 길이 망가지게 돼. 그래서 점수가 별로 오르지 않았던 거야. 그냥 Reading 연습하지 않고 시험을 쳤더라면, 아마 Listening부분에서 점수가 또 왕창 뛰었을텐데."
  "다시 해 볼께요. 이제 이해가 가요.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실패했는지… 학습하려는 마인드를 저처럼 못 버렸겠군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그렇게 했는데 하다가 불쑥 그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이거 혹시 이러다가 도로아미타불되는 거 아냐 하고 말이죠. 오직  영어로만 된 것이라는 조건이 굉장히 중요할 것 같은 느낌이 계속 들었어요. 결국 저는 암기를 하고 있었고, 그 문법 연습 테이프를 무려 열 개나 뗐는데 고작 한 문제를 더 맞췄다…. 학습이라는 전통 방법이 보기 좋게 나가떨어진 꼴이네요."  "오호. 내 불찰이로다. 그 부분을 더 강조했었어야 하는데, 하긴 그렇게 해서 결국 증명을 스스로 한 셈이니. 이젠 내 노하우를 믿기가 좀 쉬워졌겠네?"


  "네. 이젠 정말 그 방법밖에는 없을 거라는 확신이 와요. 지금 생각해보니 제가 참  어리석네요. 지난번에 200점이나 성적이 뛰어올랐을 때는 분명히 이거다 해놓고선 또 그렇게 망쳐 버리니…."  "고정관념을 버리기 위해선 어느 정도  희생이 따르는 법이지.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런 것 같아.
논리적으로 나온 해답을 자기가 그 동안 가지고 있던 정서에 비춰보는 희한한 버릇이 있거든. 그래서  자기가 싫은 것과 틀린 게 되는 거고 좋아하는 건 옳은 게 되는 거야."  "제 경우엔 해당되지 않는 얘기지만, 공감해요. 전 옳다고 생각해  놓고선 딴짓을 했으니 어떻게 돈 거죠?"
  "아마 투자를 너무 조금 해서 그런 거 아닐까? 하하하."  "알았어요. 오늘 시간 내세요. 제가 저녁 살게요."
  "오케이. 내 식성이 조금 고급인데 괜찮겠어? 상술로만 만든 건 웬만하면 안 먹거든."
  그날 우린 구내식당엘 갔다.

 

제 7 부 테이프 두 개 듣고 무슨 영어가 느냐구?

 

  "첫번째 단계를 하는 동안 나름대로 이 방법이라는 확신은 있었지만요. 여전히 마음 한 구석에 이런 불안감이 있었어요.
 '이렇게 테이프 겨우 두 개만 들어가지고 늘면 얼마나 늘까. 이렇게 쉽게 점수가 늘면 영어 못할 사람이 어디 있겠어. 전번에 200점 뛴 건  어쩌면 운까지 겹쳐서 얻은 최대의 점수일지도  몰라. 문법까지 뗄 수 있는 거 아녜요?"
  저녁을 먹으며 그녀가 한 얘기였다. 우리말은 제대로 할 때까지 문법을 배워본 적이 없는데도 사람들은 왜 영어에 대해서만큼은 문법을 해야 한다고 생각할까. 처음 영어를 만나면서부터 시작을 그런 식으로 했으니 그럴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식의 방법을 본 적이 있어야 할 게 아닌가 말이다.
  "전번에 말했지만 발상의 전환을 해야 돼. 영어는 학과목 중의 하나가 아니야. 수학이나 역사가 아니라 언어야. 언어라구. 언어는 주어, 동사, 목적어 따져가며 학습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고 피아노처럼 익히는 거여. 문법이나 영어의 구조를 잘 안다고 해서  말 잘 하게 되는 게 아닌  이치는 건반의 위치, 피아노의 원리를 잘 학습했다고 해서 피아노 잘 치게  되는 건 아닌 것과 같아. 손에  곡이 익을 때까지 치다보면, 곡의 느낌과 자신의 감성이 어우러져서 저절로 손이 나가는 것과 마찬가지 현상이 일어나도록 하는 방법이 내가 말한 노하우야.


  그리고 TOEIC의 Reading은 우리가 통상 이야기하는 문법과는 좀 달라. 글을 제대로 쓰고, 이해하는가를 테스트하는 거야. 그러니까 많은 글을 접하면 저절로 되는 부분이지."  "자동사, 타동사, 몇 형식 문장 뭐 그런 게 다 필요없다는 얘긴가요?"  "그렇지. 그런 건 필요한 사람들이 따로 있지.  보통 사람들에게는 아무 필요가 없어. 우리나라  사람들 한글 문법 하나도 몰라도 말하는 데 전혀 지장이 없잖아. 우리나라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방식은 엉뚱하게 영어로 쓰인 글을 어떻게 하면 한국말 스타일로 잘 바꿀 수 있나에 집착하고 있는 꼴이지.  미국사람들은 '이런 어려운 문제다, 내가 풀기에는'라고 얘기하는데 우리나라에선 그걸  자꾸 '내가 풀기에는 어려운 문제다'라고 새겨들으라고 강요하는 거야.
  생각해봐 중고등학교 영어 수업 시간에 배운 게 뭔가, 그냥 그대로 미국 사람들이 말하는 식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기회를 안 주는 거지."
  "어머, 정말 그런 것 같네요. 그냥 사람들은 그렇게 이야기하고 산다 뭐 그렇게 인정하면 되겠네요."  "그렇지. 우리는 인사할 때 큰 절을 하고 걔네들은 코를 부비면서 인사하는 풍습이 있다든가 하는 식으로 말이야.


  그러니까 Reading도 우리가 동화책이나 소설책 아니면 만화가게에서 만화를 보면서 우리글을 익혔듯이 그렇게 익히면 돼. 물론, 내 노하우가 영어 소설책을 읽으라는 건 아냐. 원리가 같다는 뜻이지."  "그럼, 그 원리에 의거해서 두번째 세번째 단계가 나오는 거군요?"  "응. 첫번째 단계하면서 또 뭘 물어보고 싶었던 건 없었니?"  "방법에 대해서 물어보고 싶었던 건 없었어요, 그 자체야 워낙 쉬우니까. 그런데, 처음엔 너무 졸리더라구요.
  TOEIC 테이프가 재미있을 리 없으니 그렇기도 했지만,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계속 반복하자니 집중력도 떨어지고…. 그래서 첫 테이프 들을 때는 이렇게 졸면서 해가지고 무슨 효과가 날까 하는 걱정이 들더라구요.


  그런데 참 신기하대요. 일요일 하루 쉬고 월요일에 들을 때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확 느는 거였어요."  "원래 언어는 무의식 속에서 자가발전을 하는 경향이 있지. 애들이 말이 늘어가는 모습을 다시 한번 생각해봐. 그것과 똑같아. 통근버스 타고 다니거나 지하철 타고 회사 다니는 사람들에게 참 좋은  방법이야, 이 노하우는, 아무 생각없이 앉아 있거나, 조는 것보다 굉장히 생산적으로 시간을 쓰는 거니까."  "테이프 길이는 어느 정도가 적당한가요? 보통 TOEIC 테이프는 앞뒷면 합쳐서 60분인데….
  "그 정도가 딱 좋아. A에서 B면까지 한 번 듣고, 물 한잔 먹고 또 한 번 들으면 두 시간 후딱 가지."  "차에 꽂아 놓고 계속 들으면서 다니는 건 어떨까요? 그래도 효과가 있을까요?"    "효과야 있겠지만, 중간에 끊기잖아. 테이프 하나를 완전히 체화시킬 때까지 굉장히 오래 걸릴걸?"


1 제2단계의 7가지 요령


  첫째, 지금까지 완전히 듣는 데 성공한 테이프 중에서 첫번째 테이프를 다시 꺼낸다.


  둘째, 그 테이프를 받아쓰기 한다.


  셋째, 받아쓰기를 하되, 한 문장씩 완성한다.
즉, 한 문장의 끝까지 듣고, 테이프를 정지하고, 받아쓰고 하는 과정을 그 문장을 완성할 때까지  계속 반복한다.
모르는 단어는 소리로 짐작되는 스펠을 쓰면 된다.


  넷째, 그 테이프의 전체 내용을  다 받아썼으면, 모르는 단어의 스펠이  맞는지 영영사전으로 확인한다(의미가 이해되면 좋고 그렇지 않아도 상관없다).


  다섯째, 그 테이프의 내용이 그렇게 해서 완성이 되었으면, 큰  소리로 처음부터 끝까지 발음과 인토네이션을 테이프 그대로 따라 한다는 느낌으로 계속 읽는다  (석연찮은 부분은 반드시 테이프를 다시 들어서 확실히 한다).


  여섯째, 모든 문장이 드디어 완전히 입에 익었다는 느낌이 들면 끝낸다.
  일곱째, 과정중 일주일에 하루는 영어와 완전히 담을 쌓는다.

 

2 받아쓰기를 한 문장씩 하는 이유


  "잠깐만요. 첫번째 테이프를 선택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응. 전번에 얘기했듯이 언제나 새로운 단계의 시작은 조금 쉬운 게 좋아. 그래야, 빨리  성공하고 성취감도 높아지지. 물론, 재미도 더 붙고."
  "그렇겠네요. 이렇게 다 하고 나면, 그 테이프 하나는 확실하게 떼게 되겠네요."  "그래. 그런데 사실은 그것 이상이지. 하나씩 짚어 볼까?"  "왜, 한 단어씩 듣고 받아쓰기를 하지 않고 한 문장씩 해야 할까?"  "음, 그래야 인토네이션에 익숙해지겠죠? 그리고 단어와 단어 사이의 발음 넘어가는 것 같은 것도 있고 하니까…."
  "맞았어. 그러니까, 사람들이 이야기할 때 단어 하나씩 하나씩 또박또박 발음하면서 말하진  않거든. 영어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하는 일반적인 스타일'에 익숙해진다는 게 우리의 목표이니까 말하는 대로 알아듣는 연습이 중요한 거지. 그리고 한 문장이 완성될 때까지 계속 그 문장만 들어야 하는 이유는 뭘까?"  "글쎄요. 모르겠어요."
  "그건, 바로 그 부분, 즉, 잘 안 들리는 부분에  아직도 체화되지 못한 소리가 들어있기 때문이야. 그런 소리에 익숙해지지 않으면, 그 소리가 섞여 있는 부분은 언제나 못 알아듣지." "아하, 그렇겠군요. 그런데, 아무리 들어도 무슨 스펠인지 모를 수도 있잖아요?" "응, 그럴 때는 스스로 판단해서 가장 비슷한 스펠을 적고  넘어가야지. 최소 열 번 또는 스무 번이라고 규정지을 수는 없지만, '그래 이 정도면 들을 만큼 들었다' 싶으면, 그렇게 해야 돼. 결국은 알게 되니까."  "스펠 확인할 때 말이죠?"
  "그렇지."
  "꼭 영영사전이어야 되는 거구요?"
  "그럼. 영한사전이 주는 폐해는 정말 심각해. 영한사전을 쓰면 당장은 속이 시원하겠지.  하지만 거기에 익숙해지면 영원히 '다른 나라 말로 생각해서 말하는 수준'에는 도달할 수 없어."


3 다른 나라 말로 생각해서 말하는 수준이란


  "다른 나라 말로 생각하는 수준이 어떤 거죠?"
  "그건 내가 여러 번 얘기한 것처럼 '머리보다 혀가 먼저  말을 하는 상태를 얘기하는 거야. 영한사전으로 열심히 아주 열심히 공부해서 영어를 상당히 잘하게 된 사람들이 간혹 있는데 그 사람들은 여전히 머리가 혀보다 먼저야. 할 말을 먼저 머릿속에서 정리하고 그걸 다시 혀로  보내는 거지. 자세히 분석해 보면 한국말을 영어로 바꾸는 작업이 한 번 더 있는 거야. 그러니 바로바로 대답도 못하게 되고, 말 자체도 어딘가 어색하지."
  "그럼, 그렇지 않고도 영어를 잘하는 사람들은 영어로 말이 떠오른다는 얘기네요?"  "그렇지. 역시 똘똘하군. 영어로 된 말을  듣고 바로 영어로 된 할 말이  떠올라야 비로소 영어가 몸에 밴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시주에 나와 있는 영어 교습서 중에서 우리나라 말로 해석이 되어 있는  책들이 많은데, 그런 걸론 영어 공부 아무리 해봐야 별로 소용이 없어.  그런데 책들 중에는 심지어 발음까지 우리나라 말 달아 놓은 책들이 있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지. 그대로 아무리 읽어봐야 미국 사람들이 알아 듣질 못하거든."

 

4 큰 소리로 읽으라는 이유


  "그건 그렇구. 큰 소리로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읽으라고 하셨는데, 그건 말 연습하는 건가요?"  "말 연습뿐만 아니야. 음, 만약, 책을 읽는데 소리내서 그것도 큰 소리로 읽으면 이해가 잘 안된다는 거 아니?"
  "네, 맞아요. 읽는 데 정신이 팔려서 그런 건가요. 아무튼 학창시절에 선생님이 일어나서 읽으라고하면, 정작 읽은 나는 물 읽었는지 잘 모르겠더라구요."
  "맞았어. 읽는 데 정신이 팔렸다는 얘기는 다른 말로 하면, 청각과 시각을 동시에 활용하다보니 지각이 잘 작동이 안 됐다는 얘기야. 하물며 영어로 씌어진 글일 경우에는 그런 현상이 더욱 심하지. 그런데, 같은 문장을 몇 번씩 큰 소리로 읽다보면, 어느새  그 뜻이 해석이 되는 신기한 일이 벌어져. 희한하지?"  "어째서 그럴까요?"
  "훈련이 된 거지. 우선 영어로 된 소리를 듣는 데 익숙해져 있는 데다가, 통독 능력이 생긴거야."  "통독?"
  "동서독의 통일이 아니고, 꿰뚫을 통자에 읽을 독이지. 정독의 반대말. 우리가 평소에  소설이나 수필을 읽는다고 하면 그건 항상 통독을 하고 있는 거야. 단어 하나하나에  신경을 쓰면서 읽은 게 아니라, 글의 전체 문맥과 줄거리를 따라 가면서 읽는 방식이지."
  "아하, 그런 심오한 의미 숨어 있었군요."
  "심오하지. 인간이 언어를 자연스럽게 습득하는 과정을 꿰뚫고 있는 거니까, 하하하."  "그리고 완전히 입에 익을 때까지라는 건 역시 외웠다는 뜻은 아니겠죠?"  "당연히 아니지. 결과야 그렇게 되겠지만, 중요한 것은 '입에 익었다' 는 거야. 암기한다는 건 머리로 한다는 거고 이 경우는 혀로 한 거지. 그러니까, 자기 자신의 혀로 영어  발음하는 걸 자신의 귀로 듣는 일이 아무렇지도 않은 상태가 되는 거야."


  "혀로 영어를 말한다는 게 아직도 낯설기는 하지만, 그렇게만 된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신념을 가져. '나는 할 수 있다' 가 아니라 '정말  그렇게 될 것이다' 라는 신념. 말이 나왔으니까 말인데, 일반사회에서 '안 되면 될 때까지' 라든가 '하면된다' 라는 군대식 발상가지고 덤벼들어서 잘  되는 일은 일반사회에서 거의 없어. 냉철한 머리와 뜨거운 가슴이 언제나 함께 있어야 되잖아?"  "그럴 듯하네요. 그러니까 무식하게 영어사전을 그것도  영한사전으로 통째로 외운다든지, 미국 대통령의 연석문을 완벽하게 암송한다든지 하는 게 실제로는 전혀 소용이 없는 것 같은 게 바로 그런 경우겠네요. 뜨거운 가슴만 가지고 영어를 공부한…."
  "참 안타깝고도 복장터지는 일이지. 내가 대입 공부하던 시절을 생각해보면, 참 아까운 시간 많이 버렸다는 생각이 들어, 본고사 영어 시험 대비를 위해서 벼라별 독해문제를  다 풀어 봤는데, 어떤 글은 모르는 단어가 전체의 반이 넘어들 정도였어.

 

그런데 그렇게 해서 외웠던 단어 중의 반의 반도 안 쓰고도  영어 잘 한다는 얘기 듣고 살잖아. 어떻게 온  나라가 그때부터 아니 훨씬 전부터 지금까지 그런 어리석은 방법을 여전히 버리지 않고 있는지 모르겠어. 더 한심한 것은, 그런 방법이 일제시대에 전수된 거라는 거야. 그 당시를 모델로 한 소설들에 보면 그렇게 묘사되어 있는 걸 쉽게  발견할 수 있거든. 영어 사전 한 페이지씩 완전히 외우고 나면 그 페이지 뜯어서 정말로 씹어먹는 학생이  그런 소설에 나오는데 그런 친구가 내가 학교 다닐 때도 있었거든.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예전의 문교부에서부터 지금의 교육부에  이르기까지 외국어 담당 교육공무원들 정말 나쁜 사람들이야."  "에이, 공무원들이 아무 생각 없이 그저 월급이나 타 먹어 가면서 무사 안일하게 산다고 욕먹는  게 어제 오늘의 일인가요? 갑자기 새삼스럽게. 그리고 교육 부문만 그런 것도 아니잖아요…."  "맞아 맞아. 주제를 너무 멀리 벗어났군. 본론으로 넘어가자구. 우국지사 얘기는 그만하고 말은 살아 있어야해. 책이나 머릿속에 갇혀 있는 상태로는 절대로 혀끝에서 살아나오지  않아. 높고 낮음과 세고 여림과 길고 짧음이 있는 소리로 새겨져 있어야 비로소 생명이 있는 거야."  "새긴다는 말 명심할게요. 그럼 이만 늦어서 가봐야겠어요."  "그래. 열심히 해봐. 이제부턴 재미가 쏠쏠할 거야."


제 8 부 노하우 들여다보기 2

 

1. 1단계의 첫번째 테이프를 받아쓰기한다.


  우리는 어릴 때 누구나 받아쓰기를 해 본 경험이 있다. 그리고 그 받아쓰기는 얼마나 철자를 안 틀리고 쓰는가를 테스트하는 것이었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받아쓰기의 목적은 전혀 다르다.
  영어로 말하는 문장에 익숙해지기 위해서 하는 받아쓰기다 그래서 한 문장씩 다 듣고 받아쓰기를 해야 한다. 영어를 좀 해본 사람들은 미국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 처음엔 좀 알아듣다가 얘기가 조금만 길어지면 그만 모조리 흘려버릴 수밖에 없었던 경험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아주 짧은 문장에만 길들여져 있어서 그렇게도 하겠지만, 여전히 단어에만 집착하는 버릇을 버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모르는 단어 한두 가지에 그만 머릿속이 온통 뒤죽박죽이  되거나, 그 단어 뜻 짐작해 보느라고 뒤에 나오는 단어를 그만 다 놓치기 때문이다. 한 문장씩 받아쓰기를 잘하게 되면, 중요한 단어와 그렇지 않은 단어를 자동으로 구별해 듣는 능력이 생긴다.
  주의해야 할 것은 한 단어씩 받아 써 놓고 다시 한 문장 다 듣고 다음 단어 써 놓고 하는 식으로 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일단, 처음 들은 대로 기억나는 대로  다 써야 한다. 그 다음부터는 잘 안 들려서  대충 써놓은 것을 확인하기 위해 듣는 것이다. 그때도 써 놓은 것을 보고  들으면 안된다. 계속 허공을 보거나 눈을 감고 들어라. 그리고 채워 넣어라.

 

2. 모르는 단어를 영영사전으로 확인한다.


  이 부분은 오로지 스펠 확인에 그 목적이 있다. 뜻을 알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다행히 뜻도 알게 되면 금상첨화지만, 그것보다 발음과 스펠을 일치시키는 것이 더 중요한다. 영영사전으로 도저히 찾을 수 없다면 스크립트의 도움을 빌려야 한다. 그러나 스크립트는 마지막 순간에  이용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이 어떤 발음에 약하고 또 다르게 듣는 발음이 어떤 것인지 잘 모르게 된다.
  영영사전을 이리저리 뒤지고, 다시 테이프를 들어 보고  하는 과정을 겪으면서 자신의 귀로 들은 것에 대한 맹목적 과신을 버리는 훈련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깨달은 자신의 정취력의 특징을 잘 새기면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일이 줄어들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많이 범하는 실수, 예를  들면, L과 R의 혼동도 그런 과정을 통해 고칠 수 있다.

 

3. 큰 소리로 처음부터 끝까지 따라 읽는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큰 소리'와 '처음부터 끝까지'이다. 큰 소리로 읽어야하는 것은 우선 자기  위에 자기 목소리가 영어를 말하는 것을 익숙하게 해서 나중에 자기가 말하고 그 영어 소리에 놀라는 일을 없애기 위함이고,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제끼는 것은 긴 숨으로 영어를 말하는 능력을 기르기 위함이다.  물론, 그 와중에 통독 능력까지 가미된다. 철저한 발음 흉내를 낸다는 각오로 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마치 '성대묘사' 훈련을 하듯 하면 가장 효과가 좋다.
 
4. 완전히 입에 익으면 끝낸다.


  임에 익었다는 것은 발음을 하는 데에 익숙해졌다는 것이다. 보지 않고도 유창하게 말이 흘러나오는 수준이라고 스스로 인정할 수 있다. 자체 테스트로 가장 좋은 방법은 녹음해서 들어보는 방법이다.
  읽는 순간에는 제대로 발음하고 있는 것  같아도 녹음해서 들어 보면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이상한 발음이 많이 발견된다. 사투리를 쓰는 사람은 녹음해서 들어보아야 그걸 깨달을 수 있다. 그런 부분은 집중적으로 반복해서 고쳐야 한다. 그리고 다시 녹음해서 비교해 보면 그 발전 정도가 확연히 나타난다.

 

5. 종합


  두번째 단계는 첫번째 단계에서 들은 테이프만 가지고 해야한다. 혹자는 첫번째 단계를 건너뛰고 두번째 단계부터 해도 된지 않냐고 하는데 그건 오산이다. 두번째 단계는 발음과 철자의 일치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톤으로 말하고 어떻게 문장과 문장을 이어서 어조를 끌고 가는가를 익히기 위해서 필요한 단계로, 혓바닥에 영어 발음을 올려놓는 데 익숙해지기 위해 존재하는 과정이다.
  그리하여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영어 발음이 본토  발음과 매우 유사해져야 완성된다. 그래야만  영어로 말하는데 자신이 붙는다. 자신의 귀에도 자신의 혀가 발음하는 소리가 낯설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영어답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제 9 부 한국인 출입금지
 
  K처럼 처음부터 어느 정도 수준이 있었던 사람은 첫 번째 단계를  비교적 쉽게 돌파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상당히 어려운 과정을 극복해야 한다.
  우선, 테이프도 한두 개를 들어서 끝나지 않는다. 아예 알파벳도 모르는 사람은 예외로 하면(이런 사람은 첫번째 단계 이전에 별도의 단계를 하나  더 밟아야 한다), 아주 기초적인 테이프에서부터  그 사람의 우리말 수준에 이르는 정도에 맞는 테이프까지 다 들어야 한다. 그것도 완전히 들릴 때까지.
  사실 해 보면 너무 어려워서 포기할 정도는 결코 아니다.  왜냐하면, 언어능력의 증가는 입력된 만큼만 느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언어의 뇌가 스스로 터득하는 부분도 꽤 많다. 그리고 테이프가 거듭될수록 한 테이프 당 걸리는  기간은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다. 사실 문제는 다른 데 있다.

 

  영어 실력이 바닥인 사람들은 내 방법을 따라 오지 않고 중단하는 가장 흔한 원인은 자포자기이다.  조금만 어려우면, "에이, 이 방법은 나한테 무리야. 영어를  어느 정도는 알아야 말이 되지." 하면서 포기하곤 다시 '공부'하기 시작한다. 아마 그게 뭔가  열심히 하고 있다는 느낌을 확실하게 주니까 그런  모양인데, 그때부터 영어는 다시 난공불각의 요새로 돌변한다.
  언어는 문화의 표현도구다. 그리고 제 나라 말의 수준이 곧 그 사람의 문화수준이다. 그러다 보니 영어는 조금밖에 못하는데 정작 영어를 해야  할 때가 되어도 생각은 한국말 수준으로  하게 되고 그걸 짧은 영어로 표현하려니 잘될 리가 없다. 그러면 다시 주눅이 들고 그렇게 해서 악순환이 된다.


  왕년에 영어를 썩 잘했다는 사람들의 경우는 양상이 조금 복잡하다. 우선 한국어 수준에 맞는 영어  단어도 알게 되고, 문장도 쓰라면 사전 뒤져서 제대로  쓸 줄 아는 상태다. 그런데, 막상 영어를 해야  하는 상황이 닥치면, 문법과 어휘가 뒤죽박죽으로 엉키면서 반벙어리가 되거나, 십  분 넘게 걸려도 제대로 된 문장 하나 못 만들곤 한다. 억지로 문장을 하나 만들어놓고 보면 화제는 이미 딴 데로 옮겨가고 난 뒤다.
  이들 중에서 심한 경우는 완전 포기로 진행된다. 한국인이 아무리 열심히 해도 영어를 할 수 있는 한계가 있는데 자기가 거기에 도달한 모양이라느니, 그렇게  열심히 했느데도 안되는 걸 보니 아예 어학에는 소질이 젬병이라서 그렇다느니 하는 이유를 대면서 말이다.
  그래도 이런 경우들은 좀 낫다. 가장 문제가 심각한 경우는 영어를 아예 배우려고 들지 않는  사람들이다. 이들의 대부분은 일종의 편의적인 국수주의자들이자, 궤변론자들이다. 영어를 잘하는 사람들을 경원할 뿐만 아니라, 영어를 열심히 해보려는 사람들의 성취동기마저 경멸하는 경향까지 가지고 있다. 우리 국어가 소중한 만큼 다른 나라 언어도 소중하다는 것 정도는 기초적인 교양이라도 있는지 의문이다.
  이런 사람들은 외국에 가서도 그 나라와 우리나라 사이의 문화 차이, 의식의 차이에 대해서는 전혀  배려하지 않는다. 그냥 우리나라랑 다른 것은 무시의 대상일 뿐이다. 그러니 제먹대로 행동한다.


  언젠가 독일에 출장차 온 대기업의 엘리트들을 안내했을 때 난감했던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얼굴이 다 화끈거린다. 수퍼에 갔을 때였다. 여기서는 금연이라고 했더니 바닥에다가 담배를  비비며, "선진국이라면서 왜 이렇게 불편해"라거나, 높은 건물이 안 보인다고 "훨씬 못 사느 구먼"이란다. 그 이후의 행동은 한마디로 점입가경이었다.
 특수한 경우만 그럴 거라고 생각하지만 한국인들 중에 이런 사람들은 적지 않다. 유럽의 저명한 관광지 여러 면세점에 한국말로 '한국인 출입금지'라고 씌어 있고, 많은 호텔에서 한국인 단체 관광객을 아예  받지 않는게 현실이다. 이게 바로 나라 망신시키는 국수주의자들이 의외로 많다는 증거다.
  이걸 또 외국인 차별 때문이라고 우겨대면 난 할말이 없다. 이 사람들에게는 오직 한국어만이 쓸  만한 언어다. 왜냐하면, 모국어니까 그러나, 다 눈치챌 얘기지만 이유는 엉뚱한 데 있다. 필요한데도 안하는 사람의 경우는 게으른 걸 뒤덮는 핑계거나 전혀 쓸데없는 자존심을 내세워서 그렇거나….
 
  영어는 매우 중요한 언어의 하나다. 그러나, 언어는 언어일 뿐이다. 그걸 무슨 수학처럼 풀어야  한다는 둥, 과학이라는 둥 해가면서 어렵게 만들기 시작한 것은 분명히 독해 위주로 가르치고 시험쳐 온  우리나라의 외국어 교육풍토에 기인한다.
  내가 독일어와 영어를 제대로 알게 되면서 가장 먼저 느낀 것은, 정작 본토 사람들이 쓰는 말은 어휘도 그렇고 문법도 그렇고 아주 단촐하다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그 사람들은 충분히  할말을 다하고 있었다.
그 말을 다 익혔을 때 신기한 현상이 일어났다.
 철학이나 사회학을 다룬 어려운 책 속에 나오는 현학적이고 난해한 표현이 별로 어렵지 않게 해독이 되었다. 우리나라 말을 언젠가부터 사전을 보지 않고도 이해할 수  있었던 현상과 일치하는 것이었다. 그건 영어도 독어도 언어인 이상 당연한 것이었을 것이다. 저절로 깨우쳐지는 것이 바로 언어의 특징이므로,  K는 그로부터 한 달이 넘도록 소식이 없었다. 그리고 그녀의 전배소식이 들려왔다. 그녀가 2급을 땄다는 소식은 물론 여전히 전산망에 뜨지 않았는데….


  그녀를 다시 만난 건 어느 날 잠실에서 교대  방향으로 가는 2호선 전철 안에서였다. 저녁 8시가 넘은 시각이었는데, 그녀는 난간 바로 옆 좌석에 앉아 졸고 있었다. 그녀의 무릎 위에는 책이 한 군 펼쳐져 있었는데, 가까이 가서 들여다보니 영문독해를 연습하는 책인 듯했다.  나는 그녀를 깨웠다. 그리고, 교대역에서 같이 내려 근처 커피 전문점에 들어갔다.
  "요즘, 어때? 새로운 업무는 재밌어?"
  "에이, 잘 모르겠어요. 아무튼 힘들어요. 회사일이란 게 아무튼 쉽게 않네요."  "게다가 자기계발까지 하려니 더욱 그러지?"
  "보셨군요. 저, 박사님이 가르쳐 준  방법 포기했어요. 너무 힘들어서  못하겠더라구요. 매일 두 시간을 할애한다는 게 거의 불가능해요."
  "그래 지금 하는 전통적 방법은 잘 되는 것 같아?"
  "음, 일단 확실해서 좋아요. 제가잘 몰랐던 문법의 많은 부분이  분명히 이해가 되는 것 같아서 재미있어요."
  "그래. 그렇다면, 해 봐. 그리고, 그 책 다 떼거든 TOEIC시험에 다시 한 번 도전해 볼거지?"  "네, 궁극적으론 1급을 따야 TOEIC 부담에서 벗어나잖아요."  "잘 됐으면 좋겠다. 별로 좋은 방법은 아니지만, 점수가 좋아지긴 할까?"


제 10 부 공부했는데도 점수는 오히려 떨어져

 

  영어를 '습관'화하는 방법을 쓰다가  중간에 다시 '공부'하는 방법으로  바꾸면, 그 전에 했던  습관화는 2∼3일 사이에 날아가 버린다. 왜 그런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다시  뭔가 암기를 하기 시작하면서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 걸 느끼게 되고, 그렇게 해서 하루 이틀 지나면 암기한 것 외엔 남은 게 별로 없다는 걸 알게 된다.
  그런데 습관화되었던 영어는 수준이 낮고 공부를 한 영어의 내용은 수준이 높으므로, 사람들은 다시 개의치 않고 공부를 계속한다. 공부를 해서는 금세 한계에 부딪치는 게 언어인데도 말이다.

  K가 빠진 함정은 결국 우리나라 사람들이 자라면서 거치는 학습과정이  만들어 놓은 것이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그저 열심히 읽고 쓰고 찾아보고, 좌우간 책상 위에서 많은 시간만 보내면, 부모도 해피하고 선생도 해피하고 학생도 시험보기 전까지는 보람찬 나날을 보냈다는  생각으로 해피한 그런 풍토가 여전히 초강세다. 과목에 따라, 아이들의 개성에 따라 그리고 그들의  인생목표에 따라 다양해야 할 배움의 방법과 과정이 오로지 한 가지 청편일률적으로 고정되어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선 영어학도들이 영문학을 하는 연구하는 방법까지도  모두 똑같다.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그러나 다른 나라에서는 자신이 탐구하는 작가의 고향을 찾아가고, 그의 후손을 만나러 아프리카까지 방학 때 갔다오는 일도 한다. 그의  작품 속의 시대를 제대로아기 위해서 역사학을   복수전공하는가 하면, 그를 연구하는 많은 다른 사람들과 만나기 위해 연구회나 세미나에도 부지런히 참가한다. 영어를 잘하는 건 필수다.
  이들이 이렇게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서 공부하는 건 어릴 때부터 그렇게 자랐기 때문이다. 유치원에서 그림그리기를 하더라도 우리나라에서처럼 하고 싶거나  말거나 전운 모두 그것도  똑같은 주제로 그리게 하는 몰상식하고 전근대적이고 독선적인 방식은 결코 용납이 안된다.
  유치원 선생님들은 그냥 적당한 장소, 그러니까 물감을 들고 쏟고 뿌리고 해도 전혀 상관이 없는  곳에 이젤과 도화지와 각종 칠 재료를 배열해 놓는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말한다.
  "자, 여기 그림 그릴 수 있는 각종 장비가 마련돼 있어요.  그리고 싶은 사람은 언제나 와서 그려도 좋아요."
  그리고는 구경만 한다. 별별 희한한 방식으로 그림을 그리는 애들이 나타나지만, 전혀 개의치 않는다.


  그렇게 키우는 나라이다 보니 애들이 커서 치르게 되는 미술대학  입학시험도 우리나라와는 발상 자체가 다르다. '책꽂이가 쓰러지면서 꽂혀 있던 책들이 마구 떨어지는 상황을 묘사하라'가 독일의 어느  대학 미대입시 문제였다. 우리나라 유학생들은 어떻게 했을까? 대부분 사실적 묘사에 급급했고 결과는 모두 낙방이었다. 합격한 독일애들은 저마다 다양한 묘사를 했더란다. 책 한 권이 마치 새처럼 비상하는 걸 그린 사람, 책 속에서 알파벳이 쏟아져 나오는 걸 묘사한 사람, 아예 혼돈의 추상을 그린 사람 등등.
  그런 걸 우리나라에서 바란다는 건 아직은, 무리라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아직도 초등학교 일학년 학생들에게 앞으로 나란히, 열중 쉬어, 차렷 등등을 가르친다고 한달 동안 운동장 수업이라는 게 있다는 얘기를 듣고 나니 이눔의 나라에 뭘 기대하고 살아야 할지 아연할 따름이다. 군부독재 30년간 아니  일제시대까지 따지면 거의 70년간 그렇게 교육받고 살아왔으니 그렇게 해서 든 물 다시 빼려면 1세기는 걸릴지도 모를는 일이다.


  물론, 그것도 이제 바로 그런 노력을 시작했다고 가정했을 때의 얘기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아직까지는 그런 노력을 하지 않을 가능성이 더 커 보인다.
  어떤 과목이든 그 과목의 특성상 공부할 때 반드시 고려해야 할 게 있는 법이다.
  예컨대 수학과 과학은 현상과 원리와 응용을  깨치는 학문이므로, 논리적으로 분석하고 이치를  따지는 능력을 계발하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할 것이다. 책상 위에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문제풀이로 보냈느냐가 관건인 과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언어는 그렇지가 않다. 언어는 삶의 도구일 뿐만 아니다. 도구를 잘 쓰기 위해서는 그것을 쓰는 법을 몸에 익혀야 하는데 그 도구를 잘 쓰느냐 못 쓰느냐는 그 도구가 얼마나 몸에 뱄느냐에 달려 있다.

 

  K의 점수는 오히려 떨어졌다. 문법에서는 15점 그러니깐 세 문제를 더 맞추었지만, 청취력에서는 무려 20점을 후퇴했단다.
  "청취력에서 점수가 떨어진 것은 이해가 가지만, 공부를 열심히 했는데도 문법과 독해에서 겨우  세 문제밖에 더 맞추지 못한 것은 정말억울해요. 그 동안 들인 공이 아깝네. 이왕 떨어질 거면 차라리 공부 안 하고 떨어질 걸…."
  "문제를 풀면서 확신이 있어니? 이건 정답일 수밖에 없어하는 느낌 같은 것 말이야."  "아뇨. 문법은 거의 다 추측으로 썼을 정도예요. 분명히 어려운 문제는 아닌데…."  "그게 바로 암기 위주 언어학습의  맹점이야. 할 때의 성취감과 실제  성취도에는 현격한 차이가 있지.
게다가 머릿속으로 들어올 때의 속도보다 나가는 속도가 훨씬 빨라서 매일  끼고 살아야 겨우 적자 면할 판이지."
  "이제 어떡하죠? 처음부터 다시 할까요?"
  "그래. 그게 제일 좋은 방법이야. 어차피 언어를 관장하는 뇌 속의 체계를 다시 만들어야 되니까."  "다시 할 수 있겠어?"
  "다시 해야죠. 차라리 잘 됐어요. 사실, 전번에 200점 오른 다음부터는 완벽하게 하지 않았어요. 그래선지 2단계에서는 별 재미를 못 느꼈어요. 그러다가 결혼 준비하느라고 완전히 손 놓았고 결혼하고 나서는 부서 옮기고…. 그러고나서 시험을 봐야  된다고 생각하니까 마음이 급해졌어요.  지난번에 청취력에서는 점수가 많이 올랐으니까 이번에는 문법만 하면, 금방 점수를 올릴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2단계까지만 끝냈더라면, 청취력 점수가 그렇게 많이 떨어지지 않았을거야.

 

원래 어느  정도까지만 되면, 귀의 청각이 충분히 예민해져서 시간이 좀 오래 지나도 다 알아 들을 수 있게 되지. 외국에서 오래  살다가 귀국한 사람들 보면, 우리말을 잘하지는 못해도 알아듣는 것은 다 하잖아?"  "그럴 것 같아요. 하루에 한 번 정도 들을 시간밖에 없는데 그래도 효과가 있을까요?"  "조금 오래 걸리긴 해도 효과는 확실하지. 한 번 해 봤기 때문에 금방 진도가 나갈걸?"


제 11 부 드디어 2단계돌파

 

  2단계에서 일어나는 가장 특징적인 현상은 영어가 혓바닥에 달라붙는 느낌을 받는 것이다. 어학적 소질이 없다는 사람들, 그러니까 혀가 잘 안 돌아가는 사람들이라도 그 정도 느낌까지는 아니지만, 자신의 형 영어를 올려놓는 일에는 제법 익숙해진다.
 이 현상은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매우 중요하다. 나라가 정한 교과과정을 따라갈 수밖에 없는 교육 현실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혀를 이용하여 자신이 배운 내용을 활용해 보는 시간은 초, 중, 고,  대학 교육을 통틀어서 미미하기 짝이 없다.
  머리는 굵어지고 생각은 많아지는데 정작 표현은 형편없어지는 것이다. TV 같이 자기 얘기를 해야 할 자리에 나온 보통 사람들의 표현 실력을 보라. 하여튼 말도 제대로 못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얼마 전부터 우리나라 모든 공중파 방송국에서 우리나라 말을 하는  경우인데도 화면 하단에 자막처리를 하기 시작했는데 모르긴 몰라도 우리나라 사람들의 형편없는 표현실력과 무관하지 않는 것 같다. 발음도 부정확하거니와 무슨 의미의 말인지도 이해하기가  힘들다. 방송국 측의 고육지책이 아니었나  짐작이 가는데 개인적으로는 그 배려가 가슴에 와 닿았다.


  실제로 회사에서 우리네 상사님들의 말솜씨를 한 번  보라. 부하 직원들에게 하루에도 몇 번씩 지시를 내리고 장시간 회의에도 참석하는 그분들 중에서 자신의 의사를 제대로  전달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는지.
  모국어 실력이 이런 지경인데 외국어를 머리와 눈과  손만 써서 배우겠다니! 그 나라 언어 장애자들만 상대해서 필담을 하겠다면 모를까 도대체 말이 안되는 얘기다.

  일단 혀에 영어가 '올라가려면', 철저한 발음 흉내가 필수다. 이게 우리나라 사람들이 또 잘못하는 혹은 잘 안하는 일이라는 게 문제지만, 발음이 어려운 단어는 사실 처음엔  지독하게 안 되는 경우도 있고, 그럴 때 쉽사리 포기하게 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 아기들을 보라. 기기묘묘한 엉터리 발음으로  사람들을 웃기던 애들도 나중에는 아주 정확한 발음을 한다. 혀의 근육이 그걸 할 수 있을 정도로 훈련이 되기  때문이다.
  어른들의 혀라고 해서 굳어서 훈련이 안되는 건 아니다. 자꾸  훈련하면 좋아지는 법이다. 우리나라 사람 답지 않게 철저한 어떤 사람이  처음 자신이 소리내어 읽은 것을 녹음해  두었다가 꽤 잘하게 되었을 때와 비교해본 적이 있다. 그러면 정말 놀랍다.
  초기 발음의 유치함에 놀라고 나중 발음의 엄청난 개선 정도에 놀란다. 혹자는 이쯤에서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에이, 외국인들은 웬만한 한국인 영어 다 알아 들어 주던데….'    아마 그 외국인이 그 사람에게서 건질 게 있어서 그랬거나 예의상 할 수 없이 참아 준 경우 일 것이다.
그런 건 심한 경우 신경정신과적 고문이다.

 

  그 다음에 일어나는 현상은 영어를 자꾸 한국어로 번역하려는 습관이 사라지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바로 이 영어를 자꾸 한국어로 번역하려는 습관 때문에 영어를 잘할 수 있었는데도 못하게 된 경우가 굉장히 많다는 걸 모른다.
  물론 이것 역시 독해일변도의 교과과정 때문에 그런 것이다. 그런 나쁜 습관이 사라져야 비로소 영어의 의미를 제대로 알게 되는 새로운 지평이 열린다. 한국어의 어의로 영어의 어의를 이해하는 넌센스와 결별해야만 영어가 또 하나의 몸에 밴 언어로서 자리잡을 수 있는 것이다.
  영어가 몸에 배게 된다는 것이 곧 영어를 유창하게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영어가 더 이상 낮설지 않게 되었다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닌 수준 정도일 뿐이다. 그렇지만 이때부터 영어는 들리는 대로 머리에  새겨지기 시작한다.
  '들리는 대로'라는 말은 알아들은 대로라는 말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즉, 표현의 차이를 알아듣고 새기게 된다는 뜻이다. 그렇게 새긴 말은 적절한 상황이 오면 즉각 혓바닥 위로 튀어올라온다.

 

1. 수제자 결국 TOEIC 2급을 따다.


  K는 결국 TOEIC 2급을 땄다. 그 소식이 올라온  화면을 보면서 나는 그녀가 다시 나를 찾아오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이제는 TOEIC의 급수 올리기를 떠나 영어를 완전히 정복해보겠다는 순수한 욕심이 생겼을 테니까.
  봄이 막 지나간 초여름의 어느 저녁. 그녀는 고구마와 음료수가 가득 든 쇼핑백을 들고 사무실에  나타났다. 자연스럽게 우린 남아 있던  직원들과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녀에게 관심이 많았던 녀석들은 그녀의 신상에 대해 은근히 유도심문을 했고 나는 그걸 통해  그녀의 어학에 대한 각별한 관심의 편린을 찾아낼 수 있었다. 그녀는 왕년에 불문학도였다. 살짝  선보인 그녀의 불어발음은 제법 괜찮았다.

  "이게 다예요. 제가 할 줄 아는 불어는, 진작에 그 노하우를 알았더라면, 저 아마 불어를 굉장히 잘해서 프랑스 유학을 갔을지도 몰라요."


  그녀는 은연중에 매운 중요한 발언을 하나 한 셈이다. '불어를 잘했더라면 프랑스 유학을 갔을'지도  모를 이 여인은 유학 성공의 기본전제가 언어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던 것일까?  "말이 나왔으니까 하는 얘긴데, 유학 가려는 사람은 다른 건 몰라도 그 나라 말만은 확실히  배우고 가는 게 좋아. 단지 언어 때문에 십년 넘게 공부 못 끝내고 귀국하는 사람 숱하게 봤어."  좌중의 한 녀석이 이의를 제기하고 나섰다.
  "그런데 제 은사가 미국에서 공부하셨는데, 미국에서 손님 오면 도망가던데요. 영어를 잘못해서 그렇다던데 어떻게 박사학위를 따셨을까요?"
  "내가 미국에서 공부하지 않아 직접 경험하지 못해서 정확하게 그 원인은 모르겠는데 미국 박사이면서도 영어 해보라고 하면 화내는 친구 녀석이 하나 있거든. 그런데 그 친구 말이 한국 사람들이 워낙  요령이 좋아서 어찌어찌 끝낸다두만. 그리고, 박사과정만 하러 가면 이공학부 저공은 말을 잘 못해도 논문 디펜스 달달 외워서 끝낼 수 있대. 유럽은 그런 전공조차도 말을 잘 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사실 외국에 유학가서 박사과정만 하고 오는 것은 문제 있다. 드러내놓고 말을 안 할 뿐이지 이건 유학 경험자의 대부분이 인정한다. 왜냐하면, 미국이나 유럽이나 영국이나 한  전공의 전문가로서의 기반 완성은 대학원 석사과정을 졸업하면 끝난다.


  박사과정은 학문 연구를 스스로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과정이며, 박사 학위증서는 독자적으로 연구를 수행하여 결과를 낼 수 있는 능력에 대한 증명서이다. 그러니까 박사학위가 그 사람의 그  분야에 대한 총체적 전문성을 보증해 주는 것은 전혀 아니다. 그래서 유학 같 나라의 선진 학문은 제대로 배우려면 석사과정부터 하는 게 정석이고, 우리나라 대학원의 형편없는 수준까지 감안하면, 선진국에 가서 박사코스만 밟고도 박사학위를 따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2. 처음부터 그 나라에 가서 배우는 게 좋지 않을까?


  "미국이나 독일이나 프랑스에서 석사과정을 밟는다는 건 그 나라 말로 레포트를 내고, 세미나에서 발표를 하고 질문을 받고, 수백 권에 달하는 전공서적을 읽고 소화해서 시험을 그것도 유럽에서는 구두시험을 치고 수십에서 수백 페이지에 달하는 논문을 써서 내야 한다는 얘기야. 그거 우리나라 말로도 힘이  엄청 드는 과정인데 하물며 외국어로 그것도 그 나라 태생에 나이도 훨씬 젊은 아이들하고 경쟁해가며 밟는다고 생각해봐. 보통일이 아니지. 걔네들 우리나라와 달리 제대로 된  교육과정 거쳐서 대학교 왔다는 것까지 생각하면, 언어만이 문제가 아닌거야. 다른 말로 하면, 언어를 굉장히 잘 한다고 해도 경쟁이  될까 말까야."
  "그렇겠네요. 그런데 그렇게 언어가 중요하다고 언어도 본토에 가서 바로 본토 말을 익히는 게 정석 아닌가요? 우리나라에서 해 봐야 제대로 가르쳐주는 데도 없는데…."   바로 이 부분도 우리나라 유학 지망생들이 저지르는  전형적인 오류 중의 하나다. 본토에 가면 사실은 한국 사람들이 그 나라말을 잘 배울 만한 데가 더 없다. 거기는 알파벳 문화권에 맞는 방식 이에는  모른다.


  한국이라는, 동양의 어느 구석에 붙어 있는지도 잘  모르는 나라 출신 학생들이 어떤 언어관과 습관을 가지고 있느지를 배려해 줄 능력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유감스럽게도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정말 필요한 말하는 훈련이나 말 잘하기 방법 등은 거기서도 가르치질 않는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 코스에 나오는 외국인들의 대부분, 그러니까 스페인, 이태리, 영구,  프랑스 등의 알파벳 문화권 출신뿐만 아니라,  이란, 이라크, 터키 등의 아랍 문화권 출신들까지 조금만 지나면 말만큼은 청산유수로 해대니까, 물론, 거기서 한국인만 예외다. 한국인들은 죽자사자 일단 문법만 한다. 문법을 떼면 또 죽을 동 살 동 독해만 붙들고 늘어진다. 본토가서도 한국에서와 똑같이 공부한다.
  그리고, 본토 사람들과 교류를 할 수 있으니까 언어 늘리기에 좋다고 일반적으로 쉽게 생각할 수  있는데 그건 오산이다. 처음에는 외국인이  제 나라말을 하니까 신기하기도 하고  해서 상대해주겠지만, 그게 그리 오래 가지 않는다. 그들도 사람이라 무슨 말인지 알아 먹기 힘든 말을 신경써서 들려주는 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본토 언어 수용성부터 키우고 나가야  해. 그게 뭐냐구? 밭을 갈아야 씨를  뿌리는 것과 같은 이치지. 본토엘 가면 물론  눈에 띄는 것. 들리는 것 모두가  좋은 살아있는 재료야. 그렇지만, 그게 접수되어서 자기 실력으로 자라날 수 있는  바탕, 즉, 청취력이나 통독력이 없으면, 아예 접수가  안돼. 그래서 본토에 가서도 우리나라의 학원 다니듯 어학코스 다니고, 토론 시간엔 머리만 처박고 있지. 눈 마주치면 시킬까 봐…."

 

3. 유학 간다고 다 박사 따가지고 오는 게 아니다.


  "그럼, 그래 가지고 전공 공부할 수 있나요? 다들 그래도 끝내고 오기는 하잖아요?"  "쯧쯧쯧, 순진하기는, 한참 된 통계이긴 하지만 지금으로부터 십여년전 문교부 자료에 의하면,  미국 유학생 중 박사학위 따는 비율은 10% , 독일 유학생의  경우는 3%였어. 다들 끝내는 것처럼 보이는 건 끝낸 사람들만 보이기 마련이거든, 실패한 사람들은 어딘가로 잠적해서 안보이게 되지. 그러니까, 다들 끝내는 게 아니라 아주 소수의 사람들이 박사학위까지 끝내는 거야."  "아하, 그러니까 그 원인은 바로 어학 실력이 충분하지 못해서이다?"  "그건 너무 단순한 귀결이야. 하지만 전공에 따라서는 아주 중요한 원인이 될 수 있지. 물론 어학 실력은 별로인데 성공적으로 마치는 사람도 있어. 실험 결과나 공식으로 얼마든지 보여줄 수 있는 분야  같은 경우에 가능한 얘기지. 정말, 중요한 통계는 아마 전공별 통계를 내면 나올거야. 말이 중요한 인문사회 계통만 통계를 내면 성공률은 아마 훨씬 낮아질걸?"


  "그런데 정말로 중요한 것은 그 나라 말을  잘해서 본토 교수, 조교 그리고 학생들과 전문적인  대화가 자유로워야 제대로 유학한 셈이 된다는 거야. 거기는 주입식이 아니거든. 강의내용도 진도를 나간다는 개념은 아예 없어. 교수는 그저 통렬한 자극만 가할 뿐이야. 그러면 학생들은 소개받은 자료, 책 찾아서 읽고 연구하고 세미나 시간에 서로의 의견을 교환하고 하는 과정을 통해  확실하게 자기 것으로 만들게 되지. 우리나라 사람들이 석사부터 시작한 경우를 보면, 그래서 그런지 실패율이 굉장히 높아. 석사 논문 마지막 구두 심사에서 떨어지는 경우도 드물지 않고..."
  갑자기 모두들 침묵하는 사이 K가 예의 미소를 띠며 물었다.
  "그 노하우를 쓰면 듣기, 말하기는 잘 될 것 같은데 논문같을 걸 쓰는 것에도 도움이 되나요?"


제 12 부 혓바닥이 근질거리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드디어 3단계를 가르쳐 줄 때가 되었다는걸 알았다.
  "K양 따라와. 그런 건 알다시피 투자한 자만 얻을 자격이 있으니까."  다들 의아한 눈길로 쳐다보는 걸 뒤로 하고 우리는 옆 사무실로 자리를 옮겼다.
  "이번 TOEIC 시험에서 문법 점수는 어땠어?"
  "사실, 그것 때문에 찾아 뵌 거예요. 문법이 도통 늘지 않아요. 점수를 추가할 수 있었던  건 다 청취력이 덕이었어요."
  "그럼, 지금까지 2단계까지 다 해 본 테이프가 몇 개지?"  "다섯 개 했어요."
  "종류가 어떤 거였어? 전부 TOEIC 테이프?"
  "네."
  "흐음, 약간의 문제가 있군. 그렇지만 그래도 3단계로 넘어갈 수는 있겠어."  "좋아. 그럼 지금부터 잘 받아 적어 봐."

 

1. 제3단계의 7가지 요령


  첫째, 테이프 받아적기 한 것 중에서 모르는 단어를 영영사전으로 찾는다.


  둘째, 해설과 예문을 적고 거기서 모르는 단어가 있으면, 다시 그 단어를 찾는다.


  셋째, 모르는 단어가 나오지 않을 때까지 계속 찾는다.


  넷째, 약 한시간 정도 찾은 후 사전찾기를 중단하고 찾아놓은 것을 큰소리로 낭독한다.


  다섯째, 찾은 것을 한 시간 정도 낭독한 후 종료한다.


  여섯째, 일주일에 하루는 작업을 완전히 쉰다.


  일곱째, 테이프의  전체 내용을  다 받아쓰고  그  내용이 체화될  때까지 큰  소리로 낭독하는  것과, 본문과 단어의 뜻풀이에 나온 모르는 단어를 다 찾아서 그 해설과  예문이 완전히 체화  될 때까지 낭독하는 것을 완성하면 끝난다.


  "그럼, 두 시간 내내 한 단어도 제대로 못찾고 마는 경우도 생기겠네요?"  "역시 빠르군. 초장에는 그런 경우가 비일비재하지. 그런데 계속  찾다보면 무슨 단어를 처음에 찾고자 했는지조차 불분명해져. 결국 그 첫번째 단어는 단지 첫 단추일 뿐이야."  "무엇을 위한 첫 단추인가요?"
  "영어의 가장 기본적인 어휘 저장소로 가는 출발점이라는 얘기야. 자, 생각해 보자. 우리가 모르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으려고 할 때, 우리말이든 외국어든 무엇을 기대하지? 쉽게 이해가 되도록 설명이 잘 되어 있기를 바라잖아. 그래서 거기에 맞춰 모든 사전의 해설은 가장 기본적인 어휘로 구성되어 있지."  "그렇게 해서 가장 기본적인 어휘부터 습득하게 되면, 그 다음부터는 쉽게 다른 어휘에 접근할 수 있겠군요. 정말 굉장히 논리적이네요."
  "그것말고도 이 방법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게 또 있지 그게 뭘까?"  "글쎄요. 흔히 쓰는 문장의 형태 같은 것?"


  "비슷했어. 구체적으로 말하면 '설명체' 라는 문장  형태를 아주 잘 알게 돼.  뭔가를 설명하고자 할 때 말을 잘하느냐 못 하느냐를 극명하게 알게 되는 경우가 많잖아. 그런데 그걸 영어로 잘 알게 될 뿐만  아니라. 그렇게 해서 기본적인 단어로 어떻게 말을 잘 풀어나갈 수 있는 지도 경험하게 되는 거지. 그 경험은 당장 영어를 쓰는 실제 상황이 벌어지면 굉장히  유용하게 쓰여. 예를 들어 미국의 어느 슈퍼에 가서 '오이'를 사려고 했더니 어디에 놓여 있는지 안 보이는 거야. 그럴 때 그곳 직원에게 오이를  영어로 모른다면 어떻게 물어볼 수 있을까? 손짓발짓이나  그림그리기를 하지 않아요 '길죽하고 겉껍데기 색은  짙은 초록색이고 속은 아주 밝은 연두색인 채소가 영어로 뭐죠?' 라고 영어로 물어보고 그 단어를 배워 위치를 안내 받을 수 있겠지.

 

그런데 익숙해지면, 뭔가 물어보고 안내를 받아야 하는 수많은 상황이 전혀 두렵지 않게 되고, 누구에게 설명을 해 주어야 할 상황도 마찬가지로 쉽게 풀어갈 수 있지 않겠어?"  "참, 너무 완벽해 보여서 믿기지가 않네요. 정말, 그렇게 될까요?"  "그럼, 사실은 중요한 능력이 하나 더 생기는데…. 이 얘기마저  해주면 더 못미더워할 것 같아서 말이야."

 

2. 살아 있는 문법 실력


  "해 주세요. 뭔데요?"
  "살아 있는 문법 실력이 덤으로 생겨."
  "살이 있는 문법이라구요. 살아 있는… 살아 있는 문법…."  "더 이상 쓰지 않거나 잘 쓰지 않는 문법이 아니라, 늘 쓰고 있는 문법이라는 뜻이야. 전치사가 어쩌구 타동사가 어쩌구 따지지 않고도 무엇이 옳은 문법인지를 저절로 알게 된다는 의미지."  "예를 들면, TOEIC 문법문제에서 사람들이 가장 골치아파 하는 부분이 틀린 부분 찾기일텐데. 그게 너무 쉬워지지 왜냐하면, 입에 문법이 익어 있어서 속으로 한 번 읽어 보면 답이 나오게 되거든."  "입에 문법이 익어 있다. 읽어보면 답이 나온다… 이건 이해가 잘 안되네요. 왜 그렇죠?"  "그건 그렇게 되니까 그렇다고밖엔 대답을 못하겠는데, 음, 운동 하나를  처음 배울 때는 그렇게 잘 안되던 폼이,M 연습을 꾸준히 하면 언젠가는 저절로 익숙해져서 잘되는 것과 대동소이한 자연적인  현상이라고 하면 납득이 갈까?"
  "…."
  "아무튼 해 봐. 해보면 첫 단계, 두 번째 단계에서 경험한 것처럼 시기한 일이 벌어질거야.  세 번째 단계를 끝내면, TOEIC 1급은 간단히 따게 될 테니까."
 
3. 혓바닥이 근질거리는 단계


  인 단계에서 벌어지는 신기한 현상은 '혓바닥이 근질거린다'고 표현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영어로 말을 하고 싶어진다는 것이다. 이 증상은 심해지면 어디 미국 사람  없나 하고 찾게 되고, 아예 미국인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는 사람들도 생긴다.
   학원에서 제공하는 미국인 직접 지도 고급  회화반에 다니는 것도 나쁘지 않다.  다만, 그곳에 나오는 학생들의 대부분이 콩글리쉬를 구사하는 경우가 보편적이므로 최상의 선택은  아니다. 만약, 어딘가에 자신을 제외한 모두가 미국인인 모임이 있다면 그곳이 가장 좋은 연습장이다.
  마땅한 연습장이 없다면, 길을 가면서 혹은 전철 안에서 떠오르는 여러 가지 생각을 영어로 표현해 보는 버릇을 들여보라.
  예를 들면, '저기 문의 왼쪽옆에 서 있는 여자는 너무 얼굴이 크군. 큰 바위 얼굴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겠는데….' '오늘은 너무 피곤해서 서 있기가 정말 힘들다. 내 앞에 앉아 있는 이 아저씨가 다음 역에서 내린다면, 얼마나 좋을까?' 등의 일상적인 느낌, 생각을 자꾸 영어로 옮겨 보는 거다. 영어의 자기화에 많은 도움이 된다.

 

  "영영사전은 어떤 게 좋아요?"
  "영영사전도 품질 차이가 꽤 나지. 일반적으로 유명한 출판사 제품이면 괜찮아. 그런데, 기왕이면 그 중에서도 예문이 많은 게 더 낫다고 볼 수 있어.  혹시 그 중에서 이런 경우에 이 단어를 써서 표현한다는 식으로 설명해 놓은 게 있다면 그게 최선이지."
  "잘 이해가 안되요. 그런 설명이 어떤건지."
  "음, 우리나라 말로 표현하자면 이런거야. 자, '현명한' 이라는 단어를 찾는다고  하자. 그러면, 대부분의 사전은 단순히 그 뜻만 밝혀놓았겠지. 뭐 '어질고 똑똑한' 정도로 말이지. 그런데 설명식 사전을  '어떤 사람이 어떤 문제나 곤란한 상황을 합리적으로 무난하게 잘 해결할 때, 그는 현명하다고 한다'는 식으로 풀이하고 있지. 분명히 있긴 있을 거야. 내가 한 번 찾아볼게. 찾아서 가르쳐 줄게."  "네 그렇게 해 주시면 대단히 고맙죠. 호호호."


  "그리고, 절대로 피해야 할 사전은 작은 사전류, 그러니까 포터블  사전 식으로 그냥 간단한 해설과 예문 하나 정도만 있는 사전과 오래된 사전이야.  자세한 설명과 예문은 사전의 기본인데 그것조차 포기한 그런 사전은 빨리 쓰레기통에 처박을수록 현명한 거지."  "그리고, 이번에도 물론 암기를 한다는 생각은 절대 금물이겠죠?"  "암, 그렇고 말고, 해보면 알겠지만, 그냥 큰소리로 낭독만해도 의외로 머릿속에 많이 남아 있게 돼. 암기한 형태와는 다르게 말이지."
  "어떻게 다를까요?"
  '음, 적용 또는 응용을 위한 준비가 끝난 모습이라고나 할까? 사전에 있는 그대로는 아니되, 찬스만  오면 바로 혓바닥 위로 올라갈 태세라고 표현할 수 있지."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요. 이 단계만 졸업하면, 영어에 굉장히 자신이 붙을 것 같아요. 우선은, 잘 들릴테고, 혓바닥도 근질거리는 데다가, 어휘력도 남부럽잖게 될 거니까…. 정말 꿈 같은 얘기네요."  "꿈, 그건 이루기 위해서 존재할 가치가 있는 거잖아. 영어도사의 꿈, 그거 그리 멀지도  않고 어렵지도 않아. 다른 꿈에 비해서 말이지. 그저 젊은 시절 한 십여년 가운데 눈 딱 감고 6개월에서 1년만 저녁시긴 또는 새벽시간의 한시간 반에서 두 시간 정도 투자하면 실현되는 우스운 꿈이지."

 

 "지금까지 영어에 투자한 시간이 얼마지? 중·고등학교6년에 대학시절 대략 2년 잡으면 8년 그리고 이번에 투자한 시간 3개월 하면 모두  8년 3개월 동안이나 영어에 뇌의 어느  한구석을 저당잡혀 지냈다는 얘기잖아? 그런데, 그 결과가 뭐야? 참담했다고 말하며, 지나친 표현일까? 암튼, 그래서 영어 잘하기가 꿈으로까지 비약한 건데 그게 고작 6개월에서 1년이면 이루어지는 것이었다니 허무하지 않니?"  "그 얘길 듣고 보니 한편으론 화도 나네요. 어쩌면, 수십년동안 영어 교육을 해 왔으면서,  분명히 문제점을 알고 있었을 텐데로 고치지 않았을까요. 이 나라는?"  "기본적으로 교육부문이 총체적 부실공사의 대표감이잖아. 교육정책이 얼마나 주먹구구이고 조령모개인지는 대학입시제도 바뀌는 역사만 봐도 확연히 드러나지. 교육을 평등하게 받을 권리의 한계는 분명히 정해져 있는데, 그래서 그 다음 단계부터는 능력대로  받을 수 있게 되는 게 이치에  맞는 건데, 이 나라의 교육정책 결정자들은 신체발육이 어떻다는 둥, 과외 열풍을  식힌다는 둥 해 가면서 그 근본적인 원칙을 아예 무시해 보리고 추첨이니, 학력고사니, 다시 수능시험이니 하는 바람에 해마다 학부모, 선생, 학생 모두 새 입시제도에 적응하느라고 바빴잖아."
  "억울해서라도 영어만은 제대로 해 봐야겠어요. 고맙습니다. 영어를 배울 기회를 줘서요."  "기회는 본인이 직접 만들었잖아. 나는 다만 좋은 길을 안내해 줬을 뿐이야. 하여간, 이번 단계 꼭 극복하고 다음 단계를 가르쳐 줄 수 있는 기회를 줘. 궁극적으로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영어 수준을  업그레이드하는 게 내 목표야. 하하하. 오우, 썰렁."

 

제 13 부꼴찌가 첫째되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사실 세 번째 단계에 다다라서야  비로소 안도감을 느낀다. 단어를 찾고 쓰고 읽고 하는 3단계의 일련의 과정을 지금까지  해 온 영어공부 스타일과  흡사하기 때문이다. ek라서 가르쳐 준 방법을 곧이곧대로 따라하지 않을 위험성도 가장 크다.
  단어를 꼬리에 꼬리를 물고 찾지 않고 그냥 다음 단어로 넘어간다든지. 낭독은 하지 않고 그냥  속으로 혹은 작은 소리로 읽은다든지 아니면 한 문장씩 외우려고 한다든지 하면서 자기 나름대로 변화를 꾀하기 쉽다. 그렇게 되면, 다시 영어를 '공부'하고 있는 것과  똑같은 상태이므로 마음이야 성취감으로 뿌듯하겠지만, 소기의 성과는 전혀 기대하기 힘들게 된다.
  이 단계는 영어로 씌어진 글을 사전없이 읽어제끼는  수준으로 가는 필수 단계다. 그리고 그 단계에서 필요한 것은 기본 어휘력과 문장 형태에 매우 익숙해지는 것이다.


  언어가 습관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도 바로 이 단계에 이르러서다. 사전의 설명을 가만히 보면, 언제나 비슷한 패턴으로 문장이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어느 새 인지하게 된다. 나중에 미국 방송의  드라마나 미국 영화를 자유자재로 듣게 되면 그들이 쓰는 문장 패턴이 몇 가지 안 된다는 것도 알게 된다.  그러니까 습관적으로 늘 쓰는 문장들로 일상 언어가 구성되어 있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 온다. 그때부터 입만 열면 영어로 말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그게 소위  말하는 ' 혓바닥이 근질거리는 현상'의 초기 단계다.
  외국어의 자유로운 구사를 가로막는 1차적 요인인 '낯설음'이 사라지기 시작하는 현상이기도 하다. 예의 그 대기업 어학 연수원에서 또 하나의 경이로운 현상이 일어났는데 그것과 이와 무관하지 않다.
  영어를 정말 굉장히 못하는 사람이 하나 있는데 그는 문법은 고사하고  아주 기초적인 발음도 잘 못했다. 주말마다 정리 시험을 쳤는데 그의 성적은 당연히 밑바닥에서  맴돌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은 어제부턴가 오후의 토론시간에 아주 적극적으로 말을 하려고 노력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결국 수료식날 가장 괄목할 만한 성장을 한 학생으로서 학생 대표 연설을 맡게 되었다. 다들 연설문을 영어로 써서 읽겠지라고 생각했지만 그는 그날 즉흥으로 무려 10분 동안 훌륭한 연설을 해 냈다. 그의 말인즉, 그날그날 배운 내용을 저녁때 테이프로 다시 듣기만 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말문이 열렸다는 것이다.

 

1. 말문이 열린다는 말의 뜻


  말문이 열린다는 말은 뇌 속에 언어적 논리체계가 형성되었다는 뜻이다. 이 체계는 언어가 익숙해지면 자동적으로 생긴다. 이제 무슨 소린지 잘 이해가 안되는 사람은  중국어를 생각해 보라. 한자는 뜻글자여서 한 글자 한 글자 다 외워야 하는 문자다. 그렇지만, 정작 중국에는 한자를 전혀 모르면서 중국말을 잘하는 사람들이 대단히 많다. 그리고 인류의 역사를 거슬러 가 보라. 처음에는  문자라는 게 아예 없는 상태에서 의사소통을 하고 살았다. 사람의 두뇌는 따로 가르쳐 주지 않아도 언어 체계를 스스로 구축할  줄 안다는 얘기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여태 그걸 무시하고 살아온 셈이다. 어쩌다 필자가 하는 얘기 같은 걸  들어도 그때뿐이고 다시 학창시절부터 해 온 구태의연한 학습 방식으로 희귀한게 이해는 했지만 정작 그대로 하지는 않는다. 어쩌면 못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우선 새로운 방법을 시도해 보려는 용기가 부족하고, 또 일단 시작한 걸 성과 있을 때까지 끌고 가려는 끈기와 의지도 모자라 보인다. 왠지 '빨리 빨리' 문화가 만든 현상일 거라는 생각이 떨칠 수  없는 부분이다. 이 문화의 뿌리는 의외로 깊이 박혀 있어서 여러 가지 부작용을 낳고 있다는 것은 새삼 논할  필요조차 없건만, 그걸 어떻게 뿌리뽑아야 할 지에 대한 논의는 한 번도 이루어지지 않은 게 우리 현실이다. 외국어 학습은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다는 걸 교육현장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이 인정하면서도 해결책 마련에 여태 소극적인 것도 결국 같은 맥락이다. 또, 어쩌면 이런  '스스로 깨치는' 방식은 지금의 세대에는 맞지 않을지도 모른다. 어릴 때부터 원하는 것을 바로바로 얻을 수  있었던 세대. 그리고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과외다 학원이다 해서 늘 누군가가 떠먹여 주는 것을 받아 먹고 깊어 생각할 필요없이 네 개 중에 정확히 한 개의 정답이 있는 시험만 치고 살아온  세대에게는, 신념을 갖고 끈기 있게 고비를 넘기다  보면 저절로 목표에 도달하는 방식을 따르라는게  지나치게 어려운 요구일지도 모른다(어쩌면  그래서 TOEIC 점수가 900점을 넘나들면서 정작 필요한 말이나 독해는 제대로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지도 모르겠다).

 

2. 수제자 TOEIC 1급을 따내다


  K는 결국 TOEIC1급을 따냈다. 그녀의 점수는 무려 925점. 이 정도의 점수는 미국에서 수년간 살다 온 사람들도 따기 힘든 것이다.
  "이번 시험칠 때는 벌써 느낌이 다르더라구요. 우선, 내가 지금 이 문제를 맞췄구나, 이  문제는 찍는다 하는 확실한 감이 왔어요. 물론, Listening은 거의 정답은 이거야 하고 썼지요. 참 신기했어요."  "모르는 단어는 거의 없었어요. 시간도 5분 정도 남았구요. 사실, 그전까지는 시간이 없어서  마구 찍은 문제가 적어도 대여섯 문항은 되었었죠. 이제서야 얘기지만…. 호호."  "혓바닥이 근질거린다는 느낌은 글쎄요 못 받은 것 같아요. 하지만,  정말 미국 사람 하나 만났으면 하는 생각이 들대요."
  "그래, 잘했어. 이제부터 무엇을 더 해야 할지는 생각해봤어?"  "제가 지금까지 TOEIC 테이프만 들었잖아요. 그래서 정작 회화에는 약할 것 같아요.  미국에서 손님이 왔는데 처음인사야 어떻게든 하겠지만, 식사할 때나 차 한잔 할 때 쓰는 가벼운 농담이나 일상 이야기 같은 걸 모르니까요."


  "그래서, 회화 테이프를 하나 시작해 볼까 해요. 중급이나  고급으로 골라서 1단계부터 3단계까지 다시 밟으면 그것도 간단히 정복할 것 같은 자신감이 생기네요."  "그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지. 회화 뿐만 아니라, 그들의  제스처, 표저으, 더 나아가서는 문화  같은 걸 충체적으로 익힐 수 있는 방법. 그리고, 지금까지의 과정보다 훨씬 재미있는 바로 네 번째 단계."  "어머, 그럼 어서 가르쳐 주셔야죠."
  "그전에 일단 한 턱 내야지. 이제부턴 단계가 올라갈 때마다 저녁 한 끼식 얻어먹을까 생각 중이야. 뭐 싫음 말고…."
  "아니에요, 아니에요. 싫을 리가 있나요."

  누군가와 같이 저녁을 먹는 일은 사회에 나온 뒤로는 그리 즐거운 일은 아니다. 언제나 뭐가  집단적인 이유가 있거나 만나서 득이 된다거나 하는 계산이 어느 정도 깔려  있어서 맛이 어땠는지도 모르고 나온 경구가 많았다. 음식점 분위기도 물론 시장판 쪽이거나 아니면 우아하기는 한데 사람들이 거기에 어울리지 않는 게 보통이었다. 그래서 그녀와의 저녁은 전에 없이  즐거웠다. 그녀의 아름다움이 새삼 돋보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그녀는 내 노하우의 결실이었으니까.

 

제 14 부 노하우 들여다보기 3

 

1. 꼬리에 꼬리를 물고 찾기

 

  이 단계에서 중요한 것은 많이 찾아  본다는 것이다. 완전히 모르는 단어 뿐만아니라,  알기는 아는 데 잘 모르는 단어, 뜻은 잘  알지만 문장 속에서 어떻게 쓰이는지는  감이 안 잡히는 단어(예를 들면,term) 들도 찾으면 좋다

  예) liquor In American English, alcoholic drink such as  whisky, vodka, and gin can be referred to as liquor. The British term is spirits.
  The room was filled with cases of liquor. a liquor store. intoxicating liquors.
 
   이렇게 찾아서 적은 뒤 모르는 단어는 밑줄을 치고 나온 순서대로 다시 찾는다.
  refer : refers, referring, referred
  1. If  you refer  to a  particular  subject or  person, you  talk about  them  or mention  them. In          his speech, he referred to a recent trip to Canada
  2. If  you refer   to someone or   something as a  particular  thing. you  use  a particular  word,          expression, or name to mention or describe them.

  term : terms, terming, termed
  1. If you talk  about something in terms  of something or  in particular terms, you  are specifying which aspect of it you are discussing  or from what point of view you  are considering it. Paris has played a dominant role in France, not just in political terms but also in economic power.


  그렇게 찾다보면 반복해서 등장하는 단어와 표현을 발견하게 되는데, 위의 예를 보면 particular라는 단어와 if절로 시작되는 문장이 그것이다.
  처음에는 영어로 된 해설이 매우 낯설고 전혀 머리에 들어오지 않겠지만, 반복되는 단어와 표현이 쌓이면 결국 어느 날 갑자기 이해가 되기 시작한다.  이런 현상은 사실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믿기는 힘들다. 그러나, 중요한 건 필자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어떤 영영사전을 고를 것인가 하는 문제도 중요하다 시중에 나와  있는 영영 사전은 고를 것인가 하는 문제도 중요하다 시중에 나와 있는 영영사전은 대부분 쓸만 한데 특히 위의 용례가 나와있는 사전(Collins Cobuild의 English Dictionary)처럼 상황설명하듯이 해설해 놓은 것이 좋다.
  단어의 뜻 자체에 대한 설명이 아니라 그것을 이렇게 사용하면 이런  뜻이 된다는 식으로 해설하고 있기 때문에 그 자체가 훌륭한 문장연습 소재가 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노릴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 날부터 단어 해설에 나오는 단어가 모두 한 번씩은 찾아본 것이라는 순간이 오면, 이 단계는 거의 막바지에 다다른 것이 된다.
  그 다음부터는 계속 큰 소리로 읽은 일만 하면 되고 대부분 그 정도해서  영어로 된 해설이 머리에 쑤욱 들어온다. 그것도 아주 명쾌한 모습으로.

 

2. 주의할 점


  이 단계에서 사람들이 겪게 되는 가장 큰 갈등은 과연 이렇게 해서 단어 하나라도 제대로 의미를 알게 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다.
  도대체 제대로 깨우친 단어 하나 없이 계속 사전을 뒤져서 적고 큰소리로 읽고 하는 작업을 해야 하니 어쩌면 당연한 의구심이다. 그러나, 다시 한번 이 노하우의 근본적으로 돌아가 보자. 그것은 아기가  언어를 접하고 익히는 방법과 원칙적으로 갈아야 한다는  것이다. 알든 모르든 일단 들어오는 대로 접수하여 저장하다보면 어느새 깨우치게 되는 것, 이것을 저버리고 싶은 유혹은 시간이 가면서 굉장히 강렬해진다.
영한사전 한 번만 펼쳐보면 간단히 고민이 해결될 것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는 영원히 영어-한국어-영어라는 연결고리를 끊지 못한다. 그리고 그 방법은 이 노하우에 비해 궁극적으로 지극히 비효율적이다. 왜냐하면, 영어단어 하나에 대한 의미만 알게 되기 때문이다. 시간이 많이 걸리더라도 영영사전으로 단어 찾는 것을 결코 포기해서는 안된다.

  노트 한 권을 꼬박 채우건 혹은 두세 달이 걸리건 간에 결국 어느  날 단어의 의미뿐만 아니라 설명문 만드는 기술까지 송두리채 습득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문법도 자동으로 터득된다.
문법이란 바로 문장을 만드는 합의된 규칙이고, 그것은 문장에 익숙해지면 저절로 아게 되기 때문이다.

 

3. 이렇게 달라진다.


  세 번째 단계가 완성되면 사람들은 더 이상 사전을 찾을 필요성을 느끼지 않게 된다. 풍부한  어휘력을 갖추게 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어휘의 쓰임새도 잘 알고  있으므로, 문자 구성력과 구사력마저 터득하게 되는 셈이다. 결국 영영사전으로 어휘를 알게되면 저절로 영문을 깨우치게 된다.

 

제 15 부 오디오와 비디오가 만나다

 

1. 네번째 단계의 4가지 요령


  첫째, 비디오 테이프를 하나 구한다.


  둘째, 이어폰을 끼고 매일 한 번씩 본다.


  셋째, Listening이 완벽해지면, 받아쓰기를 하고 낭독한다.


  넷째, 모르는 단어를 영영사전으로 찾고 낭독한다.


  "네번째 단계에서 드디어 오디오와 비디오가 만나지.

 

 K는 이제 두 매체를 통합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거든."
  "아하, 정말 훨씬 재밌겠네요."
  "방에 비디오는 있니?"
  "물론이죠. 그럴 줄 알고 하나 장만했죠. 호호호."
  "이어폰까지 있으면 금상첨환데….?"
  "있어요. 그러니깐 이어폰을 끼고 화면을 보면서 하는 거군요."  "그렇지. 자, 우선 비디오 테이프를 하나 구하는 거야."  "무슨 테이프를 구하나요? 영어 학습 교재 중에서 고르나요?"  "그것도 괜찮긴 한데 그것보다는 영화가 좋아. 그대신 자막이 나오지 않는 것으로 선택해야 해."  "자막이 나오지 않는 테이프가 없잖아요.?"
 "정 못 구하면 자막 나오는아랫 부분과  오른쪽 부분을 가려야겠지. 아니면, TV 명화극장  할 때 TV에 음성다중 기능이 있으면 영어로 녹화하면 되는데…. 그런 기능 있는 TV니?"  "네, 그러면 되겠네요. 그런데, 아무 영화나 녹화하면 되나요?"  "하하하. 바로 그 부분이 키포인트야.  <다이 하드>나 <람보>시리즈 같은  스릴러나 폭력물은 재미야 있겠지만, 절대로 도움이 안 되는 종류지. 아 느는 게 있긴 있다. 욕이 늘지. 욕 말이야. 또 <브레이브 하트>나 <여왕 마고>같은 것도 별 도움이 안돼. 고전이라서 말을 이상하게 하지. 우리나라  사극을 생각하면 돼. 그럼 어떤 종류가 좋을까? 우선, 시대는 현재 그리고 말이 많은 영화, 장면의 전환보다는 스토리의 전환으로 영화의 진도가 나가는 영화의 진도가 나가는 영화, 문화가 바탕에  깔려 있는 영화. 뭐 그런 게 좋지."


  "그럼, <아웃 오브 아프리카> 같은 건 어때요?"
  "그런 건 괜찮아. 그래도 시대는 한 백 년 차이 날 걸? 그것보다는 'While you were sleeping'(이게 우리나라 제목으론 '당신이 잠든 동안에' 였나?) 같은 게 좋지. 아니면  <남자가 여자를 사랑할 때>,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뭐 그런 평범한 일상을  그린 영화가 무난해. 물론, <넬>이라든가, <폭로> 같은 조금은 특별한 주제를 다룬 것도 나쁘지 않아."
  "그것 중에 하나를 골라서 또 한없이 듣는 거죠? 일단은?"  "정답! 하지만 한없다는 느낌이 들 정도는 아닐걸? 금방, 다 알아듣게 돼. 그런 다음, '받아쓰기'하고 낭독하고 '단어찾기'하고 낭독하고 그런 과정을 다시 밟는 거야. 테이프 하나가 아마 일주일 남짓으로  끝날 거야. 그러면, 다음 테이프로 또 넘어가고 그걸 끝내면 다음 테이프로 넘어가고…."  "그렇게 언제까지 해야 하나요?"
  "그냥 듣기만 해도 내용의 거의 전부가 무리없이 들어올 때가지. 나중엔 그러니까 받아쓰기  할 필요성을 안 느끼게 돼. 다 들리니까. 그리고 다 이해가 되니까. 중간 중간에 흔히 쓰이는 일상 단어가 아닌 것만 가끔 찾으면 거의 백프로에 가까운 해독력을 갖게 되지. 그럼 네 번째 단계도 끝나는 거야."


2. 생선처럼 펄펄 뛰는 영어


  "그러니ㅣ까 그 과정을 통해서 아까 말씀하신 대로 문화라든가. 일상의 행위 같은 것에도 익숙해지겠네요."
  "그렇지. 그걸 통해서 책에 나오는 대로 회화하는 사람들 거의  없다는 것도 알게 되지. 영화에 나오는 대사가 가장 자연스럽고  실제에 가까운 언어라고  볼 수 있는데  예를 들면,  거기선 아무도 'How  are you?' 'I'm fine. thank you. And you?'라고 하지 않아."  "그럼. 뭐라고 하나요?"
  "굉장히 많은 버전이 있지.,  음, 예컨대, 'How's  it going? Excellent.  How about you? Is  you wife home again?' 라는 식이지."
  "듣고 보니 훨씬 실감이 나네요."
  "그런 걸 생생한 언어라고 하지. 막 잡은 생선처럼 펄펄 뛰는 표현이라고나 할까, 하하하."  "그 표현 정말 좋네요. 펄펄 뛰는, 생생하게 살아 숨쉬는 영어를 드디 익힌다. 감개가 무량해질 것 같네요."


  "그럼. 기분 쥑이지. 게다가 가 보지도 않고 그들의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역량이 생긴다는 것 또한 기분좋은 수확이야. 우리가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면서 자막으로 쫓아가는 상황은 문화를 느끼는 게 아니라 스토리를 이해하느라고 급급한 모습이지. 그래서 그렇게 많은 할리우드 영화를 보면서도 대다수의 사람들은 미국 문화를 잘 모르고 있어.
  남자와 여자가 처음 만남을 시작할 때  우리와 달리 정식으로 저녁초대를 하고  거기에 응하고 여자의 집까지 바래다 주고 여자가 차나 한잔 더 하로 가라고 집안으로 유혹해 남자의 호의에 응답하고 결국 그날밤을 같이 보내면서 정식 연인으로 출발하는 과정 같은 것은 너무나 많은 영화에 나왔건만, 꼭  집어서 얘기를 해줘야 '듣고 보니 정말 그랬던 것 같군' 하는 식이지."  "실제 삶에서도 정말 그래요?"
  "이제야 느꼈어? 그만큼 자막으로 본 영화는 원어로 그냥 들은  것과는 현실감에서 손해를 많이 본 거야. 그리고 요즈음은 자막이 너무 의역이 되어 있어서 그런 손해는 더 커질 것  같더군. '밥맛이야', '으아, 캡이다' 같은 완전 우리나라 표현까지 등장하는 판이니까."  "그런데요. 영어로 영화를 보게 되면, 나중에 미국 문화에 길들여져서 저도 걔네들처럼 그렇게 살게 될 위험은 없을까요?"
  "위험? 위험이라는 단어를 썼단 말이지. 음,  역시 심각하군. 그런 건 위험이 아니라.  가능성 정도겠지.
그리고 K가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건 그런 삶의  모습에 조금은 두려운 마음을 갖고 있다는 의미도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아니면, 전에 말씀하신 것처럼 국수주의에 저도 어느새 고질적으로 물들어 있는지도 모르군요."
  "어쩌면 둘 다겠지. 그리고 그런 생각의 저  밑바닥에는 우리나라 문화에 대한 경시도 깔려 있다는  걸 아니? 우리나라 문화는 그들의 것보다 상대적으로 저급해서 결국은 잡아먹히고  말 것 같은 위기감이 또한 그 껍데기일테지."


  영어 이전에 인간이 돼야 한다.

  어느 나라의 언어를 잘하기 위해서는 그 나라의 문화를 잘 이해하는 것이 필수요건이다. 클린턴이나 빌 게이츠의 미국, 자유의 여신상과 금문교가 상징하는 미국 정도의 단편적이고 센세이셔널한 이해로는 영어에 녹아 있는 삶의 모습을 알 수가 없다. 조금 자세한 정보를 안다고 해도 그것 역시 영어 실력의 발전에 별 도움이 안된다. 어떤 경우에는 오히려 방해가된다.
  처음 미국을 방문했을 때 단체 관광객을 주로 안내하는 안내자가 동행했었는데, 그는 미국 생활이 이미 20년이 다 되어가는데도, 미국의 문화를 완전히 한국의 사회적 규범에 맞추어 해석하고 있었다.
  성문화가 개방되어 있어서 남녀 관계가 문란하고  따라서 이혼율도 대단히 높고 그  결과로 결손 가정 출신이 많아서 청소년 문제가 사회의 기본틀을 위협하고 있고 게다가 흑인  차별 문제도 아직 해결이 안 돼 있다.


  미국은 알고 보면 몸의 여러 군데에 '중병이 든 거대한 공룡'이라는 것이 그의 미국에  대한 총체적 견해였다. 우리나라가 얼마나 좋은지 모르며, 지난번 LA 폭동 때 자신의 가게가 당하지만 않았어도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며 마지막 멘트로 조국을 사랑하고 하였는데 나는 그 얘기를 들으며 가슴 한켠이 서늘해오는 걸 느꼈다. 이런 병적 민족주의 혹은 국수주의에 빠진 시각으로 다른 나라를 보기 시작하면  사실 대책이 없다. 그 나라에서 줄기차게 살고 있으면서도 그렇게 될 진대. 우리나라에서 아무리 좋은 비디오를 본 들 무슨 소용이랴.
  한 나라와 한 민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언어 이전에 우리와 '다름'을 소화낼 수 있는 인생의 기본적인 깊이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흥미 본위로 포장된 에피소드나, 이상한 민족주의에 빠진 사람들이 퍼뜨리는 잘못된 정보에 넘어가지 않는다.


  정작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들이 아침에 일어나서 뭐라고 중얼거리며, 회사에서 무슨 대화를 나누는지 회의는 어떻게 하며 점심은 도시락을 까 먹는지 나가서 사  먹는지 아니면 구내식당을 가는지와 같은 시시콜콜한 삶의 편린이다. 그것들을 꼼꼼히 주워 모아서 그걸 통해 그 세상을 보면 그들의 일상적인  모습을 많이 꿰뚫어 볼 수 있다. 그들도 우리와 여러 가지 면에서 비슷한 사고를 하고 행동을 한다는  것만 알게 되어도 반은 성공이다.
  선진국에서도 밤에 아무도 없으면 횡단보도의 녹색불을 잘 어긴다는 것. 남녀간 첫만남의 어색함과 떨림, 자식에 대한 부모의 높은 기대.  도시의 딜레탕트적 문화와 농촌의 정감어린 이웃  등등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여러 가지 모습을 접하고 나면 비로소 그들의 다른 점이 이해되기 시작한다. 잘보면그게  어쩌면 본질적으로 다른 게 아니고 보다 솔직하고 직접적인 삶의 행동 양태와 아닌 것과의 차이라고도 볼 수 있다.


  성의 개방 문제만해도 그러다. 우리나라가 이혼율도 낮고 성범죄도 적어서 겉으로는 견실한 가정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느 여성 단체가 최근에 언급했듯이 우리나라 도시 남자들의 혼외  정사 빈도는 어쩌면 선진국을 능가할지도 모른다.
  차라리 그들처럼 살다가 싫증나면 사랑이 식었노라고,  그래서 다른 여자에게 가겠노라고 말하는  것이 우리나라처럼 그후 수십 년을 체념 반, 위선 반으로 살아가는 것보단 더 현명하게 인생의 행복을  추구하는 방식이라고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아무튼 이러한 문화의 이해가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영어 실력은 일취월장한다. 비디오를 보면서  감정 이입이 시나브로 일어나는 시점에서 이 네 번째 단계는 완성되는 것이다.

 

제 16 부 영화를 보면 문화가 이해된다.

 

  영화를 보고 영화의 배경이 된 나라의 문화를  알아본다는 일이 말처럼 쉽지는 않다. 영화의 스토리를 쫓아가다 보면 주의력이 흩어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장면 하나하나에 녹아 있는 삶의 형태는 대체로 매우 자연스럽게 처리되어 있으므로 특별히 재미있는 장면이 아니면 기억에 남지 않는다.  예를 들면, 꼬마 아들이 양치질을 하는  사이 아빠는 아들의 키 너머로 거울을 보며 면도를 하는 장면 같은 것이 그렇다.
  그 그림 자체의 코믹함과 따스함으로 말미암아 그 장면이 나온 영화의 제목은 잊었어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게 된다. 그밖에 여자와 남자가 번개같이  정사를 나누고 다시 바로 안경을  tm고 남은 일을 하는 장면, 해고를 할 때는 하는 언행, 심문하는 장면 같은 것이 기억을 붙잡는 보기들이다.
  그런데 바로 이런 장면들이 우리와 어쨌든 다른 문화의 일면을 눈치챌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한다.  아빠와 아들의 화장실 장면은 그들의 격의없는 부자지간을, 오래된 연인사이의 번개 정사와 같은 일은 일상화, 보편화된 섹스 라이프를 알게 해 주는 단초다. 그러나 그런 걸 비디오를 보면서 분석,  정리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저절로 되기 때문에…."


  같은 비디오를 반복해서 보다 보면 이제는 아주 평범한 모습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주로 침대는 방 중앙에 놓여 있고, 침대 옆에 으레 콘솔과 스탠드가 놓여 있으며 야밤에 걸려 오는 전화는 침대  머리를 기준으로 왼쪽켠에 놓여 있는데 주로 여자가 깨면서 받으며, 부엌의 조리대는 벼을 향하지 않고  식탁이 놓여 있는 쪽을 향해 있어서 그곳에 나의 앉은 식구들과 얼굴을 봐  가며 대화가 가능하다는 등의 자연스런 미국 사람들의 생활 형태가 보인다.
  실내에서도 신발을 신고 다니고, 트레이닝복, 헐렁 바지, 잠옷바람 등의 '아무렇게나' 차림새는  하지 않으며, 파티나 저녁식사 초대 같은 곳에 갈 때는 머리 감고 샤워하고 면도하는 등의 몸단장을 한 번 더 한다든지 하는 것들이 그 다음단계로 들어온다. 어린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노는 동안 엄마는 그곳 벤치에 앉아 책을 읽으며 유사시 사고에 대비한다든지 하는 모습은 한참 걸려야 입력이 되고 그쯤 되면 슬슬 문화로 확대 해석해 보는 발상이 시작된다.

 

1. 러브 스토리의 충격


  나에게 미국 문화의 충격을 처음으로 안겨 주었던 영화는 <러브 스토리>이다. 그 영화를 볼 때쯤 나는 한창 여인들과의 가슴 떨리는 만남을 경험하고 있었다.
  올리버와 제인이 서로 만나게 되고 연인으로 발전하는 것까지는 내  경험과 거의 같았으므로 거기까지는 감정 이입이 일어났는데 난데없이 이들이 잠자리를 같이하기 시작한 것에서 경험의 괴리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아, 쟤네들은 아무런 고민도 하지 않고 그냥 같이 자는 구나!'  그 당시 우리나라 대학 문화는 '함께 잤다면 남자가 책임을 지는 게 당연하며, 그 방법은  결혼이다. 남자가 책임을 못 지겠다고 하는 순간, 여자는 비련의 주인공이 되고 그 남자는 천하의 나쁜놈이 되어서 지인들의 지탄을 받고 결국 스스로도 불행해 질 수밖에 없다' 는 등식이 보편적인 수준이었고, 일반 문화는 그보다 훨씬 더했다.
  그 다음에는 미국 문화를 새겨보게 만든 영화는 <사관과 신사>였다. 장교가 되기 위해서 훈련을  받는 사관후보생들의 주말 파티에 동네 처녀들이 함께 어울리고 그리하여 훈련 기간 내내 사귀고 하는 일련의 형태가 장교훈련을 받아 본 나의 눈에는 경악할 만한 일이었다.
  내가 사관후보생이었을 때는 3개월 내내 거의 상거지였다. 파티? 마지막 달에 외출 한번 나갔다 온  게 다였다. 물론, 그 몇 시간의 외출을 마치고 돌아와서는 묻히고 온 커피물을 뺀다고 또다시 밤새도록 고초를 겪게 했었다.
 
  그 후 그들 일반 미국인들의 삶을 제대로 이해하게 되는데는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독일 생활이 없었다면 아마 더 오래 걸렸을 것이다. 미국인의 삶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된 것도 역시 영어로 된 영화를 많이 보면서였다. 자막으로 전달되는 메시지와 배우들의 행위만 보아서는 결코  알 수 없는 행위의 바탕, 그러니까 철학과 인생관 같은 것을 나는 그들의 대사를 알아듣게 되면서 경험했다.
  그들은 '아무렇게나' 함께 잠을 자는 것이 아니었고, 그들 나름대로 역사와 전통에 따른 행동 기준이 있었다. 끈끈한 혈연, 지연 같은 것은 없지만, 그 못지 않은 이웃간의 정, 직장 동료간의 사랑이 있다는  것, 부모 자식간이 우리처럼 질기지는 않지만 더 성숙한 어른을 만들기  위한 교육적 배려차원의 거리두기라는 심증이 간다는 것, 그렇게 빈번히 만나고 헤어지지만 생에 대한 진지한 고민의 결과여서 결국은  친구로 남기 십상이라는 것 등 메시지를 도처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여기까지 읽은 사람들 중에서 분명히 이렇게 말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미국 영화는 자신들의 실제 삶을 상당히 미화시켜 외국인들로 하여금 미국에 대한 호감을 불러일으키겠다는 의도가 숨어 있다고 하는 얘기가 있던데, 거기에 넘어가신 것 같네요" 라고.
  일고의 가치도 없는 얘기지만 한마디 하자면, 미국은 우리나라처럼 누구 하나가 이러니 이렇게 하자고 하면 아무 생각 없이 '아, 그렇구나' 하고 다들 믿고 따르는 일차원을 세상이 아니다. 벼라별 가치와 철학과 인종이 버무려져 있는 사회이고 또 바로 그것이 가장 큰 재산인 나라다. 더군다나 영화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누가 하란다고 그렇게 일사불란하게 따를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그들은 장사가 잘 될  것이라고 생각되는 영화를 만들고 찍을 뿐이다.

 

제 17 부 TV보는 데도 방법이 있다.

 

  네 번째 단계에 쓸 만한 또 하나의 소재는  AFKN이나 스타 TV에서 제공하는 드라마 시리즈이다. 주인공이 같고 비슷한 상황이 계속 반복되기 때문에 영하 비디오를 어느 정도 보고 난 뒤에는 이걸 활용하는 것도 상당히 좋은 효과가 있다. 물론, 액션이나 스릴러보다는 <월튼네 사람들>과 같은 가정 드라마가 좋다.
  거기에는 다양한 연령층이 등장하기 때문에 풍부한 일상이 있고 사연이 있다. 우리의 가정과 비슷한 문제도 나오고 전혀 다른 갈등도 경험할 수 있게  된다. 게다가 그걸 풀어나가는 방법까지 배울 수 있으나 그야말로 일석삼조요. 그런 점에서 영화보다 낫다. 일상회화를 배우기에도 더 좋다. 하지만 조금 지겹다는 게 단점이다.
  이 단계에서 어떤 사람은 이런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 '매일 CNN뉴스를 들으면 가장 최근의 영어를 알 수 있으니 가장 좋은 방법 아닐까? 게다가, 이슈도 많이 등장하니 어휘가 훨씬 풍부해질 것이다.'  일리가 있는 이야기다. 하지만, 사건 보도풍의 말투에 너무 익숙해져서  나중에 영어를 구사할 때도 리포터처럼 아니면, 앵커처럼 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 우려된다.  그리고 단문 위주로 흘러가기 때문에 숨이 긴 문장을 구사하는 훈련이 안 된다는 것도 단점이다.


  우리의 목표는 자신의 견해를 적어도 일 분 이상  구사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가장 좋은 것은 사실 토론 프로그램이다. 토크 쇼, 대담 프로 같은 것이 이에 해당된다. 일단 시작은 오프라 윈프리나 데이빗 레터맨의 토크쇼부터 하고 실력이 붙으면 본격 토론 프로그램에 도전하는 것이 순서다.
  토론 프로그램을 활용하면 '괜찮게 말하는  방법' 에 가장 직접적으로 익숙해지기  때문에 영어 습득의 목적이 그런 쪽이라면 아예 처음부터 영화 비디오 대신 그걸 쓰는 게 낫다. 그런데 이것 역시 상당히  지겹다는 것이 단점이다.
  재미도 있으면서 격조 있는 대화법을 익힐 수 있는 방법도 있다. 소위 '법정 영화' 와  '법정 드라마' 라고 불리우는 작품들을 선택하면 된다.
  논리적으로 분석하고 추리하여 결론을 설파하는 변호사나 탐정 또는 수사관의 언어구사는 대단히 교육적이다. 아마, 이런 튜의 말에 익숙해지면 웬만한 미국인들도 찬탄을 금지 못할 언어수준에 이를 것이다.

 

1. 독일의 한국 유학생들이 박사논문 쓰는 방식


  사실, 영어를 습득하는 데 있어서도 일반적인 인식의 원리. 즉, 고차원을 알면 저차원은 저절로  해득이 되는 이치가 적용된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어려운 것에 도전해서 성공하면, 그것보다 쉬운 것은 거저  얻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내가 독일 유학 초기에 습득한 독일어는  '고급 독일어' 였다. 강의와 토론에 적합한 언어였기 때문에 일상 회화와는 상당히 거리가 있었다. 그런데 그게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르러 별 불편을 느끼지 않게 되자 일상회화가 들리는 대로 머릿속으로 들어와 내것이 되는 현상이 일어났다. 그  반대의 이치. 즉, 저차원에 익숙한 사람이 고차원을 저절로 깨치는 법은 없다는 것도 예외없이 적용된다.
 독일에서 우리나라 방식으로 독일어를 공부한  사람들이 가지는 특징은 회화는 어느  정도 되는데 고급 독일어는 여전히 어눌하다는 것이었다. 독일 유학생들이 다니는 어학코스 수준이 통상 중학교 졸업 정도라니까 아마 그 정도 또는 그에 약간 못 미치는 수준으로 독일어를 배우고 마니까 그런 것 같았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그들은 자신이 쓴 논문을 고쳐 주는 독일  학생 하나를 보유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초벌 작업은 직접 하고 재벌 작업은 독일애를 시켜서 제출하는 방식이었는데 모드들 당연하다고 여겼다. 문장 면에서는 논문이 완전 독일식으로 작성되어 좋겠지만, 그래봤자 결국 마지막 디펜스는 본인이 직접 해야 할 테니 문제가 있는 방법인 것 같았는데 과거부터 계속 그런 방식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고들 하면서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게다가 교정을 봐 주는 독일애가 대부분 같은 전공이었으니, 냉철하게 말해서 자신만의 논문이라고 할 수도 없는 방법이었다 나의 우려는 현실로 나타났다. 박사 논문 마지막 디펜스에서 걸려 낙방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 생겼고, 통과되어도 조건이  붙었다. 마지막 디펜스 제도는 원래 취지가  본인이 직접 썼는지 여부를 가리는 관문인지라 말을 잘 못하면 아무리 논문의 전개가 좋아도 일단 의심을 받기 십상이다.


  질문에 제대로 대답을 못하면, 심사교수들은 독일인 특유의 집요함으로 끝까지 물로 늘어지기 시작하고 그러면 대충 상황은 최악의 상태를 향하여 치닫게 된다. 더듬고, 못 알아들어서 재방송 부탁하고, 식은 땀이 줄줄 흐르고 그리하여 말은 아예 떠오르지도 않게 되어 '그야마로 신세를 망친다.' 게다가 이들은 대부분 자신의 논문에 대한 예상질문과 해답을 달달 외워 가기 때문에 중간에 초점이 한 번 비틀어지면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못한다.
  그런 사건이 종종 인구에 회자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지일관 나쁜  방법을 쓰고 있는 우리나라 유학생들의 모습이 독일 생활 내내 참으로 안타까웠다. 거기서 떨어지면 논문을 다른 주제로 완전히 새로 써야 한다. 다시 말하면, 유학을 처음부터 다시 하는 것과 진배없다.

 

2. 영어 자동처장 체질


  네 번째 단계에서 나타나는 재미있는 현상이 하나 있다. 상대방의 영어 수준이나 스타일에 자신의 영어가 따라가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되는 것이다. 대화 상대방이 말을 빨리 하는 스타일이면 어느 새  자신도 말을 빨리 하고 있다. 또한 또박또박 분명한 발음으로 말을 하는 상대방에게는 저절로 천천히  분명한 발음을 하려고 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런 상태를 느끼면 이렇게 생각하면 되다.
  '나도 드디어 영어를 자동 저장할 수 있는 체질을 갖췄구나.'  자동으로 저장되는 것은 말투만이 아니다 어휘, 문장 패턴까지 다 들어온다. 귀로 듣고, 눈으로 보는 거의 모든 영어가 부드럽게 자기 것이 된다. '아, 저런 상황에서는 저런 표현을 쓰는군' 이라고 느끼는 순간 그대로 입력이 되는 이런 상황은 믿을 수 없는 환상 같은 이야기가 결코 아니다.


  '언어 습관 전이' 라고 이름 붙일 만한 이 현상은 사실 평소에 한국어에서도 나타난다. 누군가  말을 재미있게 하는 사람이 있는 사무실은 나중에 보면 거의 모두 그 말투에 전염되어 있다.   

제 18 부 못 알아듣겠더니 어느새 코끝이 찡해져

  한달여가 지나 다시 K가 찾아왔다. 방극 웃는 모습에서 나는 이미 그너의 발전을 짐작했다.
  "안녕하셨어요? 별일 없으시죠? 요즘도 바쁘세요?"
한꺼번에 세 개의 질문을 던지는 그녀는 내가 꽤나 반가운 눈치였다.
  "어때, 요즘 You의 잉글리쉬는? 많이 컸겠군?"
  "말도 마세요. 너무 많이 커서 이젠 컨트롤이 아되요."  그녀는 첫 비디오 테이프로 <당신이 잠든 동안에>를 선택했단다.
  "자, 소감 한마디 해 봐."
  "정말 신기하대요. 처음에는 정말 잘 못알아듣겠더라구요. 말도 굉장히 빠른 것 같았고,  발음도 분명치 않아서 당황스러웠어요. 여자들이 대체로 말을 분명하게 하더라구요. 남자들은  왜 그렇게 발음을 불분명하게 하는 지 원. 그러고 보니 우리나라 사람들도 여자들 발음이 훨씬 분명한 것 같더라구요."  "테이프로 듣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어요. 말을 하는 사람의 모습과 말투와 생생한 상황. 그야말로 살아 있는 영어를 익힌다는 느낌이 들었죠. 나중에는 정말 화면만 보면  말이 떠올랐어요. 어떤 대사는 지금도 귀에 생생해요. 장면과 함께 말이요."
  "그 영화를 영화관에서 봤을 때는 별 감동이 없었어요. 그냥 '흔한 할리우드식  해피엔딩 가정영화구나' 하는 정도였죠. 그런데, 영어로 처음 들은 날, 코끝이 찡하대요. 눈물도 조금 나려고 하구…. 그러더니, 두 번 세 번 박복되면서 제가 주인공이 되어 버리는 현상이 점점  강해지고 나중에는 표정까지 훙내내고 있더라구요. 샌드라 브럭의 표정 연기가 꽤 귀엽잖아요."


1. You라는 말은 내가 제대로 알았던가


  "문화적인 면에서 뭔가 느낀 것은 없었니?"
  "아 정말 많은 걸 느꼈어요. 먼저, You라는 말에 제가 사실은 익숙하지 않았어요. 애한테나 어른한테나 그저 유, 유하면서 말을 시작하는 게 낯설었다고나 할까요. 그런데 그게 이번엔 완전히 없어진 것 같아요.
샌드라의 말투를 보니까 You가 문제가 아니고  어조와 태도랄까요. 그게 그들 나름의 어른  대접 같았어요.
  그리고 생전 듣고 보도 못한 약혼녀를 그대로 인정하는  분위기 같은 거 참 좋아 보였고, 직업과  사는 수준이 별 상곤이 없어 보이는 것도 부러웠어요 박사님은 뭘 느끼셨나요? 이 영화 보셨죠?"  "응. 그 영화에서 가장 오랫동안 기억에 남은 장면이 여주인공이 그 이웃의 조금 모자라는 총각을 따뜻하게 안아 주는 모습이었어. 사랑하는 사람은 가슴으로 안아 주고 불쌍한 사람은 머리를 안아 주는  건가 하는 생각도 했었지 그걸 보면서…. 그리고 이 영화에서도 역시 주인공은 진실의 힘에 굴복하지. 이런 설정이야 할리우드 영화에 온통 널려 있긴 한데. 그게 미국의 전통이기도 하잖아. 거짓말을 한 게 사실이라면 대통령직을 내놓아야 하는 나라이니까. 그리고  형과 동생이 한 여자를 사이에  두는 플롯이 <가을의 전설>에 이어 똑같이 등장하지만 여기선 참 따스하지. <가을의 전설>에선 참 스산했는데…. 뭐  그런 것들이 우리나라 문화권에선 보기 어려운 것이었던 것 같아. 그래서 기억에 남아 잇어."  "남자 주인공의 가정이 매운 인상적이었어요. 미국에도 그렇게 대가족이 같이 사는 경우가 있는 모양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가정이 흔하지는 않지만, 있긴 있는 모양이야. 혼자 사는  여자와 다같이 사는 남자의 집에 서로 대비되는 구성이 이 영화의 주요 배경이지. 혼자  잘살고 있긴 하지만 외로움이 언제나 그림자처럼 달려 있는 여자가 우연찮은 사건에 휘말려 한 남자의 따뜻한  가정 속에 잠시 편입이 되고, 그 따스함을  잃게 될까 봐 진실을 발깋지 않으면서 사건은 의외의 방향으로 전개되고….  만만찮은 구성이야. 그런데 난 그것보다 이 영화 속에 표현된 우리나라 사회와 다른 면이 더 마음에 와 닿더군. "  "그게 어떤 거죠?"
  "우리가 서구문화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보는 면 중에 하나가 '개인주의'일 거야. '너무 개인주의가 만연되어서 집단은 없고 개인의 가치만 너무 올라가 있다' 라는 게 일반적인 통념인데 내 느낌으로는 그게 웬지 잘못된 표현 같았거든.


  이 영화를 보면 남자 주인공의 가족이 분명히 모여 살기는 하지만 두 형제의 삶에 별로 개입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아. 그런가 하면 여자 주인공의 직업이나 집안에 대해서 남자  쪽이 시비를 걸지도 않지. 개인주의 성향 때문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이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사람들에 대한 관심을 버리지 않고 있다는 점이 여러 군데에서 보여, 여자 주인공과 직장 동료와의 관계, 가족 구성원간의 애정, 어느 간호원의  배려 등등 단순히 개인주의로 몰아붙일 수 없는 모습들이지.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그저 사랑하는 남녀가 맺어지게 된 것에 다들  기뻐하는 마지막 장면을 보면 '그래 저렇게 밀어 주고 기뻐해 주는 게 행복해지는 길이지' 하는 생각이 들잖아."  "'개인주의' 라는 것의 바탕이 개개인에 대한  존중이고 또, 그 바탕이 인간 존재의  존엄성 인정이라는 전제에 승복한다면,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집단이나 조직의 가치가 한 인간의 가치에 우선하고 있다고 볼 수 있지. 따라서 크게 보아 민주주의의 기초가 아직 안 되어 있다고 할 수 있지.


  이 영화 속의 사건이 우리나라에서 일어났다면 일단 그 여자주인공은 병원에서 이미 그 가족들에게 수모를 당했을 거야. 집안에서 모르게 약혼을 했다는 것 자체에 그 가족들은 분개하면서 그 여자를  아무렇게나 몸을 굴리는 막되먹은 것 정도로 치부하였을 테고…. 다음  단계야 뻔하지. 남자가 깨어나기도 전에 모든 상황은 종료되고 남자에게는 미스터리만 남겠지. '웬 여자가 널  구해 주었다면서 네 약혼녀라고 주장하다가 사라졌다.'"

 

2. 한국에선 여자가 남자보다 빨리 철들어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이 영화의 스토리를 그대로 한국으로 옮기면 많은 부분이 말이  안 된다는 소릴 듣겠네요. 앞부분도 그렇지만, 음…. 정말 그렇겠네요. 굉장히 많은 부분은 말이 안 되네요. 생각하면 할수록 점점 기분이 이상해지는데요. 조금 섬뜩하기도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정이입이 일어나서 영화에 푹 빠져들게 되는 이유는 뭘까?"  "글쎄요. 잘 모르겠어요."
  "잘 짜여진 플롯과 잠재운 욕구 자극 때문이 아닐까? 우리나라 사회에서는 아직 그럴 수  없지만, 마음속으로는 바라고 있는 상황은 벌어지니까  끌려들게 되는 것일지도 몰라. 음,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아마 가장 하고 실은 것 중에 하나가 부모로부터의 '독립'일 거야. 또, 자유로운 연애. 둘만의  사랑이면 결혼의 필요충분 조건이 다 되는 상황 같은 것. 그런게 우리나라에서도 가능했으면 좋겠다고 다들 언젠가 한  번쯤은 생각해 봤을 테니까."


  "독립이라…. 전 현재 독립되어 있는 상황이나 마찬가지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좋은 줄은 모르겠어요."  "엄밀하게 따져서 반만 독립이지. 재정적으로는 독립했을지 몰라도, 기숙사에 있으니까 정식으로 이 사회의 독립된 인격체로 살고 있지는 않아. 자취나 전세를 하고  있다면 문제가 달라지지. 주인집하고의 관계가 당장 생기고, 각종 공공 요금도 직접 내야 하고, 살림도 꾸려야 하고, 그러다가 어느 날 동네 총각이 연애하자고 접근할 수도 있고…. 그런데 정작 문제는 정신적으로 독립되어 있지 않다는 거야. 우리나라에서 어느 누가 고아가 아닌 다음에야 자기 마음대로 약혼할 수 있겠니? 물론, 요새 자기들끼리 약혼 여행도 간다지만, 당연히 부모한테는 비밀이잖아?"


  "'내 인생은 나의 것' 이라고 주장해야 한다는 뜻인가요?"  "그것보다는 '너희들 인생은 너희들 거야' 라고 부모가 해 주는 게 먼저겠지. 그런데 그게  그리 간단치 않아. 우리나라 젊은이들은 정상적인 교육과정을 밟아서 커 온 사람들일수록, 철이 덜 들어 있어.  독립된 인격체 대우를 받을 만큼 정신적으로 성숙해 있지 않다는 거야. 요즈음 들어서는 라디오 MC나 TV 진행자들의 말투에도 아예 어리광이 섞여 있더군. 그런 점에서 볼 때 5공에서부터 시작된 교육제도의 개혁이 온 국민의 정신연령을 총체적으로 낮추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것 같아. 우리 주위를 둘러 봐. 신체 연령는 30대인데 생각하는 수준은 10대 정도밖에 안 되는 인간들이 얼마나 많니?"
  그녀는 고개를 내내 끄덕이며 내 열변에 들었다. 하긴 내게 이런 얘기를 들은 대부분은 여자들이  공감을 표시했었다. 남자들 중에는 괜히 '그게 아니고' 하면서 반발하는 사람이 가끔 있었는데 여자들  중에선 아직 없었다.
  여자들 중에 철 든 사람들이 더 많아서 이거나, 여자들은 본질적으로 철이 들어 있는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알 수 없는 일이다.
  아무튼 아직도 남성위주의 사회 풍조가 만연한 우리나라에서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더 빨리 철이 든다는 게 내 생각이다.

 

제 19 부 영어가 술술 되다

 

  말없이 생각에 잠겨 커피를 홀짝이는 그녀를 보다가 나는 갑자기 그녀를 시험해 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내 생각으로 이미 두 번째 테이프도 끝냈을 것 같은데, 어때?" 하고 영어로 물었다.
  "맞아요. 어제 두 번째 테이프를 막 끝냈어요."
  그녀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주루룩 영어로 말했다. 그러더니, "어머" 하고는 손으로 입을 가리고웃었다. 발음과 인토네이션이 거의 완벽했다.
  "놀랍도다. 그대는 정녕 내 수제자로다."
  "정말, 말이 혀에 붙어서 나오네요. 아까 말한 게 사실 처음인데…."  "그래? 그렇다고, 지금부터 영어로 한 번 대화를 해 볼까?"  우리는 무려 세 시간에 걸쳐서 영어로 대화를 했다. 그녀의 발음과 문장력은 나보다 오히려 좋았다. 수많은 주제로 이야기를 하는 동안 나는 그녀의 몸에 배어 있는 많은 제스처와 표정을 보았다. 그리하여 그녀는 내게 맥 라이언을 연상시키기도 하고 샌드라 블록을 떠오르게 하기도 했다. 심지어 어떤 모습은  너무나 닮아서 내 눈에 착시 현상마저 일으켰다.

 

1. 아예 처음부터 비디오 테이프로 시작하면


  "네번째 단계하면서 아예 처음부터 비디오 테이프를 가지고 시작하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게 사실은 아기가 말 배우듯 한다는 원리에 더  맞는 거라고 볼 수 있지. 그런데 그렇게 첫  단계를 시작하면 문제가 생겨. 다른 인종들은 모르겠고, 우리나라 사람들의 경우에 그래."  "무슨 문제가 생기죠?"
  "지금도 잘 이해가 안 가는 일인데, 그렇게 시작하면 꼭 포기하더라구. 잘 늘지 않는다는 둥 하면서 말이지. 그래서 잘 관찰해보니까 일단 장면은 흘러가니까  통박으로 내용을 가늠해 보려는 노력을 하는 거야. 그렇게 되면 들려오는 영어는 그냥 백뮤직과 똑같아지는 거지. 좌우지간 거의 안 들리니까 일종의 소음인 거야. 그리고 또 하나의 복병이 찾아오지. 그게 뭘까?"  "…?"
  "졸음, 그것도 무지막지한 졸음이 덮치는데 당할 재간이 없어. 내가 독일어를 못 하던 시절 강의실에서 너무 졸려 허벅지를 꼬집어, 눈꺼풀에 버팀개를 하고 별짓을 다 해본 사람이야.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가 규칙적이고 알맞은 톤으로 계속 날아오니까 그것처럼 훌륭한 자장가도 없더군."  아무튼 그렇게 며칠 졸고 나면, 비디오 테이프를 켜 놓고 자느니 다른 방법으로 하면서 안 자는 게  낫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거지. 그래서 포기하는 거야.

 

2. 남자가 말이 없는 이유


  "더 심각한 건 그들이 그 이후에는 거의 모든 독일어를 정작으로 알아들으려고 한다는 거야. 그래서 똑같은 뉴스를 봤는데도 전혀 엉뚱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  그게 강의실에선 안 통하지. 수업을 듣고 나선 숙제가 무엇이었는지 모르는 사람들은 거의 예의없는 한국인이었지."  "정말 그럴 것 같네요. 그러니까 귀가 안 뚫렸는데 화면을 같이 보면 시각적 정보만 가지고  이해를 해 보려는 시도를 피할 수 없다는 얘기네요. 아기와는 다른 점이군요."  "아기들도 똑같은 과정을 밟을지도 몰라.  다만, 고 녀석들은 어른들 같은  지능이 없기 때문에 통박을 거의 못 굴린다고 봐야지. 그냥 그야말로 눈에 보이고 들리는 대로 마치 비디오 카메라로 찍듯 기억 속에 찍어 놓는 거지. 그러다가 지능 발달에 따라 그  장면들이 촤르륵 돌아가면서 이해가 되는 거 아닐까 싶어. '아하, 이 말 아까 아침에도 들었는데 지금 또 하는 거 보니까 아마 맘맘 먹을 때마다 하는 소린가 보다' 하는 식으로 말이지."
  "호호호, 정말 그럴까요?"
  "나도 사실은 잘 몰라. 왠지 그럴 것 같다는 거야. 아기 낳아서 키우면서 잘 관찰해 봐. 어느 날 갑자기 제 밥 가리커면서 '맘마, 맘마' 하는 걸 보면 그런 생각이 들거야." 

 

"스스로 깨치는 능력 말이에요. 박사님이 사람의 두뇌는 그런 능력이 있기 때문에 언어의  경우도 그렇다고 하셨잖아요.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아기의 부모가 서로 많은 대화를 나누면서 사는 사람들이라면 그 아기는 남들보다 더 많은 언어 능력을 얻게 될 것 같아요.  그래서, 남편도 이왕이면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예전에는  말없이 과묵한 남자가 제 타입이었는데 바꾸기로 했어요."
  "하하하, 뭐 하나 가르쳐 줄까? 20대 혹은 30대  초반의 남자가 말이 없는 건 여자들 생각처럼  생각이 깊고 성격이 신중해서 그런 경우 굉장히 드물어. 대부분의 경우 숫기가 없거나. 생각이 없거나. 읽은 책이 적어서 할말이 없거나 아니면 아주 심한 경우, 여자를 보면 이상한 생각밖에 안 떠올라서 그래."  "정말요? 에이 설마."

 

제 20 부 토론이 되야 외국어도 잘한다.

 

  "수필가 피천득 씨 알지? 그가 쓴 책에 보면 이런  말이 나와. '화제의 빈곤은 지식의 빈곤, 감정의 빈곤을 의미하는 것이요. 말솜씨가 없다는 것은 그 원인이 불투명한 사고방식에 있다.' '침묵은 말의 준비기간이요. 쉬는 기간이요. 바보들이 체면을 유지하는 기간이다.'"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렇지만 '남자는 입이 무거워야 한다' 라는 말도 있잖아요."  "글세. 그게 요즘 세상엔 안 맞는 말이 아닐까? 우리나라 역사를 보면 말 한번 잘못해서 패가망신한 집안이 꽤 나오지만, 그게 사실 소신을  펴다가 그렇게 된 거라면 시대가 문제였던  거라고 봐야지. 현대에 들어와서는 유신 시절에 정부 비방하다가 온 집안이 망했다는 말들이  무성했었으니까 그런 얘기가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었겠지만, 요즈음 아니라고 봐야지.
  피천득 씨가 그 옛날에 또 뭐라고 했냐 하면, 말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이 지도자가 되는 나라는  후진국밖에 없다는 거야. 소크라테스, 프라톤, 공자 같은 사람이 성인이 된 것도 말로 그들의 사상을  전파할 수 있었기 때문이고, 케네디를 케네디로 만 든 것도 말을 잘할 수 있었던 덕분이라는 거지. 우리나라 대통력 중에서 역사에 길이 남을 만한 말을 한 사람이 없었다는 것과 지금 우리나라의 상황이 과거의 잘못이 누적되어 엉망으로 돌아가는 것은 어쩌면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는 일인지도 몰라."  "우리나라에서 언어를 가르칠 때 쓰고 읽는 법에만 열중하고 말하기에는  거의 신경을 쓰지 않는 것과도 어쩌면 일맥상통하는 이야기네요."


  "그렇다고 볼 수 있지. 역대 정권 중에서 국민들의 이야기를 겸허하게 들으려고 한 정권이 하나도 없었다는 것을 반영하는 사실일거야. 겉으로는 민주주의를 표방하면서 전제와 독재를 결코 버리지 못했던 사람들이 말 잘하는 국민을 반겼을 리가 없지. 그런데 그게 해외로 가면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더라구.
  독일에 있을 때 주독 한국대사관의 참사관을 만나게 되었는데, 독일어로 써 온 대사의 환영사를 대독하는 걸 들어 보니 이건 같은 한국인인 나도 못 알아듣겠더라구. 나중에 들으니까 역대 독일 대사들은 독어는 고사하고 영어도 잘 못했다. 그래서 무슨 만찬이나 리셉션에 가면 그들의 통역보다도 대접을 못  받는 일이 비일비재했다더군."
  "세상에.그 사람들 다 외교관 아니에요?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어요?"  "그게 다 언어에 대한 잘못된 편견 때문이 아닐까. 지금도 우리나라에선 말 잘하는 사람이 별로 대접을 못 받고 있지. '말만 번지르르하다', '말만 앞선다', '말만 잘하면 뭐하냐?' 하여튼 말 잘하는 거 깎아내리는 말은 참 많아. 하지만 말을 못하면 안 된다는 건 아무도 얘기하지 않지.


  우리나라 사람들이 개인적으로 다들 똑똑해서 토론이 안 된다고 하는  얘기 들어봤지? 그거 내 생각으로는 잘못된 얘기야. 다들 똑똑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의견을 조리 있게 피력할 만큼 머릿속이 정리된 사람이 드물다는 게 정답일거야. 물론, 이상한 자존심 때문에 자기보다 잘난  사람 못 봐 주는 사람들의 경우는 빼고 하는 얘기지.
  확대해석일지도 모르지만, 온 나라가 무원칙, 철학 부재의 세상으로 변해  버린 것도 바로 토론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는 풍토 때문이라고 결론을 내릴 수 있어. 어떤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고자 하는 것이 토론의 목적인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사리와 상식과 논리로 자신의 의견을 정리, 피력하지 않고 거기에다가 벼라별 양념을 다 치지. 그런 사람들이 가장 많이 쓰는 표현이 뭔지 알아? 아마 이걸 거야. '말은 맞지만, 그래도 그게 아니야.'
  검찰청 내부 소식지에 이런 글이  실렸었대. 'IMF 시대를 맞아 검찰청의  전통적인 술버릇인 폭탄주를 없애자'는 내용이었다는 데, 그게 검사들의 토론을 촉발시켰대. 그런데 그 반론이 가관이야.

 

 검사들이라고 하면, 직업상 그래도 논리 면에서는 내노라 하는 사람들이잖아. 그 주장이 뭐였느냐 하면, '그래도 전통의 가치는 중요하므로 폭탄주는 고수해야 한다.' 였대. 그야말로 폭탄주와 남대문의 가치를 혼동하고, 악습과 전통도 구별하지 못하는 한심한 사람들이 법의 수호자라니 기가 막히지 않니?   그걸 가십으로 보도한 신문 내용은 또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날 우울하게 했지. 얼론 또한 여론 형성의 막중한 책임을 진 조직이잖아. 사람들은 대개 신문의  논조는 감히 빈틈을 찾기 어려울 거라고 생각하잖아.
  그런데 그 기사 내용을 보니까. 기막히다 못해 가소롭다는 생각까지 들더라구. '이 어려운 시대에  사회 지도층인 검사들이 한가하게 그런 토론이나 벌이고 있다' 나 뭐 그런 논조였는데, 이건 마치 검사들이 모두 모여 폭탄주를 주제로 갑론을박하며 근무시간을 허비한  것처럼 몰라붙이는 거야. 그 토론 끽해야 두 명의 검사가 그냥 재미로 소식지에 끼적거려 본 걸 텐데 말이지."


1. 끼고 사는 문화


  "신문도 주의해서 봐야겠네요. 그런데 제가 영어를 아주 잘하게  되면, 그 사람들처럼 합리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능력도 함께 늘까요?"
  "아마 그럴 거야. 말은 철학을 담는 그릇이잖아. 그리고 철학은 생각의 틀이고,  철학이란 건 '자기애'를 버릴 수 있을 때 비로소 시작되는 건 알지? '자기애'를 버린다는 건 자아를 극복한다는 뜻이고 조금 확대해 보면 '가족애' 나 '민족애' 와도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거리를 둘 수 있다는 의미지. 그리고 거기서부터 삼라만상의 각종 존재가 객관적으로 마음에 들어오게 돼. 그런 상태를 우리나라에서는  '철들었다'라고 표현하지.


  그런데 정말 철든 사람들이 별로 안 보이는 건 왜일까? 독일에서 살다가  들어오니 유독 이 질문이 내 뇌리를 꼬집더라구. 거기선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순간 이미 어른인  녀석들이 많던데. 어째서 우리나라는 신체연령과 정신연령이 따로 노는 걸까? 지난 3년 동안 곰곰이 생각해보고  관찰해 보고 내린 결론이 뭔지 아니? 통상 이야기하듯이 '인격 교육은 도외시하고 입시위주로만  치닫는 교육 풍토 때문만은 아니다' 였어. 그것보다 더 근본적인 데 원인이 있다는 걸 깨달았지. 그게 뭐냐하면 '끼고 사는' 관습이야.


  서양에서 태어난 아기들은 병원에서 집에 온 그 순간부터 부모와 떨어져 자기 방에서 잠을 자기지.  그리고 커서는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바로 부모와 결별이야. 취직을 해서 스스로 먹고살기 시작하거나, 학비, 생활비 벌어가며 대학교를 다녀. 대학 다니면서 부모와 함께 생활하는 아이들도 가끔 있는데 스스로 굉장히 부끄러워 해. 어려운 일, 슬픈 일 생기면 부모보다는 친구들을 찾고 하다하다 안되면 그때서야 부모의 도움을 받지 .
  미국에서 어떤 아들이 큰 어려움을 겪다 못해 결국은 아버지를  찾아가서 이렇게 말했대. '최선을 다했지만 그러게 되었어요.' 그러자, 아버지가 그랬대. '넌, 내가 보기에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 내 도움을 아직 안 받았잖아?' 이 상황이 우리나라였다면 아마 달랐을거야.
  '끼고 사는' 문제는 글쎄 부모가 먼저 극복해야지 하려는 의지를 가져야겠지. 지금 21세기를 코앞에  두고도 시집, 장가갈 때까지 그저 끼고 살려고 하고 자식들이 독립하겠다고 하면 그 배신이 서러워 펑펑 우는 부모들이 얼마나 많니? 자식들 중에도 독림의 의지가 전혀 없고 부모 덕이나 보려는 사람드이 적지는 않지만, 그건 부모가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었던 문제지. 어릴 때부터  독립심을 키우겠다는 교육철학을 굳세게 실천하면 말이야."


  "하긴 우리 부모도 그래요. 제가 사는  기숙사엘 무척 와 보고 싶어 하셨어요.  어떨 때는 그렇게도 날 못 믿으실까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예요."
  부모가 자식의 행복을 결코 보장해 줄 수 없다는 진실을 왜 모를까. 결혼 때문에 노심초사하고  방해하고 심지어는 부모자식간의 연까지 끊겠다고 하는 부모들을 보면, 참 기이해. 남들이 하는 대로만 하면 마치 행복이 저절로 굴러들어 오는 것처럼 착각하고 있잖아.
  남들이 정해 놓은 조건,. 패물, 형식을 조금이라도 어길라치면 양가 어느 한쪽에서 난리가 나지. 그들의 눈에는 그렇게 남들 하는 대로 따라 결혼했는데도 불행해진 수많은 조각난 가정이 안 보이는 모양이야."


2. 내가 왜 이런 얘기를 하고 있지?


  "내가 이 이야기를 왜 하고 있지? 음, 그래. 그러니까 영화를  보다가 우리나라 정서에 맞지 않는 부분이 나오면 그걸 그들의 삶의 철학으로 받아들이려는 노력이 필요해.  물론, 영어를 잘하기 위한 방편으로 그러는 거지만, 다른 문화, 다른 철학을 이해할 줄 아는 힘을 기를  수 잇는 좋은 기회잖아? 어떤 사람들은 괜히 영화 보다가 막 욕하고 그래. 저런 나쁜 놈. 저렇게 착하고 이쁜 여자를 배신하다니…. 어쩌구 하면서 말이지.
  특히 여자들 주에는 평소에 좋아하던 배우였는데 어느 영화에서 바람둥이로 나온  거 한 번 보고는 정나미 떨어졌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꽤 있더군. 그런 식으로 영화 수십 편 봐 봤자 영화 속에 담긴  예술과 문화는 전혀 경험하지 못해. 주인공에게 감정이입한 것까지는 잘했지만, 평소 자기애를 극복하지 못한 상태라서 그래."
  "그 감정 이입이라는 거 말예요.  이번에 비디오로 연습하면서 조금 느꼈어요.  남자가 말할 땐 그렇지 않았는데 여자 주인공이 말하는 어느 순간, '아 바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이야' 하는 느낌이 퍼뜩 지나간 적이 있어요."

 

제 21 부 감정 이입의 단계

 

  감정 이입. 영어든 독일어든 어느 정도 단계에  이르면 그것과 비슷한 상태에 이르게 된다. 자,  상상을 한 번 해보자.
  '지금 앞에 미국인이 앉아 있고 나와 토의 중이다. 그는 말끔한 정장에 파란 눈동자가 매력적인 사십대 신사이고 나 또한 그 못지 않은 세련된 차림새다.
  그의 매끄럽고 격조 있는 영어를 듣고 내 입에서도 저절로 그 못지 않은 영어가 구사된다. 잘 꾸며  놓은 사무실과 멀리 통유리창 너머 보이는 금문교가 근경, 중경으로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런 장면 어디선가 많이 본 것 같을 것이다. 바로 할리우드 영화들에 숱하게 등장하는 장면이다. 샌프란시스코 또한 영화의 촬영장소로 많이 이용된다.
  네 번째 단계에서 비디오를 많이 보면 볼수록 그런 상상이 마치 현실처럼 느껴지기 시작한다.


  우리나라에서 외국인을 많이 만나는 상사맨들이 주로  이용하는 곳은 호텔이다. 그곳의 바와  음식점과 회의실은 미국에 그대로 옮겨 놓아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서구적이다. 그런 곳에서 미국인과 대화를 하는 상황이 비디오에서 많이 본 상황과 결정적으로 비슷하다면, 아니 비슷하다고 느낄 수 있게  되면 그때부터 영어는 본토 풍으로 발전한다.

  "자신이 구사하는 영어가 스스로에게 낯설지 않을  때 그런 감정 이입 유사증세가 일어나기  시작하지.
이젠 그 정도 단계에는 도달한 것 같은데?"
  "아니요. 아직도 낯선 느낌은 조금 있어요. AFKN이나 영화에서 듣는 영어가 고향 말처럼 친근하게 느껴질 때가 있는데도 그래요. 아직 말을 많이 해 보지  않아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실전을 한 번도 겪지 않아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앞으로 비디오 테이프 한두 개만 더하면 거의 없어질 거야. 받아쓰기한 것 낭독할 때는 마치  대본 읽듯이 하는 거 잊지 말고."
  "아, 맞아요. 제가 그걸 소홀히 한 것 같아요. 다음부턴 제대로 자리도 바꿔가면서 해야겠어요. 그 모노드라마에 잘 나오는 거 아시죠? 대사에 따라서 여러 사람 역할하는 방법…."  "응. 그거 좋겠군. 좀더 현실감이 나겠구먼. 이왕 제대로 해 보려면 더 좋은 방법이 있는데…."  "그렇다면 가르쳐 주셨어야죠. 뭔데요?"


  "이미 본 비디오 테이프 받아쓴 거 있지? 그걸로 역할 바꾸기 해 본 다음, 그 비디오를 다시 한 번 봐.
그러면, 연기하면서 어색했거나 이상했던 부분이 확 들어오지. 그 부분을 체크해 놓고 다시 한 번 연기를 해 보는 거야. 그렇게 세 번만 하면, 그 비디오에 나오는 영어는 통째로 자기 것이 되지."  "좋아요. 다시 한 번 해 보죠. 재밌겠네요. 누구 한 사람 더 있으면 좋겠는데…. 같이 연기할 사람 말이에요."
  "내가 해 줄까? 그대신 말뿐만 아니라 몸 연기도 한다는 조건이야."  "박사님. 거기 유감스럽지만 키스신도 제대로 안 나와요. 호호호. 예전에 그렇게 해 보신 적이  있나 보죠?"
  "아니, 없어. 지금 자네의 얘기 듣고 생각한거야. 내가 왕년에 연극을 조금 했었는데 내가  맡은 배역의 대사보다 남의 대사가 더 잘 생각이 나더라구. 저 부분은 나 같으면 이렇게 할 텐데 하는 생각을 많이 해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eh 연기 잘하는 사람들의 대사는 가슴에 팍팔 박히거든. 그래서 공연이 끝난 지 몇 개월이 지난 뒤에도 생각나는 대사가 꽤 많앗지. 그걸 응용해 보자는 거야. 혼자 하는 것보단 훨씬 재미있을 것 같지 않니?"
  "절대 찬성인데요. 박사님처럼 바쁜 분이 어떻게  시간을 내시려고 그러세요? 이번에는 해외출장  없나요?"

 

1. 미국남자들이 2분마다 생각하는 것


  "맞아 맞아. 그게 문제로군.  근처에 영어 잘하는 총각  없어? 영어도 배우고  사랑도 얻고 일석이조잖아?"
  "저는 일석이조할 자신 있는데요. 그런 남자 있다해도  그 남자 염불보다 젯밥에 더 관심이 많을까  봐 별로 내키지 않네요."
  "나랑 별로 다르지 않은 거로군. 나도 사실은 말연기보단 몸연기  때문에 같이 하자고 한 거거든. 하하하."
  "역시 소문대로 은근히 야하시네요. 그런데 남자들은 정말 다 그런 가보죠? 그 늑대 기질 말예요."  "그럼. 애나 어른이나 남자들은 여자의  몸을 갖고 싶어하지. 소위 교양의  정도에 따라 인내의 차이가 있을 뿐 내심은 거의 똑같을 걸. 사무실에서도 보면, 여직원이 지나가는 모습 슬쩍 아래위로 안 훑어보는 남자 드물어."


  "어머나, 세상에. 그럼 그때도 음흉한 생각을 한단 말이에요? 설마…."  "옛날에 미국의 어느 성심리학자가 설문조사를 했는데 결과가 어땠는 줄 알아? 미국 남자 직장인의 거의 팔십 퍼센트가 평균 이분마다 한 번씩 섹스를 생각한다는 거였어. 그러니까.  여자가 눈에 안 뛸 때는 거의 안 하다가 여자가 눈앞에 나타난 순간 거의 몇 초마다 한 번씩 섹스를 생각한다는 얘기야."  "남자들 진짜 못 말리겠네요. 왜 그렇게 짐승 같을까요?"  "짐승? 그게 바로 포인트야. 원시인 시절 인간의 존재는 다른 짐승들에 비해 엄청 약했어. 종족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좌우지간 많이 낳아 놓아야만 했지. 남자 원시인들은 여자원시인들을 보기만 하면 섹스를 하자고 덤벼들었고 여자 원시인들은 그렇게 해서 숫자를  늘려야 하니까 또 가만히 있었겠지. 그 본능이 현대 남자들에게 고스란히 남아 있는 거야. 왜 우리나라 말에 이런 거 이지? '열 여자 마다할 남자 없다.' 종족 보존 본능에 대한 아주 훌륭한 직관이야."


  "그 얘기 어디선가 들은 것 같은데요. '종족 보존 본능'이라…."  "그게 아마 여권 운동 단체에서 종종 언급하는 표현이지. 그 동네에선 남자들이 아전인수격으로 갖다대는 핑계라고 얘기하지."
  "독일에선 어때요? 거기도 그렇게 생각하나요?"
  "내가 만난 독일 대학생들은 벌써 이성과의 성경험이 꽤 있었는데도  섹스에 대해 얘기하는 걸 내켜하지 않더군. 물론, 일반 직장인들이야 우리와 거의 똑같은 것  같았고, 오히려 프랑스 얘기를 해주고 싶군.
파리지엔느들은 여성다움을 강조함으로써 여권이 더 확대된다고 믿는대. 직장에서도 남자들의 눈길이 자신의 몸을 훑고 지나다니는 걸 오히려 즐긴다나. 그렇지 않은 경우는 물론 몹시 불행해하고, 우연히 알게 된 프랑스 남자랑 같이 파티엔 간  적이 있는데 이 녀석은 옆자리에 앉은  여자의 허벅지에 손 올려놓는 걸 아주 자연스럽게 하더라고. 물론, 그 여자는 녀석의 애인도 여자 친구도 아니고 다만 직장 동료였지."  "굉장히 다르군요. 그런 게 바로 성개방이라는 것인가 봐요."  "그런 맥락으로 볼 수 있지. 성에 대한 자연스러운 감정을  숨기지 않는 여유로움. 어딘가 음습하고 병적인 눈길이 아니고, 약간의 장난끼와 호기심 그리고 기대가 얽힌 눈빛을 남녀가 함께 나누는 장면  같은 것 흔히 볼 수 있지. 중요한 것은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성관념을 옥죄고 잇는  성에 대한 터부나 부정적 관념을 스스로 부술 수 있는 의식잉.


  한국 여인을 사귀게 된 독일 대학생이 나에게 그러더라구. '그녀를 이해할 수가 없다. 분명히 서로 사랑하는데 키스할 때까지는 가만히 있다가 섹스는 극구 거절한다. 그러면서 계속 결혼식날 허락한다는데, 세상에 자 보지도 않고 결혼하는 어리석은 사람들 봤느냐?' 그래서 그랬지.  한국에 가면 그런 어리석은 남자들과 여자들이 온 거리에 넘쳐난다고."
  "그러니까 영화로 영어를 익힐 때도 그런 커다란 문화의 차이를 염두에 두고 보라는 말씀이군요. 사실, 영화 속에서 그런 장면 많이 나오지만, 전혀 역겹거나 비현실적으로 보이지 않거든요."  "그래, 사실 이십 년이 넘도록 교육받은 게 하루아침에 바뀌기는  힘들지. 지금 잘못 배운 영어 습득법 바꾸느라고 고생하듯이 말이야."
  "이제 고비는 넘긴 것 같아요. 5단계는 도대체 뭘 하는 건지 요즘 굉장히 궁금해요."  "네번째 단계에서 가능하면 많이 보는 게 좋거든.  그러니까 앞으로 한 세 개만 더 봐.  한 개 떼는 데 사흘에서 닷새정도면 될 걸?"
  "네, 알겠습니다. 또 찾아 뵐게요. 좋은 밤 보내세요."


제 22 부 자가발전의 단계

 

  K는 이제 '자가벌전' 단계에 이르른 것 같았다. 눈에 띄고 귀로 듣는 모든 영어가 두뇌 속에 마련된 '영어방'에 자동 입력되어 자동 분류, 저장되는 상태가 된 것이다.
  지금부터는 K가 의도하는 바대로 영어가 발전할 것이다.  CNN 뉴스를 열심히 들으면 시사 영어에 능숙하게  된 것이고, 법정 영화나 드라마를 집중적으로 골라 보면 분석조의 영어를 잘 구사할 수 있는 바탕을 얻게 될 것이다. 소설을 한 권 떼면 문학적 표현력이 일취월장 할 것이고, 생활 에세이를 읽고 나면 보통 미국 사람의 심리에 조금 익숙해질 것이다.
   네 번째 단계는 총체적으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단계다. 다시 말하면, 정보가 다양하면 다양할수록 더 체계적인 데이터베이스를 만들 수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시간이 충분하다면 5단계로 넘어가기 전에 미국의 일반방송 하루치를 구해서 죽 보는 과정을 하나 더 하면  매우 좋다. 뉴스, 드라마, 광고, 대담프로, 영화, 코믹 등 미국의 보통 사람이 늘 보는 프로그램을 접할 수  있어서 영화로는 제대로 알 수 없는 그들 삶의 부분들을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다. 특히, 광고와 코믹은 대단히 유용하다.


  광고는 보통 미국인들의 심금을 웃기고 울리는 효과를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제작된 것이 대부분이므로 미국인들의 정서를 거꾸로 짐작할 수 있는 재료이고, 코믹은 그들의 일상을 회화시킨 것이 보통이므로 운이 좋으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한 가족이 어떤 패턴으로  사는지도 볼 수 있다. 이걸 자꾸 보면 나중에는 미국에 당장 데려다 놓아도 별 낯설어하지 않게 될지도 모른다(한번도 실험을 해보지  않은, 순전한 논리적 결론이다).
  아무튼 네 번째 단계를 스스로 생각해서 충분하다고 할 만큼 하고 나면, 습득한 영어 문장에 그림이 붙어 잇는 형상이 된다. 영상과 소리가 동시 녹음되는 시대가 열린 것과 마찬가지다. 예컨대 'I'm sorry' 라고 말할 때 어깨짓과 상대방의 표정과 그가 하게 될 말이 자연스럽게 뇌리에 떠오르게 되고, 'I love you'라고 할 때는 가슴의 떨림도 느끼게 된다. 심지어 '불 쉿'이나 '가 뗌' 이라고 열받을  때 은연중에 내뱉게 될지도 모른다. 영어로 된소리나 문장에 자신의 정서가 드디어 접목된 것이다.


  이 정서와 언어가 일치되어 있는 경우는 보통 '모국어'밖에 없다. 그런데 그게 가능해진 것이다. 그때부터는 자신의 입에서 나오는 영어가 더  이상 낯설지도 않고 그런 자신을 보고  있는 다른 사람들의 경외 가득한 눈길을 오히려 이상하다고 느끼게 된다. '내 얼굴에 뭐가 묻었나' 하고 생각하다가 문득 영어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되는데 그쯤 되면 이미 영어는 제2 외국어가 아니라 제2의  모국어가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물론, 미국인과 말하다 보면 모르는 단어도 심심찮게 나온다. 이때는 제2 외국어 시대와 제2 모국어 시대의 차이가 나타나나. 아직 제2 외국어  단계일 경우는 그냥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물어본다. 그러나 제2 모국어로 진행 중일 경우는 대개 처음 들었어도 무슨 의미의 말인지 새겨듣고 넘어가기 십상이다. 그러다가 그게 만일 잘못 감잡은 거라면, 그때서야 묻게 된다. '그 단어가 이런 뜻 아냐?' 라고.


  제2 외국어 단게에 있는 사람은 문장 하나하나에 신경 써서  듣느라고 그리고 또 그렇게 이야기하느라고 금방 피곤해진다. 그래서 때론 상대방을 빨리 보내고 싶어지기까지 한다. 반면, 제2 모국어 단계에  도달한 사람은 이야기하느라고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상대방과 함께 2차 3차도 마다하지 않을 기세다.
  이쯤 되면 미국 사람들과 농담, 속이야기, 인생살이 넋두리까지 무리없이 나눌 수 있다. 사실은  외국인들에게 고민 이야기하는 게 훨씬 부담없다. 우리나라 사람들이야 한 다리 건너면 거의 다 연결되어  있기 마련이어서 쉽사리 그런 애깋기 어려운 반면, 외국 사람들은 수백 개의 다리를 다 건너서 연결고리를  찾았다 하더라도 이역만리 떨어져 사는 사람들이니까 비밀 보장이야 거의 확실하다.

 

1. 한국말로는 복잡한 게 영어로는 단순해지는 현상


  영어로 고민이나 문제점을 이야기하다 보면 이상하게  느껴지는 게 있다. 한국말로는 그렇게  복잡하고 어렵던 것이 영어로 표현하면 굉장히 단순해지는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이  영어로 표현하면 굉장히 단순해지는 현상이 나탄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미 결론마저 보이는 경우도 생긴다. 어째서일까?  그건 우선 영어의 수준이 문제의 수준보다 낮다는 의미이다. 예를 들어 우리 나라 기업의 문제점을  우리말로 얘기한다면 역사적, 사회적, 정치적으로 다각적  분석을 곁들여가며 폼나게 할 수 있지만,  영어로 하면 기껏 '관료주의 때문이야' 혹은 '권위주의 문화에 길들여져 있어서' 정도밖엔 못하는 수가 많다. 그러니 해결책도 '자율과 민주적인 체제로 바꾸면 된다'가 되는 것이고, '기존 민주적인 체제로 바꾸면 기대한다는 것은 어려우니 사람을 바꿔라'로 결론이 난다. 명쾌하긴 하지만 왠지 마음 한구석이 찝찝할  것이다.
그런데 그 말을 들은 미국 사람은 뜻밖에도 '오, 스마트'하고 감탄할지도 모른다.


  그런 결론으로 이르게 되는 또 하나의 숨은 이유는 우리말과 영어가  그 뜻은 같을지언정 각각의 문화 속에서의 위상이 다르다는 것 때문이다. 영어권에서는 '관료주의'나 '권위주의' 가 이미 쇠퇴했거나 쇠퇴일로에 있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자신감과 극복에의 확신이 낙관적인 추론의 근거가 될 수 있지만,  우리나라는 다르다.
  우리말로 표현된 두 단어는 거의 넘을 수 없는 거대한  장벽이라는 이미지를 가진다. 그래서 '그것들을 없애야지 하지만 그게 어낙 층이 두껍고 방대해서 저항을 시작하면 엄청난 세력이 형성되어 결국은 용두사미로 개혁은 마무리될 수밖에 없다' 가 되는 데  이걸 영어로 한다고 가정해 보면 완전히 다른  단어를 써야만 한다.
  언어를 공부하지 않으면 안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말은 언제나 사전적 의미에 더하여 그  문화권 속에서 통용되는 이미지를 보유하고 있다. 우리말로 '대통령'은 오직 '최고위직 공무원  자리'를 의미하지만, 영어로 'President'는 '대통령', '의장', '호텔명', '고급 자동차 이름' 등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지니 일단 '권위' 면에선 '대통령'이 압도적이다.


  몇몇 심약한 사람들은 21세기로 접어드는 요즘에도 감히 '대통령이 말이야. 어쩌구 저쩌구'…라고  얘기 못한다. 왠지 불경스런 마음이 들기 때문일 거다. 그래서 이들은 'President'도 함부로 쓰지 않는다.
  이런 예는 매우 많다. 그러므로 영어를 영어권 문화와 더불어  익히지 않으면, 영어를 한국어 문화권에다 맞추어 쓰게 되고 그럴 경우 미국인의 입장에서 보면 어디서 배웠는지 모르지만 '대단히 이상한' 영어가 되는 것이다. '…합시다' 라고 할 때 미국 사람들은 흔히 'Why don't  you….' 라는 표현을 쓴다. 여기다 대고 '나는 안된다고 그런 적 없다. 그렇게 하자니까.' 라고 대답하는 가 하면, 모든 자동차들이 주유소가 아니라 'gas station'에서 연료를 주입하는 걸 보고 '아, 미국엔 엘피지 자동차가 대부분'이라고 단정하는 코믹이 벌어지는 게 다 영어를 한국어로 옮겨가며 학습한 결과다.


  이런 결과는 어쩌면 동시통역에까지 파급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국제학술대회에서 수시로 벌어지는 광경중의 하나가 외국 학자들이 동시통역기의 이어폰을 귀에서 떼고 있는 모습이다. 분명히 단상에선 한국 학자가 발표중인데도 커피 브레이크 때 슬쩍 물어보면, 통역 내용이 굉장히 이상하단다.
  직접 들어보니 문제는 엉뚱한 데 있었다. 발표자는 말을 하고 있는데 통역은 글을 읽고 있었던  것이다 예를 들면,   '제 생각으로는 이 문제를 총체적으로 보지 않고 단편적으로 다룬 데 오류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라고 발표자는 말하고 있는데 통역은 '오류의 원인은 문제에 대한 총체적 분석 대신 단편적 고찰에 있다고  사료된다' 라고 하는 식이다. 누군가가 세미나장에서 그런 식으로 발표를 하고 있느 걸 상상만해도 벌써 머리가 아플 지경이다.

 

제 23 부 한국에서 살면서 영어를 모국어처럼 한다

 

  영어를 한국에서 익히면 그 문화권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처럼 할 수는 없다는 선입관이 있다. 이것은 진실이 아니다.
  영어를 비롯한 외국어는 아주 어릴 때(혹자는 열 살 이전, 또 어떤 사람은 일곱 살 이전이라고들 한다) 배우지 않으면 아무리 열심히 해도 한계가 있다는 주장도 있다. 이것도 역시 사실이라고 할 수 없다.
  그것을 입증한 사람이 있다. 하인리히 슐리만(Heinrich Schliemann)이라는 19세기  고고학자가 바로 그 사람이다. 그는 젊을 때 너무 많은  유산을 물려받아 평생 심심함의 극복을 삶의  과제로 삼았다고 하다.
그래서 그는 결국 고고학에 심취하게 되었는데, 심심하지 않기 위해 한 일 중의 또 하나가 외국어 배우기였다.


  어떻게 하면 외국어를 그 나라에 가지 않고도 유창하게 할 수  있을까를 곰곰이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연구한 끝에 노하우를 개발해 냈는데 그 역시 그 원리를 아기가 말 배우는 과정에서 찾아냈다. 결국 여기 소개하고 있는 내 노하우는 쉴리만 방법의 아류다. 그건 내가 늦게 태어났기 때문이다.
  두 방법간의 차이는 있다. 슐리만은 전세계의 상당히 많은 언어를 포괄하고 있는 소위 알파벳 언어  문화권에서 태어나서 알파벳 언어 하나가 모국어였다는 점, 그래서 그의 노하우도 그런 환경을 고려한 것이라는 점이 결정적으로 다르다.
  알파벳 문화권의 언어들은 속성이 매우 비슷해서 그 중의 하나만 하면, 두 번째부터는 반은 절로 된다.
실제로 유럽에 가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불어 혹은 독어, 네덜란드어, 덴마크어, 스웨덴어 식으로 좀더 비슷한 언어끼리 묶어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슐리만은 자신의 노하우를 써서 평생 22개 국어를 그냥 인사말, 간단한 회화 정도가 아니라  제대로 유창하게 했다고 한다. 그것은 그가 트로이 유적을 발굴하여 고고학자로 명성를 떨치는데 아마 큰 힘이 되었을 것이다.

 

1. 나이도 어린 게 반말을 해?


  슐리만식 노하우 중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맞지 않는 부분은 '하루에 한 시간 정도 그 외국어  학원에 가서 말연습을 하라'는 것이다. 우리나라 성인들 십중팔구는 이걸 못한다. 내가 만난 독일  유학생들도 어학코스에서 언제나 '침묵은 금이지. 암'  하는 양으로 고개만 처박고 있는  게 보통이었다. 심지어 어떤 이는 나이도 어린것들이 건방지게 반말한다고 기분나빠서 안 한단다(독일어에는 우리말과 비슷하게 경어와 반말이 있는데, 다른 점은 친분의 정도에 따라 경어와 반말을 구분한다는 것이다. 그는 그걸 한국식으로 알고 온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남들 앞에 나설 수 있을 정도로 자신감이 생겨야 비로소 말을 하기 시작한다.  그것도 대부분 시켜야 한다. 그런데 이건 꼭 외국어에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다.


  독일 아이들은 초등학교에서 김나지움에  이르기까지 수업시간에 얼마나 발표를  적극적으로 하는가가 평가에 반영이 된다고 한다. 이건 교포 2세가 해 준 말이다. 어릴  때부터 그렇게 하는 게 습관이 되어서 자신의 의사 표현을 망설이는 사람이 드물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일단 권장을 고사하고 오히려 말리는 쪽이었다.
  내 고등학교 다니던 시절을 돌이켜 보면 손들고 발표한 게 칠판에다 수학문제 푸는 것밖엔 없었다.  열심히 주입해 주는 거 열심히 기억해서 잘 맞추면 되는 교육이었느니 마치 말은 못해도 청각은 살아 있는 사람들을 위한 수업방식이었던 셈이다
  그러게 십년 넘게 공부하고 외국에 가서  갑자기 여러 인종의 색색이 눈동자가  지켜보는 가운데 말을 하려니 잘 될 리가 없다.


  내가 처음으로 세미나 시간에 교수로부터 질문을 받은 날이 기억난다. 그 날의 주제가 외국의 사례였는데도 나는 그냥 평소처럼 과묵한 모습으로 열심히 다른 학생들의 토론을 경청중이었다. 여타 한국 유학생처럼 나도 세미나 시간에 소극적으로 앉아만 있는 게 더 편했을 것이다.
  그런데 느닷없이 교수가 '동양권의 얘기도 좀 들어볼까?' 하고는 나를 지목하는 것이었다. 그때 내 독일어 수준은 노하우 덕분에 거의 완벽해져 있었으므로 별 어려움 없이  한국의 사례를 나름대로 조리 있게 설명하고 질문도 받고 했는데, 세미나가 끝나자 한 여학생이 다가와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난 네가 다른 한국인들처럼 말을 잘 못하고 잘 못 알아들어서 그렇게 말없이 있는 줄 알았어. 혹시 독일에서 김나지움 다녔니?"


  그때 이후 나는 적극적으로 발표를 하기로 했다. 그녀의 '다른 한국인들'에 대한 언급에 자존심이  상했던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을 위한 노하우를 개발할 때 화두가 바로 이 자존심이었다. 자존심을 세울 수 있어야 말을 할 것이라는 것. 더듬거리는 수준으로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나 되어야 말을 한다는 것.
  앞서 언급한 어느 기업 어학 연수원의 오후 수업을 맡았던 유타 주 출신  미국인 강사도 그걸 알고 색다른 강의 전법을 구사했던 게 생각난다. 그의 과목은 'Discussion'이었는데 시작할 때 항상 학생들의 약을 올렸다. 주제는 그날 신문에서도 구하고 우리나라  역사에서도 구하고 해서 학생들은 언제나 곧 열을 받았고 급기야는 서로 손을 들고 그의 변설에 반론을 나섰다. 그게 거의 전략이었다는 건 나중에 그가 말해 줘서 알았다.


  "한국인들은 화가 나거나 술에 취해야 영어를 하더라구. 그래서 일부러 그랬던 거야."  아무튼 여기 소개하고 있는 노하우는 말을 상당히 잘할 수 있도록 해준다. 1단계에서 4단계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등장하는 메뉴인 '큰소리 낭독'이 바로 그 비결이다. 영영사전을 찾아서 기본 어휘와  문장력을 익히는 부분도 쉴리만의 노하우에는 없는 부분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받은 잘못된 어학교육을 처음부터 바른 내용으로 덮어씌우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이 작업을 끝내야 비로소 우리나라 사람들은 영어를 현재 쓰고 있는 언어로 대할 수 있게 된다.  '해석' 이니 '연구 니 하는 말은 제대로 쓴다면 '라틴어' 나 다른  고대 언어처럼 죽은 말에 적당한 말이다. '영어연구'니, '영문해석' 이니 하는 말이 통용되는 한 우리나라에서 영어를 제대로 가르칠 날은 요원하다.

 

제 24 부 회사에서 짤린 K

 

  겨울이 깊어가고 우리나라 사회의 주름살도 대책없이 굵어지던 어느 날 문득 K가 왔다. 예의 생글거리는 모습이 사라지고 뭔가 사연이 있는 듯한 표정이었다. 털썩 자리에 앉은 K의 첫마디는 이랬다.
  "저 짤려요. 유부녀라고 회사 사정  좀 봐 달라면서 나가 달래요.  TOEIC 1급도 소용없나봐요. 이렇게 무원척적일 줄은 정말 몰랐어요. 회사 나와서  그날그날 대충 때우고 가는 사람들이라도 나자고,  처녀고, eh는 가장이니까 괜찮고 유부녀들은 아무리 능력이 있고 성실해도 집안이 버는 사람  또 하나 있으니 나가 달라는건데…. 참 뭐가 뭔지 모르겠어요."
  그랬구나. 조금만 있다가 결혼하지. 하긴 회사에서 자를지도 모른다고 결혼을 미뤄야 한다는 얘기는 말이 되지 않는다.


  "그 소문이 사실이었구나. 평소에도 느꼈지만, 우리 회사 인사관리 수준은 아무리 잘 봐줘도 삼류야. 말로만 앞으로 세상은 일류 두뇌가 지배한다면서 고급 인력을 아끼는  회사라고 떠들고 있는지…. 그래, 무슨 대책은 섰니?"
  "어제 권고사직서를 썼는데 대책 세울 시간도  없었죠. 어젯밤에 이것저것 따져보니까 저는 기술도  없구. 정말 취직할 데가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어떡하죠?"  "영어로 승부를 한 번 걸어 보면 괜찮을 것 같은데?" "영어로요? 뭐, 번역 같은 거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것도 좋겠지만 그쪽으론 경험이 없으니까, 우선 외국인 회사가 좋을 것 같은데."  "글쎄요. 거기도 만약 뽑는다고 하면 경쟁이 치열할 거 아니겠어요?"  "만약 서류심사와 영어 인터뷰로 결정하는 회사라면 충분히 승산이 있지."  "과연 그럴까요?"
  "이렇게 하는 거야. 오늘 집에 가는 길에 미국문화원이나 대사관에 들러서 오리지널 미국  신문을 하나 얻어. 그걸 가지고 앞으로 한 달 ED안 지지고  볶고 굽고 삶아서 시험 빝천을 두둑히 만들면  합격 확률 거의 100% 나올걸?"


  "꼭 신문을 봐야 하는 건가요? 시사 영어를 익히고 가라는 뜻이군요."  " 음, 그런 의미도 있지만, K의 어휘가 지금 상당히 가벼울 거야. 그리고 일상에서 쓰는 쪽으로 치우쳐 있을거구. 그런데 인터뷰할 때는 조금은 무섭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게 좋은 점수를  받거든. 신문을 보면 글이 지나치게 어렵거나 무겁지는 않지만, 사실전달에 충실한 표현을 쓰고  있지. 게다가 섹션이 우리 인생을 총망라하잖아? 특히, 경제, 사회, 정치 부문의 어휘를 익히기에는 신문만큼 좋은 교재도 없지."

 "그럼, 어떻게 그걸 구워 삶죠? 박사님이 가르쳐 준 노하우를 응용하면 될 것 같은데…."  "그렇지. 간단해. 우선 사회면부터 들어가서 짧은 기사를 하나 고라. 한 번 읽는 데 1∼2분 정도 걸리는 분량이면 돼. 그걸 계속 큰소리로 낭독하는 거야. 상대방이 있다고  생각하고 읽어주는 상상을 하면서 말이지. 그러다 보면, 저절로 다 외워질 거야. 그럼 신문에서 눈을 떼고 이번에는 이야기를 해 준다고 생각하면서 혀에 익은 대로 읊어 봐. 하다가 막히거든 생각나는 대로 계속 끝까지 해. 그리고 확인을 하고 다시 한번 처음부터 끝까지 읊는거야. 그렇게  해서 유창하게 할 때까지 계속하는 거지.  그런 방식으로 그 신문에 난 A든기사를 읊으면 한 달쯤  갈 겅. 물론 K가 하루 종일  시간이 있어서 한 번에 네댓 시간쯤 한다는 가정 하에서 하는 얘기야."


  "그렇게 하면 정말 영어도사가 되겠네요. 신문엔 진짜 별별 이야기, 별별 주제가 다 나오잖아요. 그런데 모르는 단어가 굉장히 많이 나올텐데. 그건 어떻게 하나요?"  "아, 그걸 얘기 안 했군. 한 페이지를 끝낼 때까지는 그냥 읊는  거만 하고, 그게 다 되면, 모르는 단어찾기에 들어가, 방법은 전과 같지.  신문 한 부만 끝내면, 웬만한  간행물들은 사전없이 좍좍 읽을 수  있어."
  "박사님,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셨어요? 진짜 노하우 연구를 하신 건가요?"  "연구? 그렇게 말하면 너무 거창하고 우연 반, 심시숙고 반이었다고 할  수 있지. 독일시절 방학 때 아르바이트로 프레스 기계 누르는 걸 했거든. 그런데 손과 발을 쓰는 데 눈은  어디 볼 데가 없는 거야. 더군다나 내가 일하던 파트엔 여자공원은 한 병도 없고 까마구들 천지였거든. 그래서 건설적으로 간구해 낸 방법이 잡지를 보는 거였어.

 

 '그래 이왕 볼 거면 제일 어려운 걸 보자' 하구선 독일의 지성파들이 즐겨 읽는다는 <슈피겔>지를 택했지. 정말 어렵더구먼. 사전 갖다놓고 읽을 수는 없으니까 그냥 계속 읽었어. 그랬더니 내용에 따라 시간차는 있었지만 결국은 이해가 되는 신기한 일이 일어나는 거야. 그렇게 해서  첫 번째 슈피겔을 3주만에 뗐지. 이틀간의 주말을 보내고 다음 월요일날 두 번째 슈피겔을 습관처럼 펴서 읽기 시작했는데, 또 이상한 일이 벌어졌어. 첫  번째 기사가 그냥 몇 번 읽지도  않아서 쉽게 이해가 되는 거야. 오잉? 그래서 허겁지겁 다음 기사로 넘어갔지. 역시 마찬가지로 그렇더라구. 그 때 내 머리를 탁 치고 지나간 게 바로 이 방법이야. 이 방법의 제목은 '인간의 두뇌를 우습게 보지마라' 지 아마? 하하하/"  "어떻게 제일 어려운 잡지를 볼 생각을 하셨을까요? 저 같으면 우리나라로 치면 <feel>이나 <영레이디> 같은 걸 밨을 것 같은데요."


  "왜 내가 그런 생각을 안 했겠니? 그런데 독일에선 그런 잡지가 대부분 얇아. 한 권 가지고 5주를 보낼 수가 없겠더라구. 그래서 생각을 바꿨지. 그게 참 잘한 짓이었던 게 방학  끝나고 첫 강의를 듣는데 그냥 다 들리는 거야. 분명히 그 전  학기에는 Listening이 딸려서 강의 내용을 이해하는  것보다 졸음 쫓기가 더 어려운 일이었거든. 참 신통하지?"
  "박사님처럼 어학에 재능이 탁월한 사람들이야 원래 신통하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경우에는 쉽게 늘지 않았을 거예요."
  "난 탁월 정도는 아니야. 다른 사람들보다 어학을 좋아했다는 게 차이라면 차이지. 좋아하는 만큼 관심도 많고 집중도 잘 되고 뭐 그렇게 된거지."
  "꼭 무슨 광고 카피랑 비슷한 말씀이네요. '그냥 열심히 하는 거지 뭐.' 저는 그럼 사람 좀 얄밉더라."  "하하하. 좌우지간 그렇다는 얘기야. 전에 얘기했듯이 어학의 소질 차이는 분명히 있지만, 방법만 잘 쓰면 종국에 도달하는 수준은 별 차이없어."

 

  올 때와 달리 K는 환한 얼굴로 돌아갔다. 내가 아는 그녀의 기질로 보아 반드시 해낼 것 같았다. 그녀가 보란 듯이 번듯한 외국회사에 재취업한다면 그건 우리 회사가  인사관리를 잘못했음이 증명되는 셈이다.
  언제 어디서부터 인사와 충무가 칼자루를 쥐게 되었는지 몰라도 이들은  어디까지나 돈을 벌어오는 부서를 지원해 주는 역할이다.
 마케팅이 뭔지, 영어 전선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생산라인에서는 어떤 긴급사태가 발생하는지도 모르는 이들이 무슨 근거로 관리와 통제를 일삼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더 이해가 안 가는 건 이런 부서에 죽 근무하는 사람들이 주로 굳세게 출세하는 부류에 속한다는 것이다. 단순히 경영진과 가까운 거리에서 근무하기 때문이라고 하기에는 어딘가 석연찮다.
  하긴, 그런 경우보다 더 한심한 예도 어느 대기업의 인사과장의 입을 통해 들었다.

   '둘이 애인사이면서 같은 부서에서 일하면 다른 사람들 보기에도 안 좋고 그러니까 두 사람 떼어놓아야 합니다.'
  도대체 이 회사는 어느 시대를 살고 있는 건가.

 

제 25 부 괜히 노하우가 아니다.

 

  K에게 가르쳐 준 '외국회사 취업 밑천 마련 방안' 이 바로  마지막 5단계다. 총정리의 단계이면서 한차원 수준을 높이는 단계다. 거의 모든 종류의 영어를 섭렵하게 되기 때문이다. 기업 광고,  개인광고, 만화, 논설, 칼럼 등 각종 글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술, 스포츠에 이르는 주제는 그 날 그 나라 삶의 구석구석을 다양한 필치와 정확한 관점으로 표현하는 데  모자람이 없다. 그걸말 그대로 모조리 섭렵하고 나면, 또다시 우리의 뇌는 자동변신을 시작한다.
  입력된 내용과 수준이 그러한 만큼 그 변화의 크기와 폭은 대단하다. 이런 현상은 사실 경험하기  전에는 믿기 어렵다.
 나에게 수많은 사람들이 다가와 어학능력을 늘리는 비결을 가르쳐 달라고 했다. 그래서 난 그렇게 했다.


다만 한 단계식 가르쳐 주었다. 독일에서의 경험  때문이다 그때는 모든 단계를 가르쳐 주었는데 그들은 내게 다짐한 것과는 달리 순서도 바꾸고 방법도 바꾸고 하다가 실패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급한 성질이 그 원인이라고 판단한 난 귀국한 뒤로는 우선 천 단계만 가르쳐 주기로 결심했다. 그러면 열이면 열 다가르쳐 달라고 조른다. 그러면 난 이렇게 말했다.
  "첫 단계를 끝내고 오면 두 번째 단계를 가르쳐 줄게. 우리나라 사람들 성질이 급해서 첫  단추도 제대로 안 끼우고 두 번째 세 번째  끼우다가 결국 다시 처음부터 해야 되는 상황에  빠지는 경향이 너무 강해."
  그런데 첫 단계도 못 끝내는 사람들이 거의 다다. 그저 믿질 못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성공한 사람이 바로 눈앞에서 증언을 하는 걸 듣고도 그렇다. 의심 많은 것도 하긴  우리네 민족 정서인 것 같다. 그 다음으로 노하우를 제 맘대로 바꾸는 사람들이 또  그렇게 많다. 1단계에서 교재로 나온 책까지 펴  놓고 글자 확인해가면서 공부하는 사람, 절대로 사전 찾아보지 말라고는 했지만  (더군다가) 영한 사전을 잠깐 잠깐 찾아가며 했더니 더 잘되더라는 사람, 그는 다음 TOEIC 시험에서 오히려 점수가 수십점 후퇴했다.


  결과에 대한 검증도 없이 이런 이야기 하는 사람들이 이 노하우를 실천하는 데 가장 큰 훼방꾼이다. 문장 하나씩 끊고 들으면서 외우기에 몰두하는 사람, 텍스트 해석 다 해보고 듣기로 들어가는 사람 등등 사람 수대로 노하우가 생기는 판이 벌어진다. 이건 뭐라고 해야 하나, 저마다 잘났기 때문인가?  노하우에서 하라는 대로 했는데도 거의 늘지 않았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꽤 있다. 이런 경우는 십중팔구 응석이거나 거짓말이다. 실력이 늘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하라는 대로 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매일 하지 않았거나, 7일째 쉬지 않았거나, 첫 번째 테이프를 다 끝내지도 않은 채 다음 테이프로 넘어갔거나, 차에 꽂아놓고 잠깐 잠깐씩 들었거나, 자기 수준과 너무  동떨어진 테이프를 골랐거나 등등의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가벼운 오류를 범했기 때문에 그들은 하라는 대로 했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가벼운 일이 아니다. 때로는 매우 중대하다. 당연히 일어나야 할 현상이 자신의 기에 일어나지 않으면 그 다음부터는 점점 어려워진다. 우선 재미가 없고 재미가 없으니 진도도 나가지  않게 되고 여차하면 건너뛰게 된다. 한두번 건너뛰는 것으로 이 노하우를 버리게 되는 데는 족하다.
  그렇게 노하우를 버린 사람들은 전통적인 학습방법으로 회귀한다. 오랜 세월동안 써서 별 효과를 얻지 못했던 바로 그 방법으로 다시 복귀하는 그 심리는 뭘까, 익숙한 것이니까? 아니면 다들 그 방법을 쓰고 있으니까 하는 대중심리일까?
  그리하여 내가 노하우를 가르쳐준 직원들도 모두 스스로 시중의 여러 방법 중의 하나를 찾아 돌아갔다.
예견한 바였으므로 그냥 추이를 지켜보기로 했다. 그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영어를 잊어가는 듯했다.


  회사돈 들여서 마련해 준 시험 기회조차 활용하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슬슬 커져갈 때쯤, 느닷없이 IMF가 등장했고 정리해고니 권고 사직이니 하는  공포의 단어가 사무실 구석구석에서 웅성거렸다.  무엇이든 실력을 갖추어야 한다는 절박함이 빠른 속도로 파급이 되면서 닥친 시험날엔 사상 최고의 응시율을 보였다.
 그로부터 한달 뒤 나온 성적은 예상대로였다. 어느 누구도  급수를 올리지 못했고, 개중에는 계속급수를 넘나들고 있는 녀석까지 있었다. 점수대는 400점대가 가장 많았고 Reading에서 보다는  Listening에서 헤매고들 있었다. 그들의 대부분은 이십대였으므로 그리  비관할 일은 아니었는데 당사자들은 조금  심각한 모양이었다.


  그들이 내 노하우를 사용하는 데 있어서 무엇이 가장 큰 걸림돌이었을까?  "매일 두 시간 정도를 할애한다는 게 쉽지 않던데요."  그러니까 그들의 젊음이 문제였다. 하긴 내 그만한 나이 때를 돌이켜봐도, 도대체 뭘 공부한 기억이 없었다. 퇴근 후면 죽이 맞는 입사 동기들과 날이면 날마다  당구장으로 술집으로 돌아다녔고, 토요일엔 데이트나 소개팅으로 바빴으며, 일요일엔 점심 직전까지자는 걸 낙으로  삼던 시절이었다. 요즘은 사람친구 아니더라도 컴퓨터와 시간 보내는 것도 보통 재미가 아니니 지루한 작업에 시간내기가 어렵긴 하겠다.
  "하다가 보니 자꾸 딴 생각이  나고, 졸립기도 해서 좀 재미있는  걸로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생각만 하고 실천을 안했죠. 헤헤."


  첨단 기술의 노하우든 어학의 노하우든 노하우라고 주장할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다. 그걸 조금만 바꿔도 더 이상한 노하우라고 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노하우라고 한다. 좌우간 우리나라  사람들의 응용력은 뛰어나다.
  "논리적으로 참 그럴 듯하다고 생각이 되어서 해 보려고했는데 자꾸 세월만 가네요."  돈 내고 모여서 하던 버릇 때문일까? 아니며, 그 노하우를 얻기 위하여 투자한 게 없으니 아까울 것도 없어서일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만 보내는 사람이 가장 많은 듯하다. 이제 확실한 노하우 하나 건져놨으니 시작만 하면 끝난다는 맘이 들어 더 여유 생긴걸까?  "정말 이젠 그 노하우 제대로 한 번 해볼래요. 어떻게 한다구요?"  노하우가 노하우답지 않게 너무 쉬워 보이긴 한다.  보통 노하우라고 하면 일단 그럴 듯하게 복잡하고 어렵고 해야 되는 건데 말이다. 그러나 그건 선입관일 뿐이다. 공학 분야에서도 '한번 더 깎아주는 것' 정도의 간다한 것이 노하우인 경우를 경험한 적이 있다.

 

제 26 부 저절로 되는 영어

 

1. 제5단계의 6가지 요령


  첫째, 오리지널 영자 신문(미국에서 발행한 신문) 최신판을 하나 구한다.


  둘째, 사회면에서부터 짧은 기사(읽으면 1,2분짜리)를 하나 골라 큰소리로 낭독한다. 완전히 소화될 때까지 하되, 뉴스 앵커라는 기분으로 한다.


  셋째, 안  보고도 할  수 있을  정도라고  판단되면, 기사를  보기 말고  누군가에게 사건을  얘기해준      다는 기분으로 연기하듯 읊는다.


  넷째, 유창하게 되면, 두 번째 기사로 옮겨가서 같은 방법으로 한다.


  다섯째, 한 면을 다 하면, 3단계에서 하듯 모르는 단어를 처리한다.


  여섯째, 광고, 대담, 만화에 이르기까지 신문에 활자로 박힌 모든 걸 그렇게 한다.


  5단계를 정리하면 위와 같이 된다. 내 노하우의 피날레다.  아직까지 이 단계를 아는 사람은 K밖에 없다. K는 어떻게 되었을까? 5단계까지도 분명히 해치웠을 텐데, 어른이 되어서 외국어를 제대로 습득하는 길은 아직 이 방법밖엔 없는 것 같다. 답답함과 지겨움을  이겨내야하고, 수개월 동안 저녁시간을 주말을 제외하고는 할애해야 하는 방법, 보통의 인내와 각오로는 쉽지 않은 길이다.
  아이들의 경우는 훨씬 쉽다. 어느 날엔가 8살짜리 아들 녀석이 미키마우스 만화를 보고 있는데 오리지널이었다.

 

마침 'I wanna go home.' 이라는 말이 나오길래 물어보았다.
  "저게 무슨 뜻이게?"
  "응, 집에 가고 싶다구."
  아니, 이게 무슨 조화지? 마누라에게 물어보았더니 그 비디오를 벌써 통산 열 번도 넘게 보고 있는 거란다. 아이에게 다시 다른 말의 뜻을 물어보았더니 계속 전혀 망설이지도 않고 맞추는 것이었다. 그 녀석은 지금까지도 알파벳도 모르면서 거기서 배운 영어는 발음 하난 죽이게 한다. 완전 본토 영어다.
  언젠가 또 옛 친구를 만났는데 녀석의  딸 얘기를 해주었다. 지금 고등학교  3학년인데, 중학교 때부터 출장갔다오면 선물로 영화 비디오 테이프를 사다 주었단다. 그걸 그렇게 열심히 보더니만 요즘 영어 하난 전교에서 최고라고 한다.


  말 나온 김에 어린이들이 영어를 쉽게 익히는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해볼까? 우에서 얘기 한 대로 스스로 재미 있어서 접하게 해야 한다. 영어 조기 교육이랍시고 초등학교에서 발음, 문장, 표현력 모두 콩글리쉬에서 한 발짝도 안 벗어난 선생님이 칠판에 써가면서 주입식으로 가르치는 건 거의 아무 소용도 없다.
  애들이 집에 와서 영어 단어 몇 개 주워섬기는 걸 보고 부모들이야 무척 신기하고 대견하겠지만,  그걸 어디다 쓰랴.
  일단, 초등학생일 경우는 재미 있어 하는 만화나 애니메이션 영화 비디오를 보게 하라. <미녀와 야수>, <에일리언>,  <피터팬> 같은 것도 어른도 볼 때마다 재미 있는 명작이기도 하다.
  중학생에게도 마찬가지로 영화 비디오가 좋다.  텔레비전에서 해주는 명화 중에서 중학생 이상으로 골라 녹화해 주어도 된다. 중학교 졸업할 때까지 그저 그 정도면 족하다.
  고등학교에 올라가선 여기 소개한 어른용 노하우  그대로 따라 가면 된다. 초등학교에서부터  고등학교 올라갈 때까지 계속 영어 비디오를 본 아이들은 그 노하우를 우습게 뗄 것이다.


  외국에서 태어나 자란 아이들을 보면, 우리말이 대체로 서툴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예외도 가끔은 있다. 내가 만난 아이들 중에서 가장 신기했던 애는 이랬다 열 여섯쯤  먹은 그 애는 독일 교포 2세였는데, 우리나라 말을 너무나 잘하는 것이었다. 그냥 유창한 정도가 아니고, 고사성어까지 간간히 섞어가면서 하는 완전 고급 한국어였다. 그래서 물어보았다. 혹시 중간에 한국에서  산 적이 있냐구. 아니란다. 방학 때 교포 이세들을 위해서 이대나 연대에서 개설되는 코스를 다닌 적도 없고,  "아버지께서는 어릴 때부터 제가 독일어로  당신께 얘기하면, 대꾸도 안 하셨어요.  그래서, 어머니와는 독일어, 아버지와는 한국말로 대화하면서 자랐죠."
  "주말이면 부모님은 어디선가 우리나라 드라마, 영화 비디오 테이프를 쇼핑백 가득 빌려와선 같이 보자고 하셨어요. 어떤 작품은 너무 재미있어서 밥도 TV 앞에서 먹고, 가끔 밤을 새곤 했죠.
  그랬는데 언제부턴가 우리 나라 소설책이 보고 싶어졌어요. 그래서 아버지께 말씀드렸더니 지하실에서 한 보따리 찾아가지고 오시대요."


  그 책들을 읽으면서 걔는 비로소 한국어의 묘미를 깨달았다고 했다. 그래서 나중에는 고사성어까지 섭렵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예는 다시 한 번 외국어 습득의 왕도가 무엇이지 일깨워준다. 억지로 주입하고 암기시켜서 될  일이 아닌 것이다.

 

제 27 부 영어 다시 시작하자

 

  어른들이 외국어를 배우기 힘든 또 하나의 여유는 고정된 말투 때문이다. 좀 통하는 콩글리쉬하는 사람들은 영어로 말을 하긴 하는데 그 말투는 한국말 말투와 똑같다. 특히 사업상 바이어들을 자주 만나다 영어를 익히게 된 사람들의 영어는 무슨 퍼즐 같다. 나중에 이 사람들이 한국말 하는 걸 보면 한국말도  퍼즐이다.
  '그 건은 그런 것이 아닌데, 그 쪽에선 자꾸 그렇다는 거야. 그게 결국은 그때 쑤셔만 놓고선 저 쪽으로 붙었잖아. 그것 때문이야.'
  사투리를 쓰는 경우는 조금 심각하다. 그 중에서도  경상도 사투리를 고치려고 해도 잘 안되는 사람은 문제가 좀 크다. 그 사투리의 특징이  몇 가지 발음이 없고, 독특한  높낮이가 있기 때문이다. /P/와 /F/, /B/와 /V/ 발음 구별을 가장 못하는 사람들도 대부분 경상도 출신이다.


  아무튼 영어를 잘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사투리를 고쳐야한다. 아니 사투리를 고친다기보다는 표준말을 익힌다고 해야겠지. 그래야 영어에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사투리가 안 섞여 나온다. 모 미국인국제 변호사가 부산사투리 그대로 한국말 하는 걸 들으면 신기하고 재미있지만, 우리나라 사람이 경상도 사투리로 영어 하는 건 코미디처럼 보이기 쉽상이다.
  점잔 떠는 사람들, 무게 잡는 사람들도 영어를  잘 익히지 못한다. '애가 어른 이름을 함부로  불러대질 않나 서로 반말지꺼리 하는 꼴이 순 상놈이다' 라고 생각하는 한 절대로 영어를 잘 할 수가 없다. 영어에 우리말의 말하는 예의 같은 게 없다는 걸 이해하려는 마음이 아예 없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은 타 문화권에 대한 예의를 먼저 배워야 한다. 그것은 '다름'에  대한 '존중'이다. 우리의 고유한 모습이 자랑스럽다면, 우리와 다르게 사는 모양에 대해서도 경외할 줄 알아야 G나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 부분에서 많이 모자란다는 느낌이다. TV나 라디오, 신문 등의 대중 여론 매체에서조차 다른 나라의 '고유한 문화'를 우리에게 '낯설다'는  이유만으로 웃음거리로 삼거나 무시하는 짓을 빈번히 저지른다. 그 나라가 우리나라보다 문명이 떨어지는 데라면 그 중세가 더욱 심해지고 노골적으로 나타난다. 이 요상한 '우월감'은 대체 어디서 연유하는 걸까?  내 개인의 역사를 훑어보면 아무래도  유신독재 시절의 '국민 세뇌 교육'  때문인 듯하다. 나는 '삼천리 금수강산은 세계 어느 곳보다도 경관이 아름다우며, 인도의 지성 타고르마저 칭송한 동방의 등불 우리나라는 충효예지 면에서 전세계 탑이고, 또 유태인 다음으로 머리가 좋은 유전자를 지니고 있는 바, 선진국 진입은 시간문제다'라고 시간 날 때마다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고 자랐다. 거기에 당시 권력에 빌붙어 제 한몸 살아남기에 급급했던 언론 매체까지 그 집단 최면 전략에 가세했으니 당시 교육받은 사람들은 지금도 우리나라가 그런 줄 안다.


  우리나라 금수강산 못지 않은 빼어난 경관이 전세계에 무척이나 많고, 세계적 관광지에서 건방지고 버릇없기로 소문난 나라가 바로 우리나라이며, 도대체 세계의 각국 국민들 대상으로 아이큐 검사를 했는지조차 사실 검증이 안된다. 미국 대학에서 수석 졸업하는 숱한 코리언이 한국의 대표성을 가진 머리가  아니라는 것 쯤은 아이큐가 팔십만 되면 다 알 수 있는 얘기건만, 그걸 들먹이며 우리나라 보통이 아니라고 거품을 무는 아이큐 백이십 짜리들이 너무 많다.
  요즘 TV 공익광고에 한참 등장하는 케케묵은  캐치프레이즈 '한국은 위기에 강하다' 또는 '위기일수록 지혜가 빛나는 ' 한국인 운운도 사실 알고 보면 그 말도 안 되는 집단 최면 전략의 아류다 그 증거는  많았다. '집단 사재기'가 판을 치고, 나 혼자 잘 살겠다고 달러를 쟁여 놓고, 외제차와 양주판매는 오히려 늘어났던 지난 겨울을 보라. 우리나라 사람들도 다른 나라와 전혀 다르지 않은 보토의 국민이라는 것이  여실히 증명되고 있었다.


  역대 정부가 무슨 의도로 그런 식의 최면을 걸었는지는 이제 많이 알고 있겠지만, 그 최종 결산이 바로 '국가부도사태' 라는 건 잘 모르는 것 같다. 세계적으로 잘 나가는 나라와 하나하나 직접 비교해서 우리나라는 이렇게 못났다고 여러 무게 있는 언론매체에서 대형 사건 하나씩  터질 때마다 갈파 또 갈파했건만 꿈쩍도 않던 게 바로 우리나라 대중이었다. 그 십수년간의 집단 세뇌와 최면의 여파는 아마 상상  이상으로 뿌리가 길 것이다. 경제우기가 슬슬 정체를  드러내기 시작한 지난 여름 등장한 '박정희 신드롬'이  그 생생한 증거다.


  실상을 알고 보면 '인간 박정희'가 그리웠던 게 아니고 그 시절의 국가가 보증한 우월감이었을 게 틀림없다. 그 신드롬은 앞으로도 헐리웃 영화에서 죽여도 죽여도 다시 살아나 속편을 제작하게 만드는 자긋지긋한 망령들처럼 계속 살아날 것이다.
  하여, 다시 영어 배우기로 돌아가자, 영어를 잘 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에 대해서 먼저 얘기하는 게 순서가 사실 맞다. 입시, 입사시험, 조기 교육, 그밖에 '아 글쎄, 옆집 애가 하니까' 등의  온갖 이유나 목표는 영어를 잘해보겠다는 성취동기 유발에 별 도움이 안 된다. 영어는 현재 세계를 주름잡고  있는 미국인의 언어이며 싫든 좋든 그들의 문화를 잘 알아야 하는  시대가 도래했다는 사실에 대한 냉철한 인식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먹고, 입고, 사는 방식은 그들과 더 닮아가기를 추구하면서도 사고방식은 조선시대 조상들의 '계급차별' 과 '편가르기'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우울한 상황을 타파할 수 있는 무기가 '잘 배운 영어' 일 수도 있다는 걸 이야기해주어야 한다.


  우리나라 기성세대들은 아직도 젊음을 잘 모른다.  젊은 사람들은 말랑말랑한 두뇌조직을 가지고  있는 존재다. 무엇이 자연스럽고 어떤 게 인간 존재에  가까운 건지 본능적으로 간과하는 능력도 아직 살아있다. 그들은 서태지의 '탁월한' 음악성에도 열광하지만, '우리 것'  이 가지고 있는 깊디깊은 격조에는 침잠하는 객관적 감수성을 가지고 있다.
  할리우드 영화가 직배되면 문화적으로 더욱 예속이 될 거라는 둥, 일본에 문화까지 개방하면 그들에 의한 식민시대가 다시 도래할 것이라는 둥 하면서 젊은이들의 고른 성장을 방해하는 소위 사회 지도층들이야말로 문제아들이다. 국민들이 그들에게 지도해 달라고 부탁한 적이 없지만 그들은 그들을 그렇게 지칭해주는 대중매체에 힘입어 국민들을 열심히 지도한다. '내가 과연 지도층일 자격이 있는가' 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던져 보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을 그래도 냉정하게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젊은이들은 가지고 있다. 그들에게 영어는 그래서 중요하다. 영어 문화권의  바탕이 '개개인의 개성 존중'  과 '휴머니즘'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젊은이들에게 가장 부족한 영양분이 바로 그것들이다. 태어나서부터 하나의 독립된 개인이 될 때까지 그들에게 주어지는 환경은 유감스럽게도 '우등한 자가 지배하는 세상' 이다. 남들보다 잘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끊임없이 주문을 외는 부모와 선생과 사회 분위기  속에서 남들과 다른 개성, 작고 소박한 꿈은  설 땅이 없다.


  미국은 어떤가, 미국의 우등생은 학습 능력만 뛰어난 애들이 아니다.  인간이 갖추면 유용한 각종 재주와 덕목까지 남다른 아이들이다. 그런 아이들을 하버드, 버클리, 스탠포드, MIT 대학에서 선발해서 잘 키운다. 그렇게 해서 출세의 기반을 형성한 그들은 미국 사회의  지도층이 된다. 그래서 미국의 지도자들은 똑똑하다. 우리나라의 자칭 똑똑한 사람들과는 비교가 안된다. 국민들의 표를  먹고 사는 길을 택한 사람들은 기가 막힌 연설 능력은 당연히 보유하고 있고,  외국의 대사를 선택한 이들은 그 나라의 언어  습득 능력을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처럼 제나라 말도 제대로 못하면서 대통령이 되는 경우는 없다.


대사로 나가서 자국의 국민들 괴롭히는 일이 하는 일의 전부인 경우도  물론 있을 수 없다. 그래서, 미국인은 그들을 믿을 수 있다.
  우리나라의 젊은이들이 영어를 배워야 하는 이유는 거기에 있다. 영어 문화권의 우수함이 무엇에 기초하고 있는가를 알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그곳에 가서 살다온 사람들이  하는 얘기, 신문이나 방송의 특파원이 전하는 소식은 별로 신뢰성이 없다. 그들은 어차피 자신의 경험 테두리 안에서 보고  들은 걸 전할 뿐이다. 그리고 그들이 일반적인 한국인의 교육으로 말미암은 맹점을 극복하고 그 사회를  받아 들이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영어를 잘 익혀서 직접 듣고 보고 체험하는 게 미국을 가장 올바로 알 수 있는 길이다. 그들의  신문과 방송과 영화를 그들의 말로 이해할 수 있을 때 그들의 참모습을 그나마 가까이 알 수 있다. 물론, 이십여년 우리나라 교육체계 속에서 받은 부정적인 부분은 스스로 부정할 수 있다면 그 효과는 더욱 커질 것이다.
  영어를 통해서 영어 문화권을 이해하게 되고 그 덕분에 평형감 있는 사고와 세계관을 얻을 수  있다면, 그건 참으로 값진 재산이 될 것이다. 영어로 된  지식의 보고를 자유자재로 넘아들 수 있고 영어를 쓰는 석학들의 말과 문장을 유유히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건 우수리로 떨어지는 혜택이다.

 


 

출처 : 프리즌브레이크미국드라마공부방
글쓴이 : 대장~fabulous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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