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 비평

손우정 2008. 1. 8. 10:48
 

2008년 정치전망

- 총선, 총선 후 전망을 중심으로 -


 

대선과정, 그리고 대선 이후 각 정치세력의 최대 화두는 총선이다. 총선이 끝나면 앞으로 3년 동안은 선거가 없기 때문에 18대 총선은 최소한 의회정치체계 내에서 향후 3년간의 정치구도를 확정짓는 선거가 될 것이다.


그것이 어떤 방향이건 간에 18대 총선 결과가 새로운 체제를 향한 정초선거가 될 지, 87년 체제의 재판이 될지는 아직 단언할 수 없다. 그러나 현재 각 정치세력의 동향과 국민정서를 고려할 때, 그동안 진보·개혁 세력이 꿈꾸던 대안체제와는 전혀 다른 체제의 시발을 알리는 선거가 될 가능성이 높다.


대선 이후 총선을 준비하는 각 정치세력의 동향을 점검해보고, 현 구도에서 진보세력의 대응방향을 살펴보자.


1. 보수진영; 장기 안정화인가 새로운 분열인가?


이번 대선은 보수세력에 패배한 진보세력이라는 측면이 부각되었을 뿐, 보수진영 내부의 세력관계가 역전된 측면은 잘 다루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는 매우 중대한 변화다. 다시 말해 보수진영 내부에서도 그동안 주류로 자리 잡아 왔던 소위 ‘올드 라이트’ 세력이 ‘뉴라이트’ 세력에게 주도권을 넘겨주었다.


한나라당 경선 과정에서 불거진 양 세력 간의 갈등은 어느 한쪽의 승리로는 봉합될 수 없는 관계다. 즉, 양 세력이 지분을 골고루 나누든지, 갈라서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미 안병직 뉴라이트재단 이사장과 자유주의 교육운동연합 대표인 조전혁 교수는 한나라당 싱크탱크인 여의도 연구소의 소장과 부소장으로 임명됐고, 많은 회원들이 인수위에 참여하고 18대 총선 출마의사를 밝히고 있다. 이는 필연적으로 기존의 당내 주류세력과 갈등을 일으킬 것이다.


현재 이러한 갈등은 공천시점을 둘러싼 의견대립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명박 측은 ‘3월중 공천’을 고수하고 있지만 박근혜 전대표 측에서는 늦어도 내달 초부터는 총선 출마자를 단계적으로 확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박근혜 측은 총선 공천 결과에 따라 모종의 조치를 취할 가능성을 열어 놓기 위해 조기공천을 요구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런 구도에서 주목되는 움직임은 이회창의 신당이다. 강삼재를 단장으로 하는 창당기획단이 이미 발족되어 권선택 국민중심당 사무총장, 최한수 건국대 교수, 이상돈 중앙대 교수, 김종연 국가정책연구원장 등이 참여하고 있다. 이회창은 무소속 출마와 자금 열세라는 약점에도 불구하고 대선에서 355만9,963표를 획득했기 때문에 총선에서도 충분한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대선과 달리 이회창 신당에는 기존 보수정당 의원들의 동참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는 점에서 한나라당 공천 결과에 따라 배제된 이들이 대거 이동할 수 있다. 특히 인수위 남성욱 교수의 취임식에 북한 고위 인사 참여 발언에 대한 극우진영의 적대적 반응을 볼 때, 올드 라이트세력의 재결집과 정치세력화를 위한 집결지로 이회창 신당이 선택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내부갈등은 지분을 나눠 갖는 수준에서 봉합될 수도 있기 때문에 분열이 필연은 아니다. 친이명박 계열의 전략적 선택이 확고한 주도권 확립으로 갈지, 절충과 타협으로 갈지에 따라 결과는 다르다.


그럼에도 이명박을 중심으로 한 한나라당은 총선까지 지지세를 이어나갈 가능성이 높다. 유류세 인하와 통신비 절감 등 전형적인 파퓰리즘적 정책을 취임 초부터 추진하고, 많은 반발에도 불구하고 경부운하를 밀어붙임으로써 정치적 주도권을 계속 행사해 나갈 것이다.


대선과 연계된 총선이라는 시기적 특성과 반이명박 정서를 대변할 위협적인 정치세력이 부재한 상황에서 이명박의 한나라당이 정치적 주도권을 상실할 가능성은 현재로선 거의 없어 보인다. 한국갤럽이 조선일보의 의뢰를 받아 2007년 12월 25일부터 26일까지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18대 총선에서 한나라당을 찍겠다는 국민은 전체의 54%에 달한다.

 

 


2. 개혁(?) 진영; 괴멸인가 부활인가?


통합민주신당은 2월 3일 전당대회를 통해 새 지도부를 구성하기로 했지만, 내부 갈등은 오히려 고조되고 있다. 정권을 박탈당한 통합신당은 이제 ‘개혁’ 세력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기에도 민망할 지경이 되었다.


노무현 정권 5년 간의 실책 속에서도 어떤 대안적 지향을 보여주지 못하고 오로지 ‘반이명박’ 슬로건에만 목숨을 걸었던 후과는 총선에서 다시 한번 심판받을 가능성이 크다. 현재로선 통합민주신당이 의존할 수 있는 방법은 ‘반이명박’ 정서를 최대한 이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총선에서는 이 효과가 대선보다 크지 않을뿐더러, 효과를 본다 해도 의회 다수당으로서의 지위 상실은 기정사실이다. 자칫 잘못하면, 반이명박 전선의 주도권조차 이회창신당에게 넘어갈 수도 있다.


통합민주신당은 특별한 변수가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전국정당의 위상을 잃어버리고 호남지역에 국한된 지역당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한국갤럽의 여론조사에서 통합민주신당은 광주와 전북, 전남 등 호남지역에서 유일하게 1위를 기록했을 뿐, 타 지역에선 10%내외의 지지만을 얻고 있다.


더구나 대선 시기 약속했던 이라크 파병 연장안 반대 당론에도 불구하고 국방위 소속 의원들이 찬성으로 돌아서는 등 내부의 이질성은 더욱 커지고 이를 중재할 중심은 부재한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당 자체가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총선을 앞두고 위기를 직감한 의원들의 이탈 사태가 벌어질 가능성은 항상 존재하며 문국현의 창조한국당으로 합류하는 흐름도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애초 대선보다 총선에 무게를 실고 있었던 문국현의 창조한국당은 선거비용의 거의 대부분을 문국현 개인이 감당하여 재정 위기에 봉착해 있음에도 총선 출마가 어려운 상황은 아니다. 다만, 창조한국당은 정당중심성이 강한 민주노동당과 달리 문국현 개인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크기 때문에 총선에서 대선 득표 이상을 기대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관건은 창조한국당에 어떤 인사들이 결합하게 될 것이냐에 달려 있다. 국민들에게 신뢰를 심어줄 만한 상징적 인물들이 결합한다면 대선 득표 이상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겠지만, 여전히 문국현 개인에게 의존하는 가운데 총선이 치러진다면 자체 목표인 30석 획득은 쉽지 않아 보인다. 또한 문국현을 중심으로 한 정당에서 다양한 중진급 인사들이 결합한 정당으로의 전환 과정에서 문국현의 리더십이 얼마나 안정화할 수 있을지도 지켜볼 일이다.


창조한국당은 이회창의 신당과 마찬가지로 내적 변수보다 외적 변수에 더 크게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지리멸렬한 통합민주신당과 퇴행적 내부갈등에 발목 잡혀 있는 민주노동당의 이탈층을 흡수할 수 있는 경계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두 정당의 위기극복 여부에 따라 창조한국당의 지지율은 유동적이다.



3. 진보정당; 분열과 자멸과 도약의 갈림길


민주노동당은 총선전망에 대한 객관적 전망이 비관적이 아님에도 고질적인 내부갈등으로 인해 빨간불이 들어왔다. 물론 애초 기대했던 것만큼의 대선 후보 지지율이 나오지 않았지만, 대선과 총선은 다른 구도에서 전개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은 자신이 가용할 수 있는 자원을 동원하기보다 권력 상층의 패권적 행태에 매몰되어 있다.


민주노동당은 전통적으로 후보 개인에 대한 선호보다 정당에 대한 선호가 높은 당이다. 2006년 11월 한길리서치가 진보정치연구소의 의뢰로 실시한 여론조사결과에 따르면, 민주노동당을 지지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당 대선후보에게 투표하겠다는 사람은 26.7%에 불과했다. 이 조사는 당의 대선후보가 구체화되기 이전이기 때문에 어느 누가 후보가 되었어도 대선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기계적으로 대입하긴 어렵지만 이미 대선 일 년 전부터 민주노동당 대선후보가 획득 가능한 지지율은 2~3% 수준이었다.


그러나 정당 지지율은 다르다. 민주노동당은 대선 기간 동안 후보 지지율과 달리 10%에 근접한 지지율 상승을 경험하고 있었다. 이 점은 문국현의 창조한국당과 다른 점으로, 민주노동당은 대선보다 총선에서 강점을 발휘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왜 국민들이 대선에서 민주노동당을 선택하지 않았는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평가가 가능하다. 집권이 가능한 현실적 대안으로 인정받지 못했거나 지난 4년간 기존 정치세력과 큰 차별성을 드러내는 데 실패했을 수도 있다. 또한 운동정당적인 당 성격을 지역에서 뿌리내리는 데 성공하지 못한 것도 이유가 될 수 있다. 그러나 후보선정이나 선거 슬로건(그런 것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탓으로 모든 문제를 돌리는 것은 지나치게 안일한 생각이다. 


진보정당으로서 대선 결과에 대한 책임 있는 모습은 다시 한번 아래로부터의 구체적 실천을 조직하는 것으로 나타나야 했다. 그러나 생산적인 지점을 찾아볼 수 없는 퇴행적 정파 갈등에 매몰되면서 당 지지율은 5.3%로 추락했다(앞의 한국갤럽 조사). 이는 대선 결과나 외부의 다양한 조건 때문이라기보다 선거 이후 당 내부 대응 방식이 국민의 지지를 전혀 얻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민주노동당의 내부 갈등양상은 정책이나 발전적인 활동 방식에 관한 의견대립이라기보다 운동정체성 자체를 문제 삼는 방식으로 나타나고 있다. 민주노동당이 정파 간 갈등을 내포한 변혁지향적 사회·정치세력의 연합전선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볼 때, 근본적인 정체성 자체를 문제 삼는 방식은 분당 이외에 다른 해결책을 발견하기 어렵다.


자기 스스로 당에 대한 냉소주의를 확산시키고 있는 모습에서 분당보다 우려되는 것은 정파갈등에 소외된 평당원의 탈당과 지지층의 이탈이다. 지금의 논란이 얼마나 일반당원이나 지지층의 인식과 궤를 같이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평가를 내릴 수밖에 없다.


비록 대선에서는 기대에 못 미치는 득표를 기록했지만,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이 이용할 수 있는 자원은 적지 않다. 서울지역의 정당지지율은 통합신당의 지지율인 8%에 근접한 7.8%를 기록하고 있고 광주와 울산의 경우 10%가 넘는 지지율을 획득하고 있다.


민주노동당은 현재 중대한 갈림길에 서 있다. 총선에서 다시 한번 도약을 할지, 아니면 내부 갈등을 해소하지 못하고 지리멸렬할지는 철저히 주체세력의 전략적 선택에 달려 있다. 내부에 존재하는 다양한 정치세력을 절대 용인할 수 없을 정도로 갈등이 심각하다면 차라리 분당이 지금보다는 발전적인 대안일 수 있다.


어떤 경우이든 진보정당이 민중과 평당원의 의사와 괴리된 패권주의를 극복하지 않는 한 확산되고 있는 정치적 냉소주의를 돌파할 힘이 나올 수 없다. 당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각 정파 상층 그룹이 심각하게 되돌아봐야 할 지점이다.


위기를 이용하여 문제해결적 사회적 힘을 형성해야


이제까지 총선을 중심으로 한 정치세력의 동향을 검토해본 것처럼 18대 총선은 한나라당이 주도권을 확보한 가운데 자유주의 정치세력, 극우세력, 진보세력이 어중간한 ‘반이명박’ 전선에 모여 있게 될 가능성이 크다. 결국 이명박 정부가 정치적 위기를 겪더라도 그것은 이명박 정권의 위기일 뿐, 보수적 헤게모니의 위기가 아닐 수도 있다.


이런 상황은 의회체계 내부의 활동만으로는 진보적 대안체제 구축이 불가능함을 말해준다. 국민은 사실상 양극화 해소라고 할 수 있는 경제회생에 대한 기대로 이명박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지만, 이명박의 경제성장과 서민이 보는 경제회생이 다르다는 것이 확인될 때에도 의회체계를 통해 이에 대한 불만을 제기하고 원하는 답을 듣기는 어려워 질 것이다.


결국 진보적 대안체제를 실현할 방법은 의회체계가 아니라 ‘사회적 힘’을 형성하는 길만 남는다. 그러나 사회적 힘을 형성하더라도 이것이 운동적 성격으로만 존재한다면 대안체제 형성은 어렵다. 운동의 기본 사명은 문제제기이며, 문제해결은 ‘정당’의 역할이다. 민주주의의 기본 작동방식에 의하면 사회적 힘을 통해 문제를 제기하고 정당체계가 이를 해결하는 과정을 밟아야 하지만, 우리가 처한 현실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회적 힘’을 형성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 과제를 해결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의회체계 외부의 운동은 저항적 성격으로 이루어지기 마련이고, 이 내부에는 공동의 적만 존재할 뿐 각양각색의 대안이 결합되기보다 이질적으로 공존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런 구도에서 저항의 성공은 저항 목표의 해소로 끝날 뿐 새로운 대안을 구현하지 못하며, 바로 이 지점이 한국 사회 민주주의 운동이 겪어 왔던 한계이기도 하다.


이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현실적 방법은 합의를 형성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 세력 범주 내에 의사소통을 활성화하여 추상적 수준이라도 대안적 방향을 합의하고, 이를 바탕으로 저항과 대안을 동원하는 것이다. 대안을 동원한 사회적 힘을 바탕으로 해야만 공식적 정치체계 내에서도 대안적 힘을 형성할 수 있다. 즉, 집권세력으로 등장하는 길은 문제해결적 사회적 힘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이 말처럼 쉽지 않음은 소수 정치세력임에도 내부갈등을 해소하지 못하는 민주노동당이 보여주고 있다.


단 하나 희망을 걸어볼 수 있는 측면은 ‘진보진영의 총체적 위기 국면’이다. 위기는 양보를 이끌어 내고, 서로 가용할 수 있는 자원을 동원하기 위해 협력 동기를 높인다. 보수건 진보건 위기가 기회로 전화하거나 기회가 새로운 위기를 탄생시키는 메커니즘의 핵심은 여기에 있다.


오늘 진보세력은 위기를 절감해야 한다. 그것이 더 큰 위기를 피하기 위한 시발점이다. 물에 빠진 사람이 자신의 생명유지 외에 아무 것도 신경 쓰지 않듯, 위기를 절감함으로써 불필요한 갈등요소를 떨쳐 내야 한다.


물론 위기를 위기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협소한 이해타산의 틀에 갇혀 있게 될 경우, 정치체계를 비롯해 헤게모니 기구를 장악하고 있는 보수세력에게 승리할 방법은 없다. 이럴 경우 이명박 시대의 저항은 여전히 문제제기 수준에 머물 것이며, 대안 체제로의 전환은 또 다시 연기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