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 비평

손우정 2008. 1. 10. 23:33
   선거를 앞두고 각 후보의 공약을 분석해보는 것만큼이나 허무한 일은 없다. 수많은 선거를 거치며 공약(公約)이 공약(空約)이 된 사례를 수도 없이 목격해 왔을 뿐더러 낙관적인 전망으로 의지를 불태워 만든 청사진을 두고 현실 가능성을 운운하는 것도 그리 바람직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차라리 유권자의 입장에서는 전문가가 아니면 검증하기 어려운 공약집을 들춰보기보다는 후보자의 말실수나 그동안의 행적, 정치세력 간의 경쟁구도를 보고 좀 더 ‘좋은 후보’를 판별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자기를 찍어주면 다 잘될 것이라는 휘황찬란한 문장들을 보며 옥석을 가리기 어려워하는 것을 어찌 유권자의 탓으로만 돌릴 수 있을까?

 

  그러나 선거가 끝난 이후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일단 옥석을 가릴 필요도, 어느 것이 더 좋은지 갈등할 필요도 없는 단 하나의 약속만이 남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이명박 당선자의 공약 중 경제와 교육, 복지·인권 등 핵심적인 공약 몇 가지를 살펴보자.


경제: 신자유주의 정권에서 신자유주의 정권으로의 교체?

 

  먼저 그의 핵심 경제공약은 ‘대한민국 747’과 ‘줄푸세’로 요약된다. ‘대한민국 747’은 연 7% 경제성장으로 300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10년 내 4만 달러 소득을 달성하여 10년 내 세계 7대 강국으로 올라서겠다는 것이다. 박근혜 씨의 한나라당 경선 당시 공약을 수용한 ‘줄푸세’는 ‘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질서를 세우겠다’는 약속이다.

 

  이명박 당선자의 공약은 한마디로 기업의 규제를 풀고 세금을 줄여 주면 투자가 촉진되고, 투자가 촉진되면 경제성장과 함께 고용이 창출되기 때문에 양극화가 해소된다는 것이다. 여기에 민간자본을 유치해 다목적 한반도대운하 사업을 시작하면 경제성장과 지역발전이 동시에 이루어져 고용이 더욱 촉진된다고 주장한다. 한반도대운하사업의 경우 투입비용 대비 편익의 효율성과 생태계 교란으로 인한 환경재앙, 태안 사태에서 보듯이 화물선 침몰로 인한 수질악화 위험, 부동산 투기 조장 등을 이유로 반대여론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지만, 이명박 당선자는 이미 내년 총선 이후 18대 국회에서 이와 관련한 특별법을 통과시킬 계획을 가지고 있다.

 

  이명박 당선자가 저성장과 고용하락의 원인을 ‘규제’에서 찾고 있는 것은 규제 때문에 투자가 이루어지지 못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기업에 대한 각종 규제는 국민의 반기업정서와 맞물려 2000년 이후 연평균 설비투자율이 2.2%에 불과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현실과 다르다. 경제를 조금만 아는 사람이라면 기업의 설비투자 위축이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강화된 BIS(자기자본비율) 조건과 주주 이익 극대화를 추구하는 이른바 ‘주주자본주의’ 때문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주식시장을 장악한 해외 투기자본은 국내 설비투자보다 주주로서의 단기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 기업운영을 경영진에게 요구했고, 인사권을 주주에게 저당 잡힌 경영진은 이들의 요구에 적극 호응했다. 해외 투기자본은 설비투자 대신 론스타의 외환은행 매각 사태를 낳았을 뿐이다.

 

  그럼에도 이명박 후보는 규제 완화와 감세, 해외 자본 유치가 어떻게 설비투자와 고용창출로 연결될 수 있는지에 대한 속 시원한 설명을 하지 않고 있다. 이는 신자유주의 시대 투기자본의 야만적 성격을 애써 회피하고 있기 때문이다. 해외 투기자본을 제어할 수 있는 대안보다 외국인 투자자들의 국내 활동과 거주가 불편하지 않도록 영어 공교육을 강화하겠다는 식의 발상만 존재한다.

 

  위에서 확인되듯이, 이명박 당선자의 경제공약은 사유화(privatization)와 자유화(liberalization), 그리고 탈규제(deregulation)를 시장경제의 핵심으로 보는 전형적인 ‘신자유주의 정책’에 개발국가적 관점이 결합된 것이다. 이는 노무현 정권 경제기조의 연장선에 있다. 이명박의 당선이 정권‘교체’라기보다 ‘노무현 신자유주의 정권’에서 ‘이명박 신자유주의 정권’으로의 ‘연장’에 가깝다고 볼 수 있는 이유다. 당선자의 주장처럼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는 ‘성장보다는 분배우선’정책에 입각해 있지 않았다. 오히려 ‘분배보다는 성장’만을 우선시해왔다는 것이 더욱 정확한 평가다. 노무현 정권보다 더욱 확실한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하려는 이명박 당선자가 과연 국민이 노무현 정권에게서 느꼈던 불만의 원천인 양극화 해소를 이뤄낼 수 있을지 확언하기 어려운 이유다. 


교육: 맘대로 하게 내버려 두면 사교육비 절감되나?

 

  교육분야에 대한 공약도 의문점이 많다. 이명박 당선자는 치솟는 사교육비로 인한 교육 불평등 문제를 기숙형 공립고 150개와 자율형 사립고 100를 설립하여 해결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기숙형 공립고와 자율형 사립고 설립이 어떻게 사교육비를 낮출 수 있다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별다른 설명이 없다. 다만 저소득층에게 일정 비율을 할당해 질 좋은 교육을 받게 하는 식으로 교육평등을 유도하겠다는 것인데, 이는 오히려 특목고 진학을 위한 고입대란을 일상화하여 고등학교마저 서열화할 가능성이 더 높다.

 

  또한 저소득층에 대한 교육비 지원 방안도 모호하다. 국가장학기금을 설치해 일반 학교 저소득층의 교육비 전액을 포함한 자율형 사립교 입학생의 30%, 기숙형 공립학교 학생의 70%에게 적지 않은 장학금을 지원하겠다고 하는데 감세와 지원확대를 어떻게 병행할 수 있는지에 대한 설득력은 부족하다. 이명박 당선자는 자율형 사립고 100개 설립을 위해 법인전입금 기준을 현행보다 낮춰 연간 2,500억원 수준의 교육재정을 절감하겠다고 약속했다. 과연 절감되는 것이 학부모들의 교육비인지 재단이 투자해야 할 교육비인지 어리둥절한 대목이다. 결국 고교평준화 해체는 소수의 장학금혜택과 다수의 등록금 인상이라는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 

 

  치솟는 대학등록금에 대한 공약도 무이자 학자금 융자나 대학기부금제도, 근로장학금 확대 등이 제시되었을 뿐 등록금 문제 자체에 대한 해결방안은 찾아볼 수 없다. 소수의 학생에게만 제한된 혜택을 제시하는 것으로 300만 대학생의 등록금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더구나 대학자율화란 이름으로 등록금 인상률을 각 대학에 맡겨놓는 것은 대학 간 무한경쟁구도에서는 등록금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현실을 외면하는 것이다. 여기에 국립대의 단계적 법인화 추진은 국립대학이 가진 최소한의 공공성도 방기하게 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인권: 국민은 정신교육 대상?

 

  이명박 당선자에 대해 막연한 거부감을 느꼈던 많은 이들은 그의 ‘인권관’, ‘민주주의관’을 우려했다. 사실 민주주의의 후퇴 가능성을 이야기하기에는 우리가 성사시킨 민주주의의 현실은 초라한 수준이다. 우리 사회의 인권과 민주주의가 눈부시게 발전했다는 고정관념을 거둔다면, 우리가 발전시킨 것은 절차적 ‘선거’에 국한된 제한적 민주주의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진정한 인권과 민주주의가 ‘인간답게 살 권리’, ‘국민의 자기통치’를 의미한다면 대한민국 인권과 민주주의 시계는 이제 겨우 정오를 향하고 있을 뿐이다.

 

  인간답게 살 권리를 위한 이명박 당선자의 복지공약은 훌륭하다. 물론 세세한 부분의 문제와 모순은 있지만 전반적인 방향은 이명박 정권을 ‘좌파정권’이라 불러도 무방할 정도다. 그러나 대부분의 후보들이 내세우는 복지공약은 좋은 말만 다 가져다 붙인 청사진만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항상 이를 실현시킬 재원부족과 의지박약이다. 실질적인 복지혜택을 확대하기 위해선 세금인상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이명박 후보의 감세정책은 복지공약의 실현 가능성에 회의를 품게 만든다. 물론 어떻게든 복지공약을 지켜낼 수 있다면 서민에겐 좋은 일이다. 이를 가능하게 만들기 위해 이명박 당선자가 얼마나 확고한 의지를 보일지 국민 스스로 눈을 부릅뜨고 지켜볼 일이다.

 

  그러나 나름대로 좋은 방향을 제시한 복지공약과 달리 그의 인권관련 공약은 매우 심각한 문제를 가지고 있다. 예를 들면, 공약 중에는 군대가 국민정신교육의 도장 역할을 하여 국가관과 대적관을 확립해야 한다는 내용이 있다. 아직도 국민을 ‘정신교육’을 받아야할 대상으로 보고 있는 상황에서 진정한 민주주의, 인권의 가치를 기대하기는 무리인 듯싶다. 한나라당은 선거 전 국가보안법폐지국민연대가 국가보안법과 관련해 후보자의 입장을 물었던 질의에서도 그동안 국가보안법 오, 남용사례가 없었다며, 오히려 공안기구를 확장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미약하나마 조금씩 발전되어온 한국 민주주의가 ‘오로지 경제’ 슬로건 앞에 뒷걸음치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러울 따름이다.


  대부분의 국민이 이명박 당선자의 공약 중 한반도대운하를 제외한 세부적 사항을 잘 모르듯, 이번 대선은 ‘어떤 미래를 선택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과거를 반대할 것인가’를 선택하는 선거였다. 국민은 부패혐의를 받고 있는 신자유주의 산업화세력보다 고용 없는 성장, 양극화의 심화를 가져온 소위 ‘신자유주의 개혁세력’을 거부했다. 그러나 우려스러운 것은 노무현 정부에서 나타난 문제가 이명박 시대에도 해소될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점이다. 이명박 당선자에 대한 국민의 지지는 이전 정부와 무엇인가 다른 방향을 요구한 것이었지만, 남북관계나 민주주의, 인권에 대한 측면을 제외하면 기본 경제정책 기조는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성장이 곧 고용’이라 보는 듯한 이명박 당선자는 이미 ‘고용 없는 성장’을 경험해온 국민에게 뭔가 다른 현실을 보여 주어야 한다. 만일 친기업정책을 통해 노무현 정권에서처럼 ‘가진 자’들만 더 잘 살게 된 세상을 보여준다면 그에 대한 막연한 국민의 기대는 구체적 분노로 바뀔 것이다.

 

  아, 그리도 또 하나. 국민은 이명박 당선자가 자기 집을 제외한 전재산을 기부하겠다는 공약도 기억하고 있다. 훗날 엉뚱한 곳에 기부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 월간 <사람> 1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