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 비평

손우정 2008. 2. 25. 09:20
 

주민피해 아랑곳없는 의정비 인상


작년 말 주민들의 반발을 샀던 지방의회 의정비가 결국 크게 올랐다. 2월 12일 행정자치부가 발표한 “’08 지방의원 의정비 지급기준 현황” 자료에 따르면 광역 자치단체 의정비는 평균 13%, 기초자치단체는 평균 36% 인상됐다. 이는 지난 해 제시한 38% 인상안에서 단지 2%가 낮아진 수준이다.


더구나 지방의원들은 지역주민의 이익을 침해하면서까지 자신들의 의정비 인상을 강행한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지난 해 말 행자부는 의정비 인상율이 지나치게 높은 44개 자치단체에게 인하를 권고하고,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교부세 감액, 자치단체 국고보조사업 공모·평가 시 감점 등 각종 불이익을 주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들 중 9개 자치단체는 보란 듯이 인상을 강행했다. 서울 노원, 강북, 금천, 관악, 중랑, 은평의회와 울산 중구, 동구의회는 재정자립도가 2008년 기준 15.1%~41.8%에 불과한데도 모두 53%~75% 의정비를 인상해 5,000만원 안팎의 연봉을 확정했다. 이들이 행자부로부터 받을 재정인센티브 삭감 예상액은 서울지역의 경우 9,954만원에서 1억4,190만원에 이르며, 광역의회 중 경고를 받은 경기도의회는 7,252만원의 연봉을 확정해 5억3,312원의 재정인센티브 삭감이 예상된다.


충북 청원군 의회 의정비는 92% 인상돼 전국에서 가장 높았고, 재정자립도가 2007년 전국 꼴찌였던 경북 봉화군도 51% 인상안을 확정했다.


주민 없는 단체 자치, 토호 정치의 한계


의원들은 최소한 국장급 연봉은 받아야 한다며 의정비를 인상의 당위성을 주장하고 있지만 2006년에야 무급에서 유급으로 전환된 지방의원에게 왜 그토록 많은 월급을 주어야 하는지 납득할 수 있는 주민은 많지 않다. 더구나 지방의원들은 월급 이외에도 외유성 해외연수로 엄청난 세금을 낭비하며 엄청난 논란을 일으켜 왔지 않은가?


그럼에도 지방의원들이 의정비 인상을 강행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주민 없는 지방자치의 현실이 자리하고 있다. 통상 규모가 큰 집단보다 규모가 작은 집단에서 사회적 참여와 협동이 잘 이뤄지지만 우리 지방자치의 현실은 전혀 다르다. 대통령과 국회의원, 그리고 지방선거 중 가장 투표율이 낮은 게 지방선거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게 된 근본 원인은 지방자치가 주민들의 삶과 밀접한 관련을 맺는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우리 헌법 8장에는 국가와 지방 사이에 권한을 배분하는 지방자치제도를 명시하고 있으나, 관련 내용은 모두 지방자치단체의 역할과 조직에 대한 내용뿐이다. 노무현 정권의 분권은 지방정부의 자율성에만 중점을 둔 단체자치에 머물러 지방정부의 정책과정에 주민이 적극 개입하는 ‘주민자치’ 수준은 크게 미비하다.


또한 지방정치를 장악하고 있는 것은 종친회나 향후회 등과 같은 친목단체와 민주평통자문회의, 새마을운동조직, 바르게살기운동협의회, 자유총연맹 등에 얽히고설켜있는 지역 토호들이 대부분이다. 결국 진정한 지역공동체를 건설하는 수단으로서의 지방자치의 의미를 살리지 못하고 민주주의를 방해하는 아이러니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알다시피 대부분의 지방의회는 한나라당이 장악하고 있으며, 대권까지 그들의 손에 넘어갔다. 곧 있을 총선에서도 한나라당의 독주가 예상된다.


주민을 주체로 한 능동적 운동에서 새정치 시작해야


주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의정비가 폭발적으로 인상된 이유는 이처럼 주민의 힘을 별 것 아닌 것으로 보는 지방의원들의 오만과 독선이 자리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은 주민들의 힘을 과시하고 실질적인 ‘주민자치’를 만들어내는 길 뿐이다.


주민자치는 제도적 틀과 결합된 주민운동을 통해 시작할 수 있다. 절실한 동기, 분명한 목표, 실현 가능한 방법을 통해 조직된 주민운동은 주민자치에 대한 필요성을 공유시키고 지방정치에 대한 개입욕구를 불러일으킨다.


지난 해 전국적 이목을 끌었던 하남시 주민소환운동이나 2003년 부안 핵시설 반대운동 등은 주민자치를 위한 맹아적 운동이라 할 만하다. 하남시 주민소환의 경우 비록 투표율이 2.2% 부족하여 시장의 소환에는 실패했지만 2명의 시의원은 사상 처음으로 소환에 성공했다. 그러나 이를 실패로만 포장한 언론 덕택에 전국적인 주민소환 움직임은 한풀 꺾이고 말았다.


18대 총선을 앞둔 지금, 주민을 대변하겠다는 정치세력들은 엉뚱한 내부 분란에 빠져 의정비 인상에 반발하고 있는 주민들의 분노를 대변하지도, 조직하지도 못하고 있다. 이런 결과가 의정비 인상을 주도한 한나라당을 의정비 인상을 결단코 반대하는 주민들이 지지하는 역설적 상황을 만들어 냈다.


보수 일색의 정치구도 속에서 새로운 정치에 대한 희망을 주민과 국민들의 마음속에서 찾아야할 때다. 그들의 마음을 들여다본다면 최소한 불만이라도 대신 표출해 주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지난 해 왜 그토록 허황된 공약을 남발한 허경영 후보가 대중적 인기를 끌었는지, 헛발질만 계속하고 있는 진보·개혁세력이 되새겨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