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 비평

손우정 2008. 3. 6. 17:07

복지국가의 탄생


자본주의가 스스로 무너질 것이라는 마르크스의 예언은 적어도 지금까지는 실현되지 않았다. 많은 이들은 그 원인을 끊임없이 자신을 개조해 온 자본주의의 유연성에서 찾는다. 자본주의를 살아남게 만든 것은 그 체제가 가진 문제를 끊임없이 제기해 준 변혁 세력 때문이라는 역설이다.   


전통적 복지국가 또한 세계적 차원에서 벌어진 권력투쟁의 산물이자 자본주의가 자신의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선택한 생존 전략 중 하나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노동의 사회적 재생산은 주로 임금을 통해 이루어지지만 임금만으로는 재생산에 필요한 비용을 충당하는 데 충분하지 않다. 노동력 재생산에 필요한 모든 조건들이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환상은 경제 위기 때마다 반박되어왔다. 


결국 사회적 재생산을 위해선 순수한 자본순환에서 벗어나 있는 외부의 힘이 필요했고, 국가는 노동정책과 사회정책을 통해 이 전략을 수행했다. 대규모 연속생산에 기초를 둔 대량생산·대량소비 체제를 발전시킨 포드주의는 노동력 재생산을 보장하는 임금체계를 가능하게 했고, 국가가 구축한 복지 인프라는 ‘요람에서 무덤까지’ 안정된 삶을 보장하는 복지국가를 탄생시켰다.


복지국가에서 국가는 적대적인 자본과 노동의 이해를 매개하는 역할을 수행했고, 자본이 용납할 수 있는 수준만큼의 분배를 실시하여 부르주아가 파놓은 무덤을 메워 주었다. 결국 자본주의는 생산과정에 대한 자신의 통제권을 계속 확보해 나간다는 전제 하에, 분배를 요구하는 노동계급과 타협함으로써 자신의 생명을 연장했던 것이다.


복지국가의 위기와 신자유주의의 태동


유럽에서 복지정책은 유권자들에게 지속적인 지지를 받는 정책이었다. 복지정책의 수혜자 집단이 확산될수록 선거에서 이기려는 정치세력은 이들의 존재를 무시할 수 없게 됐다. 따라서 정권의 정치적 성향이 어떻든 정권교체 이후에도 복지지출은 쉽게 삭감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런 논리는 주로 경제호황기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경기위축이 장기화하자 실업률이 늘어나면서 평균실질소득이 감소했다. 이는 다시 근로소득세의 감소로 이어져 복지국가 재정기반을 축소시킨 반면, 실업률의 증대로 정부가 지출해야 하는 복지예산은 더 늘어났다. 복지지출을 늘리기 위해서는 외채에 의존하지 않는 한 세금을 인상하거나 보조금을 줄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불황기에 세금을 인상하기란 쉽지 않다. 자본가만이 아니라 능력과 숙련이 높아 실업의 위험이 상대적으로 적은 노동자들 사이에선 조세저항이 일어나기 쉽다. 이들은 오히려 감세를 요구한다. 낮은 경제성장이 지속될수록 사회보조금 삭감을 지지하는 투표자 층이 형성되었고 복지국가체제는 점차 위기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여기에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를 바탕으로 한 고임금 전략인 포드주의가 다품종 소량생산의 포스트 포드주의로 이행하고 ‘유연성’이 노동정책의 핵심 메커니즘을 대체하면서 국가권력은 전통적 복지정책의 수혜자로부터 점차 자유롭게 됐다. 여기서 두 가지 대응전략이 등장하게 된다.


하나는 노동력의 재상품화, 국영기업의 사유화, 사회복지의 사유화, 민간부문에 대한 탈규제 등을 핵심으로 하는 신자유주의적 대응이고, 다른 하나는 다른 하나는 탈상품화와 시장 세력의 조정과 개선을 위해 능동적인 국가개입을 표방하는 신국가주의의 탄생이다.


그중 신자유주의적 대응은 국가가 노동시장을 자본에게 유리한 세력관계로 바꾸고 소득분배를 악화시키는 경제상황에서 저임금을 단순히 보조하는 형태로 나타났다. 효과적인 파업행동을 저지하기 위해 노조의 능력을 약화시켰고 임금수준과 노동조건을 악화시키는 노동 유연성과 이동성을 촉진 했다.


소득안정을 위한 기존의 복지 프로그램과 경제성장은 서로 보완적인 것이 아니라 대립적인 것으로 규정됐다. 따라서 국가는 취약계층에 대해 직접적인 지원을 해주는 대신 복지단체나 구호단체의 노력을 간접 지원하는 형태의 복지를 선호하게 되었다. 이제 소위 ‘복지병’에 걸려 있다고 진단된 전통적 복지국가의 국민들은 국가의 보호막이 해체되면서 살기 위해 노동해야하는 생존경쟁에 내쳐졌다.  


제3의 길과 사회투자국가론의 탄생


영국에서 탄생한 사회투자국가론은 신자유주의 패러다임이 위력을 발휘하면서 노동당의 선거패배가 이어지고 있을 때 등장했다. 노동당은 자신의 이념과 노선에 대한 전면 재검토를 통해 1994년 새로운 복지관을 발표했고, 1997년 집권에 성공한 이후 기든스의 제3의 길을 모태로 한 새로운 복지 패러다임을 탄생시켰다. 이른바 ‘사회투자국가론’의 탄생이다.


사회투자국가론은 주창하는 학자들마다 개념과 강조점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일관된 틀로 평가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대체로 사회투자국가론은 전통적 복지국가체제의 복지가 수동적인 것이었다고 비판하면서 ‘능동적 복지’를 주장한다. 예전의 복지가 질병이 걸린 후에 그것을 치료하는 비용을 보조하는 수동적인 것이었다면, 능동적 복지는 질병이 생기지 않도록 예방하는 적극적인 조치라고 설명한다. 실업자에게 실업수당을 주는 것은 그들의 물질적 조건을 그 수준에 머무르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에 국민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라고 본다. 


따라서 사회투자국가론에서 중요한 것은 실업수당이 아니라 인적자본에 대한 투자다. 이들이 훗날 노동시장에서 배제되지 않도록 교육하는 것이 실업수당을 준비하는 것보다 더 필요한 일이며, 노동시장에 진입한 이후에도 유연화가 핵심인 포스트포드주의 시대에 맞춰 끊임없이 재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제기할 수 있다. 예방적 복지는 수동적 복지에 비해 비용이 덜 드는가? 대부분의 사회투자국가론자들은 이 질문에 대해 ‘국가만이 복지를 떠맡을 필요는 없다’고 답한다. 기든스를 비롯한 사회투자국가론자들은 국가가 떠맡던 복지를 시장과 시민단체와의 협력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이를 위해서는 분권화, 개방적인 의사결정, 효율적인 국가조직체계, 국가의 정책결정과정에 대한 시민들의 참여, 새로운 위기관리능력, 세계주의적인 국가비전 등이 마련되어야 하며, 국가와 시민사회, 그리고 시장이 적절하게 결합된 신혼합경제를 통해 능동적 복지를 위한 경비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혁신적 복지정책인가 복지의 후퇴인가?


사회투자국가론은 막상 듣기에는 참으로 매력적인 제안이다. 그러나 이론적인 주장과 그것이 현실에서 구현되었을 때의 결과는 다를 수 있다. 사회투자국가론은 질병이 발생하기 이전의 예방적 조치를 주장하고 있지만, 일단 질병이 발생한 이후의 조치에 대해서는 별다른 대책이 없다.


질병이 발생한 이후의 대처에 대해서는 시민사회와 시장과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말 정도로 모호하게 넘어갈 뿐이다. 결국 예방에도 불구하고 질병에 걸린 사람들을 힐난하면서 그들에 대한 국가적 책임을 은근슬쩍 회피해 버린다. 예방만을 강조하며 치료를 회피하는 꼴이다.


그런 면에서 사회투자국가론이 추구하는 능동적 복지가 이명박 정부의 복지정책에서 되풀이 되고 있는 것은 우연히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2월 25일 국회에서 가진 취임식에서 “누구나 인간다운 생활을 누리고, 다 함께 건강하고 편안한 사회가 되어야 한다”며 “시혜적, 사후적 복지가 아니라 능동적, 예방적 복지로 가야 낙오자 없는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가령 이명박 정부의 등록금 관련 정책은 능동적 복지가 그려낼 복지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명박 대통령의 등록금 공약은 등록금을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전면 인하하는 ‘보편적 복지’ 방향이 아니라 사회적 취약계층에게만 장학금과 보조금을 제공하는 ‘선별적 복지’ 방향으로 짜여 있다. 


OECD 국가 중 국공립대 대학·대학원 수업료가 3위(사립대는 5위)에 이르고 공교육비 가운데 부모나 학생이 부담하는 민간 부담률이 OECD가 민간 부담률을 조사하기 시작한 2001년 이후 7년째 1위를 기록하고 있는 현실에서 제한된 소수에게만, 그것도 온전히 감당할 수 있는 수준까지는 한참 못 미치는 장학금 지급이 얼마나 허무한 담론인지를 파악하는 것은 그리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선별적 복지는 사회투자국가론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보편적 복지를 추구하는 유럽에서도 선별적인 방식의 지원을 한다. 예를 들면 대학교육을 전액 무료로 제공하는 동시에 사회적 취약계층에 대한 생활비 지원을 ‘선별적’으로 병행하는 식이다. 결국 능동적 복지, 선별적 복지라는 담론은 복지의 토대가 전혀 없는 한국사회에서 보편적 복지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회피하는 프레임 전략일 뿐이다. 


사회투자국가론, 인간의 얼굴을 한 신자유주의?


사회투자국가론은 복지라는 것이 국민이 당연히 누려야할 어떤 권리가 아니라 이익을 창출하기 위해 투자되어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공공성보다는 시장의 효율성을 중시하며 국가에 의한 복지는 최소한의 취약계층에게만 제공하고 나머지는 시장에 맡기겠다는 선언과 다르지 않다. 결국 복지는 양극화를 완화시키기보다 고용촉진을 유도하는 제한된 효과만을 발생시킬 가능성이 높다.


물론 사회투자국가론자들은 신자유주의의 야만적 프로젝트에 희생된 서민층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유지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신자유주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꿀 의도는 별로 보이지 않는다. 기껏해야 ‘인간의 얼굴을 한 신자유주의’를 추구하는 전통적인 자유주의 복지국가 모델의 연장선에 있을 뿐이다.


사회투자국가론의 이론적 배경이 되는 제3의 길이 좌파와 우파의 구분이 의미 없어진 것으로 규정하고 새로운 ‘중도의 길’을 표방했지만 실상은 우파에 대한 좌파의 투항선언으로, 신자유주의를 추구하는 개량주의의 모습으로 나타났듯이, 사회투자국가론도 신자유주의의 폐해를 줄여나가면서 생명연장을 꾀하는 처방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전통으로의 선회가 아닌 새로운 복지방향 설정이 필요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전통적 복지국가를 모델로 회귀할 필요는 없다. 유럽식 복지국가체제는 소외된 계층의 삶의 질을 급격히 높이는데 크게 기여한 것은 사실이지만, 체제 자체가 가지는 고도의 관료성은 대중의 역동성을 사장시켜 국민을 복지정책의 시혜적 대상으로 전락시켰다.


전통적인 복지국가에서 사회민주주의를 추구하던 많은 정당들이 관료엘리트들이 지배하는 국가기구와 유사한 형태나, 국민정당과 같은 아주 애매한 사회기반과 강령을 특징으로 하는 모호한 정당으로 변질되었다. 정당과 노조의 조직율은 계속 낮아졌고 구성원들의 활동은 감소했으며 정당에서 평당원의 당생활은 점차 소멸해 관료정치화가 증대했다.


새로운 체제를 꿈꾸었던 정당들이 자신이 도전했던 그 체제를 점차 닮아 가면서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만들었다는 비판은 결코 지나친 것이 아니다. 민중을 배제하면서 나타난 관료화된 복지국가가 극단적인 민주주의와 제도외적인 운동을 억압하고 범죄시하면서 민주주의적 활력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은 포드주의 복지국가의 또 다른 이면이다.


결국, 사회투자국가론이 시장에 경도된 복지전략이라면 전통적 복지국가는 국가와 관료에 경도된 복지체제였다. 우리는 시장과 국가, 혹은 관료가 복지정책의 중심에 서는 것이 아닌 새로운 복지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복지의 대상에서 복지의 주체로


새로운 복지체제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우선 복지를 각론적 부문의 특수한 정책으로 인식하기보다 하나의 국가체제에 결합되어 있는 중심영역으로 사고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복지라는 것은 단순히 저소득층만이 누려야할 ‘없는 자들의 특권’이나, 있는 사람들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베풀어야할 ‘시혜’가 아니라 우리가 함께 살아가야할 공동체를 어떤 모습으로 가꾸어야 하는지에 대한 리모델링 사업이다.


다시 말해 정치나 경제체제와 동떨어진 잔여범주나 보완적 정책이 아니라 어떤 국가체제를 구축할 것인가의 문제의식 속에 복지에 대한 내용도 녹아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복지대안도 국민의 통제와 간섭을 받지 않는 시장이나 국가에 경도된 ‘일방적 복지’가 아니라 복지의 대상 스스로가 복지정책에 개입할 수 있는 능동적 주체성을 세우는 것이 핵심이다. 이는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는 모든 결정에 당사자의 개입을 보장하는 직접정치와도 일맥상통한다.


물론 사회투자국가론도 개방적 의사결정과 시민참여를 강조함으로써 복지 당사자의 주체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제도도 그 나라가 처한 역사적 맥락에 따라 전혀 다른 효과를 나타낸다. 예를 들어 브라질 포르투알레그리에서 획기적인 주민참여를 이루어낸 주민참여예산제의 경우도 국내에 기계적으로 도입되면서 기득권을 가진 토호 세력의 의지에 따라 좌지우지 될 수 있는 제한된 권한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커져 버렸다. 


신자유주의체제에서 시행되고 있는 ‘분권’이 지역 주민들에게 권한을 주는 주민자치라기보다 지방단체로 권한을 넘기는 단체자치에 불과한 우리의 현실을 볼 때, 전통적 복지국가의 한계는 사회투자국가론에서 극복되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재생산되면서 양적 복지조차 사라지게 만들 것이다.


복지 대상을 주체로 한 새로운 복지대안의 창출은 우리가 신자유주의와 다른 역사적 맥락을 어떻게 창출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 당장 필요한 것은 복지를 국가나 시장의 시혜적 조치나 수익 창출을 위한 투자의 대상이 아닌 당연 권리로서 보장하려는 국가차원의 적극적 의지, 실질적인 주민자치와 분권의 실현, 복지정책의 우선순위를 비롯한 집행방식과 예산범위 등에 대한 정책 당사자의 포괄적 결정권한 등이다.


복지정책의 당사자가 복지정책을 설계할 수 있는 실질적 권한이 부여되지 않는다면 복지정책은 시장의 상품으로 전락하거나 역동성을 상실한 관료주의에 숨 막히게 될 뿐이다. 개인의 창의성과 자율성이 확대되어가고 있는 현실을 거스르지 않으면서 어떻게 복지적 측면의 대안모델을 구축할 수 있는지는 매우 중요한 과제다.


베네수엘라 대통령 차베스가 빈곤을 없애는 가장 빠른 길은 빈민들에게 권력을 주는 것이라고 했듯이, 관료주의에 억눌리지 않으면서도 시장의 노예가 되지 않는 복지정책을 구현할 방법은 복지 대상을 복지정책의 주체로 세워주는 길을 새롭게 개척하는 도전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