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 비평

손우정 2008. 8. 1. 11:57

이명박 정부의 ‘선진화’ 정책이 그 면모를 속속 드러내고 있다. 행정안전부는 지난 5월 1일 자치단체 총액인건비 최대 10퍼센트 감축을 권고하면서 올해 안에 지방공무원을 약 1만 명이상 줄이겠다고 선언했다. 지난 7월 21일에는 국도·하천, 해양항만, 식의약품 등 3개 중앙행정기관을 올해 안에 지방에 넘기는 것을 시작으로 중소기업, 노동, 환경, 산림, 보훈 등도 향후 단계적인 지방이관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7월 22일에는 상호 업무가 유사하거나 중복되는 공공기관 통합은 물론, 경쟁 여건이 되거나 향후 경쟁 가능성이 높은 공기업의 민영화 계획도 밝혔다.

비록 촛불시위에 밀려 전기, 가스, 수도, 건강보험 등은 민영화 대상에서 제외하겠다고 말했으나, 이를 제외한 다른 공공기관은 실질적인 민영화 수순으로 이미 접어들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말하는 ‘선진화’는 정부의 역할은 유지하는 대신 정부규모를 최소화하고 공공서비스에 시장의 경쟁과 선택을 강조하는 ‘신공공관리’ 패러다임을 적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지방으로 이양된 공공기관의 궁극적 운명이 최소한 민간위탁이나 민영화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정부의 이런 조치가 치밀한 검토 없이 ‘정치적 동기’와 ‘신념’으로 추진되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겉으로는 재정적 요인이나 공급요인, 혹은 인구 통계적 요인을 내세워 공공기관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하지만 ‘선진화’로 포장된 민영화 수순이라는 확고한 목표와 재정을 연계시킨 구조조정 압력만 있을 뿐, 국민을 설득시킬 근거는 매우 취약하다. 정부의 행정기관 구조조정 계획과 추진과정은 마치 미국 쇠고기 협상을 벌이듯 일방적이다.

중앙 권한의 지방이양, 누구에게 권력 주나?

이러다보니 예상되는 문제점이 하나, 둘이 아니다. 먼저 중앙조직의 지방이양이 지방자치와 분권을 강화할 수 있느냐는 의문이다. 현재 지방자치가 본래의 의도대로 지역 주민들에게 권한을 주고, 지역 주민이 지역 행정에 참여할 수 있는 민주적 거버넌스로 운영되고 있다고 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현재 지방자치는 주민 없는 ‘단체’만의 자치로 전락했으며, 여기에는 수많은 이권조직과 지역 토호가 풀뿌리 보수주의를 강화하는 형태로 결합해 있다.

최근 서울시의회와 부산시의회 의장 선거에서 벌어진 ‘돈 잔치’는 실패한 지방자치의 단면일 뿐이다. 지방의회는 특정 정당의 의회독점으로 인해 이미 내부의 견제능력을 상실했고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온갖 비리와 무능, 이권다툼으로 점철되어 있다. 지난 해 주민들의 반발에도 의정비 인상을 감행한 지방의원들은 각종 외유성 해외연수로 여론의 뭇매를 맞고도 건재하다.

이런 상황에서 중앙조직을 지방으로 이관하는 것은 공공기관에 대한 주민의 통제력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특정 정치세력 내부의 권력 나누기’ 이상도 이하도 될 수 없다. 더구나 지방으로 이양된 공공기관은 ‘자치’라는 미명하에 제대로 된 감시 없이 민간위탁이나 민영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정부로서는 중앙 차원의 민영화에 집중되는 국민의 관심을 피할 수 있으며, 이 과정에는 지방권력과 결탁한 각종 이권이 개입될 것이 뻔하다. 토지 수용권까지 확보한 기업과 규제권한이 확대된 지방정부 사이에 은밀한 거래관계가 형성될 여지도 크다.

물론 지방자치를 실질적인 주민자치로 만드는 과제가 단기간에 이뤄질 사안은 아니다. 그러나 정부가 이런 지방자치의 문제를 해결할 최소한의 의지를 가지고 지방이양을 추진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서울과 부산에서 벌어진 돈 잔치에 대한 정부와 여당의 대응을 보면 지방자치 현실에 대한 반성과 고뇌는 찾아볼 수 없다.

지방의원의 막무가내 의정비 인상과 각종 비리가 봇물처럼 터져 나와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어느 때보다 높은 시점이다. 이때 정부가 중앙 조직의 지방이양 카드를 빼내든 것은 국민의 정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거나 문제를 문제로 인식하지 않은 처사다. 어쩌면 이런 인식 때문에 특정 정치세력이 지방의회를 독점할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시장에 맡기면 모든 것이 좋아지나?

이 외에도 ‘선진화’를 부르짖는 정부정책의 부작용이 의심되는 지점은 적지 않다. 특히 정부는 공공기관 운영의 효율성을 인건비 감축을 통해 확보하려 하지만, 실제 우리 공무원 규모는 인구 천 명당 19명으로, 75.2명인 OECD 평균에 한참 못 미친다. 물론 우리나라 공무원 산출기준이 외국보다 협소하다는 문제제기가 가능하지만, 비정규직 정부 종사자, 군인, 비영리 공공기관 종사자 등을 포함해 계산한 김태일 교수의 연구에 따르더라도 우리의 일반정부 종사자 규모는 인구 천 명당 35명으로 OECD 평균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공무원 인력감축이 마치 이견이 있을 수 없는 표준정답으로 강제되는 상황에서 공공업무의 공백을 메울 수 있는 방법으로 장려하는 것이 민간위탁이다. 그러나 민간위탁의 취지처럼, 경쟁요소를 도입해 재정적 효율성을 담보하고, 궁극적으로 고객만족을 실현하는 긍정적인 결과만을 낳지 않을 것이다.

민간위탁 계약과정에서 지방정부와 민간업체의 이권 결탁으로 공개경쟁원칙이 유명무실해진 사례가 부지기수고, 민간위탁기관에 투입된 운영지원금이 직영일 때보다 더 늘어난 실례도 많다. 수익창출을 목표하는 민간위탁 기업이 종사자의 수를 속이거나 업무량을 과장 보고해 부당이익을 챙기거나, 민간위탁 업체의 종사자에게 열악한 노동환경과 임금, 과중한 업무량을 강요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 때문에 대표적인 민간위탁 업무인 전국의 청소용역을 다 직영화하면 오히려 한 해 200억 원을 절감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한다.

민간위탁으로 고객만족도가 높아진 경우는 대부분 기업이 아니라 전국적 규모의 시민단체가 복지시설을 운영하는 사례들이다. 직영체제에 비해 지나치게 수익성에 집착하는 기업은 비정규직 채용을 늘려 운영경비를 줄이고, 직원의 근무조건과 환경에 대한 만족도를 낮추어 장기적으로 서비스의 품질 향상을 어렵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시장경쟁 = 고객만족’이라는 등식은 사실 별 근거가 없는 것이다.

여기에 정부가 진입·거래규제 등 기업 활동을 저해하는 경제규제분야 업무를 중점적으로 감축하고, 기업유치에 필요한 규제권한을 시·지사에게 대폭 위임하겠다고 밝힌 상황에서 환경업무 같은 규제성 강한 업무가 지방으로 이관된다면 제대로 된 감시활동을 할 수 있을까? 이런 상황에서도 시장에 넘긴 공공업무가 ‘공공’이라는 수식어를 유지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쇠고기 협상 과정의 교훈, 벌써 잊었는가?

물론 지나치게 중앙으로 집중된 공공업무 중에는 지방이양이 필요한 분야도 있다. 제대로 된 주민자치를 구현한다는 조건에서 분권은 반드시 추진해야 할 과제다. 때로는 효율성을 위해 공무원 감축이 필요한 경우도 있을 것이고 통폐합이나 민영화가 필요한 분야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정부는 지방단체에 재정지원을 미끼로 천편일률적인 구조조정을 감행하고, 민영화 만능주의에 빠져 정치논리로 모든 것을 밀어붙이고 있다. 이 상황에서 차분하게 구조개편의 득과 실을 따져 합리적인 구조조정 할 방안을 제안해 볼 여유도 허용되지 않았다.

정부는 지난 쇠고기 협상 과정에서 국민과 소통이 부족했음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그럼에도 이번 조직개편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이해당사자나 국민들과 폭넓은 의견을 교환하고, 이를 수렴하기보다 엘리트관료의 손에서 뚝딱 만들어져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고 있다.

이 상황에서 국민이 정부에 신뢰를 갖기는 어려워 보인다. ‘차라리 아무 것도 하지 말라’는 국민의 원성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정부와 여당은 다시 한번 곱씹어봐야 할 것이다.

 

* 7월 23일 작성글. 게을러서 늦게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