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 비평

손우정 2008. 9. 3. 10:34

지금 대학생들의 최대 목표는 단 하나, ‘취업’이다. 1997년 외환위기 직후 20대의 청년실업율이 5.4%에서 11.4%로 폭등한 이후,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지상 과제가 됐다. ‘취업율’은 대학의 수준을 가르는 기준이 됐으며, ‘좋은 과’와 ‘나쁜 과’도 취업 성적에 따라 나뉜다. 이런 ‘취업 만능주의’는 실제 취업률이 60~70% 정도에 불과한 대학이 ‘취업률 100%’라고 거짓 입시홍보를 하고 있는 신풍속도를 만들어냈고, 졸업생들에게 취업여부에 대한 거짓응답을 강요하기도 한다. 이제 대학은 엄청난 비용을 내고 다녀야 하는 거대한 ‘취업학원’으로 변질됐다. 진리의 상아탑? 취업 앞에선 콧방귀만 나올 뿐이다.

  

대학생들의 취업문제가 왜 이토록 풀리지 않고 있을까? 일자리가 없어서? 언뜻 당연하게 들린다. 그래서 선거철만 다가오면 모든 후보들이 ‘일자리 창출’을 공약으로 내건다. 한미 FTA 등 굵직한 국제 협약을 맺을 때도 항상 등장하는 것이 ‘일자리 창출’이다. 그러나 ‘충격적’이게도 한국은 일자리가 부족하지 않다. 중견기업(50~499명 사업장)의 인력 부족률은 경향적으로 낮아지고는 있으나 대체로 5% 내외에 이른다. 일할 사람을 찾지 못한 중소기업은 부족한 인력을 외국인 노동자로 채우고 있다.

  

그렇다면 대학생들의 눈높이가 지나치게 높은 것일까? 일부학자와 정부 일각에서 나오는 주장이긴 하다. 그러나 우리나라 고용의 질은 고용기회, 고용안정, 고용평등, 능력개발, 근로조건, 일과 가정의 양립, 참여·발언 등의 지표에서 세계 최하위를 기록 중이다. 중소기업 직장인들은 대기업 직장인들보다 더 많이 일하고도 더 적게 번다. OECD 국가 중 가장 많이 일하는데도 임금은 절반 수준이다. 눈높이가 높은 것이 아니라 고용의 질이 지나치게 낮은 것이다. 굳이 좋은 일자리(혹은 적절한 일자리)를 찾지 않아도 된다면 도대체 왜 그 아름다운 청춘 시절을 학교와 학원에서 보내면서 엄청난 돈을 가져다 바쳤을까?

  

청년실업 문제에 대한 근본적 해결책은 단순히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일자리’, 대학 졸업생의 수준에 맞는 ‘적절한 일자리’를 많이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에 시장논리를 개입하고 승자에게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가도록 불평등을 조장해야만 경쟁을 유도할 수 있고 사회가 ‘선진화’된다고 부르짖는 ‘신자유주의’ 세상에서 ‘좋은 일자리’가 많이 만들어질 가능성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이를 추측할 수 있는 일화가 있다. 지난 해 9월 12일 충남 목원대 취업박람회 현장에서 한 대선 후보가 이런 질문을 받았다. “경제가 성장하면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라는 정책이 혹시 비정규직의 확대로 귀결되는 것 아닙니까?” 그 후보는 이렇게 답했다. “앞으로 대한민국 모든 기업들에 종신제는 없을 겁니다. 본인이 다른 일자리를 구할 수도 있고 기업이 내보낼 수도 있습니다. 세계 어느 선진국도 우리와 비교해 비정규직의 수가 그렇게 적은 것이 아닙니다. 눈높이를 조금 낮춰 여러 경험을 살리는 것이 좋습니다.” 눈높이를 낮추라는 그 후보는 지금 청와대에 앉아 있다.

 

* 부산대학교 신문사에 기고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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