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 비평

손우정 2008. 9. 8. 09:34

사회학자 김동춘은 1997년 말 외환위기 이후의 한국 사회를 ‘기업사회’로 진단했다. 칼 폴라니가 주장한 기업사회는 시장이 사회로부터 분리되어 자율화하는 데 머물지 않고, 시장이 사회를 식민화한 상태를 말한다. 대학에서 유행어가 된 ‘CEO 총장론’에도 대학을 기업처럼 운영하면 발전할 수 있다는 기대심리가 작동하고 있다. 오죽하면 CEO 대통령까지 등장했겠는가?

  

삼성이 인수한 성균관대를 비롯해 인하대, 아주대, 국민대, 울산대, 포스텍, 중앙대 등은 이미 재벌기업에게 넘어갔거나 재벌이 만든 대학이다. 물론 기업이 대학을 인수하면서 대학재정은 크게 개선됐다. 대기업이 운영 중인 6개 대학의 2007년 재단 전입금은 평균 524억 원으로, 전국 4년제 사립대학 재단 평균 전입금인 35억6천만 원의 14배에 달한다. 기업이 직접 인수하지 않더라도 거의 모든 대학들이 사설 학원과 유통업체, 은행, 각종 서비스 산업 등을 유치해 임대 수입을 올리고 있고, 기업이 지어준 건물에 CEO 이름을 붙이거나 장기 임대권을 내주고 있다.  

  

등록금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치솟고 있는 상황에서 대학의 기업화가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주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현상은 국가정책이 의도적으로 만들어 놓은 결과다. 우리나라의 GDP 대비 대학 교육비는 OECD 국가 중 3위(국립대)와 5위(사립대) 수준이지만, 학생과 학부모의 교육비 부담율은 단연 1위다. OECD 국가들이 GDP 대비 평균 1.1%를 대학교육에 투자하고 있는데 반해 우리 정부는 2006년 현재 고작 0.6%(2005년 0.3%)만 지원했다. ‘대학자율화’로 포장된 역대 정부의 대학정책은 대학에 대한 책임과 지원을 줄여 나가면서 그 공백을 ‘자체 수입’으로 채워 나가도록 강요했다. 자체수입을 늘리기 위해서는 후원을 받거나, 임대 장사를 하거나, 기업에게 손을 벌리거나 등록금을 올려야 한다.

  

그렇다면 대학은 정말 돈이 없을까? 2005년 43개 국립대의 기성회계 수입 가운데 11.05%에 해당하는 1,653억 원이 이월액으로 처리됐고, 같은 해 사립대의 적립금 누계 총액은 4조,4,138억 원에 이른다. 2006년 전국 사립대의 예·결산 차액은 2006년 등록금 인상분의 2배에 가까운 1조2,156억 원이었다. 교육을 위한 재정이 없다기보다 다른 대학과 경쟁하기 위한 재정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대학들이 등록금 수입 확대를 위해 예산을 늘려 잡는 관행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대학의 목표가 합리적인 교육에 있는 것이 아니라 경쟁을 통한 ‘생존’에 치우쳐 있는 구조에서는 지나치게 자연스런 행위다. 

  

더욱 슬픈 현실은 ‘기업화’를 통한 대학재정 확충이 대학생들의 등록금부담 경감이나 권리확대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학생은 재벌의 지원으로 나날이 휘황찬란해지는 캠퍼스조차 마음대로 이용하지 못하는 단순 소비자로 전락했다. 기업사회의 특징이 소비자 주권시대의 도래라지만, 대우받는 소비자는 구매력 있는 경제적 상류층뿐이다. 몇몇 대학이 기여입학제 도입을 요구하고 있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기업이 된 대학에 다니면서 월급을 받기는커녕 엄청난 돈을 내야하는 이상스런 상황. 우리는 대학을 ‘다니고’ 있는 것일까, ‘소비’하고 있는 것일까?

 

* 부산대학교 신문사 기고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