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 비평

손우정 2008. 9. 24. 09:24

학벌사회. 한국사회 특징을 설명하는 또 다른 단어다. 어떤 대학에 입학하느냐에 따라 평생 따라붙는 파벌이 만들어지고, 이에 따른 유무형의 굴레는 엄청난 자산이 되거나 엄청난 굴레가 된다. ‘어느 대학 나오셨어요?’라는 질문은 한편으로는 반가운 것일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왠지 모르게 주눅이 들게 하거나 패배감을 안겨줄 수도 있다.

  

물론 대학을 1등부터 쭉 줄을 세우고, 높은 순위를 차지하는 대학 출신끼리 파벌이 조성되는 것이 오늘날의 특별한 현상은 아니다. 한국에서 ‘대학’은 저소득층이 유일하게 신분상승을 경험할 수 있는 ‘통로’였기 때문에 세계 어느 나라보다 교육열이 높았다. 그러나 대학자율화로 포장된 신자유주의정책이 전면화 된 이후 대학과 대학생수는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이제 ‘대학’이 아니라 ‘어떤 대학’이냐가 더욱 중요해졌다. 대학서열화를 통해 ‘경쟁’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변별력이 요구되었던 것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좋은 학벌 취득의 가능성마저 부모의 ‘경제적 지위’에 따라 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부모의 학력과 소득을 자녀의 대학 진학률과 비교한 연구에 따르면, 최상위 소득 계층(상위 25%)과 최하위 소득계층(하위 25%) 간 사교육 참여 여부는 2배가량 차이를 보였고, 상위 21개 대학을 기준으로 한 대학진학률 조사에서는 거의 8배의 격차를 보였다. 부모의 학력과 소득은 자녀의 수능점수와도 완전한 비례관계를 보인다.

 

또한, 부모의 학력과 재산은 그 자체로 학업성취에 큰 영향을 미치기도 하지만 가정 내 언어적 상호작용, 문화 실조, 부모의 자녀교육에 대한 기대수준과 지원 정도 등과 같은 문화자본, 혹은 사회자본도 큰 영향을 미친다. 서울대 사회과학원이 1970학년도부터 2003학년도까지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 9개 학과에 입학한 학생들의 기록카드를 조사한 결과, 일반 가정 대비 고소득층 가장 자녀의 입학비율은 1985년 1.3배에 불과했지만, 2000년에는 16.8배로 확대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에는 대기업 계열사나 일부 중소기업들은 구직자들에게 보모의 직장 내 직위, 최종 학력, 월 평균 소등 등의 정보를 요구하는 경우도 있으며, 홍보나 영업 등 일부 직종에 대해서는 ‘지인 중 각계 유력 인사의 이름과 관계’까지 적어낼 것을 강요하기도 한다. 잘사는 부모의 자녀들이 일류대학에 더 많이 들어가고, 이들이 졸업 후 다시 사회의 주류가 되는 순환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제 대학은 신분상승을 위한 통로가 아니라 부모 계급을 자녀에게 대물림하기 위한 통로로 변해가고 있다.

  

불행이도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지 못한 부모들은 이런 사실을 어렴풋이 깨닫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자녀교육에 목을 맬 수밖에 없다. 그 것 외엔 사회적 성공을 기대할 뾰족한 수가 없기 때문이다. 가능성이 희박한 줄 알면서도 개천에서 용이 승천하길 기다린다. 개천을 아름답게 가꾸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그 속에서 용을 ‘만들어 내야’ 하는 사회. 이것도 일종의 희망고문인가?

 

* 부산대학교 신문사 기고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