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 비평

손우정 2008. 10. 9. 11:49

한동안 논쟁을 불러 일으켰던 ‘대학생 보수화’ 현상은 이제 상식으로 굳어지는 것 같다. 지난 대선과 총선 과정에서 가장 보수적인 정당의 후보들에게 표를 던진 대학생들은 사회를 뜨겁게 달군 촛불정국에서도 별다른 활약을 못했다. 공안정국이 판을 치고 유모차 부대 어머니가 연행되는 상황에서도 잠잠하다. 그러나 대학생에게 과거 대학생들이 그랬듯 모든 사회모순을 해결할 것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다. 대학사회의 구조변화는 대학생마저 다른 존재로 변화시켰다.

  

대학생 수는 자율화가 본격 추진된 1990년대 중반 이후 급격히 증가에 2002년 기점으로 300만 명을 돌파했다. 대학진학율은 2006년 현재 82.1%에 이르며, 1975년 인구 만 명 당 66.7명에 불과했던 대학생 수는 2006년 623.2명으로 9배가 넘게 늘었다. 더구나 폭발적인 등록금, 치열한 내부 경쟁체제, 파편화된 대학생활, 좁은 취업문 등의 구조적 압박은 과거 대학생들이 가졌던 특권적 지위를 거침없이 빼앗아 갔다. 이제 대학생은 ‘20대’의 다른 표현으로, 평범해졌을 뿐이다. 

  

공동의 문제보다 자기 문제를 해결하기에도 급급했던 대학생들은 더 이상 사회 진보를 이끄는 주력군 역할을 해낼 수 없었다. 2000년 이후 대학사회에서 가장 많은 호응을 얻었던 등록금 투쟁 또한 몇 %를 인상할 것이냐의 수세적인 형태로 머물렀고, 한국사회, 그리고 대학을 지배하고 있는 거대한 흐름에 맞서기에는 모든 것이 부족했다. 입학과 동시에 맞닥뜨린 대학의 모습은 사회모순이 가득한 형태가 아니라 원래 그런 ‘상식’으로 슬며시 다가온다. 그리고 속삭인다. 받아들이라고.

  

하루 속히 대학졸업장을 받아들고, 좋은 회사에 취직하면 문제가 해결될까? 안타깝게도 신자유주의는 캠퍼스 울타리 안에만 머물지 않는다. 운이 좋아 정규직으로 취직이 되더라도 언제 터질지 모르는 구조조정의 악몽과 여가를 빼앗아가는 과노동에 시달려야 하고, 가정을 꾸리더라도 지금의 삶은 자녀에게 대물림 된다. 지금의 지배질서를 교정하지 않은 한, 이 악순환을 끊을 방법은 없다.

  

이것은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어떤 흐름이 대학생만이 아니라 노동자, 농민, 자영업자, 도시 빈민 등 사회적 약자들의 고통에 중요한 원인이 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1990년대 중반부터 몰아닥친 이 흐름을 우리는 ‘신자유주의’라 명명했다.

  

물론 대학생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그러나 대학생‘도’ 이 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대안을 창출하는 길에 기꺼이 동참할 수는 있다. 이를 위해서는 캠퍼스 밖의 사회의제를 자신문제의 연장성에서 사고하는 인식지평의 확장이 필요하다. 학내에서 느끼는 모순들은 사회적 지배질서에서 파생된 부산물일 뿐이다. 물론 이 체제는 미국의 리먼 사태에서 보듯이 무너지고 있다. 이제 선택이 남는다. 순응할 것인가 변화시킬 것인가? 신자유주의시대의 대학 앞에 절망하는 대학생들에게 묻는다.

 

* 부산대학교 신문사 기고글. 연재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