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 비평

손우정 2008. 10. 15. 09:15
  
11일 밤 서울 청계광장 부근에서 이명박 탄핵을 위한 범국민운동본부 주최로 열린 밤샘 침묵촛불문화제에서 한 참가자가 촛불을 붙이고 있다.
ⓒ 권우성
촛불집회

 

새로운 상설 연대기구, 민민연의 출범

 

2008년판 국민운동 연대기구는 '대중 없는 대중운동'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을까? '(가칭) 민주수호, 촛불탄압 저지를 위한 비상 국민행동(이하 국민행동)'이 10월 15일 발족을 준비하고 있고, '(가칭) 민주주의와 민생을 위한 새로운 연대기구(이하 민민연)'가 지난 10월 9일 기자회견을 열고 10월 25일 공식 출범 일정을 알렸다. 국민행동이 공안탄압에 대응하기 위한 사안별 연대체라면, 민민연은 다양한 이슈를 포괄하는 상설 연대체다.

 

특히 민민연은 연대체가 포함된 36개 시민사회단체와 5개 정당이 준비하는, 그야말로 '범국민적'인 형태를 갖추고 있다. 연대기구의 성격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타날지 아직 알 수 없지만, 이처럼 다양한 성향의 단체가 상설 연대체를 건설한 것은 실로 오랜만이다. 구성상의 다양성이나 미조직화된 일반대중을 포괄한 형태로는 1987년 국민운동본부 이후 가장 큰 규모다. 모든 운동의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던 '대중 없는 대중운동'의 한계도, 촛불시위에서 확인된 자발적 동력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 충분히 극복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모으고 있다.

 

정부의 막가파식 국정운영을 견제할 국회마저 여당이 장악하고 있는 현실에서 민민연은 유일한 견제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민민연의 활동 성과에 따라 향후 정치구도가 결정될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저항연대'에서 '가치연대'로 나아갈 수 있나

 

하지만 공식 출범 전인 민민연이 우선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만만치 않다. 벌써부터 조직 대상과 의제 성격을 둘러싼 논란도 있다. 참여 범위와 관련해서는 '정당'이 참여해야 하는지, 참여한다면 어느 정당까지로 제한해야 하는지, 의제는 반독재 민주화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지, 아니면 신자유주의와 비정규직 등 보다 근본적인 문제에 집중해야 하는지에 대해 갑론을박이 오가고 있다.

 

만일 민민연의 실천 의제를 신자유주의 반대를 포괄적인 입장으로 하고, 한미FTA와 이라크 파병 반대 등 구체적 사안을 실천 과제로 제시한다면 이런 정책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민주당은 배제되어야 한다는 논리로 이어진다. 반면, 자유민주주의적 가치 수준에서 이명박 정부의 반민주적 통치행위에 저항하기 위한 연대체라면 민주당은 아무런 문제없이 참여할 수 있고, 심지어 연대체를 주도할 수도 있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운동진영에서 벌어진 대부분의 논쟁들이 제도권 내 야당을 어떻게 규정하고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가에 대한 인식 차이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에서, 과거 논쟁구도의 부활을 보는 듯도 하다.

 

그러나 어쩌면 이런 논란은 과거 지향적일뿐더러, 대중의 판단에 기반하지 못한 것일 수 있다. 사실 2008년 촛불에서 보여준 대중의 결집은 미국산쇠고기 수입 반대와 이명박 정부에 대한 반대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내부에서는 다양한 의제와 대안이 넘쳐났지만, 냉정하게 평가하면 '합의된 것'이 아니었다. 공동의 문제 속에 어우러진 다양함이었을 뿐이다.

 

이는 현재의 연대 수준이 특정 정치세력에 대한 반대를 기준으로 하는 '저항연대'(negative solidarity)에 머무르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저항연대는 최소한의 적과 최대한의 단결을 조직의 목표로 삼기 때문에 연대의 형성이 비교적 쉽다. 민민연에 그토록 다양한 성향과 형태를 가진 단체가 모일 수 있었던 것도 저항연대라는 특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항연대'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보수 독점적 의회체계와 독단적 정부를 좀 더 민주적인 정부로 교체한다면 대부분의 문제가 해결될까? 지난 경험은 꼭 그런 것만은 아니라고 말해준다. 가까운 예로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에 맞선 촛불시위는 보수 독점의 의회체계를 한순간에 교체했지만, 그 이후의 민주주의가 2004년 촛불이 요구하는 바를 구현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민주주의의 위기와 사회의 보수화는 오히려 2004년 촛불의 성공 이후에 도래했으며, 이명박 정권의 등장도 새로운 가치에 대한 합의 없는 노무현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저항이 밑바탕되었음은 물론이다.

 

'저항'만으로는 '미래'를 담보할 수 없다. 우리가 요구한 민주주의가 '과거로의 회귀', 즉 이명박 정권 등장 이전의 민주주의를 요구한 것이 아니라면, '어떤 미래냐'에 대한 가치연대(positive solidarity)를 꾸준히 지향해 나가야 한다. 민민연이 결의문에서 '국민적 사안에 대한 공동대응'과 함께, '새로운 희망을 열어나가기 위한 대안과 전망'도 함께 모색할 것이라고 밝힌 것은 저항연대의 한계를 가치연대로 보완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물론 이런 바람을 실천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미래적 가치연대는 저항연대만큼의 연대의 폭을 유지하기 어려울 뿐더러, 내부의 차이는 더 쉽게 부각이 된다. 운동 역사에서 저항연대를 통한 목표의 해결은 새로운 가치연대로 전환되기보다 '분열', 혹은 '분화'로 귀결되었다. 대표적으로 6월 항쟁 당시 저항연대였던 국민운동본부는 직선제 쟁취 이후 비판적 지지, 후보단일화, 독자세력화 노선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민민연 또한 이질적인 세력을 연대 대상으로 하다 보니, 저항연대에 머무르고자 하는 유혹에 끊임없이 맞닥뜨릴 가능성이 크다.

 

과제 하나, '민주주의'의 재구성

 

가치연대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내부 분열을 최소화하기 위한 유일한 해결책은 추상적인 수준의 공통지향을 모아내는 일이다. 구체적인 정책 내용을 확정하는 것이 아니라, 추상적 가치에 대한 합의로 정책 '방향'을 합의하고, 세세한 차이는 내부 '경쟁'을 보장하는 형태로 나가야 한다.

 

현 시점에서 충분히 합의 가능한 가치는 민주주의다. 주목해야 할 것은 대중 속에서 달라지고 있는 '민주주의'를 사고하는 방식이다. 2008년 촛불이 외친 민주주의는 '선출과정의 민주적 정당성'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통치과정의 민주적 정당성'까지 확장된 것이었고, 정치 의제만이 아니라,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영역에서의 민주주의 실현'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비정규직 문제(노동권), 각종 민영화(경제주권), 언론운동(소비자 주권), 집시법(기본권, 저항권)과 공안탄압(인권) 등은 민주주의와 별개의 의제가 아니라, 민주적 가치로 재구성되어야 할 어떤 것, 주권의 소유자이자 행사자인 국민 의사가 중심이 되어야 할 의제로 제기됐다.

 

민민연의 역할은 다양한 사회 의제를 민주주의의 문제로 재해석하고 재인식하며, 대안적인 민주적 가치를 재구성해 내는 것으로 이어져야 한다. 이것은 이명박 정부를 반대하고 '민주주의의 회복', 혹은 '사수'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민주주의'와 새로운 대안체제를 건설하기 위한 능동적이며 미래지향적인 첫 걸음이 되어야 한다.

 

민민연에 참여하는 세력들도 재구성의 대상에서 예외가 아니다. 이제까지 어떤 활동을 펼쳐왔건 간에 재구성된 미래 가치를 기준으로 연대의 경계를 설정해야 한다. 만일 저항연대가 미래적 가치연대로 전환될 수 있다면, 과거의 역할이나 현재 가지고 있는 권력의 크기보다 누가 새로운 대안적 가치에 부합하느냐에 따라 주도세력이 달라질 수도 있다. 물론 이 판단은 단체 간부들이 아니라 대중이 해야 할 몫이다.

 

과제 둘, 민주적 리더십이 절실

 

여기서 민민연의 또 다른 과제가 도출된다. 내부 민주주의를 통한 리더십을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의 문제다. 우리가 국가권력에게 요구하는 민주적 리더십을 우리 내에서조차 구현할 수 없다면 운동의 실패는 예견된 것이다.

 

이것은 또한, 당면 대중운동의 현실적 과제이기도 하다. 대중 정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통치 권력에게는 대중의 결집만으로도 큰 영향을 행사할 수 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촛불시위에 대응하는 모습에서 분명히 확인했듯이 현 시점에서 다수 대중이 참여하는 것만으로는 정치적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효과적인 전술을 보장할 리더십이 필요하다.

 

대중 또한 민민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현실적인 효력이 있다는 확신이 들어야 한다. 단지 의견을 표명하거나 이질적인 단체 간의 입장을 조율하는 등의 리더십이 없는 활동에 머문다면 일반 대중의 신뢰와 동참은 기대하기 어렵다. 광우병대책위가 헌신적인 활동을 펼쳐왔음에도 대중들의 불만을 샀던 것은 '리더십' 없는 전술의 무력감 때문이었다.

 

이런 의미에서 민민연의 탄생은, 정부에게도 우리에게도 큰 도전이다. 과연 저항을 매개로 형성된 연대체가 새로운 가치를 위한 연대로 전환될 수 있는가, 이질적인 성향의 개인과 단체들이 모여 민주적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나, 이것은 독재의 향수를 머금고 정면 돌파하고 있는 국가권력의 힘에 맞설 수 있을까. 민민연의 출범을 앞두고 우리 모두 고민해봐야 할 지점이다. 

  

오마이뉴스 기고글  민민연, '대중 없는 대중운동' 한계 넘을까 - 오마이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