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 비평

손우정 2008. 11. 12. 09:23


 

  
5일 오후 서울 이태원 '해방촌'의 한 카페에서 미국 민주당 한국지부 주최로 열린 대선 축하 파티에서 버락 오바마 민주당 후보의 당선이 확정적인 것으로 보도되자 참석자들이 밝은 표정으로 개표방송을 지켜보고 있다.
ⓒ 권우성
미국대선

'미국 대선'이 화제다. 신자유주의의 본산인 미국에서 '좌파', '테러리스트'라는 비난을 이겨낸 오바마 당선자의 소식이 연일 주요 뉴스를 장식하고 있고, '어떤 변화'가 일어날 것인가에 대한 갑론을박이 오가고 있다. 정치권은 오바마와의 인연 찾기에 나섰고, 아무리 톺아봐도 오바마 당선자와 닮은 구석이 없어 보이는 MB조차 "새로운 미국의 변화를 주창하는 오바마 당선인과 대한민국의 새로운 변화를 제기한 이명박 정부의 비전은 닮은꼴"이라고 말할 정도다. 가히 '오바마 신드롬'이라 할 만하다.

 

이 시점에 우리도 대규모 선거전을 맞고 있다. 바로 '대학 학생회 선거'다. 비록 최근에는 지리멸렬한 대학생 운동으로 대학선거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 사회의 주체인 대학생들이 어떤 선택을 할지는 여전히 관심거리다.

 

더구나 2008년 여름을 관통했던 '촛불'의 열기는 과거 조직된 힘으로 대중운동을 선도했던 학생운동에 대한 향수마저 불러일으켰다. "동생들은 촛불 드는데 대학생은 연예인에 쌍수들어", "그 많던 20대 광장세대는 어디로 갔나?"와 같이 촛불정국에 등장한 언론 기사들에는 현실문제를 정면 돌파해 나가던 의식 있는 젊은 청춘들에 대한 그리움과 아쉬움이 묻어있다.

 

전통적으로 사회운동을 선도해 왔던 이른바 '운동권' 학생회는 90년대 중반 소위 '연세대 사건'과 '한총련 출범식 사건' 이후 급속도로 줄었다. 2008년 현재 흔히 NL과 PD로 구분되는 대학 내 운동세력은 다 합쳐봐야 전국 대학 중 40개가 조금 넘는 규모며, 뉴라이트 등 '반운동권'을 표방한 총학생회는 30여개에 이른다. 그러나 이런 운동권, 반운동권의 대립을 떠나 대부분의 대학에서는 선거가 실시되지 못하거나, 아예 선거 여부조차 파악되지 않는 사례가 부지기수다.

 

  
사진은 지난 8월 한나라당 대선예비후보 합동연설회에 참석한 대학생들이, '취직 좀 시켜주면 안 되겠니'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있는 모습.
ⓒ 이종호
청년실업

 

촛불시위 이후 20대 정당선호는 달라졌을까?

 

한때 '대학생 보수화 현상'은 우리 시대 중요한 화두로 떠올랐다. 특히 가장 진보적일 것이라 예상했던 대학집단에서 가장 보수적인 정당에 대한 지지율이 높게 나오자, 대학생의 정치적 보수화는 '진보의 위기'를 설명하는 중요 논거로 제시되기도 했다.

 

그렇다면 2008년을 뜨겁게 달구었던 촛불시위는 대학생의 정치의식을 얼마나 바꿔 놓았을까? 이명박 정부에 대한 노골적인 반감이 올 한 해 동안 뚜렷한 흐름이 되어왔던 것을 감안한다면, 등록금 부담과 청년실업으로 고통 받는 대학생 집단에서도 진보적인 정치흐름이 감지될 것이라고 예측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일주일마다 정기적인 여론조사를 실시하고 있는 리얼미터의 조사결과를 살펴보면, 이러한 예측은 빗나간다. 2008년 4월 1일부터 가장 최근 조사인 11월 5일까지 진행된 20대의 '정당 지지율' 추이를 살펴보면, 소위 '촛불시위 효과'가 대학생의 정당선호에 미친 영향이 제한적인 것으로 드러났다.

                                

  
[그림1] 20대 정당지지율(2008.4.1~11.5)
ⓒ 새사연
20대정당지지율

 

총선 직전 한나라당에 압도적인 지지를 보냈던 20대는 총선 직후 미국산 쇠고기 사태 속에서 줄어들기는 했지만, 다른 정당에 비해 여전히 한나라당에 가장 많은 지지를 보내고 있다. 뉴라이트를 필두로 한 보수화 바람이 사회를 강타하기 시작한 2006년 이전만 해도 대부분의 여론조사에서 진보·개혁적 정당을 지지했던 20대와 비교를 한다면, 이른바 '촛불시위 효과'는 궁색해진다.

 

20대의 정당지지율을 다른 세대와 비교하면 보다 명확해진다. 8월 말부터 최근까지의 정당지지율 조사에서 30대가 20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한나라당을 덜 지지하며,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등 개혁·진보 정당에 대한 선호가 비교적 뚜렷하다.

                             

  
[그림2] 20대의 정당지지율(2008.9.2~11.5)
ⓒ 새사연
20대정당지지율

                               

  
[그림3] 30대의 정당지지율(2008.9.2~11.5)
ⓒ 새사연
30대정당지지율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대해서 20대가 가장 비판적일 것이라는 추측 또한 무색케 한다. 10월부터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이 20퍼센트와 30퍼센트를 오가는 등락을 경험하고 있는 가운데, 최근 20대의 국정수행지지율(매우 잘함과 잘하는 편을 합침)이 50대 이상의 지지율과 유사하게 오르고 있다.

                                     

  
[그림4] 세대별 국정수행지지율
ⓒ 새사연
국정수행지지율

물론 리얼미터 조사는 표본이 작고, 이를 다시 세대별로 나눴을 때는 오차범위가 더욱 커지기 때문에 조사 결과를 그대로 신뢰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또한, 정당지지율만으로 20대의 정치의식을 판단하는 것도 명백한 한계를 가진다. 진보와 개혁을 표방한 정당을 20대가 지지하지 않는 것은 이들 정치세력이 20대의 문제를 효과적으로 대변하고 해결하는 데 하나 같이 미숙했기 때문이다. 정당선호상의 문제를 20대의 정치의식에서만 찾는 것은 현실 정치세력의 잘못을 은폐하는 것일 수 있다.

 

그럼에도 과거와 달리 20대의 정당선호가 30대에 비해 보수적 경향을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30대는 대체로 1989년에서 1998년 사이에 대학에 입학한 세대들로, 1987년 6월항쟁 이후 어느 때보다 폭발적으로 늘어난 학생운동 전성기의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30대의 진보·개혁적 성향이 대학시절의 집단적 경험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라면, 20대의 정당지지율 추이에서 나타나는 혼란스러움은 세대 내에서의 집단적 정치의식 형성이 지체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현 20대는 1997년 말 외환위기 이후 발생한 구조적 압력을 집단적으로 대응해 오지 못했다. 치솟는 등록금과 청년실업, 비정규직 확산 등 대학사회의 문제는 개인이 해결해야 할 과제로 등장했고,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정치세력도 부재했다. 다만, 문제의 심각성만이 공유되었을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기성정당에 대한 지지 여부는 대학생의 삶을 바꾸어 나가는 데 큰 의미를 찾기 어렵다.

 

치솟는 대학등록금, 급증하는 청년실업... 정부 지원책도 무색

 

  
등록금 인하를 요구하는 홍익대 학생들이 4일 오후 서울 마포구 홍대앞 거리에서 등록금 인하를 요구하며 '홍대생이 떳다' 거리 퍼포먼스를 벌였다.
ⓒ 권우성
등록금 인상

20대가 자신을 대변할 정치세력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번 대학 선거가 가지는 중요성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말해준다. 대학 문제를 해결해줄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이명박 정부에 대한 실망감은 대학생 스스로 세력화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기에 좋은 시점이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정부 정책에서 크게 기대할 것이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정부는 지난 11월 3일 학자금 지원금을 2배 이상 확대하는 등록금 대책을 내놓았지만 여전히 '언 발에 오줌 누기' 식이다. 기초수급자에 대한 장학금과 근로장학금 확대, 저소득층에 대한 이자지원을 골자로 한 등록금 대책은 극소수의 저소득층 학생에게만 '선별적인 지원'을 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현재 대학 등록금 문제가 학생들의 보편적인 문제라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여전히 대학은 무한 경쟁 구도에서 학생의 등록금을 재원으로 공격적인 예산투자를 하고 있다. 그나마 제한적인 공공성을 발휘하던 국립대마저 재정·회계법의 도입으로 법인화의 발판을 닦고 있다. 자율화, 시장화, 수익자부담 원칙을 핵심으로 하는 '신자유주의적' 대학정책 방향을 수정하려는 의지 없이, 선별적인 소규모 지원만으로 오늘의 대학 문제를 해결할 수도, 완화할 수도 없다.

 

더구나 최근 전세계 금융위기는 학생들의 등록금 부담과 취업난을 더욱 부채질할 것이다. 내년 주요 선진국의 경제성장률이 제로, 또는 마이너스로 예측되는 상황에서 수출주도형 한국경제는 직접적인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는 곧 내수침체와 소득감소로 이어져 학생과 학부모의 등록금 부담만 더욱 키우고 있지만, 대학들은 큰 폭의 등록금 인상을 또 다시 예고했다. 물론 이에 대한 정부대책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다만, 지난 7월 한나라당은 등록금 인상률이 3년 평균 물가상승률의 2배가 넘을 경우 이러한 사실을 공시하도록 해 등록금 인상을 억제하겠다는 법개정 방침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설령 이것이 실현된다 하더라도 등록금은 3년 평균 물가상승률의 2배로 계속 인상될 것이라는 점은 쉽게 알 수 있다.

 

또한, 내년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이 국제기구와 정부에서 전망하는 것처럼 3퍼센트 안팎에 머문다면 청년실업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아래 그림을 보면, 올해 들어 다른 모든 수치는 크게 변화하지 않는 가운데 신규취업자 수만 급격히 감소하다 2008년 9월 11만 2000명을 기록해 3년 7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그림5] 취업자 변동 추이
ⓒ 새사연
취업자변동추이

 

반면 비경제활동인구는 조금씩 늘고 있는데, 이는 경제 불황 국면에서 신규고용보다 경력직을 위주로 채용하는 외환위기 직후 상황과 유사하다. 정부는 인턴사원을 확대하는 것으로 청년실업에 대응하고자 하나, 한국 청년실업의 근본 문제가 단순한 '일자리'보다 '질 좋은 일자리'의 절대적 부족에서 기인하는 점을 고려할 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대학생들의 현명한 선택에 거는 기대

 

정부가 획기적인 방향 전환을 선언하지 않는 한, 대학사회에서 불거져 나오는 다양한 문제들을 해결할 희망은 찾기 어렵다. 결국, 해답은 스스로의 세력화뿐이다. 그러나 학교 수업과 아르바이트, 어학학원과 연수 등 빡빡한 스케줄에 얽매여 사는 오늘날 대학생들은 아직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정치적 대안세력을 찾지도, 만들지도 못하고 있다. 혼란스러운 20대의 정당지지율 추이는 혼란스러운 그네들의 삶을 대변한다.

 

최근 다양한 학생운동 단체들이 단순히 몇 퍼센트 인하 운동 수준에 머물러 있는 등록금 운동의 한계를 인식하고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은 이제 대학생 스스로 문제제기형 운동의 한계를 넘어 문제 해결의 주체로 나서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그 시작은 '변화'에 대한 공감이다. 소수에게만 혜택이 주어지는 시혜적인 조치가 아니라 우리 교육 정책의 근본 방향을 수정하는 거대한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

 

또한 그 방향은 입체적이어야 한다. 등록금 문제를 학교와의 협상에만 국한시키는 협소함에서 벗어나 학자금 대출 문제나 많은 예산이 투입될 수밖에 없는 대학평가 항목의 유보, 교육부에서도 도입의지를 밝힌 바 있는 등록금 후불제의 조기도입, 이월적립금에 대한 전면적 감사, 신입생과 재학생에 대한 등록금 차등부과 금지 등 실효성 있는 단기과제를 실천내용에 포함시킬 필요가 있다. 이런 단기적 과제는 새로운 대학 모델에 대한 장기적 과제와 접목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다양한 의제를 묶어내고 대학생들의 사회적 힘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소통과 합의의 장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이번 학생회 선거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다. 현재 대학생이 겪고 있는 문제를 기부금 입학제의 허용이나 개인의 자기계발로만 해결할 것이 아니라 구조적 변화를 원한다면, 선거에 참여하는 후보들이 미리 공동공약을 통해 대정부 요구안을 만들고 선거과정 자체를 운동의 출발점으로 삼아볼 필요가 있다. 등록금 투쟁이나 청년실업 문제의 해결이 대학 울타리 내에서 실현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울타리를 뛰어넘는 대학 간 연계, 대학과 사회의 연계를 목적의식적으로 시도해야만 한다.

 

미국 시민들은 이번 대선에서 이제까지의 사회 흐름을 거부하고 '변화'를 선택했다. 그 선택이 자신들이 원했던 변화일지는 지켜봐야겠지만, 변화의 열망이 흑인 대통령을 만들어 냈다.

 

우리 대학생들에게도 묻는다. 지금 처해있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적합한 사람은 누군가? 오바마인가 이명박인가? 현실의 수정보다 더 큰 변화를 선택한 미국 유권자들처럼, 우리 대학생도 대학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철학과 실천 의지를 가진 후보를 선택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