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 비평

손우정 2009. 4. 15. 09:43

지난 10일 정부에 등록금 문제 해결을 촉구하며 삭발시위를 벌이던 21세기 한국대학생연합 학생들은 단지 ‘차도에서 삭발을 했다’는 이유로 줄줄이 연행됐다. 경찰버스에 빼곡히 들어찬 49명의 학생대표자들의 모습은 ‘존재하고 있으되, 발언은 할 수 없는’ 21세기 대학생들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새학기가 되면 치솟는 등록금에 대학생들은 어김없이 거리로 나선다. 그러나 매년 담판을 부르짖는 학생들의 외침에도 아랑곳없이 등록금은 인상되어 왔으며, 앞으로도 인상될 것이다. 98년 금융위기로 등록금 인상이 자제된 것처럼 올해도 ‘동결’이 확산되었지만, 이 경향이 장기간 지속될 것이라고 아무도 예상하지 않는다. 잠시 숨고르기를 한 뒤 등록금은 또 다시 오를 것이다.

정부의 ‘의지’와 ‘관점’의 문제

등록금 인상을 막는 것을 넘어, 인하할 방법이 있을까? 무상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는 나라들도 많으니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대학등록금을 경쟁적으로 인상시키는 근본 요인을 제거한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국가의 부족한 재정지원을 확대하고 대학 간 무한 경쟁구도를 없앤다면 대학 등록금은 분명 낮출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결론이 허무한 이유는 사회를 운영하는 데 큰 힘을 발휘하는 이들이 이런 방향의 정책을 내놓을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대학생들은 높은 등록금이 ‘병리상태’에 가깝다고 느낄지 몰라도, 당국자들은 ‘정상태’로 볼 뿐이다. 그들은 지금보다 더 올려도 무방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시각을 드러내 주는 일화가 있다. 지난 달 16일, 한나라당 공성진 의원은 부산지역 한 대학 초청강연에서 “OECD 대학중에 사립대 다니는 사람치고 이렇게 등록금을 작게 내는 곳도 없다”고 했다. 그리고 등록금 해결을 위한 추경예산 5조 원 편성요구에 대해서도 “추경예산을 다 퍼부어서 우리 다 먹여 살려라······. 북쪽에서는 그렇게 밥을 준다. 소련이 망하기 전까지 그렇게 이끌고 갔다”고 답했다.

공성진 의원의 발언은 꽤나 돌출적이었지만, 돌출적 시각은 아니다. 다만 실수였다면 정부와 여당이 등록금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여실히 보였다는 것뿐이다. 지금과 같은 대학정책의 총적 방향을 제시한 1995년 김영삼 정부의 5.31 교육개혁안부터 정부의 대학정책에는 이런 시각이 그대로 녹아 있다. 5.31 교육개혁안의 핵심 전략은 ‘공교육 시장화’와 ‘학교 민영화’정책으로, 학교와 교원을 교육서비스의 공급자로, 학생과 학부모 그리고 기업을 소비자로 보는 것이다.

이 시각에서는 교육서비스를 받는 수익자가 이 과정에 들어가는 모든 비용을 부담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 유명한 대학교육의 ‘수익자 부담 원칙’이다. ‘원칙’이라는 것은 합의나 타협의 대상이 되지 않는, 모든 정책의 기준이다. 상품화된 교육 서비스의 수혜자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국가는 비용을 부담하는 것이 못마땅할 수밖에 없으며, 수익자인 학생과 학부모가 교육서비스를 누리면서 비용부담을 지지 않는 것은 도덕적 해이에 가깝다.

여기에 대학 간 ‘무한경쟁’을 통해 ‘교육의 질’을 확보하겠다는 발상은 김영삼 정부 이후 모든 신자유주의 정권에 그대로 계승된 교육철학이다. 뿐만 아니라 학생 1인당 캠퍼스 면적, 강의실 면적 같은 것이 포함되어 있는 대학평가 기준은 한 대학이 건물면적을 늘리기 위해 예산을 투입하면 다른 대학이 따라하지 않을 수밖에 없는 재정경쟁을 만들어 낸다.

단지 대학 운영자의 비효율적인 예산 쓰임이나 펀드로 날려먹은 적립금 문제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대학을 상품화한 기본 정책 방향은 등록금 인상의 무한 경쟁을 유도할 수밖에 없다. 이쯤되면 당연히 ‘불공정거래’에 대한 불만까지 등장한다. 국가로부터 상대적으로 많은 재정을 지원받는 국립대와 경쟁해야 하는 사립대는 자신에 대한 국가지원을 요구하기보다 국립대에 대한 재정지원을 국가가 철회하기를 요구한다. 이 노력의 결과는 국립대 법인화 정책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것이 국가 정책을 좌지우지 하는 정책결정권자들의 기본 인식과 그 결과다. 학생들이 등록금 문제의 고통을 그들에게 호소해 봐야 별반 달라지는 것은 없다. 그들은 자신들의 ‘원칙’을 협상의 대상으로 고려하지 않는다. 기껏해야 저소득층의 지나친 부담에 대해 동정어린 시선으로 각종 장학금 정책만 남발할 뿐이다. 결국 등록금 인하를 위한 정책이 나오지 않는 것은 정부예산상의 문제라기보다 ‘의지’와 ‘관점’의 문제다.

등록금 인상의 진짜 원인은 ‘대학생 힘’의 결핍

물론 모든 정책이 당국자들의 의도대로 관철되는 것은 아니다. 정책은 다양한 사회적 이해관계와 결부되어 있기 마련이며 그것이 시행되는 과정에서 다양한 힘들의 경합을 통해 여러 번 변화를 거듭하게 된다.

그렇다면 등록금은 왜 이토록 줄곧 인상되어 왔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정부 정책을 막을 대학생들의 ‘사회적 힘’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대학 등록금의 폭발적 인상 배경에는 대학생의 사회적 힘을 상징하던 ‘학생운동’의 쇠락이 자리한다. 학생운동이 위력을 발휘하던 90년대 중후반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대학에서는 등록금 책정을 학생대표들과 협의했다.

이 자리에서는 등록금 인상율에 대한 협의뿐 아니라 학교 예산을 어디에 먼저 사용해야 할지, 즉 예산편성에 대한 포괄적인 논의가 오고 갔다. 학교당국에서는 학생들을 설득하기 위해 그만큼 치밀한 근거자료를 제시해야 했고, 학생들도 대학의 한 주체로서 책임감 있게 인상율을 검토했다. 간혹 인상율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아 갈등이 나타나기는 했지만 지금과 같은 적대적 대결국면은 매우 드문 일이었다. 당시 대학은 학생들의 주장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으며, 부패에 얽힌 여러 문제들이 존재하긴 했지만 지금과 같은 탐욕이 일반적이지는 않았다.

이것이 비단 학생들의 요구가 수렴될 수 있는 제도 자체가 존재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바로 학생들의 ‘힘’이 이런 제도를 강제할 수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러나 학생운동의 영향력이 점차 감소하면서 이 제도는 자취를 감추었고, 등록금은 일방적으로 고지되었으며 학생들은 학교운영의 한 주체에서 ‘소비자’로 전락하고 말았다.

등록금 널뛰기가 본격화 된 시점이 학생운동이 눈에 띠게 영향력을 상실한 2002년 이후와 맥을 같이 한다는 사실은 등록금 문제 해결을 위한 실질적 대책에 시사점을 주기에 충분하다. 기존 학생운동이 영향력을 잃어가면서 대학사회의 ‘저항 이데올로기’는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고, 대학생의 불만은 보수주의와 이기주의에 발목 잡혔다.

학과제에서 학부제로, 절대평가에서 상대평가로, 다시 낮은 취업문으로 대학을 둘러싼 구조적 환경이 바뀌면서 동원된 경쟁 이데올로기는 가속도가 붙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옆 친구를 밟고 올라서라’는 고교시절의 급훈은 이제 대학까지 집어 삼켰다.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는 힘을 잃어버린 대학생들은 체제에 가장 순응하는 개체로 존재하고 있을 뿐이다.

최근 20대의 정당지지율이 5~60대의 정당지지율과 유사해지는 현상은 체제순응적인 20대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60대의 체제순응이 '국가와 반공이데올로기'를 기반으로 한다면, 20대의 그것은 ‘시장과 경쟁이데올로기’를 기반으로 한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따라서 현 대학생의 문제는 정책결정권자들이 좋은 제도를 만든다고 해결될 사안이 아니며, 또 누군가 대신 집행해 줄 가능성도 크지 않다. 지금 대학생들의 이해를 대변해줄만한 별다른 유인이 없기 때문이다. 자기의 이해에 따라 집단적 힘을 발휘하고 있지도 않으며, 등록금 정책에 따라 정치적 지지를 옮기지도 않는다.

몇 명의 학생 대표들이 3, 4월이 되면 어김없이 등록금 동결, 혹은 인하를 요구하는 시위에 나서지만, 20년 정도 대학에서 생활하며 8~90년대 학생운동의 위력을 고스란히 목격한 교직원들은 그 영향과 한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몇 월이 되면 시위가 시작되고, 몇 월 쯤 되면 시위가 정리될 지 시위 주최측보다 더 정확하게 꿰뚫고 있다. 예측가능한 저항 수준과 방법은 시위 대상에게 큰 위협이 될 수 없다.

대학생 힘을 극대화하기 위한 대안 모색

그렇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우선 등록금에 대한 불만이 많으면서도 누군가가 알아서 해결해 줄 것이라는 환상을 버리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현실은 냉혹하다. 정당성이 증명되었다고 해서 바로 제도화되는 것은 아니다. 제도적 변화는 첨예한 권력투쟁의 결과다.

물론 사회가 원래 그런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지금 이 사회를 지배하는 이들이 사회를 그렇게 만들어 버렸다. 이런 사회 속에서 자신의 정당한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서는 스스로의 힘이 존재해야 한다. 자신을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는 학생 대표자 몇 명에게 이를 맡겨놓는 것은 문제해결의 의지가 없는 것이다. 이미 경찰당국은 학생 대표자에 대한 줄소환을 예고하고 있고, 그들만 사라지면 대학사회의 저항은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 근거는 평범한 대학생들의 현 의식수준이다.

둘째, 전통적인 대학사회의 저항이 소위 ‘메이저 대학’이라고 하는 명문대를 중심으로 일어났다면, 이제 ‘변방’으로 치부된 대학에서 저항을 주도할 필요가 있다. 신분이동의 중요한 통로였던 대학이 부모 계급을 자녀에게 대물림하는 통로로 변한지는 이미 오래 되었다. 서울대학교의 일반 가정 대비 고소득층 가정자녀의 입학비율은 1985년 1.3배에서 2000년에는 16.8배로 확대됐다. 2007년 서울대 신입생의 39.8퍼센트는 소득순위 상위 10퍼센트에 속해 있으며, 기초생활보호대상자는 조사 대상 1,463명 중 단 25명(1.7퍼센트)에 불과했다.

이런 대학 구조의 변화는 현재 대학생들이 겪고 있는 여러 문제들이 모든 대학에 똑같이 적용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말해준다. 어떤 대학생이 등록금을 마련 못해 스스로 목숨을 버리고 있을 때, 어느 누군가는 최고급 스포츠카를 타고 교정을 누빈다. 저항의 출발은 저항하지 않고서는 출구를 찾을 수 없는 이들이 시작해야 한다. 지금 상황에서 그들은 결코 소수가 아니다. 다수의 연대와 저항을 모색할 때다.

셋째, 그렇다고 거리에서 캠페인을 하거나 청와대 앞에서 퍼포먼스를 하는 저항만으로 만족할 수 없다. 정책결정권자들에게 실질적인 위협이 되는 저항을 준비해야 한다. 가깝게는 2010년 지방선거가 계기일 수 있다. 물론 대학등록금 문제는 지방자치 수준에서 요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자체에 대해서는 기껏해야 학자금 금리에 대한 소폭의 지원을 요구할 수 있을 뿐이다.

대학생들은 국가 차원의 포괄적 대책을 정부에 요구하면서, 각 정치세력의 실질적 반응을 지방선거와 연계시키겠다는 캠페인을 벌여볼 수도 있다. 물론 매 선거마다 이런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나, 그동안 대학생들은 모든 연령대에 비해 가장 낮은 투표율을 기록했으며, 이마저 일관적인 선호를 확인할 수 없었다. 정말 등록금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있다면, 이번 선거만큼은 관심을 가지고 ‘조직 투표’를 감행해야 한다. 이것도 못한다면, 도대체 무엇으로 정치세력을 강제할 수 있을텐가? 대학생들은 스스로 실질적인 위협세력이 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대학생의 현재 역량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볼 수 있는 활동 전형도 모색해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학생회 선거 주기를 바꿔보는 것이다. 현재 학생회 선거는 11월 말에서 12월 초에 이루어지며, 본격적인 대중 활동은 3월부터 시작된다. 등록금 투쟁이 3, 4월에 불붙는 것도 이런 연유다.

이런 패턴은 과거 정치투쟁을 중심으로 한 일정을 고려한 것으로, 등록금 문제 해결이 최우선적 과제가 된 오늘의 현실에는 잘 들어맞지 않는다. 대학에 대한 국고지원을 포함한 국가의 예산은 하반기에 확정되고, 각 대학의 예산편성과 등록금 책정, 고지서 발송도 연말, 연초에 이루어진다.

그러나 대학 선거를 바로 끝마친 학생회는 이월작업 등의 일정상, 이 과정에 제대로 개입하지 못하며, 3, 4월 등록금 투쟁은 이미 등록금 납부가 끝난 뒤라 제대로 영향력을 발휘하기 어렵다. 현재 대학 학생회의 역량은 임기 초기에는 상대적으로 다양한 집중 활동이 가능한 반면, 임기 후반에는 급격하게 활동력이 떨어지는 형편이다. 따라서 2학기에 국가의 예산편성과 각 대학의 등록금 책정 과정에 압력을 행사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하나의 대안은 1학기 말에 선거를 치러보는 것이다. 이것은 등록금 투쟁을 1학기가 아닌 2학기를 중심으로 전개하기 위한 것이다. 대학 신입생들도 자신의 대표를 선출할 수 있으니 민주적 원칙에도 부합한다. 각 학생회는 대학생의 사회적 힘을 최대한 2학기 등록금 투쟁에 집중시켜 하반기 예산책정 과정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방법을 모색해 보아야 한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각 대학 학생회 회칙을 모두 바꿔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그러나 문제의 실질적 해결에 도움이 된다면 형식적 틀을 바꾸는 것이 옳다. 이 외에도 최대한 창조직인 방식들이 다양한 측면에서 제안되고 논의될 필요가 있다.

참여가 없으면 대안도 없다

대학문제는 세대를 넘어 감당해야 한다는 점에서 현재 대학을 다니는 학생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더구나 대학생이 가지는 가치는 우리 사회의 가치를 재생산해 낸다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다. 학생운동이 쇠락하면서 진보적 시민사회단체들의 고령화 현상이 심각해지는 것도 재생산 측면에서 대학문제가 남겨준 결과다.

따라서 대안을 모색하는 것은 대학생만이 아닌 우리 모두의 몫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대안적 대학 모델을 구축하는 것에서부터 과도기적 실행방식, 그리고 이를 현실화할 수 있는 이행전략과 동력문제 등 다양하다. 전문 연구자에서부터 학부모, 시민사회 활동가, 정당 등 다양한 영역에서 대안마련에 나서야 한다.

그럼에도 이 모든 것을 강제해 나가야할 것은 대학생 자신들이다. 누구도 대학생 자신만큼 이 문제를 절실하게 느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힘을 기르지 않는 한, 현실의 고통을 4년 동안 참아야할 숙명으로 받아들이는 한, 아무런 참여도 하지 않는 한, 대학생들에게 다른 미래는 없다.

손우정 sonwj@roots96@hanmail.net

 

 

참고: 새사연 홈페이지, 오마이뉴스 게재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