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 비평

손우정 2009. 7. 10. 11:35

MB식 소통불감증, 우리 안에는 없는가?
[포스트 노무현 ②] 남은 자의 임무, '대안 만들기'에 머리 맞대자
09.07.09 19:09 ㅣ최종 업데이트 09.07.10 09:36 손우정 (roots96)

사람 몸에는 기본적인 자기방어 기제가 있다는 말은 분명 사실인 것 같다. 지난해부터 폭발한 분노와 짜증, 울화통과 서러움이 일상화되면서 이제 웬만한 뉴스에는 놀라지도 않는다. 하루에도 수도 없이 쏟아져 나오는 연행, 소환, 기소, 구속의 소식들을 접하면서도 애써 초연해지려 하는 것은 분명 내 안의 방어기제가 작동하기 때문일 테다.

 

촛불시위 이후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우리가 분명히 확인한 바는, 이 정권 하에서 다수 대중의 의견을 표출하는 것만으로는 우리가 요구한 변화를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얻어낼 수 있는 태도변화는 기껏해야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대통령이 떡볶이집에서 어묵을 먹거나, 종부세로 6천억 원이 넘는 돈을 부자들에게 환급해주면서도 초등학생 급식비는 없애고, 교육비는 주야장천 인상시키면서 연간 임대수익 11억 원으로 장학재단을 설립해 생색내려는 위선의 퍼포먼스다.  

 

그러나 '귀머거리 정부'에 대한 냉소보다 우리를 더욱 답답하게 하는 것은 우리가 추구할  대안 자체의 모호함이다. 우리가 지금 당장 이명박 정부의 독주를 저지할 수 없어도, 과연 희생을 감수하고 스트레스를 이겨내며 추구할만한 대안적 목표가 제시되고 있느냐에 대해서는 회의적일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그것은 '반MB'로 상징되는 우리 내부에는 과연 MB가 없는지에 대해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소통불감증, 우리 안에는 없는가?

 

  
지난 5월 25일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 마련된 노무현 전 대통령 분향소에 노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시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 분향소 주변과 서울광장을 여전히 차벽으로 에워싼 경찰의 '조문 방해'가 시민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 남소연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물론 우리에게 대안이 없는 것은 아니다. 여러 갑론을박이 오고 갔지만 민주당은 뉴민주당 플랜이라는 대안을 내놨고, 민주노동당도 오랫동안 준비해오던 집권전략을 제시했다. 그 외에도 현실 민주주의의 한계와 세부적 정책에 대한 대안들이 속속 제안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 대안들이 '각자의 대안'일 뿐, '공동의 대안'은 아니라는 점이다. 반MB진영이 공감할 수 있는 종합적 대안이 없는 것은, 그 자체가 합의할 수 없기 때문이 아니라 대안 간의 소통이 없기 때문이다. 이질적인 세력들이 '반MB 깃발' 아래 모여 있지만, 각자가 추구하는 대안적 방향은 여전히 각각이다.

 

반MB 기치 아래 모여 있는 야 4당도 마찬가지다. 이들 사이에 그나마 공유되고 있는 것은 MB정부에 대한 적개심과 자신을 중심으로 한 권력교체라는 집권목표뿐이다. 전국적인 반정부 원외투쟁이 정부의 태도변화를 이끌어 낼 것이라고 믿기보다, 이를 통해 내년 지방선거에서 이명박 정부를 심판함으로써 지방에서부터 권력교체에 나서고, 이 힘으로 총선과 대선에서 이명박 정부의 통치형태를 심판할 수 있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정권교체'가 우리의 근본적 대안일 수 있을까? 권력이 교체만 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진정한 민주적 평화시대가 도래할까?

 

반MB 정당이 향후 권력교체에 성공했다고 가정하고, 무슨 일이 벌어질지 예측해보자. 아마도 새 정부는 이명박 정부에 의해 '잃어버린 5년'을 최소한 원상복귀하기 위한 싸움에 나설 것이다. 공기업과 언론사 등 사회 곳곳에 심어져 있는 이명박 정부의 낙하산들을 속속 교체하고, 군복입고 가스총을 들고 경찰들이 뻔히 지켜보는 곳에서 분향소를 테러한 단체들의 보조금을 회수할 것이다. 정권안보의 충실한 집행자였던 검찰과 경찰, 사법 개혁에 칼날을 들이댈 수도 있을 것이다.

 

그 다음 수순도 충분히 예측 가능하다. 권력을 박탈당한 수구·보수진영은 그동안 철저히 장악했을 거대 언론사를 동원해 또 다시 '코드 인사'라는 대중적 캠페인을 펼칠 것이고, 나날이 새 정부에 대한 성토를 쏟아낼 것이다. 언론개혁은 언론탄압으로 포장될 것이며 군복을 입은 이들이 가스총을 든 채 다시 시청광장을 채울 수도 있다. 이것이 엉뚱한 상상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안다. 바로 노무현 정부 시절 임기 내내 벌어졌던 일이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 동안 이 나라의 수구·보수세력들이 4대 개혁입법으로 상징되는 민주개혁을 바라보며 품었던 복수의 칼날은, 지금 우리가 2012년 이후를 그리며 갈고 있는 그 복수의 칼날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우리가 김대중·노무현 정권 집권 초기에 보다 철저한 개혁을 추진하지 않았던 것을 원망하듯, 현재 이 나라의 수구·보수세력은 그런 불철저함을 뛰어 넘기 위해 간고분투 중이 아니던가?

 

양비론을 펼치거나 허무주의를 유포할 생각은 없다. 우리도 그럴 수 있기 때문에 이명박 정부도 이해해야 한다는 궤변을 늘어놓을 생각도 없다. 다만, 지금 시점에서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것은 반MB저항을 끊임없이 요구하고 있는 우리 안에, 과연 MB는 없는가 하는 점이다. MB에 대한 우리의 저항이 '우리를 포함한' 근본적 변화가 아니라 단순한 '권력교체'로 귀결될 때, 이런 악순환은 끊을 수 없다는 점이다.

 

저항과 병행해야 할 우리 내부의 혁신

 

  
4일 오후 여의도 산업은행앞에서 열린 '쌍용자동차 문제 정부해결 촉구·MB악법 저지 범국민대회'에 참석했던 민주노총 노동자와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요구사항이 적힌 종이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 권우성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사태

우리가 이명박 정부의 통치행태를 비판하고 더 나은 민주체제를 모색해야 한다고 부르짖을 때, 그것이 단순히 속도조절된 변화나, 분열 없는 화해와 타협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변화의 폭과 강도의 지나침을 비판한 것이 아니라 국민과 소통 없는, 아니 국민을 배반한 일방통행에 대한 비판이었기 때문이다.

 

우리 역시 정권교체를 이룬다면, 단순히 '선출과정의 민주성'만으로 자의적인 권력행사에 나설 것이 아니라, '통치과정의 민주성'을 견지하며 국민의 힘을 기반으로 한 철저하고 흔들림 없는 개혁에 임해야 한다. 

 

그러나 문제는 현재 반MB 진영에 모여 있는 그 어떤 정당도 어떻게 국민주권 실현을 보장할지 자기 실천으로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반MB연대 내부에도 MB와 반MB 진영 간의 적대만큼이나 골이 깊은 적대가 존재하지만, 어떻게 내부 소통을 통해 이견을 좁혀 나갈지는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다만 이명박 정부에 대한 공격이라는 공동 목표 아래 적대와 차이가 유보되고 있을 뿐이다.

 

이제까지 우리는 '밖'만 보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일이다. 허세욱의 분신에도 한미FTA를 강행 통과시켰던 그 불통, 비정규직 법이 오히려 2년짜리 비정규직을 양산하게 되기에 사유제한을 명시해야 한다는 비판에도 밀어붙였던 그 일방통행은 진정 반MB연대 안에 없는가?

 

책임운영기관, 생산과 공급의 분리, 권한의 지방이전, 시장경쟁, 탈규제, 사영화, 전문화, 성과강조, 공·사 파트너십, 민간 위탁 등 MB식 행전선진화를 관통하고 있는 '신공공관리정책' 또한 김영삼 정부에서부터 본격화되다 김대중·노무현 민주정부에서 크게 확산된 정책기조다.

 

이처럼 우리가 비판하고 있는 MB의 모습은 반MB연대 내부에도 여전히 존재하는 가치다. 새로운 태도변화 없이 단지 MB이기 때문에 비판해야 한다는 입장으로 어떤 미래와 변화를 꿈꿀 수 있는가?

 

두 민주정부에 대한 비판자를 자임했던 진보진영 또한 예외일 수 없다. 한국사회의 이념지형에서 소수라 할 수 있는 진보세력도 소통의 불능과 독단 앞에서 분열되었다. 진보세력 역시 자신의 지향만을 숭배하며, 자신의 권력획득 이외의 것은 아무 대안도 아니라는 식의 엘리트주의적 독선과 얼마나 결별하고 있는지 성찰해봐야 한다.

 

MB를 넘어설 대안적 소통구조와 공동 프로젝트 기획해야

 

물론 우리, 특히 각 정당들은 자기 자신에게는 결코 MB와 같은 일방통행적 사고나 가치가 없다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집권 후에 보여줘야 할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현실에서 증명해야 할 문제다. 반MB에 은밀히 기대어 각자의 숨겨진 대안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꺼내 놓고 MB에 대한 국민적 대안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소통을 시도한다고 해서 반MB진영 내부의 적대가 사라질 것이라고 기대하지는 않지만, 최소한 소통과 설득의 과정에서 상호간의 발전을 기대해볼 수는 있다.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우리가 MB에게 소통을 요구할 이유가 없다.

 

이제 우리는 단지 이명박 정부에 대한 비판만 제기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각각의 대안을 모두 꺼내놓고 소통하면서 MB 이후의 실천적 공동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물론 이것은 필요성을 당위적으로 주장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구체적인 공동 프로젝트가 제시되어야 한다.

 

  
10일 저녁 서울 시청앞 서울광장에서 열린 '6월항쟁 계승 및 민주회복 범국민대회'에 참석한 학생과 시민들이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관련해 이명박 대통령의 사죄와 전면적인 국정쇄신을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유성호
6.10민주회복국민대회

우리가 MB 개인적인 문제나 특정 정책만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 공동 프로젝트는 단순한 정책적 대안을 제시하는 것일 수 없다. 우리의 연대는 1987년 민주체제를 근본적으로 혁신해 내는 포괄적이고 대안적인 국가운영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어야 한다.

 

이명박 정부의 등장 이전에도 민주주의의 위기는 존재했다. 민주주의가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무능을 드러내고, 낡은 민주주의는 사라지고 있지만 새로운 민주주의는 나타나지 않음으로써 발생한 '전환적 위기'는 노무현 정부 내내 민주주의에 대한 냉소를 불러왔다. 

 

따라서 우리의 저항은 단지 권력을 교체하거나 몇몇 정책을 수정하는 데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1987년 6월항쟁 이후 만들어진 헌법체계를 근본적으로 혁신하는 '새로운 헌법체계'를 만드는 것으로 이어져야 한다. 이를 통해 이명박 정부 이후를 준비하는 준거점이 만들어 질 수 있다.

 

우리 내부의 소통을 통해 '국민이 주도하는' 헌법적 수준의 대안을 마련하는 과제는 특정 정당이나 특정 운동단체의 힘만으로는 해결 불가능하다. 헌법체제가 가지고 있는 포괄성은 국민주권의 실질적 구현방안에서부터 노동, 통일, 여성, 행정, 토지, 환경·생태, 지방자치, 소수자, 병역 등 사회 전반의 대안을 요구한다.

 

헌법체계가 가지는 이런 포괄성은 각각의 개별 가치가 특정 의제에 억눌리거나 우선순위 논쟁에서 소외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발전이 전체의 발전에 기여하는' 관계를 필요로 한다. 그리고 반MB의 기치 아래 결합되어 있는 수많은 단체와 대중은 각 분야의 대안을 마련할 수 있는 역량과 의지를 이미 가지고 있다. 문제는 그 각각의 대안들을 어떻게 소통시켜 공동의 가치로 담아내느냐 하는 것이다.

 

헌법체계가 가지는 '추상성'은 이런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해 줄 수 있다. 헌법체계가 가지는 추상적 성격은 각기 다른 대안들이 서로 각축하며 분열로 이어지게 만들기보다는 '추상적 수준의 합의'와 '구체적 수준의 정책 경쟁'을 유도할 수 있다. 누구든 세부적인 정책부터 합의하려고 들면 공통점보다는 차이점이 불거지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자본친화적 미디어법에 대한 대안은 다양하게 제시될 수 있고 서로 합의가 어려울 수도 있지만, 언론이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독립성을 견지해야 한다는 입장은 쉽게 합의할 수 있다. 우리는 내부소통을 통해 추상적 수준의 합의를 시도하면서도, 이를 현실에서 구현하기 위한 세부적 정책차이는 '발전적 경쟁'으로 인정하는 유연성을 발휘해야 한다.

 

물론 헌법적 추상수준에서도 합의될 수 없는 가치가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과정을 통해 최소한 반MB연대 내부에 존재하는 서로 다른 가치의 실체를 확인할 수는 있다. 과거 무조건적인 반노무현 프레임에 모여 있는 서로 다른 가치들의 실체를 확인하지 못한 결과가 어떤 정권의 탄생으로 귀결되었는지를 기억한다면, 합의될 수 없는 차이를 확인하는 것 자체도 큰 의미를 가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이 과제의 수행이 철저히 민주적 소통방식을 견지하는 가운데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국가 차원의 중대한 문제들이 전문가나 헌법재판소 판관들이 아닌 국민에게 맡겨져야 한다는 대안적 방향에 동의한다면, 대안을 만드는 방식도 마찬가지여야 한다. 그동안 대안적 헌법체제에 대한 전문가들의 논의는 적지 않았으나, 이것이 '촛불'로 상징되는 대중과 연계되지 못했던 것은 그 대안이 촛불 스스로가 대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야4당과 시민사회단체, 다양한 촛불들이 공유하는 사이버 커뮤니티에서 헌법적 수준의 모든 분야에 걸친 세세한 토론을 유도해볼 수도 있다. 누구든 자신의 관심사에 따라 대안을 모색하며, 다른 이의 대안을 검토하고 의견을 제시해볼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이 과정에서 세부적인 기술적 도움을 주는 역할을 맡을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 진 새로운 국가운영 프로그램은 베네수엘라에서 차베스가 집권하기 10년 전에 이미 만들어진 제헌헌법초안이나 영국 복지체제의 서막을 알린 1941년 베버리지 보고서보다 훨씬 민주적이고 위력적인 대안이 될 것이다. 그것을 만든 것은 전문가들만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될 것이기 때문에 그 실현 또한 확고한 대중적 기반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런 방식이 지난해 촛불시위에서 드러났던 대중의 능동성에 기반한 '집단지성'의 구현이자, 대안에서부터 직접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과정이다. 이런 노력들이 자리를 잡는다면, 이명박 정부를 반대하는 '저항연대'는 새로운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포괄적인 대안연대'로 전환할 수 있다.

 

노무현 민주주의의 다음은 '실질적 주권 민주주의'

 

  
29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진행된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민장 영결식 노제에서 한 추모시민이 노무현 전 대통령 초상화를 들고 있다.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노무현

곧 죽은 이의 다음 생을 결정한다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49재다. 5백만여 명의 추모행렬은 그의 서거만이 아니라 이 나라 민주주의의 서거를 애도한 것이었음이 틀림없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노무현 전 대통령을 추모하며 "민주정부 10년의 가치를 재발견해 계승하고, 극복할 것이 있다면 그 대안을 만들어내서, 결국 민주주의를 위기에서 구하고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가길" 우리에게 부탁했다. 또한, 노무현 전 대통령은 한 때 새 시대의 맏형이 되려 했으나 구시대의 막내가 될 수밖에 없었다고 자조한 바 있다. 남은 자의 임무는 새 시대를 여는 맏형이 되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외쳐할 것은 단지 '민주주의의 수호'나 '복귀'가 아니라 '더 많은 민주주의', '새로움의 창조'다. 이것은 김대중·노무현 두 민주정부의 성과를 낡은 것으로 치부하고 완전히 폐기하는 것이 아니라 부정적인 것은 버리고 긍정적인 것은 계승·발전시키는 과정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 민주주의가 49재 이후 거듭날 노무현 민주주의의 다음 생이다. 그리고 그것은 오직 대중의 능동적인 집단지성을 통해 만들어질 '대안을 품은 저항'만이 가능케 할 목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하다못해 담벼락을 쳐다보고 욕이라도 하라"고 했지만, 벽을 보고 욕을 할 의지라도 남았다면 대신 우리끼리라도 대화를 시도해야 하고, 우리끼리라도 대안적 민주체제를 구현해 보여야 한다. 그래서 MB외에는 대안이 없다는 허구적 담론과 양비론에서 탈출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우리 안의 MB를 벗어 던지는 자기 혁신을 이루어야 할 것이다. 

 

 

대안 자체의 모호함도 있겠지만 이 부분은 각종 도서들이 이미 다수의 대안을 설정하고 있는 점이 존재하지요... 문제는 대안 실현 방식의 모호함이 더 크지 않을 까 하는 생각도 드는군요...
그렇습니다. 요새 라클라우와 무폐의 헤게모니에 대한 세미나를 진행하고 있는데, 한국사회에서 어떻게 접합이 가능할지가 요즘 화두입니다. 그런데 관련 논의들이 너무 어렵네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