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 비평

손우정 2009. 10. 7. 17:43

대학평가와 미디어법

 

지난 9월 23일, 1994년부터 대학평가를 진행해오던 중앙일보는 2009년 평가 결과를 발표하면서 논란에 휩싸였다. 한겨레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애초에 평가대상에 포함되어 있었던 신문방송계열 학과평가 결과가 미디어법에 따른 ‘종합편성채널 심사 불이익 가능성’을 이유로 일방적으로 취소되었기 때문이다.

 

보도에 따르면 “향후 방송통신위원회의 종편 선정 심사위원회에 신문방송 쪽 교수들이 참여할 가능성이 큰데, 대학평가에서 낮은 점수를 받은 학교 교수가 심사위에 들어갈 경우 심사에 부정적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경영진이 판단”했다는 것이다. 이런 사실을 뒷받침하듯, 9월 22일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은 중앙일보 창간 44돌 기념사에서 “종합 편성 채널을 시작하려 한다”고 선언했다. 아직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내려지지도 않았는데도 황금채널 확보를 둘러싼 보수언론의 설레발도 눈에 띠게 늘고 있다.

 

보수종이신문 언론이 방송에까지 진출하면 이들의 사회적 영향력은 지금보다 훨씬 막대해질 것이라는 예측은 줄곧 제기되어 왔다. 탈법 시비까지 불러일으키면서 무리하게 미디어법을 밀어 붙인 정부여당의 속내 또한, 이들의 영향력을 바탕으로 장기집권을 노리고 있기 때문이다.

 

보수언론의 대학평가에서 대학은 자유로운가?

 

문제는 보수언론의 방송진출만 사회적 영향력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 중앙일보가 방송진출을 이유로 신문방송계열 평가결과를 발표하지 않았다는 점은 두 가지 추측을 가능케 한다. 하나는 중앙일보의 대학평가결과가 잠재적 심사위원들의 심기를 뒤흔들 수 있을 정도로 영향력이 막대하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이들이 평가결과를 ‘공정한 것’ 납득하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클 정도로 합리적 평가기준이 부재하다는 점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대학평가는 1992년부터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주관으로 시작된 대학종합평가(7년 주기)와 교육부의 재정지원을 위한 평가, 그리고 이번 신방계열 평가결과 미공개로 논란이 낳은 중앙일보의 대학평가(1994년부터 시작)가 대표적이며, 조선일보 또한 올해 5월 12일부터 영국 대학평가 기관인 QS와 공동으로 아시아 대학을 평가한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이런 일련의 대학평가는 각 대학운영에 압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 평가에 참여하는 거의 모든 대학이 평가지표에 맞춰 대학체질을 개조하고 있으며, 심사위원단에 대한 로비도 전방위적이다. 거의 대부분의 대학이 행정조직에 상시적인 평가전담기구 설치해 놓고 대학 평가지표에 맞춰 예산을 편성하고 행정조직을 재편하고 있다.

 

1994년 대학설립 준칙주의가 도입되면서 대학정원이 대폭 증가했고, 대학생 수는 2002년을 기점으로 300만 명을 돌파해 대학 진학율이 84%에 육박하는 상황에서, ‘생존의 문제’에 직면한 대학들은 조금이라도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해 사활을 걸 수밖에 없다. 대학평가를 앞두고 갑자기 교수채용을 늘리고 조교수를 증가한다던가, 건물을 새로 짓거나 뜯어 고치고 첨단강의실을 만들어 낸다. 한국 중등교육이 오로지 명문대 입학을 위한 점수 획득에 모든 것을 걸 듯, 모든 대학은 각종 평가기관의 평가지표에 맞추어 대학 발전 방향을 구성한다.

 

등록금 인상 유도하는 대학평가

 

대학평가의 문제점은 예전부터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특히 중앙일보와 조선일보의 경우 평가 대학을 1위부터 쭉 나열하는 결과발표로 인해 대학서열화와 경쟁을 오히려 부추기고 있으며, 평가지표 또한 양적인 측면에 치우쳐 있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의 대학평가 결과 또한, 최우수 대학과 우수대학, 인정 대학을 구분지음으로써 서열화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이런 경쟁구조의 확대·강화는 1994년 문민정부에서 WTO체제 출범에 따른 ‘국가 경쟁력 강화’를 위해 ‘대학종합평가인정제’를 도입하면서 불거졌지만, 사실상 국가 경쟁력 강화라기보다는 평가지표의 가중치에 따라 ‘중요한 학문’과 ‘덜 중요한 학문’이 나뉘고, 재정투입의 우선순위가 결정되는 천편일률적 대학구조가 만들어 지고 있다.

 

무엇보다 이런 대학평가체제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이것이 대학등록금의 폭발적 인상을 유도하는 핵심 원인이라는 점이다. 예를 들어 이번에 발표된 중앙일보의 대학평가 항목을 보면, 교육여건 및 재정부문(100점), 교수연구부문(120점), 국제화부문(70점), 평판·사회 진출도 부문(110점)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중 특히 교육여건과 재정부문에서 높은 점수를 얻기 위해서는 재정투입 확대가 불가피하다.

 

 

 

이 항목의 구체적 지표는 ‘교수당 학생수’, ‘교수 확보율’, ‘학생당 장학금’, 등록금 대비 장학금(학비감면) 환원율, 기숙사 수용률, 학생당 도서자료 구입비, 교육비 환원율, 세입 중 납입금 비중, 학생 충원율, 중도 포기율, 세입 대비 기부금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 세입 중 납입금 비율이나 세입대비 기부금 비율은 지나친 등록금 의존을 억제하기 위해 도입된 지표로 보이나 두 지표를 합쳐도 가중치가 15점 밖에 되지 않아 큰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등록금 외에는 별다른 수익이 없는 대학으로서는 이 지표를 포기하더라도(사실 포기하지 않을 방법이 없는 대학이 더 많다) 가중치가 높은 다른 지표의 점수를 획득하는 것이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교수수를 늘리거나 기숙사 수용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대규모 예산이 필요할 수밖에 없고, 등록금 대비 장학금이나 교육비 환원율을 높이는 것에도 예산투입이 필수적이다.

 

이 외에도 한국대학교육협의회에서 주관하는 대학평가·대학자체평가 항목에는 교사시설 확보율, 학생1인당 공간확보 면적(건물기준) 등이 포함되어 있어 매년 엄청난 예산을 투입해 대학을 공사판으로 만들고 있는 이유를 짐작케 한다.

 

경매하듯 눈치보며 등록금 올리는 대학

 

잘 알려졌다시피 우리나라는 OECD국가와 비교해 고등교육단계(대학 이상)에 대한 정부의 재정 부담이 매우 열악한 반면, 대부분의 부담을 민간으로 떠넘기고 있다. OECD국가들이 GDP대비 평균 1%의 재정을 정부가 부담하고 있지만 우리의 경우 2009년 현재 0.6%밖에 되지 않으며, OECD국가들의 민간 부담률이 GDP대비 0.5%에 불과한데 비해 우리는 2009년 현재 1.9%에 이른다.

 

이명박 정부는 지난 7월 30일, ‘취업후상환학자금대출제’ 시행을 발표해 시민사회에서 줄기차게 요구한 ‘등록금 후불제’를 일정 정도 받아들였지만, 소득수준과 연계된 안정장치 없이는 이 제도가 등록금 인상을 억제하기보다는 더욱 강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현재 지방교육재정(초중등교육)은 교육재원 규모가 법제화되어 있는 반면, 고등교육재정은 국가예산편성과정을 통해 규모가 확정되기 때문에 안정된 재원확보가 쉽지 않고, 2005년부터는 총액배분 예산편성제도가 도입되어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이 늘수록 고등교육재정 확보가 어려워지는 구조에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고등교육예산은 국립대 인건비와 운영비, 시설비와 학자금, 연금기금 등 경직성 사업비를 제외하면 2008년 기준으로 1조 4,960억원(고등교육예산의 32.8%)에 불과하며, 전체 예산 중 사립대에 지원하는 비중은 10% 정도다.

 

치열한 대학 간 무한경쟁 구조 속에서 등록금 인상 외에는 획기적인 재정확보 방안이 없는 대학들은 “대학이 살아남아야 너희들의 취직도 잘 된다”는 논리를 앞세워 등록금 인상을 밀어 붙이고 있다. 정부 또한 대학구조조정과 이에 따른 추가 재정지원을 대학평가 결과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적립금을 빼돌려 주식투자나 일삼는 ‘비윤리적’ 대학이 아니더라도, 등록금 인상에 대한 유인은 상당히 클 수밖에 없다.

 

설령 모든 대학이 우수한 기준을 충족시키고 있다 하더라도, 한 대학이 등록금을 인상해 예산투입의 근거를 마련하면 다른 대학도 울며 겨자먹기로 따라할 수밖에 없는 악순환인 것이다. 절대평가에서 상대평가로 바뀐 대학 학점체제를 연상해 보라.

 

주변화 된 대학생

 

대학서열화와 연계된 대학평가가 폭발적인 등록금 인상을 유도하는 부작용 외에도, 현 대학평가제도에 대한 문제제기는 꾸준하게 제기되어 왔다. 가장 큰 가중치를 갖는 교수연구부분은 양적 산출물을 통해 대학을 평가함으로써 특정 분야의 논문색인인용(SCI)이 주요 평가기준이 되면 그쪽으로 재정지원이 몰리거나 이해관계가 맞물린 교수사회의 담합으로 학회나 학술지가 급조되기도 한다. 또한 대교협이 대학강사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산정한 시간당 강의료 기준은 그 절대액수가 지나치게 낮아 외려 각 대학이 이 기준에 맞춰 강사료를 책정하는 웃지 못 할 사태도 벌어지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대학을 평가하는 데 있어 대학의 일 주체인 학생들에 대한 평가 항목이 아예 없거나 매우 단편적이라는 점이다. 중앙일보의 경우, ‘평판·사회진출도’ 항목 중 가장 가중치가 높은 “진학을 추천하고 싶은 대학”같은 지표(15점)는 기존 명문대 중심의 서열체계만 강화시킬 뿐이고, ‘취업율’(10점)을 평가지표에 포함시켰다는 것은 대학이 취업학원으로 변하면서 ‘기업의 요구에 맞추는 대학이 좋은 대학’이라는 불문율이 반영된 결과일 뿐이다.

 

김영삼 정부부터 본격적으로 확립되기 시작한 대학의 ‘수익자 부담 원칙’은 학생을 교육‘서비스’를 받는 소비자의 입장으로 만들어 버림으로써 상품화된 교육을 생산하는 과정의 모든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존재로 바꿔 버렸다. 그 옛날 소위 ‘운동권’들이 외치던 ‘자주학원’, ‘민주대학’은 먼 나라 이야기가 된지 오래다. 대학의 저항문화가 소비문화의 상징으로 전락해 버린 이면에는 무한경쟁과 기업 중심의 대학재편을 유도해낸 대학평가가 자리하고 있다.

 

대안적·민주적 대학평가안 마련해야

 

물론 교수 1인당 학생수와 같은 지표가 대학등록금의 인상을 유도하더라도, 대학의 질적 발전을 위해서는 개선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필요에 의한 대학진학보다 생존을 위해 대학에 진학할 수밖에 없는 우리사회의 뿌리 깊은 학력·학벌주의는 세계 최고 수준의 고학력자를 탄생시킬 수밖에 없는 구조를 창출시켰고, 일단 만들어 놓고 보는 대학의 양산은 교수 1인당 학생수를 급격히 증가시켰다.

 

그러나 지나친 과잉경쟁이 무리한 등록금 인상을 유도하고 있다면, 속도 조절을 유도할 수 있는 대안적 평가체제를 마련할 수는 있다. 우선, 일정 기준에 미달하는 대학을 걸러내기 위해 기본 요건에 대한 단순 인증평가는 지속하되, 1등부터 점수를 매기는 서열화 방식은 금지시켜야 한다. 이미 ‘대학알리미’ 등을 통해 대학의 기본적 정보는 제공되고 있기 때문에 학생과 학부모의 다양한 가치 기준에 따라 더 좋은 대학을 파악할 수 있는 경로는 충분히 마련되어 있다. 누구나 다를 수 있는 판단기준을 특정 언론이나 기관이 획일화할 필요는 없다.

 

다음으로, 대학의 질적인 측면을 파악할 수 있는 지표가 개발되어야 한다. 여기에는 단순히 교수들의 양적 논문발표수만이 아니라 연구의 질을 평가할 수 있는 지표가 필요하며, 교수만이 아니라 학생들의 학업성과와 만족도도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이 기준이 기업적 시각을 반영하거나 등수를 매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대학의 가치를 다양한 입장에서 파악하는 데 기여할 수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또한, 대안적 대학평가안을 마련하는 것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민주성’에 관한 지표를 포함시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등록금 인상이나 대학운영에 관해 교수, 학생, 교직원들의 입장이 민주적으로 반영되었는가를 평가하는 것이다. 대교협의 대학평가 항목에도 ‘의사결정의 합리성 및 민주성’이라는 지표가 포함되어 있지만, 그 내용이 지나치게 추상적이어서 큰 실효성을 못 내고 있다.

 

따라서 등록금 책정 시 민주적인 비율로 구성된 예산편성위원회와 같은 심의기구에서 합의를 이뤄낼 때 매우 높은 가중치를 주는 방식 등으로 구체적 지표를 마련해야 한다. 이런 지표의 개발은 대학을 소비자로 보기보다는 한 주체로 보게 만들 수 있으며, 일방적인 등록금 인상을 억제할 수 있다.

 

이런 시도와 유사하게 전국사립대학 교수협의회연합회는 기존 대학평가방식에 이의를 제기하고 전국 사립대학을 대상으로 행정의 투명성과 의사결정구조의 민주성 등을 중점 평가해 2004년부터 매년 ‘훌륭한 대학교’를 선정하여 발표하고 있다. 이런 식의 대안적 평가체계를 모색할 때만이 단순히 시장의 요구에 부응하는 방식이 아닌, 교육 본연의 의도를 살리는 대학체제 개편을 유도할 수 있을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민생 전략과 우리의 대안

 

이명박 정부의 취업후학자금상환제 시행발표는 막무가내식 미디어법 처리에 이르기까지 강경일변도였던 통치방식과 지금의 민생전략을 가르는 분기점이었다. 실질적인 후불제를 요구했던 것도 시민사회였고, 현 민생정책도 시민사회와 야당이 꾸준하게 제기해왔던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의 지지율이 오르고 있는 것은 그 개혁의 주체가 정부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결국 야당과 시민사회의 요구가 관철될수록, 다시 말해 그들의 요구가 성공할수록, 정부에 대한 지지가 올라가게 되는 딜레마에 빠질 수 있다.

 

따라서 나라를 빚더미에 올려놓고 지방선거전략으로 껍데기뿐인 민생정책을 쏟아내는 것에 만족할 것이 아니라면, 더구나 정권의 전략이 반대세력은 철저히 배제·고립시키고 중간층을 포섭하려는 것이라면, 우리의 전략은 우리가 주체가 될 수 있는 대안을 창출해 내는 것이어야 한다. 개혁의 단순한 수혜자나 문제제기자의 역할에서 벗어나 우리가 개혁 주체로 설 수 있는 공간과 제도를 창출하는 것이 새로운 정치세력의 존재이유를 증명하는 것이다.

 

현 등록금 문제 또한, 대학이 무한경쟁구도에서의 생존을 이유로 등록금의 폭발적 인상과 독단적 대학운영을 밀어붙이고 있다면, 우리 또한 생존을 이유로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대학운영을 추진할 수밖에 없는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 대학문제에 대한 근본적 해결책은 교육재정을 확보하는 것이겠지만, 이와 함께 민주적 대학평가체제의 확립을 통해 대학자체를 민주화하는 노력도 계속해야 할 것이다.

 

 

오마이뉴스 기고글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228155&PAGE_C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