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 비평

손우정 2009. 10. 27. 13:18

재보궐 선거가 코앞이다. 이번 선거는 이명박 정부에 대한 심판적 성격이 지배했던 지난 선거와 달리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도가 어느 정도 안정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치러지는 것으로 향후 정치구도와 내년 지방선거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한편으로 이번 재보궐선거는 야당들의 지방선거전술을 둘러싼 논쟁에도 중요한 사례가 될 것이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각종 전술논쟁이 한참이지만 그 어느 세력도 뚜렷한 입장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선거는 ‘후보단일화’ 전술을 마지막으로 시험해 볼 수 있는 검증대였다. 그러나 결국 안산 상록을의 경우 민주당과 나머지 야3당의 단일화는 무산되었으며, 이외의 지역의 단일화도 뚜렷한 결과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10월 24일에는 진보세력이 현 시국을 보는 시각과 내년 지방선거를 둘러싼 연대전략 논쟁구도를 살펴볼 수 있는 의미 있는 토론회가 있었다. 새세상연구소가 주최한 ‘진보시민강좌’의 3강좌 형태로 준비된 이 날 토론회는 ‘조문정국 이후 민주주의의 진로’라는 이름으로 박경순 새세상연구소 부소장이 사회를, 홍형식(한길리서치연구소 소장), 이대근(경향신문 에디터)씨가 발제를 맡았고, 정대연(진보연대 집행위원장), 박병우(민주노총 대협실장), 박원성(참여연대협동사무처장), 최일붕(다함께 활동가), 임필수(사회진보연대 정책실장) 등 진보·개혁적 입장의 활동가들이 토론에 나섰다.

 

이 날 토론회의 핵심은 크게 보아 ‘이명박 정부를 어떻게 볼 것인가’와 ‘반MB연대 등 연대·연합 문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두 가지 문제였다. 그러나 진보진영 내의 토론은 중요한 몇 가지 문제를 누락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민주정권인가, 반민주정권인가?

 

먼저, 진보세력이 보는 이명박 정부의 성격에 대해 살펴보자. 얼마 전 최장집 교수가 ‘이명박 정부를 반민주정권이라 할 수 없다’고 주장한 이후, 이명박 정부의 성격 규정에 대한 논란은 이 자리에서도 계속되었다.

 

최장집 교수와 유사한 입장에서 이명박 정부의 성격을 규정한 이대근 경향신문 에디터는 “이명박 정권은 김대중 노무현 정권과 단절되었다기보다는 연속선상에 있고, 따라서 김대중 노무현 정권과의 차이는 근본적인, 질적인 것이라기보다는 과다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두 정권모두 87년체제, 97년체제의 산물로서 신자유주의 정권이라고 할 수 있으며, 따라서 차이는 상대적으로 자유주의적인가 아닌가로 의해 분별해야 할 하위유형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일붕 다함께 활동가도 유사하게 “진보진영의 일각에서는 이명박 정권의 성격을 파시즘이나 그와 비슷한 독재로 오해”하고 있다고 평가한 뒤 이명박 정부가 주관하는 한국 국가의 형태를 ‘준 자본주의적 민주주의’로 규정한다. 자본주의적 민주주의는 노조 지도자들이 경제투쟁을 하고, 그 정치적 대표들인 개혁주의 정치인들이 선거와 의회 정치를 하는 일종의 분업을 허용 받는데, 이명박 정권은 여러 기본권이 여전히 제한되어 있기는 하지만, 과거 독재·파시즘 정권과 완전히 일치시킬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최일붕 활동가는 ‘독재정권이어야만 퇴진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단서를 덧붙였다.

 

다른 토론자들도 대체로 이명박 정부와 노무현 정부의 성격차이를 ‘질적인 차이’가 아닌 ‘양적인 차이’ 정도로 규정하는 가운데 이명박 정부를 완전한 독재정권이라고 규정하지 않았다. 다만, 박원석 사무처장은 “정치적 선출과정 자체를 파괴하지 않는 점에서 총체적 반민주 정권이라고 보긴 어렵다”면서도 “통치형태 측면에서는 실질적인 반민주 정권이며, 국민주권 원칙에 부합하지 않는 위헌적 정권”이라 규정했다.

 

토론자들이 이명박 정권의 성격 규정에 대해 미묘한 차이를 보이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 진보세력의 전략문제, 그 중에서도 연대관계를 설정하는 문제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진보활동가들이 이명박 정부의 반민주적 규정을 경계하는 이유는 현재 제기되고 있는 반MB연대의 한계와 함께 민주당의 한계를 강조하려는 의도가 강하게 결합되어 있다.

 

후보단일화, 어떻게 볼 것인가?

 

역시 첨예한 쟁점은 ‘민주당’과의 관계설정에 대한 것이었다. 대체로 토론자들이 민주당의 한계에 대해 공유된 인식을 보이는 가운데, 구체적 강조점에 대해서는 약간의 차이를 보였다.

 

먼저, 발표자와 토론자들은 반MB연대로 상징되는 민주대연합 전술만으로는 명백한 한계가 있다고 보는 점에서 완전한 의견통일을 보였다. 특히 최일붕 활동가와 임필수 정책실장은 ‘민주대연합’에 대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최일붕 활동가는 “진보진영의 후보가 없는 선거구에서 비판적 투표는 가능하지만 전국적 정책 자체가 민주당과의 후보단일화여서는 안된다”면서 “설령 한나라당 후보가 승리하더라도 진보진영은 민주당과 타협할 생각을 버려야 한다”고 주장했고, 임필수 실장은 “(민주당과의 공조는) 진보정당의 존립근거 자체를 무력화하기 때문에 전혀 고려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이대근 에디터 또한 이명박 정부의 성격규정의 연장선에서 “이명박 정권을 반민주세력으로 단정 짓고 반대하는 것은 지난 10년 정권 대 이명박 정권의 대결구도를 만든다는 것으로, 과거 세력 대 과거 세력의 대결이나 다름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는 “진보연합만으로는 역량의 한계가 있으므로 반이명박 연대 활동에서 민주당 내부 혁신을 유인하고 진보의 지평을 넓힐 수 있는 방향으로 공동 활동을 해야 할 것”이라는 단서를 달았다.

 

반면, 정대연 집행위원장은 이들과 강조점이 달랐다. 민주대연합의 한계와 진보정당의 독자노선을 견지할 필요성을 지적하면서도, “반한나라당 연대와 진보세력의 독자성 둘 중에 하나를 포기하는 것은 안 된다”고 강조했다. 진보세력의 독자성을 유지하는 가운데 지방선거까지는 낮은 수준의 정치연대, 정책적 연대를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진보세력에 대한 외부자의 시각에 선 박원석 처장은 민주당과 함께 진보세력의 한계까지도 지적했다. “민주대연합이 이명박 정부를 넘어 국민들에게 집권세력으로서의 신뢰와 비전을 줄 수 있는가는 회의적”이라고 평가하면서도 “대안연합을 이야기하는 분들은 민주당으로는 안된다는 것 이상, 무엇인가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한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정말 민주정부인가?

 

토론자들은 저마다 약간의 강조점과 시각의 차이는 있으나 대체로 현재 제기되고 있는 반MB연대, 즉 민주대연합 전술에 대한 한계를 강조하면서 보다 주도적인 진보정당의 활동을 요구하고 있다. 그럼에도 각 논자들의 주장이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명쾌한 대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연대전략논쟁에 빠져 있는 구멍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우선, 몇몇 토론자들의 이명박 정부에 대한 민주성 논의는 지나치게 ‘과거 지향적’이다. 대부분 토론자들이 이명박 정부를 반민주정권으로 규정하는데 주저하는 것은 선거와 민주주의를 일치시키는 자유민주주의적 시각을 그대로 수용한 것이어서, 1987년 6월항쟁 이후 발전되어 온 대중의 민주의식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

 

6월항쟁을 통해 쟁취한 87년체제는 주기적인 선거나 정권교체의 보장 등 자유민주주의적 시각의 공고화는 이루어냈지만, 박원석 처장이 지적한 것처럼 ‘통치과정의 민주성’은 전혀 담아내지 못했다. 임필수 실장이 지적 했듯이 국민의 직접적인 정치 개입을 보장하는 인민주권적 가치는 세계적으로도 점차 민주주의에서 배제되고 있다. 우리의 경우, 해방 직후 인민위원회나 80년 5월항쟁 당시 일시적인 인민주권적 자치공동체의 창출을 예외로 하면, 통치과정에 국민이 직접 개입했던 경험은 찾기 어렵다.

 

그러나 87년 이후 축적된 대중의 민주의식은 자유민주주의적 한계를 넘어 인민주권적 가치를 분명하게 인식해 가고 있으며, 두 민주주의의 모순과 갈등이 극단적으로 표출된 사례가 바로 지난 해 촛불항쟁이다.

 

물론 모든 대중이 촛불시위에 참여했던 것은 아니며, 국민주권운동을 인민주권적 가치로 해석했던 것도 아니다. 그러나 진보세력이라면, 지난 해 여름을 달구었던 진보적 대중, 어쩌면 지금 현실정치공간에 발딛고 있는 정치세력보다 더 진보적인 대중의 가치를 중심으로 정권의 민주성을 파악했어야 하지 않을까?

 

이명박 정부를 반민주적이라고 규정하고 투쟁하는 것이 20년 전의 민주주의로 돌아갈 뿐이라고 보는 것은 사실 민주주의를 자유민주주의적으로, 20년 전의 기준으로 사고하기 때문일 수 있다. 지난 해 촛불시위 당시 대중들이 외친 ‘민주주의’는 20년 전의 민주주의가 아니었으며, 그 내용과 폭은 그 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확장된 것이었다. 그럼에도 진보세력 스스로 민주주의를 20년 전의 개념으로 버려두는 것은 민주주의를 보수주의와 분리시켜 진보적 가치와 재결합 시킬 수 있는 가능성과 토대, 기회를 스스로 팽개치는 것이다.

 

우리가 민주주의라는 합의된 가치를 끊임없이 진보화하고 그 내용을 풍부하게 만들지 못한다면, 그것을 전유할 수 있는 것은 낡은 민주주의만을 인정하는 보수세력 뿐이다. 진보세력의 과제는 ‘상식’ 수준으로 수용되고 있는 민주주의라는 개념을 20년 것으로 치부하기보다는 끊임없이 새로운 내용을 불어넣어 대중의 상식까지 진보화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다.

 

또한, 민주주의를 이처럼 끊임없이 변화하고 확장되어야할 것으로 본다면, 민주정권이라는 규정은 역사적 조건에 따라 상대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김대중·노무현 정권 또한 오늘날의 기준으로는 민주적이지 않은 정권으로 평가할 수 있으며, 이명박 정권 또한 독재시절의 정권이었다면 민주정권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이 민주주의냐’에 대한 것이 끊임없이 재구성되는 것이라는 점을 인정한다면, 정권의 민주성은 그 시기 대중의 민주의식과 다양한 물질적 조건에 근거하여 ‘역사적으로’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진보적 연대전략논쟁의 구멍

 

또한 진보세력들의 연대논쟁은 중요한 빈틈을 드러내고 있다. 토론은 이명박 정부의 성격 규정에서 바로 후보전술 문제로 넘어서고 있는데, 이것은 현실과 목표 사이를 매개해줄 ‘전략적 사고의 부재’를 보여준다. 즉, 지금의 현실에서 어떻게 각자가 주장하는 당위적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지에 대한 논의 없이 바로 후보단일화라는 ‘전술적 논쟁’이 펼쳐지는 것이다.

 

많은 토론자들이 인정하고, 진보세력을 바라보는 외부의 논평자들도 지적하듯이 지금 문제는 반MB투쟁이 민주당의 지지로 귀결되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지만, 그것을 대체하거나 외면하기에는 진보세력의 대안이 없다는 것이다.

 

진보세력에게 없는 대안은 두 가지다. 바로 비전과 영향력이다. 진보는 반MB연대를 비판하지만 현실의 대중의식과 조응하는 종합적 전망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고, 반MB연대가 아니라면 독자적으로, 혹은 진보세력으로 분류되는 세력끼리라도 험난한 정치공간에서 성과를 낼 수 있는 영향력이 없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보라. 여론조사의 지지율 수치는 단지 숫자일 뿐이 아니다. 그것은 어떤 이유에서건 보수세력이 대중에게 미치고 있는 영향력의 정도를 보여주는 것이며, 반대로 진보세력이 대중에게 어떤 존재로 다가서고 있는가를 확인시켜주는 종속변수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반MB연대의 문제를 공유한다면, 다른 형태로 전환해야 한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많은 이들이 진보의 연대전략논쟁을 지켜보면서 답답해 하는 것은 진보대연합이든 독자성 강화든 목표 지점만을 제시할 뿐 그곳으로 가기 위한 전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재보궐 선거를 코 앞에 둔 시점에서 후보단일화를 둘러싼 논쟁이 중심에 설 수밖에 없지만, 그것은 전략 속에서 파악해야할 전술적 문제이지 전략적 차원의 문제와 동일시 될 수 없다. 이런 점에서 진보세력은 지금의 연대전략논쟁에서 ‘전략의 부재’라는 거대한 구멍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진보연합만으로는 역량의 한계가 있으므로 반이명박 연대 활동에서 민주당 내부 혁신을 유인하고 진보의 지평을 넓힐 수 있는 방향으로 공동 활동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 이대근 에디터의 주장은 정확히 핵심을 찔렀다. 그러나 그 주장마저 공허한 것은 그것이 실현되기 위한 구체적 프로그램을 제시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민주당의 내부혁신을 유인할 것이며, 어떻게 진보의 지평을 넓혀갈 것인가? 이런 ‘방향’은 구체적인 프로그램으로 제시되어야만 현실성을 획득할 수 있으며, 기계적인 후보단일화 논의 보다 더 풍부한 진보적 민주주의의 내용을 채워 나갈 수 있다.

 

이런 프로그램은 다양한 방식으로 제안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반MB로 결집된 세력들이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공동정책공약을 마련하는 논쟁의 장을 만들어 볼 수 있다. 이 속에서 각 정치세력은 서로에 대한 정치적 비전을 논쟁하면서 상대방 정책의 허구성을 드러낼 수도 있고, 자기 전략의 구멍을 새롭게 발견하고 혁신의 계기로 삼을 수도 있다. 또는 김대중-노무현-이명박 체제를 뛰어넘는 대안체제에 대한 총체적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공동 프로젝트에 착수하자는 공세적 제안을 던져볼 수도 있다.

 

이외에도 다양한 전략과 구체적 기획이 제시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단순한 당위적·선언적 주장이 아니라 구체적 전략을 마련할 시점이며, 이것의 현실화는 반MB연대든 진보대연합이든 현실적 조건에서 최대한의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구체적 프로그램으로 제시되어야 한다.

 

출발점과 목표를 제대로 구분해야

 

후보단일화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는 오히려 핵심이 아니다. 정권획득을 목표로 하는 정당에게 후보를 포기하라는 것은 존재의미를 부정하는 것일 수 있다. 진보세력, 혹은 개혁세력이 현실을 문제를 어디로, 어떻게 끌고 갈 것인지에 대한 연대전략 없이 전술적 수준에서 제기되는 후보단일화 논쟁은 개별적 이해관계를 극복하기 어렵다.

 

전략은 목표와 출발점을 구분하는 것에서 만들어진다. 즉, 현실의 조건을 출발점으로 삼아 자신이 지향하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경로를 모색해야 하는 것이다. 많은 논쟁에서 진보의 실책은 목표를 현실, 즉 출발점으로 착각하는데서 기인했다. 목표는 전략을 통해 도달해야할 지점이지, 출발점으로 삼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재보궐 선거는 코앞이지만, 지방선거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다. 발전적이고 생산적인, 그리고 무엇보다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진보의 ‘전략’을 기대해 본다.

 

* 오마이뉴스 기고글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246161&PAGE_CD=

LEFT21 관련기사 ... http://www.left21.com/article/7135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