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 비평

손우정 2009. 11. 16. 17:01
마은혁과 신영철, 누가 더 정치적이었나?
한나라당의 속 보이는 '이중잣대'와 사법 중립성
09.11.16 09:56 ㅣ최종 업데이트 09.11.16 09:56 손우정 (roots96)


세 가지 시각과 세 가지 사건

 

"OO을 쟁점화 하는 것은 진실을 밝히려는 것이 아니라 사법 권위를 훼손하고 사법부를 뒤흔들려는 음모이며, 진실을 왜곡하고 국면여론을 호도하려는 저급한 시도다."

 

"이 판결은 법조인이라면 누구나 말이 안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 문제가) 사법의 정치화를 가져오는 것 아닌가 하고 걱정하고 있다. 그리고 OOOOOO가 편향적 시각을 가진 집단이 아닌가 하고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

 

위의 말들은 최근 일어난 사법적 문제를 둘러싸고 나온 말들이다. 누가, 어떤 문제에 대해 이렇게 말한 것일까?

 

  
성윤환 한나라당 의원이 11일 오전 국회 본회의에서 의사진행 발언을 통해 "재판 개입 논란을 빚은 신영철 대법관의 행위는 대법관 임명 이전의 일로 탄핵 요건을 갖추지 못한 것"이라며 "야당 의원들이 탄핵소추안을 발의한 것은 정치공세에 불과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 남소연
성윤환

최근 일어난 사법적 문제들을 떠올려 보면, 지난 10월 29일 미디어법 처리 과정의 위법·위헌성은 인정하면서도 법안의 효력은 인정한 헌법재판소의 판결과, 편파적 촛불재판으로 물의를 빚었던 신영철 대법관의 탄핵소추안, 그리고 지난 1월 국회 로텐더홀을 점거한 혐의로 약식 기소된 민주노동당 당직자 12명에게 공소기각 판결을 내렸다 보수언론의 총공격에 직면한 마은혁 판사 논란을 들 수 있다.

 

답을 추론해 보자. 혹자들은 첫 번째 발언이 마은혁 판사에 대한 마녀사냥을 둘러싼 시민사회의 반응이라고 짐작했을 수 있다. 그리고 두 번째 발언은 '법은 어겼지만 법안은 유효하다'는 생뚱맞은 결론으로 각종 패러디를 양산시킨 헌법재판소에 대한 단상이라고 예측했을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발언은 촛불재판과정에서 재판과 법관의 독립을 침해한 신영철 대법관이나 헌법재판소에 대해 야당 의원쯤 되는 사람의 논평을 떠올렸을 수 있다.

 

물론 특정한 정치적 견해를 가진 사람들마다 다른 대답을 해볼 수 있겠지만, 최소한 각 사건에 대해 시민사회의 반응은 위의 발언과 대체로 유사했다. 그러나 정답은 '모두 틀렸소'다.

 

첫 번째 발언은 율사 출신인 성윤환 한나라당 의원이 국회에서 신영철 대법관 탄핵소추를 반대하면서 한 말이다. 두 번째와 세 번째 발언은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가 마은혁 판사의 판결 내용을 두고 한 평가다. 어떤가?

 

누가 더 정치적인가?

 

마은혁 판사 문제를 보는 한나라당의 시각은 신영철 대법관을 보는 시각과 정반대다. 마은혁 판사가 진보정당 당직자를 공소기각하고,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 후원행사에 참여한 사실에 대해서는 "말이 안되는 것", "사법의 정치화"라고 평가하면서도, 촛불시위 재판에 노골적으로 개입했던 신영철 대법관의 탄핵소추에 대해서는 "사법의 독립성 훼손", "국민여론 호도"라고 반응하고 있다.

 

  
<조선일보> 11월 11일 기사 '민노당원 공소기각한 판사 노회찬(진보신당 대표)후원회 후원금 냈다'
ⓒ 조선일보 PDF
조선일보

아이러니컬하게도 <동아일보>와 <조선일보>가 마은혁 판사의 노동운동전력을 문제삼으며 마녀사냥을 본격화 한 11월 12일은 106명의 야당 의원들이 "신 대법관이 촛불집회 재판에 개입해 법관의 독립성과 재판권을 침해했다"며 발의한 대법관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자동폐기된 날과 같다. 탄핵소추안 상정에 반대한 한나라당의 논리는 "사법부의 자율성 존중"이었다.

 

한나라당이 어떤 판사에 대해서는 특정 판결에 '정치적 의도'가 도사리고 있다는 식의 반응을 보이고, 어떤 법관에 대해서는 '사법부의 자율성 존중해야'한다고 반응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일관성 없는 주장들은 사법부의 판결에 대해 한나라당이 '정치적 의도'를 드러내는 것이다.

 

2004년 행정수도 이전과 2008년 종부세 위헌 판결에서 알 수 있듯이 이미 사법부는 거대한 권력이 됐다. 1987년 개헌과 함께 등장한 헌법재판소는 법관의 헌법 해석을 매우 중요시 여기는 헌정주의(constitutionalism)의 경향이 강화되면서 점차 국가 중대사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민주적으로 해결되어야 할 의제들이 사법부의 판단에 맡겨지는 '정치의 사법화'가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초기 헌법재판소는 비록 5.18 특별법사건과 교원노조사건, 각종 국가보안법 사건에 대해 보수적인 판결을 내리기는 했지만, 영화검열 위헌결정, 동성동본금혼 위헌 판결 등 소신 있는 결정을 내리기도 했으며, 민주화 과정에서 기본권을 보장하는 데 의미 있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사법권력이 강화되는 것과 함께 신영철 대법관의 재판 개입에서 보듯 최근에는 다시 과거 독재시절처럼 사법부가 정치화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마은혁 판사의 사례 경우에도 법리적 논쟁보다 신영철 대법관과 전혀 다른 이중 잣대를 들이대면서 그의 과거 전력이나, 그가 속한 우리법연구회로 마녀사냥의 화살이 돌려지고 있는 것은 권력화한 사법부를 다시 정치화하려는 한나라당의 의도를 제외하고는 이해하기 어렵다.

 

만일 신영철 대법관이 전혀 다른 의도에서 촛불재판에 개입했다면, 마은혁 판사가 무슨 '뉴라이트법연구회'쯤 되는 단체의 회원이었더라면, 두 사람에 대한 반응이 지금과 같았을까? 너무 뻔한 질문이지 않은가?

 

사법의 중립성을 논하려거든 초점부터 제대로 맞추라

 

  
신영철 대법관
ⓒ 유성호
신영철

만일 한나라당이 진정 사법의 중립성과 공정성을 지키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면, 우선해야 할 것은 마녀사냥이 아니라 '초점의 이동'이다. 사법부의 구성을 보라. 최고의 헌법 해석기관인 헌법재판소의 판관들은 주로 서로 비슷한 대학을 나와 20대에 사법고시에 합격하고 수십 년 간 엘리트 판사나 엘리트 검사로 출세가도를 달리다가 법원장이나 검사장급에서 바로 헌법재판관으로 발탁된 50대, 60대의 다소 보수적 성향을 가진 남성들로 채워져 있다.

 

또한, 지난 10월 18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이춘석 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신임판사 10명 중 4명이 특수목적고와 강남·서초·송파구 등 강남 소재 고등학교 출신자들로 채워졌다. 특히 1999년부터 2009년까지 임용된 특목고 출신 판사 171명 중 58명은 대원외고 출신이다.

 

이처럼 특수한 사회계층 출신 판사의 비율이 꾸준히 늘어가는 상황에서, 과거 전력이 현재의 재판에 영향을 미친다는 한나라당의 논리라면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공정한 판결은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법연구회가 문제가 아니라 사법엘리트의 구성 자체가 문제인 것이다.

 

물론 한나라당이 이런 헌법재판소와 판사 구성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리라고는 기대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번 마은혁 판사 문제를 둘러싼 한나라당의 반응을 듣고만 있을 수 없는 이유는 자격 없는 이들이 사법의 정치화를 운운하고 있기 때문이다.

 

누가 보더라도 '우리법연구회'를 최종 목표로 상정하고 마 판사에 대한 마녀사냥을 펼치고 있음에도 정작 정치재판의 장본인인 대법관에 대해서는 '사법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며 탄핵을 반대하는 정신분열적 대응을 어찌보아야 하는가? 과연 '사법의 정치화'는 누가 만들고 있는가?

 

한나라당, 장기적 안목을 가져라

 

집권여당으로서의 한나라당은 보다 장기적 안목을 가질 필요가 있다. 두 판사에 대한 이중 잣대에서 드러난 정치적 의도로 해석해보자면 분명 한나라당이 주도하는 사법의 정치화는 그들에게 단기적인 이득을 안겨줄 것이다.

 

그러나 법은 사회적 갈등의 합리적 중재 수단으로 존재해야 한다. 그것이 부정된다면 공식적인 법과 제도로 해결되지 못한 사회적 갈등이 비제도적인 방식으로 표출될 수밖에 없다. 촛불시위를 비롯한 과거의 각종 저항을 기억하라.

 

또한, 우리가 지난 헌법재판소의 판결에서 배웠듯이 '대충 법 어겨가며 법률을 통과시켜도 법효력은 없어지지 않는다'는 논리는 그들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수 있다. 한나라당이 만년 다수당일 것 같은가?

 

물론 한나라당의 성찰을 기대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벼르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한나라당에 비판적인 많은 이들은 언젠가 좀 더 나은 세력이 다수당을 획득하게 될 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를 한나라당을 통해 배우고 있다.

 

한나라당이 지금 하고 있는 것은, 언젠가 그들 자신을 대상으로 한 정치행동의 가이드라인이 될 수 있다. 스스로 상상해볼 일이다.




누가 더 정치적인가? -> 누구의 정치인가? 혹은 어떤 정치인가? 가 더 나은 주제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 추상성이 그렇긴 하지만... 지금까지 '정치'라는 언어가 들어간 대부분의 제목들의 프레임(구도) 효과들이 정치라는 것은 '가능한 피해야 하는 것'이라는 인식을 담고 있다는 생각에서입니다. 가령 정치 목사, 정치 교수 라는 것이 이런 예들인데 정치 이득 달성 행위 일반을 문제 삼는 듯한 분위기가 문제인 셈이죠. 목적 없는 참여가 어디 있나요? 문제는 그 목적이 어떤 방향으로 가는 것이며 각 계층에 가하는 영향이라든가 이런 것을 망각케 하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가령 신영철 대법관의 정치랑 마은혁 대법관의 정치랑 서로 다른 편인데 결국 이런 방향 문제가 본질이죠...
결론으로 지금까지 언급한 '정치'라고 하는 것은 인간의 정치 동물로서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심지어 이미 지나간 이야기이지만 폭력과 관련한 것에서도 선택해야 할 주제의 분화는 '순결과 폭력'이 아닌 '어떤 폭력인가?' 이듯이 정치 역시도 '순결과 정치' 사이가 아닌 '어떤 정치인가?' 입니다. 한국에도 정치학자들도 숱하던데 이런 것을 언급하는 사람 찾기는 안드로메다의 수분 만큼이나 어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