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 비평

손우정 2009. 12. 13. 17:35

‘97년체제’대 ‘08년체제’ 논쟁의 함의

‘87체제’라는 용어가 2005년 창비 - 함께하는 시민행동 공동 심포지엄(87년체제의 극복을 위하여 - 헌법과 사회구조의 비판적 성찰)에서 한국사회를 설명하는 주요 개념으로 본격 등장한 이후, 학계에서는 87년체제, 97년체제, 61년체제, 분단체제 등 ‘체제’에 대한 다양한 논쟁과 분석이 진행되어왔다. 최근에는 08년체제를 주장하는 조희연 교수와 97년체제를 주장하는 손호철 교수가 다양한 쟁점을 둘러싸고 격돌하면서 제2의 논쟁기를 맞고 있다.


 

전략없는 전술논쟁’을 넘어

이번 논쟁의 특징은 과거에 비해 보다 실천적 의도가 강하게 배어 있다는 점이다. 각 논자들은 체제분석을 통해 현재 진행되고 있는 반MB투쟁과 진보대연합, 그리고 내년 지방선거를 앞둔 선거전략 문제 등에 개입하려는 의도를 드러낸다. 대다수 현실정치세력이 여전히 ‘전략 없는’ 후보단일화, 선거연합, 정책공조 등의 논란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고려하면, 현실에 대한 과학적 인식을 통해 전략적인 해결방안을 마련하려는 체제논쟁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럼에도 이번 논쟁은 이에 개입한 일부 학자들을 제외하고는 뜨거운 대중적이고 실천적 인 반응을 불러오지 못하고 있다. 무시할 수 없는 이유 중 하나는 체제논쟁이 지나치게 학술적인 개념 논쟁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것이다. 다양한 부문체계나 하위체계 등 체제라는 용어가 지나치게 남용되고 이를 둘러싼 학문적 논의가 격렬해지면서 어중간한 지식을 가지고는 논쟁에 개입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이 논쟁은 따라가 볼 만한 가치가 있다. 이 논쟁이 우리에게 절실하지만 결핍되어 있는 전략적 수준의 문제를 겨냥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나친 단순화가 각 논자들의 주장을 왜곡할 수 있다는 위험을 무릅쓰고, 조희연-손호철 논쟁을 따라가 보자. 


 

‘반MB냐, 반신자유주의냐’ 서로 다른 중심

조희연-손호철 논쟁은 지금의 현실을 ‘어떤 체제’로 인식할 것인가를 둘러싸고 전개된다. 조희연 교수가 이명박 정부의 등장과 궤를 같이 하는 08년체제를 중심으로 진보세력의 ‘헤게모니적 실천’을 강조한다면, 손호철 교수는 한국사회의 전면적 신자유주의화를 의미하는 97년체제가 여전히 오늘의 현실을 규정하기 때문에 08년체제적 문제의식인 반MB투쟁은 보다 심층적인 반신자유주의 투쟁의 하위 문제라고 본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97년체제론자인 손호철 교수는 체제분석이 “열린 총체성으로서의 ‘사회체계’와 다양한 ‘부분체제’(헌정체제, 노동체제 등)로 나뉘어 진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한국에는 48년체제, 61년체제, 87년체제, 97년체제가 존재했다고 본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87년체제는 헌정체제 등 일부 부분체제로서만 그 의미를 지닐 뿐, 사회체제 수준에서는 이미 97년체제가 87년체제를 대체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반신자유주의를 추구하는 세력들은 단순히 이명박 정부를 반대하는 미온적 대응에 머물 것이 아니라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의 반민중성을 폭로하고 반신자유주의 대항헤게모니를 강화해 나가는 방식을 택해야 한다고 본다. 물론 손호철 교수는 반MB투쟁과 반신자유주의투쟁의 결합을 주장하지만, 그 중심은 어디까지나 반신자유주의 전선이다.

반면, 조희연 교수는 97년체제를 87년체제의 하위체제라고 보면서 지금은 87년체제의 또 다른 하위체제인 08년체제가 작동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97년체제는 87년체제의 상향발전이라는 성격과 08년체제의 선행적 성격이 공존하는 것이며, 따라서 정치체제-경제체제의 일관성이라는 측면에서 현 체제는 08년체제라는 것이다. 조희연 교수가 손호철 교수와 달리 97년체제보다 08년체제를 더 중시하는 것은 김대중·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의 동일성보다 차이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즉 손호철 교수처럼 08년체제를 97년체제의 하위체제로만 볼 경우, 경제적 측면에서 김대중·노무현 정권과 이명박 정권의 연속성은 파악되지만 반MB투쟁의 대중적 고양에서 파악할 수 있듯이 경제적·정치적 측면의 차이점, 즉 신자유주의적 경제의 정치적·이데올로기적 구성을 포착할 수 없으며 헤게모니적 실천을 위한 개입공간을 온전히 인식할 수 없다고 본다.

두 교수는 모두 한국사회의 주요 과제가 신자유주의를 극복하는 데 있다고 보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 또한 지난 해 촛불시위 이후 형성된 이른바 ‘반MB연대’도 무조건 외면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대상으로 사고해야 한다는 것에도 입장을 같이 한다. 허나 손호철 교수가 반MB연대를 반신자유주의 정치전선에 복속되어야 할 것으로 보면서 각 부문체계에 존재하는 다양한 진보적 경향이 손을 잡는 ‘무지개 연합’을 전략적 목표로 제기한다면, 조희연 교수에게 그런 연합(조희연 교수의 용어로는 ‘새정치연합’)은 국민정치공간(반MB연대)의 헤게모니적 실천을 위한 출발점에 가깝다. 

조희연 교수가 일종의 진보블럭 형성을 넘어 제기하고 있는 과제는 민주당으로 상징되는 반독재 자유주의세력을 헤게모니적으로 균열시키고 이를 진보적 헤게모니에 접합시키는 것이다. 물론 이 과정은 헤게모니적 정치실천의 속성상 자유주의적 헤게모니로 종속될 수도, 좌파 헤게모니로 종속될 수도 있다. 특정세력이 100% 이익을 보는 공간은 애초부터 헤게모니적 정치공간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손호철 교수의 전략은 자칫 반신자유의 세력만의 진보연대로 머물 수 있으며, 조희연 교수의 전략은 비판적 지지로 전락할 가능성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현재 바닥을 기고 있는 진보세력들에 대한 지지율과 영향력이라는 현실적 문제를 고려했을 때, 손호철 교수에게는 그 ‘협소함’이 비판될 수 있고, 조희연 교수에게는 그 ‘위험성’을 문제 삼을 수 있다. 현재의 논쟁이 좀 더 현실화 ·구체화되어야 하는 지점이다.


 

‘연대전략 논쟁’으로 이름을 바꾸자

이 외에도 체제논쟁에 결합되어 있는 학문적 쟁점들은 매우 다양하며 폭이 넓다. 어느 하나에라도 제대로 개입하기 위해서는 일정 수준의 학문적 ‘내공’을 필요로 하며, 이것이 쟁점의 폭에 비해 개입하는 논쟁가들이 적은 이유다. 사실 이런 결과는 이 논쟁이 ‘체제논쟁’이라 칭해지면서부터 어느 정도 예정된 결과다. 논쟁의 프레임 자체가 전문성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체제논쟁이 내포하고 있는 함의가 ‘전략 없는 전술논쟁’에 소모되고 있는 우리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할 수 있다면, 이 논쟁을 좀 더 확산·확대시킬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체제논쟁이라는 이름을 ‘연대전략 논쟁’으로 바꾸면 어떨까?

그렇게 된다면 다소 투박하거나 학술성이 덜한 주장들도 좀 더 쉽게 논쟁에 끼어들 수 있고, 체제논쟁의 실천적 쟁점도 더욱 분명해질 것이다. 또한 이것은 실천적 학자들의 고뇌가 단지 이론적 논쟁으로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검증되게 만드는 방법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 월간 참여사회 기고문.

체제론에는 사회당(http://sp.or.kr/ )이 주장하는 53체제(휴전 혹은 정전 체제)도 있기는 합니다. 위에서 언급한 분단체제와 유사한 규정이긴 한데 분단체제가 시발 기준이라면 53체제는 완성기준이라는 차이가 있긴 합니다.
분명 체제가 중요한 면이 있기는 하지만 학술 영역이라는 각인이 깊어서 대중화가 지체상태로 머무는 점이 있긴 하지요.
연대전략이라는 것도 꽤 뜨거운 감자인지 차가운 고구마인지 하는 것인데 인민전선(혹은 통일전선)과 같은 단일전선체의 비극들 - 1920년대 중국, 1930년대 불란서/프랑스 & 서반아/스페인, 1960년대 인도네시아, 1970년대 칠레, 1980년대 이란 등 - 을 하도 마니 겪어서인지 조희연 교수와 같은 부분은 웬만한 좌측 색이 짙은 단체들은 반대하는 편입니다. 조희연 교수의 위험성은 바로 이런 경험들을 근거로 제시하는 것이지요. 손호철 교수의 경우엔 좌측 색의 정도에 따라서는 다르지만 짙을 수록 앞의 조희연 교수의 주장의 연장선상이라고 파악하는 경향도 짙습니다.
아직도 진보인문사회과학저널과 단행본 들의 판매수준이나 정당 혹은 단체, 화두의 지지도가 낮은 현실이 못내 아쉬운 지점입니다. 주로 언어가 어려운 점이 주요 원인이라고 할 수 있지만 과거 노서아/러시아에서 프라우다 - 노어/러시아어로 진실을 의미 - 나 일본 공산당 기관지 아카하다(적기)와 같은 민중언어를 사용한 언론이 있으면 더 쉽게 이들에 대한 접근도도 향상 가능하리라 생각합니다. 아직 한국엔 이런 영향력을 행사하는 언론이 없지요. 진보진영 기관지들(시민사회단체저널포함)도 한 번 읽고 버리거나 임시 받침판 정도의 사용만 존재할 뿐!
간만이네요. 반갑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체제라는 개념이 각기 다른 수준의 문제를 동일선상에 놓고 분석하기 때문에 오히려 혼란을 주고 있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그래서 차라리 연대전략논쟁으로 하자는 입장이죠.^^
저도 연대전략문제에 대해 최근 글을 썼는데, 그람시 헤게모니 개념을 중심으로 써서 약간 학술적이기는 합니다. 조만간 여기에 업뎃 해놓겠습니다.

그리고 오늘 계간지 정기구독을 강매당했는데요(^^), '미래와 희망'이라는 학술적-실천적 성격의 책입니다. 보스코프스키님이 말씀하신 것에 부합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대략보니 내용이 상당히 좋네요. 한권 구입을 권합니다. (개인적으로 아시는 분들이 많이 결합되어 있어서 신뢰가 가는 군요. ㅎ)
예 한 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어떤 조직에서 발행하는 계간지도 지나치게 난해한 언어 투성이라는 지적이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연합에 관한 내용을 다룬 창비 주간 논평도 있군요. '무엇을 위한 정치연합을 할 것인가 (http://weekly.changbi.com/blog_post_454.aspx)' 인데 승자독식형 모델에 대한 비판을 담은 포스트입니다. 대다수의 포스트들이 대안문제를 주로 이야기 할 뿐 제도 이야기는 뒷전임에 비해서 이 포스트는 근본에 더 근접한 부분을 흔들었다는 의의가 있군요.
마지막으로 지금 연합에 대한 논의는 많지만 '정체성을 어떻게 세울고 구현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뒷전인 점이 많이 아쉽습니다.
보스코프스키님이 알려주신 포스트만 읽어도 박사논문 쓰겠어요. ㅎㅎ 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