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 비평

손우정 2010. 9. 17. 09:25

'이지문' 거부한 삼성... 내부고발자는 서럽다
공정사회를 위한 첫걸음, '공익신고자보호법'
10.09.16 17:57 ㅣ최종 업데이트 10.09.16 17:57 손우정 (roots96)

  
'공정한 사회'를 주제로 한 2010 장ㆍ차관 워크숍이 지난 5일 오후 청와대 영빈관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장ㆍ차관급 공직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 청와대 제공
공정한 사회

연일 '공정한 사회'가 화두다. 이명박 정부는 지난 8·15 경축사에서 '공정한 사회'를 처음 언급한 후, 연일 '공정사회'를 외치고 있다. 특히 김태호 총리후보가 낙마한 이후부터는 정가의 유행어가 되었다. 8월 31일 국무회의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모두발언에서만 무려 7번이나 '공정한 사회'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발언의 대상도 가리지 않는다. 지난 9월 13일,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을 비롯한 대기업 총수 12명을 청와대로 초청한 조찬 간담회에서도 "우리 사회가 불공정한 것이 많다. 여러 곳의 불평등을 바꿔보자. 경제는 잘해서 올라가고 있지만 법질서를 이렇게 지키지 않아 어떻게 일류국가가 되겠냐"며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동반성장을 주문했다.

 

그러나 공정한 사회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공정사회를 강조하는 이들일수록 상식적인 공정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공정사회를 외치는 와중에도 공정치 못한 일들은 벌어졌다. 유명환 장관이 딸의 외교부 특채 시비에 걸려 사퇴한 데 이어, 이명박 대통령의 외아들이 이 대통령 큰 형이 회장으로 있는 (주)다스 과장으로 취업한 것에 대해 민주당은 공정성 시비를 제기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이재오 특임장관 아들과 사위의 특혜취업 의혹까지 제기하는 형국이다.

 

이런 가운데 한나라당은 9월 14일 이른바 '공정사회법안' 16건을 친서민법안과 함께 선정, 발표했다. 지난 9월 6일에 한나라당이 선정한 공정사회법안은 17개였는데, 이중 야간 옥외집회 금지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집시법 개정안이 작위적이라는 반발 속에 빠진 것이다. 대신 공정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교원평가제 도입을 위한 초·중등교육법 개정안과 방송광고 판매시장에 경쟁을 도입하여 종편 채널에 유리하다는 비판을 받은 방송광고판매대행법을 포함시켰다.

 

이쯤되면 정부가 말하는 '공정'이 공정(公正)이 아니라 공정(空正)이라는 냉소가 터져나오는 것이 무리는 아니다. 

 

공정사회에 대한 한 줄기 희망, 공익신고자보호법

 

  
삼성의 비리를 폭로한 김용철 변호사.
ⓒ 남소연
김용철

그러나 이런 아리송함 속에서도 눈에 띄는 공정사회법안이 있다. 바로 '내부고발자'를 보호하기 위한 공익신고자보호법이다.

 

재벌의 부동산 비리를 폭로한 이문옥 전 감사관이나 군부재자 투표의 부정을 고발한 이지문 전 중위, F-15K 전투기 선정 과정에서 외압을 폭로한 조주형 대령, 남한 최대의 권력기업인 삼성의 비리를 폭로한 김용철 변호사 등 이른바 '내부고발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법으로 그동안 시민사회에서 줄기차게 입법을 요구해온 것이다.

 

이들은 대통령처럼 '공정한 사회'를 외치고 다니지는 않았지만, 한국사회의 공정성을 높이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해왔다. 그러나 이들이 '배신자'라는 낙인까지 찍혀 가면서 내부의 비리를 폭로한 대가는 가혹했다. 이들을 보호할 법적·제도적 조치가 부재했기 때문이다. 공직사회에 대한 부패척결과 내부고발자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부패방지법'이 있지만, 이는 공공기관의 내부고발에 초점을 맞추고 있을 뿐, 삼성처럼 철저하게 통제되고 있는 민간기업의 내부고발자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는 매우 취약한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내부고발 이후에 공익제보자들이 감내해야 하는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2007년 한국일보 기획취재팀이 1990년 이후 공익제보자 20명을 추적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공익제보로 인해 징계와 해고를 당한 비율은 80%(16명)에 이르렀으며 이 중 11명은 조사 당시까지도 직업을 갖지 못했다.

 

또한 내부고발자들이 '가장 교묘하고 악랄한 보복행위'라고 부르는 집단 따돌림은 전체의 95%(19명)가 경험했고, 90%는 우울증, 불면증, 대인기피증 편집증 같은 정신질환과 소화불량, 신경성 장염, 급성간염 등을 앓았다. 내부 비리를 폭로했던 이들은 오히려 법적 처벌의 대상이 되기도 했으며, 심지어 2003년 1월에는 사학비리를 내부고발 했던 사람이 청부살인을 당하기도 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동안 시민사회에서는 공익신고자보호법 제정을 지속적으로 촉구해 왔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2008년 12월 국민권익위원회가 '공익신고자보호에관한법률제정(안)'을 입법예고 했지만, 아직까지도 국회에 계류되어 있는 상황이다. 대통령이 '공정사회'를 불철주야 외치고 있는 사이에도 불법적인 폭력을 행사한 동료경찰관을 내부 고발한 경찰관이 오히려 파면을 당했다는 언론기사가 나오고 있다.

 

공익제보자 기피하는 사회

 

최근 우리에게 내부 고발자로 가장 잘 알려진 이지문(42)씨가 자신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 나섰다가 좌절한 사례는 공익제보자에 대한 한국사회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삼성그룹에 입사한 상태에서 ROTC로 근무하던 중, 14대 국회의원 선거 군부재자 투표과정에서 있었던 공개투표·대리투표 행위와 여당지지 정신교육이 있었던 사실을 폭로한 이지문씨는 지난 4월 26일,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및보상심의위원회(이하 위원회)로부터 민주화운동관련자로 인정받았다. 그의 신청유형은 '명예회복(해직)'으로 분류되어 있었고, 위원회는 삼성그룹의 복직을 통해 명예를 회복하도록 권고했다.

 

그러나 9월 1일, 삼성그룹을 대신한 삼성전자는 '복직불가' 입장을 위원회에 전달했다. 이유는 "회사의 인력운영상황을 고려해볼 때 적합한 직무가 없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물론 이지문씨 역시 김용철 변호사 사건을 경험한 삼성이 공익제보자 운동을 펼쳐온 자신의 복직을 쉽게 수용할 리가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럼에도 이지문씨는 자신이 복직을 요구한 이유를 "자신의 사례가 다른 공익제보자들에게 좋은 선례를 남기고 용기를 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 삼성이 위원회에 보내온 공문 해체된 삼성그룹을 대신한 삼성전자가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및보상심의위원회에 보내온 공문이다. 삼성은 '적합한 직무'가 없어 복직을 불가한다고 밝혔다.
ⓒ 이지문
삼성

 

물론 이지문씨가 삼성전자에서 연구개발 관련 직무를 수행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김용철 변호사의 내부고발을 계기로 투명경영의 필요성이 절실해진 삼성으로서는 윤리경영이나 감사 관련 직무에 배치할 수는 있었을 것이다. 단, 삼성이 공정한 사회에 대한 진정성이 있었다면 말이다.

 

통신사마저 보도자료 배포 거부

 

더 황당한 사건은 다음 날 벌어졌다. 그가 부대표로 있는 '공익제보자와함께하는모임'은 삼성의 복직불가 통보에 대해 보도자료를 작성하고 연합뉴스와 뉴시스와이어라는 통신사에 유료로 배포를 의뢰했다.

 

그러나 연합뉴스는 돈을 돌려주고 "민주화운동심의위와 삼성 쪽에 확인취재가 필요하다"면서 포털을 제외한 언론사에만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뉴시스와이어는 자사 이용약관 중 '기타 관련법령이나 회사가 정한 이용조건에 위배되는 경우'에 해당한다며 배포 자체를 거부했다.

 

통신사가 보도자료 배포를 거부한 이유는 삼성이라는 막강 기업의 명예훼손 시비에 얽혀 들고 싶지 않아서일 것이다. 그러나 공익제보자모임에서 발표한 보도자료는 대부분 사실관계를 적시한 내용이다. 굳이 삼성의 심기를 건드릴 만한 문구를 찾자면 "이지문씨에 적합한 직무가 없어서 복직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한 것은 삼성 그룹이 여전히 윤리경영, 투명경영에 대해서 의지가 없다고 밖에는 볼 수 없다"고 언급한 부분 뿐이다.

 

게다가 이지문씨에 의하면, 해당 통신사들은 그동안 공무원노조의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비판이 담긴 보도자료도 아무 문제없이 배포해 왔다고 한다. 이런 일련의 과정은 공익제보자를 대하는 우리사회의 시선을 대해 잘 보여준다.

 

정보 전달을 주 임무로 하는 통신사마저 공익제보자모임의 보도자료를 거부하였다는 것은, 삼성이라는 거대기업의 혹시 있을지 모르는 명예훼손 시비가 내부고발자들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게 취급된다는 것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공정사회 위해 내부 감시 활성화해야

 

대통령이 불철주야 '공정한 사회'를 외쳐도, 우리 사회의 현실은 여전히 맑고 투명한 사회와는 거리감이 있다. 국제투명성기구(TI)에서 매년 발표하는 부패인식지수(CPI)에 따르면 한국의 CPI는 2008년 10점 만점에 5.6점을 기록해 180개국 가운데 40위에 그친 데 이어, 2009년에는 5.5점으로 0.1점이 하락했다. 이는 2003년 이후 6년 만에 점수가 낮아진 것으로, 세계 CPI 평균보다는 높지만, OECD 국가 CPI평균인 7.04점보다는 매우 낮다.

 

사회가 진정 '공정'하기를 원한다면, 배신자 취급을 당하고 있는 내부고발자들의 처우와 사회적 시선부터 개선하는 것이 옳다. 내부에 있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수많은 비리와 부정이, 온갖 희생을 감수하면서도 '공정한 사회'를 위해 몸을 던진 이들에 의해 하나 둘씩 드러났다. 지난 김태호 국무총리에 대한 인사청문회에서도 김 후보의 권한남용 실태에 대한 내부고발이 결정적 역할을 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국가기관의 복직권고 결정에도 복직을 할 수 없는 내부고발자의 오늘이나, 그 사실 관계 자체도 전달하기 두려워하는 통신사의 모습은 단지 대통령이 '공정한 사회'를 외친다고 해서 바뀔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또한, 공정한 사회가 대통령이 말한 것처럼 "권력을 가진 자, 힘 가진 자, 가진 사람, 잘 사는 사람이 노력"한다고 해서 만들어질 것 같지도 않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이들이 스스로 진심어린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신뢰할 수 없다. 그동안 내부고발을 통해 드러난 기득권자들의 행태나, 그 행태에 대한 솜방망이식 처벌이 우리의 현실을 보여준다.

 

아마도 가장 현실적으로 공정한 사회를 만드는 길은 양심의 호루라기를 부는 사람들을 통해, 자기 안의 양심이 항상 각성되는 조건을 만드는 일일 것이다. 그동안 계류법안 더미에 파묻혀 있던 '공익제보자보호법'이 실질적인 사회감시의 기폭제가 됨으로써, 양심을 위해 비리를 폭로한 이들이 존경받는 '공정한 사회'가 만들어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한국 사회는 유달리 각종 맥 - 인맥, 학맥, 혈맥, 혼맥 등 - 들의 관계가 중요한 역할을 할 때가 많지요. 그런가 하면 공정이라는 단어는 시각의 주역에 따라 다른 해석이 얼마든지 가능한 단어들 중 하나이기 때문에 민감하기도 하지만 논란거리가 많기도 합니다.
한국 사회의 각종 맥 들의 관계를 보건데 내부고발자가 아니어도 한번 기득권 진영에서 낙인받은 인사가 다시 서기는 어렵지요. 게다가 상 문서하고는 동떨어진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한국 사회에서 그 동안 개혁시도가 아무리 작심 1년 내외 정도이지만 번번히 좌절을 경험한 이유도 이런 맥들을 제외하고서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이 점에서 참여연대도 혼맥지도를 밝힌 것도 이런 맥락입니다.
내부고발자들의 이야기도 일종의 '에너미 오브 기득권 - 모두 한글화 하면 기득권의 적들 정도입니다만'의 한 피해의 상황으로 판단할 수 있고 과거 호루라기 던가 하는 홈페이지도 있긴 했지만 오랜동안 접속불능 상황으로 전환한 것도 이런 맥의 벽을 넘지 못했다는 증거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맥들의 사회도 역사적인 연원이 있지만 보편적인 특징을 보자면 일종의 실질 주권 - 헌법 구문 상의 형식 주권 말고요... - 의 존재위치를 파악해야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이기도 하지요. 한국 사회의 언론도 그 자신이 이미 맥의 한 가운데 있거나 직/간접적인 연결고리에 있기도 해서 기사는 물론 광고조차 거부할 때 많지요. - 가령 사진의 김용철 전 변호사의 저서 <<삼성을 생각한다>>의 광고거부 사건과 같은...
거기다가 지난 10년 동안에도 기득권자들 위주의 법안 입법이 줄을 이었거나 이을 예정이었던 점을 본다면 앞으로도 내부 고발자들을 위시한 기득권이 지목한 존재들의 가시발길도 어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기도 하고요.
공정 문제도 뜨거운 감자인데 이 것 또한 상의 지적처럼 시각의 문제가 존재하고 무엇보다 (민중 차원에서) 공정한 역사를 주도해 본 경험이 거의 없기 때문에 한 동안 (민중 차원의) 공정(空正)이나 기득권 시각의 공정(公正)이 아니면 존재가 힘들기도 하겠고요.
이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떤 대단한 역사의 단절이 필요한데 한국 사회는 역으로 저러한 맥들이 자리잡기 까지 저항주역의 해체와 재구성 내지는 임시구성을 원체 반복한 사회인지라 이 또한 대중의 지지를 얻을 때 까지 또한 지난하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미 시간 지체도 상당부분 축적했기에 더 이상 미룰 수 없고 빠른 주의의 정립과 빠른 실행 이 두가지는 불가피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주제는 예전에 본 것임에도 상대적으로 제가 쓸 만큼의 견해도 없고 뒤 늦게서나 올리는 것인지라 추상적인 문구들이 많다는 점도 마지막으로 알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