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 비평

손우정 2011. 1. 4. 14:15

들끓는 세계 대학, 한국 20대는 왜 침묵하나
[분석] 2011년, 20대의 재진보화와 진보정치세력의 과제
11.01.04 13:48 ㅣ최종 업데이트 11.01.04 13:48 손우정 (roots96)

  
2010년 11월 10일 영국 런던에서 등록금 인상에 반대하며 5만여명이 참여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인 대학생들이 집권 여당인 보수당 각료들의 집무실이 모여 있는 웨스트민스터 밀뱅크 빌딩에 유리창을 부수며 진입하고 있다.
ⓒ 로이터=뉴시스
영국대학생시위

2010년 세계는 대학생들의 시위로 몸살을 앓았다. 2013년까지 우리 돈으로 약 13조8500억 원의 교육예산 삭감과 13만 개의 교육현장 일자리 축소를 추진하고 있는 이탈리아 정부에 맞선 2천여 명의 학생들이 피사의 사탑과 콜로세움 등 유명 관광지를 점거하는 시위를 벌였으며, 영국에서는 등록금을 약 3배로 인상하는 계획안을 둘러싸고 13만 명의 대학생들이 연일 거리로 나섰다.

 

1998년 이전까지는 학비가 전액 무료였던 영국은 1998년부터 연간 1000파운드(약 180만원)의 등록금을 부과하기 시작한 이후 2004년부터는 연간 최대 3000파운드(약 540만원)까지 등록금을 책정할 수 있게 됐다. 그런데 최근 이를 9000파운드(약 1620만원)까지 올리기로 한 학비인상안이 하원을 통과하면서 대대적인 과격시위가 벌어진 것이다.

 

세계 최고의 등록금에도 2009년 대학생 시위가 거의 없던 미국에서도 2010년에는 전국적인 대중시위 양상이 나타났다. 2009년부터 시위를 벌여 온 캘리포니아 주립대를 비롯해 노스캘리포니아 주립대생과 조지아주·달톤 주립대 학생들도 거리로 나섰으며, 맨해튼의 뉴욕 대학과 헌터 칼리지, 뉴 스쿨 등 사립대에서도 시위가 벌어졌다.

 

지난해 3월 4일에는 최소 33개주 122개 대학 캠퍼스와 주 의사당에서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세계 최고의 등록금 액수를 기록하고 있는 미국이지만, 캘리포니아 주립대의 경우 35%나 등록금이 올라 2002년에 비해 182%가 인상되면서 분노의 임계점을 넘어버린 것이다.

 

이런 해외의 학생시위 소식을 듣고 있노라면, 자연스럽게 한국 학생운동의 현실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세계에서 가장 대중적이며 조직적인 학생시위를 펼쳐온 것으로 유명한 한국 학생운동의 전통은 1996년 한총련 연세대 사건을 계기로 위축되어 오다 2000년대 들어 눈에 띠게 약화되었다.

 

2000년 이후에는 등록금 인상 저지를 위한 학생시위가 늘긴 했지만, 과거와 같은 폭발적인 학생시위는 일어나지 않았다. 온 국민이 거리로 나섰던 2008년 촛불정국에서도 대학생은 여전히 주변화 된 역할에 머물렀을 뿐이다. 

 

헤게모니 상실한 전통적 진보운동권

 

다음학생운동카페(cafe.daum.net/HAKSANG)가 2010년 12월 26일을 마지막으로 통계 낸  2011년 대학 총학생회 선거 결과에 따르면 전통적인 진보학생회의 당선율이 경향적으로 하락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하락하고 있는 것은 전통적인 운동권만이 아니라 반운동권(보수운동권) 학생회의 당선율도 마찬가지다.

 

  
▲ 대학 총학생회 선거 결과 현황(2004~2011) 출처: 다음 학생운동카페(cafe.daum.net/HAKSANG) 통계자료 조합
ⓒ 손우정
학생운동

실제 대학사회에서 학생운동의 쇠퇴는 통계에서 확인되는 것 이상이다. 2004년부터 시작된 위의 통계는 전국의 모든 대학을 포함하지도 못하며 특정성향의 총학생회 당선율이 그 대학의 학생의식을 반영한다고 볼 수도 없다.

 

게다가 전통적 운동권으로 분류된 당선 총학생회라 하더라도 총학생회 집행부 일부의 성향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단과대와 과 수준으로 내려가면 문제는 더욱 심각한 상황이다. 전통적인 정치세력 분류법으로 포착되지 않는 총학생회 성향(기타)의 증가추세는 진보건 보수건 대학사회에서 조직화된 운동세력의 헤게모니가 더 이상 과거처럼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준다.

 

헤게모니가 자기 집단의 조합주의적 이해관계에 기초하면서 이를 넘어 섬으로써 집단적 정체성을 형성하는 것이라면, 지금은 대학사회를 규정할 수 있는 집합적 정체성 자체가 부재한 상황이다. 다만 현재 대학사회는 대학생 스스로가 아니라 사회 속에 존재하는 정치세력들이 형성한 헤게모니적 역학 구도에 직접적으로 영향 받고 있다.

 

이런 경향은 현실 정치세력에 대한 20대의 지지성향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2010년 한길리서치의 여론조사 결과를 조합해 보면, 전체 평균에 비해서는 민주당의 지지가 높지만, 전통적 진보학생운동세력과 가장 친화적이라 할 수 있는 민주노동당 등 진보정당에 대한 지지는 바닥수준이다. 대학생의 보수화경향이 나타나기 직전인 2004년만 해도 20대 진보정당 지지율이 20~30%에 달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격세지감이 느껴지지 않을 수 없다.   

 

  
▲ 2010년 20대 정당 지지율(%) 출처: 한길리서치 2010년 여론조사 자료 조합
ⓒ 손우정
20대 정당지지율

20대의 정치성향의 변화는 30대와 비교해 볼 때 좀 더 확연해 진다. 지금의 30대는 대부분 90년대 대학을 다닌 학번으로, 학생운동의 흥망성쇠를 함께 경험했으면서도 전통적 진보문화에 직·간접적으로 영향 받았던 이들이다. 90년대 중후반까지만 하더라도 전통적인 진보학생운동은 거의 모든 대학에서 지대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비교적 조밀한 조직기반을 갖추고 있었다.

 

다양한 의식조사와 여론조사 결과에 비춰보면 전통적인 진보의 기준, 즉 정당지지율이나 노동운동에 대한 입장, 남북관계 등의 이슈에서 가장 진보적인 성향을 보이는 것은 20대가 아니라 30대다. 민주노동당에 대한 20대와 30대의 지지율 추세 차이는, 현 20대는 과거 20대가 보여 왔던 정치경향과 일종의 문화적 단절을 경험하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 2010년 민주노동당에 대한 20, 30대 지지율 추이(%) 출처: 한길리서치 2010년 여론조사 자료 조합
ⓒ 손우정
민주노동당

아래 그림에서 보듯이 30대와 비교해 20대는 보수정당에 대한 지지는 더 높고, 진보정당에 대한 지지는 더 낫다. 이는 대부분의 여론조사에서 나타나는 일관된 경향이다. 학생운동의 영향력 속에서 대학생활을 해 온 현 30대는 '비교적' 진보적인 프레임으로 이슈를 해석하려는 경향이 있지만, 현 20대는 집합적인 정치성향을 형성하지 못하고 전체 사회적 분위기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 2010년 20, 30대 정당지지율(%) 출처: 한길리서치 2010년 12월 11일 여론조사결과
ⓒ 손우정
20,30대 정당지지율

20대가 30·40대 등 학생운동을 경험한 세대와는 다른 정당지지와 투표행태를 보이는 경향은 지난 2010년 6·2지방선거 결과에서도 나타났다. 당시 많은 언론이 오세훈 후보와 한명숙 후보에 대한 20대 투표결과를 보도하며 '20대 보수화 가설'이 허구로 판명 났다고 규정했지만, 눈여겨 봐야할 것은 30대와의 차이다. 젊은 세대일수록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한명숙 후보에 대한 지지가 늘고 있지만, 20대는 30대에 비해 한명숙 후보에 대한 지지가 적었다. 이는 당시 투표선호도가 20대의 독자적 진보 프레임 해석에 따른 것이라기보다 사회적으로 형성된 반MB구도에 영향 받았는데 머물렀기 때문이다.

 

  
▲ 2010년 6·2지방선거 당시 서울시장 세대별 투표성향(%) 출처: 방송3사 지방선거 출구조사 결과
ⓒ 손우정
지방선거

물론 20대는 2008년 촛불시위와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조문정국 이후 2005년부터 2007년까지 지속되었던 정치적 보수화 경향과 달리 정치적 측면에서 진보성향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오늘날 20대의 정치의식은 고정된 것이라기보다 언제든 역전될 수 있는 가변성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20대를 둘러싼 구조와 '불안'의 문화

 

20대의 정치성향은 왜 달라졌을까? 이에 대해서는 몇 가지 설명이 가능하다. 먼저, 지금의 20대는 학생운동세력 등 기존의 지배적 이데올로기에 대한 대안적 이데올로기를 제공해 왔던 세력들이 쇠락하면서 기성사회의 지배적 가치에 직접적으로 노출되어 있다. 대학사회는 9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신자유주의적 구조변화가 노골화되면서 과거와 같은 '엘리트 집단'으로서의 지위를 급격하게 상실해 왔는데, 이런 변화를 해석할 일관된 프레임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대신 대학사회 내에는 2002년 대선 이후 보수·우익 학생운동의 조직화와 이데올로기 공세가 노골화되었으며, 20대 초반의 남성들은 '군대'에서 지속적인 '정신교육'을 통해 구시대의 이데올로기적 감수성을 일상적으로 주입받는 상황에 무방비적으로 노출되어 있다. 여기에 청년실업 등 청년세대에 대한 사회·경제적 위기 구조는 집단성보다는 개별성에 기초한 경쟁만능주의를 유포시키고 있으며, 대학사회를 불안의 늪으로 몰아넣고 있다.

 

지금의 20대를 지배하는 문화적 감정은 공포나 절망이 아니라 '불안'이다. 공포와 절망이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를 알고 있는 상태에서 나타나는 감정이라면, 불안은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는데서 나타나는 감정이다.

 

확정된 절망이 아니라 절망과 공포의 항구적 가능성이 만들어 내는 불안은, 장기적이며 공적인 가치를 추구하기보다 단기적이며 사적인 욕구만을 추종하게 만든다. 청년실업, 혹은 저임금의 악순환이라는 사슬 속으로 빠져들 수도 있고, 대기업 등 선망 받는 일자리를 구할 수도 있는 양자의 가능성은 그들에게 '불안'을 없애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 것을 끊임없이 요구하며 욕망을 부추긴다.

 

대학사회에서 전통적 진보세력의 헤게모니가 와해되고 있는 이유에는 진보의 전통적 문화가 이런 대학사회의 만성적 문화와 부합하지 못하는 것도 중요한 이유가 되고 있다. 현실 진보세력을 지배하는 문화는 '유보'다. 오늘 자신이 누릴 수 있는 보상을 미래의 어느 순간으로 유보함으로써 현실의 고통을 감수하는 것이다.

 

진보정당이나 진보적 시민·사회단체에서 일하는 상근자들은 열악한 근무환경과 극도의 저임금을, 언젠가 도래할(설령 그것이 자기 세대에서 도래하지 않더라도) 미래를 위해 감내해야 하며, 또 감내 할 수 있다는 사고가 뿌리 깊게 박혀 있다. 그러나 현재의 행복을 미래로 유보하는 현실진보세력의 문화적 기풍은 지금의 20대가 처한 상황과 부합하지 않기 때문에 진보 활동가와 새로운 대중 사이의 괴리와 구별은 더욱 뚜렷해질 수밖에 없다. 

 

오늘날 20대에게는 유보할 현재의 보상 따위가 없다. 과거에 대학생 집단은 비교적 안정적 미래가 보장된 사회 엘리트 집단이었지만, 진학률이 85%에 육박하는 지금의 대학생 집단은 청년실업에 항상 불안해야 하는 존재일 뿐이다.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청년실업의 불안을 확산하는 각종 20대 담론들은 그들에게 계산적인 인간이 될 것을 끊임없이 강요하는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그리고 보수는 이런 불안과 개별화된 욕망을 끊임없이 자극하는 전략으로 승부한다.

 

파국을 향해가는 2011년 대학사회와 대안의 가능성

 

새로운 세대와 관계 맺기에 그다지 성공하지 못함으로써, 만성적인 고령화 현상에 직면해 있는 진보가 새로운 돌파구를 찾기 위해서는 지금과 다른 구조적 환경을 만들어내는 동시에 새로운 문화적 환경 또한 만들어 내야한다.

 

2011년에 예상되는 대학사회의 모습은 여전히 '대학시장화'와 무한경쟁을 강화시킴으로써 파국을 향해 달려갈 것으로 보인다. 지난 예산안 날치기 와중에 땡처리 된 서울대 법인화법은 정부와 대학시장화와 무한 경쟁화를 포기할 의지가 전혀 없음을 드러냈다. 사립대 역시 국립대화 해야 한다는 진보진영의 주장과는 정반대로, 국립대마저 대학 경쟁의 장 속에 밀어 넣고 기업대학화 하는 데서 나타나는 부작용은 비단 국립대에만 해당되는 문제는 아니다.

 

또한 한국장학재단 출연금 1300억 원이 전액 삭감됨으로써 등록금 대출금리 상승도 예상되고 있다. 더구나 정부가 3대 친서민 정책 중 하나라고 떠벌린 취업후등록금상환제(ICL)의 2011년도 이자 대납 예산도 올해의 3분의1 수준으로 줄어 버림으로써 대학생들의 생활고는 더욱 비참해질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대학이 자신의 브랜드로 장사까지 할 수 있도록 관련 조항들이 차근차근 바뀌고 있으며, 2014년부터 진행될 것으로 예고된 대교협의 대학평가인증사업 등 대학을 평가하는 기제들은 정부재정지원을 미끼로 대학재정의 무한확충을 유도하고 대학 간 경쟁구도를 더욱 강화시켜 나갈 것이 뻔하다. 모든 것이 '불안'을 가속화시키는 정책들이다.

 

그러나 이런 변화가 미국 대학생들이 느낀 것처럼, 현재 대학생들의 분노의 임계점을 넘겨 버릴 가능성은 크지 않다.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앞둔 보수세력은 대학생들에게 지금의 변화가 가져올 현실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방향으로 대학 시장화 경쟁을 밀어붙이기보다는 해당 대학에게 적절한 인센티브를 부여함으로써 저항을 최소화하는 방향을 선택할 것이다.

 

국립대 법인화가 종국에는 어떤 파국을 불러올지는 분명해 보이지만, 가장 먼저 시도하는 서울대에 엄청난 특혜를 부여함으로써 반발을 잠재우고, 뒤따르는 대학은 이런 경향을 대세로 수용하게 만드는 전략을 수행할 것이 분명하다. 즉, 서울대 등 추진의지가 있는 학교부터 법인화를 추진한 뒤, 법인화에 대한 저항이 약해지고 추진동력이 보강되면 선택적 법인화 또는 유형화 방식으로 추진전략을 변경하고, 최종적으로 일률적으로 모든 국립대의 법인화를 추진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정부와 여당이 대중의 불안과 불만을 적정 수준으로 조절하는 데 꽤나 능숙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진보세력의 전략은 정부와 여당이 주도하는 정책내용에 사안별로 분산하여 대응하기보다는 각 영역에서 전개되는 흐름들을 종합하여 불안을 근본적으로 해소할 수 있는 큰 그림을 제시하는 데 주력할 필요가 있다. 2012년 총선과 대선은 근본적인 체제수준의 담론이 제기될 수 있는 공간이다. 이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여 더 이상 불안을 재생산하는 악순환을 단절시킬 수 있는 대안적 방향을 만들어 로드맵을 제시하고 새로운 세대들과 합의해 나가야만 한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전면 개방을 반대하는 학생과 시민들이 2008년 5월 3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에서 촛불문화제를 열고 있다.
ⓒ 권우성
광우병 쇠고기

지금 중요한 것은 세세한 정책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보다는 전체적인 방향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부수적인 문제점을 수정하더라도 방향을 틀지 못한다면, 파국으로 향해가는 열차의 속도를 조금 늦추는 것에 머문다. 

 

진보문화의 새로운 확장 위해 노력해야

 

그러나 새로운 세대와의 관계형성을 위해서는 좋은 정책을 제시하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진보세력은 현실의 행복을 미래로 유보하는 데 익숙하지만, 그 행복이 물질적이고 금전적인 것이 아니라면 미래로 유보해야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과거 진보문화가 대학사회를 중심으로 사회 곳곳으로 확산될 수 있었던 이유는 비록 물질적 조건이 뒷받침되지는 못했지만 천민자본주의 문화와는 질적으로 차별화된 대안적 문화를 현실에서 이미 창조해 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진보의 문화를 확장하기보다 진보세력의 '생존' 자체가 목표가 되었던 시기를 보내며, 진보의 문화는 많은 부분 탈색되었고, 인간을 대하는 자세 역시 형식적이고 관료적인 문화가 상당부분 침투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게다가 지나치게 과열된 진보세력 내부의 정치경쟁은 그 주장을 옳고 그름과 상관없이 '인간적 매력'을 상당부분 상실하게 만들었다.

 

우리가 그리는 대안적 세상은 잠시 유보될 수 있지만, 이를 향해가는 과정상에서 느낄 수 있는 행복과 보람까지 유보될 이유는 없다. 진보는 기성 정치권력을 닮아가는 퇴행적 정치문화를 일소하고, 과거의 민중문화를 현실에 부합하는 새로운 형태로 혁신해 매력적인 공간으로 창조해 내야만 한다. 새로운 대안체제로 향해가는 과정에서 느끼는 행복과 보람은 바로 그 체제를 만드는 가장 현실적이며 중요한 동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모두가 스펙 확장에만 열을 올리는 시대에 진보적 가치를 지켜내기 위해 묵묵히 활동하고 있는 이들은 여전히 진보의 가장 소중한 자산이다. 유럽과 미국 대학생의 저항도, 또 과거 찬란했던 우리 학생운동의 역사도 누군가 첫 발을 내딛었기 때문에 존재할 수 있었다. 불안의 시대에도 용기 있고 겸손하게, 솔직하고 소박하게, 성실한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는 이들에게 20대의 재진보화와 진보적 가치의 재생산의 희망을 걸어봐야 할 것이다.

 

 

한국 상황이 마니 답답하긴 하죠... 이미 제시하신 학생들의 격돌장면도 그렇지만 예로 든 영국을 위시해서 미국, 독일, 불란서, 서반아, 포도아, 일본, 가나대/캐나다, 호주, 신서란/뉴질랜드 등 다수의 구미 선진국에서 이미 공산계 정당들에 대한 가입자들 마저 비록 극소폭이나 초소폭일지라도 당원증가현상까지 있는 마당인걸 보면 한국은 진보진영이 아니라도 보수진영만 아니라면 아포리아(Aporia; 사방이 꽉 막힌 듯한 상황)현상을 감지할 만 해요. 왜 한국만 아니 몇 몇 예외 현상에 한국이 꼬옥 빠지지 않는 것인가! 하고요.
여기엔 여러가지 원인이 있지만 다수 원인으로 (박태균과 정병주의 동명저서 <<한국전쟁>>을 차용해 말한 것에 더해 추가하여 말하자면) 지난 해의 천안함이나 연평도 처럼 아직도 전쟁 중 (휴식)인 상황이 지속하고 있는 것에다가 실질 교전권 - 전쟁 종료 행사권 포함 - 을 우리가 보유하지 못한 것을 비롯해서 특수 상황의 아포리아를 위시해 올해 초 발간 도서 중에 있는 <<대출 권하는 사회(김 순영, 후마니타스)>>처럼 잦은 채무에 시달리는 세계의 보편 아포리아의 정도가 심각한 것 이 두가지의 중첩을 외부 환경 원인으로 생각합니다. - 소개 도서의 연합뉴스 서평(도서 페이지 http://book.daum.net/detail/book.do?bookid=KOR9788964371275 참고)은 케이블 TV의 대부업 광고를 지적하면서 서평을 시작했습니다. 이 도서명처럼 한국 사회에서 채무로부터 자유로운 곳을 찾기는 쉽지 않습니다.
제시 현상은 정도가 약하긴 했지만 이미 90년대 중반 학번 - 실은 저도 1년 미끄러지고 나서 1년 재수를 다시 한 탓에 이 편 학번으로 들어온 경험이 있습니다. - 부터 발현하기 시작한 현상인데 이는 정확히 문민정부가 열린 다음부터 입니다. 문민정부 초인 94년이랑 말인 96년에 대단한 이념전이 있었긴 했지만 대다수의 학생들이 제시 이유들을 비롯한 이유들 탓에 이 시기부터 이러한 자신의 제원(스펙)축적과 같은 일에 더 노력을 기울인 것입니다. 또한 최근 등록금이 오르긴 했지만 이미 90년대 초중반에 등록금 투쟁이 있어왔을 정도로 이미 등록금도 큰 문제이면서 이는 고스란히 후자의 채무 중독사회를 만들어왔는데 대학 사회에서 이 문제도 굉장히 크다는 생각이 듭니다. - 즉 대학생들 다수가 이미 (잠재) 채무자들인 셈이죠. 대학 보편화도 있긴 하지만 서구사회도 입학은 오히려 한국보다 더 쉬운 보편 현상도 제법 있기 때문에 이것보다는 이런 식으로 금전에 압살당하는 즉 채무의 포로인 상황을 지내다보니 선생님의 분석과 같은 결과의 도출이 가능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거기다가 한국 사회의 경제적 방향조차도 해외변수 좌우가 많기 때문이니 채무에 더한 경제주권영역의 축소도 있습니다.IMF 구제금융도 기존에 이미 이런저런 시장개방으로 축소한데 연접한 대규모 축소도 이런 것입니다. 하물며 독일에서 영토축소 등에 동의를 한 독일 사민당에 대해서도 반발이 발생하면서 1910년대 말 ~ 20년대 초의 혁명의 시도들과 1930년대 나치 정권의 등장이 발생했는데 한국도 일종의 이런 경제 주권 영역의 축소가 여기에 영향력을 행사한 상황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위의 분석을 보니 오세훈 시장이 전 연령대 - 사실 이 분석보다는 계급분석이 바람직하긴 하지만! - 에서 1/4은 상회하고 1/3도 30대 층을 제외하면 다른 연령대에서 모두 상회하는 것도 이들과 무관하지는 않을 겁니다. 바로 이웃의 일본에서 만 1년 4개월 보름 여 전에 자민당은 민의원 - 서구의 하원에 해당 - 의석 차지율이 480석의 119석으로 1/4인 120석에 미달한 바 있습니다. 일본이 한국과 유사하면서 한국보다 더 선택할 수 있는 비 아포리아 영역(Non - Aporia Zone)이 더 많기 때문에 이런 결과의 도출도 가능했을 순 있습니다. 대학 등의 청년/청춘 영역에서도 마찬가지이겠죠.
상에선 외부 환경 원인을 1차 제시했지만 다른 주역의 원인으로는 손 선생님께서 제시한 20대들을 비롯한 하층에 해당하는 사람들을 조직화하는 작업이 너무나 무성 한 것이 한 특징입니다. 얼마 전에 <<르몽드 디쁠로마띠끄 한국판 25호(2010년 10월호)>>에서 <비관조차 어려운...(http://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1007 )>과 <위기감과 무력감... (http://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1006 )>를 원용하면 '공동체'와 '사회'에 관한 경험이 점차 소멸하면서 '무력감'과 '불안감'은 증가하는 점을 착안할 수 있습니다. 20대는 이 두 가지 중산층과 하층의 문제의 착종이 발생한 것입니다. 다른 참고는 동 정간물의 다른 호에서 20대를 취급한 <20대는 왜 투표하지 않게 되었나(http://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711 )>는 무한경쟁을 숙명으로 생각한다는 견해를 내 놓기도 했습니다. - 이 기사에서 한국 상황과 맞지 않는 것은 계몽에 실패했다는 견해인데 한국은 영국 - 공교롭게 상 서한문이나 예시 기사나 손 선생님과 같은 영국을 지적했네요! - 과는 달리 과소한 계몽 탓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한국 사회의 하층에 대한 조직화를 위시해 20대에 대한 조직화가 드물다는 현 상황의 타개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진보진영 자신들도 20대와 마찬가지로 한 동안은 자신들의 생존이 다른 무엇보다 더 중요했던 시기를 경험하면서 타자의 내화적 조직은 물론 정세 대응도 정책내용에 산개적 즉 사안별 대응이라는 손 선생님의 지적과 마찬가지인 대응을 넘어서지 못한 것도 있습니다. 거기다가 국제 정세차원에서 5반 세기 20여년 전의 소련의 몰락과 같은 불리한 파고가 엎친데 덮치기 까지한 영향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점도 대의차원 혹은 청사진 차원의 대응을 구상하는 데 어려움을 주고 있습니다. 다른 한 편으로 해외의 진보/좌파의 가치랑 한국에서의 가치가 한국을 위시한 일부 (준) 주변부의 특유의 식민화 전후 시기부터 지난 20세기와 지난 해 까지의 2000년대 처음 10년간 까지의 정세 - 문서 시작하면서 상에서 언급한 것은 이의 한국에서의 구체 예증 - 덕분에 급진적인 조직이 탄생하기 힘든 점이 있습니다. 이 또한 반복이지만 국내외적 난국의 중첩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국을 위시한 몇 몇 준 주변부에선 서구나 중남미, 일본 등에서 존재하는 극좌나 극좌 권에 유사한 정당이 존재하지 않고 또 이를 결성하는 결당(정당결성)과정의 장애도 일반 법률에서 헌법에 이르기까지 너무나 많은 것도 한 원인입니다. - 일본의 정당조성법에 유사한 정당법에서 헌법의 위헌정당 해산심판권까지! 더해서 한국도 다른 일부 (준) 주변부의 선 제시 정세처럼 지내다 보니 짜릿한 근대의 성취경험도 전무해서 부동층적인 어떤 거류(거대한 흐름)에 경도하는 일도 잦기는 합니다. 이것도 불리한 분위기의 한 축을 담당하는 것이고 비록 국가보안법 사건과 같은 사건이 발생하지 않는 다음에야 다른 (급진 혹은 극) 좌파정당 결성운동단체를 알 길이 없다는 점도 있지만 이러한 장애들 탓에 오히려 자본주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정당결성운동도 장기간 교착에 함몰하는 구조도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죠.
손 선생님 지적 중에 NGO를 위시한 시민사회단체의 문화기풍도 현재의 20대들에겐 비록 홍보의 과문함을 고려하더라도 지나치게 맞지 않는 측면도 있기는 합니다. 이 점은 현재의 시기가 과거 한 세기 전 - 노서아 혁명과 같은 것을 생각해 볼 때 - 에 비해서 선전이 불리하다는 것의 지표이긴 하지만 지나치게 현실의 본질 파악을 위시한 동향 파악에 무성한 점도 있기는 할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아직 한국 사회는 진보정당이든 시민사회단체든 이미 근대의 성취 경험이 존재하는 그 어느 곳을 견학 하더라도 이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점에서 한편에선 근대 성취 경험을 만들기 위한 조직화와 더불어 주의의 정립과 행동이 절실한 시기입니다.
마지막으로 한국은 진보정당이나 시민사회단체나 이들 20대를 상대하는 해외 좌파 정당에 해당하는 청년(& 청소년)국이나 청년(& 청소년)부의 빈약함도 문제는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는 노동조합(총연맹)들에도 공히 해당하는 문제인데 일단 한국을 위시한 일부 (준) 주변부의 진보/좌파 정당/단체들은 이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한 이들 단체에선 가장 민감한 이야기이지만 노동조합총연맹이건 진보정당이건 NGO 시민사회단체들이건 지금까지의 주의를 버리고 세계 정세에 조응한 다른 주의 - 비록 서구나 중남미에 맞출 필요는 없지만 과학적인 - 를 취하는 것도 이젠 필수라고 생각합니다.
새해 벽두를 조금 지나긴 했지만 아직은 새해의 온기가 남은 시점에 지나치게 많은 것을 평론이라고 던져 놓고 갑니다. 본질 부문의 이야기를 하느라 다수 부분에서 무관한 부분도 있음을 알립니다. 하필 문서 분량도 평문 제한을 넘어 썻내요.
에구..요새 블로그에 글 쓸 때만 들어오니, 주옥같은 평론글을 이제야 봤습니다. 구구절절 적절한 분석입니다. 20대 문제에 대한 분석과 설명은 어느 정도 가능한데,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추상적이고 모호한 것이 사실입니다. 가끔 내가 지금 대학에서 학생운동을 한다면, 지금 난관을 돌파할 묘수가 있을까 가정해 보면 갑갑한 것이 사실입니다. 대학생 스스로의 힘이 가장 필요하겠지만, 안된다면 다양한 경로의 연대를 현실성 있게 고민해야할 시점인 것 같네요. 저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여전히 추상적인 방향 정도만 고민되고 있습니다.
실은 조직화 문제는 느을 답답한 겁니다. 본질을 알더라도 실천을 워찌 하나 이건 항상 골치 덩이라는...그러고보니 앞서 원용했던 르몽드 디쁠로마띠끄에 다른 참고 아니 원용하면 좋을 기사들이 둘 있네요...

<'비공식 노동자'여 단결하라(http://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1092 )> 랑 <열정과 분노엔 '조직'이 필요하다(http://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1083 )>이 두가지 입니다. 모두 지난 해 12월호 기사인데 이 간행물이 지난 해 이들기사를 내면서 열정과 분노의 조직화의 필요성을 역설하기도 했습니다. 한 편으로 올 1월호엔 구주/유럽의 근대이후 극우파 - 한국이나 다른 준 주변부 혹은 일본이 전근대적 성격의 극우파가 우세함을 볼 때 대조적으로 사용한 언사입니다. - 를 취급한 <반체제를 외치며 체제의 꿈 향해 각개약진(http://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1116 )>은 현재의 극우파 현황을 말해줍니다. 아직 구주/유럽이 항거 중인 점은 있지만 자본주의를 넘어선 구체상이 부재한 점을 볼 때 발생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한 편에선 이는 구주/유럽도 과거의 사회민주주의 - 2차 대전 직후부터 70년대 초반까지의 호황과 동구의 공산화로 인해서 발생한 노자간 타협체제 - 의 세월 정도를 소원하고 있는 대중의식도 반영한 것이라는 생각도 드네요. 오히려 이것이 이미 자본주의를 넘어섰던 체제보다 더 많은 지금의 경험을 볼 때 더 큰 대가를 치르어야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앞 서의 설명처럼 선전 환경의 악화로 이것은 의식적으로 생각하지 않거나 아니면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죠. 즉 현실을 벗어나고 싶은 소원과 과학 내지는 냉철한 지성 현실주의의 부조화 현실입니다.
이 점은 다른 급진파의 제시 기사들에서 몇 가지 원용점을 활용하면 어느 정도 가능하리라 생각합니다. 제시 기사는 독일의 한 극좌파 정당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 전자의 기사가 아직은 소강상황에 있을 때 적절하다면 후자의 기사는 고양시기를 향할때나 고양시기에 적절합니다. 물론 이런 시기는 외부 영향도 없지는 않지만 기본적으로는 정세가 주도하는 성격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러한 시기는 끊임없는 훈련과 실천 등을 통해서 주도해 나가는 것입니다.


노동자 정치신문 23호

독일 제국주의와 노동조합

http://lmagit.jinbo.net/bbs/zboard.php?id=newspaper&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l1=off&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421

노동자 공동투쟁 23호

반 독점 인민전선으로 나아가는 희랍/그리스의 투쟁

http://go.jinbo.net/commune/view.php?board=nogongtu-5&id=122&SESSIONID=8c3e3b4fbe14b80fbbb56d9d97312f24

마지막으로 전 무엇보다 한반도를 위시한 동북아와 세계의 현 정세의 민중에게 행복한 세상으로의 변화를 강렬히 그리고 극렬히 소원하면서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