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 비평

손우정 2011. 1. 17. 09:38

청년들이여, 숫자놀음에 속지말자
[분석] 20~29세 고용률, 전체고용율보다 하락... 실업률 낮아도 고용률 높아지지 않는 이유
11.01.16 11:53 ㅣ최종 업데이트 11.01.16 11:53 손우정 (roots96)

  
한국청년연대와 한대련, 청년유니온 등으로 구성된 청년실업네트워크 소속 회원들이 지난 2010년 8월 10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앞에서 열린 '청년실업문제 막말에 대한 이재오 특임장관 규탄 기자회견'에서 정부의 4대강 '삽질 정책'을 비판하며 청년실업 문제 해결을 촉구하고 있다.
ⓒ 유성호
청년실업

지난 12일 통계청에서 2010년 고용동향을 발표했다. 주요 골자는 2010년 12월 고용률이 58%로 전년동월대비 0.4% 상승했다는 것이다. 취업자 역시 2368만4000명으로 전년동월대비 45만5000명이 증가했다고 한다.

 

이 부분만 보면, 이제 한국 고용사정이 조금 나아졌다고 생각하기 쉽다. 게다가 통계청 자료는 친절하게도 미국과 호주, 일본, 독일, 프랑스 등 실업률이 높은 나라들과 한국 실업률을 비교하여, 우리나라 실업률이 그다지 높지 않은 수준이라는 것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 자료에 따르면 우리의 경우 2010년 12월 현재 전체 실업률은 3.5%이고 청년층(15~29세)의 실업률은 8%인데 비해, 미국의 전체실업률은 9.1%, 청년실업률은 16.6%에 이르며, 프랑스의 경우에는 전체 실업률이 10%, 청년실업률이 26.5%나 된다는 것이다. 비교 대상 국가 중 우리보다 청년실업률이 낮은 나라는 독일(7.7%)이 유일했다.

 

그렇다면 이제 한국의 고용사정이 좀 나아진 것일까? 게다가 심각한 사회문제인 청년 실업문제도 해결기미를 보이는 것일까?

 

실업률만으로는 파악하기 어려운 고용상황

 

통계청 동향자료는 주로 전년 동월과 비교해 실업률이나 고용률의 증감을 살펴보고 있다. 이런 식의 단기적 '상대평가'는 현실을 호도하기 쉽다. 초반에 죽을 쓰다가 조금만 만회해도 뭔가 상당히 좋은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인식되기 쉽기 때문이다. 정부가 수없이 많은 헛발질을 해대도 과거처럼 국민 분노가 치솟지 않은 것 역시, 정권 초반에 지나치게 기대치가 깎여 버린 이유 때문일 것이다. 

 

한국 고용현실, 특히 청년고용상황의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실업률만으로 부족하다. 실업률통계라는 것이 조사 4주 전에 적극적인 구직활동을 한 사람 중 미취업자의 비율만을 살펴보는 것이기 때문에 비교적 장기적인 취업준비 후에 본격적인 구직활동에 나서는 우리의 현실을 온전하게 드러내기 어렵다. 게다가 조사 주간에 1시간 이상만 일해도 취업자로 분류된다.

 

또한, 적극적인 구직활동을 펼치면 실업수당 등 다양한 복지혜택을 누릴 수 있는 해외 선진국과 달리 한국에서는 실업상태에 있는 사람을 사회적 패배자로 낙인찍는 사회 문화적 분위기가 강하게 남아 있기 때문에, 통계에 노출되지 않는 실업자가 훨씬 더 많을 것이라는 추측도 가능하다.

 

고용현실을 파악하기 위해 실업률과 함께 자주 거론되는 것이 고용률이다. 고용률은 취업자를 인구수로 나누고 100을 곱한 것으로, 전체 인구 중 취업상태에 있는 사람의 비율을 말한다.

 

장기 추세 비교해 보니 드러나는 청년고용의 현실

 

한국 청년고용현실을 파악하기 위해 고용률 통계가 처음 시작된 1980년부터의 고용률 통계를 확인해 보자. 아래 그림에서 보듯이 청년 고용률(* 통계청에서는 15세부터 29세를 청년층으로 구분하지만, 대학진학률이 85%에 육박하는 우리 현실을 감안해 20~29세로 재조정했다)은 통계수집 이후 항상 전체고용률을 상회하고 있다.

 

물론 이것은 자연스러운 결과다. 노동력 수급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1997년 말 외환위기 이후 청년실업문제가 큰 사회문제로 대두되었을 때도, 청년고용률은 전체고용률보다 항상 높았다.

 

  
▲ 전체고용율, 청년고용률 추세 고용률은 전체인구 중 취업자의 비율을 말한다. 청년고용률은 20~29세 인구 중 취업자 비율을 나타낸다. 청년고용률은 항상 전체고용률보다 높았지만, 이명박 정부들어 처음으로 이 관계가 역전됐다. (통계청 자료 조합)
ⓒ 손우정
고용률

그런데 청년고용률과 전체고용률은 어느 순간 역전되고 있다. 연도를 살펴보니 2008년, 이명박 정부 등장 이후다. 이명박 정부가 등장한 이후 청년고용률은 단 한 번도 전체고용률보다 높지 않았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 격차가 확대되고 있다.(* 이 통계는 월별통계자료를 비교한 통계청 고용동향 자료와 달리, 통계청의 연 단위 추계자료를 사용해 약간의 수치 차이가 있다. 그러나 전체 추세는 크게 다르지 않다)

 

좀더 구체적인 비교를 위해, 노무현 정부 5년과 이명박 정부 3년간의 고용률을 비교해 보자. 노무현 정부 당시 전체고용률은 2003년 59.3%를 기록한 이후 2007년 59.8%를 기록하면서 막을 내렸다. 청년고용률은 2003년 60.2%에서 시작해 2007년 60%를 기록하고 있다.

 

반면, 이명박 정부의 전체고용률은 2008년 59.5%에서 시작해 2010년에는 58.7%로 떨어졌다. 흥미로운 것은 청년고용률인데 노무현 정부 당시 한번도 60% 밑으로 내려가지 않았던 청년고용률은 2008년 59.1%에서 시작해 2010년 58.2%까지 내려가 버렸다. 청년 고용률이 전체고용률보다 낮은 현실이 통계를 낸 이후 이명박 정부에서 처음, 그것도 매년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의 고용률 비교 이명박 정부에서는 노무현 정부시기에 비해 전체적으로 고용률이 하락했다. 특히 청년고용률은 고용률 통계 시점 이후 최초로 전체고용률보다 떨어졌다. (통계청 자료 조합)
ⓒ 손우정
고용률

이런 결과는 청년실업문제가 과거에 비해 더 심각한 수준으로 악화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전체고용률도 노무현 정부 시기에 비한다면 매우 낮은 수준이지만, 그나마 발생하는 일자리도 청년세대에게 돌아가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청년들의 노동시장으로의 진입장벽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현실이 이런데도 약간의 수치 반등만으로 고용상황이 좋아지고 있다고 판단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도 고용률은 높지 않아

 

게다가 실업률이 아니라, 고용률을 세계 여러 나라와 비교해 보면, 우리의 고용시장 현실의 다른 면이 보인다. 우리보다 실업률이 높았던 미국과 일본, 호주의 고용률(15세~64세)은 모두 우리나라보다 높게 나타났다.

 

  
▲ 주요국 고용률(15~64세) 동향 우리의 고용률을 세계 각국의 고용률과 비교해 보면, 우리의 고용현실을 파악해볼 수 있다.
ⓒ 손우정
주요국 고용률

실업률도 높고 고용률도 높다는 것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들 나라들이 우리에 비해 구직을 포기한 이들이 더 적고(즉 구직의사가 확실해 경제활동인구로 분류되는 이들이 더 많기 때문에 실업률이 높게 나온다), 국민들 중 우리보다 더 많은 비율의 사람들이 직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실업률을 계산할 때 포함하지 않는 비경제활동인구 중, '취업의사와 능력은 있지만 일자리를 구하지 않은 사람 중 지난 1년 내 구직경험이 있는 사람'을 의미하는 구직포기자는 2010년 12월 현재 21만6000명으로 전년동월대비 4만 명이 늘어났으며, 취업을 목적으로 학원이나 기관에서 수강하는 등의 취업준비를 하고 있는 이들은 57만1000명으로 전년동월대비 1만5000명이 늘었다. 

 

이 모든 것을 감안하면, 이명박 정부의 청년실업대책의 성과는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려울 것이다. 자기 임기 내에서만 수집된 통계만을 비교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어쩌면 이런 결과는 당연하다. 청년실업문제를 해결하겠다며 자랑스럽게 발표한 '녹색뉴딜' 사업으로 96만 개의 신규 일자리를 만들 것이라고 장담했지만, 96%인 91만6000개의 일자리가 건설과 단순 생산직이었으니 말이다.

 

청년들이여, 숫자에 속지 말지어다

 

2008년 이명박 정부의 임기 시작과 함께 추락한 정부에 대한 기대치는 웬만한 정부의 헛발질도 시큰둥한 반응만을 이끌어 냈다. 반면, 아주 작은 성과는 쉽게 침소봉대되고 있다. 정부가 무던히도 애썼던 언론 장악의 결실일 것이다.

 

숫자놀음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 현실을 호도하고 대중을 기만하기 가장 좋은 방법이 어려운 전문용어와 숫자들이다. 게다가 이런 숫자놀음에 능숙한 '조중동매연'이 종편에까지 진출하는 마당이니,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는다면 이리저리 휘둘리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이다.

 

오늘날, 이 나라의 청년들이 처해 있는 현실이 과거와 다름은 모르지 않는다. 끊임없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무한 경쟁을 강요하는 현실에서 어쩌면 이기주의는 자연스런 결과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기주의적인 인간이 되더라도, 제대로 된 이기주의를 가지길 바란다. 자신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도덕성까지는 아니더라도, 손해를 보면서도 숫자놀음에 놀아나는 바보 같은 희생양이 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청년(실업)이라고 하니까 버얼써 6년 전의 시트콤 논스톱 4 - 이 시트콤은 2000 ~ 5년까지 1 ~ 5를 방영하였습니다. 이 중 2003년에서 4년 사이에 방영한 연속물이 4 입니다. - 에서 오래된 아이돌 그룹 신화 출신의 구성원 앤디(본명 이 선호)가 '청년실업 40만'인가 하는 대사를 언급하는 장면을 연상하는군요. -->
http://movie.daum.net/tv/detail/bestword/list.do?tvProgramId=49627&page=2


한데 대사든 상 서한문이든 간에 숫자가 단순하게 문제는 아니지요. 문제는 당연히 본질인데 본질은 변화하지 않거나 거의 변화하지 않아도 실제 숫자상의 변화는 가시적일 수가 있지요. 그러니 이런 환경에서 본질을 파악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미 청년은 지난 번 대학생 관련 서한문에서 표현한 것 처럼 채무자를 포함한 복합적인 불안 상에 존재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한국은 다른 곳들에 비해서 기대치가 훨씬 낮은 수준일 수 있지만 이는 그 간의 역사 경험을 볼 때 일종의 사회적 지체현상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다른 주제에도 이미 공통이지만 한국은 분명 경제규모나 다른 문화나 시설 일부 분야 등에서 보면 월등한 성장세가 존재해 왔지만 여전히 근대의 짜릿한 성취 즉 승리 경험만은 연속 부재상황이었기 때문에 사회적 지체현상이 발생하고 또한 이의 한 영향으로 통계 노출을 거부하는 경향도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런 경험은 한국이 1876년 강화도 조약 이후 차용해오기 시작한 일본에도 상당부분 유사하게 발현합니다. 다만 일본이 지역내의 내전을 경험하지 않은 탓에 한국보다 약간 여유가 있다고 할까요. 암튼 한국이 아무리 발전을 해도 식민지와 이를 탈출하기 무섭게 지역내전에 시달린 경험은 정신 공황상황을 꽤 지속해서 생성해 왔지요. 이는 다른 준 주변부 국가들과 거의 마찬가지 인데 즉 경제나 문화 시설 영역같은 외관을 아무리 발달시켜도 이미 부재한 사회적 정신을 대신할 수 없음을 의미합니다.
이미 근대의 쟁취에 성공했던 불란서/프랑스를 위시한 구주/유럽 같은 곳에서는 이미 청(소)년의 행동이 의사표현 자유에 속하면서 일부는 부모들의 지원도 받는 반면 - 물론 기 언급대로 복지는 불문가지이고요! - 아직 한국은 성인들의 의사표현도 갖은 규제에 시달리고 이런 역사의 부재로 인한 사회적 정신지체 현상은 다수의 영역에서 개인책임 강조로 발현합니다. 가령 한국의 영화나 TV영상극/드라마도 대부분 개인의 원인을 중점으로 두지요. 이러니 실업 상황을 패배로 보는 분위기도 당연할 겁니다. 이의 유일한 처방법은 이제라도 그동안 유산을 거듭한 근대의 쟁취를 성취하는 것 뿐일 겁니다. - 단 전근대를 계속 소원하고 있는 자본층들 모두를 제외하고요... 이는 청년(실업)문제도 마찬가지로 적용할 수 있습니다.


다른 곳으로 빠졌지만 통계 판독 방법도 한 편에서 진영 테제와 프레임 계발을 통해서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이는 학습 단계에 해당하는 방법으로 청년 고용(또는 실업) 문제말고도 다수에서 이미 숫자의 횡행은 일반화 한 상황입니다. 오죽 했으면 선거를 앞두고는 여론조사가 판을 치는 데 여기도 온통 숫자 투성이지요. 그러니 한시바삐 이를 극복할 학습이 절실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더구나 상 서한문에서도 이미 실업률만 더 낮은 것이 아닌 고용률도 더 낮은 것을 밝혀 냈지요!

한 편에선 청년을 조직할 단체들이 절실한데 상 서한문 사진에 청년실업네트워크 소속단체(청년 유니온, 한대련, 청년단체협의회 등)들이 올라있는데 청년들을 조직하기 위한 작업에 박차를 가할 필요가 있습니다. 일본의 철학자 후지다 쇼오죠오(藤田省三 ; 1927 ~ )는 기 절판서이지만 <<전체주의의 시대경험(창비)>>에서 경험의 부족을 언급한 바 있었는데 청년들에게 부재한 경험이 이미 지난 번 서한에서 평 한바 있지만 바로 네트워크 경험입니다. 서한 말미의 이기주의도 바로 이런 경험 부족 또는 부재가 생성해 낸 결과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이 부분을 유념하면서 이런 결과를 전환할 전략과 전술로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드네요. 역시 후반 초입에 있는 구직포기인구도 상 언급대로 사회적 정신지체 현상까지 중첩하면서 일단의 방어적 행동 결과라는 생각입니다. 이러니 이미 조직화는 '한 발 재겨 디딜 곳 조차 없는 ~' 과제인 것이지요.

청년(실업)문제도 특히 한국에서는 본질의 전환까지 강제해야 하는 상황인데 본질 전환이 절실한 문제는 지름길이 없습니다. 이는 우리보다 더 심하지 않은 독일도 역시 지난 번 서한문의 언급 평문처럼 왕도는 없기에 지난하지만 조직화 그리고 학습 하는 방법을 택하고 있는 것입니다. 더구나 마지막에 지상파 종편허용까지 본다면 더더욱 이런 길을 맹동이라는 이름으로 내칠것이 아닌 시급한 실천과제인 것입니다. 이 점에서는 특히 당장은 자신들의 적용대상은 아니지만 기성의 노총들이 함께 - 지난 날들의 태도는 당연히 반성! - 해야 할 일도 있다는 점입니다. 지금까지 특히 한국사회와 같이 근대 쟁취 지연 지역에서 더욱 이상을 향한 학습과 주장/선전 조직화는 초 의무 극 의무라는 점을 시사하면서 끝맺습니다.

주말 추우신데 몸 건강히 지내십시요. 설날을 11일 정도 남기고 작성한 평문입니다.

++)미디어오늘 기자 이정환씨 께서 아래의 기사를 작성하기도 하였습니다. 참고요.
숫자의 마술을 격파해야 할 또 하나의 절실한 이유입니다.

실업률과 고용률이 동시에 낮아지는 이상한 나라

http://www.leejeonghwan.com/media/archives/00194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