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 비평

손우정 2011. 3. 10. 15:31

공천개혁 논쟁과 진보정당의 공직자 윤리

- 선출과정의 민주성을 넘어선 당원 통제기제 활성화해야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앞둔 정치권에 공천개혁논쟁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정당 보스나 계파의 당권장악을 가능하게 만드는 핵심 메커니즘이었던 상향식 공천의 민주화 시도는 대선후보와 총선후보를 결정할 때 국민들의 의사를 최대한 폭넓게 반영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는 중이다.


우리 정치사에서 한나라당과 민주당 등 주류 정당의 공천혁명이라 할 만한 사건은 2002년 16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민주당에서 진행한 대선후보 국민참여경선이었다. 정당 지도자나 소수의 계파 지도자들이 후보를 지명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일반 당원과 유권자가 직접 후보를 선출하도록 한 파격은 바닥 지지율에서 출발한 당시 노무현 후보를 대통령으로까지 만든 일등 공신이 됐다.


그러나 ‘2002년 효과’도 그리 오래 가진 못했다. 이후 선거에서도 상향식 경선이 종종 치러지긴 했지만, 2008년 18대 총선을 비롯해 이후의 여러 선거에서 한국 주류 정당의 공천방식은 여전히 중앙당 지도부에 의해 지명된 공천심사위원회가 후보를 심사·선정하고 이를 최고위원회가 의결하는 하향식이었다.


이런 공천방식은 그 투명성과 객관성에 대한 끊임없는 논란을 불러왔고 공천에서 탈락한 후보가 반발이나 무소속으로 출마하는 등 부작용이 심각했다. 게다가 지방선거 후보는 해당 시·도당 공천심사위원회의 심사와 운영위원회나 상무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결정하도록 하고 있기 때문에 정당보스나 계파수장을 정점으로, 지역구 국회의원을 매개로 한 피라미드형 권력관계를 형성시켜 왔다.


이런 상황에서 ‘정권재창출’과 ‘정권탈환’이라는 동상이몽의 목표를 가진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지도부의 공천권한을 대폭 축소하고 국민들의 관심과 흥미를 불러오는 방향으로 승부수를 던지고 있는 것이다.


한나라당은 책임당원 20%, 일반당원 30% 등 당원 절반과 국민선거인단 30%, 여론조사 20% 등 일반 국민 절반의 의사로 선출하던 대선후보 선출 방식을 총선후보에게까지 적용하는 안을 준비하고 있으며, 민주당은 대선후보 선출은 100% 국민들의 참여로 결정하는 방안을 모색 중이다. 민주당의 개혁안 중 눈에 띠는 것은 다른 야권과의 단일화가 추진 될 때, 결과에 승복하는 서약을 의무화하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는 점이다.


전혀 다른 방향의 진보정당 공천고민


한편, 비교적 진성당원제의 토대가 자리 잡혀 있는 진보정당은 전혀 다른 고민에 빠져 있다. 주류 정당들이 진성당원제가 자리 잡히지 않은 조건에서 일반국민의 참여로 민주성을 구현하려 하고 있지만, 창당부터 진성당원제로 상향식 공천을 실시해온 진보정당들은 공천과정의 민주성 시비가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선거 흥행의 측면에서 이 권리를 당원 이외의 유권자에게까지 확대해야 한다는 민중경선제 도입을 둘러싸고 당의 정체성과 대중성을 둘러싼 논쟁이 일어난 바 있을 뿐이다.


그러나 얼마 전 일반 국민은 물론 진보정당 당원들에게까지 충격을 안겨준 이숙정 시의원 사건은 진보정당의 공천방식에 대한 근본적 문제제기를 불러왔다. 민주적인 방식으로 선출된 공직후보가 반드시 좋은 후보가 아닐 수도 있다는 가능성은 상향식 공천 이외의 어떤 보완장치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갖게 한 것이다.


이런 문제는 일반국민이 참여한 경선이든, 당원들의 직접 투표로 선출한 후보이든 간에 후보의 당선 이후 활동을 완전하게 검증하기란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진보정당만이 아니라 국민참여경선 방식을 모색하고 있는 다른 정당들도 자유로울 수 없다.


즉, 현재 진보정당이 마주하고 있는 문제는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공천개혁방향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지점에 있는 것이다.


민노당의 내부 보완책과 민주성의 딜레마


민주노동당은 이에 대해 두 가지 보안책을 고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첫 째는 공직 후보자의 사전 검증을 강화하는 것으로, 한나라당이나 민주당에 존재하는 공천심사위원회와 유사한 기능을 하는 후보검증위원회를 도입하자는 것이다. 이미 지난 2010년 6월 지방선거에서 민주노동당 울산시당에서는 후보검증위원회를 설치하여 공천대상자의 ‘적격’, ‘부적격’ 판정을 내린 바 있다.


두 번째 보완책은 당선된 공직자가 정치적·도덕적으로 논란이 큰 잘못을 저질렀을 때, 최고위원회에서 해당 공직자에 대한 제명, 출당 조치를 내릴 수 있도록 하자는 안이다.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킨 의원의 경우 기존의 당기위원회(징계위원회)의 최종 판결이 내려지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되는 만큼, 최고위원회에서 보다 신속하게 징계 결정을 내려 국민들에게 책임성 있는 모습을 보여주자는 것이다.


그러나 ‘사전 검증’과 ‘사후 통제’를 핵심으로 하는 이런 보완책은 그동안 진보정당의 장점으로 여겨졌던 당원 직접민주주의를 저해할 수 있는 요소들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에 상당한 딜레마를 안겨줄 것으로 보인다.


우선, 위촉된 후보검증위원회가 어떤 수준으로든 후보를 결정하는데 개입하게 된다면 선출되지 않은 이들이 당원의 권한을 침해할 수 있다는 문제가 지적될 수 있다. 더구나 당선 의원의 인성 문제나 정치적 판단에 관련된 사건의 경우는 사전 검증을 통해 파악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물론 지난 해 문제가 되었던 한 지방의원의 부동산 투기 의혹과 같은 경우는 사전검증이 가능하겠지만, 검증위원회의 권한 강화는 검증인사 선정과 검증기준을 둘러싼 잡음이 제기될 소지가 다분하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공천심사위원회를 넘어서는 국민참여식 개혁안을 추진하고 있는 이유에는 전문가로 구성된 검증위원회가 합리적인 기준으로 결론을 도출하는 데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 현실적 문제점도 반영되어 있다. 이런 측면 때문에 민주노동당은 검증 결과를 당원에게 고지하고 이에 대한 판단을 당원에게 맡기는 수준에서 검증위의 역할을 조절 중이다.


또한, 최고위원회에 징계와 제명 결정권을 부여하는 사후적 통제 방안 또한 집행역할을 담당하는 최고위원회가 사법적 역할까지 떠안는 것으로, 당내 민주주의의 심각한 역행이 될 수 있다. 최고위원회에 대한 징계권한 부여는 사안이 긴박하고 빠른 해결을 요하는 사건의 경우에 정치적 판단을 우선시하기 위한 조치지만, 정치적 판단을 배제한 심판을 내려야 하는 사법적 문제에 정치적 의도가 개입되는 것 자체만으로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작동되지 않았던 내부 통제 기제; 당원 소환제


그러나 진보정당에는 이미 명백한 사법적 잘못은 아니지만, 정치적 행위나 공직자의 인성 문제와 결부된 사안에 개입할 수 있는 공직자 징계 방식이 존재하고 있다. 바로 당원소환제다. 이는 진성당원들이 선출직 당직자와 공직자를 ‘정치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 둔 것으로, 핵심적인 당원 민주주의 제도 가운데 하나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국민참여당과 사회당의 당헌에는 모두 ‘당원의 권리와 의무’ 조항을 두어 “당의 모든 선출직 및 공직선거당선자에 대하여 당규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소환을 요청할 권리”가 명시되어 있다.
 

당원소환제 규정

당원소환제 세부규정

한나라당

없음

없음

민주당

없음(현재 논의 중)

없음

국민참여당

당헌 13조

당규 2장

민주노동당

당헌 5조 1항의 5.

당규 17호

진보신당

당헌 5조의 5.

없음

사회당

당헌 9장

당헌에 세부규정 명기


‘정치적 판단’을 전제하는 당원소환제는 사법적 판단이 어려운 정치적·도덕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가장 적절한 제도다. 특히 진보적 공직자로서는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지만 사법적으로는 적용 기준이 미묘한 사안의 경우에도 당원의 직접적인 의사결정구조를 통한 민주적인 해결이 가능하다.


그동안 지방의원과 자치단체장에 대한 주민소환제를 옹호해 왔고, 국회의원과 대통령에 대한 소환제 도입까지 주장하고 있는 진보정당이 막상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이미 존재하는 당원 소환제 활성화에 큰 강조점을 두지 않고 있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더구나 최근 민주당 개혁특위에서도 진보정당처럼 고위 당직자들에 대한 당원소환제를 도입하는 안을 추진 중에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비록 당 내에서 여러 반발이 예상되고 있어 통과 가능성이 불확실하고 소환 대상에 공직자가 제외되어 있긴 하지만, 활동당원들의 권한을 강화하는 상향식 내부 민주주의 구현 방향은 이미 시대적 대세가 되고 있다.


정당의 민주화, 민주성의 역행이 아닌 더 큰 민주화로


공직자의 도덕성이나 인성문제와 관련된 사안의 경우, 국민들은 보수정당보다 진보정당에 더 큰 관심과 비판을 보낸다. 이는 보수는 ‘부패하지만 유능’하며, 진보는 ‘무능하지만 깨끗’하다는 잘못된 프레임이 반영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런 프레임 하에서는 무능한 보수를 용납하지 않으며, 부패한 진보를 감싸줄 수도 없다.


그러나 또 다른 측면에서 볼 때, 도덕적 문제에 대해 진보정당에 상대적으로 과한 비판을 보내는 것은 국민들의 기대치가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국민의 입장에서 소수정당의 미래 가치를 믿고 지지를 보내기 위해서는 그만큼 엄격한 도덕적 수준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진보정당의 규모와 영향력이 확대되어 감에 따라 전통적인 진보적 도덕성에 부합하지 않는 이들이 진보정당에 결합할 수 있는 가능성은 계속 높아지고 있다. 더구나 야권 단일화 논의가 구체화되고 선거를 앞두고 국민참여경선제 등을 통해 ‘선거 분위기’를 띄우는 것이 필수화 된 시대가 도래 하면서 이제 후보 공천은 일반 유권자를 포함시키는 방향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일반당원의 소속감이 약해지고 당운영에 대한 이들의 개입력이 줄어드는 당내 민주성의 역진 상황이 나타날 수 있다. 이미 진보정당 내에서도 당비만 내고 활동은 않는 당원 비율이 늘어나는 추세다. 따라서 진보정당에게는 당의 기층에서부터 당원이 실질적인 권한을 가지고 당운영에 개입할 수 있는 제도적·문화적 토대를 만드는 것이 시급한 과제로 제기되고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먼저 진보정당 역시 부패나 비도덕적인 행위를 ‘있을 수 없는 일’로 사고하기보다는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일’로 간주하고 대책을 수립하는 발상의 전환이 요구된다. 청렴과 품성을 진보정당의 ‘전제’로만 수용할 것이 아니라 항시적인 가능성을 고려한 윤리규정과 교육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것이다.


또한, 이름으로만 남아 있는 진성당원이 아니라 실질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진성당원, 책임당원, 주권당원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분회 등 기초조직의 활성화와 당원의 일상적 생활정치를 보장할 방법들이 모색되어야만 한다. 당의 규모가 확대될수록, 또 이질적인 세력이나 인사들이 많이 참여하게 될수록 관료주의와 다두제적 경향이 나타나기 쉽기 때문에 진보정당역시 당의 상층 인사들의 영향력이 기층 당원의 영향력을 압도할 수 있는 상황이 언제든 나타날 수 있음을 염두하고 있어야만 한다.


비록 소수정당으로만 존재해 왔지만 주류 정당도 따라 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민주화된 당운영을 최대 장점으로 꼽아 왔던 진보정당들이 지금의 딜레마를 어떤 방식으로 극복할 수 있을지 주목되는 지점이다. 진보정당이 지속적인 선진 정치문화를 주도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민주성을 역진하는 방향이 아닌 더 큰 민주성을 추구하는 방향을 택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 이 글은 민중의소리에도 실렸습니다.

새로운 문서는 항상 잊었다고 할 때쯤 떠 오르는군요...^^ 오랜만입니다. 벌써 구정도 1개월 이상 지난 다음이니까요.

예전에 임승수씨가 대선평가를 하면서 결속력과 결속장치 문제를 지적한 바 있습니다. -> http://minihp.cyworld.com/20874761/277319765
이것이 완벽한 것은 아니지만 당 결속력을 다지는 작업이 있어야 하는데 이것이 안 보인다는 것이고 최근 까지의 사건을 보더라도 진보정당 3곳 모두에서 이것을 의미있게 추진한다는 소리가 들린 적이 없습니다. 대중 - 한국 사회를 비롯한 다수의 (준) 주변부나 일본 사회에선 아직 백성/국민의 정체성에 빠져 있긴 하지만요! - 의 주목은 목말라 하는데 이상하게 대중/민중 속으로 들어가는 일은 별로 비중이 없다는 역설적인 생각이네요. 이 점에서 임승수씨의 평가 문의 내용처럼 기층 중심 활성화를 진보 3당 들이 심각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물론 이것을 한다고 해도 그 유명한 민주집중제 만큼은 아니겠지만 이젠 유사하기라도 해야 합니다.

사실 진보정당의 답답한 활동에는 현실 물질 조건의 제약도 만만하지는 않지요. 이러니 온통 선거용 정당들이 판치는 것이기도 하고요. 더구나 한국 사회나 일본 사회 그리고 다른 준 주변부 사회에서 국가운영 참가기회가 협소한 것도 있기도 해서 여간해서 대중들이 법안의 제안이나 수정 개폐 같은 것을 하기는 거의 불가능하고 이는 진보정당도 마찬가지긴 할 겁니다. 이러니 당원 자격을 강화하는 것 - 이 과정에서 당원 수의 감소로 정당 유지가 힘 들 수도 있기에! - 도 조바심이 나는 것은 이해합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문제를 본다면 이 점의 해결은 진보정당의 사활이지요. 외부 물질조건의 최소한의 개선조차도 작금의 상황으로 본다면 천지개벽 사건이 발생해야 가능합니다.

당원소환제를 두는 것도 정당내 기층 민주주의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은 대목입니다.이 점도 전항의 지적처럼 외부의 물질조건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긴 하지만요. 가령 지역구제가 많아서 소환시 외형감축의 우려가 있다는 점요.

그나저나 이전의 <<진보집권플랜>>부터 시작해서 작금의 정치개혁(?; 전 신구파들의 타협을 전제로 하는 개혁에 대해서 반대합니다!)안들이 대부분 과시용이고 전시용이라는 점이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상의 주류 정당들의 것이야 이미 기대를 상실한 것이라고 해도 기대가 여전히 있는 진보정당들의 것들이라도 이러한 방식은 탈피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미 그냥 의회/제도/합법 주의에 경도한 지는 오래지만 외부의 물질조건에 함께 경도한 상황에서 희망이 있을 리는 없기 때문이지요.

마지막으로 진보정당들은 이미 폐기한 지 오래이지만 백과사전의 민주집중제 항목을 보시고 이건 아니더라도 유사한 결속력 강화를 고민해봐야 한다는 원론으로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