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 비평

손우정 2011. 4. 13. 09:37

 

  
올해 카이스트에서는 지난 1월 한 학생의 죽음을 시작으로 모두 다섯 명의 죽음이 이어졌다.
ⓒ 카이스트
카이스트

5명의 연이은 자살. 우리나라 명문대 중 하나인 카이스트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건은 지금 이 시대 대학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입시위주의 경쟁구도에서 살아남아 영재 소리를 들어왔을 4명의 청춘과 그 험난한 과정을 이겨내며 최고 교수상까지 받았던 한 교수의 자살은 도대체 우리 대학이 어디를 향해가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혹자는 이것이 무리한 경쟁구도를 강요한 서남표 카이스트 총장 때문이라며 그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험난한 경쟁을 뚫고 명문대에 입학했으나 또다시 재현되는 무한경쟁의 압박감, 그리고 가장 뛰어난 축에 속해 있었던 학생들에게 난생처음 '열등 그룹' 딱지를 붙여 주었을 차등 등록금. 이런 서남표식 개혁이 만들어놓은 결과는 참혹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정말 총장 한 사람만 바뀐다면 모든 것이 해결될까? 자살을 부르는 경쟁의 구렁텅이는 비단 카이스트만의, 명문대만의 독점물이 아니다.

 

2009년 발표된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대학생 연령대인 20~29세의 사망원인 중 1위는 단연 고의적 자해, 즉 자살이다. 2009년을 기준으로 20~29세 연령대의 사망자 중 44.6%가 자살로 인한 것이었다. 지난 11일 교과부가 경찰청의 협조를 받아 국회 교과위 소속 의원들에게 제출한 최근 9년간 대학생 자살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연평균 자살자 수는 230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한국의 자살은 전 세대에 걸쳐 나타나는 심각한 사회 현상이다. 인구 10만 명당 자살한 수를 일컫는 자살률은 1990년대 중반 이후 급격히 늘어 2009년 현재 31명에 이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평균 자살률이 11.2명에 불과하지만, 한국은 표준인구를 기준으로 28.4명(2009년)에 이르러 OECD 최고의 대학교육비 민간부담률에 이어 또다시 불명예스러운 1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자살이 늘어나는 원인은 물론 다양하다. 그러나 이것이 개인적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문제라면, 게다가 대부분이 대학을 가는 상황에서 나타난 대학구조의 영향이라면, 하나의 설명을 제시할 수 있다. 바로 총장 개인의 의지에 따라 달라질 수 없는, 한국의 모든 대학에 무한경쟁을 강요하고 있는 대학구조 자체다.

 

무한 경쟁의 대학체제 '5·31교육개혁안'

 

 

잘 알려졌다시피 지금의 대학체제 기틀을 놓은 것은 김영삼 정부가 발표한 1995년 5·31교육개혁안이다. 5·31교육개혁안은 대학의 발전동력을 시장화와 무한경쟁에서 찾고자 한 것으로 '대학의 신자유주의화'의 결정적 계기로 일컬어진다.

 

5·31교육개혁안이 그려놓은 대학발전방안은 명쾌하다. 교육을 하나의 서비스 상품으로 규정하고 대학은 교육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으로 간주한다. 당연히 총장은 경영실적을 내야 하는 최고경영자(CEO)가 되어야 하며, 교수와 교직원은 교육상품을 생산하는 노동자로, 학생과 학부모는 교육상품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생산비를 부담해야 하는 소비자로 위치 지어 지면서 그 악명 높은 '수익자 부담원칙'이 제시된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관통하는 원리가 '무한 경쟁'이다. 대학 간, 학생 간 경쟁을 유도하면 자연스레 모든 것이 좋아질 것이라는 전형적인 신자유주의적 사고방식이다.

 

  
▲ 대학진학률과 대학생 수 1995년 5·31교육개혁을 통해 대학과 대학생의 수가 급격히 늘어난 이후, 한국의 대학진학률은 80%에 육박한다.
ⓒ 손우정
대학진학률

이런 '대학의 신자유주의화'가 만들어 놓은 결과는 통계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위의 그래프에서 볼 수 있듯, 1995년부터 급격하게 늘어난 대학생 수(전문대 포함)는 2002년에 이르러 300만 명을 돌파했다. 이는 시장경쟁이라는 원리에 맞게 1996년 김영삼 정부가 대학설립을 자유화하는 조치를 취했기 때문이다.

 

20~24세 인구수는 경향적으로 줄고 대학의 수는 급격히 늘어난 결과, 대학진학률의 폭발적 증가로 나타났다. 1995년 51.4%에 머물렀던 대학진학률은 2008년 83.8%로 정점을 찍다가 2010년 다시 79%로 낮아졌다.

 

대학진학률이 80%에 육박한다는 것은 이제 대학이 과거의 위상을 갖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과거에도 대학은 서열화되어 있었으나 그나마 '대학생'이라는 위상은 사회 엘리트 집단으로서 어느 정도 안정된 삶이 보장되던 공간이었다. 그러나 '희소성'이 사라진 지금의 대학은 마치 기본적인 사회생활을 위해 반드시 가야 하는 의무교육처럼, 과거 고등학교가 가졌던 위상을 대체하는 수준으로 전락했을 뿐이다.

 

대학과 대학생이 흔해졌다는 사실은 이제 평범해진 대학과 대학생들 사이의 변별력을 강화해 '좋은 대학'과 '나쁜 대학', '좋은 과'와 '나쁜 과'를 구분해야 할 필요성이 증대되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혹자는 2010년 79%로 떨어진 대학진학률이 치솟는 등록금과 청년실업률의 증가로 인해 대학을 포기하는 이들이 늘었기 때문이라고 해석하기도 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이는 대학 간 서열화가 심화된 상황에서 대부분 '좋은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재수·삼수를 선택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전체 71만 명의 대입 응시생 가운데 15만 명(21%) 이상이 재수·삼수생이었다.

 

특히 지난해 수능을 치른 서울지역 고3 수험생 대비 졸업생(재수·삼수생) 비율은 54%에 육박하고 있다. 서울에서 가장 대학진학률이 낮은 지역은 가장 서울대를 많이 보내는 강남 지역이다.

 

희소성 없어진 대학, 변별력 강화 위해 경쟁구도 심화시켜

 

  
▲ 2010 중앙일보 대학평가 순위 중앙일보에서 진행하는 대학평가는 한국 대학사회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
ⓒ 중앙일보
대학평가

쉴 새 없이 '경쟁'을 강요당하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대학에서는 학생들만 경쟁을 강요받는 것이 아니다. 대학 또한 무한경쟁구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대표적인 것이 대학을 1등부터 줄 세우는 대학평가다.

 

현재 대학사회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은 한 언론사의 대학평가다. 국가의 재정지원과 직결되던 대학종합평가가 중단된 이후, 각 대학은 한 언론사가 확인해 주는 대학서열에서 한 단계라도 더 올라가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총장의 경영능력은 대학평가 결과로 평가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언론사가 제시하는 평가지표를 올리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한다. 그러나 무엇으로 대학을 평가하는지 살펴보면 우리 대학의 별난 흐름을 이해할 수 있다. 교육여건 및 재정에 관련된 평가지표는 하나같이 막대한 돈의 투입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대학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는 것이 대학의 '생존'과 직결되면서 무리하게 등록금을 올려서라도 좋은 점수를 받고자 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등록금 대비 장학금 지급률'이라는 지표는 등록금을 인하해 주기보다는 더 많이 올려서 장학금 지급률을 높이는 것이 평가에서 유리하다. 각 대학이 장학금 비율 확대를 이유로 등록금 인상을 계속하는 어처구니없는 행태를 반복하는 이유다.

 

서열화된 대학평가체제에서 절대적인 기준이란 없다. 한 예로, 이 언론사의 대학평가지표에 2005년까지 존재했던 '강의실 정보화 비율'은 거의 모든 대학이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 등록금을 올려 강의실에 프로젝트설비와 컴퓨터를 설치하고 도난을 막기 위해 고가의 시건장치를 달아대는 진풍경을 만들어 냈지만, 2006년 사라지고 말았다. 대학 간 변별력이 없다는 이유 때문이다. 이는 현행 대학평가의 본질이 '줄 세우기'에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2014년부터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에서 시행예정인 대학평가인증사업 평가지표도 유사하다. ▲ 전임교원 확보율 61% ▲ 정원 내 신입생 충원율 95% ▲ 정원 내 재학생 충원율 70% ▲ 교사 확보율 100% ▲ 교육비 환원율 100% ▲ 장학금 비율 10%로 알려진 '필수평가기준'을 높이기 위해서는 재정확충이 필수적이며 이 재정이 어디에서 나올지는 불을 보듯 뻔 한 일이다.

 

대학 간 무한경쟁체제에서는 각 대학이 자체적인 발전 전망에 의해 등록금을 인상시킨다기보다는, 경쟁 대학이 등록금을 인상하면 따라 인상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것이 '상대평가', '서열평가'의 위력이다. 2년 전, 등록금을 인상하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대학이 무너질 것처럼 떠들던 대학들도 정부가 나서 대부분의 대학 등록금을 동결시키자 인상안을 철회했고, 여전히 대학은 부유한 채로 남아 있다.

 

그리고 또 하나. 이번 카이스트 사건을 통해 문제점이 드러난 전공수업의 영어교육은 이 언론사의 '국제화 지표'에 20점이 할당되어 있다.

 

대학을 '판매'하는 장사꾼... 대학 자체를 바꾸자

 

  
지난 2일 서울 마로니에 공원에서 열린 '반값등록금 실현을 위한 시민·대학생 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정부의 반값 등록금 공약 이행을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유성호
등록금

등록금인상 반대투쟁이 일어나고, 지나치게 높은 등록금 액수에 대한 사회적 비난이 확산되면서, 대학이 선택한 고육지책은 대학을 '판매'하는 것이다. 학교 밖의 상업시설과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대학 캠퍼스로 밀고 들어온 자본의 위력은 대학의 존재가치와 사회적 역할을 전도시킨다.

 

마치 기업처럼 대학의 '수익창출'을 최우선적 목표로 삼고 있는 대학 경영진은 극장과 대형 쇼핑몰까지 학내에 유치하는 추세다. 대학시설이 고가화하고 나날이 공사판을 만들어 휘황찬란한 건물을 세우면서도 학교시설에 대한 학생들의 접근권은 점차 차단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이제는 대학이 직접 장사에 나서는 지경에 이르렀다. 장사가 잘된다면 학교재정 확충에 기여할 수 있을지 몰라도, 실패에 대한 책임은 고스란히 소비자로 규정된 학생과 학부모의 몫으로 돌아온다. 2008년 경제위기에서 엄청난 재단 적립금을 주식투자로 날려 먹은 대학들이 염치없이 등록금 인상을 계속하고 있는 현실이, 그러면서도 최저임금 몇만 원 인상에 호들갑을 떠는 현실이 우리 대학의 일그러진 얼굴이 되었다.

 

  
최근 학생과 교수가 연이어 자살한 카이스트 사태를 다루기 위해 12일 열린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에서 서남표 총장이 오전 질의를 마친 뒤 휴식 시간에 생각에 잠겨 있다.
ⓒ 권우성
서남표

얼마나 더 우리가 이처럼 억울하고 원통한 죽음을, 무한 경쟁에 내몰리는 젊은 청춘들을 지켜봐야만 할까? 재능 있는 젊은 학생이 죽음을 선택하게 만드는 대학을, 돈이 없어 자살을 택하게 하거나 등록금을 위해 사채를 쓰고 빚을 갚기 위해 유흥업소에서 일해야 하는 대학생의 현실을 정상적인 상태라고 볼 수 있는가?

 

설령 대학 총장 한두 명을 바꾼다고 이런 대학이 달라지겠는가? 대학의 서열이 대학의 생존에 직결되는 현 구조 하에서는 어느 누가 총장이 되더라도 무한 경쟁의 그물망에서 빠져나오기 불가능하다. 필연적으로 패배자를 양산해 내는 대학 간, 학생 간 경쟁체제에서는 안타까운 죽음을 피할 수 없다.

 

대학 자체를, 대학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할 일이다. 물론 이것은 대학생들의 힘만으로는 매우 어렵다. 그러나 요구할 수는 있다. 지난 4월 2일에도 3천여 명의 대학생이 한자리에 모여 반값 등록금을 외쳤다. 그러나 대단히 미안한 말이지만, 3천 명으로는 결코 안 된다. 어느 대학에서 몇 년 만에 수천 명이 모여 학생총회를 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허나 대단히 미안한 말이지만 개별 대학의 힘만으로는 어림 없다.

 

무엇이 옳은 대학인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더 많이 모여 논쟁할 일이다. 2012년 총선과 대선을 맞아 하루 종일 지지를 호소하는 정치세력들에 어떤 대학을 만들려고 하는지,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 구체적으로 요구해야만 한다. 그러나 전 세대에 걸쳐 가장 낮은 투표율을 기록하는 20대의 모습으로는 기대할 수 없는 일이다.

 

오로지 더 많이 모일 때만이, 경쟁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절실한 필요에 의해 공부하는 대학을 요구할 때만이, 돈 걱정에 삶을 포기하는 대학을 과감하게 내팽개칠 때만이 지금의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자기 혼자의 힘으로서는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신자유주의화 된 무한경쟁구도의 대학에서 쓸쓸히 생을 마감한 이들을, 단지 '불쌍한 죽음'으로 남겨놓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덧붙이는 글 | * 지금 여러 진보적 교육단체와 정당, 연구소에서는 대안적인 대학체제에 대한 논쟁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대학생들도 등록금 인하 투쟁을 넘어서 대안대학체제 논쟁에 개입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대학의 현재의 자본화 경향에 관해서는 로쟈 씨가 3편의 도서를 모아 두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가장 적나라한 <<대학 주식회사>>, <<대학의 몰락>>, <<대학과 자본주의 국가>> 이 세 권을 취급했는데 제목은 '미국의 명문대는 자살률이 더 높다' 라고 제목을 뽑았습니다. (http://blog.aladin.co.kr/mramor/4712644 )이후에 참고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미 목록으로 올려두기도 했군요...대학 주식회사 읽기(http://blog.aladin.co.kr/mramor/4576659 ) 그리고 교수 신문의 대학 주식회사의 서평은 '대학과 학문이 상품으로 변질될 때(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22490 )' 에도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사회나 미국사회 등 몇 곳에선 등록금 제도를 공기처럼 인식하고 있지만 원래는 부재한 제도라고 합니다. 절반가 등록금 제도도 누군가는 인기영합주의라고 타매하긴 하지만 이 타매내용조차도 원래는 무상이기 때문에 아니라는 것이고요 대학이 정부보다 더 먼저 발생한 지역 - 한국도 미국도 이 점은 예외가 아니지요; 자세히 한국에선 1897년 숭실(저의 모교이기도;)이 처음 대학교육을 실시하기도 해서 정확히 대한제국 정부에 탄생하긴 했지만 대개의 대학들이 일제시대에 발생했기에 적용가능합니다. - 의 병폐라고 합니다. 즉 식민지의 숙폐를 떠 안고 살아 온 생생한 증거이고요. 여기까지는 '대학 등록금: 반 값이 아니라 없어져야 한다(http://blog.naver.com/bekoh/50108746762 )' 를 참고한 내용입니다.
문서 내용에서 보면 일시적으로 (표면) 진학율이 감소한 이유가 재수/삼수라고 있는데 한국의 대학들은 학벌의 존재도 문제이긴 하지만 대학 입학과 졸업이 실질 측면에서 일치하는 문제도 심각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방법 외에도 이는 학문/예술의 자유 제한이라는 측면과 동시에 이유의 다수가 유력학벌과 유망학과 등 의 (실질) 생사문제에 경도한다는 심각한 측면입니다. 이런 점은 68과 같은 전환점이라도 지나는 것이 방법이라는 시사점입니다. 서구나 일본의 학벌문제도 68을 경과하면서 철폐 내지는 완화 했습니다.
이것 아니라도 생사의 기로에 다수의 대학생/청년들이 서 있는 것은 심각한 문제이자 멀게 객관적 상태 - 이것은 공기와 같은 느낌으로 감각하는 것으로 주관적 상태라는 극히 이질적 적대적 감각으로 느끼는 구체적인 것들과 정반대인 것을 말합니다; 진정한 폭력은 진정한 사랑이다(http://blog.naver.com/caujun/60093176997 )의 개념 원용 - 의 문제인데 바로 식민지의 경험부터 시작해서 발생하고 축적한 숙폐의 문제인 셈입니다. 바로 이 숙폐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일이고 문제 자체가 원체 복합적인 만큼 더더욱 총체적/객관적 시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거기다가 지난 한 세기 전도 그렇지만 경쟁 자체가 목적으로 승격한 느낌은 대학에서도 예외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경쟁이든 상호부조든 그 자체는 수단인데 목적으로의 전도가 발생한 점도 답답하고 잔혹한 점입니다.
대학 평가나 이 측면도 금전과 물량이 대부분이니 심각한 숙폐의 한축을 차지한 것은 지극히 정상이고 대학사회도 예외 없는 초단극, 극단극 구도라고나 할 까요... 한 사회의 초단극, 극단극 구도는 그 사회에서 민중의 승리가 부재한 체 내/외부적 초과속, 급과속 역사 경험을 할 때 발생하는 현상입니다. 하필 아직도 이 역사관성이라는 롤러코스터에서 내리지를 못한 셈입니다. 이 점은 대학 자체도 평가라는 장치를 통해서 초단극, 극단극 구도를 재확인, 재생산 하는 것입니다. 이런 식이니 극단 측면에서는 자살의 연속도 이 현상의 일부 반영인 셈이고 영화 명 <<비상구가 없다>>를 연상케하는 작용이죠. 이러한 점들은 대학의 근본적 전환을 요구하는 것이고 이는 숙폐의 숙청이라는 점에서 일치하는 방향이죠. 영어수업 문제도 여러 해 전 부터 나온 현상이지만 이 점은 정확히 맞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점들을 인식(했는지는 모르겠지만)한 듯 여기저기서 비록 분산적이지만 학생 총회등을 결성하는 대책운동이 발생한 것은 반가운 일입니다. 남은 일은 전 대학적 아니 전 사회적 조직화가 있습니다. 그리고 내년 선거문제는 현재 정당으로 등록한 모든 정치단체에서 고려하고 있는 일입니다만 대부분은 정치 기술 측면에만 논의가 머물러 있다는 점은 대학의 청사진 요구를 우울하게 하는 일입니다. 이 점 역시도 어떤 전환적 사건의 발생만이 가능 한 일입니다.
대학 문제나 청년 문제 등 다수의 문제들이 개별적인 그 사건(들)만 본다면 복잡할 수도 있지만 전 이 지점에서 의외로 단순화 할 수 있고 이를 통해서 주 구도(마스터 프레임)을 창출할 수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훈련을 안 했으면 시작해야 하고 시작했으면 가열차게 해야 한다는 점으로 종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