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그곳으로~

금강초롱 2008. 10. 30. 02:20

 

``~~~`~~` 트로이의 목마~~``~~~~``

 

일리아스와 오디세우스 신화의 고장 트로이로 가는 길은 쉽지않다고 해요. 공항도 없고 정기 버스노선도 없별로 없고.

우린 아이발릭에서 떠나 여행중 처음으로  꼬불 꼬불 산을 넘고 트로이를 보고 마르마라해를 건넜다

트로이라 해도 현지에서는 잘 알아 듣지 못하고 히사를리크 트로아라 해야 겨우 알아듣는다고 하지요.

 

조금은 설레고..환상적일것같고...목마도 타보고싶고...

옛날에 영화를 봤는데 줄거리는 아련하고....^^

그런데~~볼것은기대말란다.....가이드께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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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VS 트로이, 대략 기원전 1250~1025년

 

* 원 인 -

신화로 따지자면, 아킬레우스의 부모인 테티스와 펠레우스의 결혼식에 초청받지 못한 불화의 여신 에리스가

던진 황금사과로 인해 생긴 갈등을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가 해결하는데,

아름다운 여인을 주겠다던 아프로디테에게 황금사과를 줍니다.

그 덕에 옆의 동맹국 그리스 미케네의 왕 아가멤논의 동생 메넬라오스의 처인 헬레네를 취하게 되는데,

이것이 트로이 전쟁의 원인입니다.-브레드비트주연(트로이전쟁을보면..)다시봐야져^^

 

*  전 쟁 영 웅 들 -

 대표적인 인물로 꼽자면 그리스에 아킬레우스, 오디세우스(영어식 율리시스) 를 들겠고,

트로이엔 헥토르, 아이네아스 를 꼽겠군요.

전쟁의 워낙 대단해서 전쟁영웅 또한 엄청 많으며..

 

*  결    과 -

 그리스의 승리로 끝나게 됩니다.

유명한 트로이 목마(오디세우스의 전략)로 트로이를 함락시키게 되죠.

하지만 그리스의 입장에서도 이 전쟁은 그리 큰 이득은 아니었죠.

많은 사람과 영웅이 죽었고(아킬레우스 외), 온 바다를 떠돌게 되고(오디세우스 외),

돌아가서 아내에게 죽임을 당하고(아가멤논, 엘렉트라컴플렉스의 기원)... 참 비극으로..

 

역사책이라고 말하긴 그렇지만 기록된 문헌으로는

호메로스『일리아드』『오디세이』(서사시) 가 자세히 트로이 전쟁을 다루고 있다.

바이러스로 더 유명해져 버렸는데, 그 어원이 여기에 있습니다.적 몰래 숨어든다는 의미가 있죠.

 

병사가100명들어간다했지만..이건 모형이여서..oh~~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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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마안 젤위로 올라가봤어요....음!!~~`~~`

 

그냥 평범했구요..이목마에 100여명의 병사가 숨었다구요??

이희수교수님의 "세계문화기행"에서는 모형 목마가 어설프게 서있다고 쓰셨어요..

사실 생각보다는 실망하게 되지만...여행이란것이 있는 그대로를 보는것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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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마안에서 내려다본 아래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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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루의 "까만안경"을 불렀던 터키인 가이드~~`~~

 

한국어를 전공했다고....부르다 가사 잊어먹고^^

그 노래를 다알아야 리드해 주는데 그러질 못했어요..

여행내내 같이하다 마지막날 이스탄불이 집이라고 거기서 환송하고 내렸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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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이의 유적 슐리만에 의해 트로이는전설에서 역사가 되었답니다.

 셰계적으로 가장 오래된 성축이랬지요

트로이는 시대를 달리하는 9개의 도시가 중첩된 유적지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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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물과 양을바쳤던 제단~~`~~~``

 

저건너로를 평화로운 농촌풍경..양떼를 모습도 보이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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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로이 전쟁에 대해선 진위논란이많은데 고대에는 이 전쟁의 역사적 사실성에 의심치 않았지만,

19세기 비판적 역사연구에서는 허구적 신화로 취급했죠.(이른바 호메로스의 시대)

그 이유가 그 사실을 규명할 역사적 기록도 없고 (일리아드와 오디세이는 서사시. 곧 문학 )

이렇다할 유적, 유물도 발견하질 못했기 때문였는데 무역으로 돈을 번 하인리히 슐리만(독일출신 고고학자) 가

1870년부터 트로이 유적지를 발굴함으로써 두 나라 사이에 충돌이 있었다는 역사적인 근거를 얻게 됩니다.

(아나톨리아 히사를리크 언덕 제7층. 슐리만이 발굴한것은 2층이며, 6층(현재7층)을 발굴한건 데르베르트) 

이후 미국학자가제조사후 BC 1250년의 것으로 추정되는 제7층 A가 여기에 해당한다고 주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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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인리히 슐리만은 전문적인 고고학자가 아니여서 유물이 많이 훼손됐다는군요-우리가이드

그러나 그는 트로이 전설에 대한 집념에 사로잡혀 귀중한 다른유적들을 파괴한 자로 또는 세속적인 물질주의자로 비판받기도 하지만 고전 문헌을 해독하기위해 영여.프랑스어, 러시아어, 그리스어, 아랍어등을 익히고, 발굴을 위해 평생사업을 하고 돈을 벌어 자기 목표를 성취한 드라마같은 일은 감동적이라할수있을것 같아요^^

어릴적 읽었던 호메로스의 이야기를 사실로 믿고서 그것을 발굴, 확인하는 것을 꿈으로 삼았던 사람입니다.

이 전쟁의 발굴해 많은 유적, 유물을 밖으로 끌어냄으로 역사로 만들었죠.

빨리 다시 읽어봐야겠다

 

``~~`1871년 발굴시작부터 같이 했던 그의 부인 소피아가  발굴한 보석을하고 찍은 사진..이래요``~~`~

 

서쪽에서 대주벽을 발견하고 이것이야말로 트로이의 성벽이라고 슐리만은 확신 했고 여기서 황금단추, 금박목걸이, 금관, 팔찌, 술잔을 비롯한 다량의 황금 보물이 출토되어 슐리만은 이것을 트로이 왕 프리아모스의 보물이라고 생각 했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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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이구경을 끝내고 이제 유럽대륙으로 버스랑 배를 타고

마르마라해를건너갑니다.

 

``~~~``~~납세끼(지명)~~작은 항구..시골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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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안에서 터키치즈빵& 커피& 녹차로 즐거운한때를....40분이 넘 아쉬웠습니다

갖가지 과일이랑 음식들 모두 사먹으며 이곳~~여행지에 있음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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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너로 유럽대륙..~~```~~

앙카라로 걸널때는 보스포로스해협으로 건너었지요..흑해와이어지는..

여기는 에게해로 이러지는 마르마라해협이랍니다..

파도치는 해협과 멀리로 보이는 도시가 주는 아련함에 이국에 와있는 것을 실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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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협을 건넌뒤 여기서 고등어케밥을 먹었습니다...여행중 유일한 생선 요리였지요^^~`

구두닦이 아저씨..구두따~악..소리치고 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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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을 받는 화장실이 작고 이쁘고 까페같이 관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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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 바자르 입구...시간이 너무 없다.ㅠ.ㅠ

주말이라 시내길이 너무 막혀 늦게 도착했다네요...아쉬워요 구경을 못해서...

장정의 실크로드가 끝나는 유럽의 시장이라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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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이는것처럼 훌륭하지 않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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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 알아가기- 느끼기- 새기기- 상상하기- 추억하기 같다..

 

지금와서 생각해 보면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