漫想綠

류운 2015. 12. 1. 13:15

두 달쯤 전에 트위터에서 ‪#‎나를_만들어_준_책‬ 이라는 해시태그로 책 소개를 쭉 한 적이 있었는데, 흘려보내기 아까워서 블로그에도 올림.



1. '디지털이다' (니콜라스 네그로폰테 / 커뮤니케이션북스) 

1994년 새내기 시절 우연히 읽고 푹 빠졌던 책. 아날로그~디지털적 사고방식의 호환성에 눈뜸. 의외로 쉽게 읽히는 것도 장점. 

요즘엔 이 책의 관점이 그리 새롭지 않을 수도 있지만 (물론 새롭지만 않을 뿐..), 당시엔 이 책 읽고나서 진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달라졌음.



2. '게으름에 대한 찬양' (버트랜드 러셀 / 사회평론) 

사회주의는 복수를 위한 복음이 아니라는 내 인식의 지표가 된 책. 기술 발전에 따른 부와 노동 불균형의 해결책은 '게으름'으로 대유되는 휴머니티다. 
러셀 영감님의 독설가적이면서도 쿨한 낙관론이 내 코드랑 딱 맞았달까. 

러셀은 중학생 시절 교육방송 라디오의 '세계의 사상가들' 코너에서 알게 됐을 때부터 좋아했는데, 이 책 이후로 완전히 팬이 됐다.



3. '위험할 때 호루라기 세 번' (이용복 / 대원사) 

1992년에 나왔지만 나는 아직도 이 책을 넘어서는 여성 호신술 전문서적이 없다고 장담한다. ASAP 개발에도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
ASAP를 기반으로 보다 본격적인 여성호신술 및 성폭력 대응에 대한 책을 내려는 마음을 오래 전부터 품고 있는데, 그러려면 이 책을 넘어서야 할 거라고 언제나 생각하고 있다.



4. '비폭력대화' (마셜B.로젠버그 / 한국NVC센터) 

세상과 타인을 바라보고 받아들이는 방식을 알려준 책들은 많지만, 그들과 진심으로 그리고 실용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준 것은 아직 이 책뿐이다. 
이 책을 알게 된 이후, 기회될 때마다 선물로 활용하는 책이기도 하다. 소통의 문제로 힘든 일들이 많은 요즘이라 더더욱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5. '작은 아씨들' (L.M.올콧 / 국민서관) 

(이건 도저히 사진을 구할 수가 없.. ㅎ) 

어릴 때 집에 있던 60권짜리 전집 중에서 가장 좋아했던 책. 내 이상형은 이 때부터 조 스타일로 굳어진 것이다. (후..) 
책 후반 조가 매그의 남자친구에게 심술 부리느라 일부러 말을 거꾸로 하는 장면에서 내 딴엔 '책이 잘못됐나보다' 하고 볼펜으로 위치바꿈 표시를 했다가.. 다음 페이지에서 그게 아닌 걸 알고 울상이 됐던 기억이 있다. 뭐든 신중히 두고봐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 책이기도.
그러고 보면 어릴 때부터 소녀들이 주인공인 얘기를 좋아했다. '소공자'보다는 '소공녀'. 나중에 지경사 소녀명랑소설 시리즈도 좋아했고 (말괄량이 쌍동이나 다렐르 시리즈 같은 거), 순정만화도 좋아했고.. 물론 서유기나 홍길동전 같은 것도 좋아했지만.



6. 동아원색세계대백과사전(두산세계대백과사전의 이전 판) 

국민학교 3학년 땐가 4학년 때 집에 들어왔다. 심심하면 31권 중 아무 권이나 꺼내서 아무 페이지나 펼쳐 읽는 걸 좋아했고 중딩 때는 국어/영어 소사전 들고다니며 같은 짓을 했는데... 이 때 각종 -ism들에 대해 알게 됨 (페미니즘도 이 때 알게 되어 '인형의 집'을 찾아보기도). 이게 결국 고딩 시절로 가서는 20여 권의 각종 사전을 사모으는 사전 수집 취미로 이어짐...
나중에 007 시리즈였나 무슨 영화에서 세계를 떠도느라 홈스쿨링했다는 여주인공이 "브리태니커를 Q까지 뗐어요." 하는 얘기를 보고 오호! 했던 기억도 있음.ㅎ



7. ‘사람의 아들’(이문열 / 민음사) 

기독교 재단의 사립 국민학교와 중학교를 다녔고, 그래서 기독교 문화에 어릴 때부터 자연스레 노출됐던 나에게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하는 컬처쇼크를 안겨준 책. 
소재도 소재였지만, 문장력이 정말.. 방과 후 놀러간 친구네 집에서 무심코 꺼내들었다가 도중에 어두워지는데 불 켜러 움직이는 것도 싫어서 그냥 그대로 앉은 자리에서 끝까지 다 읽어버렸다. 이후 "소설을 쓰겠어!"라고 마음 먹음.
그런데 생각해보면 당시에 종말론과 함께 유난히 기독교나 성서 내용에 대한 사파적(?) 해석 - 예를 들면 예수가 사실 불교를 배웠다거나 - 같은 게 유행했던 것 같다. 한참 후에 나온 영화이긴 하지만, '맨 프롬 어스'가 그런 썰들의 집대성인 듯. ㅎ


8. '쥬라기공원' (마이클 크리튼/김영사) 

앉은 자리에서 다 읽은 책, 하면 또 빼놓을 수 없는.. 가족 외식 전에 조금만 읽어야지 했다가 1시간만에 1권 다 읽어가는데 나가자고 해서 막 일어서면서도 읽었던.. ㅎㅎ 외식 나가서도 "아~ 빨리 2권 읽어야 하는데~" 하면서 혼자 발 동동 굴렀더랬다. (책이 어디 도망가는 것도 아니건만.. ㅋ) 
글을 쓸 때 자연스러운 시점이나 장면 전환법이라든지, 디테일하고 생동감있는 상황 묘사 등에 대한 공부를 하게 해준 책이기도.



9. '지적 사기' (앨런 소칼, 장 브리크몽 / 민음사) 

'미루어 짐작하기'와 '끼워맞추기'로 대변되는, 어떤 대상을 이해하고 해석하는데 있어 인문학적 사고 방식으로 이학/과학을 손쉽게 차용하려 들 때의 실수나 오류에 대해서 잘 설명해놓은 책. 무술 연구에 있어서도 오컬트를 경계하고 합리적/과학적 접근 방식을 견지하는데 있어서 큰 도움이 되었다. 

비슷한 책으로 '왜 사람들은 이상한 것을 믿는가?'(마이클 셔머 / 바다출판사)도 있는데, 각종 과학 미신이나 도시 괴담, 음모론, 진영 논리 등의 함정을 경계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일독을 권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