健身練武

류운 2008. 6. 10. 16:59

요즘 들어 영어 공부를 다시 하고 있습니다. 대학교 1학년 때 교양 영어 이후 영어 공부를 해보긴 처음이니까... 대략 14년만이군요. - _- 더구나 영문법! 이라니... 아득한 기억 저멀리서 잊고있던 용어들을 되살리고서야 이해가 될듯 말듯... 허허 =ㅁ=

 

어쨌든 최근 동영상으로 영문법 강좌를 듣다보니 이런 내용이 나옵디다. to부정사는 왜 '부정사'라는 이름이 붙었는가, 그리고 그 이름 때문에 우리가 얼마나 영어공부하기가 힘들었는가.

 

요는 이렇습니다. 영문법을 동양에 처음 소개한 것은 일본인이고 이 일본인이 to-infinitive라는 용어를 한자말로 바꿔 이름 붙인 것이 'to不定詞(후테이샤)', 즉 '한정할 수 없다', 즉 '(뒤에) 무엇이든 올 수 있다'는 의미에서 아닐 '부'자와 정할 '정'자를 써서 부정사라는 단어를 만든 것이죠.

 

이것을 우리나라에서도 그대로 들여와 'to부정사'라고 쓰고 있는 것인데, 우리는 부정하다 혹은 부정적이다의 '부정(否定)'이란 단어에 더 익숙하기 때문에 'to 부정사'란 영문법을 배울 때마다 '아~ 이건 뭔가 부정적인 용법인가?'라고 생각하고 '정할 수 없다'라는 의미라고 배워도 쉽게 머리 속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겁니다. (물론 일본에서는 헷갈리지 않습니다. 그들이 부정적이라고 할 때의 부정은 '히테이'라고 읽으니까요.)

 

 

왜 이 얘기를 격투기 얘기하는 곳에 구구히 적는가 하면, 우리가 흔히 접하는 '격투기'라는 낱말이 갖는 이미지가 또한 그렇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격투기'라고 하면 '거칠게 싸운다'라는 의미의 '격투(激鬪)'라는 낱말이 더 익숙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격투기'라는 말 역시 매우 강하고 거친 '싸움' 혹은 '실전'의 이미지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전에도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만, 사실 이 말은 '격식을 갖추고 싸우는 기술 또는 경기'라는 의미로 갖출 '격'자에 싸울 '투'자, 기예 '기'자를 쓴 '격투기(格鬪技)'이고, 원래 이 말을 만들어냈던 일본에서는 여전히 그런 의미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흔히 일본에서 고류무술을 하는 사람들이나 관련매체 등에서 '격투기는 실전이 아니다'라고 곧잘 얘기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그들에게 '격투기'는 우리로 치면 룰이 있고 예의를 차리는 싸움, 즉 '경기'라는 말이나 마찬가지인 거죠. 물론 일본에서도 '격투(激鬪)'라는 말을 쓰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카쿠토우(格鬪)'와 '게키토우(激鬪)'로 발음이 완전히 다르니까 헷갈릴 일은 없습니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매체에서도 곧잘 '무술'이나 '무예'란 말을 심신수련이나 수양 등에 연결시키는 반면,  '격투기'란 말을 쓸 때는 과격한 실전성을 담은 의미로 쓰는 경우가 많을 정도로 같은 말이라도 일본과는 전혀 다른 의미를 형성하고 말았습니다. 아마 우리나라에서는 격투기를 한자로 '激鬪技'라고 써야할 지도 모르겠네요.

 

 

이처럼 용어의 선택과 그 의미를 따져보는 것은 우리가 대상을 바라보는 인식 체계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조금 얘기를 더 확장해보자면 이런 예들도 들 수 있겠지요.

 

뒤에 '~도'만 붙이면 무술 이름이 되는 줄 알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과거에는 그렇게 해서 나온 웃기지도 않는 이름들이 참 많았죠. 비단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한참 동양무술 붐이 일던 8, 90년대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척 노리스가 만들었다는 '천국도' 같은 경우가 대표적인 케이스겠군요. 거꾸로 길거리에서 '무도학원'이나 '기도원' 같은 간판이 얼핏 보일 때마다 댄스교습소가 아니라 무술도장이나 합기도장인가 하고 순간 착각했던 경험에 공감하시는 분들도 꽤 계실 겁니다. ^^

 

이제는 너무 잘 알려진 '태권도'라는 이름의 형성 과정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택견'과의 발음상 유사점과 발기술과 손기술이라는 의미를 만들어 넣기 위해 억지로 발 족자 변이 있는 글자 중에 그나마 비슷한 '태'라는 발음을 가진 跆(밟을 태)라는 다 죽어가는 한자<주1>를 찾아내어 '태권'이라는 말을 만들고, 그리고 무술 이름이란 것을 알리기 위해 '~도'를 붙여 만들어진 것이 '태권도'라는 말입니다.

 

재미있게도 일본에서도 유사한 사례를 거꾸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바로, 이전에 소개한 사야마 사토루가 창시한 체권도죠. 그 때도 잠깐 언급했습니다만, 우리에게 제권(制圈)과 체권(掣圈)은 당장 듣기만 해도 완전히 다른 말이지만, 일본어로는 둘 다 '세이켄'으로 똑같이 읽힙니다. 비록 일상생활에선 전혀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는 한자이지만, 같은 발음에 의미도 비슷하고 무엇보다 손 '수'자 받침이 들어있는 '체'라는 한자가 사야마 사토루 입장에서는 구미가 당길 수 밖에 없었겠지요. ^^ 그러고보면 무술하는 사람들 생각은 다 비슷비슷한가 봅니다.

 

 

글이 길어지고 있군요. 하고 싶은 얘기는 이겁니다. 영문법이나 수학, 법률 등 우리나라 대부분의 분야가 그렇기도 합니다만, 특히 무술이나 격투계에서는 무분별하게 일본식 용어가 너무나도 많이 차용 혹은 와전되어왔습니다. (요즘은 그것이 전체적인 외국어로 확산되고 있고요.) 새로운 문물을 소개하는 데 있어서 기존에 없던 용어라면 외국에서 이미 쓰이고 용어를 가져다 쓰는 것도 당연하겠습니다만, 그 역할을 하는 사람들은 이런 문화적인 고려도 좀 해야하지 않을까요.

 

 

<주1> 태권도의 跆(밟을 '태')자는 현재는 태권도라는 용어 이외에는 전혀 쓰이지 않는 한자입니다. 이 태권도라는 말이 나온 배경을 처음으로 소개했던, 한학자이기도 한 도올 김용옥의 <태권도철학의 구성원리>에서도 이 글자가 가지고 있는 의미가 '눌러밟다'라는 정도의 뜻으로, 과거에도 거의 쓰이지 않았던 자이고 문헌 상에 사용된 용례로는 널뛰기할 때 널판을 밟다 정도, 즉 아낙네들 놀이를 묘사할 때나 쓰였던 유약한 의미를 담은 글자이라서 '발차기'와는 전혀 관계없는 글자라고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현재는 책을 가지고 있지 않아 오래 전 기억에 의존한 것이니 틀릴 지도 모르겠습니다만... (혹시 원저를 가지고 계시는 분이 계시면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현재 다음한자사전이나 제가 가지고 있는 민중서림 한한대자전에 의하면 '짓밟다', '유린하다'의 의미를 가진 것으로 나오고, 과거 문헌 중에는 <한서(漢書)>에 '興兵相跆藉(흥병상태적 : 병사를 일으켜 서로 짓밟았다)'라고 하는 용례가 있는 것으로 나옵니다. 비교적 강한 의미이긴 합니다만, 역시 '발로 차는 것'과는 좀 거리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게다가 '~도'를 붙이는 것은 '무도'를 추구한다는 것인데, 그런 종목의 이름자로 쓰기에 적절한 의미도 아니라는 생각이 드네요.

 

 

헤..헬로우..
뭐냐, 갑자기... ㅋ
그래서 나도 병문도에서 병문권으로 바꾸기로 했다. ㅎㅎㅎ
형은 병문도가 더 어울려요. ㅎㅎ
무슨 강의 들으시나요 ㅋ 제가 들은 강의에도 부정사 용어 까던데...
글쎄요, 용어를 까는 건 아니고... ㅎㅎ 그 의미를 가르치고 배우는 과정이 생략됐다는 게 문제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