健身練武

류운 2008. 6. 13. 10:09

그 동안 얘기를 슬쩍 꺼내긴 했는데 자세히 못 했던 얘기들을 좀 써볼까 합니다. 우선 태권도의 실전성에 대한 글에서 ITF 태권도의 '사인웨이브'에 대해서 잠깐 언급했던 바 있습니다.  

 

  

넷상에서 흔히 사인웨이브를 설명하는 글에서 함께 볼 수 있는 이미지입니다. 위 쪽이 일반 무술의 이동 방식, 그리고 아래 쪽이 ITF 태권도의 사인웨이브를 이용한 이동 방식입니다.

 

기본적으로 중국무술이나 가라테 등 대개의 동양무술에서는 전진이동 시에 위 쪽 사진과 같은 움직임을 정석으로 삼고 있습니다. 즉 신체중심이 지면과 수평으로 움직이면서 전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르기 등의 공격 시에 여기에서 발생하는 직선운동에너지와 몸통의 회전력, 주먹을 뻗는 힘이 모두 같은 방향으로 향하면서 생기는 총합력을 그대로 타점에 집중시키는 것이 이상적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ITF의 사인웨이브 이론은 여기에 중심을 높였다 낮추는 동작을 통해 타격력을 더 강화할 수 있다는 이론입니다. 즉, 중심을 높였다 낮출 때 생기는 위치에너지와 낙하 속도가 지르기의 힘을 더한다는 것이죠. 또 중심을 높이기 직전에 살짝 중심을 낮추기 때문에 결국 낮췄다가 높이고 다시 낮추는 중심의 이동선이 그려지게 되는데, 이것이 수학에서 말하는 사인 곡선과 닮았다고 해서 '사인웨이브'라는 이름을 붙인 것입니다. ITF에서는 이 운동을 통해 보통의 지르기에 비해 몇배의 힘을 낼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흔히 말하는 '힘은 속도와 질량에 비례한다'는 이론에 기대어 봤을 때도 타당함이 있습니다. 이처럼 사인웨이브 이론은 보통 힘내기 이론으로 설명되면서, 중국무술의 침추경과 비견되곤 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한가지 쟁점이 발생하는데, 앞서 설명한 것처럼 기존의 동양무술에서는 수평이동을 정석으로 하면서 사인웨이브처럼 신체 중심이 위아래로 움직이는 것은 오히려 피해야할 신법으로 규정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수평 방향으로 움직여야할 운동에 수직 운동이 섞여버리면 그만큼 타점에 집중되어야 할 힘(관통력)이 분산되기 때문에 오히려 좋지 않다는 것이죠. (주1)

 

이 또한 일리가 있습니다. 당구에서 하체와 어깨를 고정시키고 스트로크를 일직선상으로 정확하게 찌르듯이 했을 때는 공이 더 강하고 빠르게 그리고 흔들림없이 뻗어나가지만, 어깨나 팔꿈치의 움직임이 불안정해서 큐가 공에 닿는 순간 흔들려버리면 소위 '삑사리'가 나면서 공이 제멋대로 튀어버리고 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실제로 ITF 수련자들의 틀 연무를 보다보면 중심을 띄운다면서 어깨가 뜨는 경우가 많고, 그러다보니 주먹이 곧바로 뻗는 것이 아니라 위에서 아래로 털어내리듯 하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단지 그렇게 하는 것이 좀 더 힘을 내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에 불과하다고 잘라 말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수련자들이 자주 착각하는 힘쓰기 방식(주2)이며, 이론적 체계가 부족했던 초기 태권도 수련자들 사이에 그런 방식이 별 문제 없이 퍼지고 있던 것을 고 최홍희 총재가 거창하게 사인웨이브의 원리를 발견했다며 포장하고 합리화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풀기 위해 ITF 내부에서도 사인웨이브에 대한 고민과 연구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한 외국 사이트에서는 올바른 사인웨이브 운동이 아래 사진처럼 수평이동을 하다가 기술을 내는 순간 사인웨이브 곡선이 급하게 그려져야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주장은 사인웨이브 이론이 신체중심을 높였다가 떨어뜨리는 하향운동에너지를 이용하는 것이라면 신체중심의 상승낙하가 순간적으로 그리고 수직 방향에 가깝게 이루어질 수록 더 큰 에너지를 발생시킬 수 있다는 것을 근거로 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미지상으로는 기존 무술의 수평이동에너지 역시 함께 활용할 수 있는 대안으로 제시하고 싶었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 만, 제가 보기에는 수평이동에너지의 분산이라는 문제 해결에 있어서는 답이 되질 못하는 것 같습니다. 수평운동 중에 수직 운동이 급격하게 일어날 수록 힘의 분산은 오히려 더 크게 일어나지 않을까요? 멀리뛰기나 높이뛰기 시에 기껏 도움닫기를 해놓고 뛰기 직전에 멈췄다가 뛰는 실수와 마찬가지로 말이죠.

 

 

자, 그럼 여기서 사인웨이브와 비슷하다는 중국무술의 침추경은 어떤 것인지 궁금해집니다. 침추경 역시 이름 그대로 중심을 가라앉히면서 생기는 힘입니다. 태극권의 금강도대 같은 기술이 침추경을 있는 그대로 활용하는 대표적인 예이겠지요. 문제는 이것이 수평이동을 동반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힘의 방향 자체가 그대로 아래로 떨어집니다. 팔극권의 고사 중에도 날뛰는 말에 탄 이서문이 침추경을 써서 말이 꼼짝못하게 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동할 때의 침추경은 사실 십자경을 사용하기 위한 기반, 즉 몸의 중심을 안정화시킴으로써 거기서 힘을 낼 수 있는 준비를 하기 위한 힘으로 더 많이 쓰입니다. 중심을 낮게 잡고 움직일수록 전후진 그리고 좌우회전 등의 수평 운동이 더 흔들리지 않고 온전한 힘을 낼 수 있으며, 또 중심을 낮춘 만큼 지면을 차딛고 오르는 반발력을 강하게 쓸 수 있기 때문에 중심을 가라앉히는 것입니다. 흔히 '머리를 들썩이지 말고 낮은 천장 아래를 움직이듯 하되, 뛰어오를 때는 그 천장을 깨부수 듯 강렬히 하라'는 구결이 여기에서 기인합니다. 

 

수평이동과 함께 침추경을 사용해 공격하는 경우로도 궁보(등산식)로 전진한 상태에서 기마보나 입환식(소등산식)로 전환하며 순간적으로 중심을 더 낮추면서 공격하는 형태가 많습니다. 사인웨이브처럼 중심을 높였다가 낮추는 것이 아니라 수평이동 상태에서 더 중심을 낮추는 것으로써 수평이동에서 오는 관성에너지를 살리면서 낙하에너지를 싣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태극권의 단편, 당랑권의 반주나 요참, 등탑 등의 기술이 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들 모두 가능한 상대 몸에 밀착해서 하반은 굳건하게 받쳐주고 팔로는 떠밀듯 쓰는 형태로 상대를 아래로 떨어뜨리는 기술들입니다.

 

어느 경우든 침추경은 사인웨이브처럼 낮췄다가 높이고 낮추는 과정에서 생기는 가속도를 가로방향의 힘에 싣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중심을 낮춰서 쓰는 힘이고 그 작용방향 역시 아래 쪽으로 향하는 힘입니다. 때문에 사실상 사인웨이브와 침추경을 같은 힘내기 방식으로 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 제 견해입니다.

 

 

(주1) 비교 사례가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총기나 서바이벌 게임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모형총기에 쓰이고 있는 홉업 시스템을 연상해보면 어떨까요. 홉업 시스템이란 BB탄이 발사될 때 살짝 역회전을 줘서 BB탄이 위로 뜨게 만들어 사인웨이브와 유사한 곡선을 그리도록 하는 것인데, 그 결과 총탄이 직선으로 날아가는 것에 비하면 공기 저항을 줄이고 부유시간을 늘림으로써 결과적으로 사거리를 늘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신 파워(관통력)은 줄어든다는 것이 주지의 사실입니다.

 

(주2) 보통 '보이지 않는 벽'이라고 표현하는 정지사출력은 앞발을 굳건하게 딛는 것으로 브레이크를 걸어줌으로써 얻어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를 위해 중심을 높였다가 강하게 내리딛는 오류를 범하는 경우가 많죠. 이른 바 '진각'을 무조건 쿵쿵 내리찍듯이 하는 것이 잘못된 것과 같은 것입니다.

굉장히 흥미로운 주제입니다. 다만 예로 드신 홉업 시스템과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어 보입니다. 홉업 시스템의 경우 bb탄이 일반 총기의 하향 포물선 대신 약간의 사인파형을 그리기는 합니다만 그 본질은 ㅇ체역학에 의거하여 미미하나마 양력을 받기 위함입니다.(미미하지만 비비탄의 무게를 고려할때 충분한 성능이지요) 목적이 다르다고나 할까요? 사인웨이브의 경우 움직임 시작에서 사인곡선을 그리고 타격순간까지 인체의 꾸준한 힘이 작용하는 반면 홉업의 경우 실린더에서 튀어나가는 순간부터 총신, 총구, 비행, 타격까지 모든 순간이 외력에 의한 힘의 감소가 일어납니다.

개인적인 견해를 피력하자면, 사인 웨이브는 전진 가속도를 얻기위한 조건중의 하나가 아닐까 합니다. 하체를 낮춤으로서 전진의 동력이 되는 뒷발이 조금 더 움츠러들수 있게 하여 순간적인 반탄력을 증대화 시키는데 목적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사실 포스팅된 사진을 보았을때 처음든 생각이 바로 "아...이거 태클 동작과 유사한데?"였습니다. 물론 태클은 중하단으로 들어가는 것이 일반적인 만큼 목적면에서는 다르지만 유사한 밸런스 이동과 극단적인 전진이라는 공통된 관점에서 볼때 그런 생각이 드는군요.^^;;;
네, 사실 저도 좀 자신이 없어서... ㅋ 뭐 사실 구형의 BB탄이 외부의 힘에 의해 움직이는 거랑 사람 몸이 스스로 움직이는 거랑 같을래야 같을 수가 없는 거지요. -_-a

태클이랑 유사하다는 것도 동감하는 바이고요. 본문에서 예로 들었던 단편이나 반주 같은 기술도 그런데, 사실 이런 중심이동의 효과적인 활용은 몸으로 부딪히는 기술에서 더 잘 쓰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불감돌격의 강맹한 기운을 발경하는 심의육학권 일수도...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