健身練武

류운 2008. 6. 21. 00:06

앞글을 올리고 나서 사인웨이브가 틀린 것, 잘못된 이론이라는 반응을 많이 받았는데 그런 의미로 쓴 글은 아니라는 점을 다시 한 번 짚고 넘어가야 할 듯 합니다. 앞글의 요지는 단지 사인웨이브가 흔히 비유되는 것처럼 침추경과 온전히 같은 힘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중심이 위아래로 흔들리지 않게 한다는 중국무술에서도 실제로는 크고작은 상하이동이 생긴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습니다. 사실 그것은 인체구조 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죠. 당장 모니터 앞에서 잠깐 일어나 실제로 서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허보와 궁보, 기마보, 입환보를 각각 연결하면서 혹은 전진하면서 서보면 중심의 높이가 다를 수 밖에 없다는 것을요. (물론 이것을 최대한 같은 높이로 맞추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중국무술의 수련이지만) 어찌 보면 사인웨이브는 이런 자연스러운 동작을 오히려 그대로 담아낸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앞글에는 중요한 함정이 있습니다. 그것은 실제로 전진 시에 수평이동이 앞글의 사진1처럼 길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진1은 각 동작을 쭉 늘여놓은 분해사진이기 때문에 매우 동선이 길게 느껴지지만 실제로 그것을 한 동작으로 보면 이렇습니다.

 

보시다시피 거의 제 자리에서 이루어지죠. 따라서 사인웨이브의 실제 동작을 풀어보면 사실 앞글 그림2와 같은 형태가 될 수 있습니다.

 

 

앞글에서는 이것이 수평이동 에너지의 분산이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고 했지만 사실 그것이 함정입니다. 어차피 수평이동 거리 자체가 얼마 안 된다면, 아예 사인웨이브에서 수평이동을 떼어내고 생각해도 무방합니다. 즉, 수평이동에너지의 분산을 문제삼지 않아도 된다면 어떨까요. 앞글에 썼던 비유를 두자면 한걸음 정도 하는 도움닫기, 있으나마나니까 그냥 제자리 멀리뛰기를 한다고 생각하는 거죠. <주1>

 

게다가 ITF에서는 이처럼 나가면서 지르는 것이 아니라 제자리에서 지르기나 막기를 할 때도, 심지어 발차기를 할 때도 사인웨이브를 사용합니다. 그렇다고 하면 수평이동은 더더욱 문제가 되지 않고, 침추경에서 발생하는 십자경, 전사경과 같은 형태로 이해하는 것도 가능할 수 있습니다. 또한 신체의 이완과 집중을 통해 순간적인 떨림을 이용하는 '두경'과도 통하는 부분을 찾을 수 있을 지도 모르겟습니다.

 

 

문제는 사인웨이브가 매동작마다 낮추고-높이고-다시 낮추는 번거로운 동작을 취한다는데 있습니다. 고 최홍희 총재의 사인웨이브 강연 동영상을 보면 이 낮췄다가 일어서는 첫동작을 매우 중요하게 얘기하는데요. 그 동작을 하기 때문에 사인웨이브다... 라고까지 합니다.

 

[최홍희 총재가 1999년 폴란드 세미나에서 사인웨이브를 설명하는 모습]

 

그렇다면 도대체 왜 굳이 낮췄다가 일어서는 동작을 취해야하는 걸까요? 사인웨이브를 앞서와 같은 힘내기 이론으로 봐서는 이런 번거로운 동작을 취하는 이유를 도저히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게다가 모든 동작에 사인웨이브를 넣도록 하는데, 오로지 한가지 방식으로만 힘내기를 한다는 것도 무리가 있고요. (물론 ITF 이론 중에서는 1/4, 1/2 사인웨이브 등 사인웨이브를 세분화해서 적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여기서 저는 사인웨이브에 접근하는 관점을 신법, 즉 자세 이론으로서 봐야하는 것이 아닌가, 라는 조금 다른 견해를 제시해봅니다. (아, 물론... ITF 하시는 분들께는 이미 당연한 얘기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

 

전통가라테가 손기술 위주이고, 따라서 낮은 중심에서 하반을 고정시킨 채 움직였던 것에 비해 (심지어 발차기를 할 때조차 허리 높이를 올리지 않는다.) 높고 연속적인 발차기를 장기로 삼는 태권도는 중심이 자주 높아질 수 밖에 없습니다. 물론 중심을 낮추고 차는 것도 가능하지만 높이 강하게 차는 것이 어렵고, 억지로 높이 차게 되면 중심이 떠서 불안할 뿐 아니라 다른 발차기나 손기술로 연결할 때도 틈이 생기는 약점이 있죠. 때문에 WTF 태권도도 가라테나 여타 동양무술에 비하면 기본 자세가 높은 편이고, ITF 특유의 자세인 '걷는서기' 등은 특히 중심이 높은 자세입니다.

 

하지만 손기술은 역시 중심이 낮을 수록 효과가 크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더구나 그렇게 배웠습니다. 때문에 이와 같은 중심 높이의 변화는 피할 수 없는 일이었고, 이것을 무리없이 연계하려는 시도가 수련자들 사이에 경험적으로 발생 전파된 행동 패턴이 사인웨이브가 아닐까, 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주2) 즉 주무기인 발차기를 주체로 하면서도 손기술을 자연스럽게 연결하기 위해 발생한 것이 사인웨이브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뭔가 다른 무술과 이론을 맞추기 위해 억지를 쓰는 듯 보였던 위의 주장과는 달리, 자연스럽게 아귀가 맞을 뿐 아니라 힘내기 이론으로서도 손색이 없어집니다. 우선 필요없는 동작으로 보였던 무릎을 굽혀 중심을 낮췄다가 일어서는 동작은 발차기를 찰 때 무릎과 허리의 탄력을 이용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주3) 다만 지금까지 봤던 사진과 같은 사인웨이브 지르기에서는 최고점에서 발차기 동작이 생략되어있다고 볼 수 있겠죠. 

 

이것을 거꾸로 말하면 사인웨이브의 상승곡선을 그릴 때라면 언제든 발차기를 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동작마다 사인웨이브를 적용시키는 것은 곧 언제 어느 동작에서든 발차기를 낼 수 있다는 것, 그것도 강하고 빠르게 연속적인 공격이 가능하다는 의미가 됩니다. 쓸데없는 것으로 보였던 동작이 오히려 가장 중요한 포인트였던 셈이죠. 게다가 ITF의 주요이론인 사인웨이브가 손기술에만 해당할 뿐 정작 주무기인 발차기에 대해서는 크게 적용되지 못하더라는 아이러니를 해소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이후 다시 중심을 떨어뜨리는 동작은 높은 발차기 이후에 생기는 틈을 최소화시키면서 손기술로 연결시킬 수 있다는 것으로 의미를 찾을 수 있겠습니다. 이 역시 무릎의 탄력을 사용하기 때문에 부드럽게, 그리고 빠르게 연결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중심도 덜 불안합니다. 거기에서 생기는 파워는 이미 앞에서 설명한대로이겠죠. (다만 다른 무술의 9배니 12배니 하는 위력에 대해서는 해당하는 연무를 본 적이 없어서 장담할 수가 없겠네요. ^^;)

 

 

사인웨이브는 ITF 태권도가 WTF 태권도에 비해서 가질 수 있는 매우 큰 메리트이기도 합니다. 손기술 중심의 가라테에서 발기술 주체의 태권도로 완전히 바뀌어버린 것이 현재의 WTF 태권도라면, ITF 태권도는 그 과도기의 단계에서 정착했습니다. 보기에 따라서는 이도저도 아닌 어중간하고 불완전한 형태로 볼 수도 있지만, 저는 적절한 방향성과 이론 확립에 대한 적극적인 의지를 가지고 양자를 복합적으로 취할 수 있는 적절한 운동 형태를 체계화하고자 한 노력의 산물이라고 생각합니다.

 

발을 주체로 하되 손과 발을 자유롭게 섞어쓰며 높은 위력도 낼 수 있는 ITF 태권도의 핵심에는 사인웨이브라고 하는 원리가 존재한다는 명제는 결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며, 때문에 사인웨이브가 태권도에 그리고 무술 전반에 있어 가지는 가치는 크다고 하겠습니다.

 

===========================================================================================

  

(주1) 과거 일본에서 발행됐던 <최강격투기의 과학>이란 책에 소개된 실험 내용에 따르면 흔히 제자리지르기에 비해 더 강한 힘을 낸다고 생각되는 이동지르기가 실제로는 충격량에 큰 차이가 없었다고 한다. 심지어 초보자의 경우 이동지르기 시 불안정한 신체 움직임에 의해 제자리지르기보다 오히려 충격량이 줄어들었고, 무술고단자의 경우 안정된 상태로 가속도를 붙이는 것이 가능했기 때문에 겨우 비슷한 충격량을 낼 수 있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수평이동에 의한 관성에너지를 운동량에 반영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체공 시간을 갖는 이동, 적어도 뒤발이 따라 끌려올 정도의 이동 거리가 필요하다고 본다. 얼마 전 검을 수련하는 분들 사이에서 사인웨이브의 운동원리를 검도의 큰머리치기에 대입해보는 토론 글을 본 적이 있는데, 오히려 그것이야말로 더 적절한 적용이 아닐까 싶다.

 

(주2) 어떤 이는 최홍희가 폭포 물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사인웨이브의 원리를 고안했다고 하기도 하지만, 창헌류라고 불리는 최홍희의 태권도가 탄생한 것은 1950년대의 일이고 ITF가 발족한 것이 1966년, 그러나 최홍희가 에너지의 원리 - 사인웨이브를 발견했다고 발표한 것은 캐나다에 망명한 이후인 1973년의 일이다. 만약 73년부터 최홍희 개인의 아이디어에 의해 사인웨이브가 고안, 보급됐다면 최근까지 ITF의 수련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던 국내에서는 사인웨이브의 흔적을 찾기가 어려워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미 60년대부터 오도관이나 청도관 등 태권도 수련자들이 사인웨이브를 취하고 있었음은  증언 등을 쉽게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고, 현시점에서도 수박도 등에서 비슷한 운동 형태를 찾아볼 수 있다. 따라서, 최홍희 역시 당시 수련자들 사이에 행해지던 현상에서 어떤 공통점을 '발견'해 정리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사인웨이브 뿐 아니라 비틀어차기 역시 수련자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던 기술이었다.) 

 

(주3) 혹자는 이를 두고 택견의 '굼실'대는 오금질과 사인웨이브 사이에 연관성을 찾기도 하지만, 택견 쪽에서는 태권도나 사인웨이브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또한 택견의 오금질은 발질의 연속적인 사용이란 의미 외에 보법으로서, 그리고 유술기로서의 의미가 그못지 않게 중요한 위치를 갖고 있지만 아직까지 ITF 측에서 사인웨이브를 이런 의미로 설명하는 것은 보지 못했다.

 

개인적으로는 그 기원을 전통가라테에서 기초연습으로서 하는 전굴서기에서의 발차기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전굴자세(앞굽이)에서 양손을 허리에 두거나 띠 끝을 잡고 각종 발차기를 하는 이 연습법은 허리의 힘을 이용해 발차기를 함으로써 차기의 힘을 기르고 상체를 고정함으로써 발차기 시에도 중심이 흔들리지 않도록 하는 것인데, 이것을 전진하면서 하게 되면 다분히 사인웨이브와 유사한 동선을 그리게 된다. 이 기초 훈련을 통해 몸에 베었던 운동 형태가 당시 수련자들에게서 자연스럽게 발현됐던 것은 아닐까.

 

그러나 역사적 사실관계를 떠나서 운동 자체의 특성에서 오금질과 사인웨이브 사이에 통하는 원리가 있음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비록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 하더라도 사인웨이브 역시 발차기를 주체로 하는 한국인의 체질적 특성이 발현된 것으로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사인 코사인 탄젠트...이렇게 깊은 뜻이...
아... 탄젠트... 도 있었지. ㅋ
흥미롭네요. 잘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