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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운 2008. 9. 17. 06:15

미국에 와있다보니 '바람의 나라'가 드라마로 만들어지는 줄도 모르고 있었는데 (바람 결에 실려오는 소식을 얼핏 들은 것 같기도 합니다만, 별로 신경을 안 쓰고 있었죠.) 이번에 방영이 시작되었나봅니다. 그런데 그 반응이 영 시원찮네요. 특히 백발마녀님의 글에서처럼 원작을 보셨던 분들은 분노를 금치 못하고 있나 봅니다.

 

사실 아주 예전부터 만화를 원작으로 했다면서 나오는 영화나 드라마들을 보면서 언제나 '원작 그대로 좀 만들면 어디가 덧나나?'라는 생각이 드는 것을 피할 수가 없었습니다. 물론 대만의 '꽃보다남자'라든지 '빈궁귀공자'(야마다 타로 이야기)처럼 만화 속 해당 장면의 표현이나 프레임 하나하나까지 원작 그대로 쫓아가버리는 극단적인 양식을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이것도 나름 보는 재미가 쏠쏠하긴 하지요.ㅋ) 적어도 원작을 무시하지는 말았으면 하는 거지요.

 

 

제 기억으로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만화를 원작으로 해서 드라마를 만들었던 것이 허영만의 '아스팔트위의 사나이'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어디까지나 제 기억 상에서입니다) 어린 나이였습니다만, 원작 만화의 마지막에 미국과 일본의 유명 자동차제조사 사장들이 식물인간이 된 강토(예전에는 허명만 만화의 모든 주인공은 이강토였죠.) 앞에서 무릎 꿇고 '졌다'라고 외치는 장면이 무척이나 가슴에 남았었던 만화였습니다. (주1)

 

 다시 봐도 왠지 가슴이 뭉클해오는... '아스팔트 위의 사나이' 마지막 장면

 

그래서 당시 드라마에도 상당히 기대를 많이 했었습니다만, 막상 TV로 보여지는 드라마는 내가 알던 만화와는 너무나 다른, 전혀 새로운 작품이어서 내심 실망했던 기억이 납니다. 하기사 당시 드라마 제작력으로는 사실 만화의 내용을 살리는 것이 워낙 무리였기도 했겠지요. 더 웃긴 것은 이 드라마가 당시 드라마로서는 굉장한 성공 케이스로 이름을 남기게 됐다는 겁니다. 이때부터 '아, 방송 쪽은 만화 원작이 어떻든 자체적으로 돌아가는 세계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고, 그 이후로 만화 원작의 드라마나 영화가 나온다고 해도 큰 기대를 안 하게 됐습니다. 아니 오히려 그런 쪽은 실망할 것을 피해서 안보게 됐다고 하는 게 맞겠죠. -_-a

 

 

그러다가 조금 생각이 바뀐 것이 '궁'을 통해서였습니다. 개인적으로 '궁'의 아이디어 자체가 워낙 맘에 들었던 탓도 있지만, 드라마를 봤을 때 '어, 이건 원작과 교감을 많이 했구나'라고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드라마도 당시 만화 팬들에게는 원작과 다른 부분에 대한 논란이 있었지만, 기본적인 스토리와 핵심설정 그리고 전달하고자 하는 포인트를 거스르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원작에 대한 존중을 느낄 수 있었죠.

 

그런데, 그 생각을 다시 철회하게 된 것이 강풀 만화 원작의 영화 '아파트'를 보면서였습니다. 뭐 당시에도 이미 많은 분들이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비판의 목소리도 많이 나왔던 것으로 기억합니다만, 저 역시 왜 저렇게 쓸데없는 사족 같은 설정을 굳이 구겨넣어서 작품의 힘을 스스로 잃어버리게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던, 간만에 되살렸던 기대를 배신당한 분노에 치를 떨게 했던 영화였죠. 그러면서 다시 한번 '그냥 원작대로만 만들면 안 되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고요.

 

아마 만화를 좋아하시고 만화 원작의 영화나 드라마 등을 보시는 분들은 모두 마찬가지 생각을 하시거나 해보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바람의 나라'에 대한 실망들도 그래서 나온 것들일 테고요. 그런데 정말 '그냥 원작대로 만들 순 없는 걸까'요?

 

 

 

이젠 기술이 딸려서 못 만들 내용도 아니건만... -_- 

 

지금까지 제가 방송이나 영화 쪽 공부나 일을 하는 지인들과의 대화 등을 통해서 느끼는 것은, 결국 그 원인이 이들이 원작 만화의 수준이나 양식을 받아들이지 않거나, 그에 대해서 창의적인 각색을 해야한다는 '작가적 자존심' 또는 '강박관념'에 있다는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하는 얘기가 '만화는 만화고, 드라마/영화는 드라마/영화다. 표현 양식이나 방식도 다르거니와, 만화랑 똑같이 만들 거면 굳이 드라마/영화로 만들 이유가 없다.'라는 건데, 이 말의 이면에는 결국 (저급한?) 만화의 양식이나 내용, 설정이 (수준 높은?) 드라마/영화 관객들에게는 통하지 않기 때문에 바꿔야한다는 고자세가 숨어있습니다. 좀 더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드라마/영화 만드시는 이몸님들께서 애들 장난 같은 만화 따위를 그대로 따라가야 해?'라는 거지요. 때문에 '원작과는 전혀 새로운 드라마로 재탄생했다'고 오히려 자랑스럽게 얘기하기도 하고요. (주2)

 

물론 그렇게까지 극단적이지 않은 분들도 계실 겁니다. 조금 유연한 태도를 보이시는 분들은 이런 얘기를 주로 합니다. '이미 만화로 전달된 내용을 그대로 리메이크하듯 만들면 흡인력이 떨어지고, 그러면 결과적으로 흥행에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뭔가 새로운 것을 전달해야 하기 때문에 손을 댈 수 밖에 없다.'라고요. 하지만 이 얘기도 결국 만화는 한번 보고 마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낮춰보는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아니 그럼, 케이블에서 맨날 재탕/삼탕/사오탕까지 해주는 영화나 드라마들은 매번 내용이 바뀌어서 재밌고, 비디오나 DVD는 한번 본 내용이라서 안 팔린답니까? 

 

또 하나의 좋은 핑계는사실 방송/영화계의 생리 자체가 시청률 또는 흥행에 좌우되는 '산업'이기 때문에 안전한 흥행성을 모색하게끔 하는 외압(?)도 있게 마련이고 작가적 양심이나 창의력이 밀릴 수도 있다는 겁니다. 그들에게 원작 만화를 둔다는 것은, 단순히 이미 확보된 독자를 시청자로 끌어들일 수 있다는 의미 이상이 아니고, '원소스멀티유즈'라는 그럴듯한 수식어로 홍보할 수 있는 구실에 다름 아니라는 거죠. (나참, 아예 다른 얘기를 만들면서 원소스멀티유즈가 무슨 말이랍니까. -_-a) 막상 드라마 내용은 원작을 살리는 것보다는 기존 드라마에서 성공한 공식을 따라가는 것이 드라마 팬들에게도 더 잘 먹히고 안전하다는 생각을 했을 테고요. 때문에 드라마 '바람의 나라'는 사실상 '주몽 2'로 만들어졌고, '바람의나라' 드라마 작가가 원작을 읽어보지 않았다는 얘기도 어찌 보면 자조적인 고백일 수도 있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여지껏 봤던 우리나라 만화원작 드라마 중에는 제일 나았던... (궁2가 왜 망했는지 알긴 할까)

 

원작을 존중해주길 바라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대만드라마처럼 '실사판 만화' 같은 원작 판박이 드라마를 만들어 달라는 것이 아니라, 원작이 가지는 풍미가 새로운 양식에서 얼마나 창의적으로 재창조되어서 새 생명을 얻는가를 보고 싶은 겁니다. 위에서 언급한 '궁'을 다시 한번 예로 들자면 '쓸쓸한 고궁에 활기를 넣어보자'라는 원작가의 의도가 흑백 만화 속에서 재기발랄한 십대들을 중심에 둔 현대적 왕실 이야기로 살아났고, 그것이 드라마를 통해서는 다시한번 화려한 색감과 영상미, 그리고 배우들의 살아있는 캐릭터로 재탄생했고, 아직 연재중인 원작 만화의 스토리라인을 무너뜨리지 않으면서도 짧은 방영 기간 동안 완결성있는 스토리로 마무리한 것처럼 말이죠. 진정한 드라마/영화 제작진들의 작가적 역량은 그런 데서 승부를 걸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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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이 장면을 두고 지나치게 국수적이다라는 비판도 있었다고 하지만, 미국이나 일본을 이기고 나갈 수 있다는 미래를 보여줬던 이 파격적인 장면은 당시 만화든 영화든 드라마든 현실의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언제나 비관적이거나 회색 결말로 끝나버리는 스토리가 너무나 답답했던 저에게 너무나 통쾌하고 왠지 모를 자신감을 심어줬던 최고의 장면이었습니다.

 

주2) 그런데 어쩌나... 그렇게 잘 나신 분들 손에서 나온 것들이 더 낫기는 커녕, 원작보다도 수준 이하인 경우가 많은 것을. -_- 결국은 만화 자체의 양식에서 표현된 내용을 드라마/영화식으로 소화해서 재생산해내지 못하고, 그냥 자신들에게 익숙한 공식으로만 다시 만들어내자니 뼈와 살을 다 새로 뜯어붙이는 작가적 한계를 스스로 인정하는 거지요.

 

주3) '궁' 방영 당시 썼던 이전 포스팅이 에러가 나서, 다시 옮겨옵니다.

 

만화 '궁'을 처음 봤을 때, 작가 박소희가 후기에서 쓸쓸한 궁에 활기를 넣어주고 싶었다 라고 작품 의도를 밝힌 것을 보고 '꽤 기특하다'라고 생각했었다. 그런 생각은 나만 한 것이 아니었는지 이 만화는 꽤 좋은 반응을 얻었고, 마침내 TV 드라마로까지 만들어지게 됐다.

그리고 TV드라마가 첫 방영됐을 때, 프롤로그 부분에서, 경복궁 근정전에 빛이 듦며 사람의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그 장면 - 박소희의 말처럼, '궁에 다시 생명이 주어진다면'이라는 상상이 허구로나마 재현되는 순간 - 나는 작은 감동을 느꼈고, 이 드라마를 즐겨보고 있다. (물론, 드라마 내용도 뭐... 재미있다.)

이 얘기를 다른 사람에게 하자 "역시 성균관 출신답3"이라는 대답을 듣기는 했지만... -_- 어쨌든 이 만화와 드라마가 우리가 잊고 있던. '옛 것'이며 '구습의 유물'에 불과하다고 쉽사리 치부하는 조선왕조에 대해 다시 한번 바라보고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고 있는 듯 하다.

드라마 '궁'의 원작자인 박소희 또한 초기 설정에 있어서 여러 불편하고 민감한 문제점들 때문에 많은 고민을 했다고 밝힌 바 있다. 예컨대 그는 개인적인 역량으로 황실을 왕실로 다시 재설정해야 했으나, 드라마에서는 방송국의 지원과 작가집단의 공부 때문인지 황실로 재현되고 있으며 설정도 상당히 재편했다. 그러나 상당 부분을 애매하게 넘어가는 듯한 느낌도 분명히 있는데, 거기에는 그만큼 우리가 조선 왕조와 대한제국 황실에 얽힌 문제를 외면해왔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한다.

 

 

작가적 자존심, 강박관념... 그렇구만요. 그들이 만화를 한수아래로 얕보는 건 사실인 것 같아요. 만화는 한 사람이 하는 종합예술인데 반해 드라마는 여러 사람이 만든 건데 어쩜 그렇게 원작의 십분의 일도 못 따라오는지. 그래놓고는 무슨 자존심 타령에 만화 비하입니까. 한심하구만요.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잖아요.. ㅎㅎ 자본이 모이는 산업일 수록 독창성이 발휘되기는 어려운 것도 현실은 현실이지요. 어제 바람의 나라 스페셜 편을 다운받아서 대충 드라마를 살펴봤는데, 원작이 따르고 있는 고증을 무시하고 있다는 근본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는 한계는 있지만, 드라마 자체로의 완성도는 나쁘지 않을 듯 하더군요. (주몽이나 태사기를 아예 안봤기 때문에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만 ^^;;)

솔직히 작품을 만드는 입장에서는 그 심정도 이해는 갑니다. 어찌 보면 결국 이런 스토리가 바뀌어버리는 것 자체가 만화가 표현할 수 있는 영역이 넓기 때문일 수도 있거든요. 소설이나 연극을 드라마/영화화한다면 오히려 그것을 영상화하는 작업 자체로도 충분히 새로워 보이지만, 만화는 흑백 위주의 평면인쇄물이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상상력과 결합되어 독자들의 머리 속에 형성되는 이미지 자체가 드라마나 영화가 주는 그것에 크게 뒤지지 않으니까요. 드라마나 영화로 리바이벌하는 입장에서는 영상화만으로는 차별성을 드러낼 수 있는 부분이 별로 없다는 생각에 내몰리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특히나 바람의나라 같은 섬세한 작품은 오히려 손대기가 두려울 수도 있죠. (원작에 충실하다는 바람의나라 뮤지컬도 봤는데... 무대 공연의 한계라는 것도 있지만 확실히 원작이 버겁다는 느낌이 팍팍 오죠.)


p.s : 개인적으로 캐스팅에 대한 소감을 말하자면, 해명의 이종원은 그래도 나쁘지 않은 캐스팅인 거 같고, 무휼의 송일국은 어려보이려고 노력하는 게 되려 안스러웠고 -_- 연이는... 뭐 할 말 없고요. 하지만 가장 경악스러웠던 것은, 괴유와 마로... 단지 캐스팅의 문제가 아니라 캐릭터 자체가 엄청나게 가벼운 캐릭터로 망가져버렸더군요. 아무리 조연이라지만... 불쌍 ㅡ,.ㅜ
백발마녀님 말씀에 동감...나중에 궁 한번 DVD있음 구해봐야쓰겄넹...
난 왜 자꾸 '이 양반이 누군데 요새 내 블로그에 이렇게 들락거리지?'하게 되는 걸까요. ㅋㅋ
뭬에욧! 설마 모르는 건 아니겠죠!!-_-
당신 미국에 있는 사이에 식객,타짜,바람의나라가 전부 드라마화 되었지만 볼 것은 하나도 없단, 당신은 럭키가이!!
식객은 미국 오기 전에 시작했잖아요. ㅋ
90년 엠비시 화개장터가 처음 드라마임 (박봉성 작)
아하 그렇군요. 그러고보니 기억이 나는 듯도..
바람의 나라는 주몽2탄인줄 알았다는..설마 그 바람의 나라일줄이야...
김진은 굶진 않겠어..
스페셜 방영편보니... 김진도 많이 늙었더라. ㅡ,ㅜ
뭐... 바람의 나라는 말할것도 없이 막장테크를 타고 있기 때문에 그냥 없는셈 치고 있답니다-ㅅ-;;;

한동안 제법 괜찮은 드라마들이 나오더니... 이제는 막장드라마가 너무 많이 나와서;;;;

바람의 나라... 바람의 화원... 그놈의 바람이 문제군요-ㅅ-)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