漫想綠

류운 2010. 9. 14. 08:40

 

 

 

방영중인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의 주된 배경이 되고 있는 성균관 기숙사는 '양현재(養賢齎)', 즉 '현인(현명한 사람)을 길러내는 집'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1994년 봄부터 그 이듬해 봄까지, 내가 기거했던 곳이기도 하다.

 

지금도 존속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성균관대학교에는 유학대학(유학과, 동양철학과, 한국철학과) 신입생 중에서 각 과 별로 일정 인원(아마 5명?)을 뽑아 반액 또는 전액 장학금과 함께 양현재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게 하는 제도가 있었다. 옛 성균관 유생들이 기거하며 수학했던 곳에서 생활하며 그 뜻을 이어나가라는 취지였다.

 

당시 성대는 (지금이야 삼성이 재단으로 들어와있지만) 작은 재단의 빈약한 지원으로 굴러가는 넉넉치 못한 형편의 학교였고, 학생들에게 돌아가는 복지 혜택도 적어서 장학금 규모 또한 크지 않았다. 게다가 이공계열 학과들이 모여있는 수원 율전캠퍼스에는 기숙사가 있었지만, 정작 서울 명륜캠퍼스에는 기숙사가 없었다. 때문에 한 과에서 너댓명이나 되는 인원에게 추가로 반액/전액 장학금이 주어지며 기숙사까지 제공되는 양현재의 존재는 상당히 파격적인 것이었고, 그래서 때로는 다른 학과 학생들로부터 부러움과 시기를 사기도 했다.

 

 

물론 혜택만 주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매 학기 평점이 3.5를 넘겨야 장학금이 지급됐고(전액은 4.0), 3.0을 넘어서지 못하면 다음 학기에는 그대로 퇴출이었다. (3.0~3.5 사이일 경우, 한 한기에 한해 재생 자격은 유지. 그러나 다음 학기에 3.5를 넘지 못하면 퇴재) 일단 퇴출되면 다시 양현재에 들어오기란 거의 불가능했다. 나도 1학년 1학기는 어찌어찌 턱걸이로 4.0을 받아 2학기 전액장학금을 받았지만, 2학기 성적은 미치지 못하는 통에 2학년 올라갈 때는 짐을 싸서 후문 자취방 생활을 시작해야했다.ㅋ

 

정규 학과 수업 외에 양현재생들만을 위한 성독/중국어/서예 수업을 따로 새벽과 저녁 시간에 들어야 했고, 그 또한 매 학기 출석과 시험을 봤다. 특히나 성독(경전을 소리내어 읽는 것)이나 서예 수업은 때때로 명륜당(성균관 강의실)과 비천당(과거 시험장)에서 조선시대 유생복까지 차려입고 들어야 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수업 외에도 명륜당에서 행하는 각종 정기 행사에 역시 유생 복장을 하고 참석해야 했으며, 축제 기간에는 '유희'라고 하는 과거 성균관 유생들이 하던 시사풍자극('성균관스캔들'의 원작소설인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에서는 '궐희'라고 나오던데, 여러 이름을 가진 같은 놀이인지, 비슷한 성질의 다른 것인지는 모르겠다)을 따로 준비해서 보여줘야 했다. 그리고 지방 향교나 서원을 견학하는, 좋게 말하면 수학여행 같은 것도 가야했다.  

 

내가 참여했던 94년 유희 공연 기념 사진. 드라마 덕분에 이런 것도 다 찾아 꺼내보게 되는구나 ㅎ

 

 

다른 학과의 부러움과 시기를 산다고는 하나, 생활 면에서는 사실 불편하거나 귀찮은 점이 많았다. 우선 조선 시대 사람들에 맞는 방인지라 좁은 것은 뭐 말할 필요도 없는 얘기. (당시 동기생 중에 무려 5수 끝에 들어온 멀대처럼 키 큰 형이 하나 있었는데 가로로든 세로로든 다리를 쭉 뻗고 자질 못했다. -_-) 또, 건물 자체가 일단은 문화재였고 오래된 목재 건물이었기 때문에, 화재 위험이 있다 하여 간단한 전기 시설 외에 열기구를 사용할 수가 없었다. 취사를 할 수 없으니 밥은 다들 사먹어야 했고, (그나마 아침은 학교 근처 식당을 하나 잡아서 월식을 대어먹었다.) 난방기구 사용도 못해 겨울에도 오로지 전기온돌에 의지해야했다. 혹시 모를 화재 위험 때문에 전기장판 사용도 못하게 했는데 방 앞뒤로는 창호문과 여닫이창이 뚫려있어 당연히 외풍이 심했고, 바닥은 그나마 데워지더라도 위가 추워서 앉아있을 때는 점퍼나 이불을 두르고 있어야 했다.

 

게다가 매일 아침 6시와 저녁 10시에 점호를 받아야 했으며, 점호 시간 이후에는 통금이었고 주말을 제외하면 외박도 금지였다. 물론 미리 사정을 얘기한다거나 하면 어느 정도 융통성은 있었지만. 나야 술도 안 먹고 학생회 활동을 했던 것도 아니라 크게 불편하지 않았으나, 한창 술도 먹고 각종 행사에 뛰어다녔던 친구들은 꽤나 고역이었다. 이 밖에도 여러가지 생활 상의 규칙이 있어서 그를 어기면 벌점을 받았고, 벌점이 쌓이면 역시 퇴재 대상이 됐다. (실제로 내 동기 중 한 명은 몇 차례의 무단 외박으로 학기 중간에 퇴재를 당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곤란한 것은 이 곳이 개방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평소 굳건히 닫혀있는 대성전과는 달리 양현재와 명륜당으로 통하는 길은 일반에 개방되어 있다보니 멋모르고 외부인이 드나들면서 '어, 이런 곳에 사람이 살아?'하는 호기심에 방문이나 창문을 열어보는 일이 잦았던 것. 특히 주말이 되면 유림회관에서 행하는 전통혼례식이 명륜당 앞 마당에서 행해지는지라 일반인들이 많이 오갔기 때문에 여름에도 마음 놓고 문을 열어놓을 수 없었다. 또, 어린 아이들 뿐 아니라 다 큰 어른들조차 창문 창호지에 손가락으로 구멍을 내 안을 훔쳐보는 장난도 곧잘 쳤다. 특히 안 쪽에 위치한 서재에 주로 기거하는 여학생들로서는 이런 예고없이 닥치는 무심한 장난에 학을 뗄 수 밖에 없어, 주말에는 그냥 나가 지내는 것이 차라리 나았다.

 

디카라는 게 뭔지도 모르던 시절이라... 당시 사진도 별로 없다.

이건 아침에 운동 갔다와서 잠시 방에 엎어져있을 때 같은 방 살던 형이 장난삼아 찍었던 것(인 듯? ^^;)

대충 방의 크기가 짐작이 가리라... 사진에서 보이는 게 딱 방의 절반이다.

 

 

뭐, 이제 15년도 더 지난 얘기인지라 기억도 가물가물하고 쓰다보니 투덜대는 얘기만 잔뜩 늘어놨지만... 양현재 생활은 나에게 분명 즐겁고 뿌듯한 기억이다. 워낙 혼자 놀기를 좋아하던 나에게 군대와 더불어 여러 사람과 살 부대끼며 살아야 했던 단체 생활의 좋은 경험이기도 했고, 공부도 사실 꽤 재미있었다. 춥고 졸린 새벽에 독경은 꽤 힘들었지만, 중국어나 서예 수업은 지금 생각해도 참 즐겁게 들었더랬다. 계속하지 못한 것이 아쉬울 정도로. 아마 나 이외에도 양현재를 거쳐갔던 사람들 또한 각자 나름의 사연은 다를지언정 분명 비슷한 뿌듯함을 지니고 있으리라.  

 

 

 

p.s.1. 원래는 이런 인연으로 '성균관스캔들'을 각별한 감정으로 보게 됐다는 얘기로 시작해 원작 소설보다 더 나은 드라마가 살짝 기대된다는 얘기를 하려고 했는데... 어쩌다 보니 옛날 얘기만 주절대고 말았다. -_- 원래 쓰려던 얘기까지 이어서 쓰려면 너무 길어질 듯 하니 그 얘기는 내일 방영분까지 보고 써보련다.

 

그러고 보니 지금 드라마에서 선준과 윤식(윤희), 재신이 지내는 방이 동재 중2방이라는데, 사실 양현재에는 각 방마다 '박학'이니 '신독'이니, 유학 경전의 단어에서 따온 방 이름이 붙어있어서 (그것이 정조 시대에는 그런 식의 번호를 썼다가 나중에 방 이름이 붙은 것인지, 아니면 미처 고증이 안된 것인지는 모르겠다) 확실치도 않은데다, 내 기억도 가물가물하지만... 얼추 방 순서와 위치를 꼽아보면 어쩌면 내가 지냈던 동재 그 방이 지금 그들이 지내는 방일지도 모르겠다. ㅋ (뭐, 어차피 아무리 봐도 화면에 보이는 방은 지나치게 깨끗한 것이 세트이거나 아니면 어디 지방 향교에서 촬영한 것일 듯 하지만...^^;)

 

 

p.s.2. 글 마무리하려다 방 이름 때문에 양현재를 검색해보니 05년도에 양현재생들이 퇴거당하는 일이 있었구나. 그것이 문화재 무단 사용이었다고? -_-a 50년 동안이나?? 거 참... 하여간 그런 사연으로 지금은 기숙사 생활도 하지 않는 듯, 장학 제도는 아직 남아있는 모양이지만... 아쉽다. 뭔가 해결 방안은 없는 것인가. 사람이 살지 않으면 건물도 기운을 잃고 금새 죽어버리는데. 내가 예전에 만화 '궁'의 작가 박소희가 '궁에 숨결을 불어넣고 싶었다'고 했던 얘기를 그리 반갑고 고마워했던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고. 이따가 도장 가는 길에 한 번 발길이나 해봐야겠다.

 

 

저 사진 속에 제가 있네요. 저도 94년에 양현재에 살았었지요... 뉘신지 반갑습니다.
앗, 반갑습니다. ^^ 저는 유학과 94학번 김기태입니다.
(사진 속에선 가운데에서 약간 벗어나 왼손을 높이 들고 있는 흰 도포에 안경 쓴 인물입니다.)

어제 말난 김에 학교에 한 번 가봤는데, 양현재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게 됐더군요. 주말 결혼식 때나 가능한 듯...
명륜당이 그저 야외 결혼식장이 되어버렸다는 게 좀 씁쓸하네요... ㅡㅜ
전 한국철학과 93학번이에요. 맨 앞줄 중앙에서 약간 왼 편, 위를 쳐다보고있는 안경쓴 여학생이 저랍니다. 하나로 머리묶고 있는... 전 저 사진 잃어버렸는데 여기서 보니까 너무 반갑네요. 옛 생각도 나고... 전공과는 사뭇 다른 길을 가고계신 듯 한데 무슨 일을 하든 건승하시길 바랍니다.
앗, 왠지 그럴 거 같았어요. ^^ 이름이 기억날 듯 말 듯... 승연 누나셨나? 잘 지내시죠? 항상 건강하세요 ^^
헐, 이런 아름다운 추억이 ㅎㅎㅎ
근데 사진에서 류운님은 찾아보기가 어렵군요...ㅎㅎㅎ
흰옷을 입으신 것 같기도 하고 아닌거 같기도 하고...-0-
아름답기까지야.. -_-
진짜 성균관 유생의 후예시군요..ㅎㅎ
내 공맹의 도를 따르는 자로서 어찌 바르게 살지 않을 수 있으리오 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