漫想綠

류운 2010. 11. 7. 17:33

대학 시절 동아리 후배와 대화를 하다가 좀 당황했던 경험이 있다. 그 후배는 평소 대화에서 "좆나", "개새끼" 등의 표현을 곧잘 쓰는 편이었는데, 그 후배가 좀 어이없는 실수를 한 얘기를 듣고 별 생각없이 장난스레 "븅~신 ㅋㅋ"라고 했더니 깜짝 놀라면서 나더러 어떻게 사람한테 병신이라고 하느냐, 어찌 그리 심한 욕을 할 수 있냐는 거다.

 

내 기준에선 그 후배가 쓰는 "좆나"라든지 "개새끼"야말로 심한 욕이고, "병신"은 욕으로도 쓰이는 말이기는 하나 엄밀히 따지면 욕도 아닌 말인데 그런 반응을 접하니 무척 당혹스러웠다. 그래서 "너는 더 심한 욕도 자주 쓰면서 왜 그러냐"라고 했더니, 그 후배는 오히려 "좆나"나 "개새끼"는 많이들 편하게 쓰는 표현이지만, "병신"은 그렇지 않으니 더 심한 욕이라고 하는 것이었다. 후배의 말도 일리는 있다고 생각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병신"이 "개새끼"보다 심한 욕이라고는 인정하기가 어려웠다. 뭐, 어차피 욕이라는 점에선 오십보 백보지만. -_-

 

 

최근에는 무분별하고 잘못된 높임말 표현에 대한 의견이 분분한 것으로 안다. 주로 서비스업계에서 고객 응대를 하면서 "하실 수 없으십니다" 처럼 "~시"를 남발하다 못해 "~한 상품이십니다", "~한 혜택이 나가십니다" 등 높일 수 없는 객체마저 높이는 표현들이 많아진 탓이다. 나도 가끔씩 이런 지극하기가 지나쳐 잘못된 높임말을 들을 때마다 바로잡아주고 싶은 충동이 치솟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일부에서는 경우에 따라 -특히 어쩔 수 없이 불가/거절의 의사 표현을 할 때- 상대의 기분을 거슬리지 않기 위해서 어느 정도 용인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이 상품은 환불이 안 되십니다" 같은 것이다. 바른 표현이야 "이 상품은 환불이 안 됩니다"이겠지만 "안 되십니다"라고 하는 편이 대화를 부드럽게 풀 수 있다는 얘기다. 또 어차피 이런 표현이 그 객체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듣는 사람을 높인다는 것은 다들 알고 있고, 필요에 의해서 이미 사회적으로 이런 표현이 통용되고 있으니 충분히 언어의 용법도 바뀔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이른 바 언어의 사회성이나 상대성을 인정하자는 것.

 

 

그러나 대체할 수 있는 표현이 없는 것도 아니고, 그로 인해 본래 언어가 가지고 있던 다양한 표현과 의미가 오히려 줄어든다면, 단지 그것이 많이 쓰인다는 이유만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문제가 있지 않을까?

 

예를 들어 위 문장도 "이 상품은 환불 가능한 제품이 아니라서, 환불을 해드릴 수가 없습니다 / 환불 받으실 수가 없습니다.", "이 상품은 환불 받으실 수 있는 제품이 아닙니다." 등으로 좀 더 풀어서 쓸 수 있을 것이고, 필요하다면 "실망시켜드려서 죄송합니다", "기대에 부응해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등의 첨언을 통해 보다 정중하고 성의 있는 느낌을 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약간의 수고가 귀찮아서 저런 표현을 쓰자고 하는 것이라면 업무편의주의에 지나지 않는, 오히려 제대로 된 서비스 정신이 부족한 결과라고 봐야하지 않을까.

 

 

사진_ KBS 고민정 아나운서 트위터 @kbsminjung

 

 

아마 위에 대안으로 제시된 문장이 왠지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느끼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내가 정말로 걱정하는 문제는 여기에 있다. 저런 변형된 표현들 때문에 오히려 경우에 바른 표현인데도, 경우에 어긋나거나 잘못된 표현으로 받아들여짐으로써 멀쩡한 언어 양식이 파괴되는 것이다.

 

어제 우연히 트위터에서 "11/11~12 G20정상회의 개최, 승용차 이용을 하지 맙시다."라는 도로 전광판 문구에 대해 어떤 분과 얘기를 나누게 됐는데, 그 분은 저 표현이 명령으로 받아들여졌다고 한다. 그래서 국민에게 협조를 구하는 일에 "하지 맙시다"라는 표현을 쓴 것이 무척 불쾌했다는 것이다. 그에 대해 나는 기본적으로 "~ㅂ시다"라는 말은 명령이나 지시가 아니라 권유나 제안을 뜻하는 어미이니 경우에 어긋난 표현이 아니라고 했다. "음식을 남기지 맙시다", "밥 먹으러 갑시다" 같은 말들이 명령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으니 말이다.

 

물론 '~ㅂ시다'는 엄밀히 따져 '하오체' 즉 예사높임말이긴 하다. 따라서 자기와 대등한 관계 또는 낮춰 불러도 좋은 대상에게 쓸 수 있는 말이고, 자기보다 윗사람에게 쓸 경우 자칫 예의에 어긋날 수 있다. 이 경우 정부와 국민이 어떤 관계에 있느냐가 다시 쟁점이 될 수 있겠지만, 어쨌든 '~ㅂ시다' 자체는 이미 어법/문법 상으로 격식을 갖춘 표현으로 인정을 받기도 하는 충분히 정중한 표현이지, 명령이나 지시를 의미한다고는 볼 수 없을 것이다.

 

[어미] (받침 없는 동사 어간, ‘ㄹ’ 받침인 동사 어간 또는 어미 ‘―으시―’ 뒤에 붙어) 하오할 자리에 쓰여, 어떤 행동을 함께 하자는 뜻을 나타내는 종결 어미.
(출처 : 다음 국어사전_두산 제공)

 

* V(으)ㅂ 시다.

청유형 종결어미. 동사 뒤에서 결합되며 격식을 갖춘 표현형태.

(출처 : 연변과학기술대학 한국어과 '기초 한국어 어법 : 어미 정리')

 

그럼 도대체 왜 그 분은 "하지 맙시다"를 명령으로 받아들였을까. 그 분 개인적으로는 불법적인 일이 아닌 경우에 "하지 맙시다"를 사용한 것은 처음 봤다고 했다. 확실히 "~하지 맙시다"라고 하면 "새치기 하지 맙시다", "에스컬레이터에서는 뛰지 맙시다" 등 설령 불법까지는 아니더라도 도덕적/규범적 제한 표현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위에서 예로 든 "음식을 남기지 맙시다"처럼 불법이 아닌 경우도 분명히 많고, 또 아무리 그렇다 해도 역시 '명령'으로까지 받아들이기엔 좀 설득력이 약하지 않나.

 

그런데 거기서 그 분이 전광판 문구에 대해 쓴 "정중하게 부탁하면 한 번 생각해보는 거지, 어디서 이래라 저래라 명령이야."라는 구절에 다시 한 번 눈이 갔다. 그리고는 문득 '요즘 하도 지극하게 높여주는 (저 분 표현을 빌리면'정중하게 부탁하는') 표현들에 익숙해지다 보니 "~합시다/하지 맙시다" 같은 예사높임말 정도는 오히려 일방적이고 강한 느낌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같은 문장에 대해 "자제해주시기 바랍니다"라고 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소통을 아쉬워 하는 분들도 있었다.

 

그런데 "(우리) ~합시다"보다 "(당신) ~해주시기 바랍니다"가 더 경우에 바르고 소통에 어울리는 표현일까? 사실 "~해주시기 바랍니다"는 정중한 부탁이기는 하지만 의미 상으로는 명백한 요구의 표현이다. "승용차 이용을 자제해주시기 바랍니다"라고 했으면 '당신이(만) 승용차를 안 탔으면 좋겠어'라는 뜻이고 자기가 승용차를 탈 지 아닐 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결코 '우리'를 포함할 수는 없는 '일방적인' 표현인 것이다. 하지만 "~합시다"는 우리 다 같이 하자는 제안이자 권유다. 경우에 따라 "거 좀 조용히 합시다" 처럼 실제로는 '조용히 하라'는 지시 의미로 쓰일 수도 있지만, 오히려 그 말이야말로 '나 또한 조용히 하겠다, 서로 조용히 하자'라는 완곡한 설득의 표현인 셈이다.

 

 

이처럼 우리가 지나친 존대법에 익숙해지다 보니, 틀리거나 경우에 어긋나지 않았는데도 단지 직설적이라서 건방진 표현이 되는 말들이 생기기에 이른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런 분위기가 점점 팽배해지면 짧고 간결하게 할 수 있는 바른 표현은 쓰기 어려워지면서, 오히려 쓸데없이 문장이 길어지고 돌려 말해야 하는 왜곡된 언어 낭비 현상이 발생한다.

 

이와 비슷한 예가 군대에서 쓰이는 "~말입니다"다. "그렇습니다", "아닙니다"는 지극히 정상적이고 '합쇼'체에 해당하는 아주높임의 표현임에도 괜히 말이 짧은 것이 건방지게 들릴까봐 "그렇지 말입니다", "아니지 말입니다"처럼 요상하게 늘려 쓰고, "해주십시오" 또한 충분히 정중한 표현인데도 마지막 발음이 '요'에 가깝다는 이유만으로 "해주시지 말입니다" 라는 족보 없는 표현으로 대체되는 경우 등이다.

 

(더 웃기는 것은 흔히 군대에서는 "다/나/까" 외에 "요"를 써서는 안 된다고들 하지만, 실제로 그런 생활 규정은 없다는 사실이다. -_- 국방부에서 제작하는 군홍보 영상 등을 보면 오히려 "~요"나 "~죠"를 자연스럽게 구사하고 있다. 결국 올바른 표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황에서 일단 "다/나/까"로만 말을 끝내면 아주높임말로 들린다는 이유로 일부 현장에서 잘못된 언어 양식을 편의상 적용한 것이 그대로 퍼진 결과로 보인다.)

 

이와 같은 현상이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그러십니다", "아니십니다" 같은 잘못된 표현과, 틀린 표현은 아니지만 요청이나 부탁의 표현인 "해주시기 바랍니다"가 권유나 제안에 쓰이는 "합시다"를 대체하며 우리 말의 다양한 표현과 의미를 축소시키면서 "-ㅂ시다"는 명령/지시 또는 건방진 표현으로 잘못 이해되는 식으로 드러나고 있다면? 또, 그로 인해 "환불 받으실 수 없습니다"처럼 충분히 정중한 표현도 오히려 "환불이 안되십니다" 같은 잘못된 표현에 밀려나고 있다면, 과연 이것이 단지 지금 편하게 통용되고 있다고 해서 그대로 받아들일 만한 일인가?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내게는 '개새끼'와 '좆나'가 아무리 가볍게 쓰여도 '병신'보다는 심한 욕인 것처럼 말이다.

 

 

 

: 나도 "승용차 이용을 하지 맙시다"라는 문장이 좋은 표현이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일단 직접적인 부정문을 사용한 표현이 읽는 사람에게 거부감을 줄 수 있다. 기본적으로 사람은 자신의 자유를 제한하려는 것에 대해서 거부감과 방어 심리를 가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승용차 이용을 자제합시다" 역시 긍정문을 사용해 살짝 완곡해진 문장이긴 하지만, 그다지 좋은 문장은 아니다. 예컨대 "음식을 남기지 맙시다"에서 '음식을 남긴다'는 행위는 누구나 그리 좋은 일은 아니라고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다. 따라서 그것을 하지 말자는 것은 부정문을 사용해도 논리적인 충돌 없이 쉽게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 그러나 '승용차를 타는 것'은 딱히 안 좋을 이유가 없다. 따라서 '승용차를 타지 맙시다'는 설령 '자제합시다'로 문장을 바꿔도 일단 '내가 왜?'라는 반문이 나오게 된다. G20 기간에 좀 더 신경써달라는 내용임을 감안해도 이미 '음식물 쓰레기'로 대표되는 정부 및 행정기관들의 우매한 G20 관련 전시행정 전례들이 거부감을 키워놓은 상태였고.

 

따라서 이 경우는 "대중교통을 이용합시다", "대중교통 이용에 동참합시다"처럼 아예 대상 자체를 긍정적인 쪽으로 바꾸는 게 최선이 아닐었을까. 어차피 승용차 이용 자제를 통해 유도하고자 했던 결과가 대중교통 이용이라면 메시지 전달이라는 면에 있어서도 훨씬 효과적일 것이고 말이다. (뭐, 애초에 "일단 차만 끌고 나오지 말아 봐"라는 의미였으면 할 말 없는 거고... -_-)a

 

 

덧2 : 생각해보니... 내가 운전을 안 해서 저 말이 그리 민감하게 다가오지 않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싶기도 하네. -_-a

 

 

 

 

'하지 맙시다'는 '하지 말자'의 정중한 표현이라고 해도, 저건 부적절한 표현같아 보이더군요. 저 모습이 마치 학교에 장학사가 올 때 급하게 청소를 하는 마냥 행동하는 걸로 보이니까요. 세계 정상급 인물이 국가를 방문하니 국가의 체면을 좀 더 높이려는 의도는 괜찮지만, 급한 불만 끄려는 의도가 다분히 보이더군요.
만약 저 말이 승용차 이용을 자제해 달라는 간곡한 표현이었다면, 그에 따른 대중교통 수는 좀 늘렸는지 모르겠습니다. 들리는 바로는 해당 날짜에 출근 시간을 10시로 미룬다는 말이 있지만.
출퇴근 시간 대중교통 편을 추가로 배차한다는 뉴스를 아침에 봤습니다. 작금의 정부와 행정기관들이 소통과 설득의 기술이 한참 부족한 것은 저도 공감합니다. ^^; 승용차 없는 날이니 자율적 2부제니 하는 것이 유치한 전시행정의 일환인 것도 분명하고요.. 그런 것들에 대한 심리적 저항감으로 틀리지 않은 표현까지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게 하고 있는 것이 저들의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사실 말이란 아 다르고 어 다른 것이기도 하지만, 같은 말을 해도 미운 놈이 있고 고운 놈이 있는 법이기도 하니까요. ^^;;
글은 잘 읽고 공감 끄덕끄덕하다가 태그를 순서대로 읽더가 빵터져버렸습니다 ㅋㅋㅋㅋㅋ
잘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