漫想綠

류운 2011. 6. 21. 02:10

'안녕하세요'에 거절못하는 성격 때문에 온갖 불편과 피해를 본다는 여자가 나왔다. 할머니 상중이나 교통사고가 났는데도 정해진 약속이라 링거 꽂고 피 흘리면서 성당 반주하러 나가고, 종교인이나 호객 행위에 다 걸려들어 돈까지 갖다바치고, 남친이 3번이나 바람 핀 걸 알면서도 대충 미안하다고만 하면 넘어가는 성격 때문에 보다 못한 친한 동생이 고민이라고 데리고 나온 것.

 

이런 사람들한테 이유를 물어보면 백이면 백 '남 불편하게 하고 욕 먹느니 내가 불편한 게 낫다'라고 답한다. 얼핏 배려심 돋는 천사표 같지만, 이거 실상은 지독하게 이기적인 말이다. 결국 '나는 나쁜 사람 되기 싫다. 나는 (모르는 사람한테) 욕 먹기 싫다.'는 거거든. 그렇게 욕먹기 싫고 남 불편하게 하기 싫은 사람이, 정작 진짜 자기 때문에 늘 불편을 감수하고 갑갑해하면서도 진심으로 걱정하는 주변 사람들이 '제발 좀 독해지라'는 간곡한 부탁은 왜 쇠고집처럼 안들어처먹는 걸까?

 

결과적으로 거절해도 자기를 진심으로 욕하지는 않을 상대, 즉 자기가 나쁜 사람이나 적이 될 걱정이 없는 상대에게는 얼마든지 거절할 수 있다는 거다. 그래서 오히려 모르는타인이나 경쟁/적대 관계에 있는 사람의 시선과 반응에 더 신경을 쓰는 거고. 그러다 보면 정말 자기를 아끼고 자기도 아껴야 할 사람들은 만만하게 보고, 선을 그어야 할 사람들에게 오히려 쩔쩔매며 매달리는 꼴이 된다. 이게 얼마나 이기적이면서도 허황되고 모순 돋는 욕심이냐고.

 

게다가 그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사실은 현명하게 욕 안먹게 거절할 재주도 없고, 설령 욕을 먹어도 걔가 찌질한 거지 나는 당당하다고 할 수 있는 자신감도 없다는 거잖아. 그러고도 -진짜 최악인 게 이 부분인데, 그렇게 해서 피해를 보는 자신을 보며 '역시 난 착해( = 불편하기도 하고 화도 나지만 나쁜 건 내가 아니니까 됐어). 난 이렇게 착한데 세상은 왜 이리 못됐을까.'라고 자위한다는 거. 이건 정말 못난('못된'이 아닌 '못난') 심뽀 중에서도 갑 중의 갑이다. 자신감 결여 + 이기적 욕심이 낳은 궁극의 인지부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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