漫想綠

류운 1999. 10. 4. 00:38
음, 오늘은 진짜 제 "취미"를 말씀드리지요. 사실 제가 이 칼럼의 분류를 "취미"로 정한 것은... 좀 우습달까 미련했달까...-_-

일단 성격은 "삶을 즐기는 이런저런 방식"에 대한 걸로 정했는데, 마땅한 분류가 없는거예요. 고심 끝에... '삶을 즐기는 방식'이란 곧 취미와 일맥상통하지 않는가(비록 글의 성격은 꽤 틀리지만)라고 반억지식 논리로 자위하며 분류를 취미로 올렸지요. 헌데... 나중에 영임님 칼럼에 들어가보니... 이런! "생활"이라는 정말 잘 어울리는 분류가 있었구나 싶더라구요. 그때도 못보고 지나친건 아니었지만, 그땐 그냥 생각에 별로 어울리지 않는다고 느꼈나봐요... 흐흐. 하여간 전 분류가 이상해서 독자들이 안 들어오는거라고 한동안 저의 무능에 대한 핑계로 삼았었답니다. ^-^;;

에구, 쓸데없는 내용이 너무 길었나? 그럼 본격적인 얘기로 들어가서, 저의 공식적이고 대외적인 취미의 일순위는 뭐니뭐니 해도 "만화"입니다.

제가 만화와 뗄래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된데에는 천부적인 환경의 요인이 컸습니다. 어렸을 적 우리 집 바로 앞에는 아버지 친구분이 하시는 만화가게가 있었답니다!! 덕분에 공짜로 만화를 볼 수 있었던 저는 한글을 깨치기 시작했던 너댓살 무렵부터 만화 맘껏 보고 자라왔던거죠. 그래서 지금도 내 또래들 내지 몇년 선배들도 잘 모르는, 옛날만화들을 기억하고 있기도 합니다. 가끔 TV에서 6, 70년대에 인기있었던 만화들을 소개해주거나 한국현대만화사를 다룬 자료를 볼 때면 제가 그 시절 보았던 만화들이 많아서 기분이 묘해지곤 하지요. 세월을 거꾸로 산 기분이랄까, 시간을 번 기분이랄까..^^

하여간 그렇게 아무 거리낌없이 만화를 보러다녔던 저는 집에 있는 시간보다 만화가게에 있는 시간이 더 많을 지경이어서 급기야는 만화가게 갔다 집에 들어왔다가 어머니에게 호되게 꾸중을 듣고 집에서 쫓겨나기도 했지요.물론 어머닌 일종의 시위효과를 노리신거겠지만, 그 어린 나이의 꼬마가 그런 깊은 뜻을 알리가 있나요. 집에는 못 들어가니 갈데라곤 만화가게 밖에 없어서... 훌쩍이며 또다시 만화가게로 가지 않았겠어요?!^^ 나중에 어머니가 찾으러 오셔서는 어이도 없거니와 그 친구분께 미안하기도 하셨는지 그냥 데리고 가시더라구요.

그렇게 집에 쫓겨나길 몇번이던 어린 시절은 그 아버지 친구분이 업종을 당구장으로 전업하시면서 막을 내렸습니다.(이 분을 늘상 이런 업종만을 고르시더군요. 나중엔 또 전자오락실을 차리셨지요^-^) 그러나 이미 제 사고체계는 만화적으로 돌아가기 시작했고, 또 나름대로 그림에 약간의 재능이 있었던 저의 교과서나 공책 귀퉁이는 언제나 제가 그린 낙서들로 가득했답니다.

그리고 고2가 되었습니다. 저는 수학이나 과학이 싫어서 문과를 선택했지만, 남학교는 상대적으로 문과가 많지 않게 마련이지요. 그래서 반 수도 4반, 인원도 한 반에 40명 정도였답니다. 그런데, 저의 반이 엄청난 곳이었습니다. 그 40명의 친구들 중에 무려 열명에 가까운 인원이 만화를 그리는 녀석들이었던 것이었습니다!! 만화 보길 좋아하는 녀석들까지 치면 절반 이상을 차지했던 우리 반은 일년 내 자습 시간이면 교실에 만화책이나 애니메이션 비디오테잎이 돌지 않은 적이 없었답니다.

이때 저는 한 친구를 통해 순정만화를 본격적으로 보기 시작했고, 또 한 친구를 통해 그제껏 그냥 재미로만 그렸던 만화를 전문적으로 그려볼 마음을 먹게 되었죠. 사실 그전의 저는 소설을 써보려는 마음에 더 주력을 했었거든요.(지금의 글솜씨가 다 중 고등학교 때 만들어졌지요. 변변친 않지만...^^) 말하자면 고2 때가 저에겐 일종의 인생의 한 전환기가 된 셈이지요. 사실 굳이 그것이 아니더라도 처음으로 자신의 진로의 갈림길에 서게 되는 시기가 고2가 아닙니까. 마침 또 시운이 맞아떨어진거죠.

그리고, 또 하나의 전환점이 5년전 찾아왔습니다. 대학 입학과 동시에(정확히는 합격자 발표일에) 가입한 동아리 "漫화방" 사람도 별로 없고, 더더군다나 그림이 변변한 사람도 없는데다 그저 성격들이 좋아서 붙어지내는 사람들의 모임이었던 이 동아리가 이후 제 생활의 70% 이상을 차지하리라곤 생각도 못했지요. 한때는 제 생활의 전부였던 적도 있었구요.
당시 분위기가 그러긴 했다고 쳐도 괜히 "빨갱이"(^_^) 냄새가 나는(순전히 내 개인적인 편견이라고 보긴 힘들어도) 이상하고 재미없는 내용의 선배들의 만화가 사실은 자기 삶의 투영이요 고민이었다는걸 어렴풋이 눈치채게 되고, 세상의 만화란 정말 여러가지이며, 만화라는 매체 자체가 담아낼 수 있는 내용이나 형식의 방대한 가능성도 엄청나다는 사실을 이 동아리를 통해 알게 되었죠. 더불어 "사람과 지내는 방법"이라는 큰 '덤'(?)까지도.

어라라, 한참을 신나게 쓰다보니... 원래 제가 좋아하는 만화라든가, 만화의 성격 따윌 쓰려던 생각관 달리... 저의 만화 인생사를 써버린 꼴이 되어버렸군요. 허허, 이거참.

머, 그만큼 저를 정신없게 만들 만큼 매력적인 것이 만화라는 얘기로 이해해 주시구요. 다음에 바로 이어서 진짜 만화를 통해 삶을 즐기는 방법을 올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