漫想綠

류운 1999. 10. 7. 00:41
제가 지난 칼럼 마지막에 이렇게 예고를 했군요. 음, 어째 좀 불안한데... 예고가 너무 거창하지 않았나 싶은 것이. ^-^;

뭐, 사실 만화는 즐기며 보기에 딱 좋은 매체죠. 시간과 장소에 구애를 받기를 하나, 빌려보는데 돈이 많이 들기를 하나, 이해하기가 어렵길 하나... 간단하게 생각해 봐도 만화를 보기만 하면 너무나 쉬 즐거울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제가 얘기하고 싶은 것은 만화를 보고 있는 동안에만 느낄 수 있는 그런 수동적이고 순간적인 즐거움이 아니라, 만화라는 대상 자체를 좀 더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즐기는 방법입니다.

첫번째 칼럼에서였던가요, 남들이 술도 안 마시고, 담배도 안 피고, 당구나 게임같은 것도 즐기지 않는 절더러 무슨 재미로 사느냐라고 물을 때면 제가 뭐 대신엔 뭐하고라는 식으로 대답한다고 했었지요. (직접 확인하세요 - 어떻게든 칼럼을 한번이라도 더 읽히려는 잔머리...^^) 사실 그 대답의 처음 형태는 원래 전부 만화에 관련된 것이었습니다. 술마시는 대신 만화 보기에 취하고, 담배피며 한숨 돌리는 대신 그림이나 스토리 상상하며 쉬고, 당구나 게임하는 대신 만화그리면서 재미를 느끼고... 라는 식이었지요.

말하자면, 우선 만화 보기를 예로 들어볼까요. 흔히 만화(비단 만화만이 아니라 어떤 서사체든지)를 가장 재미있게 보려면 그 얘기 속에 몰입해서 주인공이 된 듯한 기분으로 보라고들 하겠지요. 그러나 이렇게 해서는 만화의 재미를 반 밖에 못 느낀다고 감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진짜 만화를 재미있게 보려면, 우선 처음엔 그렇게 푹 빠져서 보고 아주 객관적이고 분석적인 자세로 다시 한번 그 만화를 "씹어" 보아야 합니다. 세세한 그림 하나하나에서부터 대사라든가, 인물의 표정, 연출, 구도 등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곱씹으며 만화를 보면 뭔가 새로운 것이 눈에 들어오고, 한번에 못 느꼈던 무언가를 알게 되면서 그 만화에 더욱더 친숙하게 되지요.

그 이유는 만화가 다른 매체와는 달리 작가의 상황이나 의도를 작품과 더불어 동시에 독자에게 전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좀 학술적이고 재미없는 얘기로 흘러갈 듯 해서 더 긴 얘긴 하지 않겠습니다만, 간단하게나마 언급을 하자면 만화 자체의 내용관 관계없이 그 속에서 작가가 독자에게 따로 얘기하는 이야기가 있단 얘기죠. 가끔씩은 작가 자신의 캐릭터로 독자에게 직접 표현하기도 하지만, 교묘한 장치로 숨겨 놓기도 하는데, 그걸 찾아내는 재미와 그럼으로써 작가에게 한걸음 더 가까워지는 기분을 느낄 수 있는 것이지요.

그리고 공상하기란 음... 저처럼 만화를 그리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창작물을 구상하는 것도 좋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만화를 보는 것만 해도 충분히 공상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많이들 하는 방법이죠. 특히 연재 만화 다음 편을 보려고 할 때 상당히 유용한 방법인데, 보는 것을 최대한 미루고(굳이 미룰 필욘 없지만) 그 내용을 마구 마구 상상해보는 겁니다. 이건 비현실적이야라든가, 이건 그 작가의 방식이 아냐라는 식으로 생각에 제한을 두지 않고 끊임없이 생각나는대로 연상을 이어나가는거지요. 진짜 재미있습니다. ^o^

영임님이 만화에서 벗어나 공부하는 법을 좀 가르쳐달라고 하셨지요... 그러나 저는 공부도 만화를 통해서 하는걸요...-_- 왜 흔히들 그런 얘기 많이 하잖아요, "베르사이유의 장미"나 "테르미도르"를 통해 프랑스 혁명을, "북해의 별"을 통해 유럽의 역사를, "굳바이 미스터 블랙"을 통해 남북전쟁을 교과서보다도 더 쉽게 배우게 되었다고. 뭐, 저는 역사 쪽은 이러니 저러니 해도 약해서 그런 도움은 잘 못받아봤지만, 제 전공인 유교철학이나 요즘 배우고 있는 커뮤니케이션 이론 따위를 만화의 캐릭터와 사건, 연출 방식 등을 통해 다시금 제 식으로 정리를 하곤 하지요. "실전에선 이렇게 쓰이는거로군"이라는 식이랄까? 성리학이 주를 이루는 한국의 만화와 양명학이 사상의 바탕이 되는 일본 만화의 캐릭터들의 도덕성이나 이상적 성격 등에 대한 비교라든가, 만화라는 매체의 독특한 표현 양식은 독자에게 무엇을 어떻게 전달하기 위해 발생했을까 하는 따위죠.

영임님도 "홍차왕자"나 "미스터 초밥왕", "아빠는 요리사", "맛의 달인" 등을 통해 영임님의 요리에 대한 지식을 늘려 가기도 하고, 이미 가지고 있던 지식과 조합 변용하기도 하면서 진짜 영임님 자신의 것으로 만들지 않습니까. 그것이 곧 공부 아니겠어요?

특히 요즘은 만화의 소재가 워낙에 다양화되어 있어서, 사실상 어떤 새로운 취미나 가벼운 공부를 시작하는데 있어서는 관련 소재의 만화를 한번 읽어보는 것이 꽤 크게 작용을 할 거라고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만화를 그리는 것인데요, 만화를 그리는 것이 전문적인 작업이어서 다른 세계의 이야기처럼 들리실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특히 제 칼럼의 독자분들은 모두 여자 분들이신데, 아마도 간단하고 귀여운 꼬마 그림 하나 정도는 다들 그리실 수 있을 거에요. 그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물론 잡지에 실리거나 책으로 나오는 만화들은 휠씬 많은 정성과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탄생되곤 합니다. 하지만, 즐기기 위한 만화 그리기는 그런 것을 필요로 하지 않죠.

말했다시피 그런 간단한 그림만 그릴 수 있으면 됩니다. 기왕이면 팔, 다리, 몸통 비슷하게 보이는걸 붙여주면(?) 더 좋겠죠. 다시 한번 말하거니와 잘 그리려고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냥 어린 시절 담벼락에 낙서하던 동그라미와 작대기로만 이루어진 그림(일명 철사인간이라고 하죠)이면 충분하죠. 만화는 "아이콘(상징기호)"의 예술입니다. 그거로구나 하고 알아볼 수만 있으면 됩니다. 더군다나 자기 혼자 즐기기 위한 만화라면 더더욱...
그렇게 사람 하나를 그리고, 또 하나를 그리고 말풍선(만화에서 사람의 대사를 넣는 동그란 칸)을 그리고 그 안에 뭔가 대사를 집어넣는 것만으로 훌륭한 한 컷의 만화가 그려지는군요.
만화를 그리며 대상을 표현하고,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그런 작업을 통해 우리는 손쉽게 창조의 즐거움을 느낌과 더불어 우뇌까지 발달시킬 수 있는 셈이죠. 종이와 연필(필요하면 지우개까지)만 있으면 되는 셈이니 돈도 거의 들지 않는다고 봐도 무방할 겁니다.


자, 이렇게 만화를 통해 삶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제 나름대로 쭈욱 늘어놓아 보았습니다. ...음, 글 전체의 흐름을 보면서 써나갈 수가 없어서 흐름이 뒤죽박죽인 내용이 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 워낙 졸리기도 하고...-_- 여러분이 만화를 좀더 재미있게 볼 수 있기를 바랬는데 도움이 될 지 모르겠군요. 언젠가 다시 만화에 대한 글을 쓰게 되면 재미있는 만화를 고르는 법같은 구체적인 실전용(^^?) 테크닉을 올려보겠습니다.

다음 글은 아마 다른 내용이 될 듯 하구요, 더불어 다음주 토요일 쯤에나 올리게 될 모양입니다. 동아리 회지 원고 마감에 중간고사 기간까지 겹친지라... 그럼 여러분, 이 글 읽으시면서 재밌게 지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