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장난하니 2009. 4. 13. 03:19
<link rel="stylesheet" href="http://editor.daum.net/services/blog/css/contents4view.css?ver=1.1.114" type="text/css"/><link rel="stylesheet" href="http://editor.daum.net/services/blog/css/theme4view.css?ver=1.1.114" type="text/css"/>

클래식(Classic)이라 불리우는 고전음악의 세계

 

클래식 음악을 공부하시는군요

 

새로운 음악들에 대한 창조작업은 그레고리안 성가에서 시작하여 아르스노바의 시대, 르네상스 시대, 바로크 시대, 그리고 고전주의 시대, 낭만주의 시대를 이어 현대에 이른다고 할 것이다. 음악공부를 한다고 소개하면 누구나가 “클래식 음악을 공부 하시는군요.” 라고 말한다.
음악공부라는 것은 위에 서술했던 각 시기의 음악의 요소를 다 공부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인들은 음악을 서양음악 즉 클래식 음악이라 하고 다른 장르로는 대중음악과 국악을 생각한다. 다시 말해서 음악학도는 르네상스 음악도 공부하고 바로크도 공부하는데 남들은 그를 향해 클래식음악을 공부한다고 하는 것이다. 왜 그런 합당치 않은 말이 생겨났을까? 그 이유는 이러하다.
그것은 우리가 사용하는 음악의 어법이 대개 고전시대부터의 것이기 때문이다. 장, 단조의 개념  p, f, crescendo, decrescendo의 악상, 마디의 중심리듬이 강약으로 굳어지고 종지의 개념(반 종지, 종지)이 확실히 생기고 1도, 4도, 5도, 1도의 중심 화음이 정립된 것 등이 고전시기이기 때문이다. 또한 중·고등학교 시절에 어렵게 배웠던 음악이론, 즉 동기, 작은악절, 큰악절의 개념이 고전음악 시기에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고전시대!  고전음악이란 무엇일까?
Classic의 어원은?
클래식 시대는 1720~1820년 까지의 100년의 시기를 말한다. 1720~1760년까지를 전 고전시대  1760~1780년을 초기 고전시대, 1780~1820년까지를 전성기 고전시대라고 분류한다.
classic의 어원은 계급을 뜻하는 라틴어 classicus 에서 온 말이다. 여기서 말하는 계급이란 것은 신분의 차이를 말하기보다는 균형과 조화로 분류하는 의미가 있다. 정결하게 정리된 책상이나 책장이 공부하는 학생에게 신선한 느낌을 주듯이 음악에 있어서 모범이 되고, 참된, 그리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아름다운 예술의 척도를 나타내는 말에 그 의미가 있다. 
독일의 평론가이자 음악학자인 빙켈만(Winkelmann)은 1755년에 그 시대의 음악적 사조를 고대의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던 그리스의 예술에 비교하여 “고전적이다”라는 말을 사용하였다. 그것은 고귀한 단순성과 조용한 위대성이 잠재되어 있는 그시대의 음악에 대한 최대의 찬사였다.
전 시대(바로크)의 수평적(Polyphony)이면서 또 수직적 음악(Homophony)과는 달리 음악의 단순성이 가장 크게 드러난 시기였다. 그 단순한 면을 인용하여 요셉 하이든은 유명한 말을 남겼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내 음악을 이해할 것이다. 

하모베의 시대(비엔나 악파)
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는 음악가를 헨델과 바흐라고 한다면 고전시대를 대표하는 작곡가가 누굴까? 그것은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세 사람으로 대표된다. 이 세 사람의 이름을 줄여서 하모베 라고 부르며 음악사는 이들을 고전악파의 대표적인 작곡가들로 설명하고 있다. 
그들은 위대한 작품을 만든 대 작곡가이다. 특히 모차르트와 베토벤은 귀족이나 교회에 경제적인 지원을 지속적으로 받지 않은 채 망망대해에 단신으로 뛰어든 것 같은 삶을 살았다. 베토벤은 도전적이고도 의지적인 삶을 살았다. 그 고난의 삶에서 나온 음악이어서 그런지 그의 음악을 들으면 여러 가지의 느낌이 교차된다. 하이든, 모차르트와 베토벤의 삶을 비교하자면 이러하다.

하이든(1732~1809) : 궁정음악가 고수, 윤택한 삶(77세까지 장수함).
모차르트(1756~1791) : 작곡가로 독립 실패, 비운의 죽음(공동묘지에 매장되어 시신을 찾을 길이 없음.  36세로 요절).
베토벤(1770~1827) : 작곡가로 독립 성공, 국민작곡가로 칭송받음. 성대한 장례(2만 명의 시민들이 애도, 57세의 삶).

위 세 사람 중에서도 모차르트의 특성은 음악사적으로 중요하다.
그것은 모차르트가 신동 연주자 겸 작곡가로 그 천재성을 인정받고 온 유럽을 돌며 연주여행을 하며 철저하게 유럽각국의 음악들을 배워 각국의 양식을 자신의 작품에 통괄적으로 사용하는 천재성을 나타냈기 때문이다. 즉 그의 놀랄만한 업적이란, 바로 온 유럽(프랑스, 영국, 독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의 다양한 색깔과 민속적인 음악을 배워 자신의 작품에 100% 활용하였으며 후배 작곡가들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그러면 모차르트가 여행할 무렵의 유럽에는 어떤 음악들이 있었을까? 어떤 음악들을 배웠을까?

모차르트 이야기
고전파음악을 묵상하며 자료를 수집하다보니 비운의 모차르트가 제일 먼저 떠오른다. 그 많은 작품을 작곡하였어도 항상 물질에 궁핍하였던 천재!
하숙집 여주인에게 볼모가 되다시피 억지 결혼하고도 아내 콘스탄쯔를 행복하게 해 주려는 순수한 작곡가! 
천재는 일반적으로 단명하는가? 아까운 모차르트!  보통사람의 빈소보다 더 초라하여 시신이 어디 있는지 모르는 모차르트!
비엔나에 있는 모차르트의 무덤을 보면 안스러운 마음이 든다. 고전주의 음악을 설명하려니 어린 시절에 반짝이는 눈을 지닌 범상한 모차르트의 음악의 경험을 담은 가상 시나리오가 머리 속에 떠올랐다. 모차르트가 자신의 천재성을 발휘하여 신동연주자 겸 작곡가 소리를 들으며 하루하루를 낯선 곳에서 보내며 아버지 레오폴트와 대화했음직한 시나리오이다.
어둠을 뚫고 마차는 북으로, 북으로 달리고 있었다. 아버지의 손을 꼭 잡은 꼬마 볼프강은 피곤한 여정길에도 무엇인가의 곡조를 연신 입가에 흥얼거리고 있다. 아버지 레오폴트는 그 모습이 귀여운 듯 바라 보다가 이윽고 입을 연다.
볼피(볼프강의 애칭)! 이제 그만 자야지. 만하임에 도착하려면 아직도 한참 더 가야 돼. 자! 얘야. 어서 이불을 덮어라! 아버지의 음성에 놀란듯이 멈칫거리는 볼프강의 눈은 피곤한 기색이 없이 반짝거린다.
아빠! 만하임은 어떤 도시에요?  그곳에 가면 재미있는 일이 있으면 좋겠어요. 지난번 파리에서는 발레가 나오는 오페라가 아주 재미있었어요. 그런데 독일은 왜 이리 날씨가 나쁘지요? 비가 오다가 이제는 바람이 너무 불어요. 큰 외투의 깃을 올리고 잠을 청하려던 레오폴트는 다시 입을 연다. 글쎄다. 독일사람들은 오페라는 좋아하지 않는 것 같구나. 그런데 독일 사람들은 서로 만나기만 하면 이야기하느라 정신들이 없지. 무엇이든지 토론하길 참 좋아하는 사람들이란다. 아 참! 이제 기억이 나는구나. 우리가 가는 만하임에 어떤 독일사람이 연주를 잘한다고 소문이 났더라. 슈타미츠라는 사람인데 그 사람 밑으로 여러 좋은 악사들이 모인단다. 특이한 연주를 한다고 사람들이 그러더구나. 그래도 잘해 봐야 얼마나 잘 하겠니? 소문난 집치고 먹거리가 풍성한 집이 드문 법이란다. 거기 들렀다가 파리로 가려면 너도 푹 쉬어야 할게다. 작곡은 네가 커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으니까 넌 잘 쉬면서 음악을 많이 듣고 먹을 것을 잘 먹어야 한다. 여행할 때는 그게 제일 중요한 거야. 그리고 귀족들 댁에 가서는 그 댁의 아이들과 너무 까불지를 말아라. 귀족들은 겉으로는 너를 귀여워하는 듯이 보여도 속으론 애들을 버릇없이 키웠다고 애비를 탓하니까 말이다. 알겠니? 자 이제 그만 자거라.    
볼프강은 달리는 마차의 진동을 느끼며 눈을 애써 감는다. 이젠 졸음이 온다. 그런데 아까 생각했던 멜로디가 눈가에 보이듯 다가오다가 어느새 사라져 버린다. 새들이 지저귀는 맑은 아침이다. 레오
폴트가 깊이 잠든 모차르트를 깨운다.
얘야 ! 일어나거라. 벌써 아침이란다. 오늘은 바쁜 하루가 될 것 같구나. 오늘 이곳에 중요한 연주가 있어 독일의 유명 음악가들이 이곳 만하임으로 모인다고 하는구나. 깨끗이 씻고 머리를 잘 정리하
도록 해라. 단정해야지 품위가 있단다.
그날 밤 볼프강은 독일의 연주를 들을 수 있었다. 별로 특이한 것은 없었지만 슈타미츠(Stamitz 독일1717~1757)의 작품을 들을 때 볼프강은 긴장감 있는 음악을 들으며 자못 신기해 하였다.
파리에서나 비엔나, 로마에서 들어보지 못한 류의 음악이었기 때문이었다. 슈타미츠의 교향곡은 작은 규모의 관현악곡 이었다. 연주도 비엔나에서 듣던 음악에 비해 정교하지 못한 듯 하였다. 그러나 곡이 중반을 치다르며 과감한  S, crescendo는 단순하면서도 새로운 음향을 볼프강의 가슴에 느껴지게 하였다. 볼피! 오늘 연주가 어떻드냐? 레오폴트는 돌아오는 마차에서 사랑하는 아들에게 물었다.
“아빠! 연주자들의 음정이 깨끗하지 않아 짜증이 많이 났었어요. 그런데 그 슈타미츠라는 작곡가의 곡은 놀라웠어요.”
”비엔나나 다른 나라 사람들은 그렇게  p와  f를 crescendo로 연주하지 않는데 만하임 사람들은  p는 아주 여린 음에서 시작하고 f는 듣던 것보다 더 세게 연주하는 것 같았어요. 아마     뮈【?캇沮?길게 음향을 마치 계단 꼭대기를 올라가는 것과 같이 서서히 올라가니까 들을 때 숨을 쉬지 못하겠어요. 그런 음악은 처음이에요. 하늘에서 구름으로 떨어지는 기분이 들었어요.” 아들의 평을 들으면서 레오
폴트는 계속 고개를 끄덕거리고 있었다. 
 
모차르트에게 영향을 준 독일의 음악 ‘만하임 악파’
모차르트는 7세가 되던 1763년에 처음으로 독일 만하임 악파의 음악(악보 1참조)을 접하게 된다. 그리고 그로부터 21세가 되던 해인 1777년 파리로 가는 도중에 만하임에 들려 만하임 악파의 양식과 기법을 전수받게 된다. 모차르트가 만하임에서 관심 있게 들은 슈타미츠(Stamitz)는 만하임 악파의 창시자이며 그 전까지 바로크식의 강약법에 묶여있던 음악을 크레셴도. 데크레셴도,  S(스포르잔도), 분산화음, 트레몰로 등의 여러 가지 악상을 사용하여 다양한 음향을 지닌 표현법을 시도하였다. 하이든과 베토벤의 작품과 고전파 그리고 낭만파 음악에서 들을 수 있는 다양한 음향의 시도가 만하임 악파에서 나온 것이다. 또한 교향곡을 최초로 작곡한 인물이기도 하다.

감정과다 양식
또한 만하임 악파의 음악은 독일 전역과 유럽에 영향을 준 감정과다 양식(感情過多樣式 Empfinsamer Stil)을 나타내기도 한다. 감정과다 양식은 북독일을 중심으로 J.S.바흐의 아들인 W.F.바흐, C.P.E.바흐 등이 지향한 악곡에 자연스러운 감정의 표출을 나타낸다. 고전파에 나타난 최초의 낭만적 움직임이다.

질풍노도
1770~1780 독일 문학에 등장한 슈트름 운트 드랑(Sturm und Drang) 즉 질풍노도(疾風怒濤) 스타일의 음악으로 번져나가는 데 그것은 그 당시 사회에 만연한 계몽주의의 사조에 반항하면서 일어나게 된다. 즉 감정의 해방·독창성·천재성을 부르짖은 새로운 사조이며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1774) 등의 작품이 해당된다. 이러한 낭만적인 문학의 사조는 그후 시들해지지만 고전파의 음악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로마의 시스티나 성당에서의 모차르트
모차르트의 많은 종교적 작품은 어떤 곡이며 누구에게 영향을 받았을까? 모차르트는 다수의 미사브레비스(작은미사)와 미사 솔렘니스(장엄미사)를 작곡하였으며 제자 쥐스마이어에 의해 완성을 본 레퀴엠이 있다.
모차르트는 14세의 나이로 연주여행 중 로마에 가게 된다. 로마에는 아카펠라 음악만을 찬송하는 전통을 지닌 시스티나 성당이 있다. 일생 교회음악을 작곡하며 살다간 팔레스트리나와 그가 세운 로마악파의 전통이 흐르는 그 교회이다. 빅토리아, 모랄레스 등의 스페인 음악가들을 배출한 로마악파였다. 모차르트는 그 곳에서 J. 알레그리의 미제레레Miserere(주여 불쌍히 여기소서.)(악보 2)를 듣게 된다. 소년 모차르트는 외부로 전해지는 것이 금지되어 있는 이 성가곡을 듣고 단번에 암기해 버려 주위 사람을 놀라게 하는 천재성을 보인다. 그것은 모차르트가 알레그리의 심오한 음악, 그리고 집중되어 있는 성가음악의 기운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10여 분이 걸리는 9성부의 긴 곡을 이 꼬마천재는 한번 듣고 단숨에 외워버린 것이었다.
모차르트의 성가곡을 들으면 르네상스음악의 음향이나 바로크의 대가들이 생각나는 부분이 있다. 그래서 모차르트에게도 르네상스의 전통성가가 교회음악의 모범으로서 자리잡혀 있음을 유추할 수 있다.
우리는 음악사에서 아카펠라의 장르가 여러 시대를 지나면서도 교회음악의 모범으로 자리잡히게 됨을 보아왔다. 바로크, 고전시대에도, 팔레스트리나의 성가기법은 모범적 성가의 샘플로 유럽 전역에 확대되었다. 개인적인 사상을 악곡표현의 기본으로 삼는 낭만주의 시대에도 체칠리아주의 운동이 시작되듯이 교회의 아카펠라 양식은 교회음악으로서 시대를 초월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글의 서두에서 우리는 고전파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아름다운 예술의 척도라는 인용구를 만났다. 하모베의 모든 작품이 단순하지는 않겠지만 많은 작품이 단순성을 지향하였다.
뚜렷한 음악의 목적을 갖고 있는 명확한 단순성! 이런 단순성이 바로 고전파의 음악을 세계의 공통언어인 음악의 어법을 만드는 공헌을 하였다는 생각이 든다.
아래의 곡들은 하모베의 성가곡이다. 악보들은 성악성부나 반주부가 모두 Unison으로 시작되는 특징이 있는 곡이다. 여러 마디의 테마부분을 모두 장조의 1도화음만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들은 무엇 때문에 공통적으로 단순한 1도화음을 테마로 삼았을까?  하이든의 성 베르나르디미사(St. Bernardi 일명 거룩미사 중의 Credo(신앙고백 악보 3)) 1이라는 숫자의 개념은 기독교 신앙에서 상징적인 숫자이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뜻하는 숫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늘과 땅을 나타낼 때 옥타브(완전8도)를 사용하였다.
하늘과 땅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옥타브로 사용함을 우리는 헨델을 통하여 보았다. 하이든은 하행하는 1도화음을 테마로 곡을 시작하고 이 테마는 이 곡에 여러 번 등장한다. “하늘의 하나님이 인간을 위하여 땅으로 내려오셨다.” 라는 뜻이 “내가 믿습니다.”(Credo)의 가사위로 겹치는 느낌이다.     
모차르트의 <Gloria>
( G장조 미사중 K.V.232  악보 4)
원래 C장조인 이 곡은 한국교회에 ‘영화롭도다.’로 번역되어 늘 애창되는 곡이다. 높은 고음 때문에 1음을 낮추어 Bb조로 불리워진다. 모차르트는 이 곡의 서두에 Gloria in Excelsis Deo의 중심구절을 기나긴 1도화음(6마디)으로 작곡을 하였다.

베토벤의 <저 하늘은 주의 영광 선포하고>
( Die Himmel ruehren. 악보 5)
이 곡은 원래 독일 리트로 작곡되었으나 곡의 힘찬 메시지 때문인지 합창곡으로 더 사랑을 받는 곡이다.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경우처럼 베토벤도 성가곡의 중심을 하나님의 영광으로 나타내기 위하여 5마디 정도가 계속 1도화음으로 진행하는 방법을 사용하였다.    q=60 이라고 가정하고 계산하여도 15초동안 1도 화음만을 울리도록 구상했음을 볼 때 베토벤이 느끼는 1이라는 숫자의 개념은 대단하리라 싶다.
이 곡은 베토벤의 굵고 뚜렷한 성격이 100% 담겨있듯 박력있는 f 와 갑작스러운 decrescendo의  p   부분이 특징이다. 이런 표현이 바로 독일 만하임 악파의 특징인 질풍노도적이고 감정과다적인 영향으로서 베토벤의 곡에 그대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b부분의 c단조의 관계장조(Eb)로 너무도 쉽게 전위하면서 언제 f 를 노래했느냐는 듯이  뭍?울리는 아름다운 악절이 등장한다. 또 중심조로 가는 crescendo의 긴장, 포효하듯 외치는 a부분의 탄성! 곡의 제목에 나타난 것처럼 대자연이 말해 주는 하나님의 광대하심이라는 메시지를 어떤 작곡가가 이보다 더 힘있게 작곡할 수 있을까?
이 곡에 사용된 단순함이 우리의 눈을 하나님의 광채로 눈부시게 하고 오묘한 신비감을 주는 성가이다.
위의 악보를 통하여 고전파의 중요한 음악적인 한 부분을 우리는 보았다. 즐겨 교회에서 불려지는 대가들의 작품이다. 그들의 단순한 테마설정에 찬사를 보내고 음악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이들의 1도화음을 찬양할 때마다 우리의 음성에, 우리의 가슴에 하나님께 영광이라는 믿음과 고백이 간절하게 나오고 우리의 음악을 듣는 이들의 마음에 하나님을 표현하는 우리의 믿음이 나타나기를 간구한다.  <계속>


 

출처 : 카펠마이스터
글쓴이 : kimilein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