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천 해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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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여행 갤러리 ♣/전국 유명사찰 탐방

2010. 12. 14.

대한불교 조계종 제12교구 본사이다. 신라 제40대 애장왕() 때의 순응()과 이정()이 당나라에서 돌아와 우두산(:가야산)에 초당()을 지은 데서 비롯된다. 그들이 선정()에 들었을 때 마침 애장왕비가 등창이 났는데 그 병을 낫게 해주자, 이에 감동한 왕은 가야산에 와서 원당()을 짓고 정사()를 돌보며 해인사의 창건에 착수하게 하였다. 순응이 절을 짓기 시작하고 이정이 이었으며, 그 뒤를 결언대덕()이 이어받아 주지가 되었다. 918년 고려를 건국한 태조는 당시의 주지 희랑()이 후백제의 견훤을 뿌리치고 도와준 데 대한 보답으로 이 절을 고려의 국찰()로 삼아 해동() 제일의 도량()이 되게 하였다.

1398년(태조 7)에 강화도 선원사()에 있던 고려팔만대장경판()을 지천사()로 옮겼다가 이듬해 이 곳으로 옮겨와 호국신앙의 요람이 되었다. 그 후 세조가 장경각()을 확장·개수하였으며, 그의 유지를 받든 왕대비들의 원력()으로 금당벽우()를 이룩하게 되었다. 제9대 성종() 때 가람을 대대적으로 증축했고, 근세에 이르러서는 불교 항일운동의 근거지가 되기도 하였다.

이 사찰은 창건 이후 일곱 차례의 대화재를 만나 그때마다 중창되었는데, 현재의 건물들은 대개 조선 말엽에 중건한 것들로 50여 동에 이른다. 창건 당시의 유물로는 대적광전(殿) 앞뜰의 3층석탑과 석등 정도가 있을 뿐이다. 특히 국보 제32호인 대장경판과 제52호인 대장경판고() 및 석조() 여래입상(보물 264)은 유명한데, 불가사의한 일은 몇 차례의 화재를 당하면서도 팔만대장경판과 장경각만은 화를 입지 않고 옛 모습 그대로 있는 일이다. 그 밖에 주요 문화재로 보물 제518호인 원당암 다층석탑 및 석등, 보물 제128호인 반야사 원경왕사비()도 있다.

통도사(:사찰)·송광사(:사찰)와 더불어 삼보()사찰 가운데 하나로 법보()사찰로 유명하다. 현재는 불교학원인 해인총림()이 있어 많은 학인()들로 붐빈다. 말사()는 150여개에 달하고 부속 암자로 백련암(홍제암(약수암()·원당암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