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리 폼페이} 고대 로마의 도시로서 화산이 폭발한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폼페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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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외여행 갤러리 ♣/이태리

2013. 5. 24.

고대 로마의 도시로서

화산이 폭발한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폼페이


이태리의 2일차 관광을 시작하는 날이다

아침에 로마의 호텔에서 숙박을 하고 식사를 마친 후 남부의 고속도로로 이용하여 폼페이의 유적지로 떠난다.

로마에서 남부 폼페이 유적지까지는 관광버스로서 약 3시간 30분을 달리다 보면 어느새 폼페이의 유적지에 도착을 하지만 폼페이 유적지 입구로 들어서는 순간 그당시의 화산이 폭발한 폐허의 도시가 한순간에 사라지면서 허무한 느낌이 들었다.현지 가이드와 관광을 하면서 곳곳의 건물들이 다 날라가버리고 앙상한 건물의 뼈대만 앙상하게 남아서 보는이로 하여금 눈살을 찌푸리게도 할 것이다.

 

폼페이 유적지는?

나폴리에서 남서쪽으로 23km 떨어진 베수비오 산 근처에 있으며, 사르누스(지금의 사르노) 강 어귀 북쪽으로 흘러든 선사시대의 용암에 의해 형성된 돌출부 위에 건설되었다. 폼페이는 79년 베수비오 화산의 격렬한 폭발에 의해 헤르쿨라네움 및 스타비아이와 함께 매몰되었다. 이 고대도시들의 유적들은 그리스·로마 시대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독특한 자료가 되고 있다고 한다. 오늘날의 폼페이 시(인구 2만 5,081명[1991])는 고대도시의 동쪽에 있으며, 순례요지인 산타마리아델로사리오 바실리카가 있다.


폼페이 시민들의 도덕적인 타락은 이뿐만이 아니다. 난잡한 성교와 동성애 장면을 도처에서 발견할 수 있다.

벽이나 저택 안 등에는 남녀가 교합하는 춘화가 공개적으로 붙어 있었고 시민들의 문을 지키는 수호신도 ‘음란의 신’이었다. 또 역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폼페이에는 다른 도시와 달리 홍등가와 술집이 특히 많았다고 한다. 한마디로 당시 폼페이는 물질문명은 고도로 번영했지만 도덕성이 붕괴하고 극도로 부패한 사회였다. 결국 한 차례 치명적인 재앙으로 폼페이의 모든 생명들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폼페이는 화산재에 묻혀버렸고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으며 천여 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지하에 매몰된 이 죽음의 도시를 발굴했다. 뜨겁게 작열하던 용암은 이미 냉각됐고 무섭게 들끓던 짙은 연기는 이미 사라졌지만 미처 도망치지 못한 폼페이 시민들은 아주 오랜 시간동안 땅속에 남아 있었다. 고고학자들은 속이 텅 빈 화산재 속 시신에 석고를 주입해 재난을 당한 사람들의 사망 당시 각종 고통스러운 자세와 표정을 되살렸다. 어떤 엄마는 우는 아이를 끌어안고 있었고 또 어떤 사람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으며 또 담벼락에 엎드려 구멍을 파던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이들의 모습은 살아있는 것처럼 생생했다. 폼페이의 역사가 인류에게 주는 교훈은 이토록 분명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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