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부여} 부여 낙화암의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고란사와 부소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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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여행 갤러리 ♣/충청남도

2017. 12. 28.

부여 낙화암의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고란사와 부소산성


충남 공주로 업무상 출장을 갔다가 40분 거리에 위치하고 있는

부여 낙화암의 전설과 백제 역사 유적 지구를 비롯한 관북리 유적지와 부소산성을 한 바퀴 둘러보면서 특히 낙화암에서 삼천궁녀가 치마폭에

 얼굴을 감싸고 백마강에 몸을 던져 정절을 지켰다는 이야기처럼 화려한 백화암의 주변과 백화정에서 한 눈에 바라다 보이는 백마강의 아름

다운 풍경을 감상하기도 한다.  백화정에서 확 트인 조망을 뒤로하고 가파른 계단 길의 아래로 발걸음은 어느새 고란사에 도착을 하면서 벼랑

끝 바위틈에 자리 잡은 고즈넉한 고란사의 작은 사찰은 백제의 멸망과 함께 소실된 것을 고려시대에 백제의 후예들이 삼천궁녀를 위로하기

 위해서 중창하여 고란사라 부르기도 한다. 또한 고란사의 뒤에 있는 고란사 약수터에서 약수를 한 잔 마시면 3년씩 젊어진다는 전설이 있어서

나 자신도 약수터에서 한 잔의 약수를 음미하기도 하였다. ㅎㅎ


구문주차장에서 주차를 하고 부소산성을 한 바퀴 둘러보면서 낙화암 고란사를 갔다가 오는데

약 1시간 이상이 걸리면서 추운 겨울 날씨에 걷기 운동도 하고 부여 낙화암과 고란사를 구경하면서 일석이조의 톡톡한 효과를 누리고 오기도

하였다.


백화정은?

 부여 부소산성() 북쪽 금강변의 험준한 바위 위에 육각형으로 지은 정자이다.

 660년(백제 의자왕 20) 백제가 나당연합군의 침공으로 함락되자 당시 궁녀 3천여 명이 이곳 절벽 낙화암에서 떨어져 죽었다는 전설이 있다.



백제역사유적지구에 대한 설명의 글이다.

678년 백제사 중 후기 185년의 도읍지인 웅진(현재 공주시), 사비(현재 부여군)의 유산으로 충청남도 공주시 ·

부여군, 전라북도 익산시에 분포한다. 이 유적 지구에는 ▷공주 웅진성 관련 유산인 공주 공산성 · 송산리 고분군 부여 사비성 관련 유산인 부여 관북리 유적 · 부소산성 · 정림사지 · 나성 사비 시대 두 번째 도읍지인 익산시의 왕궁리 유적 · 미륵사지 등 총 8곳의 유적이 포함되어 있다. 이 유적들은 백제가 중국, 일본과의 교류를 통해 건축, 불교, 예술, 도시 계획 원리 등 문화 양식을 받아들여 백제만의 고유한 방식으로 구현해 냈음을 증명한다.

백제역사유적지구는 2015년 7월 열린 세계유산위원회(WHC)에서 세계유산으로 등재가 확정, 한국의 12번째 세계유산이 되었다.







아래 부여 객사에 대한 설명의 글이다.




부여 객사의 전경이다.

1704년에 설립된 객사로서 부소산성 입구에 자리 잡고 있다.

 객사란 조선시대에 각 고을에 둔 관사로서 외국 사신이나 중앙에서 온 관리들이 머물던 곳이다. 조선시대 객사 중에는 시설과 규모에서 중국

사신이 주로 머물렀던 개성의 태평관()이 가장 유명하였다.



구문 주차장에서 낙화암과 고란사까지는 약 1km의 이상을 발품 팔아야 한다.




부여군 문화재 사업소의 웅장한 건물이 그 위용을 과시하기도 한다.





북리유적지의 조감도 설명이다.





관북리 유적지의 전경이다.

부여군 부여읍 관북리 725번지에 위치한 이 유적은 현재 왕궁지로 알려져 있으며,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남쪽일대 184필지 95,048㎡(28,780평) 중 33필지 2,102㎡는 '83년 9월 충청남도 기념물 제43호 전백제왕궁지(傳百濟王宮址)로 지정되어 있다. '82년부터 이 일대를 중심으로 충남대학교 박물관에서 5차에 걸쳐 발굴조사하여 '83년도에는 방형석축연지(方形石築蓮池)가 발견되었고, '88년 발굴조사에서는 토기 구연부에 북사(北舍)라는 명문이 발견되었으며, '92년 조사에서는 현재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의 남쪽 50m 지점에서 백제시대의 도로유적과 배수시설이 드러났다. 삼국시대의 궁궐 중 고구려의 안학궁을 제외하면 아직까지 신라와 백제의 왕궁은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지만, 백제시대 마지막 도읍이었던 사비도성의 일부 유적이 밝혀진 것은 매우 중요한 학술적 의미를 지닌다고 한다.





관북리 유적지의 영역을 표시하기도 한다.





세계유산 백제역사지구다.

관북리유적과 부소산성은 백제 사비시기(538~660) 왕궁 유적으로 부여 시가지의 북편에 위치한다.

시가지를 휘감아 도는 백마강을 굽어 보는 위치에 표고106m인 부소산이 솟아 있다. 이 산의 능선과 계곡을 가로지르며 부소산성이 위치하고, 그 남쪽 기슭엔 사비시대의 백제 왕궁터인 관북리유적이 자리잡고 있다.관북리유적과 부소산성은 1980년부터 본격적인 고고학적 조서가 진행되었다. 30년이 넘는 장기간의 계획적인 고고학적 조사 결과 대형 건물지 등의 왕궁의 주요 시설들과 정교 하게 판축된 토성이 확인되어 백제의 왕성 구조를 대부분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부소산성 매표소에서 표를 구입하여 낙화암과 고란사로 입장을 하기도 한다.


운영기간

하절기(3~10) : 09:00 ~ 18:00

동절기(11~2) : 09:00 ~ 17:00

입장료

어른 2,000(단체:1,800) 청소년 1,100(단체:1,000)

어린이 1,000(단체:900)

* 6세 이하, 65세 이상, 장애인, 부여군민 무료

* 낙화암, 고란사 포함

* 단체 30인 이상





부여 부소산성의 조감도 설명이다.





아래 하동 정씨 정려각에 대한 설명의 글이다.





문 주차장을 통과하면 오른쪽에 하동 정씨 정려각이 있기도 하다




부소산성에는 이처럼 알림 표지판이 잘 단장되어 있기도 하다.





아래 사자루에 대한 설명의 글이다.





사자루의 전경이다.

부소산성 가장 꼭대기의 사자루는 달을 바라보는 서편을 향하여 자리하고 있다.

여기까지 왔으면 이제 내려가는 길만 남았는데 내려가는 길에는 더욱 특별한 장소들이 기다리고 있다. 낙화암이 그곳으로, 삼 천 궁녀가 몸을 던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곳이다.




금강정맥에 대한 설명의 글이다.

전라북도 무주의 주화산에서 북서로 뻗어 계룡산에 이르고,

계룡산에서 다시 서쪽으로 뻗어 부여의 부소산 조룡대까지 약 118km에 이르는 산줄기의 옛 이름.

한반도 13정맥의 하나로, 전라북도 장수군 장안산에서 시작된 금남 호남정맥이 끝나는 주화산에서 왕사봉·배티·대둔산 개태산, 또는·계룡산·널티·망월산등으로 이어져 부소산의 조룡대에 이른다. 이 산줄기의 동사면을 따라 흐르는 물은 금강의 상류를 이루고 서사면을 따라 흐르는 물은 만경강을 이루며, 일부는 금강 하류로 흘러든다




백화정에서 줌 렌즈로 당겨본 주변의 풍경이다.

저 뒤에 보이는 곳이 어딘지는 모르겠네요 ㅎㅎ





래 백화정에 대한 설명의 글이다.





백화암의 전경이다.

의자왕 20년에 백제가 당나라로 하여금 멸망할 때 적군의 노리개가 되기보다는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하여 이렇게 낙화암에서 삼천궁녀가 치마폭에 얼굴을 감싸고 백마강에 몸을 던져 정절을 지켰다는 이야기처럼’ 부분도 대폭 수정됐다 아래쪽에 낙화암이 있다. 사비가 나당 연합군의 발 아래 유린될 때에 삼천 궁녀가 꽃잎처럼 백마강에 몸을 던졌다는 전설이 깃든 곳이다.



낙화암에 대한 설명의 글이다.

낙화암은 백제 의자왕(재위 641∼660) 때 신라와 당나라 연합군이 일시에 수륙양면으로 쳐들어와 왕성(王城)에 육박하자,

 궁녀들이 굴욕을 면하지 못할 것을 알고 이곳에 와서, 치마를 뒤집어쓰고 깊은 물에 몸을 던져 죽은 장소로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있다.

훗날 그 모습을 꽃이 떨어지는 것에 비유하여 낙화암이라 부르게 되었으며, 절벽에 조선시대 학자인 우암 송시열 선생이 쓴 낙화암 글씨가

선명하게 보인다. 낙화암의 기암절벽은 백마강에서 배를 타고 돌아갈 때 더 잘 보인다.






낙화암에서 내려다본 백마강의 아름다운 풍경이다.

낙화암은 삼천 궁녀가 꽃잎처럼 백마강에 몸을 던졌다는 전설이 깃든 유명한 곳이다.

일반적으로 금강변 부여읍 정동리의 앞 범바위에서부터 부여읍 현북리 파진산 모퉁이까지의 약 16㎞ 구간을 백마강이라 한다.





백마강에는 동장군의 기세에 꺽이지 못하고 얼음이 얼어붙어 있기도 하다.





아래 고란사에 대한 설명의 글이다.





고란사의 전경이다.

삼천궁녀의 넋을 기리는 사찰, 고란사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의 말사이다.

창건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없으나, 백제 때 왕들이 노닐기 위하여 건립한 정자였다는 설과 궁중의 내불전이라는 설이 전하며, 백제의 멸망과 함께 소실된 것을 고려시대에 백제의 후예들이 삼천궁녀를 위로하기 위해서 중창하여 고란사라 하였다. 그 뒤 벼랑에 희귀한 고란초가 자생하기 때문에 고란사라 불리게 되었다



고란사의 현존하는 당우로는 1931년에 지은 것을 1959년 보수, 단장한 정면 7칸, 측면 5칸의 법당과 요사채가 있다.





고란사의 극락보전이다.





란사의 극락보전에는 아미타불의 금동불상이 모셔져 있기도 하다.





고란사에는 불자님들의 기와불사를 하기도 한다.





고란사의 종각이다.





란사의 삼성각이다.






란초와 고란약수에 대한 설명의 글이다.





고란사의 약수터 이기도 하다.

 고란약수와 고란초의 전설은
백제시대에 임금님은 항상 고란사 뒤편 바위 틈에서 솟아나는 약수를 애용하여, 매일같이 사람을 보내 약수를 떠오게 하였다.

마침 고란약수터 주변에서만 자라는 기이한 풀이 있어 이름을 '고란초'라 불렀다. 약수를 떠오는 사람들이 고란초의 잎을 하나씩 물동이에 띄워 옴으로써 그것이 고란약수라는 것을 증명하였던 것이다. 백제의 임금님이 약수를 즐겨 마셔, 원기가 왕성하고 위장병은 물론 감기도 안 걸리고 사셨다 한다. 또한, 고란약수를 한 잔 마시면 3년씩 젊어진다는 전설도 있다




고란사 바로 아래에는 고란사와 낙화암으로 오가는 유람선이 운행되기도 한다.


백마강 유람선 타기고란사에서 백마강 구드래나루까지 운행하는 유람선을 탈 수 있다. 강 아래에서 바라보는 낙화암이 또 다른 풍경을 보여주며 백마강의 용을 백마 머리를 미끼로 꾀어냈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조룡대를 지난다. 운행 내내 울리는 백마강~ 달밤에~’로 시작하는 노래가 내려서도 귓전에 맴돈다.

 

문의 041-835-4690(고란사선착장)





선착장에서 바라본 백마강의 아름다운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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