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시 달성군} 적멸보궁으로 유명한 천년고찰 비슬산 용연사 //보물539호//보물1813호//보물961-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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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여행 갤러리 ♣/전국 유명사찰 탐방

2020. 8. 31.

적멸보궁으로 유명한 천년고찰 비슬산 용연사

 //보물539호//보물1813호//보물961-3호

 

여유로운 휴일을 맞아하여 나의 아내와 둘이서 대구 달성군 옥포면 반송리에 위치한

비슬산 용연사로 나들이를 가본다. 용연사(龍淵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 말사이기도 하지만 천년고찰이기도하다. 비슬산 자락에 위치하고 있어서 공기도 맑고 고즈넉한 산사를 한 바퀴 둘러보면서 극락전과 적멸보궁이 있는 금강계단에서 부처님에게 기도를 올리면서 가족의 건강과 소원을 빌어보기도 해본다.

 

용연사는?

914(신라 신덕왕 3) 보양(寶壤)이 창건하였으며 그뒤 고려시대까지의 연혁은 전해지지 않는다.

1419(조선 세종 1) 천일(天日)이 중건하였으나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불탔고, 1603(선조 36) 탄옥(坦玉경천(敬天) 등이 사명대사 유정(惟政)의 명으로 중창하였다. 1621(광해군 13) 범종각을 지었으나 1650(효종 1) 다시 법당과 요사채 등이 모두 불에 탔다. 1653년에는 홍묵(弘默)이 대웅전을 지었고 승안(勝安)이 명부전을 건립하였다. 1655년 희감(熙鑑)과 홍묵이 함허당(含虛堂)과 관정료(灌頂寮)를 세웠고 이듬해에는 청진(淸振)이 관음전을 지었다. 1658년에는 도행(道行)이 명월당(明月堂), 이듬해에는 학신이 향로전(香爐殿), 1660(현종 1)에는 일순(一淳)이 약사전을 차례로 건립하였다.

 

사진촬영정보

갤럭시 노트10으로 촬영 (1.600만화소)

 

용연사 적멸보궁이 있는 금강계단으로 가는 입구에는 백일홍이 곱게 피어나 아름답기도 하다.

 

 

 

 

용연사 입구로 들어오는 길에는 노송의 소나무가 우거져 아름답기도 하다.

 

 

 

 

용연사 입구로 들어가는 극락교를 건너면 바로 천왕문이 나온다.

천왕문 앞의 개울을 건너는 이 다리는 아미타부처님이 상주하는 이상 세계로 들어선다는 뜻으로 즉, 부처님의 공간으로 들어선다는 의미이다. 

 

 

 

 

용연사로 들어서는 입구 천왕문을 통과하기도 하다.

천왕문은 불법을 수호하는 사천왕은 모시는 곳으로, 이 문 안에는 그림 또는 조상(彫像)한 사천왕을 봉안하는데, 용연사는 그림을 봉안하고 있다. 사천왕은 천상계의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하는 사천왕천(四天王天)의 동서남북 네 지역을 관장하는 신화적인 존자들로서, 수미산(須彌山)의 중턱 사방을 지키며 사바세계의 중생들이 불도에 따라 올바르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살피고 그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천왕들이다.

천왕문내에는 동방 지국천(持國天)이 검(劍)을, 북방 다문천(多聞天)이 비파(琵琶)를, 서방 광목천(廣目天)이 탑을, 남방 증장천(增長天)이 용을 쥐고 있는 무서운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다. 절에 이러한 천왕상을 봉안한 천왕문을 건립하는 까닭은 절을 외호한다는 뜻도 있지만, 출입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이 수호신들에 의해서 도량 내의 모든 악귀가 물러난 청정도량이라는 신성관념을 가지게 하려는 데도 뜻이 있다. 또한, 수행과정상의 상징적인 의미에서 볼 때는 일심(一心)의 일주문을 거쳐 이제 수미산 중턱의 청정한 경지에 이르고 있다는 뜻도 내포하고 있다. 천왕문의 규모는 정면 3칸, 옆면 1칸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천왕문을 통과하는 벽면 양쪽으로는 벽화가 그려져 있기도 하다.

 

 

 

 

입구 좌측으로는 종무소가 있고 우측으로는 불교용품 판매점이 있기도 하다.

 

 

 

 

용연사 극락전이 보이는 사찰 전경이다.

 

 

 

 

멀리서 바라본 용연사의 전경이다.

청운교는 불이문을 지나 명부전과 사명당으로 들어가는 다리로서 불국사의 청운교는 푸를청(靑)자를 사용하는데 용연사는 맑을청(淸)자를 사용하고 있다. 

 

 

 

 

용연사 안양루 전경이다.

천왕문을 지나 극락전으로 오르는 축대 위에는 범종을 걸어 놓은 2층의 아름다운 누각이 안양루이다. 극락전과 일직선상에 있는 이 누각의 1층은 봉향각이란 불교용품 판매점이고 2층 누각에는 종과 북, 목어, 운판 등의 불교사물이 걸려있다. 안양루는 원래 보광루라는 이름의 누각이었으나, 최근에 그 이름이 안양루로 바뀌었다. 

 

 

 

용연사 극락전의 전경이다.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木造阿彌陀如來三尊坐像:보물 제1813호)을 모시고 있는 용연사 극락전은 영산전과 삼성각을 좌우에 거느려 본당으로서의 위상과 기품이 느껴진다. 극락전은 기단을 높게 화강석으로 쌓아올린 석단위에 정면 3칸, 옆면 3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간결한 맞배지붕이다. 처마를 받치면서 장식을 겸하는 공포는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배치된 다포양식으로 조선후기 건축양식을 잘 보존하고 있는 건물이다. 전면과 측면의 어칸을 협칸 보다 넓게 하여 불단을 조성하기 위한 넉넉한 공간을 배려하였으며 고주(가운데 다른 기둥보다 높게 세운 기둥)를 세우고 사이를 후불벽으로 하여 앞쪽으로 불단을 꾸몄으며, 내부 벽화에 그려진 불화나 건물 부재에 그려진 화려한 단청은 매우 고격의 품위를 가진 중요한 불교미술의 진수로 평가 할 수 있다. 

 

 

 

 

용연사 극락전 내부에는 보물 제1813호인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 및 복장유물이 있기도 하다.

이 삼존불은 17세기 중엽경의 대표적인 조각승인 도우(道祐)의 작품으로, 조성발원문을 통해 1655년이라는 조성연대를 알 수 있어 17세기 불상연구의 기준작이 된다. 특히 삼존불의 경우는 1762년의 중수개금기까지 포함하고 있어 당시 중수개금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불상에 보이는 귀염성이 느껴지는 얼굴, 당당하고 장대한 신체비례, 변화가 거의 없는 강직한 선묘, 무릎 앞에 넓은 주걱모양의 주름을 중심으로 좌우로 밀도 높게 새긴 세밀한 주름 등은 조각승 도우의 양식적 특징으로 무염의 조각전통을 계승하면서도 얼굴모습이나 옷 주름의 표현 등에서 자신만의 특징을 분명히 드러내고 있는 점이다라고 말한다.

 

 

 

 

용연사 극락전 앞에는 연등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기도 하다.

 

 

 

 

극락전 앞에 있는 삼층석탑의 전경이다.

 

 

 

 

지혜의 칼을 찾는 집이라 하여 심검당이 불리는 극락전 마당 우측에 자리하고 있는 이 건물은 비슬산용연사 종무소로 활용하고 있다. 용연사의 모든 사찰업무와 기도 접수 및 불사 접수 등도 이곳에서 접수한다. 

 

 

 

영산전의 누각이다.

영산전은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묘법연화경을 설한 영산회상(靈山會上)의 장면을 극적으로 묘사한 영산회상도(靈山會上圖)를 모시기 위하여 특별히 지은 전각이다. 영산회(靈山會)란 석가모니 부처님이 영취산이라는 곳에서 많은 제자들을 모아놓고 가르침을 베풀던 모임이다. 이곳에는 석가모니를 중심으로 좌우에 갈라보살과 미륵보살을 협시(脇侍)로 봉안한다. 좌우로 16나한상이 모셔져 있다. 나한 즉 아라한(阿羅漢;Arahan)은 모든 사람의 우러름을 받을 만한 사람이란 뜻으로 석가모니 부처님의 제자들을 말한다.  영산전은 정면 3칸, 옆면 2칸 규모의 겹처마 맞배지붕으로 단아한 건물이다. 

 

 

 

 

삼층석탑의 배경으로 한 컷 담아보았다.

 

 

 

 

극락전 앞마당 좌측으로 심검당과 마주보고 있는 이 선열당은 수행스님들의 생활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삼성각 누각의 전경이다.

극락전의 향 좌측에 자리하고 있는 삼성각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산신(山神). 칠성(七星). 독성(獨聖)을 함께 봉안하고 있는 사찰 당우 중 하나이다. 삼성은 각각 재물과 수명과 복을 관장하는 존재로서, 일반적으로 칠성은 북두 칠성을 말하는데 별나라의 주군(主君)으로 인간의 복과 수명을 담당하고 있다. 나반존자(那畔尊者)라고도 불리는 독성은 십이인연(十二因緣)의 이치를 홀로 깨달아서 성인의 위치에 올라 말세 중생에게 복을 내린다고 하며, 산신(山神)은 한국의 토속신 산신령에 해당하는 호법선신으로 산신이라는 인격신과 화신인 호랑이로 나타난다. 

 

 

 

 

명부전 누각의 전경이다.

선열당을 좌측으로 돌아 불이문을 지나면 절옆 계곡 위로 낸 청운교를 지나 고색창연한 단청의 당우가 아름다운 명부전이 나온다. 법당에는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좌우에 도명존자(道明尊者)와 무독귀왕(無毒鬼王)을 협시(脇侍)로 봉안하고 있다. 그리고 그 좌우에 열분의 명부시왕상을 안치하며, 판관(判官) 2구, 녹사(錄事) 2구, 문 입구에 장군(將軍) 2구 등이 모셔져있다. 명부전 처마 밑에는 어느 갑술년에 관혜가 쓴 공덕기와 관음계 현판이 걸려 있다. 

 

 

 

여기는 스님들의 수행공간이다.

명부전 오른쪽으로 축대 위의 홍제문을 들어서면 사명당이란 당우가 나온다. 서향의 이 사명당은 용연사를 중창하게 한 공덕주이자 적멸보궁을 있게 한 사명당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현재는 주지스님의 내빈 접견실로 사용하고 있다. 

 

 

 

기둥을 2개만 두어 간단한 출입문으로 사용하거나, 궁전·양반집에서 협문(夾門)으로 사용하는 작은 문을 이르는데 극락교앞에서 적멸보궁으로 들어서는 협문(夾門)이다. 

 

 

 

적멸보궁으로 가는 길목에는 비슬산으로 가는 등산코스가 있기도 하다.

이곳에서 비슬산 정상까지는 5km의 거리다.

 

 

 

 

적멸보궁으로 가는 길목에는 숲이 우거져 산림욕을 하기에도 굿이다.

 

 

 

 

부처님의 사리를 모셔둔 보물 제 539호 금강계단(金剛戒壇)이다.
계단(戒壇)이란 부처님사리를 모시고 수계의식(授戒儀式)을 행하는 곳으로 금강계단(金剛戒壇)이라 하며, 부처님이 항상 그 곳에 있다는 상징성을 띠고 있다. 금강계단의 앞에는 적멸보궁(寂滅寶宮)이라는 편액을 건 전각을 건립하는데, 그곳에는 불상을 봉안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그것은 금강계단에 부처님을 상징하는 부처님사리가 봉안되어 있어 예배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진신사라탑의 석조계단은 통도사 금강계단, 금산사 방등계단, 그리고 이곳 용연사 금강계단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계단(戒壇)이다. 

 

 

 

적멸보궁 금강계단 앞에는 애기단풍나무와 고목의 은행나무가 있어서 가을에 단풍이 곱게 물들면 아름답기도 하다.

 

 

 

 

금강계단으로 들어가는 입구의 벽면에는 벽화가 그려져 있기도 하다.

 

 

 

 

용연사 적멸보궁이다.

적멸보궁에 대한 설명의 글은 상기의 상세한 글을 읽어보면 알 수가 있을 것이다.

 

 

 

 

석조계단통도사 금강계단, 금산사 방등계단과 함께 우리나라의 대표적 계단형 사리탑이다.

탑신은 맨 아랫부분에서 위로 올라가면서 조금씩 통이 넓어지다가 중앙부분을 지나면서 차츰 줄어들어 절에서 흔히 보는 범종을 그대로 닮았다. 윗부분은 구슬무늬를 한 줄로 빙 두르고 나서 겹으로 된 연꽃무늬를 한 바퀴 돌리고, 그 위로 꽃받침 속에서 피어나는 연봉오리를 봉긋하게 새겨 마무리했다.

 

용연사 금강계단은 임진왜란(1592년) 때 난을 피해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통도사에서 금강산으로 모시고 갈 예정이었으나 승군들의 주둔지로서 비슬산용연사가 안전함을 판단하여 용연사에 봉안하였다. 전란이 위급할 경우 금강산으로 옮길 예정이었으나 전란이 평정되어 사명대사의 제자 청진스님이 부처님사리 2과중 1과는 본래 봉안처인 통도사로 돌려보내고 1과를 용연사에 봉안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금강계단 영역의 적멸보궁 좌측에 위치하고 있으며 정면 4칸, 옆면 3칸의 팔작지붕 건물로서 스님들이 거처하는 요사채로 사용하고 있다. 

 

 

 

보광루의 전경이다.

일주문을 지나 극락교 가기전 좌측, 금강계단으로 통하는 적멸보궁일각문을 지나 산길로 조금 오르다보면 금강계단 구역이 나온다. 정면에 높은 돌계단으로 올라서면 나타나는 금강계단 출입문인 보광루는 2층 누각으로 된 정면 5칸, 옆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1층 중앙 칸은 적멸보궁으로 오르는 통로 좌우로 사천왕상영정이 모셔져있고 누각 2층은 설법전으로 활용되고 있다. 건물 전면에는 금강계단(金剛戒壇)이란 편액을 걸고 배면에는 보광루(普光樓)라는 편액을 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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