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청도군} 비구니 도량으로서 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청도 운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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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여행 갤러리 ♣/전국 유명사찰 탐방

2021. 4. 15.

비구니 도량으로서 

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청도 운문사

 

여유로운 주말에 친구들과 셋이서 이른 새벽에 기도도량으로 유명하다고 소문난

청도 운문사 사리암으로 갔다가 비구니 도량의 운문사에 들러서 경내를 둘러보며 부처님에게 기도를 올리고 오기도 하였다. 청도 운문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의 말사이다. 사찰의 역사는 560년경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대작 갑사라고 이름 지은 사찰의 중심으로 동쪽에는 가슬 갑사, 서쪽에는 대비갑사(현재 대비사), 남쪽에는 천문 갑사, 북쪽에는 소보갑사를 지으면서 이를 오 갑사(五岬寺)라고 불렀다. 그중 대작 갑사가 지금의 운문사이다. 608년 원광국사(圓光國師, 558~638), 신라 말기에는 보양국사(寶壤國師, 생몰년 미상)가 사찰을 중건하였다. 당시 오 갑사는 신라의 부흥기를 맞아 화랑도 수련장으로 역할 하였으며 부근 일대는 신라의 중요한 군사적 거점으로도 역할 하였다고 전해진다. 보양국사는 태조 왕건과 인연이 깊었는데 왕건이 고려를 개국하는데 일조하였다. 태조 왕건 고려를 세우면서 대작 갑사에 운문선사라는 사액과 500결의 땅을 하사하여 이후 운문사라고 불리게 되었다. 운문이라는 이름은 당시 중국 선종의 유명한 스님으로 그의 법명에서 따온 것이라고 말한다.

 

운문사의 경내 문화재로는 아래와 같다.

현재 대웅보전(보물 835)·작압전(鵲鴨殿미륵전·오백나한전·금법당(金法堂만세루(萬歲樓관음전·요사채 등이 있다. 경내에는 보물 제193호인 금당 앞 석등, 보물 제208호인 동호(銅壺), 보물 제316호인 원응국사비(圓應國師碑), 보물 제317호인 석조여래좌상, 보물 제318호인 사천왕석주(四天王石柱), 보물 제678호인 삼층석탑, 천연기념물 제180호인 운문사의 처진 소나무가 있다. 1958년 비구니 전문강원이 개설되었고 1987년 승가대학으로 발전하였으며 1997년 승가대학원이 개설되었다.

 

 

사진촬영정보

바디 : 캐논 EOS 5D Mark IV (5디 마크4), 렌즈 : 캐논 정품 RF24-105mm F4 L IS USM

 

 

 

화사한 봄꽃이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하는 고즈넉한 사찰의 아름다운 풍경이다.

 

 

 

 

운문사의 설명과  경내 건물배치도의 안내다.

운문사에는 보물의 문화재가 무려 7가지나 있다.

그래서 문화재가 많은 사찰로 불리기도 하다.

 

 

 

 

운문사의 종합 안내도다.

 

 

 

 

운문사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노송의 소나무가 우거져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하가도 하다.

 

 

 

 

운문사는 생태보존 지역으로 지정된 운문사의 아름다운 자연 경관과
천년토록 넉넉히 품어주는 소나무 숲의 청정한 바람은 운문사를 찾는 이들에게 더 없는 선물이기도 하다.

 

 

 

 

 

운문사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고목의 나무에도 연두색이 봄의 풍경을 자랑하기도 한다.

 

 

 

 

운문사로 들어가는 바로 입구에는 그렇게 아름답게 피어난 벚꽃도 꽃비를 내리면서

자연으로 돌아가버리고 잎만 무성하다.

 

 

 

 

친구들과 함께 운문사로 들어가면서 아름다운 벚꽃길의 터널로 들어가보지만

운문산에서 불어오는 산들바람이 역시 맑은 공기를 배출하기도 한다.

 

 

 

 

벚꽃은 자연으로 돌아가버리고 운문사의 앞에는 아름다운 풍경이기도 하다.

 

 

 

 

한그루의 벚나무에는 아직까지 아름다운 벚꽃이 자태를 뽐내면서 예쁜모습이다.

 

 

 

 

운문사로 들어가는 담장의 돌담길이 이색적인 풍경을 자랑하기도 한다.

 

 

 

 

운문사의 싱그러운 숲 길은 보기만 하여도 아름다운 풍경이다.

 

 

 

 

운문사로 들어가는 일주문에는 호거산 운문사라고 적혀있다.

 

 

 

 

 

코로나 시대에 요즘은 어디를 가더라도 입구에서 인적사항의 흔적을 남겨본다.

 

 

 

 

운문사 범종루의 누각이다.

범종루(梵鐘樓)1층의 문이 운문사의 정문이기도 한 범종루는 2층 누각으로, 법고(法鼓범종(梵鐘·大鐘목어(木魚운판(雲版)의 사물(四物)을 안치했다사물은 조석 예불 시에 울리는 것으로, 법고는 네발 달린 축생, 운판은 허공에 날아다니는 중생, 목어는 수중의 모든 생명, 대종은 지옥과 천당 등을 모두 아우르는 일체 중생들의 성불을 발원하며 울리는 것으로, 이 소리가 각각의 인연 닿는 중생들에게 부처님의 법음으로 전해진다고 한다.

 

 

 

 

운문사 일주문을 통과하여 경내로 들어서면 경내의 요사채가 한 눈에 들어오기도 하다.

 

 

 

 

운문사 처진소나무의 전경이다.

처진 소나무천연기념물 제 180호로 지정된 운문사 처진 소나무는 주변의 인공적인 압력 없이도 늘어져서 넓게 자라는 나무로 유명하다. 수령이 500년에 이르는 이 소나무는 어느 선사가 이곳을 지나다가 시들어진 나뭇가지를 꽂아둔 것이 뿌리를 내렸다고 전해지고 있다. 해마다 음력 33일인 삼짇날 막걸리 12말을 희석하여 영양제로 부어준다늘 푸른 기상은 수행자로서의 청정함을 상징하고, 넓게 자라서 큰 그늘을 만들어주는 것은 처음으로 스님이 된 학인들에게 널리 중생의 고통을 덜어주는 보살정신을 가르쳐 준다.

 

 

 

 

 

어느 사찰을 막론하고 주변의 풍경이 아름다운 곳에 운문사는 위치하고 있다.

 

 

 

 

 

대웅보전(大雄寶殿)의 전경이다.

1994년 건립되었으며, 대중 스님들이 조석 예불을 모시는 주법당이다.

상단에는 과거현재미래의 삼세불(三世佛)과 대세지, 문수, 보현, 관세음보살 등 사대(四大) 보살을 모셨으며, 좌측에는 신중탱화, 우측에는 53 선지식 탱화를 모셨다. 상단 뒤편에는 500나한도와 관세음보살 보문품 변상도를 모셨으며, 2001년 상단의 좌우에 윤장대를 설치하고 경전을 봉안했다

 

 

 

 

 

비로전(大雄寶殿·毘盧殿)의 전경이다.

1105(고려 숙종 10) 원응 국사가 건립하였다고 전하며, 발견된 상량문에 藏次 順治 十年 癸巳 九月이라고 기록된 것으로 보아 1653(조선 효종 4)에 중창한 것으로 보인다정면 어간(御間: 법당의 중심축이 되는 부분. 주불을 봉안한 법당의 가장 가운데 부분을 일컫는다. 또한 불상이 바라보고 있는 직선상의 공간을 모두 어간이라고 한다.) 에 꽃살문을 새겨 부처님께 시들지 않는 법의 꽃 공양을 올리고 있음을 상징하고 있다.

 

보물 제 835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대웅보전이라는 현판을 걸고 있으나, 통칭하여 비로전이라고 부른다.

현재의 대웅보전을 짓기 전, 운문사 신앙 공간의 중심적 역할을 하였으며 문화재청 등록 당시 운문사 대웅보전으로 등재되었기 때문에 옛 현판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을 모셨으며 좌측에는 신중탱화, 우측에는 삼장탱화를 봉안하였다.

 

 

 

 

 

운문사의 고즈넉한 사찰의 전경이다.

 

 

 

 

 

운무사 경내에서 운문산의 맑은 정기를 이어받은 감로수 한 잔을 마셔본다. ㅎㅎ

 

 

 

 

앞에는 만세루의 누각이고 뒤로는 대웅보전이 자리 잡고 있기도 하다.

 

 

 

 

비로전 앞에는 삼층석탑이 자리하고 있다.

 

 

 

 

비로전 주변의 풍경이다.

 

 

 

 

경내의 고즈넉한 산사의 풍경이다.

 

 

 

 

운문사 경내의 일부 전경이다.

 

 

 

 

 

운문사는 풍광이 좋은 명당자리에 자리 잡고 있다.

 

 

 

 

운문사 경내에는 아주 오래된 벚나무의 고목나무에도 벚꽃이 아름답게 피어나

멋진 풍경을 연출하고 있지만 함께 동행한 친구들은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을 스마트 폰으로 담아보느라고

정신이 없다. ㅎㅎ

 

 

 

 

 

경내에 아름답게 피어난  꽃이 멋진 풍경이다.

 

 

 

 

운문사의 중심영역은 만세루, 비로전, 오백전, 작압,관음전, 금당, 불이문, 피하당,육화당, 공양간 등이 있다.

 

 

 

 

 

 

 

 

 

이렇게 아름다운 꽃을 지나면서 한 컷 

 

 

 

 

만세루(萬歲樓)의 전경이다.

신라 원광국사가 초창하여 고려의 보양국사가 중창하였으며, 지금의 건물은 1105년 원응국사가 3차 중창할 때의 것이다. 사찰에서의 누각건물은 큰 법회시에 대웅전에 들어가지 못한 대중들이 대웅전을 향하여 법회에 참석할 수 있도록 만든 건물로, 운문사 만세루는 200여 평의 넓은 공간을 누각으로 조성하였다현재는 어린이 여름불교학교의 주요 활동공간으로, 어린이들이 발우공양을 체험하고 합반 수업 및 율동 등의 놀이공간으로 이용하고 있다.

 

 

 

 

고목의 벚나무에도 벚꽃이 곱게 피어나 아름다운 풍경이다.

 

 

 

 

극락교의 전경이다.

 

 

 

 

칠성각의 전경이다.

칠성각(七聖閣)독성(나반존자), 칠성, 산신 등 세 성현을 모신 전각이다. 삼성각은 우리나라 재래의 수(), (), ()의 삼신 신앙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 전각이다. 독성이라는 불교적 성현 외에도 칠성·산신과 같은 전통신앙의 대상을 불교로 흡수하여 불교가 가진 원융의 성격을 드러내는 공간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전통적인 부처님을 모신 전각이 아니기 때문에 전(殿)이라 하지 않고 각()이라 이름한다

 

 

 

 

운문사 동.서 삼층석탑의 전경이다.

운문사 동·서 삼층석탑 (보물 제678)비로전 앞에 동·서로 서 있는 통일신라시대 3층석탑으로 보물 제678호로 지정되어 있다. 두 탑은 2층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렸으며, 규모와 양식이 동일하다. 탑의 높이는 591이다.

 

상층 기단의 각 면에 탱주와 우주가 새겨져 있는데, 탱주로 분할된 여덟 면에는 팔부신중이 1구씩 조각되어 있다. 이런 부처님을 외호하는 사천왕·팔부중·십이지신장 등의 표현은 9세기 통일신라 석탑의 특징으로, 운문사가 창건 이후 중창시기 마다 시대의 흐름에 따른 대규모 불사가 이루어졌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기단부는 일제강점기에 훼손이 심하여 보수했는데, 이때 팔부중상의 일부가 새로운 석재로 대체되었다고 한다.

 

 

 

 

오백전(五百殿)의 전경이다.

주불로 석가모니불과 좌보처 제화갈라보살, 우보처 미륵보살과 오백나한상을 모신 전각이다.

나한이란 아라한(阿羅漢)의 줄임말로, 응공(應供)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공양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 존경 받을 만한 사람을 의미한다. 이 외에도 살적(殺賊).불생(不生).응진(應眞).진인(眞人).성자(聖子) 등으로 의역한다. ‘고귀한 사람이라는 뜻을 가진 산스크리트어 arhan의 음역이다. 부처님과 같이 깨달음을 얻어 열반에 이른 사람으로, 인간이 가진 욕망의 사슬을 완전히 벗어나 생사의 윤회에서 벗어나 다시는 태어나지 않는 경지에 이른 수행자를 이른다

 

 

 

 

 

운문사 석조 석가여래죄상의 전경이다.

보물 제 317호 석조석가여래좌상 작압전에 봉안된 통일신라 말기의 작품으로 화강암으로 조성되었다. 항마촉지인(부처님께서 정각을 이루신 뒤 마왕 파순에게서 항복을 받을 때 취하신 수인으로, 地神이 부처님의 깨친 바를 증명하며 진동을 일으키도록 명하신 자세를 일컫는다.)을 하고 있다. 부처님을 봉안한 좌대와 광배가 모두 갖추어진 완전한 불상으로 불상 높이 63CM, 대좌높이 41CM, 광배 높이가 92CM에 이른다.

 

 

 

 

 

작압(鵲鴨작압전의 전경이다.

운문사의 전신인 대작갑사의 유래를 알게 하는 유일한 건물인 작압전은 전면 측면이 모두 한 칸에 불과한 작은 건물이다삼국유사에 의하면 한 신승(神僧)이 중국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신비로운 새 떼가 날아오른 것을 본 자리에 이르러 암자를 짓고 수행하여 큰 도를 이루었다고 한다. 그가 처음 새를 보고 이른 터에는 무너진 석탑이 있어서, 무너져 있는 석조물로 다시 탑을 쌓으니 파편이 모자라지도 남지도 않는 것을 보고 좋은 징조로 여겼다고 한다. 그가 깨달음을 얻은 뒤 절을 짓기 시작하였는데, 동쪽에 가슬갑사·남쪽에 천문갑사·서쪽에 대비갑사·북쪽에 소보갑사를 짓고 중앙에 대작갑사를 창건하였다고 한다. 이 다섯 사찰을 두고 오갑사(五鴨寺)라고 하였다작압전은 신승이 발견한 석탑터에 지어진 전각으로, 나말려초의 보양국사가 전탑형식으로 초창하였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된 이후 현재의 목탑형식으로 재건되었다. 내부에는 보물 제 317호 석조여래좌상과 318호 사천왕 석주를 봉안하고 있다.

 

 

 

 

 

운문사 사천왕 석주의 전경이다.

보물 제 318호 사천왕 석주다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측되는 운문사 사천왕 석주는 그 예가 드물어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탑의 기단부를 장식하기 위해 조각되었던 것이 파편으로 남은 것으로 추정하기도 하지만, 석주 네 기가 각각의 높이가 달라서 정확한 추정으로 인정받고 있지는 않다사천왕은 사방에서 불법을 수호하겠노라 서원을 세우고 수미산의 동서남북에서 악을 물리치는 천신(天神)으로 동방 지국천왕(비파), 서방의 광목천왕(용과 여의주), 남방의 증장천왕(), 북방 다문천왕(보탑)을 통칭한다.

 

 

 

 

관음전(觀音殿)의 전경이다.

1105년 원응국사가 중창한 것이라고 전하나, 건축 양식으로 볼 때 조선 초기 건물로 추정된다. 정면과 측면 모두 1칸씩인 정사각형 공간에 팔작지붕을 이고 있으며 사방의 기둥에 각각 2개씩의 주련을 걸었는데, 관세음보살의 공덕을 찬탄하는 두 가지 게송으로 이루어져 있다. 또한 건물 안팎에 묘법연화경』「관세음보살보문품에서 부처님께서 설하신 관세음보살의 공덕을 벽화로 표현하고 있다. 관세음보살은 일체 중생들을 고통에서 건져 즐거움을 주겠노라 서원을 세운 대자대비의 상징으로, 운문사 관음전에는 1816년에 제작한 수월관음도가 후불탱화로, 1871년에 제작한 신중탱화가 봉안되어 있다.

 

 

 

 

명부전(冥府殿)의 전경이다.

신라시대 원응국사가 건립하였고 나말려초의 보양국사가 중창한 운문사 명부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에 맞배지붕을 한 건물로 조선 중엽의 건축양식을 보이고 있다지옥 중생을 남김없이 제도하겠다는 원력을 세운 지장보살과 십대왕을 모신 전각이으로 지장보살을 모신 전각이므로 지장전(地藏殿)이라고 하기도 하며, 십대왕을 모신 전각이라 하여 시왕전(十王殿)이라고 일컫기도 한다. 또한 명부전이라는 명칭은 지장보살과 시왕이 머무르는 곳이 저승세계 즉 명부이므로 이런 명칭을 사용한다십대왕(十大王) 저승을 관장하는 열 명의 대왕으로 진광(秦廣)대왕, 초강(初江)대왕, 송제(宋帝)대왕, 오관(伍官)대왕, 염라(閻羅)대왕, 변성(變成)대왕, 태산(泰山)대왕, 평등(平等)대왕, 도시(都市)대왕, 전륜(轉輪)대왕 등을 일컫는다. 망자가 저승에 다다르면 이들 열 명의 대왕에게 심판을 받아 각각의 업식에 따른 과보를 받는다고 한다. 절에서 망자를 위해 지내는 재()의식 가운데 대표적인 49재는 망자가 열 명의 대왕에게서 심판을 받고 윤회하여 다음 몸을 받기까지 걸리는 시간인 49일 동안 그의 업식이 맑아지고 보다 부처님의 세계에 가까워지길 발원하는 추모의식이라 할 수 있다.

 

 

 

 

 

운문사 원응국사비의 전경이다.

운문사 원응국사비 (보물 제316)고려시대 중기의 승려 원응국사의 행적을 기록한 비석으로, 보물 제316호로 지정되어 있다. 현재 귀부와 이수는 없으며 세 부분으로 쪼개진 비신을 붙인 다음 철로 된 지지대로 고정하여 지탱시켜 놓았다. 비신의 높이는 230이며 폭은 90이다건립 연대는 비문이 파손되어 알 수 없으나, 원응국사가 입적한 다음 해 인종이 국사로 봉하고, 윤언이尹彦頤에게 비문을 짓게 하였다는 비문의 내용으로 보아 대략 1145년 전후로 추정된다. 그리고 원응국사 비각 정면에 걸려있는 현판에 의하면 비각이 무너졌으나 다시 복구할 여력이 되지 않자 관찰사가 탄식하면서 비용을 보태주어 1877년 비각을 새로 건립하였다고 한다. 이후 1963년 새로 고쳐지었다.

 

 

 

 

 

선열당의 전경이다.

선열당은 각종 특강이 이루어지는 시청각실이 위치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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