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단 기도회/종전선언 평화정착

정의구현사제단 2019. 11. 27. 11:05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종전선언 평화정착


 때_ 2019년 11월 25일

 곳_ 광화문 세월호 광장


평화 : 정의와 사랑의 열매
                                                       송년홍(전주교구 도통동 성당)




찬미예수님. 오늘 저 뒤에 사람들한테는 아무 말도 안할겁니다. 이유는 여기서 미사를 하고, 또 사제단 신부님들과 수녀님들 신자분들이 미사했던 분들이 오늘 특별히 생각이 나기 때문입니다. 제가 생각나는 것만해도 이 자리, 대한문, 국회앞 또 여러 곳에서 미사를 했습니다. 그 때마다 미사를 준비했던, 보였는지 안보였는지 모르는 하도 말라서 뭣좀 먹으라고 해도 안먹고 그냥 갔던, 그래서 지금이나 그때나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전제우 프란치스코 사무국장이 생각 납니다. 수동동에 제가 있을 때 박근혜 사태 미사를 처음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사람들이 몰려와서 성당에다 던질 것 던지고, 빨간모자 쓴 사람들이 군인들이 지키고, 그 때 전제우 국장하고 같이 지내며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서울에 가는 고속버스터미널까지 제가 태워줬습니다. 저는 지리산으로 도망가고요. 그 때 전제우 국장이 하던 얘기가 무엇이냐면, 사무국장 그만두려고 했는데 제가 일을 벌여서 관둘 수 없게 되었다고 푸념하면서 서울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나서 계속 이 자리에서 만났습니다. 그리고 하늘로 보냈습니다.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하지만, 특별히 위령성월에 여러 가지 생각들 그래도 마음 한쪽에 따뜻한 마음으로 생각하면서 전제우 프란치스코 국장에 관한 추억, 기억들 마음에 따뜻하게 간직하고 이제 하늘에서 춥지 않고, 따뜻하게 예수님 품에 안겨서 우리를 위해 기도해줄 것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좀 편해집니다. 여러분 함께 기도해주시고 특히 위령성월에 기도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오늘 강론을 준비하며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평화와 분단체제가 어떤지 어떻게 해서 분단 상황이 되었는지 분단의 결과가 무엇인지 이런 것들 보다 평화가 무엇인지 그걸 또 교회에서 어떻게 얘기하는지 함께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가 생각납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 자유, 민주, 평화 등등 많은 단어를 붙일 수 있는 노래입니다. 우리의 소원은 평화입니다. 평화가 얼마나 소중한지 우리는 이 미사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단순히 평화는 내가 혼자 평안하게 안녕하게 사는 것이 아닙니다. 평화를 위해 많은 사람들이 일할 때 평화는 얻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추운 날에도 불구하고 미사를 봉헌하고 있습니다.

 

70년 가까이 전쟁이 끝나지 않고 중단되어 서로 적대적으로 분단되어 있는 현실. 분단체제로부터 나오는 좌우 갈등이나 서로 적대시하거나 서로 불신하는 것은 분단의 결과가 아닐까 합니다. 분단의 상황은 서로 모으거나 일치시키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가르고, 나누고, 배제시키고 억압하는 것입니다.

 

평화는 바로 하느님 안에 뿌리를 두고 있는 사회의 이성적 도덕적 질서 위에 세워진 가치이며 보편적 의무입니다. 하느님은 존재의 일차적 근원이시며, 근본 진리이시고, 최고의 선이십니다.” 평화는 단순히 전쟁의 부재가 아니며, 적대 세력 간의 균형 유지로 격하될 수도 없습니다. 그보다 평화는 인간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바탕으로 하며, 정의와 사랑에 기초한 질서의 확립을 요구합니다.

 

평화는 정의의 열매이며(이사 32,17 참조), 넓은 의미에서는 인간의 모든 차원의 균형에 대한 존중으로 이해됩니다. 평화는 인간이 인간으로서 마땅히 받아야할 모든 것을 받지 못할 때 인간의 존엄이 존중받지 못하고 시민 생활이 공동선을 지향하지 않을 때 위협 받습니다. 인권수호와 증진은 평화로운 사회 건설과 개인과 민족과 국가의 완전한 발전에 본질적인 것입니다.

 

평화는 또한 사랑의 열매입니다. 참되고 지속적인 사랑은 정의의 열매라기보다는 사랑의 열매입니다. 정의의 역할은 단지 모욕을 가하거나 손해를 입히는 것과 같은 평화의 장애물을 없애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평화 그 자체는 사랑의 행위이며 사랑에서만 나올 수 있습니다.

 

평화는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질서의 추구를 통해 날마다 조금씩 이룩되는 것이고, 모든 사람이 평화 증진에 대한 책임을 인식할 때에만 꽃필 수 있습니다. 분쟁과 폭력을 막으려면, 평화를 모든 사람의 마음속 깊이 자리 잡고 있는 가치로 뿌리내리게 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그럴 때에 평화는 가정과 또 사회 내의 다양한 집단들로 확산되고 결국 정치 공동체 전체의 참여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화합과 정의에 대한 존중이 배어 있는 분위기에서 참된 평화의 문화가 자라나고 국제 공동체 전체에 널리 퍼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평화는 인간사회의 창설자이신 하느님께서 심어놓으신 그 질서의 열매. 또 언제나 더 완전한 정의를 갈망하는 인간들이 행동으로 실천하여야 할 사회 질서의 열매입니다. 그러한 평화의 이상은 개인의 행복이 안전하게 보호받고 사람들이 신뢰로써 정신과 재능의 자산을 서로 나누지 않는다면, 지상에서 얻을 수 없습니다.

 

폭력은 결코 적절한 대응이 아닙니다. 교회는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확신하고, 자신의 사명을 인식하여 다음과 같이 선포합니다. “폭력은 악이며,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받아들여질 수 없고, 인간에게 걸맞지 않다. 폭력은 우리가 믿는 진리, 우리 인간에 관한 진리가 상충되기 때문에 거짓이다. 폭력은 그것이 수호한다고 주장하는 것들, 곧 인간의 존엄과 생명, 자유를 파괴한다.”

 

현대 세계도 흔히 조소의 대상인 맨몸의 예언자들의 증언을 필요로 합니다. 난폭하고 무자비한 행위를 포기하고, 인간의 권리를 옹홓기 위해 가장 약한 사람들이 취하는 방어수단을 택하는 사람들은 복음의 사랑을 증언하는 이들입니다. 여기에는 다만 타인과 사회의 권리와 의무를 침해하지 말아야 한다는 조건이 따릅니다. 그 사람들은 폭력에 의지하는 것이 파괴와 죽음을 포함하여, 대단히 큰 물질적, 정신적 위험을 몰고 온다는 것을 정당하게 증언합니다.

 

세계 평화의 증진은 지상에서 그리스도의 구원 활동을 계속해 나가는 교회 사명의 필수적인 한 부분입니다. 사실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성사이며, 세상 안에서 세상을 위한 평화의 표지이며 도구입니다.

 

교회는 진정한 평화는 오로지 용서와 화해를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가르칩니다. 전쟁과 분쟁의 참혹한 결과를 마주할 때 용서하기 쉽지 않습니다. 폭력은 특히 그것이 잔인성과 고통의 가장 밑바닥에 이를 때 고통의 무거운 짐을 지우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고통은 전쟁 당사자 모두의 깊고 진실하며 용기 있는 반성, 참회로 깨끗해진 마음가짐으로 현재의 어려움에 맞설 수 있는 반성을 통해서만 없어질 수 있습니다. 용서받을 수 없는 과거의 짐은 오직 서로 용서하고 용서받을 때에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이것은 길고 힘든 과정이지만, 불가능한 것도 아닙니다.

 

교회는 기도를 통해 평화를 위한 투쟁에 참여합니다. 기도는 마음을 열어 하느님과 깊은 관계를 맺게 할 뿐만 아니라, 존중과 이해, 존경과 사랑의 태도로 다른 이들을 만나게 해줍니다. 기도는 용기를 불어넣어 주고, 모든 평화의 참된 친구들, 곧 평화를 사랑하고 자신이 살고 있는 다양한 환경에서 평화를 증진하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힘을 줍니다. 전례 기도는 교회의 활동이 지향하는 정점이며, 동시에 거기에서 교회의 모든 힘이 흘러나오는 원친입니다. 특히 그리스도교 생활의 원천이며 정점인 성찬례는 평화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모든 참된 투신을 위한 마르지 않는 샘입니다.

 

평화를 이땅에 장착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구체적인 행동이 있어야 합니다. 구체적인 행동은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세계의 가난한 이들의 날에 말씀하신 옆집의 성인들이 되는 것입니다. 분여로가 갈등, 소외와 차별이 있는 곳에 평화를 위해서 일하는 옆집의 착한 아줌마와 아저씨, 삼촌과 이모, 형과 누나가 되는 것입니다. 옆집에 살고 있다는 것만으로 안정과 평화를 주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평화는 평화 안에서만 모습을 드러냅니다. 평화는 정의의 요구와 분리되지 않지만, 개인적 희생과 관대, 자비, 사랑으로 자라납니다. 우리 모두 한반도의 평화 정착을 위해 옆집의 착한 성인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형을 기억해주십시오

   

김덕진(천주교인권위원회 사무국장)


저는 김덕진 대건 안드레아입니다. 제가 스무살 때부터 사제단 거리미사를 쫒아다녔습니다. SOFA개정, 효순이 미선이, 용산참사 현장 그리고 대한문 앞에서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 미사, 세월호 미사, 강정의 해군기지 반대 미사. 많은 미사를 쫒아다니다 2년 만에 다시 왔습니다. 아직도 신부님과 형제님들 거리에서 미사를 하는 현실이 많은 생각이 들게 합니다. 오늘 전제우를 기억하는 친구들이 많이 올 계획이었습니다. 어제 진주에 쌍용자동차 친구들과 함께 오체투지 한 친구들이 진주 납골당에 많이 가서 제가 대신 이야기를 전하러 왔습니다.


저희가 전제우를 도깨비라고 저희 마음대로 이름 지었습니다. 어디에나 있었고, 어디에도 없었던 도깨비 전제우라고 했는데, 말처럼 2009년 수경스님과 문규현 신부님, 전종훈 신부님께서 하셨던 4대강 반대 오체투지 때 스테프로 결합했던 제우형이 서울에 올라와서 용산 남일당 현장을 지나 명동성당까지 오체투지를 같이 옆에서 서포트를 하고 나서, 용산참사 현장으로 와서 머물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사제단에서 일하기로 하고 세례도 받고, 용산 참사 현장에서 처음으로 크리스마스 이브를 함께 지냈습니다. 그 전에도 많은 사제단에서 활동했던 간사님들 사무국장님들 계셨습니다. 그분들도 정말 많이 고생하셨고 여기에도 김유니, 박상미, 박선아 처럼 사제단에서 일했던 분이 계십니다. 그래도 거리미사를 가장 많이 했던 사람은 전제우 프란치스코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 이전엔 매일 미사를 안했던 것 같습니다. 2009년부터 매일미사 하시는 일이 많아지면서, 제우형이 준비한 미사에서 함께한 분들이 많을 겁니다. 저희는 제우형이 사제단을 그만두겠다고 한 것이 여러차례 있었습니다. 그 때마다 제우형을 잡기도 했고, 제우형 스스로 이것만 끝나고, 대한문만 끝나고, 광화문만 끝나고 그때 자기가 좋아하던 환경, 자연에 관련된 일을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 때 잡았던 시절도 생각납니다. 빛두레를 발송하면서 11시에 퇴근하며 사제단 뒤편에 있는 술집에서 술을 마셨던 생각도 납니다. 연말에 달력에 주문 받았다 잘못해서 삭제해서 여러 성당에 전화해서 간신히 찾았던 그런 기억도 납니다.


이 사람은 한번도 자기를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저랑 정 반대의 사람입니다. 23만큼 일하고 7이나 8만큼 내세우기 좋아합니다. 이 사람은 10만큼 일하더라도 한번도 자기를 드러내거나 자기 주장을 한 사람이 아닙니다. 자기 역할에 충실했고, 항상 카메라를 들고 그 현장을 매일매일 기록해서 사제단에 올렸습니다. 지금 조평화 형제께서 하시는 것처럼 매일매일 블로그에 글과 사진을 올렸습니다. 그렇게 기록했고, 그렇게 알려주었습니다.




제우형이 연락을 끊고 잠적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제우형이 너무 걱정되서 장동훈 신부님하고 저하고 제우형 집을 찾아간 적이 있었습니다. 집을 두드리고 열쇠하시는 분을 불러서 문을 따고, 경찰에 신고하려고 그러고 있었습니다. 그 때 제우형이 샤워를 한 굉장히 깔끔한 모습으로 나오더라고요. 그렇게 깔끔한 모습을 처음봤습니다. 그날 같이 나와 불고기를 먹으며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사제단에 와서 정말 좋은 사람을 만나게 됐다. 그래서 내가 계속 부안에도 가고 싶고, 지리산에도 가고싶은데 계속 여기에 있는거 같다.”라고 말했습니다. 제우형이 너무 빨리 갔지만, 아마 제우형과 사제단이 함께 한 그 67년의 시간이 제우형 삶에서 빛나는 순간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그래서 그 시간을 함께 보내주셨던 사제단 신부님, 수녀님, 형제 자매님께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내년에는 꼭 우등버스를 대절해서 진주에 가기로 했습니다. 내년에 또 전제우 프란치스코를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미사가 끝날 때까지 전제우 프란치스코를 기억해주십시오. 감사합니다.





지금도 우리를 돕고 있는 전제우 프란치스코


문기주 쌍용자동차 전 정비지회장

 


대한문 투쟁할 때 당시 쌍용자동차 정비 지회장으로 있었습니다. 지금 복직해서 일하고 있습니다. 오늘 그리고 어제 그제, 우리 전제우 프란치스코 동지를 추모하는 기간이었습니다. 저는 기일날에 참석을 못해 저만 지금 여기 와있습니다. 2009년 쌍용자동차 자본에 의한 불법 정리해고. 그리고 이명박 정권에 의한 무자비한 폭력 탄압에 의해 저희가 공장에서 쫒겨났습니다. 그리고 대한문으로 올라왔습니다. 그 때 경찰에 의해 온갖 탄압을 받았었고, 그 과정에서 우리 신부님과 수녀님과 많은 형제 자매 여러분들이 오셔서 저희들을 도와주시고, 안정적으로 농성을 이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셨습니다. 그러는 과정속에서 전제우라는 친구를 봤습니다. 항상 말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없는 사람처럼 행동했던 그런 기억이 납니다. 20134월 쯤부터 대한문에서 매일미사를 했던거 같습니다. 그 전에는 1주일에 한번씩 미사를 하면서 봐왔지만, 매일 미사를 할 때 그를 봤을 때 사실 전제우 국장이 저희 조합원인줄 알았습니다. 사실은 미사를 준비하고 또 우리들의 불편함이 없는지 챙겨주는 고마운 친구였습니다. 그런 친구가 사실 먼저 세상을 등졌다는 것이 많이 안타깝습니다. 저희도 지금 서른 명의 동지가 갔습니다. 그나마 노사 합의를 통해 일부는 복직을 했고 아직 45명의 해고자들이 복직을 못하고 있습니다. 내년 12일부로 복직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회사는 사정이 좋지 않다며 미룰 가능성도 있습니다. 밖에 있는 해고 동지들 10년이란 세월을 복직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분명 저는 복직할 것이라 믿습니다. 먼저 하늘로 간 전제우 동지가 그렇게 해줄것이라 믿고요, 여기 계신 신부님들, 수녀님들, 형제 자매님들이 도와주실거라 믿습니다. 어쨌거나 여러분 덕분에 복직을 했고, 복직을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고맙습니다.

 
















전제우 프란치스코 추모_ 유아세례를 주며






함께하신 분들(호칭생략)

서울교구 : 이영우, 강현우

안동교구 : 김영식, 배인호

마산교구 : 하춘수

청주 : 김인국, 권진원

전주 : 송년홍, 유영, 김태환, 양재식, 연규영, 김회인, 박종근

인천 : 박요환, 장동훈

대전 : 박주환

노틀담수녀회1, 성가소비녀회5,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3, 올리벳따노성베네딕토수도회2, 인보성체수도회2, 전교가르멜수녀회1, 한국순교복자수녀회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