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세상에...

정의구현사제단 2014. 1. 17. 18:13

 

 

천주교 사제단 발제문 곽병찬 한겨레 대기자

 

 

세상 속의 교회, 나아가 거리의 교회

 

 

김수환 추기경은 지명을 받은 뒤 그가 세운 서원은 이것이었습니다. 세상 속에 교회를 세우자.

하느님의 옆 자리는 높고 거룩하고 근엄한 그런 곳으로 상상합니다. 하느님의 제단 또한 그런 곳에 세워야 하는 걸로 압니다. 그러나 2차 바티칸 공의회 정신을 온몸으로 세례 받은 김 추기경은 이런 관념을 거부합니다. 그리고 교회는 지금 여기, 곧 역사적 현실 속에 세워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제단 또한 화려한 성물이 아니라, 고통 속에 살아가는 이들의 눈물과 한숨과 피로 제단을 삼으려 했습니다. 그런 부름에 뜻 있는 사제들의 자발적인 응답이 정의구현 전국사제단이었습니다.

사제단은 그 어둡던 시절 새벽을 여는 여명 같았고, 그 암울했던 시대의 절망에 맞서는 희망의 칼과도 같았습니다. 그 당시 시대의 부름, 요청은 간명했습니다. 모든 불의와 부정의 근원은 정치권력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집권세력의 국민의 뜻을 뒤집고 권력을 부당하게 강탈했습니다. 권력을 유지하고 확대하기 위해 온갖 억압과 부정을 저질렀습니다. 국민 주권을 철저하게 능멸하고, 최고 권력자 중심의 봉건적 유일체제를 강제했습니다.

정치 분야에서의 만행에 그치는 게 아니었습니다. 경제 사회 모든 부문에서 자행됐던 착취, 억압, 불평등, 불공정, 차별, 배제 등의 중심에도 정치권력이 있었습니다. 정권은 이 모든 불의의 기획자였고 집행자였습니다. 재벌은 이런 정치권력의 비호 아래 노동자를 억압하고, 착취하고, 배제했습니다. 재벌을 보호 육성하기 위해, 정권은 저곡가 정책으로 농촌을 파괴하고, 이농을 부추겨 도시를 비대화시키고, 산업예비군을 양산해 저임금을 구조화했으며, 살인적인 저임금과 부당노동행위를 유지 강화하기 위해 노동자를 탄압하는데 직접 공권력을 투입했습니다. 자본은 공권력 뒤에 숨어 온갖 비인간적 착취를 강화할 수 있었습니다. 정권의 보호 속에서 재벌은 괴물로 성장합니다.

이런 기획과 통제와 억압을 합리화하는데 유효하게 동원한 것이 북한의 존재, 곧 침략 위협이었습니다. 정부의 기본권 박탈을 비판하고 인권 유린에 저항하고, 자본의 착취에 맞서는 모든 행동과 심지어 생각까지도 모두 빨갱이로 몰았습니다. 당대의 모든 억압의 중심엔 정치권력이 있었습니다. 시대적 주요 모순은 부정한 정치권력이었습니다.

따라서 시대적 과제, 시대의 부름 또한 간단하고 명료하게 정리됐습니다. 정치권력의 민주화였습니다. 정치권력은 냉전 이데올로기라는 이념적 악의 뿌리였고, 주권재민의 기본적 시민권을 부정하는 악의 뿌리였고, 경제적 착취와 불평등을 강화시키는 악의 뿌리였고, 사회적으로 약자에 대한 차별과 배제를 고착시키는 악의 뿌리였고, 종교까지도 물신주의에 포박시키는 악의 뿌리였습니다. 따라서 정치권력의 민주화가 시대적 과제였고, 거기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면 됐습니다. 양심적인 종교인과 지식인 학생을 중심으로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이 이에 연대하는 방식으로 운동이 진행된 것은 이런 까닭이었습니다.

험악했습니다. 주교까지 구속시키는 마당이니, 일반 사제나 신앙인, 지식인 학생을 포박하는 건 일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혼란은 없었습니다. 시대의 징표가 분명했고, 빛과 어둠, 선과 악이 선명했습니다. 시민들 역시 물리적 억압에 눌려 있을 뿐,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은 이미 내려져 있었습니다. 당시 모든 사안에 적용하던 빨갱이 공식은 두려움의 대상일 뿐이지, 시비는 논의의 대상에도 끼지 못했습니다. 인혁당 사건 등 온갖 조작 사건들은 오히려 시민의 눈을 맑게 씻어주었습니다.

 

개량 국면에서의 혼란

 

전두환 정권이 물러나면서 상황은 서서히 바뀌었습니다. 6.29선언에서부터 시작한 개량 국면은 명료한 판단을 흐리기 시작했습니다. 김영삼과 민주당의 3당 합당은 시대적 명료성을 더욱 흔들어 버렸습니다.

운동은 두 가지 방향으로 전개됐습니다. 하나는 여전히 한국 사회를 옥죄고 있는 분단 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통일 운동, 다른 하나는 노동자 농민 교육 언론계 등의 민주화 및 권익 운동이었습니다. 성과도 적지 않았습니다. 각종 반민주적 법제는 정상화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각 부문에서 권익은 상당히 신장되었습니다.

그러나 분단 모순은 변함없이 강고한 위력을 발휘했습니다. 정상 사회로 나아가는데 결정적인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노태우 정권 때 일정 부분 대북 유화정책을 펼치긴 했지만, 국내 수구세력의 권력 장악 및 정국 주도권 장악 정략에 의해 중도에 포기됐습니다. 서경원 및 임수경 방북 사건은 오히려 수구세력 총궐기의 계기로 작용했습니다.

이는 민주화를 추진했던 정치권은 영호남 세력의 분열과 이와 함께 폭발했던 지역 모순으로 말미암아, 부활하는 냉전 이데올로기를 저지할 수 없었습니다. 냉전 이데올로기는 이제 좌파와 우파, 진보와 보수를 나누는 기준이 되었습니다. 수구세력은 반민주적 지향과 탐욕을 숨긴 채 친북과 반북 진영으로 나누려 했고, 이는 김영삼 세력이 민정당 공화당과 함께 3당 통합을 하면서 구체화됐습니다. 이제 민주와 반민주는 졸지에 호남과 비호남, 좌파와 우파, 진보와 보수, 친북과 반북으로 반전됐고, 헤게모니는 수구세력에게 넘어갔습니다. 이 색깔은 노동계 교육계 정치권에 덧씌워졌습니다.

수구세력이 주춤하는 사이 크게 신장한 자본 권력이 전면에 나섭니다. 정경유착, 온갖 특혜와 부정, 횡령, 배임 등의 범죄를 저지른 집단이 이제 좌우, 진보 보수라는 인위적 편가름 속에서 보수와 우파의 기둥으로 들어선 것입니다. 특히 1980년대 이후 세계적으로 그 위력을 떨치던 신자유주의 물결은 정치권력도 쉽게 넘보기 힘든 위상을 자본에 부여했습니다. 자본은 삶의 일상을 간섭하고 통제하게 됩니다.

시장과 자본이 지배적 위치를 차지하면서, 좌우 진보 보수 따위의 진영 논리가 담론을 지배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옳고 그름, 밝음과 어둠, 인간과 비인간 따위의 논의는 뒤로 밀렸습니다. 네 편이냐 내 편이냐로 나뉘게 됩니다. 공동선에 대한 관심도 애정도 그리고 관념 자체도 희미해졌습니다. 모두가 저의 이익을 위해, 제 밥그릇을 더 키우기 위해 싸운다는 식의 관념이 우리의 머리를 채워버렸습니다. 사회적 갈등, 분규를 이해다툼으로 환원시켜버리는 것입니다.

거기에 분단 모순과 지역 모순이 덧입혀져 수구세력은 다시 천년 왕국을 꿈꾸게 됐습니다. 다시 어둠이 찾아온 것입니다. 그러나 그건 독재 체제 아래서의 칠흑 같은 어둠이 아니라, 백야처럼 밤 같기도 하고 낮 같기도 한 그런 회색의 시대였습니다. 모두가 갈피 잡기 힘들었습니다. 지역도 나뉘고, 시민 사회도 나뉘고, 종교계도 나뉘고, 운동권도 나뉘고, 거대한 분열의 시대였죠. 그만큼 자본과 수구세력의 기획은 정교했고, 집요했습니다.

그러나 그 사이 새로운 모순이 깊어지고 넓어지고 무거워졌습니다. 강화되는 자본의 지배와 시장만능주의의 모순이었습니다. 이미 교황도 말씀하시고, 앞선 혜안의 교부들이 지적하신 가난과 불평등의 문제입니다. 자본은 자기모순에 빠져, 저 자신을 파괴하기에 이르렀습니다. 1997년 외환위기의 폭발이 그것입니다. 핫머니 위에서 허장성세를 부리다가 김영삼 정부는 동아시아의 외환위기 속에서 몰락합니다. 그 결과 민주 정권이 들어섭니다만, 경제 파탄의 짐은 가난한 이들에게 돌아갔고, 불평등과 불공정은 더 깊어졌습니다. 게다가 국제통화기금, 곧 세계의 투기자본들은 우리 경제를 저들의 놀이터 혹은 먹이감으로 제도화했습니다.

민주정부라고 하지만, 국제적인 투기세력의 압력을 거부할 수 없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결국 권력은 시장에 넘어갔다고까지 말했고, 스스로를 좌파 신자우주의자라고 조소했습니다. 시장에 굴복한 민주 정부를 자본은 손가락질 했습니다. 정부도 길을 잃고, 시민도 길을 잃었습니다. 그 사이 이명박, 박근혜 정권이 들어섰습니다. 아이엠에프 사태는 정치권력을 민주세력에 넘겨주는 계기가 되었지만, 동시에 자본과 시장주의 이념에 헤게모니를 양도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무언가 잘못되었습니다. 국가 경제를 파탄낸 자본이 더 강화된 지위를 차지하다니.

무언가 잘못 돌아가는 것은 알았지만, 그 실체를 알아차리는 데는 적잖은 시행착오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이명박 정권이 시장을 모두 개방하고, 자본의 폭력에 저항하는 서민들을 도시 게릴라로 규정해 살인적으로 진압하고, 정부 재원을 토건족에게 몰아주면서 점차 깨닫게 됩니다. 용산참사, 4대강 사업, 각종 공공재의 민영화, 쌍룡차 노동쟁의 살인적 진압, 각종 용역 폭력의 난무 등이 그것입니다. 새로운 독재 곧 자본의 독재체제가 우리 안에 들어서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결과는 불평등의 심화였고, 성장 속에서도 빈곤은 깊어지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폭력의 근본은 가진 자의 탐욕입니다. 탐욕은 약자에 대한 억압 곧 폭력으로 나타나는 것이죠. 이제야 분명해졌지만, 가진자의 더 갖기 위한 폭력, 그것이 오늘의 시대를 지배하는 주요 모순입니다.

 

우리 시대의 징표

 

프란치스코 교황은 말씀하셨습니다. “극소수의 소득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어, 절대 다수의 사람들과 격차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런 불균형은 시장과 금융투기를 완벽하게 허용하라는 이데올로기가 관철된 결과다. 그로 말미암아 무자비한 독재체제가 만들어졌다. 고삐 풀린 자본주의는 새로운 형태의 독재다.” 교회가 할 일은 자명합니다. “교회는 무엇보다도 가난한 이들과의 연대와 평화의 증진을 강조해야 합니다. 현재의 자본주의 경제체제는 근본적으로 불공정합니다. 적자생존의 경제는 사람들을 쓰고 버리며, 사람을 죽이고 있습니다. 시장 자율이라는 폭정 속에서 고통받는 가난한 사람들을 교회는 최우선적으로 선택하고 돌보아야 합니다.”(복음의 기쁨)

교황은 묻습니다. “주님께서는 카인에게 물으셨다. ‘네 아우 아벨은 어디 있느냐.’ 여러분께 묻습니다. 지금 당신의 형제자매는 어디에 있는가.” “우애의 의무를 저버리는 것이 저 수많은 전쟁과 숱한 불의의 뿌리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인류가 겪는 극심한 경제위기도 결국 신으로부터 이웃으로부터 멀어져 탐욕스럽게 물질만 추구한 결과입니다. 평화로 가는 유일한 길은 우애를 재발견하는 것입니다.”(평화의 날 메시지)

박근혜 정권의 문제는 선거 과정에서 정부기관들이 심각한 선거부정을 저질렀고, 부정 속에서 탄생한 정권이 그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왜곡하고 은폐하려 했고, 이를 위해 다시 정보기관이 정치공작과 사찰을 벌이고, 검찰총장과 수사팀을 찍어냈다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경제민주화 등 선거 과정에서 국민에게 한 약속을 대부분 뒤엎고, 이명박 정권과 다름없이 아니, 그보다 더 심각하게 자본의 도구가 되고 있다는 사실은 더 큰 문제입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용자와 피고용자 등 경제계 안의 각종 불공정과 불공정을 해소하겠다는 공약은 이제 온데 간데 없습니다. 철도 민영화 문제, 영리 병원은 물론 가스 수도 등 각종 공공재를 자본의 먹잇감으로 넘겨주고 있습니다. 이명박 정권이 포기했던 것들입니다. 두 분의 생명을 앗아가면서까지 송전탑 공사를 강행하는 것도 그 연장입니다. 원전 확대 정책과 맞물려 있는 것입니다.

당연한 결과이지만, 노동자는 생산의 수단일 뿐 경제의 주체는커녕 존엄성 자체를 인정받지 못합니다. 철도 노조에 대한 초강경 대응은 전체 노동자들에 대한 선전포고였습니다. 1987년 민영화되기 전 일본 국철노조는 일본의 노동계 총련을 이끄는 버팀목이 었습니다. 그러나 민영화 이후 철도 노조는 와해되고, 일본노동조합총평의회(총평) 또한 해체됩니다. 자본의 무자비한 공세 앞에서 약자인 노동자는 스스로를 보호할 연대의 틀을 잃어버렸습니다. 민영화를 강행한 나까소네 수상은 회고록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국철 민영화는 총평 해체를 위한 것이었다고.

이 정부가 말도 안 되는 철도 경쟁체제 도입 운운하는 것도 결국 노조를 와해시키고, 노동자들을 광야에 내던져 포식자 자본의 먹이가 되도록 하려는 것일 뿐입니다. 이미 전교조를 법외노조로 내몰았고, 공무원노조를 불법화했습니다. 그 다음이 철도노조 손보기였으니, 그 의도는 이제 선명한 셈입니다. 일본철도 민영화 과정에서 107명이 자살했습니다. 그리고 민영화 이후 100여명이 더 자살했습니다. 6~8만여 명이 해고됐습니다. 남은 이들은 계약직 임시직으로 밀려났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말했습니다.

오늘날은 경쟁과 적자생존의 법칙은 사람을 착취하고 쓰다 버립니다. 사회에서 배제된 사람은 더 이상 사회의 밑바닥이나 변방에 속한 것이 아니라 사회의 일원도 아니며, 버려진 잉여가 됩니다.” “‘살인하지 말라는 십계명은 사람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분명한 규범입니다. 우리는 배제와 불평등의 경제에 대해 그래서는 안 된다고 말해야 합니다. 이런 경제는 사람을 죽입니다. 늙고 집 없는 사람이 노숙하다가 죽었다는 것은 뉴스가 되지 않지만, 주가지수가 2포인트 떨어졌다는 것은 뉴스가 된다. 어떻게 이럴 수 있습니까.”

교황은 이렇게 말씀하기도 했습니다. “돈과 권력을 절대적으로 여기는 태도 뒤에는 하느님에 대한 거부가 도사리고 있다. 자유시장이 절대화되면 시장이 통제할 수 없는 하느님은 심지어 위험한 존재로 여겨진다.” “하느님은 모든 형태의 노예상태에서 해방되길 원하신다.”

이제 전체주의로 치닫는 자본주의, 폭군이 되어버린 금융자본, 새로운 신이 되어버린 돈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이 시대의 가장 큰 과제일 겁니다. 그냥 두면 거듭되는 금융위기와 고질화되는 경기침체로 스스로를 파괴하지만, 그 고통의 결과는 가난한 이들, 스스로를 보호할 수 없는 약자들에게 돌아갑니다. 부자들은 더 많은 자산을 갖게 되고, 체제는 더욱 더 전체주의화합니다. 나치즘은 20세기 초 세계적인 공황 속에서 탄생했습니다. 이를 막기 위해서도 인간에 의해 통제되는 시장,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를 추구해야 합니다.

 

거리의 교회

 

자본의 기획과 폭력은 정교합니다. 합법, 합리, 효율 등의 거죽을 둘러쓰고 있기 때문에 그 악마성을 확인하고 고발하기 힘듭니다. 게다가 일자리를 주고, 돈과 먹거리를 주는 신의 권세를 행사하기 때문에, 저항했다가는 밥그릇마저 빼앗기고 사회에서 배제되기 때문에, 함부로 저항할 수도 없습니다. 삼성의 무노조 경영, 이 정권의 노조 파괴 정책은 그 본보기입니다.

정치권력이 기획의 중심이었을 때는 정치권력과 총론적으로 싸우면 됐습니다. 하다못해 부당한 정치권력에 대해서는 저항권이란 것도 존재합니다. 그러나 자본에 대해서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모든 게 개인의 선택 문제로 환원됩니다. 싫으면 떠나라, 왜 안에서 소란 떠는가. 그 앞에서 대부분 주저합니다. 계약에 따른 임금, 계약에 따른 도급, 계약에 따른 임시고용, 계약에 따른 해고 아닌가! 대개의 정부는 이런 악마적인 계약을 법의 이름으로 보호합니다.

그러나 악법이 법이 아니듯이 불공정한 계약은 계약이 아닙니다. 박근혜 대통령도 후보 시절 그렇게 말했습니다. 불공정을 없애고, 불평등을 해소하겠다고 약속도 했습니다. 불공정, 불평등에 대해서는 신의 이름으로 바로잡아야 합니다.

순교자 로메로 대주교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자유로이 살도록 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존엄을 지니고 살게 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정의를 위해 싸울 수 있는 힘을 주셨습니다.”

자유와 존엄과 정의를 위한 싸움은 이제 더욱 더 정교하고, 치열해야 합니다. 그 답으로 프란치스코 교황이 제시한 말씀이 거리로 나가라입니다. 거리란 저 도로를 말하는 게 아닐 겁니다. 현장입니다. 자유와 존엄과 정의가 억압당하는 현장, 그것을 지키기 위해 얻어맞고 밟히는 현장을 말하는 것입니다. 1980년대 초 우리나라에 번역된 성인 지옥에 가다라는 책을 기억합니다. 빈민촌 사니에 들어가 빈민들과 함께 노동하고, 고통을 함께 나누며, 그들을 대변하는 피에르 신부 이야기입니다. 그의 열정과 헌신은 지금까지도 큰 감동으로 남아 있습니다. 주교님과도 갈등 속에서도 현장을 떠나지 않습니다. 단 한 마리의 가엾은 양도 잃지 않기를~ 파리 대교구 추기경의 유언은 그에게 큰 힘이 됩니다.

현장은 그곳만이 아닐 겁니다. 이주민 노동자, 비정규직, 교육 노동자, 공공부문 노동자 그리고 배회하는 청년 실업자, 낙담한 노년층 등 현장은 무수하게 많습니다. 가진자의 이데올로기를 합리화하고 주입하는 경쟁주의 교육의 현장은 특히 주목해야 합니다. 그런 곳에 공소를 세워 희망의 깃발을 꽂아야 할 것입니다.

이제는 정치권력만을 상대로 자유와 존엄과 정의를 주장하면 되던 때와는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정치권력이 모든 부문을 획일적으로 기획하고 통제할 수 없습니다. 그런 방식은 자신을 위해서도 너무 위험하다는 것을, 그리고 효과도 크지 않다는 것을 가진자들의 정권은 잘 압니다. 쟁의하는 노동자를 이제는 공권력이 진압하지 않습니다. 민간 사업장에선 용역 폭력이 합니다. 노동부, 경찰 등이 노조를 파괴하지 않습니다. 용역 기획자들이 하고 있습니다. 노동 쟁의를 근본적으로 어렵게 하는 것도 감시 통제가 아니라, 손배소송 곧 돈으로 합니다. 파업에 나섰다가는 집안 기둥뿌리가 뽑힐 수 있으니, 투옥되는 것보다 훨씬 더 압박감이 큽니다. 노동부 등 정부는 외곽에서 자본을 지원할 뿐입니다.

정치권력의 비호 속에 이뤄지는 자본의 정교한 기획과 통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마찬가지로 치열한 삶과 현장에 대한 이해와 대책에 대한 고민이 필요합니다. 그동안 부당한 정권과 탐욕스런 자본은 머리를 싸매고 모든 부문에서 통제 시스템을 강화하는데 노력했습니다. 신자유주의 혹은 시장만능주의와 효율성의 신화, 성장과 트리클 다운 등의 신화를 만들어냈습니다. 그 속에서 삶은 더 가난해지고, 더 불안해지고, 더 혼란스러워졌습니다만 사람들은 그저 지켜보기만 했습니다. 파이가 커지면 나눌 것도 많아지고, 물이 차면 흘러넘친다는데~. 이들을 대변한다는 사람들 역시 절차적 민주화에 만족해 그것을 방관했습니다. 그 사이 교황께서 우려한 새로운 독재체제, 인간을 잉여로 내쫓고, 결국 사람을 죽이는 그런 체제가 등장한 것입니다.

한때 사람들은 정치권력의 공포 앞에 굴복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사람들은 근엄한 자본 앞에서 알아서 굴종합니다. 스스로 그 노예가 됩니다. 일자리, 임금, 승진, 보직 등 자신과 가족의 삶을 틀어쥐고 있는데 어찌 거부할 수 있겠습니까. 대다수 정치권력도 거기에 봉사하고 있습니다.

총론도 중요하지만, 각론을 강화해야 합니다. 정치권력이 자본의 폭력과 만행을 방기하고 비호하는 것을 막아야 하지만, 자본이 인간성을 파괴하는 것을 세심하게 파악하고, 저지해야 합니다. 거리로 혹은 바닥으로 가야 합니다. 거기에서 한편으론 자유와 존엄성을 깨워내야 하고, 한편으로 이를 교묘하게 억압하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그러자면 각 부문의 현장에서, 더 열심히 공부하고, 더 헌신적으로 삶을 나누며, 더 치열하게 싸워야 합니다. 공공 부문의 노조에도 많은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을 모르면 권력이나 자본에 이길 수 없습니다. 제 안의 어둠에도 능통해야 합니다.

총론과 싸울 때는 그 빛이 세상에 잘 드러납니다. 그러나 각론에 들어가면 그 행함이 드러나기 힘듭니다. 외롭고 고통스러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래야만 사람들의 마음을 모아낼 수 있고, 세상을 밝힐 수 있습니다.

아시겠지만, 멕시코엔 세르지오 구티에레스 신부가 있습니다. 황금가면의 프로레슬러. 23년 동안 익명의 착하고 선한 그러나 최고의 기량으로 아이들에게 희망을 줬고, 그렇게 번 돈으로 3000여 명의 고아들을 거두고 교육시킨 신부입니다. 그에겐 절망한 고아들이 현장이었을 것이고 이 문제를 해결하는 수단으로 링 위에 올랐을 겁니다. 같은 이름의 구티에레스 신부님이 페루에도 계십니다. 공산주의 혹은 파격주의로 지탄받았던 해방신학을 정초하셨습니다. 모두 역사적 현실 속에서 살고 모순을 극복하려 하셨던 분들입니다.

올해로 사제단 40. 이제 다시 거리에서 태어나는, 노동의 거리, 빈민의 거리, 농민의 거리, 청소부 아줌마들의 거리, 교육의 거리, 그리고 분단을 핑계로한 억압의 현장에서 다시 태어나는 사제단을 생각해봅니다.

 
 
 

기타/세상에...

정의구현사제단 2011. 3. 24. 16:43

미 ‘30개월이상 쇠고기’ 밀어붙일 ‘각본’ 있었다

당근책 제시해 ‘촛불집회’ 이전의 요구 관철 노려
한국정부 “FTA와 쇠고기는 별개” 안이한 대응
전문가들 “수입조건 강화 위한 재협상 나서야”

출처 : 한겨레

한겨레 정은주 기자 메일보내기
» 미국산 쇠고기 수입 추이 (※ 클릭하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국시장 전면개방’ 전략

한국의 쇠고기 시장을 전면 개방시키려는 미국의 시나리오가 드러남에 따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여부와 별개로 ‘월령 30개월 이상’ 미국산 쇠고기가 한국 시장에 다시 상륙할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화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2008년 5월 정부가 약속한 대로 쇠고기 수입조건 강화를 위해 미국과의 재협상에 서둘러 나서야 한다고 강조한다.

■ ‘신뢰 회복’ 구체적 조건 명시 미국 의회조사국(CRS)이 펴낸 보고서를 보면, 미국은 미국산 쇠고기의 한국 수출이 더욱 늘어날 경우 우리나라 정부를 압박해 쇠고기 시장 전면 개방으로 가는 ‘확실한 약속’을 받아내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이를 위해 미국 농무부는 2009년 8월 이미 ‘4가지 세부 전제조건’을 마련했다. 2008년 4월처럼 아무런 조건 없이 미국산 쇠고기 전면 개방에 털컥 합의했다가는 한국 정부가 또다시 국민 저항에 부딪힐 수 있다는 우려를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월령 30개월 이상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을 제한하고 있는 현행 농림수산식품부의 장관 고시에는 ‘한국 소비자의 신뢰가 회복될 때까지’라는 민간 자율 규제가 명시돼 있는데, 신뢰 회복 여부를 가늠할 수 있는 구체적 조건을 제시한 것이다. 3년이나 5년간 미국에서 광우병이 추가로 발견되지 않으면 30개월 이상 쇠고기도 수입한다거나, 미국 쪽은 미국산 쇠고기의 한국 수입시장 점유율이 일정 정도 도달하면 한국 소비자의 신뢰가 회복됐다고 간주한다는 등의 조건이 그것이다. 그러면 한국 쇠고기 시장 전면 개방이 언제 이뤄질지 구체적 시점을 확정할 수 있다.

 

■ 미국 쇠고기 수입 급증 미국은 지난해부터 한국 소비자의 신뢰가 회복됐다는 주장을 펴며 애초 합의대로 시장을 전면 개방하도록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신뢰 회복의 근거로는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이 지난 몇년간 급증했다는 점을 들었다. 실제로 2007년 6%에 그쳤던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시장 점유율은 2008년 15%, 2009년 26%로 오른 데 이어 지난해엔 32%까지 상승했다. 특히 지난해에는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액이 5억1800만달러로 2009년보다 140%나 늘어났다.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견되기 전인 2003년과 비교해도 3분의 2 수준에 이른다. 미국육류수출협회 한국지사가 2009년 12월부터 ‘신뢰회복 캠페인’을 벌이고, 대형마트가 공격적으로 미국산 쇠고기를 판매한 결과로 풀이된다.

 

■ 쇠고기 재협상해야 한국 시장 개방을 위해 미국 쪽이 온 힘을 기울이는 것과는 달리, 우리 정부는 안이한 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2009년 8월 미국 농무부가 새로운 전제조건을 달아 쇠고기 전면 개방을 보장하라고 요구하고,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지난해 10~12월 진행된 한-미 자유무역협정 재협상에서 쇠고기 문제를 제기했는데도, 한국 정부는 한-미 자유무역협정과 쇠고기 문제는 별개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올 상반기에 한-미 자유무역협정 비준동의안이 국회를 통과하도록 미국의 요구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가 나중에 쇠고기 시장 전면 개방을 미국 쪽과 협의하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이에 대해 박주선 민주당 의원은 “미국 쪽이 쇠고기 문제를 지속적으로 요구하는데 정부는 이를 숨기기에 급급하다”며 “2008년 5월 약속한 재협상을 이제 이행할 때”라고 지적했다.

 

2008년 5월 정운천 당시 농식품부 장관은 ‘쇠고기시장 전면개방 진상규명 및 대책 마련을 위한 청문회’에서 “일본, 대만, 중국이 미국과의 쇠고기 협상에서 한국보다 조건이 더 유리하게 타결하면 재협상을 확실히 요구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현재 일본은 20개월 미만, 대만은 30개월 미만의 미국산 쇠고기만 수입하고, 중국은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을 전면 금지하고 있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기타/세상에...

정의구현사제단 2011. 3. 24. 16:40

미, 쇠고기 전면개방 요구 예고

“한국 수입시장 점유율 상승 등 전제조건 달아”
4가지 세부방안 등 담은 의회 보고서 발표
기존 합의서 놔둔 채 ‘서한 교환’ 방식 추진


 

출처 : 한겨레
한겨레 정은주 기자 메일보내기
» 미 의회 한국 쇠고기시장 전면개방 전략

 

미국 정부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몇가지 전제조건을 달아 쇠고기 시장의 전면 개방을 보장하는 약속을 하도록 요구할 것임을 보여주는 미국 의회 문서가 공개됐다. 미국 의회조사국(CRS)이 지난 3일 발표한 ‘한-미 쇠고기 분쟁: 이슈와 현황’ 보고서를 보면 “한국 소비자가 미국산 쇠고기를 더 많이 구입하고 광우병 확산을 막는 미국의 조처가 효과적이라고 확신하면 미국이 한국 정부에 쇠고기 시장을 전면 개방하도록 강력히 요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돼 있다.

 

보고서는 “두 나라의 수출·수입업자가 합의해 현행 자율규제를 없애거나 세부 전제조건을 달아 시장 전면 개방을 한국 정부와 합의할 수 있다”고 지적한 뒤, 미국 농무부가 2009년 8월 내세운 4가지 ‘세부 전제조건’을 제시했다. ‘한국 소비자의 신뢰가 회복될 때까지’라는 기존 자율규제를, 이 세부 전제조건으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우리 정부는 2008년 4월 이명박 대통령의 첫 방미 때 한-미 자유무역협정의 전제조건으로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전면 허용과 검역 주권 포기를 합의하고, 이를 반영한 미국산 쇠고기 수입위생조건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고시로 채택했다.

 

그런데 촛불집회로 국민적 저항이 일자 ‘한국 소비자의 신뢰가 회복될 때까지’라는 전제조건을 붙여 미국 육류수출업자와 한국 수입업자가 자율규제로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입을 제한하기로 했다.

 

미국 쪽은 지난해 미국산 쇠고기의 대한국 수출액이 전년보다 140%나 늘어난 5억1800만달러어치로, 시장 점유율이 32%까지 오른 것을 신뢰 회복의 ‘신호탄’으로 해석한다.

 

보고서를 보면 미국은 우선 3년, 5년, 10년 등 미래의 일정 기간 미국에서 광우병이 추가로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조건을 붙여 쇠고기 시장의 개방 확대를 한국 정부에 요구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 또 수입검역 조건을 위반한 사례가 일정 기간 나타나지 않을 것 또는 현행 민간 자율규제를 일정 기간으로 제한할 것을 조건으로 내세울 수도 있다. 미국산 쇠고기의 한국 수입시장 점유율이 일정 정도에 이를 경우 미국 육류수출업자가 한국 소비자의 신뢰가 회복된 것으로 보고 쇠고기 시장을 전면 개방시키겠다는 조건도 제시했다.


» 미국 의회조사국(CRS)이 지난 3일 발표한 ‘한-미 쇠고기 분쟁: 이슈와 현황’ 보고서 중 일부.

이밖에도 세계동물보건기구(OIE)에서 ‘광우병 위험 통제국’으로 등급을 매긴 미국이 한 단계 높은 ‘광우병 청정국’ 등급을 받으면 쇠고기 시장을 전면 개방하는 조건도 가능하다고 명시돼 있다. 보고서는 우리 정부가 이런 조건에 합의하면 2008년 4월 서명한 쇠고기 합의서는 그대로 둔 채 한-미 자유무역협정 재협상 때처럼 통상당국자간 ‘서한 교환’(exchange of letters) 방식으로 기존 자율규제를 수정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박상표 국민건강을 위한 수의사연대 정책국장은 “우리 정부는 미국 쪽이 제시하는 꼼수에 이끌려 미국산 쇠고기를 전면 개방할 것이 아니라, 일본이나 대만과 동일한 조건으로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도록 되레 재협상을 요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과 달리 일본은 미국이 ‘광우병 위험 통제국’ 지위를 얻은 뒤에도 20개월 미만의 쇠고기만 수입하고, 대만은 자국 법령으로 내장·분쇄육 등 특정 부위의 수입을 여전히 금지하고 있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