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찾아서-문정현신부

정의구현사제단 2010. 10. 8. 11:17

 

평화바람 일으키려 다시 길 위에 서다

문정현-길 위의 신부 91 -마지막회

 

» 서울 명동성당에서 ‘천주교의 개혁과 참회’를 요구하며 두 달 가까이 홀로 기도 농성 중인 문정현 신부가 7일 오후 명동성당 경내에서 성경 서각 작업을 하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2007년 4월 평택 대추리에서 2년 남짓 살다 쫓겨나 익산의 작은 자매의 집에 돌아온 뒤 나는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한 채 공황상태에서 한참을 보냈다. 그러다 2008년 1월24일 은퇴미사를 하고 작은 자매의 집을 떠났다. 작은 자매의 집 아이들을 떼놓는 일은 가슴을 도려내는 아픔이었다. 하지만 후임 사제와 작은 자매의 집 일꾼들을 위해 은퇴한 뒤에는 한 번도 발길을 하지 않았다. 지금도 작은 자매의 집 아이들을 생각하면 절절한 그리움에 눈물부터 난다.
 

그 뒤 군산 미군기지 앞 옥봉리에 평화바람의 터를 잡아 살던 중 2009년 1월20일 용산 남일당 참사가 일어났다. 그리고 2월16일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하셨다. 추기경 조문 갔다가 순천향병원 영안실에 들렀다. 강도 같은 공권력에 희생된 다섯 분 유족들의 고통에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착한 사마리아 사람이 되어야 할 때였다.

 

나는 나만큼이나 노쇠한 평화바람의 꽃마차(미니버스)를 끌고 올라와 남일당으로 들어갔다. 철거민들과 함께 부당하고 잔인한 공권력에 맞서는 일은 하루하루 큰 고통이었다. 그러다 2010년 1월 11개월 만에 그곳을 떠나야 했다. 1년 가까이 유가족과 철거민들을 외면하던 정부는 2009년 연말이 지나기 전 서둘러 용산참사 사태를 마무리지으려 했다. 유가족과 철거민들은 지쳐 더 싸울 기력이 없었다. 나는 대추리 때와 마찬가지로 당사자들의 의견을 존중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나는 명동성당에서 기도를 하고 있다. 8월10일부터 날마다 명동성당 한구석에 앉아 세상의 모든 아픔을 모아 하느님의 제단에 바치는 심정으로 기도를 하고 있다. 명동성당은 한국 천주교회의 모태이며 지난 시절 죽음과 고난의 역사를 헤쳐온 민주화의 성지다. 그런데 지금의 명동성당은 세상과 벽을 쌓고 있다.

 

지난여름 4대강 사업의 중단을 촉구하는 사제들의 단식기도 때, 서울대교구 관리국에서는 영업방해라며 가톨릭회관 앞 주차장에 설치한 기도처 천막을 강제철거했다. “우리 성당은 우리가 지킵니다. 나가주십시오. 신자들이 기다리는 본당으로 돌아가십시오. 로만칼라를 벗고 미사를 하십시오!”라고 외치는 명동성당 사목회 임원들을 보며 안타깝기보다 참담했다. 사제서품 40년을 넘어 금경축을 앞둔 내 사제 인생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나는 민주화의 성지, 명동성당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사실 명동성당은 네 것 내 것 따질 수 없는 우리나라의 성당이다. 서울대교구 교구청, 그리고 명동성당의 이기적이고 편협한 행태는 바로 교구장 정진석 추기경의 영향이라 믿는다.

 

4대강 사업 반대는 한국 천주교회 주교단의 결정이었다. 그러나 서울대교구 교구장인 정 추기경은 주교단의 결정을 따르지 않았다. 오히려 권력자들의 비위에 맞는 발언을 일삼았다. 주교단의 결정사항을 파기하면서 한국 주교회의를 비하하는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4대강 사업을 둘러싼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의 행태는 참으로 부끄럽다. 주교회의의 결정을 따르는 사제들과 신자들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 그것이 바로 우리 교회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암울한 4대강의 생명평화 가치를 욕되게 했다. 정 추기경도 그 가치를 모르지 않을 터, 그런 언행을 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지난해 용산 남일당 미사 때도 그 아픈 현장에 정 추기경이 찾아주리라고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아쉬웠다. 용산참사는 성서에 나오는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의 구체적인 사례였다. 용산에서도 우리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은 최선을 다했다.

 

돌이켜보면 1974년 유신군사독재정권에 저항하면서 시작된 나의 사회사목 활동은 정의구현전국사제단과 늘 함께한 길이었다. 사제단은 우리 현대사에 기념비적 자취를 기록해왔다. 사제단의 모든 행동은 도덕적·윤리적·신앙적 판단으로 결정되었고 복음에 따라 실천했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는 사제단을 대화의 상대로조차 여기지 않지만 나는 항상 내가 사제단의 일원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더 철저하지 못한 부끄러움이 있을 뿐이다. 사제의 삶은 예수님의 십자가가 핵심이다. 순교다. 불의에 항거하다 죽는 것은 바로 하느님 앞에 영광일 뿐이다. 나는 후배 사제들이 주저없이 이 길을 택하길 바라 마지않는다.


40년을 길 위에 살면서 오늘의 현실에서 교회의 할 일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기도하고 물었다. 그러면서도 대교회적 언행은 극히 조심해왔다. 명동성당에서 기도를 시작한 지 한 달이 넘고 40일이 넘었다. 나는 앞으로 100일, 1000일이라도 명동성당에 상주하며 나 자신과 한국 교회를 위해 기도할 것이다. 바라건대 한국 천주교회가 순교자의 영성으로 우리 사회에 희망을 주는 불빛이 되기를 바란다. <끝>

구술정리/김중미 작가

고맙습니다. 신부님...
사랑합니다. 신부님...
건강하세요. 신부님
정구사원로 문정현,함세웅씨는 자기허물을 모른다. 둘다 시대착오적이고 함이 잘난척 나대다면,문은 모자라며 나댄다.
신부를 생략해 미안하지만, 그옷을 벗기를 희망한다ㅡ그 이유는 신자로서 그대가 솔직히부끄럽다.
이태석 신부님이 생명바쳐 사람낚는 신부였다면 그대들은 성당으로온 영혼들을 분열시키고,성당다니기 싫게 내쫓는
사탄같은 결과를 초래하고있다ㅡ제발 신부옷에"애비꼴 난다"붙이지마라ㅡ훗날 하느님이 성당믿으려온 영혼쫓은 책임을 물을거다ㅡ더 이상 젊은 정구사 후배사제에게 당신의 길을 택하게하지마라. 당신말고 이태석신부가 걸어간 길응 택하라고 하라. 추기경에게도 단둘이선 할말다하더라도 공식석상에선 순명하라ㅡ마지막 생을 북한에가 순교하세요
사랑하고 존경하는 신부님,
명동성당이 우리 한국천주교회의 상징이기에
그곳에 계심을 헤아려봅니다.
8월 12일 뵈었을 때에 " 그냥 기도하러 왔어."
심상하게 들었던 말씀이었는데
그렇게 아픈 마음 안고 계셨군요.
그래요. 신부님.
그렇게 자리 잡아 주셔서 고맙습니다.
지금, 그렇게라도 기도해 주시는 신부님이 아니시라면
저는 이 교회를 더 이상 희망으로 볼 수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홀로 계신 시간에도 늘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부디 건강하셔서 오래도록 기도에 앞장서 주십시오.
하고 싶으신 모든 말씀을 주님께 낱낱이 말씀드려 주십시오.
거기 그곳에 신부님이 계셔서
여전히 명동성당은 성지입니다.
아름다운 성지로 지켜 주심을 깊이 감사드리며 함께 기도드립니다.
글쎄요 좀 더 깊게 생각하시고 너무 아집에 집착하시지는 않으신지요?
쯔쯔쯔 제발 정신 좀차리세요.
투쟁할 대상을 찾아 다니시는군요. 평화와 화해를 위해 일하는 더 좋은 방법이 있을텐데...
시국선언이니 반미니 하면서...천주교 신자인 제가 봐도 정말 한심합니다. 4대강이니 뭐니 하면서 정부 뒤집을 생각 하지 말고 차라리 그럴 생각 하려면 북한 가서 선교하시지요!!
하느님께서 문신부님의 빗나간 열정을 안타깝게 보고계신다는 생각이 듭니다. 소외된 이웃과 함께 아픔을 나눈다는 소박한 생각이 진심이라면 이토록 세상의 기득권층 모두를 적으로 삼아 투쟁하는 일에 좀더 신중해지거나 온유해질텐데 말입니다.
차~암 운도 좋으신 분입니다. 남들은 먹고살려고 아웅바둥 일찿아 풀칠하는데 어찌도
운이좋아 평생을 일 않하고 운동만 하고도 살수 있는지 대단 하다고 생각됩니다.
소중한 사제 들의 모습이 참 안타가워요 제발 교단을 떠나 주시기 바랍니다 누구 종교을 비난하고 순교자처럼 행동하ㅣ는지요 .
특히 문정현 신부같은 사제는 참으로 안타까워요 종교를 더럽히는 악동 같아요 국가의 시책에는 사사 건건 반기를 들고 곳곳을 나타나니 자기가 무선 독립군으로 착각 하는지요 ? 종교의 이름 ㅓ떨치고 제의를 벗고 행동하시던지 요 .
혹 죄익이나 종북 졸북은 아니신지 사상이 의심스러워요
그럴정도의힘이 있으면 북한가서 선교 하다가 순교하시는게..
답답하고 한심하도다.
나름데로 신념이 있겠지만 내가 보기엔 아닌데...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 보세요. 당신이 옳은지...
북으로 가서 평화를 일으키기를 기도드립니다
제발 미친짓 그만하세요
관리자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는 댓글입니다

 
 
 

길을찾아서-문정현신부

정의구현사제단 2010. 10. 7. 14:31

 

935일간 타오른 대추리 촛불이 꺼지고…
문정현-길 위의 신부 90

 

» 2007년 4월16일 평택 대추초교에서 주민들과 지킴이들이 마지막 문화제인 ‘매향제’를 열어 마을의 유물·도장·투쟁 기록 등을 담은 항아리를 운동장에 묻고 있다.(왼쪽) 필자와 평화바람은 935일 만인 이날 ‘다시 돌아오겠다’는 기약을 남긴 채 대추리를 떠났다.
2006년 6월9일 청와대에서 6·10 항쟁을 기념하는 만찬이 열린다는 소문이 들렸다. 누구는 청와대에서 만찬을 즐기고 누구는 대추리 주민들 때문에 단식을 해야 하나 하는 생각에 서글펐다. 게다가 내가 월드컵과 무슨 인연이 있는지 그때도 월드컵이 열리고 있었다. 광화문에서 월드컵을 응원하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2002년 효순이 미선이 추모 촛불집회 생각이 났다. 그때 착잡한 마음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민가협을 비롯한 사회단체에서 방문을 오고 박순희·변연식이 동조단식을 하기도 했지만 청와대는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나는 21일 만에 단식을 접었다.
 

평택 범대위에서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과 함께 5월4일의 행정대집행 이후 설치해놓은 철조망과 군 막사에 대해 ‘군사보호시설 설정’의 위법성에 대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처음부터 군의 손을 들어주었다.

 

촛불집회는 농협창고로 옮겨 계속 열렸지만 주민들의 사기는 점점 떨어졌다. 결국 정부와 협상을 해야 될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마음으로는 협상을 받아들일 수 없어 며칠을 술로 살았다. 황새울영농단의 옥상에 올라가 철조망을 캠코더에 담다 보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도두리로 가는 논둑에 서서 울고, 고추밭에 주저앉아 울었다. 김택균 사무국장과 신종원 조직국장이 그런 나를 보러 왔다가 아무 말도 못하고 돌아가기를 몇 번이나 되풀이하다가 어렵게 말을 꺼냈다. “신부님, 이제 정부와 협상을 해서 끝을 봐야겠습니다.” 그런 말을 하는 두 사람의 어려움을 알기에 잠시 침묵하고 있다가 말했다. “그렇지, 싸워야 하는 사람은 주민인데 그들이 더 싸울 수 없다면 더 할 수 없는 거 아니겠어? 김지태 위원장도 없이 싸울 수도 없는 거고, 주민들 사기를 올리는 게 어렵다면 주민들의 의사대로 해야지.”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그런데 대추리를 지키려고 들어왔던 지킴이들이 반발했다. 울컥 화가 났다. 나 역시 대추리를 절대 빼앗기지 않겠다고, 내가 죽지 않는 한 내 발로 걸어서 나가지는 않겠다고 다짐했던 터였다. 그러나 겁에 질리고 지쳐 있는 주민들을 억지로 끌어 일으켜 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평화 지킴이들에게 마을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만 더 헤아리라고 말했다.

 

그렇게 대추리를 떠나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지킴이들은 대추리의 역사가 될 만한 것들을 그러모으고, 마을 구석구석을 영상으로, 사진으로 남겼다. 그러는 와중에 내 사제 서품 40돌 기념미사를 하게 되었다. 2006년 12월26일, 장소는 마지막으로 촛불집회를 해오던 농협창고였다. 정말 눈물겨웠다. 대추리를 지키기 위해 예술가들이 그려놓은 그림들이 있고, 날마다 촛불문화제를 열어 의지를 다졌던 그곳을 빼앗기고 나가야 하는 때에 기념미사를 드린다니 온갖 상념이 다 들었다.

 

2007년 4월7일 대추리의 마지막 문화제 ‘매향제’가 열렸다. 황새울에 세웠던 최평곤 작가의 ‘문무인상’을 태우고, 소원지와 희망의 솟대를 실은 꽃배를 메고 대추초교 운동장으로 모였다. 항아리에다 대추리의 유물, 마을 사람들의 도장, 지금까지 싸워왔던 모든 자료와 사진들을 그러모았다. 그리고 밀봉한 항아리를 땅을 파서 묻었다. 또 주민들의 절절하고 애틋한 마음을 향나무 판에 글로 써서 함께 묻었다. 그리고 그곳에 표지판을 세웠다. 나는 할아버지 할머니들과 얼싸안고 울고 또 울었다. 울면서 언젠가는 땅에 묻은 대추리 주민들의 한 많은 삶과 역사가 되살아나게 해달라는 기도를 드렸다. 그렇게 935일 동안 들었던 대추리 주민들의 평화 촛불이 꺼졌다.


» 문정현 신부
대추리와 함께한 시간이 3년이었다. 1년은 유랑길에서, 2년은 대추리에서 주민들과 함께했다. 그 시간은 기쁜 일보다 슬픈 일이 더 많았다. 대추리에 오기 전에는 무조건 공권력에 맞서 싸웠지만, 대추리에서는 그럴 수 없었다. 내가 경찰과 맞서려 앞으로 나가면 나보다 나이 든 할머니들이 쫓아와 함께 맞섰다. 그러다 여기저기 다치시는 걸 보면 어쩔 수 없이 뒤로 물러서야 했다. 정부는 협상 조건에 ‘문정현 신부도 떠나게 하라’는 조건을 걸었다. 그런 처지를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민주화 동지라는 사람들이 찾아왔다. 내가 대추리를 떠날 때 보기 좋게 떠날 명분을 주겠다며 입원을 하라고 했다. 나는 그런 것들이 다 마뜩잖았다. 나는 그날 주민들이 다 떠난 뒤 평화바람과 함께 맨 마지막으로 대추리를 나왔다.

구술정리/김중미 작가

평화바람과 함께 대추리를 떠나시는 신부님을 생각하니 눈물이 납니다.
그렇게 항상 낮은 곳에 계시는 신부님,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부디 건강하십시오. ^.^
미군 철수를 주장하라...북한에게 무혈 공산화를 시키는 것과 크게 다른 게 없네요. 우리나라 사람 맞나요? 진짜 가톨릭 신부인가요? 천주교 신자 입장에서도 정말 답답합니다. 주한 미군이 있었기에 우리나라가 북괴 도발로부터 안전했고 경제 발전과 함께 사회가 안정되었는데...문정현 신부님은 그런 건 모른 채 미군 철수라...참 한심합니다. 평소 욕 안 하는 성격이지만 저 윗 글들을 보니 당장 욕부터 나옵니다.

성직자라는 분이 정치에 개입하면 차라리 정치구현사제단으로 바꾸지 그러셨어요?? 그리고 저 밑의 웃는 그림을 보니 정말 가~관입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신부님, 수녀님들
뜻을 같이 하시는 모든 분들 감사합니다.
어려운 시절에 함께해주시는 고운 마음들 모두모두 고맙습니다..
이제 평신도들이 정치신부를 몰아내야 할 때입니다.
깨어 있는 평신도 ~~~

 
 
 

길을찾아서-문정현신부

정의구현사제단 2010. 10. 6. 17:11

‘황새울 작전’에 마을 초토화…청와대 앞에 앉다

문정현-길 위의 신부 89

 

» 2006년 5월4일 새벽 용역과 전투경찰 등 1만2000명을 투입한 ‘여명의 황새울 작전’이 시작되자 평택 대추초교에 모인 주민과 평화바람 활동가 등 지킴이 1000여명이 정부의 철거집행에 맞서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2005년 12월11일, 2차 평택 평화대행진이 열렸다. 프랑스 라르자크의 조제 보베, 남미의 국제농민단체인 비아캄페시나 회원, 일본 오키나와의 평화운동가들이 대추리를 방문해 함께 연설을 했다. 이어 대추리 범대위는 2006년 1월2일부터 2주 동안 전국 트랙터 순례를 했다. 그때 구호는 ‘올해도 농사짓고 내년에도 농사짓자’였다. 그래서 3월 논에 직파를 할 때 전국농민회에서 트랙터를 가지고 와서 함께 논갈이를 하고 발대식을 했다. 범대위와 <한겨레21>은 1월16일부터 ‘평택 평화의 땅 1평 지키기’ 모금운동을 펼쳐나가기도 했다.
 

그러나 정부는 끝내 치졸했다. 2006년 4월까지 몇 번이나 대추초교에 대해 강제 행정대집행을 하겠다고 엄포를 놓더니 5월4일 들어오겠다는 통보를 했다. 마을 주민들의 피와 땀, 역사가 고스란히 살아있는 아이들의 학교를 기어코 어린이날을 하루 앞두고 점유하겠다니 마을 주민들과 지킴이들은 초긴장을 했다. 그래서 전국 곳곳에 대추리를 지키러 와달라는 도움의 문자메시지를 전하고,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도 대기했다. 모두 다 초조한 마음으로 밤을 새우고, 신부들은 대추초교 지붕 위에 올라가서 살피고 있었다. 새벽 5시, 동틀 무렵 포클레인을 앞세운 용역 700여명과 1만2000명이나 되는 전투경찰이 새까맣게 몰려왔다. 그러나 행정대집행을 막기 위해 대추초교에 모인 지킴이들은 1000여명이 전부였다. 헬기가 철조망을 실어 나르고 공병대가 들어와 철조망을 치기 시작했다. 멀리 안성천 쪽에서는 부교를 놓고 온갖 중장비를 동원한 병력이 들어와 초소와 막사를 지었다. 군 병력만 2700명이었다. 국방부 말대로 ‘여명의 황새울 대작전’이었다.

 

우리 사제들이 지붕 위에서 ‘병력 철수’를 외치는 동안에 대추초교를 지키던 노동자·학생·주민들이 곧 진압당하고 말았다. 비명소리가 들리고 지킴이들이 피투성이가 된 채 교실 밖으로 끌려나왔다. 곤봉과 방패에 맞은 이들이었다. 운동장에서는 대추리 노인들이 통곡을 하며 경찰들의 무자비한 폭력에 항의하고 있었다.

 

오후가 되자 특공대는 지붕 위에서 버티던 13명의 사제를 억지로 끌어내리기 위해 사다리차를 동원했다. 나는 끝까지 지붕 위에서 버티려 했으나 연행자들을 석방할 것을 전제로 오후 5시쯤 내려오고 말았다. 한순간에 대추초교가 무너져내리는 것을 지켜본 노인들이 절치통곡을 하고 까무러졌다. 그날 연행된 사람은 600명이 넘었고, 200여명이 입건되고 40여명이 구속되었다. 부상자만 200명이 넘었다. 그날 저녁 촛불집회는 통곡의 집회였다. 다음날 다시 전투경찰이 마을로 몰려와 군화를 신은 채 집 안으로 들어가 숨어 있는 사람들을 체포해 갔다.

 

그렇게 무력으로 행정대집행을 한 뒤 정부는 대추리를 고립상태로 만들어놓았다. 대추리 어귀를 차단해 들어오려는 사람을 확인하고 주민들조차 주민등록증을 제시하게 했다. 사제단 신부들이 월요일마다 미사를 드리러 올 때도 번번이 허락을 받아야 했다. 그런 중에도 철조망 너머 황새울 들판에서는 모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그걸 바라보는 농민들의 심정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주민들은 6월7일로 예정된 정부와의 두번째 대화를 수용하기로 했다. 김지태 위원장이 대화를 위해 6일 평택경찰서로 자진 출석했다. 그런데 경찰은 그 자리에서 김 위원장을 구속해버렸다. 짓밟은 김에 아주 철저하게 짓밟아버리겠다는 심보였다. 사람들은 허깨비가 된 것 같았다. 노인들은 텅 빈 대추초교를 멍하니 바라보거나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논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촛불집회도 힘이 나질 않았다. 나 역시 평화바람 꽃마차에 들어가 울다가, 경찰서 앞에서 시위를 하다, 어찌할 바를 몰랐다. 지금까지 대책위를 이끌어온 위원장이 구속되니 주민들의 사기가 더 떨어져버렸다. 더욱이 김 위원장의 연로하신 어머니가 눈물바람을 하는 걸 더는 볼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청와대 앞에서 단식을 시작했다.


 

» 문정현 신부

청와대를 철통같이 지키니 관광버스로 위장을 하고 들어가 분수 앞에서 단식을 시작했다. 경찰들은 나를 끌어내려 하고 협박도 했지만 잡아갈 수는 없었다. 그 대신 방문객을 통제해 지지방문을 오는 사람들과 번번이 부딪쳤다. 대추리 노인들은 모판을 가져와 분수대 앞 화단에다 물을 대고 모내기를 했다. 그것은 대추리의 상징이었다. 대추리 논에 심어야 할 모가 청와대 앞에 심어지는 걸 보니 착잡했다.

구술정리/김중미 작가

문정현은 이제는 사제복도 던져버렸구나. 차제에 사제직도 반납하고 투사로 나서는 것이 어떨지? 정치에 신경쓸 시간이 있으면 성경 한구절 묵상 한번 더 하는 것이 본인을 위해서도 좋을것 같네. 카톨릭신자로 당신같은 신부가 있다는 것이 너무 부끄럽다.
문정현 그림의 웃는 모습이 참 벌레만도 못하구나...벌레가 아깝도다!
희망버스, 강정마을 가서 해군기지 반대 등..깡패 집단 북괴 인권에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말도 안 하면서 문규현, 함세웅과 같은 사제단...아니 조폭 집단이 나라 뒤집고자 궁리중이라니...가톨릭 신자로서 이런 신부들이 있다는 게 통곡할만합니다.

사제단 해체에 많은 힘을 쏟아주었으면 하는데 세상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박해와 모욕까지 다 참아 받을 수 밖에 없는 사제들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위로가 넘치시기를, 그리하여 옳은 일을 하다가 낙심하지 않게 되기를 빕니다.
사제가 정치나 세속적 문제에 대해 깊이 관여할수록 스스로 혼탁해질 뿐입니다. 당신들은 정치, 경제, 사회문제의 전문가가 아닙니다. 당신들이 해야할 일은 봉건체제 보다 비참하고 말할 수 없이 사악한 북한정권에 의해 억압받고 신응하고 있는 북한 동포들의 고통을 함께하는 것입니다. 칼기 폭파와 같은 명백한 북한 김정일의 소행에 눈감고 북한 권력집단을 두둔하는 당신들의 행동은 이승 뿐 아니라 천국에서도 심판받을 겁니다.
저는 경기도에 사는 평범한 주부입니다. 얼마전까지 절에 다녔는데 카톨릭의 순수성에 매료되어 어제 예비신자에 가입하였고 첫 교리모임을 가졌네요. 그런데 요즘 신부님들과 수녀들이 촛불을 들고 언론에 나오는 모습은 좀체 이해하기 힘듭니다. 이제 갓 종교를 찾아 신앙인의 삶을 살려고 한 저에게 그분들의 모습은 내가 카톨릭 신자의 삶을 앞으로 살아갈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하였어요. 그래서 왜 종교인들이 촛불을 들고 있는가 해서 알아봤더니 국정원개혁이 그들의 의제라지요? 설마 국정원 폐기는 아니시겠지요? 저처럼 정치 잘 모르는사람들이 이런 얘기하는 것도 웃읍시만 사실 이석기 사태가 난 지금에도 국정원을 폐기할 목적이 있는 좌파 종북주의 자들의 논리에 하느님이라는 고결한 대상을 앞세워 이성과 신앙인의 진정한 삶이 어떠해햐 하는지도 등한시 하고 있는건 아닌지요/ 무작정 비판할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전 어제 교리시간에 카톨릭의 신앙은 인간의 이성을 기본에 두고 있다고 배웠어요. 즉 상식과 이성에 벗어난 신앙은 진정한 신앙이 아니라는 거지요. 더군다나 전세계에 있는 그 많은 종교중에 개신교와 카톨릭 신자들이 우위에 있는 점으로 보아서도 카톨릭 신앙은 그 어느 종교보다도 이성적이라고 확인되고 있구요. 종교는 정치와 분리되어야 하는지 아닌지 확실히는 잘 모르겠지만 그것이 무엇이 됐든 지나침은 모자란 것 보다 못한 것 같습니다. 정말 헷갈리네요. 다음 교리 모임에 가도 되는지 전 정말 카톨릭을 순수한 종교 활동으로 대하고 싶은데 말이지요. 과유불급이라 했습니다. 본연의 자리에서 본래 카톨릭의 진정성인 사랑이라는 가르침을 전파하는데 노력해 주셨으면 하네요. 송곳 같은 말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개신교에서 앞장서서 활동하는 북한인권은 공감이 가는데 왜 카톨릭에서 하는 촛불에는 반감이 가는지 ... 북한에 가서 김일성에게 통일 어쩌구 하는 것보다 북한에서 탈북한 사람들이 왜 그런 말들을 하는지 더 귀기울여야 하지 않을까요? 진정항 신앙인들라면 말이지요...
저들은 하나님을 믿는신자들이 아닙니다..그저사제복을 입은 빨갱이라보면 되지요..김정일이 그랫다지요..남한에 종교에 간첩들을 셀수없을만큼 심어났다고..저들이 그런자들중 일부일뿐입니다..저들은 정신이 주체사상이요 주인은김정은입니다..저들이 종북인증거는 북에대해서는 입을 닫는다는거지요..종북당민주당이나통진당처럼
저더러운위선자들에 현혹대는신자들도 빨리 정신차려서 그자리에서 떠나야 할것입니다,,
지금이라도 북한에 가서 인권회복을 외치시오. 핵무기를 만들어 민족을 위협하는 북한 정권을 규탄하시오.
경제개발의 온갖 단물은 다 빨아 누리면서 국민을 우롱하고 나라는 어지럽히는 당신들은 악마구현사제단이오.
제발 사제복을 벗고 가면을 벗으세요. 당신들의 짓거리는 구토를 유발하고 있소,
고맙고 죄송합니다
이제 평신도들이 정치신부를 몰아내야 할 때입니다.
깨어 있는 평신도 ~~~